3일차(8월2일 목요일). 오늘의 일정은 드브로브닉 투어
새벽 5시. 시차적응이 어려워 몇번을 뒤척이다 베란다로 나아가 시원한 바람을 마주한다.
시베니크의 지금 기온은 25도. 지나가는 차소리 사이로 멀리서 들려오는 꼬끼오 소리가 신기했다.
어제 저녁의 부페와는 달리 간단히 차려진 컨티넨탈 호텔 조식이 입맛에 맞는다. 커플 신발을 신고 투어에 나섰다.
신과 함께.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은 중간에 보스니아 영토인 네움을 통과하기에 두번의 국경주변에서 차들이 정체가 되었다. 주변 해안의 경관을 안주삼아 팩소주 하나를 마셔주었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네움 지역 휴게소에서 오렌지쥬스를 먹었다. 주문하면 오렌지 하나를 즉석에서 갈아 준다.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절경을 담다보니 어느새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이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 공화국이 되었으며, 베네치아와 유일하게 경쟁했던 해상무역 도시국가로서 전쟁 등의 역사적 격정을 거치면서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크로아티아에서 유일하게 값진 독립을 유지했던 지역이다.
대형 크루즈선 3대가 정박해 있었다.
필레 게이트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성안의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문위의 성 블레이세 조각상은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건축물마다 조각이 되어 있다.
두브로브니크가 블라이세를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은 두브로브니크를 위기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브로브니크 성당의 신부 스토이코(Stojko)의 꿈에 나타난 성인이 인근에 있는 로크룸(Lokrum)에 베네치아의 해군이 집결하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신부는 곧바로 수비대에 연락을 취하여 대응에 나서면서 베네치아 해군이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두브로브니크는 블라이세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매년 2월 3일에는 축제를 열어 성인을 경모한다.
입구쪽, 거리의 악사가 노래없이 폼만잡고 있다.
필레문에 들어서면 바로 파스코야 밀리체비차(Paskoja Milicevica) 광장이다.
16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great fountain)
오노프리오분수는 도시 성벽의 정문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1448년 오노프리오 데 카바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였다. 166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이후 복원되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돔 천장을 가지고 있는 오노프리오분수의 각 16면에는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한 얼굴의 입에서 물줄기가 나오게끔 설계되었다. 지금도 맑고 시원한한 식수가 뿜어나오고 있어 여행자들의 목마름을 축여주고 있다.
목마른 자를 위한 것이니 ‘분수’보다는 ‘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겠다. 훗날 사람들은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큰 오노프리오 샘'이라고 부른다
작은 오노프리오샘은 루자광장의 종탑 아래에 있다.
광장 오른편, 성 사비오르(St. Savior Church)성당
성 사비오르(St. Savior Church)성당 옆에 이어지는 건물이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이다
'플라차거리'
스트라둔(거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스트라다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플라차거리'는 구시가지의 중심이자 드브롭닉 최고의 번화가이다
사실 이곳은 7세기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수송로로 쓰이던 도로였으며, 처음부터 번화가는 아니었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점들과 사람들이 몰려 도시의 중심 시가지가 되었다고 한다.
작은 골목길.
루자광장의 시계탑
독특하게 로마문자로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 시계탑이 있는 루자 광장에는 스폰자궁전, 성 블라이세성당, 오노프리오 소분수 등 두브로브니크의 대표 관광지가 모여 있어 수많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오를란도브 기둥(롤링의 기둥)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내거는 기둥이다. 이 기둥에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사 롤랑이 조각되어 있어 롤랑의 기둥(Roland Column)이라고 부른다. 15세기 밀라노 출신 조각가 보니노의 작품이다. 매년 여름 열리는 두브로브니크 종합예술축제의 개식선언을 롤랑의 기둥 위에서 한다는 것을 볼 때, 롤랑의 기둥이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것만 같다.
두브로브니크 문화 관광의 중심지인 '스폰자 궁'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그 당시 드브로브니크에 유행하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유명 건축가였던 파스코예 밀리체비치(Paskoje Miličević)가 건설을 맡았다.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품격있는 아케이드, 긴 형태의 고딕 창문 등이 특징적이다. 중앙홀은 예전에 많은 무역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한쪽 부속건물에는 14세기 국립조폐국이 들어섰으며 그밖에도 은행·귀중품창고·무기고 등이 있었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ć) 형제가 담당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16세기 말에 라구사공화국 중앙문화센터로 바뀌었다.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리며 중앙홀은 미술관으로 이용된다.
성 블레이세 성당(성 블라호 성당)
우연찮게도 결혼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뒤쪽의 대성당
대성당 내부에는 성 브라이세의 유품과 금, 은 콜렉션을 비롯해 라파엘로의 그림 '마돈나'를 감상 할 수 있다.
렉터궁전의 내부
렉터궁전의 용도는 두브로브닉을 통치했던 수도원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부엔 수도원장 사무실, 개인 방, 일반인들을 위한 홀이 있다.
이름모를 동상 -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골목을 따라 기념품점과 관광객들이 빼곡하다.
시계탑 사이로 걷다 보면 부두로 나가는 플로체 문이 있어,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볼 수가 있다.
바닷가 노천카페에서의 점심은 해산물리조또.
구시가지 밖에 위치한 작은 부두 - 올드항구.
이곳에서 보트투어를 시작한다. 유람선 형태의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다.
푸른 바다위에서 펼쳐지는 두브로브니크의 절경에 황홀해할 때, 레몬맥주가 서비스로 주어진다.
다 큰 성인 남자들만 홀딱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 패주고 싶다.
크로아티아 국기.
다음은 성벽투어이다.
<이어보기> http://cafe.daum.net/nice-na/RKK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