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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Cabale)
해브류 언어로 카벨(qabbel)은 받아들이다(recevoir)라는 뜻이며, 카발라(qabbalah)는 계시의 이론(théorie de la révélation)을 말한다.
유태 전통에서는 바이블(Bible)에 대한 비밀스런 해석을 의미한다.
카발라 점점 틀을 갖추어 짐에 따라, 세시기로 나눈다.
1. 13세기, 즉 이전 카발라 시기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는 신지학, 플로티누스(Plotin),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의 영향이 결합되어 Sepher Jetzira를 만들었다.
2. 14세기, Zohar의 시기이며, 이것의 작자는 랍비 모세(Rabbi Moshe de Leon: R2 x)이다.
3. 15세기, 소위 말하는 카발라 시기이며, 이것의 저자는 루리아(Issa Louria: R2 x)이다.
카발라 이론은 체계화 작업과 형성 작업의 [독특성] 때문에, 바이블에 포함된 신학과 구별된다. 그것은 유출의 철학이다. 신과 세계사이에 매개들을 연구한다. 매개들은 4가지 정도 또는 기체(hypostases)로 나누어져 있다. 즉 신(atsiouth), 창조(béria), 형성(jetsira), 인간(hassia)이다. 계시 자체는 이 도식을 통해 가능하게 되며, 이 도식은 인간의 현존과 신적 지혜를 직접연결하고 있다. 카발라는 경전의 주해(exégès)로부터 일반적 원리를 구별한다. 그리고 카발라는 탈무드와 대립된다. 탈무드는 그 속에 이야기되는 역사의 구체적 내용과 텍스트의 세부사항을 연구한다. (39UMG) [15세기 ‘기체’론에서 신, 창조, 형성, 인간으로 정도의 변화를 설명한 것은 플로티누스의 ‘일자’의 유출과 유사하지 않을까?]
카바니스 Georges Cabanis 1757-1808
프랑스 의사 철학자이다. 그(Jean Pierre Georges Cabanis)는 1757년 리무장(Limousin)지역의 (Corrèze 19)주의 꼬스냑(Cosnac)에서 태어나, 1808년(65세)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지역의 (Val-d'Oise 95)주의 스랭꾸르(Seraincourt)에서 죽었다.
그는 신체와 도덕의 연관을 방법적으로 다루었던 프랑스 작가 중의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신체와 도덕의 연관(Rapports du physique et du moral de l'homme 1802)에서 다루었다. 이 책은 그의 동시대에서 지적 관념들과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43SME)[내가 보기에 그는 초기에는 의학 생물학자로서, 육체 속에서 생명을 다룬 프랑스 유물론 전통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사회 조직화에 관한 몇 가지 고찰(Quelques considérations sur l'organisation sociale (1799) 혁명과 의학개혁의 일별(Coup d'œil sur les révolutions et la réforme de la médecine 1804)이 있다. / 프랑스에서 의학생물학자들로서 초기에는 좌파라고 부르는 부류가 이 부류일 것이다. 그는 오퇴이유(Auteuil)사롱에서 마담 엘베시우스(Mme Helvetius)의 친구들인 튀르고(Turgot), 올바하(d'Holbach), 콩도르세(Condorcet) 등을 만났다. / 그러나 그는 이데올로그들 가운데 트라시(Destutt de Tracy)와 함께 유물론의 완고한 옹호자였으나, 나중에서 자연에 목적성을 일치시키키믐 유심론적 태도를 취하였다고 한다.- fr.Wiki(43SME)]
칼빈(Jean Calvin 1509-1564)
그의 본이름은 꼬방(Cauvin)이다. 그는 1509년에 프랑스 북동부의 삐까르디(Picardie)지방의 와즈(l'Oise 60)에 있는 느와이용(Noyon)에서 태어나 1564(55살) 스위스 제네바(Genève)에서 죽었다.
그는 파리에서 논리학, 문법, 철학의 연구에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삐카르디 지방의 놔용(Noyon, Picardie)의 주교의 비서였고 파문 당하여 죽었다. 그의 형은 루터교로 개정하였다.
1532년 세네카에 대해 Commentaire du De clementia를 작성했으며, 이 책에서 그는 간접적으로 교회와 스토아학파 사이에 접촉점을 찾으려 했다.
1533년 11월에 종교개혁에 갑작스럽지만 결정적인 동맹이 이루어진다.
이때부터 제네바에 정착하기까지, 칼빈의 삶은 종교재판의 업습을 피하여 이리저리 달아나는 시기였다.
1536년부터 크리스트교의 강요(綱要)(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를 저술하였다. 그는 결국에는 제네바에 안착하고, 권위적인 당을 기초한다. 이 당은 처음에는 프랑스에서 은신자들로 강화되어 나중에 이 도시의회의 다수가 되었다.
엄격하고 열정적인 신학자이며, 권위 국가의 수장이었던 그는 또한 뛰어난 연설가 였고, 주목할 만한 작가였다. 그의 산문은 명석함의 모델이었다. 1564년에 그는 일을 많이 해서 소진해서 죽었다.
그는 칼빈주의의 기초자이다. 이 종파는 특히 북유럽과 북서 유럽에 널리 퍼졌다. [프랑스에서는 위그노(huguenot, 경멸어)라 불리며, 그리고 미국으로 옮겨가 북장로파로 되기도 한다.] (41LMD)(43SME)
캄파넬라 Tommaso Campanella 1568-1639
이탈리아 철학자. 그는 1568년에 이탈리아 반도의 남단에 있는 칼라브르(Calabre)의 스틸로(Stilo)에서 태어나 1639년(71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스콜라 철학과 싸웠고, 경험적 방법을 권했다. 그는 크리스트교의 개혁을 욕망했다가 감옥에서 27년을 보냈고, 하나의 시민적 질서 아래 그리고 “자연종교”아래 모든 인민의 통합을 설교했다. 현존하는 종교들은 그의 ‘자연종교’의 여러 특별한 형식들일 뿐이다. 그는 감옥에서 스페인 군주론(De Monarchia hispanica, 1620: Monarchie d'Espagne), 정치적 경구(Aforismi politici; Aphorisme politiques), 그리고 특히 태양의 나라(Civitas solis 1623; Cite du Solei)를 썼다. 이 마지막 작품은 공산주의 체계를 권한다. (43SME)
[fr.Wiki사전에는 그가 도미니크 수도사였으며, 거기서 토마소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파두아에 있는 갈릴레이를 알았고, 그를 옹호했다. 그는 1590년 나폴리에서 체류할 때 Philosophia Sensibus Demonstrata를 출판했고, 그 작품의 자연주의적 이론 때문에 이단으로 고발되었다. 감옥형을 받았으나 칼라브르로 간다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그 이후로 이탈리아들 돌아다녔다. 그는 1602년(34살) 이교도로 단죄 받았다. 27년간 감옥에서 여러 개의 글을 쓰고, 그 중에 1623년(55살) 태양의 나라(Civitas solis 1623; Cite du Solei)를 썼다고 한다. 그는 1626년(58살)에 풀려났으며, 1629년에 로마에서 새로이 체포되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1934년(66살)에 프랑스로 도망했다. 거기서 죽었다.](43SNE)
까뮈 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 작가이다. 그는 1913년 당시 프랑스령 알제리(Algerie)의 몬도비(Mondovi)에서 태어나서, 1960년 센느에마른(Seine-et-Marne)지방 욘느(Yonne, 89)주의 빌브르방(Villeblevin)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1934년(21살) 그는 폐가 나빠서 철학교수 자격심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1938년(25살)까지 연극애호가들 단원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나서 기자활동으로 그는 본토로 올라갔다. 그 본토에서 제2차대전 동안에 레지스탕스 단체인 “전투”(combat)에서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1945년(32살) 이후로 신문 “전투”의 편집장이 되었다.
1942년(29살)에 이방인(L'Etranger 1942)와 시지프스 신화(Le Mythe de Sisyphe 1942)(철학적 수필)로 유명해 졌다. 삶의 부조리(l'absurde), 세상의 사건들 앞에서 인간 지성의 무능, 죽음에 대한 밝힐 수 없는 성격 등은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적 구성물들이다. 그의 언어적 말투(registre)는 병리적이고 상징적인 소설(페스트(La Peste 1947))로부터, 이야기들((L'Exil et le Royaume, 1957)과 편년체 역사(Actuelles, 1950-1953-1958)를 포함하여, 부조리의 연극(칼리굴라(Caligula, 첫 판본1938, 1944)에까지 이른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연관하여 그의 독창성은 현존[실존]의 현대적 묘사들 뒤에 어떤 낙관주의에 물든 인간의 잔잔한 통찰(vision sereine)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은 세상의 부조리성을 그 자신에 대한 믿음과 대립시킨다. 그리고 또는 그 부조리에 대해 가장 높은 도덕덕 정신적 가치를 조장하는 규정적인 인간의 의지를 대립시킨다. 실존[현존] 철학자로서 까뮈는 고전이 된 사상가이며, 영감을 받은 작가로서 남았다. 그는 1957년(44살)에 노벨문화상을 받았다. (43SME)
깡길렘 Georges Canguillhem 1904-1995
프랑스 철학자 [의사]이다. 1904년에 랑그독-로시이용(Languedoc-Roussillon) 지역 오드(Aude 11)주의 카스텔노다리(Castelnaudary)에서 태어나, 1995년(91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 지역의 이블린(Yvelines 78)주의 말리 르 화(Marly-le-Roi)에서 죽었다.
그의 과학사에 관한 탐구는 과학에 관한 특히 인실론에 관한 반성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17세기와 18세에 반성개념의 형성(La Formation du concept de réflexe aux XVIIe et XVIIIe siecles, 1955), 인식과 생명(La connaissance de la vie (1952) 정상과 병리학에 관한 몇가지 문제에 관한 시론(Essai sur quelques problèmes concernant le normal et le pathologique, 1943)(réedite sous le titre Le Normal et le Pathologique, augmente de Nouvelles Réflexions concernant le normal et le pathologique, 1966), 생명체와 생명에 관한 과학 철학사 연구(Etudes d'histoire et de philosophie des sciences concernant les vivants et la vie, 1968), 까바이에스의 삶과 죽음(Vie et mort de Jean Cavaillès, 1976) (43SMJ)
규준 canon 규범 규칙
그리스어로 카논(Kanon)은 모범(modèle) 또는 규칙(règle)을 의미한다. [사물의 사태들이] 자체로 부합되어야 할 이상적 모범.
칸트에 있어서, 선천적인(a priori) 원리들의 일체를 말한다. 이 원리 일체란 그 인식을 규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의 틀이 가능한 경험과 관련되어 있을 때, 그 인식틀을 구성한다. (43TKA)
규준(적)의 canonique
하나의 체계를 언표[발언]하는 데 사용하는 규칙들의 일체를 말한다. 논리적(logique)이란 용어와 동의어로 쓰인다. 참조: 규범적(normatif). (43TKA)
기준론 (doctrine) cannonique
에피큐로스 학파의 기준론(doctrine cannonique)에 쓰이는 철학적 용어이다. 이 학설에 따르면 네 가지 종류의 분명함(évidence)이 있다. 즉 쾌락과 고통과 같은 수동(passion, 정념), 감각(sensation), 예참(anticipation)[지각과 연관 있을 것 같다], 반사(réflexion)이 있다.
감각은 언제나 진실하다. “감관들의 오류”는 오직 감각들에 대한 나쁜 해석에서 오는 것이다. 예참들, 즉 예변법들(prolpses, [미리 당김, 앞당김])은 과거 우리 경험의 잔여물이다.
[미래에 행할 방식을 앞으로 당겨서 행하는 것, 외적 지각의 확장된 범위의 인식은 과거 지각을 앞으로(미래로) 투사부분까지이라고 한다면, 그 예상참여는 미리 당겨서 인식하는 것인데, 행위 가능한 부분으로서 지각범위에 한에서 일 것이다.(43TKA)]
마찬가지로 수동과 반사는 실재적 경험으로부터 제공된다. 이 네 종류의 분명함은 실재성의 객관적 인식을 기초한다. (43TKA)
자본론 le Capital
칼 맑스(Karl Marx, 1818-1883)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 저술의 완전한 출판은 사후에(1885-1894) 이루어졌다.
자본론은 정치 경제학의 새로운 길로 방향을 잡았고, 철학에서 “노동사회학”(sociologie du travail)의 분야(univers)를 완전히 열었다. 맑스는 거기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서술했고, 역사의 진화의 의미를 찾아냈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정의롭지 못함은 노동자의 착취에 있다. 착취는 이러하다. 즉 공장주가 정해진 노동을 위하여 노동자를 고용한다. 예를 들어 한 차량 분량을 싣기 위하여 주인은 4시간의 노동에 대해 지불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3시간 또는 그 보다 시간이 덜 걸리는 [짐을 실을 수 있는] 보다 힘있는 노동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당 동일한 가격으로 6시간을 부과하여, 차량 1대 반의 싣는 대신에 2대 차량 분의 짐을 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plus-value)의 유명한 이론이다. 이 초과 이익(bénéfice supleméntaire)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이 정의롭지 못함은 근본적으로 주인이 노동의 생산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능력”(capacité de travail)을 샀다는 사실에서 온다. 여기서 노동의 능력이란 노동자 자신( le travaileur lui-meme)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인간적 관점에서 노예의 형식을 구성한다. [주인은 일정한 일을 하기 위한 노동자로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부리는 하인 또는 노예로 생각한다.]
자본론의 이론은 자본주의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역사적 예언은 다음 사실들로 취소되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공항에 의해 그 자체로 파멸되어야 했고, 노동혁명은 서구 유럽의 발달된 국가들에서, 특히 영국에서 돌발해야 했다. [서구와 영국은 1차 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으로 국면을 넘기면서 자본이 미국으로 옮겨가고, 1929년 시작한 미국과 세계 공항은 10년 후에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을 통해 자본주의 파멸을 위장하여 지연시켰다. 그리고 미국을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 제국의 분열과 붕괴의 시작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2009년 골드만 삭스의 부패 등의 악순환으로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2차대전보다 큰 전쟁으로 이 위기를 풀어야 한다는 관점이 도래해야 세상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노동혁명은 농업이 우세한 가난한 나라들에서 도래했다. (43TKB)
자본주의 le capitalisme
생산 수단이 사적 자본에 속하는 경제 체제를 말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원리들은 사유 기업들과 시장의 자유이다. 자유 경쟁은 경제를 자극하고 생산물의 질을 개량하고, 가격들을 조절한다. 자본주의 영웅시대는 산업의 기사들, 즉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과 모건(2세)(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의 시대였다. 공장들의 창설과 운명은 서구 나라들 속에서, “국가적”(national) 경제의 계획 속에서 조금씩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갔으며, 이리하여 국가의 계획 경제적 의지에 대답하기에 이른다. 이런 시대인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적 주도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사회주의와 종합의 길로 진보한다. 그래서 국가는 합의한 경제의 부분들이거나 아니거나, 또 기업들의 신용들이거나 아니거나 자극할 힘을 소유하고 있다. (43TKB)
성격 (le) caractère
어떤 인격이나 어떤 집단의 심리학적 또는 도덕적 모습을 구성하는 뚜렷한 특징들의 일체를 의미한다.
성격들을 차별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험들이 있는데, 특히 뎀보 시험(test de Dembo)은 이러하다. 그 시험에서 어떤 인물을 분필로 그린 원 속에 한 인물을 위치시키고, 그에게 도달할 범위 바로 밖에 있는 의자를 잡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차지하지 못하는 좌절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즉 화를 내거나 웃고 치우는 등과 같은 반응을 연구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성격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들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온화한 성품(tempérament, 기질)이 있다. 이 성격은 우리가 생리학적으로 얻은 것이다. 예를 들어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인간의 성격은 그의 운명(destination)이다”고 말하는데, 그는 성격을 온화한 성품과 동일시했다.
사실, 성격은 특별하게 심리학적이다. 알랑(Alain, Emile-Auguste Chartier, 1868-1951)이 말하는 관점에서 보면 반대로, “성격은 맹세(un serment)이다”라 한다. 성 이냐스 로욜라 (saint Ignace, 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천성적으로 폭력적인데, 그는 “성격상으로”(par caractère), 즉 순수 의지로 성인이 되었다.
태생주의에서 성격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오는 것이고, 경험주의에서 성격은 교육, 환경, 의지 등의 경험과 함께 형성되는 것이다. 이 태생주의 주제와 경험주의 주제 사이에 정신분석학적 주제가 있다. 성격이 초기 어린 시절에 주목했던 시련들(epreuves) 과정에서 고정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어린 시절이 단 한번(une fois pour toutes)으로 개인을 표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 타고난 온화한 성품, 어린 시절, 교육, 경험 등은 우리들의 자유에 봉사하는 요소들이다. 우리의 심리학적 도덕적 삶은 무한정하게 진보할 수 있고 진보할 수 있다. 참조: 성격학(caractérologie). (43TKB)
성격의 caractériel (성깔있는) 말썽꾸러기 un caractériel
성격에 속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적인 개인에 대해 말할 때, 성격인(le caractériel, 성격장애아)이란 일반적으로 성격 장애를 표현하는 어린이를 말한다. 이는 비정상적 행실(comportement)이나 비정상적 품행(conduite)에 의해, 가정, 학교 사회에서 부적응(une inadaptation)을 말한다.
사람들은 서술적 이론상으로 두 종류를 구별한다. 1. 구성주의적 이론. 이 이론에 따르면, 성격장애아와 그의 비정상은 생식적 또는 유전적이라 한다. 여기서 비정상이란 공포증, 강박증, 과잉충동, 내분비적 기원에서 오는 모든 장애들을 말한다. 2. 심리발생주의적 이론. 이 이론에 따르면, 어린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상황의 결과에서 오는 장애라고 생각한다. 이 예들은 풍부하고 구체적이다. 이 이론은 정당하게 빈곤의 역할, 주거의 불충분, 혼잡한 생활 등을 강조한다. 호일러(Heuler)는 대부분의 어린이 성격 장애아는 가정이 해체되는 집에서 온다는 것을 주목했다. 이 장애는 애정 결핍의 결과이며, 부모 중의 하나에 대한 적대감에서 온다. “청소년 경범”(délinquance juvénile)의 경우에 전쟁 다음 시기에, 사회적 혼란 시기에 증가한다.
사람들은 일시적 성격장애와 영구적 성격장애를 구별한다. 전자는 건강 상태의 변화, 성적 생활의 중단, 늙음의 시작 등을 동반할 수 있다. 후자는 진정한 성격장애라고 부르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이래로 나타났던 사실에 의해 인정되는 경우이다. 그 예로, 위인이 되려는 광기(왕자병, 공주병), 병적인 질투, 과잉 충동, 흥분기질(exaltation), 정념적 성격 등이며,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의 악령(les Possédés, 1871(Les Démons 이라 번역하기도 한다)를 참조할 수 있다.
성격장애인이란 근본적으로 삶에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자이며, 현존하는 대로 스스로를 동화하지 못한 자이다. [한마디로 불평 불만이 많은 자이다] 일반적으로 재적응이란 어린이의 경우에 쉽고 어른의 경우는 어렵다. 전자의 경우에 심리학적 분석도 그리고 환경 변화에 적응도 쉽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 정신분석 치료에서 자구 실망의 경우가 드러난다. (43TKB)
성격학 caractérologie
성격들의 연구.
이 용어는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에 의해 창안되었다. 성격학은 성격의 분류와 그 형성에 관해 연구한다. 분류는 시험(tests, épreuves)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유명한 것은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 1884-1922)의 시험인데, 그 시험은 두 장의 종이 사이에 잉크점을 으깨어서, 이 흔적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다. 비에르스마(Wierzma, 홀란드)와 헤이만스(Corneille Heymans 1892-1968 벨기에)가 행한 매우 복잡한 “격자칸”(les grilles)의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을 이용하여 매우 유명한 분류법을 확립하였다. 그 분류는 1. 정서(l'émotivité), 2. 활동(l'activité), 3. [반향으로서] 주도적 또는 부차적(la primarité ou la secondarité)으로 한다. 여기서 선도자(le primaire)이란 현실적 운동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고, 조연자(le secondaire)는 자기 안에 경험들이 흔적으로 또는 깊은 반향(retentissement)으로 남아있어서, 이런 사실 때문에 과거 경험에 의해 여전히 제재 받고 있는 자이다.
단순히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성적(introverti) 성격과 외향적(extraverti)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자시 자신으로 향하는 성격이고 후자는 수다를 떨고 세상에 개방적이며, 내재성에 관계없이 한계에 까지 가보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성격은 그림을 감상하거나 세계의 광경을 보는 경우에 특히 “움직임”(le mouvement)에 민감하며, 분열상(schizoïde)의 경향을 띤다. 그 예로 반고호(Van Gogh 1853-1890)의 측백나무(les Cypres)는 특히 이런 해석에 알맞다. 외향적 성격은 특히 “색깔”(la couleur)에 민감하다. 그리고 사물들의 “형태”(forme)에 주목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학식있는 지성의 전형이며, 우울(mélancolie)하다 [형상주의는 철학적으로 좋게는 금욕주의, 이상에 대한 실망에 따른 허무주의에 가깝다]. 이 움직임, 색깔, 형태의 세 가지 모두에 균형적인 전형이 있는데, 이 대표자로서는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로 소개된다. 내성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 사이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문학과 과학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이다. (아래 도표 참조)
(43TKC)
전형 type | 선도역할(le primaire) | 조연역할(le secondaire) |
비정서적 - 비활동적 non émotif - non actif | 무정형 amorphe 루이15세(Louis XV) | 무감동 aphathique 루이 16세(Louis XVI) |
정서적 - 비활동적 émotif - non actif | 민감형 nerveux 바이런(Byron) | 감성형 sentimental 아미엘(Amiel) |
비정서적 - 활동적 non émotif - actif | 투쟁형 sanguin 베이컨(Bacon) | 침착형 flegmatique 칸트(Kant) |
정서적 - 활동적 émotif - actif | 분노형 colérique 당통(Danton) | 정열형 passionné 나폴레옹(Napoléon) |
애정 결핍 carence affective
어머니와 연계 관계가 박탈당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이다.
애정결핍의 혼란은, 스피츠(René Arpad Spitz 1887-1974)의 연구에 따르면, 고아원, 탁아소, 요양시설에서 자주 표출된다. 이 혼란의 결과들은 매우 심할 수도 있고, 또 그 결과로 신체적 정신적 발전에서 지체의 현상(특히 생후 3개월에서 생겨서)을 죽을 때까지 가는 수도 있다. 이 현상의 결과가 차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안정된 삶에서 적응하거나 자기 확립에 불가능하게 이끌 수 있다. 또한 이 혼란 자는, 마치 고독이 자신에게만 미리 배정된 형벌인 것처럼 여겨, 항상 불만족한 가운데 절대적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43TKC)
카르납 Rudolf Carnap 1891-1970
독일 철학자 논리학자이며, 미국으로 국적을 가졌다. 그는 1891년 독일의 론스토르프(Ronsdorf, 현재 부페르탈 Wuppertal)에서 태어나, 1970년(79살)에 아메리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 Californie)에서 죽었다.
프레게(Gottlieb Frege, 1848-1925)의 제자였으며, 비엔나 대학와 프라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비엔나(Cercle de Vienne)에 기초하는 기여하였고, 논리실증주의(positivisme logique)를 대표하는 탁월한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1928년(37살)에 나온 세계의 논리적 구축(Der logische Aufbau der Welt, La Construction logique du monde, 1928)은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의 논리학의 기술(technique)을 세계 구축의 시도에 적용했다. 이 구축은 무매개적 경험의 자료들로부터이다. [이 자료는 기억이 아니라 순수 관념이다] 1934년(42살)에 언어의 논리적 구문(Logische Syntax der Sprache, La Syntaxe logique du language, 1934)에서는 힐버트(David Hilbert 1862-1943)에 의해 전개된 수학적 언어의 순수 구문법적 접근을 모든 언어에 확장하려고 하였다. 1935년(44살)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거기서 노이라트(Otto Neurath, 1882-1945, 오스트리아 철학자)와 모리스(Charles W. Morris 1901-1979, 미국 의미론 철학자)와 함께 통일과학 국제 백과전서(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를 작성하였다. 이 책의 목적은 과학적 인식 일체를 통일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그의 작품으로 의미론 입문(Introduction to semantics, 1942), 의미와 필연성(Meaning and Necessity, Signification et nécessité, 1947), 개연성의 논리적 기초(Logical Foundations of Probability, Les Fondements logiques de la probabilité, 1951), 기호논리학 입문(Einfuhrung in die symbolische Logik, Introduction à la logique symbolique, 1954), 귀납적 논리와 그럴사함(Induktive Logik und Wahrscheinlichkeit, Logique inductive et vraisemblance, 1959)등이 있다. (43RLH)
카르네아데스 Carnéade, Καρνεὰδης, Karneadēs 기원전 215년경-129 [fr.Wiki 219경-128]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215년경에 현재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있는 고대의 도시 퀴레네(Cyrène)에서 태어나, 129년(86살)에 그리스 아테네(Athènes)에서 죽었다. 신아카데미(Nouvelle Académie)에서 가장 유명하며, 개연주의(probabilisme)을 창설자이다. 그는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키케로(Cicéron, 기원전 106-43)와 섹스트수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 기원후 3세기 초)가 인용한 [그의 제자] 클리토마크(Clitomaque de Carthage)를 매개로 해서, 그의 사상을 알게되었다. 그는 확실함의 이론의 모든 형식들을 비판하였다. 즉 스토아학파의 감각주의, 신들의 존재, 최고 선 등을 비판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표상들 사이에 개연성의 정도들 만이 있다. 수사학은 단지 설득하는 기술이며, 정신을 그러저러한 표상으로 향하게 하는 경향이라 보았다. (43TKE)
데카르트주의 cartesianisme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와 그 제자들의 철학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주의라고 하면, 사람들은 특히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말브랑쉬의 철학을 지칭하며, 이를 데카르트주의의 세 거장이라
한다. 특히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는 데카르트 물리학을 발전시키면서 미분 계산을 창안하였고, 에너지 보존의 진실한 형식(mv2)을 가지고 세계 속에 운동의 원리에 속하는 “힘”(la force)의 정령적(spirituel) 특성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동력학”(dynamique)의 토대를 만들었고, 정신적 형이상학을 세웠다.
말브랑쉬(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는 사유 속에서 자신보다 더 깊은 현존, 즉 신(Dieu)을 발견하기 위하여 코기토(cogito, 사유자아, 사유실체)를 깊이 있게 파고 들었다. 그의 합리론은 신비적 직관 주변에서 전개되었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가 윤리학(Ethique)에서 제시했던 [기하학적으로]정의하는 체계에서, 그는 자신을 앞섰던 체계들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며, 또 인간의 구체적 현존 만큼이나 신에 관한 한에서 절대적 예지성(l'intelligibilité)을 실현했다고 주장한다.
18세기에 관념론자들과 유심론자들이 데카르트와 말브랑쉬의 형이상학으로부터 요구된 데카르트주의를 환기시키고, 동시에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와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 같은 유물론자들도 그의 물리학으로 데카르트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은 데카르트의 가르침의 풍부함과 심오함에 기인한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성찰의 출발점은 확실하고 진실한 지식을 재구축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지워버리는(faire table rase) 것이었다. 그 출발점이 후설의 데카르트의 성찰(Méditations cartésiennes)에 영향을 주었고, 이 작품은 , 현대 “현상학”의 가장 충전적 저술의 하나이다. (43TKE)
카루스 Paul Carus 1852-1919
독일 철학자이다.
그는 1852년에 작센 안할트(Sachsen-Anhalt)주의 일젠부르크(Ilsenburg)에서 태어나 1919년(67세) 미국에서 죽었다. [1884년에 미국 일리노이즈(l'Illinois)주의 시카고(Chicago)와 카나다 궤벡주의 라살(LaSalle)에서 살았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두 개의 잡지, 열린 마당(The Open Court)와 일원론자(Monist)를 발간하였다. 그는 1881년(29살)에 과학 도덕 종교에서 형이상학(Métaphysique dans la science, la morale et la religion, 1881) (43TKE)
양심상 cas de conscience 양심살이(양심을 걸고 사는 경우)
[한불사전(삼화출판사): 양심의 문제: 본래는 종교용어로서 교회의 규울로 선악이 판별되지 않는 행위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개인의 양심으로 결정될 문제가 문제를 가리킨다. (결정하기 힘든) 난처한 문제.]
의무들 사이의 충돌.
일반적으로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요구들 사이에 충돌을 일어나는 경우이다. 소포클레스(Sophoklês, 기원전495-405)의 비극의 영웅인 안티고네(Antigone)가 그 예이다. 이 여주인공은 국가의 자의적 법률에 대해 양심의 의무들을 옹호하였다. 그녀는 국가의 반대자에게 매장을 거부하는 것에 반대하여, 자기 오빠의 주검을 땅에 묻는 의무를 다하였다. (43TKE)
[안티고네의 이 주제는 자연법과 국법 중에 어느 것을 지켜야 하느냐는 것에 관한 주제로 알려져 있다. 이와 다른 의미에서 나로서는,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사회적 의무강요하면 개인에게 창발이 죽고, 창발을 중시하면 사회적 동요를 초래하는 경우에, 어느 것도 하나 약화 또는 제거 할 수 없는 경우, 이중구속과 비슷한 경우에 쓰이는 것이라 느낀다. 도덕 또는 자연적 태도에서 생기는 이 이중구속은 영혼의 결단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 이중구속은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은 논리상에서 생기는 아포리가 아니며, 칸트의 세계의 안티노미들처럼 지식의 확장이나 극한에서 생기는 난문제도 아니다. - 또 국가의 위급함과 가정의 곤란에서 국가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갈등을 개인과 국가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나, 이것도 개인이 처한 상황의 문제이기에 양심상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우리나라 남북이 전쟁을 치르게 될 경우, 전쟁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양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과 의지의 관계 또는 머리와 가슴의 관계가 함께 하는 경우이다. 전쟁은 반대해야 하며, 또 그러한 방법을 찾아서 반전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전혀 다른 이념과 의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43TKE)]
카시러 Ernst Cassirer 1874-1945
독일 철학자이다.
그는 1874년 독일 실레지(Silésie)지방의 브레스라우(Breslau)[현재 폴란드에 있는 부로쯔와프)에서 [부유한 유태인 가계에서] 태어나, 1945년(71살)에 미국 뉴욕(New York)에서 죽었다. 그는 1919년(45살) 함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다. 독일이 국가 사회주의가 되기 앞서서, 그는 1933년(59살)에 스웨덴으로 망명했다가, 1941년(67살)에 미국으로 갔다.
그는 신칸트주의 즉 마르부르크(Marburg)학파의 대표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수학적 논리에 관한, 또 사유의 기호적(symbolique) 기능에 관한(종교, 신화, 인간언어 일반에 관한), 그의 깊은 반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학식들로 풍부해졌다. 카시러의 노력은 비판이라는 칸트 인식의 토대를 가장 근대적인 과학의 형식들에까지 확장하였고, 그리고 또한, 매우 다양한 그의 표현물들로 보아, “정신”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까지 철학적 반성을 넓혔다. 그 덕분에 새로운 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인식(Das Erkenntnisproblem in der Philosophie und Wissenschaft der neueren Zeit 1906-1920; Le Problème de la connaissance (1906-1920), 실체개념과 기능개념(Substanzbegriff und Funktionsbegriff: Untersuchungen uber die Grundfragen der Erkenntniskritik. 1910; Concept de substance et concept de fonction, 자유와 형식(Liberté et forme, 1917), 상징 형식들의 철학(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 3V, 1923-1929)을 읽을 수 있다. (43TKE)
거세 콤플렉스 (complexe de) castration
남근(phallus)의 상징적 기능에 연결된 불안(angoisse),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지(penis)의 제거를 또는 신체의 동등한 부분의 제거를 상상적으로 위협하는 것에 연결된 불안을 의미한다.
거세불안(l'angoisse de castration)은 자위(onanisme, 수음 手淫)와 같은 “상습적 습관”(mauvaises habitudes)을 벗어나게 하는 데 관심을 갖지만, 잘못 다루는 교사들의 위협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그러나 거세불안은 성적 차이의 발견으로부터 또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발달에 따른 내적 죄의식으로부터 어린이에게서 자연적으로 생겨난다. 어린이는, 자기 아버지에게 견주어 보아서 또 어머니와 연관된 한에서, 질투와 경쟁의 감정을 가질 때 죄의식을 느낀다. 이 죄의식의 감정은 규정된 벌의 두려움(la peur), 즉 거세 불안을 일으킨다.
거세 콤플렉스란 남성성의 과장된 평가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소녀가 자기에게는 자지의 없음을 발견했을 때, 소녀에게는 막심한 실망의 형식으로 취할 수 있다. 많은 저자들 가운데, 의사 에나르(Angel Louis Marie Hesnard, 1886-1969)같은 이는 여성 동성애의 어떤 경우들은 이 실망에서 온 먼 귀결일 것이라 했다. “동성애 여인은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과장하여 줄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제거에 대한 도전에서 회복했다고 여긴 그녀는 스스로에게 상상적으로 자지를 부여하고.... ” (43TKE)
[에나르(Angel Louis Marie Hesnard, 1886-1969) 프랑스 정신과의사이며 정신분석가. 1926년(40살) 파리정신분석학회(la Societe psychanalytique de Paris) 설립자이다.]
범주 catégorie
범주란 동일한 본성을 지닌 인물 또는 대상을 분류하는 것이다.
이런 분류(classification)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소”(lieu)의 동일성 또는 “시간”(temps)의 동일성이라고 간주한 것처럼, 몇몇 일반적 원칙에 따라서 분류되기도 하고, 또 칸트가 우리의[오성의] 판단에 따라서 “질”(qualité), “양”(quantité), “관계”(relation), “양상”(modalit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개념에 따른 10개의 범주가 있고, 칸트에게는 판단에 따른 12개의 범주가 있다.] 그러므로 범주란 우리가 존재자들 또는 관념들에서 확립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의 일반적 형식들이다. (43TKE)
카타르시스 catharsis
이 용어는 그리스어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에서 왔으며 정화(purification)을 의미한다. 예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태이며, 이 상태는 이 개념이 지적하듯이, 정념으로부터 영혼은 정화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의 관람자는 자기 앞에서 모든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난폭하고 범죄적인 경향성들을 모방한 것을 보면서, 이 경향성을 자신으로부터 추방한다. 울분풀기(défoulement)의 치료 기술이 있는 정신분석학과 이 다음에 나온 현대의 교육학은 둘다 부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에, 특히 어린이에 있어서 과도한 공격성과 심지어 폭력성을 놀이에 의해 제거하려고 그 가설에, 다시 합류한다. (43TKE)
카톨릭주의 Catholicisme
카톨릭(catholique)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나왔으면 보편(universel)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카톨릭주의(catholicisme)란 원초적으로 인간 류의 자연적 종교로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인간 심성(coeur)에 자연적이고 규정된 종교가 존재하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이다. 반대로 인간을 믿는 자연적 신앙은 문화와 연구의 진보들과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다.
카톨릭주의는 성서에 대한 반성이나 분명한 계시 위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권위 위에서 세워진 종교란 의미에서 굴절된 것이다. 이 교회의 권위는 영감과 인도로서 뿐만 아니라 무오류의 심판으로서 표현된다.
이 교리의 주요 독단들은 삼신론(Trinité)과 육화의 불가사의(mystère), 크리스트의 죽음에 의한 죄의 속죄[대속(代贖)], 칠성사(sept sacrements: 세례(洗禮), 성체(聖體), 견진(堅振), 고해(告解), 병자(病者), 혼인(婚姻), 성품(聖品) 성사) 등이 있다.(43LLG)
원인 cause
원인이란 효과를 생산하는 힘(la force)이다.
원인들에 대한 탐구는 인간 정신에 비추어 자연적이다. 인간 정신은 “이유 없이(sans raison)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연 신학적”(physico-théologique) 증명은 원인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신이라 간주할 제일 원인의 존재를 연 역하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도 신이 아니라 자연이지..ㅋㅋ.. 신이라 이름 부르는 그 용어가 유명론이듯이 자연도 유명론일 수 있으나 자연은 그대로 있었고 있고 있을 자연이다. ㅎㅎ - 신이라고 하는 녀석은 능력이 없거나 불의하게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한 기만술을 펴는 자들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이었다. 이 원인의 개념은 생기론(animiste)의 용어에 남아있다. 이 사람들은 의도(intention), 즉 총체적 이유를 찾는다.
데카르트 이래로 근대 과학은 이 원인들을, 다시 말하면 현상들의 앞선 것들을, 찾지 않으나, 오히려 법칙들(les lois)을, 현상들 사이의 항상적 연관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엄격하게 “효과적”(efficiente) 원인과 “마지막”(finale) 원인을 구별한다. 전자에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 무엇에 의한 것인지를, 후자에는 사건이 생겨난 것이 무엇을 위해서[목적] 인지를 묻는다. 예를 들어, 돌이 떨어졌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람”(le vent)은 효과인이다. 그 돌이 멍멍이 머리 위에 떨어졌는데, 멍멍이를 벌주기 위해서 이다. 여기서 “벌”(punition)은 목적인이다. [이 돌이 떨어져 멍멍이 머리를 맞힌 것은 우연(hasard)이다. 이것을 원인과 목적에 맞추는 것은 속좁은 이성이 자기 합리성 속에 갇혀서 자기 의사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헛된 망상에서 나온 것이다. 우연은 항상 일어날 수 있고, 일기 예보처럼 미래를 모두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과라기보다 개연성이다. 과학은 폐쇄된 계 안에서 인과를 다루고 삶(도덕)은 열린 가운데 사랑(이타행)을 실행한다.] (43TKE)
까바이에스 Jean Cavaillès 1903-1944
카바이에스는 프랑스 철학자이며 수학자이다.
그는 1903년 프와투 샤랑뜨(Poitou-Charentes)지역의 두세브르(Deux-Sèvres 79)주의 생맥상(Saint-Maixent)에서 태어나서, 북빠드깔레(Nord-Pas-de-Calais)지역의 빠드깔레(Pas-de-Calais 62)주의 아라스(Arras)에서 독일군에게 총살당했다.
그는 1938년(35살)에 과학철학의 주제로 학위를 받았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그리고 소르본에서 가르쳤다. 그는 수학 논리의 작업과 강의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애국적 활동, 두 가지를 동시에 이끌어 나갔다. 그의 주요 저술은 집합의 추상이론 형성에 관한 주석(Remarques sur la formation de la théorie abstraite des ensembles, 1938), 그리고 유고집으로 초한수와 연속성(Transfini et continu, 1947), 논리학과 과학이론에 관하여(Sur la Logique et la théorie de la science, 1947)등이 있다.
동굴 우화 la caverne
플라톤이 공화국(Politeia, Le République)의 제7권에서 사용한 우화(allégorie)이다. 플라톤은 감각에 의한 우리들의 인식과 감옥에 갇힌 자의 인식을 비교하였다. 그 죄수는 동굴의 밑바닥에서 사슬에 묶여 있어서, 태양 빛에 의해 벽에 비쳐진, 실재 대상의 그림자들만을 보게 되어 있을 것이리라. 그 죄수는 자신이 보는 대상의 원인들 즉 실재적 대상도 알지 못하고, 게다가 시각의 원인들인 태양도 알지 못한다. (43TLB)
셀수스 Celse, 기원후 2세기 경 .
플라톤 주의 철학자. 그는 황제들 시기(Les Antonins 96-192)에 로마에 살았다. 그는 크리스트교주의에 반대하여 공격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남았다. [fr.Wiki: 그는 에피큐로스 학파 철학자이며, 진실한 잠론(Discours véritable, gr. Logos Alēthēs v. 178) 저술이 있으며, 의사 셀수스와 다른 사람이다.] (43TLB)
[* 참조: 파라셀수스(Paracelsus, fr. Paracelse, 1493-1541)는 아우구스투스 통치하의 로마 시대의 의사인 셀수스(Aulus Cornelius Celsus, fr. Celse, 생물불확실)의 이름을 차용하였다고 한다. (43PMA)]
순환논증, le cercle vicieux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
순환논증은 거짓 추론이다. 이 논증에서 사람들은 증명을 필요로 하는 것을 증명으로 제시하는 경우이다.
예들 들면, 신의 현존(l'existence)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정의 상으로 신은 무한히 완전한 존재(l'être)이기 때문에, 신은 모든 성질들을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그는 현존의 성질도 소유하고 있다. 이 순환논증은 신을 가정하고 그리고 그로부터 현존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거짓 추론이다. (43TLB) [인간 지성이 이 순환논증에 벗어나려고 속 좁은 부분적 합리성을 만들었으나 그 마저도 신의 순환논증에 포섭되었다. 결국 서양철학사의 상층 형이상학은 현재의 불가예측성을 미래의 확실성(죽음)에 비추어서 현실도피적 해결을 한다. 여기에 우울(비관주의), 불안(허무주의), 신에 대한 냉담(금욕주의) 등이 있다. 그러면 진정한 즐거움과 환희는 어디에서 오는가? 연관의 확장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다원화를 만들며 산다. 사랑, 친애 그리고 정치가 필요하다.(43TLB)]
두뇌긴장 (la) cérébrotonie
[미국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셀던(William Herbert Sheldon 1899-1977)에 따르면, 직접적인 행동보다 담론을 좋아하고, 사회적 모임이나 군중들보다 고독과 신중함을 좋아하는 기질(tempérament)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뇌긴장의 인물은 내성적(introverti)이고, 불면증의 혼란이나 만성적 피로를 나타낸다. (43TLB)
자동화 부속 (노동) (le travail à la) chaine
파편화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집단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노동을 의미한다.
자동화 부속 노동[기계화 노동]의 목적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 협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노동의 근대적 이 형식은 수공업적 노동과 자동화 사이에 매개적 단계로서 생각 될 수 있다. 어떤 노동자들은 자유 노동보다 기계화 노동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강요되는 자동화 노동의 리듬이나 그들이 실행하는 파편화와 그 노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인격화된 관계들에서 고통을 겪는다. (43TLB)
운수 (la) chance
어떤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게]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다.
이 단어는 보다 특별하게는 좋은 기회(la bonne fortune 행운)를 지칭하며, 불운(malchance)이라는 단어에 대립된다. 기회에 의존하는 시도들, 즉 룰렛 놀이, 카드놀이, 통계적 예견, 어떤 정도에서 인간인 모든 시도들 등은 개연성(확률) 계산의 대상들이다.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는 우연(hasard)의 이론 또는 운수(chance)의 이론을 만든 첫 번째 학자이다. 그는 우연을 “독립적인 두 인관 계열의 교차(l'entrecroisement)로서 정의했다. 운수의 계산은 경제에서 그리고 정치에서 사용된다. (43TLB)
중국 철학 (la philosophie) chinoise
공자(Confucius 孔子, 기원전 552-479)는 중국의 전통 종교[사회적 삶의 형식]에 철학적 형식을 부여한 첫 번째 철학자이다. 그는 철학적 원리들을 체계화하였고, 노력하는 도덕론을 돋보이게 했다. 그의 도덕적 이상은 높은 도덕적 인간 즉 군자(kiun-tseu 君子)의 이상이다. 따라서 중국 철학은 사회적 종교적 전통에 관한 반성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유가(confucianisme)를 두 개의 큰 대표자 그룹으로 구별하는데, 하나는 낙관주의자인 맹자(Mong tseu, 孟子 기원전 372-289)와 비관주의자인 순자(Siun tseu, 荀子, 기원전 298-238)가 있으며, 다른 학파로서 묵자(Mozi 기원전 500-416)가 있다. [묵자(墨子, BC 480-BC 390) - 묵가에는 스토아적 발상이 있다는 점에서 따로 떼어냈을 것이다. 프랑스 연대는 부정확하다.]
도가(taoïsme)는 중세의 거의 모든 학파들을 집성하였다. 말하자면, 신비주의, 의례주의, 도덕적 유가를 혼합물이었다. 중국의 논리학자들은 명가(l'école des noms 名家)라는 깃발아래, 사회철학은 주로 법가(l'école des lois, 法家)라는 깃발아래 집결시킬 수 있다. 중국철학은 오늘날까지 아주 심오하고 보수적인 인간주의로서 소개되었다. 이 인간주의는 질서와 고요(l'ordre et le calme)에 대한 염려를 창조의 가치보다 높이 두고 있다. (43TLB)
충격 choc
심리적인 붕괴를 동반하는 맹렬한 감동(l'émotion violente 경악)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아, 충격은 생활에서 순간적으로 주체가 적응할 수 없는 새로운 요소의 출현에서 나온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몇 가지로 구별한다.
1. 작은 충격들: 이것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알맞거나 알맞지 않은 수준에서 오는 것이다.
2. 다소 긴 충격들: 이것은 [사라질 때까지] 적응이 안되어 다소 길게 이어지는 충격이다. 즉 맹렬한 감동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죽음의] 경우 등이다.
3. [결정적] 충격들: 이것은 결정적으로 적응이 안 되는 것으로, 그런 이유로 광기(la folie)로 이르게 하는 충격들이다. 심리학자 뒤마(Georges Dumas, 1866-1946)는 살아있는 체 땅속에 묻혔던 자들의 몇몇 경험들을 환기시켰다. [매몰, 설산에서 비행기 추락, 전쟁에서 죽음 경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썼던 감동-충격(l'émotion-choc)이란 표현은 이제 애정적 충격(le choc affectif) 즉 정서적 충격(le choc émotionnel)이란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43TLB)
사물화 chosification
사물화란 추상적인 개념을 실체(substance)로 또는 구체적 대상(objet concret)으로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보아 일상적으로 “객관화”(objectivation)라고 말한다. 이 사물화라는 표현은 꽁트(Auguste Comte, 1798-1857)가 고발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왜 양귀비는 잠들게 하는가? - 그것에는 잠들게 하는 덕성이 있기 때문에.”라는 것은 형이상학적 전형인데, 이 “형이상학”이라 이름 붙은 설명을 고발하기 위해 꽁트가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한 단어를 실재적 덕성(vertu)로 변형할 때, 사람들은 개념을 “사물화”(chosifier) 한다고 한다.(43TLB)
[꽁트가 고발한 “사물화”란 사물의 성질을 덕성(vetu)처럼 사물화하여 사물 속에 인간적 성격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 것이다. 양귀비 꽃에는 수면제의 성격이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정한 양 이상이 이런 효과를 나타낸다. 그 성질의 사물화의 형이상학은 구체적 대상에 대한 실증적인 것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다음 단계로 실증적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트교 철학 chrétienne philosophie
크리스트교 주의에 의해 영감을 받은 철학을 의미한다.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는 크리스트교 철학(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chrétienne, 1960)에서 어떤 철학은 크리스트주의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에크리스트교적(chretinne)이 아니라, 오히려 크르스트(Christ)의 교훈을 근본적 신앙 삼아 사유하기 때문에 크리스교적이다. 크리스트교 철학이라 특징 지울 수 있는 것은 한 철학의 색깔이며, 철학에 영감을 주는 기원적 감정이며, 또한 그 감정 주위에서 그 철학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트교 철학은 크리스트교의 주장의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이 있고, 그것은 독단에 부합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순될 수 도 있다. (43TLB).
크리스트주의 christianisme
예수-크리스트의 법칙과 학설을 말한다.
유대주의와 연관해서 크리스트주의의 새로움(nouvauté)이란 도덕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속에서 표현되는 내재성의 종교(une religion de l'intériorité)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대주의는 우리에게 “믿”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하도록 “공부”하도록 요구한다. 크리스트주의는 정신적 태도이다. 가장 정합적인 정식은 사도 요한(Saint Jean)에 따른 복음 속에서 발견된다. 크리스트주의의 성격은 심성의 종교인 것이며, 민중의 종교이다. 이 종교는 원칙적으로, 구약전승의 어려운 문헌에 기초한 지식의 종교에 대립된다. [크리스트교에 비해 유대교가 실천적 종교라는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기도와 구원은 실천적이지도 못하고, 저 세상의 착각에 빠져 행동이 없은 믿음의 종교이다. 왜 이 종교가 예수 죽은 이래 300여 년 동안에 독단을 만들었을까? 로마의 제국에 대해 협력차원이었지는 않겠지만, 로마라는 제국에 굴복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굴복이 지식으로 보아 금욕주의를 낳고 허무주의를 낳았을 것 같다. - 21세기 배달지식인은 미국이라는 제국에 굴복하고 말았는가?(43TLB)]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맑스(Karl Marx, 1818-1883) 다음으로 크리스트교에서 “노예의 종교”(religion des esclaves) 즉 비굴의 종교를 보았다. 이 종교는 신체적 세상에서 개화되지 못하고, 복종하는 정신적 태도 속으로 피난한다. “이들은 정신을 찬양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체가 조롱받기 때문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반대로 기독교주의[신비주의]를 높이 올린다. 그 기독교주의는 인류에게 이웃에 대한 자비(charité)와 사랑이란 새로운 가치를 계시한다. [베르그송은 주지주의 종교가 아니며, 또한 구원의 종교가 아니다. 그의 종교는 실천의 종교이고 새로운 확장의 종교이다. 그런데 이 저자는 크리스트교가 주지주의적 정태종교화 된 노예종교를 비판하는 계열에 니체와 맑스를 들고 베르그송을 반대의 예로 든 것은 잘 못이다. 베르그송도 주지주의로서 크리스트교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43TLB)] (43TLB)
크뤼시포스 Chrysippe Chrysippos, av. 281-205
크뤼시포스는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이다. 그는 소아시아(현 터키) 실리시(Cilicie)지방의 솔리(Soli)에서 태어나, 205년(76살)에 아테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조각들만이 우리에 전해진다. 그는 추론의 형식들을 연구했고, 사실과 명제로부터 하나의 귀결을 끌어내는 다섯 가지 근본적인 방식을 검토했다. (43TLB)
문명 civilisation
발전된 사회에서 고유한 성격들의 집합.
문명의 개념은 우선 기술(technique)의 어떤 상태, 그리고 나서 문화의 어떤 형식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은 문명들을, 즉 석기 시대, 철기시대 그리고 오늘날은 석탄과 석유 시대, 결국에는 원자 시대 등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문화의 시대란 예를 들어 그리스 문화, 로마 문화 등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인격에 비추어 본다면, 기술은 문명의 신체를 구성하며, 문화는 문명의 영혼을 대표한다.
문명의 개념은 항상 규범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간직한다. 문명의 진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되게 하는 기술의 진보와 동시에 사회 도덕적 진보를 함축한다. 사회 도덕적 진보란 노예적인 인민들의 해방, 전쟁 없고 계급 없는 사회의 해방이란 의미에서, 특히 저개발국가가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선은 먹고 살아야하며 그리고 나서 자기시대의 문화를 높이는데 헌신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진보는 문화의 영역에서 또 유럽 문화가 다른 문화(아프리카문화, 아시아문화, 아메리카문화 등)를 지배하는 형식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문화적 개체성들이 서로 이해하고 상호 풍부하게 하는 “교환”(échanges)의 형식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참조: 문화. (43TLB)
* 이항목은 다른 사전에서 1999년부터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문명의 우위를 다루는 것이 제국주의이다. 다양한 문화의 창달에는 조화로운 하모니가 있는 세상이다. 이제 문명론이 아니라 문화론을 다룬다. (57OKF)
클라크 Samuel Clarke 1675-1729
영국의 철학자이다. [영국국교 성직자(Anglican clergyman)이다.]
사뮤엘 클라크는 1675년 잉글랜드의 노퍽(Norfolk)주의 노리치(Norwich)에서 태어나, 1729년(53살) 잉글랜드의 레스터셔(Leicestershire)주에서 죽었다. 그는 [1704년(29살)에 다루었으나 나중에 출판했다고 하는] 신의 현존과 속성들에 관한 서설(Discourse concerning the Being and Attributes of God; Traité de l'existence et des attributs de de Dieu)를 썼다. 이 작품은 홉스와 스피노자의 이론에 대답하고 한 것이며, 신의 현존은 오직 합리적 추론들에 의해서 확립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43TLB) [그는 1715년과 1716년 사이에 라이프니츠와 자연철학(형이상학)과 종교에 관하여 편지 교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편지는 1717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명석과 판명 clarté et distiction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에 따르면, 인식이 유효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되기 위하여, 모든 인식에서 요구되는 성질들.
“명석”은 다른 여러 관념들 가운데서 그 관념이 재인식될(reconnaissable, 인정될) 수 있게 하는 성질이며, 명석은 “판명”과 다르다는 것은, 판명에 의해 한 관념이 내생적으로(intrensèquement) 분석할(analysable) 수 있다는 것이다. (43TLB)
분류 classification
수많은 사실들과 존재들을 그 공통적 특징을 갖는 것끼리 무리를 모으고,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동물들을 종과 류로 분류한다.
분류한다는 것은 분석, 비교, 개별적 차이들을 추상하는 기능 등을 가정하는 것이다. 분류는 모든 과학의 출발점이다. 분류는 우리레게 “관찰”에서 법칙(loi)으로 과학적으로 이행하게 허락한다.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가면서 인류는 토기의 제작과 사용에서 토기 속에 담기에 따른 분류의 관점을 공동생활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43RKE)
과학들의 분류 classification de sciences
과학들의 분류란 다양한 범주들로 체계적인 분배를 하는 것이다.
꽁트는 과학들을 그것들의 대상의 복잡한 정도에 따라서 분류하였다.
1. 수학들(les mathématiques): 이것은 실재적 대상에 오히려 단지 수에 볼일이 있다.
2. 천문학(l'astronomie):수에 그리고 우리가 잡을 수 없고 그 과정이 불변하는 대상들에 볼일이 있다.
3. 물리학(la physique): 수에 그리고 무한히 다양하고 변하는 대상들에 볼일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 관해 작용할 수 있고 또 그것들에 우리의 실험적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4. 화학(chimie): 물리학의 복잡성에 특수한 질적 반작용을 덧붙인다.
5. 생물학(biologie): 화학의 복잡성에 생명의 현상을 덧붙인다.
6. 사회학(sociologie):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인간적 요소를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 인간적 요소들의 결합에서 새로운 생산물(잉여생산)에 관여한다.]
[심리학 : 생명체들의 행위와 개체의 기억들의 관계를 다룬다.]
[언어학 : 개체는 삶에서 어떻게 놀이하고 표현하는가? (예술, 스포츠 포함)]
[철학 : 독특한 인격은 무엇이며,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
이 분류는 증가하는 복잡성의 질서에 따라 과학들의 발전의 연대기적 순서를 따른다. 수학은 가장 오래된 과학을 대표하고, 사회학 즉 인간과학은 가장 최근의 학문이다.
(43RKE)
클레안테스 Cléanthe, gr. Kleanthes 기원전 331년경-232년경
그리스 철학자.
클레안테스는 기원전 331년경에 [현 터어키의 최 서부 지역인] 트로아드(Troade) 지방의 아소스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232년경(99살)에 죽었다. 그는 처음에는 운동선수 였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방향으로 들어서서 키티움의 제논(Zénon de Citium, v. 335-264 av. J.-C.)의 철학을 이어 받았다. 그의 작품들 중에 몇몇 조각 글들 만이 전해지고, 작품들 중에는 제논의 칭송(Hymne à Zénon)이란 작품이 있다. (43TLI)
좁아진 coarcté(e) [참조: 의학용어의 협착(coarctation)의 형용사]
줄어들다(retracter)의 줄어든(retracté)와 같은 의미이다.
어떤 외향성의 경향성도 드러내지 않은 개인의 전형을 특징적으로 수립하기 위하여,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 1884-1922)에 의해 도입된 개념이다. 확장된 의미로서, 무반응의 인물, 또는 소심한 인물(person sèche ou déprimée)을 말한다. [이 무반응의 인물은 스토아의 냉담한 인물과 다르며, 소위 멜랑콜리와 울증처럼 현실에 접근을 했으나 잘 안되거나 절망하는 경우가 아니라, 현실에 접근조차 하려 하지 않은 소심함을 의미한다.](43TLI)
코헨 Hermann Cohen 1842-1918
독일 [유대인] 철학자.
코헨은 1842년에 독일의 자아젠-안할트(Sachsen-Anhalt)지방의 코스비크(Coswig)에서 태어나서 1918년(76살)에 베를린에서 죽었다.
그는 [논리학파로 불리는] 마르부프크(Marburg)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신칸트학파(Neukantianismus)의 중요한 대표자들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칸트 사상의 비판적 주석을 다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경험에 대한 칸트 이론(Kants Theorie der Erfahrung, 1871; La Théorie kantienne de l'expérience)을 썼으며, 이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의 제1부분에 대한 반성이다. 순수 인식의 논리(Logik der reinen Erkenntnis, 1902; Logique de la Connaissance pure)는 순수이성비판의 제2부분인 「분석론」에 대한 반성이다. 순수의지의 윤리학(Ethik der reinen Willen, 1904; Ethique de la volonté pure), 순수 감정의 미학 (Ästhetik des reinen Gefühls, 1912, Esthétique du sentiment pur), 철학체계 속에서 종교의 개념(Concept de la religion dans le Système de la philosophie, 1915), Ecrits sur le Judaïsme, 1924)[유고] 등의 작품은 도덕-종교 철학으로 향한 그의 반성을 완성하는 것이고, 미학과 인식이론의 개화로서 나타난 것이다. (43TLI)
화, 분노 (la) colère
공격적인 경향을 띤 애정적 자극 작용(exitation affective)이다.
사람들은 붉은 분노(colère rouge, 흥분)와 하얀 분노(colère blanche, 울분)를 구별한다. 전자는 몸짓과 고함 속에서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반성되고 억눌린 것으로 어린이에 있어서 졸도(syncope, 실신)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심리학적으로 실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분노는 가끔 책임감 앞에서 회피[달아남]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경찰에 추격을 받고 있는 도둑이 되었을 때, 그 친구를 구해주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그 “상황”(situation) 앞에서 화를 낼 것이다. 또는 한 개인에게 잘 못되었음을 설득하였는데, 그 개인은 잘 못했다는 생각에 또는 그런 상황에 있게 된 것에 스스로를 적응시키지 못할 수 있을 때, 화가 치솟아 오른다. 그러므로 분노란 사실상 낭패로부터 나온 품행이다. (43TLI)
불같은 사람 [분노형 인물] (le) colérique
인격이 막 발생하는 사건들에 생겨나는 경우에, 불같은 인물에서 인격성의 근본적 성격을 구성하는 것은, 감동(정서)에서 민감하고, 행동에서 활동적 경향을 지니며, 외적 사건들에 깊은 반향이 없이도 드러나는 성격의 전형이다. 이것을 분노형(colérique)이라 부르며, 당통(Danton)이 대표적 인물이다. 참조: 성격학(caratérologie) (43TLI)
의사 소통 (1a) communication
인간들의 관계를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교환(l'échage)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는 정의가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사회에는 이익의 교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증여 무상보시 등이 있다. 그러나 소통은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인데 이것은 교환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이다. 이것에 대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타인들이 판단할 자료를 내놓은 것이어야 한다. 그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전제의 발상이며 제국의 마름들이 하는 짓이다. 이 제재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기본권이자 인민의 덕성이다.]
이 관계는 언어(language)에 의해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관적 언어를 마친 실재적으로 소통하는 불완전한 수단으로서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담론(le discours)은, 한 인격성을 그 인격이 말한 것[내용]으로 환원할 수 없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표현의 한 “수단”(moyen)일 뿐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마지막의 경우에라도 서로 완전하게 말로 이야기되지[소통되지]는 결코 못한다. 그러나 언어는 그래도 의사 소통의 유일한 객관적 전형이며, 이 소통에서 타인의 인격을 전체적으로 존경하고, 타인에게 충분하게 권리를 행사하게 한다. 언어는 관념들을 보존하고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잘 알기 위해서는 긴 기초 소양 쌓기와 수준 높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의사 소통”(la communication)의 철학은 인간들 사이에 연관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탐구한다. 그들의 근본 문제는 타인의 인식에 대한 문제이다. 플라톤(Platon, 전427-347)이 사랑의 분석을 행했던 것처럼, 또한 세네카(Sénèque, Seneca, 전4-후65) 는 “친애”(l'amitié, 우정, 仁)를 분석했는데, 우정은 가장 순수한 상호 인간관계를 구성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경우에 “존경”(respect), 셀러(Max Scheler 1874-1928)의 경우에 “공감”(sympathie) 등이다. 소통의 철학에서 오늘날 대표자는 독일에서 부버(Martin Buber, 1878-1965)이며, 프랑스에서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1995)이다. 라가쉬(Daniel Lagache 1903-1972)같은 심리학자들은 의사소통을 “영향”(influence)[감화]라는 근본적 개념으로 나아간다. 이 영향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권리의 이론(Das System der Rechtslehre 1812; Théorie du Droit)에서 “한 자유가 다른 자유에 미치는 작용”이라 정의한다. 그 점에서 영향은 폭력과도 대립되고, 또한 무관심(l'indifférence)와도 대립된다. [인간의 심성의 소통은 사랑, 친애, 존경, 공감, 영향 등으로 용어를 쓰는데, 한 인간이 살아온 모습을 보고 그 인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 베르그송의 “창조적 약동”이며 인간의 자유이다. 이 점에서 베르그송에게 피히테 영향을 말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43TLI)
공산주의 (le) communisme
모든 재화를 공동 사용화하고 사적 소유가 없는 것을 권하는 사회 학설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공동 생활의 체제에 대한 생각을 플라톤의『공화국(Politeia, République)』에서 찾는다. 이 정치체는 르네상스 시대에 토마스 모어(Thomas Morus, Thomas Moore 1478-1535)의 『유토피아(Utopia)』와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 1568-1639)의『태양의 도시(La cittadel sole, La Cité du soleil)』에서 이상[이상향]으로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단지 철학적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계획, 즉 평등사회로서 제시한 첫째 사람은 그라쿠스 바뵈프(Gracchus Babeuf, 1760-1797)이다. 영국에서 오웬(Robert Owen, 1771-1858), 프랑스에서 까베(Etienne Cabet 1778-1856), 그리고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1760-1825)과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1837) 등의 연합주의적경험(expériences "associationnistes") 들이 있고 난 후에, 맑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1895)의 학설은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소비재뿐만 아니라 생산재도 공동화뿐만 아니라 권장하기도 한 으뜸가는 이론가들이다.
오늘날[이 책의 출판 연도 상 그러하다] 즉 20세기 후반에 공산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철의 장막 넘어서, 특히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인간들에 의해 지탱되는 삶의 양식을 생각하게 한다. 그 양식이란 개인적 자유의 억제, 모든 생산수단의 국가에 의한 독점적 소유이다. 결국 이들 나라에서조차 공산주의는 이상 즉 완전하게 통합된 공동체적 삶의 이상향으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개인은 모든 개인적 본능을 추상한 체, 전적으로 집단을 위하여 살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서 실행되었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로서 나온 “사회주의”는 이행단계로서 간주되었다. 이 단계는 공산주의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래는 인민의 의회들(assemblées du peuple)을 덕분에 국가의 소멸과 일치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여러 가지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는 아직도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 참조; 맑시즘 (43LLJ)
콤플렉스 complexe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인격성을 구성하는 관념, 이미지, 감정들의 일체를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등장하는 열등 의식이나 거부의식의 표출을 콤플렉스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개인의식 속에 하나의 보편성에 따르는 것이 아닌 복잡한 의식적 작용들을 의미한다. 한 인간에게서 표출되는 의식이 보편성 또는 보편 정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서 복잡계(콤플렉스)라는 뜻이다. (43TLI)]
이 용어는 [스위스 정신과의사] 블뢸러(Eugen Bleuler 1857-1939 )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 의해 도입되었고,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정신분석학에 의해 이용되었다. 이 용어는, 보다 특별하게는 인격성 속에 공존하면서 상호 모순되는 본능적 경향들을 서로 대립하게 하는, 무의식적 충돌(conflit)을 지칭한다.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것은 한 생애의 초기 몇 년 동안[즉 어린애 시기의 몇 년 동안]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공간에서이다. 이 콤플렉스의 아래에는 사랑-증오라는 짝이 여전히 발견된다. 이 콤플렉스는 삶에서 족쇄를 구성하기도 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청교도의 전형과 같은 매우 엄격한 사회는 콤플렉스의 전개를 부채질한다. 정신분석학적 치료는 자격있는 전문가에 의해 인도 받아야 한다. 그 치료는 개인을 그의 콤플렉스들로부터 원칙적으로 벗어나게 하여, 개인은 자신과 화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치료는 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인격성을 자극했던 모순적인 경향들을 의식하게 한다. [사실상] 삶에서(애정적, 지적, 사회적 등급들 속에서) 성공하는 것이야말로 정신적 치료의 최상이다. 참조: 거세 콤플렉스(complexe de castration), 열등 콤플렉스(complexe d'infériorité), 오디푸스 콤플렉스(complexe d'Oedipe), 정신분석학. (43TLI)
행실 (le) comportement [행태, 행실]
[이 용어는 영어 행태(béhavior, 행동)의 번역인데, 우리가 행동(action)과 구별하기 위하여 행실로 번역한 것이다]
한 유기체가 어떤 자극에 대한 전체적 반작용을 말한다.
행실은 개인의 반작용(반응)에서, 그의 사유와 심리학적 태도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지칭한다. 사람들은 이 관점에서 행실(comportement) 과 품행(la conduite)를 구별한다. 품행은 행실에다가 인간적 의미화작용(signification humaine)을 포함한 것이다. (43TLI)
이해력 compréhension [논리학에서 내포]
연관 또는 의미화 작용의 이해.
인간과학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이해”(compréhension)와 “설명”(l'explication)설명을 구별한다. 전자는 감정에서 유래하며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서 검토되며,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는 “이해를 인간 과학의 기관(l'organ)”이라 했다. 반면에 후자는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며, 오직 이성으로부터 유래한다. (43TLI)
꽁트 Auguste Comte, 1798-1857
꽁트는 1789년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태어나, 1857년 파리(Paris)에서 죽었다. 그는 수학을 전공하였고, 에꼴 폴리테그니크(Ecole politechnique)의 학생[16세에 입학]이었으며, 실증주의 철학자이다. [꽁트는 1817년에 셍-시몽(Saint-Simon)과 만났으며, 1824까지 그의 비서로 있었다.]
그의 실증주의는 실증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1830-1842)에서 인류의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이 마지막 단계는 모든 것을 마술적으로 실행하는 “신학적 단계(stade théologique)”로부터, 단어의 내용을 설명한 “형이상학적 단계(stade métaphysique)”를 거쳐, 설명한다는 것은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실증적 단계(stade positif)”로 나아감을 말한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단계”의 설명이란 중세의 스콜라철학을 의미하며, “왜 양귀비(아편)는 잠을 자게 하는가? - 그것은 수면제 덕목(vertu dormitive)을 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경험이외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즉 “하나의 절대적 격률(maxime)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란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서 철학적 특징은 보편이나 절대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 착각이자 신화이다. 인간에게 가난은 국가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은 착각을 넘어서 허위를 고착시킨 습관에 속한다. 어떤 제도든지 인간이 고칠 수 없는 제도는 없다. 인민의 저항은 항상 정당하다.]
꽁트는 사회학의 창시자이며, 그는 사회학을, 사회에 물리학의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사회 물리학(physique sociale)”이라 생각했다. [그가 수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의 도덕론은 이타주의(altruisme)에 귀착된다. 1844년에 그는 드보(Clotilde de Vaux)양을 알게되었고, 그는 그녀를 소설적이고 플라톤적인 사랑을 했다. 그녀와 만남이 그를 신비주의로 이끌었으며, 끌로띨드가 죽은 후에 그는 인류교(l'Humanité)로 나아간다.
리뜨레(Maximilien Paul Emile Littré 1801-1881, 철학자, 문헌학자, 정치가이며 꽁트의 제자였다)는 이점에서 꽁트와 멀어졌으며, 그때부터 자기의 개인적인 작품을 썼다.
그의 낡고 아카데믹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실증철학 강의, 실증정치학의 체계(1851-1854)는 여전히 우리에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9PKF)
개념 concept
추상관념과 일반 관념을 말한다.
심리학적 문제는 개념 형성의 문제이다. 즉 개념의 작용에 의해 정신은, ‘갑돌이는 큰 사람(un homme grand)이다’처럼, 특정한 경우의 확정으로부터 크기(la grandeur)의 일반개념으로 나아간다. 플라톤은 테아에테토스편에서 개념들은 경험 속에서가 아니라 정신 속에서 그것들의 기원을 발견한다고 제시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갑돌이는 을물이에 비해서 크고, 병불이 비해 작다. 경험의 모든 개념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개념 자체는 정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철학적 문제는 개념의 실재성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경험론자들(empiristes)” 즉 “유명론자들(nominalistes)”과 “합리론자들(rationalistes)”을 구별한다. 로크(John Locke, 1632-1704)와 흄(David Hume, 1711-1776) 등의 전자들에게 개념은 단지 단어일 뿐이다. 플라톤(Platon, 전427-347)과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같은 후자들은 정신 속에서 관념에게 실재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여기서 생득론자들(nativistes)를 첨가하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에서 ‘부피’ 개념에서처럼,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등과 같은 이들에게 “개념”은 영혼의 생성과정에서 형성하는 일반관념이며, 생후 경험에서 오는 유명론도 아니고, 정신이 만든 기호적 표시를 실재적으로 여기는 관념론도 아니다.] (43TMA)
개념론 (le) conceptualisme
우리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나타나지만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일반 관념들은 특별한 경험의 경우[기회]에 표시된다. 예를 들어 정의의 보편 개념은 “어떤” 특별한 정의롭지 못한(d'uneinjustice particuliere) 광경에 처해서 우리들 자신 속에서 각성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그 [정의]관념 그 자체가 우리의 경험에 앞서 우리 정신 속에 잠재하는 방식으로 현존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의 이론이었다. “개념론”(conceptualisme)이란 이름은 우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고 그리고 칸트의 것이었다. 이 개념론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종합으로서 소개되고 있다. [데카르트의 생득론을 주목했던 베르그송에 일반관념의 영향을 입은 들뢰즈의 “개념론”에서는 철학의 작업은 개념의 생성이라 한다. 인간은 인간을 알아갈수록 ‘생득적’ 개념을 생산해 낸다.] (43TMA)
꽁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5-1780)
프랑스 철학자이다. 꽁디약은 도피네(Dauphiné)지역의 이제르(Isère, 38 dép.)의 첫째 도시 그르노블(Grenoble)에서 태어나서, 1780년(65살)에 상트르(Centre)지방 르와레(Loiret 45)주 라이이 엉 발(Lailly-en-Val)에 있는 플뤽스(Flux) 수도원에서 잠들었다.
그는, 감각론(Traité des sensations, 1754)에서, 감각 속에 모든 실재적 인식의 기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평가하기를 그가 상업과 정부(Le Commerce et le Gouvernement considérés relativement l'un à l'autre, 1776) 작품을 썼다고 해서, 그를 근대 경제학의 기초자의 한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참조: 감각주의(sensualisme) - [감각주의(sensualisme): 꽁디약이 주장한 이론으로, 우리의 모든 인식은 감각으로부터 온다. 감각주의는 경험론의 한 형태이다.] (41RMA)
조건반사 (le) conditionnement 세뇌
조건반사란 한 개인에 있어서 규정된 반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들의 일체를 말한다. - 어떤 “조건반사”란 개가 먹을 것을 보았을 때, 그 개가 침을 흘리기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적 조건반사의 방법들, 즉 단순한 “영향”(l'influence)으로부터 “세뇌”(lavage de cerveau)에 이르는 방법은, 한국전쟁에서도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민(Viet-Min, 월맹 越盟) 군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것은 그 군대의 정치적 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특히 주민들(populations)을 혁명군의 편에 서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조건 반사는 자본주의 진영에도 공산주의 진영에도 있었다. 현재 남한에서 ‘공산주의’라고 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덤벼드는 족속들이 조건반사에 의한 것이다. 이 조건반사가 일제를 거치면서, 제국에 빌붙은 자들이 부와 권력을 누렸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미제에 빌붙어서 미국어를 해야한다거나 미국시민권을 얻는 것을 자랑하며 이중 국적자를 정부의 행정직에 쓰겠다는 발상도 일제의 잔재의 청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반사는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의 팔루스 현상으로 자본에 의해 정부와 권력을 장악하는 자들이나, 예수를 크리스토스로 상층에 올려 염보돈을 챙기는 성직자들이 서로 동맹을 맺는 것도 이와 같은 데, 이 동맹을 엮어주는 언론 권력은 최 악질 즉 부정의한 자들이다. 이들이 샌델의 “정의론”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의리없는 조폭처럼 동맹을 맺고, 이를 묵과해줌으로써 10년에 한번씩 IMF와 골드만 삭스를 통해 잉여를 착취하는 것은 미제국의 자본가들이다.(43TMA)]
“보호하라, 참가하라, 통제하라”는 이 유명한 정식은 정치적이고 심리학적인 조건반사의 원리들이었다. 이 원리들은 국가전복전쟁(la guerre subversive)의 모든 이론가들에게 답습되었다. 평화의 시기에, 라디오, 신문, 영화, 특히 텔레비전과 같은 정보수단들은 국민을 교육시키고, 경제적 정치적 문제에 관하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때 교육은 국가에 의해 또는 몇몇 노동조합이나 정치적 정당에 의해 주도될 때, 교육은 여러 다른 그룹들, 즉 직업별, 지역별 정치의식을 조건 지우고, 심지어는 전 국민의 정치의식을 “조건지운다”(conditionner, 조건반사하게 한다). 이러한 심리학적 “영도주의”(dirigisme)를 민주적 국민은 정보 자유의 원리를 대립시킨다. 여기서 정보의 자유란 여러 다른 견해들의 다양한 신문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채널들을 말한다. 참조: 반사(reflexe) (43TMA)
꽁도르세 Marie Jean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이다.
꽁도르세는 1743년에 삐까르디(Picardie)지방의 에슨(Aisne 02)주의 비르망(Ribemont)에서 태어나, 1794년(51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지방의 오드센(Hauts-de-Seine 92)주의 부르그 라 렌(Bourg-la-Reine)에서 죽었다.
16살에 꽁도르세는 수학적 분석에 대한 첫 작업을 제출하였다. 26살에 그는 과학아카데미에 들어갔으며, 1773년(30살)에 과학아카데미의 영구 간사(secrétaire perpétuel)가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에서] 입법의회(Assemblée législative)에 의원을 거쳐, 어느 당에도 가담하지 않았지만 지롱드 당의 한 친구로서 국민공회(Contention)에도 의원이 되었다. 1793년(50살)에 고발되어 탄핵되었고, 다음해 체포되었으며, 감옥에서 독살되었다. 그는 이 강압적 칩거과정에서 인간진보의 역사표 묘사(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es de l'esprit humain)를 썼다. 그 책에서 그는 전통적 종교의 감정 대신에 인류진보의 종교로 대체 했는데, 이 인류진보 종교는 꽁트를 예고하게 된다. (43TMB)
품행 la conduite
주어진 상황에서 심리학적[도덕론적] 반작용의 일체를 말한다.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품행(la conduite)과 행실(le comportement)을 구별한다. 행실은 객관적 반작용의 일체를 지칭하는데 비해, 품행은 행실에 내적 의미작용(signification interne)의 개념을 첨가한 것이다. 즉 품행은 행실 더하기 (내생적이고 투사된) 의미작용이다. 따라서 품행은 우리가 한 인격의 행실에 부여하는 의미(sens)이다. 이리하여 미소(le sourire)는 환희의 표현일 수 있고, 반대로 일본사람들 경우에서 화난 품행(une conduite de colère)일 수 있다. (43TMB)
공자(孔子) Confucius 기원전 551-479 en chinois K'ong-tseu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공구(孔丘)[자는 중니(仲尼)]의 생애는 우리에게 사마천(司馬遷, Sseuma Ts'ien 기원전 145-86?)의 사기(史記 Mémoire historique 기원전 91년경)에 의해 알려졌으며, 다른 한편 공자와 그의 제자들 담화들을 그의 특별한 항목으로 모아 놓았던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공자세가(孔子世家)」와 논어를 구별하려 한 것 같다] 어떤 점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예에서처럼, 공자는 어떤 작품도 쓰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선(le bien) 즉 인격의 교양[덕 德]을 설교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도덕에 관한 것이다. 교양(la culture, 덕 德)은 조화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인(yen, 仁, l'amitié)과 의(yi, 義, l'équité)는 그에게 있어서 두 개의 주덕(主德)이었다. 공자는 기원전 5세기 경부터[기원전 478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가 죽은 다음해, 공자의 옛집을 묘(廟)로 개축하여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공식적인 사원[묘(廟)]으로 추존되었다. 그리고 나중에[한나라] 중국 제국의 공식적인 철학이 되었다. 행정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가르침에 기초가 되는 작품들, 즉 경(king, 經)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었다. 공자의 숭배는 1912년[1911년 신해혁명]에 가서야 공식적 숭배가 되기를 그쳤다. 이전까지는 전통의 존경과 질서의 기초가 되었었는데 이 시기 이후로 공자의 도덕 교육은 학교에서 의무적이지 않게 되었다. 공자의 철학적 도덕적 학설은 공자주의(confucianisme)[유학 儒學]이라 불린다. (43TMB)
인식 la connaissance
인간의 이론적 활동을 말한다. 인식은 세상(le monde)에서 행동에 대리된다. ]
인식의 철학적 문제는 다음과 같이 3중이다.
1. 인간 인식들의 기원(l'origine)의 문제는 인식들이 경험(경험주의)으로부터 또는 이성(합리주의)으로부터 진행되는 지를 아는 문제이다. 이 문제로부터 사람들은, 만일 우리 인식들의 내용이 우리 경험의 확장과 더불어,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확장된다면, 인간적 이해의 모든 형식자체, 즉 인식의 “원리들”은 모든 인간 정신에 합리적이고 공통적인 기원을 갖는다고 생각하였다. 칸트의 개념론(conceptualisme)은 그 공통기원에 근거한다.
2. 인식의 본성(la nature)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인식의 다양한 형식을 구별하게 한다. 특히 한편 ‘섬세’의 정신으로부터 유래하는 형식이 있고, 그 예로서 임상의사와 정신질환자 사이에 이해와 같은 형식이 있다. 다른 한편 ‘기하’의 정신으로부터 유래하는 형식이 있고, 그 예로서 수학 또는 물리학의 인식이 있다. 전자의 인식의 전형은 “인간 과학들”(sciences humaines)들로서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들이 있고, 후자의 전형은 세계에 대한 과학이 알맞다. [‘섬세’의 정신과 ‘기하’의 정신은 파스칼의 용어이다. 그리고 베르그송도 인식의 두 질서를 말하면서 전자에는 직관, 후자에는 지성을 말한다.]
3. 마지막으로, 우리 인식의 범위(la protée)의 문제는, 우선 플라톤과 헤겔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절대자에 이를 수 있는지 그리고 사물의 내재적 본성의 인식에 이를 수 있는지를 아는가 하는 문제이다. 또는, 칸트와 꽁트처럼 불가지론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의 인식이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 - 물질의 본성, 인간 영혼의 본질과 그 불멸성, 신의 현존과 그 본성에 관해 어떤 발언도 있을 수 없으면서, 현상들의 세계에 제한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이다. (43TMC)
의식 또는 양심 la conscience
각자가 자신의 현존과 행위들로부터 느끼는 감정(sentiment)
의식의 개념은 우선 심리학적(psychologique) 의미를 갖는다. 의식은 기억과 기억자체 회귀(retour)[회상(rememoration)]와 더불어 발전한다. [회상은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이고 플라톤의 상기(reminiscience)는 크리스트 교인들처럼 저세상에 대한 환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이 솟아나게 하기 위하여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다른 영역에서 양심으로 쓰일 경우], 양심은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 도덕적 의미는 의무의 감정과 동일시 된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양심! 신적 본능...”이라 하였다. [루소의 양심은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에 묻는 의식(양심)에 닮았다.] 참조: 주의, 무의식. (43TMC)
접촉의 사회학 (sociologie du contact)
이해의 방법에 기초한, 그리고 사회의 실재성의 특별한 본성이 겪는 감정에 기초한 사회학이다. 이 방법은 문화 인류학의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관찰에 대립된다. (43TMC)
관조 (la) contemplation
주의깊은 관찰
모든 관조에는 휴식[정지, 고요함, 불변성]의 깊은 경험에 연결된 어떤 환희를 함축하고 있다. 고대인들에 있어서 관조의 첫 번째 형식은 별들로 된 하늘의 관조였다. 그리스 철학자들과 이들을 이어받은 신비가들은 담론의 사상보다 그 위에, 즉 정신의 추론들 보다 더 위에 두었다. 인도에 널리 퍼져있는 믿음에 따르면, 관조는 우선은 우리들 자신을 향해 기적들을 행할 수 있고,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통으로 가게 할 수 있고, 또 요가를 매개로 해서 구원으로 또 무의 세계인 열반(涅槃, nirvana)으로 이끌 수 있다. 관조는 “행동”(action)과 대립된다. 사람들은 관조를 자주 무해무익한 탐구, 즉 사색(speculation)과 동일시한다. (43TMC)
우연 (le) contingent
있지 않을 수 있는, 즉 우연.
우연은 필연(nécessaire)에 대립된다. 자유로운 인간의 행위는 항상 우연적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각 인간의 행위는 필연적 계열이 있고, 각각의 계열들 사이의 만남은 우연(hasard)이며, 상이한 여러 계열들 만나는 한 사회(집단)에서 어느 한 계열이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연이다.] (43TMC)
모순 (la) contradiction
두 항들 중 하나가 다른 것의 부정(negation)이 되는 두 항사이의 관계.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모순”(contradictoire) 항들과 “반대”(contraire) 항들을 구별한다. 예를 들어, 세계 속에 모든 사물이 운동하고 있거나, 정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운동”(le mouvement)과 정지(le repos) 모순이다. [공간 상에 동시성이 성립하는 상징에서는 모순이 있을 수 있으나 시간상에서 모순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고, 정지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지구상의 사람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으나 다 같이 움직이고 있는 상대는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구와 함께 운동하고 있으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 같이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천동설이 주도한 것은 현상이 진리라고 여기는 지성이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성은 물질성, 즉 물체에 관해서 지식을 말한다.]
그러나 “흰색”이 아닌 어떤 대상은 필연적으로 “검은색”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흰색”은 “검은 색”과 반대이다. 아마도 붉은 색, 노란색 등등일 수 있다.
사람들은 논리적(logique) 모순과 실질적(réelle) 모순을 구별한다. 전자의 논리적 모순은 A는 ‘A아닌 것’(non A)과 관계이다. 후자의 경우는 한 개인의 정신이 자기 자신과 모순에 빠져서, 그 모순이 실재적으로 고통스런 경험을 만드는 경우이다. [이 후자에는 사회적 모순도 포함되는 데, 맑스의 계급 모순, 즉 자본가 대 노동자의 모순이라 한다. 이 모순은 적대적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보기에 개인의 모순과 사회의 모순은 인위적 상정으로 정신(지성)의 방향에서 반대방향에 대한 결별이다. 개인들의 영혼과 사회의 연대에는 모순이 아니라 계열들 사이에 마주침의 부조화와 비대칭에 기인한다. 이 부조화는 방향설정에 이중성을 그 토대로 한다. 한쪽은 정신을 상층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하는 개인구원과 이상사회를 요청하고, 다른 하나는 영혼을 구현 하기 위해 심층으로부터 발현되는 방향으로 영혼의 현존과 실현을 구체적 현실에서 만들고자 하는 것의 여러 삶의 양식 중 두 양식의 대립이다. 대립은 모순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 방식을 각자에 맞기는 것이다. 한편이 다른 편을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둘 사이이 충돌과 불화가 발생한다. 그런데 지성의 역사에서 상층이 주도권과 패권을 장악했느나, 루소 이래로 심층이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여전히 패권을 아직 장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심층은 연대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패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맑스 레닌 쪽은 심층의 패권, 즉 프롤레타리아 독잴를 실행하기 위해 당을 조직하고 국가 권력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43TMC)]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평루소0612사회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 du droit politique)(1762), 이것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이 작품이며, 미완성된 방대한 작업의 일부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것은 개인의 행복으로 열망과 사회적 삶의 요구 사이에 조화를 이루고자 애쓰고 또한 개인들의 자유와 일반 관심[일반의지]에 개인들의 복종 사이에 조화를 이루자 힘썼다.
루소는 이 책에서 자기의 이상적 공화국을 네 부분으로 표현하였다.
1. 국가가 보호조치로 평등과 자유를 조화시킬 [수 있을] 때, 국가의 이익에 맞게 우리의 자연권을 거부하자.
2. 전능한 인민은, 입법가를 중개로 하여, 이익 집단들에 대하여 [인민의] 전체 안녕(복지)을 보호한다.
3. 민주주의는 입법의회[인민의회]에 의해 그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4. 국가적 종교를 창조해야 한다. [국가적 축제를 창출해야 한다.]
이 작품은 인민의 폭군정[독재정]을 가능케 하는 위험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선언과 입법의회 의원들(Conventionels)의 연설에 영향을 주었다. (39WLA)
자기 몸(corps-propre): 자기신체 (deu. eigenes Leib)
현대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단순히 물질적 물체에 대립개념으로 인간 신체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 개념이다. 독일어로는 신체(Leib)는 물체(Körper)에 대립된다.
우리의 신체는 대상적 물체(corps objectif)가 아니다. 신체는 우리 인격성의 일부를 이룬다. 자기 신체라는 개념(corps-propre, deu. eigenes Leib)은 맨 먼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의 자연권 이론(Théorie du droit naturel) (1796)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초기 심리학적 분석들에서 보이는 이 개념은 데스뛰 드 트라시(Antoine Louis Destutt de Tracy, 1754-1836)에서도 나온다. 특히 이 프랑스 철학자가 창안한 개념 “운동성(motilité, 내적 운동 또는 동인)” 즉, 유기체 운동(mouvement)의 내적 경험으로서 운동성(motilité) 분석에도 보인다.
이런 심리학적 분석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에서 이 개념을 다시 받아들여져서 발전되었다.
(39WLA)
상관 (계수) (coefficient de) corrélation [coefficient 계수(係數) 율(率)]
규정된 두 변항 사이에 엉김(liaison)의 정도를 표현하는 통계적 지표(indice, 계수)예를 들어 개인들 키와 몸무게. 개인의 실재적 나이와 지성의 연관을 나타내는 정신연령(l'âge mental)은 상관 비례율(coefficient de corrélation 상호율, 상관계수)을 측정한다. (43TMF)
우주 형성론(la) Cosmogonie - 우주 지적설계론(en. Intelligent Design)
우주 형성(formation)의 과학. [플라톤과 프랑마송은 우주 형성을 지적설계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스피노자와 베르그송은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발생(자연발생론)을 다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유심론적(spiritualiste) 우주발생론과 유물론적(matériellist) 우주발생론를 구별한다. 전자에서 별들과 행성들의 형성물인 물질[물체]들은 물질적이 아니라 에너지 자체의 압축의 결과이다. 이 주장자에는 라이프니츠가 해당한다. 후자에서는 모든 사물들의 기원에는 물질적 원자들이 있고, 그리고 원자들 서로 간의 운동으로부터 에너지를 연역할 수 있다. 이 주장자에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칸트,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를 들 수 있다.
“발생론적”(génétique) 이론들의 측면에서 “파국적인”(catastrophiques) 이론들이 있다. 뷔퐁(Georges-Louis Leclerc de Buffon 1707-1788)의 학설은 파국학설의 첫째 학설로서, 유성(comète)와 태양의 만남에 의해 태양계가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영국의 제임스 진스(James Hopwood Jeans, 1877-1946)와 제프리(Harold Jeffreys, 1891-1989)의 학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성운이론에 의한 완성을 나타낸 것으로 현대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43TMF)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1801년에 프랑쉬 꽁떼(Franche-Comté) 지방 오뜨 손(Haute-Saône, 70)주의 그레(Gray)에서 태어나서 1877년(76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1821년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에 들어갔으나 1822년 고등사범학교가 폐쇄되어 소르본에서 졸업했다. 당시 동기생으로는 친구로는 끼셔라(Louis Quicherat), 아셰뜨(Louis Hachette), 제낭(François Génin) 등이 있다]
그는 리용과 그르노블에서 가르쳤다. 1836년에서 1848년에 장학총관이 되었으며, 1854년에서 1862년에 디종 아카데미 원장을 지냈다. 그는 개연성의 계산 또는 우연의 계산을 발전시켰으며, 그는 기회의 이론 2(Théorie des chances2)에서 “인과성의 질서 속에 독립적인 계열들에 속하는 현상들의 만남”이라 정의하였다.
1838년(37살)에 나온 그의 책 부의 원리의 수학적 원리에 관한 탐구(Recherches sur les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théorie des richesses, 1838)이 그를 정치경제학의 수학학파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또한 저술로서 현대에서 관념과 사건의 진행에 대한 고찰(Considérations sur la marche des idées et des événements dans les temps modernes (1872) 유물론, 생기론, 합리론(Matérialisme, vitalisme, rationalisme: Etude sur l'emploi des données de la science en philosophie (1875) 등이 있다. (43PKC)
실증철학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오귀스뜨 꽁뜨(Auguste Comte, 1796-1857)가 1830년부터 1842년까지 6권으로 쓴 기본 작품이다. 이 저술 속에서 그는 제일 원인을 탐구하는 사변들(spéculations)로부터 체계적 표상(représentation systématique)을 거쳐, 우주의 실증적(positive) 표상으로 나아간다. 참조: 실증주의, 꽁트. (43TMF) [마술적으로 실행하는 “신학적 단계(stade théologique)”로부터, 단어의 내용을 설명한 “형이상학적 단계(stade métaphysique)”를 거쳐, 설명한다는 것은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실증적 단계(stade positif)”로 나아감을 말한다.]
꾸쟁 Victor Cousin 1792-1876 철인0812쿠쟁
프랑스 철학자 이다. 꾸쟁은 1792년 파리에서 태어나 1867년(75살) 프랑스 최남동단 프로방스 지방의 알프스-마리띰(Alpes-Maritime, 06)의 중요도시 중의 하나인 칸느(Canne)에서 죽었다. [그는 에콜노르말 교수에서 학장, 파리대 학장, 공립교육위원회 위원(1830),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1831), 도덕과학․정치학 아카데미 회원(1832), 기조의 내각에서 공립교육부장관문교부(1840) 등 요직을 골고루 거친 지낸 철학계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멘느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의 제자였으며, 절충주의를 주동자였다. 그가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에서 빌려온 그의 격률은 “체계들이란 체계들이 긍정된 것에 의해서는 진실이지만, 부정된 것에 의해서는 거짓이다.” 따라서, 그는 데카르트의 관념들, 스코틀랜드의 감각주의 학파의 관념, 칸트의 관념을 조합하려고 애썼다. 그는 결국 불멸의 두 자매의, 철학과 종교의, 동맹을 권했다.
꾸쟁은 제란도(Joseph-Marie, baron de Gérando, ou Degérando 1772-1842)와 더불어 프랑스에서 철학사를 기초한 자이다. 그에 따르면 체계들이란 4가지로 귀착한다. 즉, 감각론, 관념론, 회의주의, 신비주의이다.
그의 저작으로 18세기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du XVIIIésiècle, 1826), 파스칼에 관한 연구(Etudes sur Pascal, 1842), 진, 미, 선에 대하여(Du vrai, du beau et du bien, 1853), 철학사 일반(Histoire générale de la philosophie, 1863)(41WLJ)
관습 coutume
라틴어 콘수에투도(consuetudo)로부터 나왔으며, 우선 복장(costume, 의상)을 뜻하며, 그리고 관습(coutume)로 쓰인다. 이로부터 한 사회에서 정립된 행동방식(manière d'agir)을 의미한다.
기원상 [민]법(le droit 권리)은 관습 즉 관습법(droit coutumier)에 근거한다. 이것은 “용도”(l'usage)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전통에 근거함을 의미한다. 이 전통은 일반적으로 평화[화평]를 만들었으며, 또한 사람들 사이에 화합을 유지하게 한 것을 말한다. (43TMF)
창조 création
무(le néant)로부터 끌어내는 행위(l'action).
창조적 작용(l'acte)에 관련된 문제들은 인간적 창조물에 - 이 창조물들은 노동의 철학, 특히 예술의 철학으로부터 제기된 것으로 - 관한 문제임과 동시에 신으로부터 세계의 창조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창조에 대해 주지주의적 개념형성(la conception intellectualiste)과 의지주의적(volontariste) 개념형성을 구별한다. 전자에 따르면, 이 집행(l'exécution)는 관념(l'idée, 이데아) 또는 모형(modèle)에 관련하며, 유대-크리스트교의 창조개념이나 미학적 창조의 고전적 표상이 이에 해당하다. 후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창조한 사물의 관념은 집행의 운동에서 생기고 발전된다. 즉 알랑(Alain, 1868-1951)이 말하듯이 “기획(les projets)는 초벌생각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최근의 개념형성은 오히려 사실들의 본성에 더 잘 맞는다. 알랭은 “모형에 따라 창조하는 것, 그것은 예술이 아니고 산업이다.” 또 신학적 관점에서, 개념형성은 신의 전능을 존경하는 것이다. 신은 자신이 창조하지 않았던 모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동시에 관념을 생산한다고 한다. [베르그송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과 관념의 동시적 생산(표상작용)은 지성 즉 도구적 정신의 활동이다. 살아있는 생물은 새로운 세분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발생과 확장으로 창조적 행동을 한다.](43TMF)
창조성 (la) créativité
창조하는 소질(disposition).
창조성은 잠재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그리고 모든 시대에도 있다. 꼬마얘들은 우선 놀라고, 감탄하며, 세계의 새것들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직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은 특히 창조적이다
범죄 (le) crime
도덕법칙이나 시민법에 심각한 위반의 경우이다.
사람들은 범죄(le crime)과 살해죄(meurtre)를 구별한다. 인격성의 도덕적 파멸은 범죄이다. 예를 들어 강간, 매춘 단순한 속임수[사기] 등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 즉 [의식적] 살해 죄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일 수 있다. [부르투스 일당의 시저 살해,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 또 단순하게, 결투와 같이, 명예를 지키기 위한 특성일 수 있다는 데, 이것은 범죄와 다른 것일 수 있다. (43TMF)
[어떤 경우에든 개인 또는 집단이 권력자를 살해한데 대해서는 가치문제를 문제를 삼는다. 이것은 아마도 사마천이 백이 숙제를 높이 평가한 것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반면에 프랑스 혁명처럼 인민의 이름으로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단한 경우는, 마치 결투처럼, 인민의 명예(즉 자유와 평등)를 실현하는 과정이 된다. 인민의 힘, 인민의 주권으로서 실행은 역사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기준 (le) critère
판단하는 것에 대해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게 하는 표시(signe)이다.
진리의 기준은,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것으로, 우리가 진리를 재인식하게 하는 분명[판명]한 표시이다. 특히 흄 같은 경험론자들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은 인식을 동반하는 실재성의 감정에서 오는 결과이다. 즉 “습관”(l'habitude)은 인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카르트 같은 합리론자들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이 되는 것은 합리성의 감정, 즉 명증(l'évidence)의 감정이다. (43TMF)
크리티아스(le) Critias ou l'Athantide)
플라톤의 대화편의 하나이다. 이 대화편에서 그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43TMF)
비판주의 (le) criticisme
오직 자기의 반성에 근거한 이론 일체를 말한다. 이것은 독단론(dogmatisme)에 대립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비판주의의 주동자이다. 그는 신학적이고 고전철학의 문제 즉 세계의 기원에 대한 질문 대신에 우리 인식의 토대(fondement)의 질문으로 대체했다.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세계는 과학의 대상이다) 철학은 과 대신에,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분석하는 모든 철학은 비판 철학이다. 비판주의는 플라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게되고, 또 그의 소명이 관념론이 되는 것을 보게된다. [플라톤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문제삼아 이데아론을 제기했고, 데카르트가 세계와 자아 사이를 구별하고, 그리고 칸트는 자아의 사유를 문제삼았다. 그리고 후설은 주체 사유의 내용을 실체화 하려고 했고, 베르그송은 자아의 자기 확장을 보여주려 했다.]
칸트 이후에 비판철학자들 중에는 우선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가 있고, 그의 비판철학은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의 자연철학과 대립된다. 또 [마르부르크 학파(논리학파)에 속하는] 코헨(Hermann Cohen 1842-1918)에서는 비판철학이 인식의 논리이론에 환원되며,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는 비판적 반성을 인간과학들로 넓혔으며,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지적 인식을 직관위에 그리고 비판이론을 현상학 위에 정초하였고, [바덴학파(공리학파)에 속하는] 라스크(Emil Lask 1875-1915)의 경우에는 비판주의와 현상학을 종합하려 했다. (43TMF)
실천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pratique 1788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작품이다.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64살)이 작품 속에서, 칸트는 실천원칙들(les principes pratiques)이 허용하는 도덕법칙의 본성과 동의의 종류를 규정한다. [「분석론」에서 도덕법칙을 「변증론」에서 동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 총체적 동의는 세 가지 요청을 선가정한다. 세가지 요청은 자유, 영혼불멸, 신의 현존이며, 이 요청들에 순수이성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실비에서 자유란 「분석론」에서 도덕의지가 감성에 제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율에 대비로서 자유를 말하고, 「변증론」에서 자유보다 최고선의 행복을, 그리고 영혼불멸, 신의 현존을 말하는 것 같다.] (43UKC)
순수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 재판 1787.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초판 1781년(57살) 개정재판 1787년(63살)에 나왔다. 저자는 철학의 새로운 기획을 진술했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현대적 기획 작품으로 여긴다. 철학은 과학[학문]으로서 우리에게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 속에서 우리에게 과학의 토대(fondement)를 밝혀야 한다. 이 작품은 「선험적 감성론」(l'esthétique transcendantale), 「선험적 분석론」(l'analytique transcendantale), 「선험적 변증론」(la dialectique transcendantale)으로 나누어져 있다. “선험적 감성론”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직관이론이며, “선험적 분석론”은 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의 개념들과 형식들의 이론이며, “선험적 변증론”은 영혼의 불멸성, 세계의 총체성, 신의 현존을 우리가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순수이성비판은 인간 인식 일반에 대한 근원, 형식 한계를 정의한 것이다. [자아, 세계, 이상에 대한 인식불가능은 형이상학의 성립불가능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베르그송은 기억으로서 심층 자아의 성립에서 새로운 경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43UKC)
판단력 비판 Critique du jugement 1790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세 중요 작품 중의 마지막 작품이다.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은 “심미적 판단”(le jugement esthétique)과 “모적론적 판단”(le jugement téléologique)이다 전자에서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생각[사유]하는가?라고 묻고, 그것은 “목적없는 목적성”이라 한다. 후자에서는 어떻게 유기체들 속에서 목적성을 생각하는가?라고 묻고, 답으로 “아무것도 헛되이 현존하는 것은 없다” (43UKC)
[모든 유기체가 헛되이 현존하지 않은 것을 합목적이라고 본 칸트는 합리적 사유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주의에서 보면 헛되이 현존하지 않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노력들이다. 그래서 유기체가 자연의 다양체이며, 이 풀어보려는 노력의 실패라고 하는 것도 유용성의 관점이며, 실패라는 것을 거쳐보지 않으면 또다시 그 길로 가는 반복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게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유기체의 생명활동이다. 목적성이 아니라 다양체로서 자유와 활동성의 확장이다. 이점에서 베르그송은 진보론자가 아니라 확장론자이다.(43UKC)
크리톤 Criton [크리톤(Criton) (Du devoir du citoyen)]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의 대화편 중에서 초기에 작성된 것 중의 하나로, 기원전 395년경(48살)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자유를 찾게 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소크라테스의 감옥에 왔다. 소크라테스는 법률의 의인법(la prosopopée des lois)의해 대답하면서, 아무리 불의한 법이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한다.(43UKC)
[이 작품은 시민의 의무에 대해서라고 한다. - 사마천이 백이 숙제(伯夷 叔齊)에 대해 높이 평가한 것은 아무리 군주가 포악해도 신하가 군주를 죽일 수 없다는 점이라 한다. 이 평가는 왕권신수설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루소는 그 권한이 인민에게 있음을 처음으로 알리면서 주권재민의 시대가 도래했다. - 죽이지는 않더라도 주권의 행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 인민의 제정헌법일 것이다. 나는 중국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서, 황제 ‘푸이’(溥儀 부의)가 정원사가 되기까지 중국공산당이 감옥에서 소양교육을 했다는 점에서 느낀 바가 컸었다.(43UKC) (44MLJ)]
신념 croyance 또는 신앙
이 용어는 두 가지를 지칭할 수 있다. 1. 개연적인 단순한 견해. 2. 감상적 확신(certitude sentimentale)
첫째의 경우에서 신념이란 지식의 정도가 가장 낮은 단계이며, 과학적 확신에 반대이다. 둘째 경우에서, 신념은 지식의 가장 높은 단계로서, 종교적 신앙처럼 모든 합리적 인식보다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철학적 문제는 신념의 가치의 문제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후기 칸트주의자들은 거기서 비-지식(non-savoir)의 형식을 보았다. 반대로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는 거기서 인간으로서 무한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을 보았다. 야코비는 신념[신앙]을 실재성의 감정(le sentiment de la réalité)과 동일시했다.
종교적 문제에서 맑스는 신앙을 “소외”(l'aliénation) 또는 경계해야 할 착각(l'illusion)으로 간주했다. 다른 세계에 대한 신앙은 착각일 뿐이며, 이 착각은 가난한 자들과 모욕받은 자들을 살찌우며, 이 세상에서 그들의 운명과 조건을 개선하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43UKC)
문화 또는 교양 culture
개인이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것 [교양]. 문화(culture)란 개념은 숭배(culte)와 동일한 언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의 종교적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 / 문명의 한 형태로서 문화(culture).
사람들은 문화의 여러 전형들을 구별한다. 각각의 전형적 사회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정신적 과거를 표현하는 특수한 제도를 소유하기 때문에 구별된다.
그러나 문화라는 개념은 여전히 규범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고, 인본주의(humanisme)과 동의어이다. 사람들은 야만(barbare)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언 문화 또는 중국문화에 대해 말한다. 전자에는 식인풍습(antnropophage) 문화, 폭력을 토대로 한 군사 문화 등이 있다. 후자는 정치화된 미풍양속 속에서 만큼이나 소위 교양적으로 체득된 문화를 말한다. (참조 문명) (43QMJ)
사이버네틱 cybernétique 자동조절장치
그리스어로 퀴베르네테스(kubernētēs)에서 나온 단어이며 [배의] 키(pilote)를 의미한다. 문학적으로 사이버네틱이란 ‘지배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매우 변화 무쌍한 기회(une fortune)를 알렸다. 플라톤의 대화편들 속에서 먼저 모습을 보였고, 1834년에 앙페르(André Marie Ampère 1775-1836)의 과학의 분류(Classification des sciences)에서 등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50-1960년대에 재발견되어서, “유사 두뇌”(pseudo-cerveaux)에 부여된 자기 조절 기계장치들에 관한 탐구와 연계되었을 때, 그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 이 장치는 어느 정도 자기 작업을 할 수 있은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의 자동 항법장치(pilotage automatique) 또는 감지 체계는 발사체가 목표물들로 향하여 그 자체로 방향을 잡아가게 한다.
이 과학의 급속한 확장은 과학의 사방통로로 유효하게 되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신학적이고 도덕적일 수 있고, 또한 “마법사의 제”(apprenti sorcier)의 제자에 의해 영향 받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에 제기된 일반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기계를 가지고 [인간과 같은] 지성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또한 인간과 연관해서 자치적인 것을 수행하고 그리고 인간의 조절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발명적 정신을 부여할 수 있는 기계가 있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결국,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기계의 주인이었던 두뇌 속에 보다 기계 속에 보다 “더 많은” 지성을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기계의 지성은 인간 지성의 생산물일 뿐이다. 사람들은 뤼이에(Raymond Ruyer, 1902-1987)의 의식의 역설과 자동주의의 한계(Paradoxes de la conscience et limites de l'automatisme (Albin Michel, 1960 puis 1966)를 읽을 수 있다.
* 그림 설명: 루카스(George Lucas, 1944)의 「별들의 전쟁」(1977). 자동기계의 진보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기계가 인간 창의력을 결코 제거하지 못한다. [별들의 전쟁은 1999, 2002, 2005 등의 연작이다.]
** 참조: MIT 인공지능연구소의 리처드 그린블래트(Richard Greenblatt)는 기꺼이 이 도전을 받아들였고, 그의 맥핵(MacHack) 프로그램은 1967년 최초이자 유일한 승부에서 프레이퍼스(Hubert Dreyfus, 버클리대 철학자)를 꺾었다. ... 1997년 IBM의 딥 블루(Deep Blue) 프로그램이 세계 참피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이겼을 때 실제로 이루어졌다. (브룩스 298) - [IBM은 딥 블루의 성능을 개선한 디퍼 블루(Deeper Blue)를 개발하여 이듬해(1997)에 다시 도전한다. 모두 여섯 판을 둔 이 대국에서 카스파로프(1963-)는 2승 1무 3패로 패한다. (뇌상, 베르베르, 번 21)] (43QMJ)
변덕스럼 cyclothymique
왁자찌걸한 명랑(gaeté)과 풀죽은 슬픔(tristesse)이 교대로 등장하는 개인적 주체의 특성이라 말한다.
명랑과 슬픔의 상태들이 이들을 생겨나게하는 원인들이 변덕스럽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원인 없는 명랑으로서 몰두(manie)에도, 또한 원인 없는 슬픔으로서 울적(mélancolie)에도 접근하게 된다. 이렇게 진실한 정신병적인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을 “조울증”(maniaco-dépressive)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변덕심(la cyclothymie)에 자연적 경향을 갖는 개인들을 분열성향(schizoïdie)에 자연적 경향이 있는 개인들과 대립시킨다. 이 두 전형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이다. 변덕쟁이(le cylothme)는 원칙적으로 짧은 두뇌(brachycéphale, 단두 短頭, 폭이 앞뒤보다 넓은)의 전형이고, 분열성향자(le schizoïde)는 오히려 긴 두뇌(dolichocéphale, 장두長頭 폭보다 앞뒤가 긴 두골)의 전형이다. 참조 정신분열증(schizophrénie) (43UKC)
퀴니코스 걸승들 les cyniques
그리스어 퀴니코스(kunikos)는 퀴온(kuon) 즉 개(chien)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스어 퀴니코스(κύνίκός)는 개같은 이란 뜻이다. 이 용어로 안티스테네스의 무리를 지칭한는 데 쓰였다]
퀴니코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Antisthène, Antisthenes,기원전 444-365)가 세운 그리스 철학의 한 분파이다. 이 냉소학파(l'école cynique)는 아마도 이들이 가르치는 장소인 체육관 퀴노사르게스(Cynosarge, Κύνόσαργες)라는 이름보다 [이 체육장(gynasium)은 아테네 밖에 있으며 순수 아테네인들이 아닌 자들(요즘 말로 이방인 또는 이주자)이 이용하는 교육장이다.], 디오게네스(Diogene le Cynique, Diogenes, 기원전 413- 327)의 추억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디오게네스의 삶의 방식이 고상(élégant)했던 만큼, [냉소적으로 비꼬아서] 그리스어로 퀴온 (κυών, 2격 κύνός) 즉 개(chien)이라 불렀다. 이 냉소학파는 사실상 사회적 예절들(convenances) 완전히 경멸하고, 특별하게 허식없는 덕성을 숭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절을 전반을 경멸하면서 비도적적 원리들 조용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특징을 씌우면서, 이 냉소학파의 외적인 측면만을 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당시 덕성의 금욕적 실천을 함축하는 고대의 냉소주의(cynisme)의 긍정적 측면을 잊고 있다. (43UKC)
퀴레네 학파 l'école cyrenaïque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성행했던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이다. 이 학파는 [현재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속하는] 퀴레네(Cyrène)에 출신이며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아리스티포스(Aristippe gr. Aristippos)에 의해 창설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 지라도, 그의 사상은 자주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인용되었다. 퀴레네 학파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격률(maxime)인 “너 자신을 알라”를 행복주의(l'hédonisme)에 가까운 체계로 변형한 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 행복주의에 따르면, 우리에게 [삶에서]우리의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즐거움들(plaisirs)일 뿐이라 한다. (43RMA) (57O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