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리꽃은 지고
정 소 희
시골집 담장 안에나 울타리 밖 텃밭 한편에 흔하게 피던 노랑 장다리꽃이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볼 수가 없다.
지난가을에 늦게 파종한 알타리무는 첫서리가 내릴 때가지 장정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자라고 낮은 기온 때문에 더 크지를 않는다.
서울보다 빠른 이곳의 김장에 맞추어 뽑기는 너무 잘다. 서울 동생네 김장할 때나 뽑아다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급한 대로 비닐로 보온 막을 쳤다. 비료도 쓰지 않았는데 너무 배게 둔 것을 본 옆집에서 건너다보고 몇 번씩이나 솎아내라 했지만, 나는 아무리 살펴봐도 뽑아낼 것이 없다. 이리저리 젖혀 봐도 뽑아내기가 아깝기만 하다. 좀 가깝게 있어도 튼실하고, 잘아도 좀 떨어져 있을 자리에 있다.
기온은 점점 낮아지고, 총각무는 더 자라지 않는다. 서울에 뽑아다 줄 마음은 포기하고 보온 비닐을 덮어씌운 채 팽개쳐 두고 겨울을 넘겼다 이곳은 추위도 일찍 오고 늦도록 춥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자연의 정직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비닐 속에서 파란 알타리무 새 잎이 한 뼘이나 자라 있다. 반가운 마음에서 비닐을 걷고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줌을 잡아챘다. 뽑힌 알타리무는 엄지손가락만 하다 잎사귀까지 한입 꺼리는 되었을 것을 놓친 아쉬움에서 그대로 두었는데 봄이 짙어 올수록 잎은 무성해지더니 쫑(꽃대)이 올라온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나서 뒤뜰에서 무리 지어 핀 무장다리꽃이 피었다. 흰 꽃잎 끝에 보라색인 장다리 작은 꽃잎은 연민과 그리움을 안겨 준다.
밭두렁에는 애기똥풀이 군락을 이루어 노랑꽃을 피어 조화를 이룬다.
장다리꽃은 차례로 피고 지면서 씨앗주머니를 매달고 있다. 씨앗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서 볼록볼록 씨앗을 배고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장다리를 거두지 않아도 씨앗을 쉽게 구하는 종묘상이 있다. 여러 종류의 씨앗을 어느 때나 파종할 수 있어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씨앗주머니가 조랑조랑 매달려 여물어 가는 것을 보면 큰 보자기를 펼쳐 놓고 씨앗을 털던 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이 겹쳐오며 향수를 느끼게 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처럼 시앗을 털어 보고 싶던 마음은 실행하지 못했다. 텃밭이라고 해야 두꺼비 등짝만 한데 심을 것이 너무 많은 것도 내 욕심이다.
가을 김장배추를 뽑아낼 때 잔챙이는 그대로 두었다가 짚을 덮어둔다. 응달에 잔설이 남아 있어도 양지바른 곳은 언 땅이 풀리면서 월동을 한 배추(동초)는 자라 나온다. 초봄에 더 없이 반가운 푸성귀다. 묵은 김치가 싫증이 날 무렵에는 봄동으로 만든 겉절이나 햇김치는 식욕을 돋우는 데 한 못을 한다. 그나마도 아껴두어 장다리꽃을 피우고 씨앗을 얻어서 오는 가을 김장배추 종자로 쓴다.
현대 농업기술은 교잡(交雜)에 의해서 동물에서와 같이 식물에서도 유전학적으로 우성만을 가려내 씨앗을 개량하여 생산한다. 그렇게 유전자 조작이 자유로운 과학화된 농업은 노인의 지혜를 앞서 있다. 그래서 할일을 빼앗긴 노인들이다.
옛날 어른은 가정에서 권한이 컸다. 대소사의 결정에 절대적이었고, 지혜를 전달하는 가도(家道)를 지켜 왔다. 그런 위치의 어른의 어깨에 힘이 실려 있고 목소리에는 위험이 있던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되지 않는 지금에 살고 있다.
노인이 설자리가 자연히 좁아졌고 어깨에 힘이 빠졌으며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자식을 길러내느라 우렁이껍질이 된 그들인데....... 노작지근한 심신을 기댈 곳이 없다.
하릴없이 지하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면, 도시의 공원벤치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일과요, 또는 줄지어 기다리는 무료급식 시간이 유일한 낙이 되는 그 어른들 허기진 창자만큼이나 정이 고픈 것이다.
누구나 다 늙어간다. 인생에서 노년이 장다리꽃처럼 밀려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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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신화가 있는 몽골여행 (추억을 되새기며)
정 소 희
지구상에 아직 오염되지 않은 드넓은 대지를 거침없이 달리 수 있는 이 신선함은 여행자의 순순함이 함께 했을 때 느낌은 배가된다.
지평선 저쪽에서 구름먼지를 일으키며 ‘칭기즈 칸’이 나타날 것 같은 환영을 느끼게 하는 곳, 대부분의 몽골 제족의 경우, 그들의 신화는 영웅서사시나 전설 속에 단편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부랴트 몽골족의 전승은 예외(例外)여서 잘 정리된 형태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분량에서도 아홉 밤을 읊어야 한다고 한다.
몽골에는 1000억t의 석탄과 5.4억t의 구리, 50억배럴의 석유 외에도 철광석, 주석 및 형석, 준보석 등 갖가지 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한다.
바가반디 전임 몽골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몽골은 금덩이를 깔고 앉았으면서 굶고 있는 처지”라며 경제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주한 몽골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몽골 사람은 한국을 외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몽골은 운명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고 한다.
몽골여행 출발이다.
아침 8시에 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낡아빠진 25인승 완전 할아버지 버스가 왔다.
고비사막을 4일간을 달리기엔 당치 않아 다른 차로 교체해 오기까지 시간이 지연돼 4시간이나 늦게 출발을 했다.
차주나 운전자도 고비 행을 기피한단다.
기아차와 현대차 승합차 두 대로 나뉘어 운행을 하니 일행이 흩어져 연락이 끊기는 곤란한 일들이 많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스치는 광활한 대지에 방목하는 말, 양, 소, 낙타들 보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말 모는 몽골의 목동을 보는 것, 사람을 보는 것까지 풍경이고 반가움이다.
이런 여행은 쉽지 않을 것이다. 몽골에서 고비사막을 자유여행 하면서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다. 남쪽으로 얼마나 갔는지, 지나는 작은 지역이 인구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설명이 필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 각자 보는 느낌이 설명이 될 테니까. 몽골 인구가 약 300만이 안 되면서 한국의 15배가량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으니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의 외진 어느 시골마을을 지나는 듯하다
몽골의 국립공원 간다. 관리소가 있고. 입장료가 있다.
굽이굽이 많이 들어간다. 누군가가 "산양이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어디쯤인지 어느 방향인지 내가 앉은 반대쪽 인지 분간도 못한 채 차는 계속 앞으로 가고 산양을 찍는 것은 그만 두고 그림자도 못 본채 지나갔다.
외국인 여행객들, 러시아이서 왔고, 스페인에서 왔단다. 자동차로는 여기까지 왔단다. 걸어서 더 들어가거나 말을 타거나 선택해야 한다. 젊은 외국인은 걷기를 선택하고 우리는 말을 타기로 결정했다.
여행객을 태워줄 말. 몽골 여행에서 말 타기와 낙타는 꼭 타봐야 한다했으니 그런 것이라면 해야지.
말잡이가 온 가족이 함께한다. 엄마, 아빠, 여덟 살. 여섯 살짜리 아들까지다 어린 것이 안쓰러워 팁이라는 의미와 다른 잔돈이라도 쥐어주니 퍽이나 반가워한다.
말고삐를 잡은 이 꼬마는 여섯 살이란다 한국의 아이 같으면 아직 유치원에 다니며 엄마 품에서 재롱부릴 아이인데 말잡이다.
내가 타고 온 말인데 고집이 세다. 1킬로쯤 와서 내리게 하고 걸어서 계곡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오란다. 하지만 역시 나는 다친 발 때문에 걷는 것은 포기 하고 계곡에 내려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갈 때는 그런가보다고 말고삐를 잡을 아기가 어리다는 것을 미처 생각을 못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어린 것이 또 1킬로 거리를 걸어야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너무 안쓰러워 앞에 타라니 엄마가 얼른 태웠다.
어린 애지만 말안장에 앉아 말고삐를 잡으니 말이 걷는 것부터가 다르다.
포장되지 않은 제멋대로 난 길인 고비사막을 달리는 자동차가 들까불어 차 천장에 머리를 소리가 나도록 호되게도 받히고 웃을 수 있는 몽골여행이 즐거운 추억이다.
첫댓글 선생님, 옥고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여름 나세요.
글 읽는 행복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