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사계김장생신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서영지
빅풋
발이 빠졌다며 누군가 ‘수정이’를 불렀을 때 나는 배추가 가득 담긴 빨간 고무대야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수정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참 애타게도 불러댄다고 비몽사몽간에 생각하고 있다가 그건 내 이름이고 나를 부르는 사람은 바로 엄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어디에 빠졌는데?” 하고 건성으로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욕실에서 들려왔다.
“여기, 여기라고.”
“도대체 뭔 소리야.”
눈을 뜨는데 눈이 뻑뻑했다. 숙취를 털어내려 머리를 흔들었다. TV 화면에 짐을 가득 싣고 차마고도를 넘는 말과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벗어 대야에 걸쳐놓고 욕실로 갔다. 토요일의 꿀맛 같은 늦잠을 빼앗긴 채 나는 이른 아침부터 김장 중이었다. 그냥 사서 먹자니까 정말 유난이었다. 어제 확 그냥 들어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엄마는 이 주 전부터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 가며 김장 날을 알렸지만 나는 기어이 회사 회식에 참석했다. 아홉 시까지 오겠다던 언니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번엔 절대 늦을 일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도무지 시간이란 걸 맞출 줄을 몰랐다. 거실 바닥에서는 반듯하게 두 쪽으로 갈라놓은 배추 쉰 포기가 소금에 절여지고 있었다. 이제 잘 절인 배추를 건져내어 헹군 뒤 물기를 빼면 그걸로 모든 준비는 끝이었다.
욕실을 들여다봤다. 엄마가 오른쪽 발을 변기 안에 넣은 채 멍하게 서 있었다.
“엄마. 왜 이래?”
“수정아, 발이 빠졌다.”
욕실 오른쪽에 가로로 놓인 변기에 오른발이 빠진 엄마는 나를 보기 위해 문틀 양쪽을 잡은 채 힘겹게 몸을 틀었다.
“뭐야, 어쩌다 이랬어?”
엄마가 수납장 맨 꼭대기 칸을 가리켰다. 오이비누 상자 여덟 개 중 하나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저거 꺼내려고? 또 변기 밟고 올라 선거야?”
엄마는 걸핏하면 덮개를 다 젖혀놓고 변기 위에 올라서서 수납장을 뒤적였다.
“정말 못 살아. 내가 이러다 언제 한 번 빠질 줄 알았다니까.”
엄마는 몸을 앞으로 돌려서 발을 빼려 애썼다.
변기 안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엄마 발이 작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구멍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
“안 빠져. 아무래도 구멍에 꽉 껴버린 것 같다.”
“천천히 다시 해봐.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둘둘 걷어붙인 엄마의 바지 밑단이 자꾸 흘러내려서 나는 엄마 옆에 서서 바짓단을 붙들었다. 김장하다 말고 정말 가지가지였다. 엄마가 벽을 짚고 서서 다리를 앞뒤, 좌우로 움직였지만 야속한 물만 찰랑거릴 뿐이었다.
“안된다, 안돼. 어쩌면 좋냐?”
보다 못한 내가 엄마 다리를 잡아당겼다. 발이 구멍에 꽉 끼어 꼼짝하지 않았다. 엄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아프다고 하는 통에 나는 좀 더 힘을 주어 당기려던 손에서 힘을 빼고 말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뭔 세수를 하겠다고 이 난리를 치냐고.”
“야, 니 언니가 오잖냐.”
엄마의 얼굴이 점점 하얘졌다.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힘을 주어 억지로 빼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욕실을 둘러봤다. 샤워기 선반에서 내가 샴푸를 가져올 때까지도 엄마는 어떻게든 발을 빼 보려 낑낑댔다. 샴푸의 펌프 마개를 풀어서 한 컵 정도 변기에 부었다. 엄마가 발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전보다는 뭔가 달라 보였다. 엄마가 샴푸를 더 부어보라고 했다. 샴푸를 더 부은 뒤 세면대에서 물도 받아서 부었다. 변기 안에 거품이 차올랐다. 꾸루룩 물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며 희망이 생겼지만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엄마의 발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와서 검색했다. 변기에 발, 변기 속 발, 변기 발 빠짐, 변기에 발이 빠졌을 때……. 있을 법한 검색어를 되는대로 검색창에 갖다 썼다. 기껏 검색해 나온 거라곤 변기 물 빠짐, 변기에 신발이 빠졌을 때, 변기 물 발로 내리지 마세요, 같은 죄다 도움이라곤 안 되는 것들 뿐 아무리 살펴봐도 속 시원한 결과를 얻을 순 없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주 변기에 물건을 빠뜨리고 있으며 그중 최고는 칫솔이라는 것, 그리고 변기에 발이 빠진 사람은 해외토픽에나 한두 명 있을 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엄마가 유일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별 소득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변기 뚫는 업체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먼저 들려온 건 한바탕 웃음소리였다. 아, 죄송합니다, 말하면서도 그는 또다시 웃었다. 그러면서 샴푸나 주방 세제를 넣어보라고 했다. 웃지나 말던가, 나도 이미 다 해본 걸 전문가라는 인간이 지껄이고 있었다.
엄마는 줄곧 나만 바라봤다.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익숙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표정으로. 주름진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저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는 엄마와 역할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른아홉의 엄마와 칠십의 딸. 아빠가 죽고 난 후로 내내 언니와 나를 따라붙던 저 표정은 내 몫이 된 지 오래였다.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언니는 나에게 얘기했다. 선심이라도 쓰듯, “비혼인 네가 엄마 모셔라. 대신 집도 네가 물려받아. 됐지?” 하며 깨끗이 항복하는 사람처럼 어깨 위로 두 손을 들었다. 변기에 빠진 건 엄만데 내 발이 빠진 것처럼 조여왔다. 숨이 막혔다.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았다. 간밤에 소주와 함께 먹었던 낙지가 위액을 뒤집어쓴 채 목구멍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끌어안고 쏟아낼 변기가 필요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급한 대로 싱크대로 냅다 뛰어가 수채통에 얼굴을 들이대고 게워냈다. 다시 욕실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좀 전의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눈빛을 해서는 나를 보는 엄마가 싫었다. 뭔가 환기할 필요를 느꼈다. 엄마를 저런 자세로 계속 서 있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식탁 의자를 들어다가 엄마를 부축해 앉혔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서도 발을 빼려 애썼다.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벌려 흔들고 있는 엄마는 꼭 개다리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변기 안의 발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퉁퉁한 종아리의 부정맥들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엄마의 왼발로 시선을 옮겼다. 작지만 결코 앙증맞거나 귀엽지 않은, 투박하고 못생긴 맨발이 차가운 욕실 바닥을 딛고 있었다. 엄마가 자세를 고쳐 앉느라 잠시 발을 들자 누렇게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이 보였다. 낡은 니트처럼 보풀이 일어난 뒤꿈치에 지진파 같은 몇 가닥 깊은 골이 지나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바닥에 발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무지외반증을 앓는 발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제 자리를 이탈해 과도하게 굽은 엄지발가락은 숫제 두 번째 발가락을 덮어버렸다. 엄지발가락에 밀려 휘어지고 뒤틀린 발가락들은 괴기스러웠다. 참 여러 가지로 혐오감이 들게 만드는 발이었다. 더 보고 있기가 힘들어 급히 눈을 돌렸지만 갈 곳 잃은 시선이 수면바지 아래 비쭉 나온 내 발에 닿았다. 혐오감이 들기는 마찬가지인 발이었다. 뜨거워진 얼굴을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욕실 밖으로 나왔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신호가 갔고 끊으려 할 때쯤 전화기 건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왜 아직도 안 와?”
“거의 다 왔어. 좀 기다리지 왜 또 전화야, 운전하는 사람 불안하게.”
“빨리 좀 와. 엄마 발이 변기에 빠졌어.”
“어디에 빠졌다고?”
내가 엄마에게 했던 질문을 언니가 똑같이 나에게 했다.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묻는 언니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발, 발. 변기에 엄마 발이 끼었다고.”
스피커폰을 통해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에 언니는 좁은 차 안에 앉아 인상을 구겼을 것이다. 발이 어떻게 거기에 낄 수가 있냐고, 그렇다 쳐도 안 빠질 리가 없지 않냐고, 살살 움직여서 빼 보라고 한심하다는 투로 언니가 말했다.
“샴푸나 주방 세제 같은 건 넣어봤어?”
사람 생각하는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이 와중에 픽,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미 해 봤다고, 소용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나한테 전화하면 어떻게 해.”
저 냉정한 것 좀 봐라. 잠깐의 정적을 깨며 언니가 말했다.
“주차해야 돼. 끊어 봐.”
성질머리와는 달리 언니는 예쁜 발을 가졌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배가 아팠다. 엄마를 빼닮은 내 발은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이 백 십을 찍은 이후로 더는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발은 괜찮았다. 문제는 무지외반까지 엄마를 닮았다는 데 있었다. 이차성징이 나타나면서 내 엄지발가락도 조금씩 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줄곧 볼 넓은 운동화나 슬리퍼만 신었다. 그런데도 변형은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콤플렉스는 한여름에도 샌들을 신을 수 없게 만들었다. 코가 뾰족한 구두는 그림의 떡이었다. 작고 못생긴 내 발. 나만 엄마의 발을 물려받은 것이 억울했다. 나는 툭하면 언니 발에 내 발을 갖다 대며 크기를 재보자고 했다. 그걸 볼 때마다 엄마는 발 마주 대지 마라, 싸움이 잦다더라 하는 근거 없는 미신 같은 얘기를 하곤 했는데, 언니와 나는 정말 많이 싸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어젯밤만 해도 그랬다. 자기는 가정이 있으니 전날부터 오는 건 무리라며 새벽같이 일어나 오겠다는 거였다. 어차피 새벽에 올 거면 전날 밤에도 올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묻자 “넌 참 혼자 살아서 속 편한 소리 한다, 밤에 애 재워야지.” 하는 게 아닌가. “나 참 무슨 초등학교 오 학년이나 된 사내애를 재우냐.”고 비꼬았더니 언니는 비겁하게 “기집애야, 너도 애 낳아 봐라.”하고 받아쳤다. 나는 화가 치밀어 “됐어, 시집도 안 간 사람한테 뭔 애를 낳으래. 오기 싫으면 싫다고 할 일이지.” 하고 쏴붙이고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집어 던졌다. 와 봤자 도움도 안 되는 게, 정말.
결국 언니는 엄마와 내가 절여놓은 배추 사이에 파묻혀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며 전화를 걸었을 때 역시나 내 예상대로 언니는 잠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볼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
“왜라니? 안 와?”
“이제 가려고 했어. 곧 출발할 거야.”
“뭐? 출발도 안 했어? 아주 점심때나 도착하시겠어. 뭐, 김장하는 집 보쌈 드시러 오나 봐요?”
“야, 오버 좀 하지 마. 아홉 시까지 갈게.”
뭐라고 쏴붙여야 속이 시원할까 고민하는 사이 전화가 뚝 끊겼다.
언니는 도어록 번호를 두 번 틀리더니 세 번 만에 문이 부서질 듯 열어젖혔다. 욕실은 현관에서 들어와 바로 오른쪽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언니를 주시했다.
“엄마는?”
“참 빨리도 오셔.”
언니가 ‘엄마’를 외치며 욕실을 들여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에 쓰러져가며 깔깔거렸다. 엄마가 개다리춤을 추다 말고 따라 웃었다.
“미쳤어? 지금 웃음이 나와?”
언니를 노려보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제정신들이 아니야, 정말.”
외투 소매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언니가 일어섰다.
“언니, 밥은 먹고 온 거야?”
“응.”
“집에서?”
“아니.”
“휴게소에서 먹었어?”
“아니.”
언니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변기에 바짝 붙어 앉아 고려 백자라도 감별하는 사람처럼 거품 가득한 변기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엄마가 그런 언니를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그럼 뭐야. 안 먹었다고?”
“응.”
“먹었다는 거야, 안 먹었다는 거야?”
엄마가 소리를 빽 질렀다.
“또, 또, 그놈의 스무고개. 말들 좀 이쁘게 못 하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들어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언니가 일어나며 허리를 두드렸다.
“일일구에 전화는 해봤어?”
“일일구?”
나는 엄마를 향해 “맞다, 일일구, 일일구”를 외쳤다.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부르지 마라. 망신이다, 망신.”
내가 무슨 소리냐며 버튼을 누르려 하자 엄마는 당장에 다리를 잘라서라도 나올 것처럼 철퍼덕거렸다.
“이거 봐라. 금방 빠진다니까. 글쎄, 부르지 말라고.”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엄마를 달랬다. 양말도 못 벗은 언니가 욕실을 가로질러 트리트먼트를 가져왔다. 엄마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래, 수세미 같은 내 머릿결도 매끄럽게 만들어주니 저거야말로 희망을 품어 볼 만했다. 언니가 쭈그리고 앉아서 트리트먼트가 잔뜩 묻은 엄마의 발과 변기 사이를 살살 문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엄마의 발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언니가 엄마의 눈을 피해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서 귀 옆에 대고 흔들었다. 내가 봐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1, 1, 9를 눌렀다. 상담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저 이런 걸로 전화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막상 용건을 꺼내자니 민망함이 몰려와 말끝이 흐려졌다.
“괜찮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엄마가 비누를 꺼내려 변기를 밟고 올라섰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변기에 빠졌는데 구멍에 꽉 낀 발이 어떻게 해도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상담원이 흠, 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엄마의 다리가 괜찮아 보이는지, 움직이는지, 움직일 때 통증은 없는지 물었다. 스피커폰을 켜 엄마에게 가져가자 예상외로 엄마는 괜찮다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여자는 주소를 물었고, 구급차가 출발했으니 십분 안에 도착할 거라며 그동안 엄마를 진정시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는 “급한 일도 아닌데 천천히 오셔도 돼요.” 하고 핸드폰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고 나는 말이 들어가기 전에 잽싸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혹시 또 모른다며 엄마가 다시 발을 들썩거려 봤지만 역시 발은 구멍 안에서 꿈쩍도 안 했다. 그래도 뭔가 희망적인 건 변기 안에 가득했던 거품이 그사이 약간 줄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급구조를 위해 신고자의 휴대폰 위치를 조회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현관문이라도 열어두어야겠다며 욕실을 빠져나오는데 땀이 밴 등줄기가 축축했다. 엄마는 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소금물에 담가 놓은 배추를 뒤적거리느라 밤새 잠을 설쳤을 게 뻔했다. 어지럽게 흐트러진 신발들 사이 밑창이 닳을 대로 닳아 납작해진 엄마의 운동화가 보였다. 앞코가 해져 번들거리는 운동화는 이 백 십 밀리미터였다. 살집이 있는 엄마를 지탱하기에 버거운 사이즈였다. 무지외반까지 심해진 뒤로는 걸을 때면 전족이라도 한 사람처럼 뒤뚱거렸고 잘 넘어졌다. 그 발을 가지고 엄마는 반년 전까지도 악착같이 일을 다녔다. 마지막 직장은 옆 동네 아파트였다. 뒤뚱거리며 청소를 하는 엄마를 불편해하던 동대표가 자른 게 분명하다고 엄마는 말했다.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게 사이렌 소리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가 욕실에서 불렀다.
“수정아, 일일구 왔나 나가 봐라.”
신기한 게 엄마가 말하고 나자 사이렌 소리가 바로 가까이서 들렸고, 곧이어 삼 층까지 둔탁한 발소리가 울렸다. 주황색 유니폼의 구급대원 세 명이 집으로 들어서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엄마는 욕실에서 훌쩍거렸다. 나도 마음이 놓였다. 언니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스쳤다. 아직도 거품이 몽글몽글 만들어지고 있는 변기 안을 들여다보며 구급대원들이 머리를 맞댔다.
“샴푸랑 트리트먼트는 안 됐어요.”
내 말에 엄마 다리를 이렇게 저렇게 만지기도 하며 살피던 대원이 식용유가 있으면 좀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식용유가 넉넉히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주방으로 갔다. 다른 대원은 엄마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구조대상자를 안심시키는 메뉴얼이자 배려인 것 같았다.
“어머니, 발이 진짜 작으시네요.”
“여자 몸으로 막노동하느라 이 발도 고생 많았지. 내가 얘기를 시작하면 소설책 한 권은 쓰고도 남는다니까.”
소설의 첫 페이지를 막 넘기는 엄마의 목소리는 하늘로 올라가는 거품처럼 가볍고 유쾌했다. 세를 얻어 하던 공사장 함바집 이야기며 병원의 구내식당이나 대학교 청소 자리를 전전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젊은 여자가 혼자서 어린 두 딸을 키워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그 어렵고 험난한 일을 이뤄낸 자신은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따위의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내가 없는 틈을 타 저들에게 들려주고 싶겠지. 그나저나 아, 식용유가 없다.
식용유를 사 들고 계단을 두 칸씩 세 칸씩 뛰어올라 집으로 들어섰을 때까지 엄마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참 이상도 하지. 김장을 하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애들 어릴 때도 말이야, 새빨간 양념을 싹싹 비벼서 노란 배추에 넣고 있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어.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지는 거야. 지금도 그래. 그냥 뭔가 자꾸 따뜻해져. 신기하지?”
엄마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자꾸 잊어버렸다. 생각하면 참 아득해지는 날들이다.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가 아는 한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엄마를 보는 날보다 보지 못하고 잠드는 날이 많았다. 엄마는 초겨울이면 어머어마한 양의 김장을 담갔다. 언니와 내가 먹을 일 년 치 반찬이었다. 어른이 된 후로 언니는 익은 김치를 먹지 않았다. 김치 멀미를 앓는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조카에게도 형부에게도 익은 김치를 내주지 않았다. 쉰내가 풀풀 나는 김치만 봐도 쓰디쓴 위액이 올라올 것처럼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런 이유를 대며 언니는 김장 때마다 마지못해 나타나서는 멀찍이 코를 쥐고 앉아 있었다.
욕실 밖에 서 있던 언니가 식용유를 건네받아 구급대원에게 전해주었다. 식용유를 전부 쏟아부은 뒤에도 변화가 없자 구급대원들은 결국 변기를 부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멀쩡한 변기를 부수는 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엄마를 설득해 조금씩 살금살금 변기를 부수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는 엄마의 발을 무사히 변기에서 꺼낼 수 있었다. 엄마는 썰매처럼 생긴 계단용 들것을 타고 구급대원들의 손에 들려 삼 층에서 일 층으로 옮겨졌다. 사이렌 소리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을 지나쳐 나도 구급차에 올라탔다. 언니는 언니 차로 뛰어갔다. 엄마는 드라마처럼 호흡기를 연결하지도, 제세동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링거라도 하나 꽂아놓아 민망함이 덜했다. 엄마는 다리에 부목을 대고 누워 구급차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예상치 못했던 낯설고 어색한 상황을 겨우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슬며시 옆구리를 찔렀다.
“왜?”
“배추.”
“배추가 뭐?”
“어쩌냐. 배추 건져야 돼. 지금도 늦었어. 더 담가두면 짜서 김치 다 버린다.”
“짜면 짠 대로 먹으면 돼.”
“배추가 물이 다 빠지면 맛없다.”
엄마는 옆에 앉은 여자 대원의 눈치를 봤다.
“엄만 괜찮으니까 넌 그냥 집에 가서 배추 건져놔.”
“지금 김장이 문제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던 엄마가 조용히 다시 불렀다.
“왜?”
“언니한테 전화해. 병원 오지 말고 배추 건지라고.”
“아, 쫌.”
링거 줄의 롤러를 조절하던 여자 대원이 나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휴일의 응급실 로비는 어수선했다. 진짜 응급환자들 속에 있는 엄마는 멀쩡하다 못해 토실토실 건강미 넘쳐 보였다. 엄마는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니와 나처럼 보호자인 것 같았다. 나는 네 개씩 붙어있는 대기 의자 중 빈 곳을 찾아 앉았다. 엄마의 상태는 응급실과 어울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앉아 있으니 중환자 보호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가끔 엄마가 아파서 입원하거나 한밤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병원에 실려 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냥 막연한 상상이었는데 엄마가 정말로 응급실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식으로. 자판기 커피를 들고 오던 언니가 내 바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는 양이 가득 그려진 하늘색 수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경황없이 구급차를 타느라 패딩만 겨우 걸쳤을 뿐 집에 있을 때 그대로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언니 운동화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하얀 운동화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언니 발 이 백 삼십 아니야?”
“맞아. 근데 나 이 백 오십 신어. 이것 봐.”
언니가 운동화를 벗어 사이즈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엄마 발 닮았나 봐. 신발이라도 크게 신어보려고.”
언니가 양말을 벗었다. 멀쩡해 보이는 엄지발가락에 교정기가 끼워져 있었다. 나도 종류별로 사들여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무지외반 교정기였다.
“유전이었으면 진작 휘어졌겠지, 나처럼. 언니는 그냥 류마티스야. 언니 옛날에 힐 많이 신었잖아.”
언니가 양말을 신으며 내 발가락을 슬쩍 쳐다봤다.
“너 그러다 나중에 더 심해지면 수술해야 돼. 꽤 심한데?”
나는 반대편으로 다리를 꼬았다.
“뭔 수술씩이나. 죽기야 하겠어.”
우리와 한 칸 떨어져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 발을 봤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접어 올려 양반다리를 했다. 효과도 보지 못한 채 치워버렸던 교정기들을 다시 찾아봐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간호사가 엄마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언니가 운동화를 꿰어신고 일어섰고, 나도 슬리퍼를 끌며 응급실로 뛰어갔다. 엄마는 침대 옆으로 두 다리를 내리고 걸터앉아 있었다. 오른발에 미라처럼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작은 왼발에 비해 오른발이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우리를 보자 엄마가 일어서려고 바둥거렸다. 언니와 내가 양쪽에서 엄마의 팔을 잡고 부축했다.
젊은 의사가 모니터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의사는 모니터를 뒤적여 엑스레이 사진 몇 장을 열었다. 엄마의 오른쪽 다리와 발목을 찍은 것들이었다. 발을 빼려고 무리하게 발목을 움직인 탓에 인대에 무리가 왔고 힘줄들도 놀란 상태라고 했다. 뼈에 별다른 이상소견은 없지만 고령인 것을 감안해 깁스를 해놓았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있으면 별의별 사고를 다 보는데 변기에 발이 빠져서 온 건 엄마가 처음이라며 생글거렸다.
“참, 무지외반증이 심하시던데 진작 수술하고 편하게 사시지 왜 안 하셨어요?”
의사는 질문은 엄마에게 해놓고서 답은 자식들이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언니와 나를 쳐다봤다. 훅 들어온 기습질문에 당황한 채 서 있는데 엄마가 수줍은 듯 말했다.
“웬걸요. 우리 딸들은 진작부터 하자고 했어요. 내가 수술이 무서워서 안 하겠다고 한 거지.”
차라리 가만히 있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의사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까지도 그 발로 사셨는데 이제 와 수술을 하시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할 수도 없다며 차트를 덮었다. 원치 않은 공을 넘겨받은 듯한 기분이 영 별로였다. 뭐라도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당장 결정하시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보고 오라는 말을 끝으로 의사는 진료를 마쳤다.
언니와 내가 양쪽에서 엄마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응급실을 나오자 휠체어를 탄 노인이 부러운 눈빛으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어울리지도 않는 엄살을 떨었다.
수납 창구에 가까워지자 언니가 차를 뺀다며 슬쩍 엄마 팔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언니였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를 대기 의자에 앉혀두고 수납을 했다. 창구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엄마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년 여자가 목발을 짚고 지나가자 엄마는 목발을 유심히 보다가 휠체어를 탄 젊은 남자가 지나갈 때는 휠체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엄마의 뒤편 통유리창으로 멍 빛 땅거미가 번져오고 있었다.
회전문을 느리게 통과하며 엄마가 투덜거렸다.
“김장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이 드냐. 작년에도 니가 떡이 돼 들어와서는 뻗는 바람에 엄마 혼자 하느라 디스크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
“또 그 얘기. 지금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하여튼 쓸데없는 일은 기억도 잘해.”
“한나절이 다 지나버린 게 속상해서 그런다.”
바깥은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엄마에게 외투를 입히고 나도 패딩 지퍼를 올렸다. 언니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차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옆에 서 있는 엄마가 내 발을 빤히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외투 주머니에서 둥글게 말아놓은 양말을 꺼내더니 내밀었다.
“나는 이제 필요 없다. 너 신어라.”
“나도 필요 없어. 왜 멀쩡한 발까지 양말은 벗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엄마가 끝끝내 쥐여 준 양말에 못 이긴 척 발을 쑤셔 넣었다. 따뜻했다. 한결 나았다. 찬찬히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굴에 아이처럼 천진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아직 건져내지 못한 배추를 안타까워하며 김장을 걱정하는 사람치고는 얼굴 가득 어떤 만족감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언니가 우리를 버리고 가버린 건 아닐까 의심이 들 때쯤 동그랗게 회전해 들어오는 하얀색 모닝이 보였다. 언니는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조수석을 뒤로 밀어 엄마를 부축해 앉히고는 얼른 뒤로 가서 탔다. 볼이 얼얼했다. 언니가 조카에게 식탁에 올려두고 온 카드로 치킨 시켜 먹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비상등을 켜고 내내 기다리다가 구급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한 바퀴 돌고 온 거라고 했다. 언니가 히터를 올렸다. 병원을 빠져나오는 동안 좁은 차 안이 금세 훈훈해졌다. 빌딩의 불빛과 간판의 네온사인이 점점 선명해졌다. 주말 저녁 시간에 맞물린 팔 차선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만이 둥둥 떠서 오고 갔다. 엄마가 대시보드 위에 붙어있는 언니네 가족사진을 톡 치자 사진 속 세 사람이 스프링을 따라 고개를 까딱였다.
“너는 우리 내려주고 집으로 가라. 뭘 치킨을 먹이니. 얼른 가서 저녁 해줘라.”
나는 앞 좌석 헤드를 양손에 붙잡고 번쩍 몸을 세웠다.
“무슨 소리야. 누굴 잡으려고. 언니 같이 갈 거지?”
“그래도 애한테는 엄마가 있어야지. 수정이랑 쉬엄쉬엄할 테니까 넌 집에 가.”
“언니, 가면 절대 안 돼. 알지?”
“야. 안 가, 안 가. 엄마도 신경 쓰지 마, 괜찮아.”
언니가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시사 프로그램 디제이가 전화 연결이 된 청취자에게 막 퀴즈를 내고 있었다.
- 세계 최대의 소금사막인 우유니 사막이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뜸을 들이는 청취자에게 디제이는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인 것과 ‘ㅂ’으로 시작한다는 힌트를 주었다.
- 불가리아요.
확실하냐는 디제이의 물음에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우물거리며 자신 없다고 대답했다.
“볼리비아.”
엄마가 앞에서 툭 던졌다.
- 바꾸실 생각은 없습니까?”
디제이가 한 번 더 묻자 청취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네.” 했다.
“답답하네. 남아메리카라는데 자꾸 무슨 불가리아라니, 저 여자는. 불가리아는 유럽이잖아. 유, 럽.”
엄마한테 저렇게 당당한 모습이 있었나.
- 정답은, 볼리비아입니다. 아, 안타깝게 됐습니다.
디제이의 말이 끝나자 언니가 엄마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엄마가 방구석 여행가라는 걸 언니는 몰랐다. 엄마는 온종일 TV를 틀어놓고 지냈다. 설거지할 때는 소리라도 들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가 언제부턴가 ‘세계테마여행’이라든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TV 프로그램만 봤다. 맨날 지겹지도 않은지 엄마는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할 때도 TV 앞에서 했다. 수십 개의 채널을 돌려봐도 이렇다 할 프로그램이 없을 때는 다시 보기로 같은 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이틀 전에는 한 바구니나 되는 마늘을 TV 앞에 앉아서 오래도록 벗기고 빻았다.
언니가 라디오 볼륨을 줄이며 신기한 듯 말했다.
“엄마, 나도 잘 모르는 나라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볼리비아를 왜 몰라. 거기 소금사막이 얼마나 유명한데. 옛날에 바다였던 데가 말라버리니까 소금사막이 된 거지. 우기에 비가 오면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아니? 땅이 온통 하늘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로 변한다니까.”
“뭐야, 꼭 다녀온 사람처럼 말하네.”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엄마가 뒤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러더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죽기 전 가보고 싶은 데가 딱 두 군데 있는데.”
온 세상 나라를 속속들이 엿 본 사람치고는 버킷 리스트가 너무나 단출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금사막이야. 그건 정말 꼭 한 번 보고 죽고 싶더라.”
신호에 걸리자 언니가 엄마를 바라봤다. 나는 슬쩍 핸드폰을 꺼내 소금사막을 검색했다. 엄마 말처럼 장관이었다.
“니들도 그걸 봐야 하는 건데, 아쉽다. 내 생전 그토록 아름다운 건 본 적이 없다.”
“낭만적이기도 하셔라.”
검색창을 닫았다. 앞으로 몇 주간 절뚝발이 엄마를 부축해 병원을 오갈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났다. 깨진 변기는 또 어떻게 하고 당장 오늘 밤 볼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 다른 한 곳은 어디야?”
언니가 전방을 주시한 채 엄마에게 물었다. 앞차의 브레이크등 불빛에 빨갛게 물든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했다.
“스무고개.”
엄마의 옆얼굴에 장난기가 스쳤다.
“뭐야, 이 맥락 없는 퀴즈 타임은.”
나는 핸드폰을 패딩 주머니에 넣으며 등받이에 기대 누웠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언니도 반응이 없었다. 신호가 바뀌고 앞차가 움직였다.
“하지 말까?”
“알았어, 해, 해.”
건성으로 받아주며 몸을 일으키는 데 하품이 나왔다. 나른하니 졸음이 밀려왔다. 창문을 내렸다. 찬바람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엄마의 뒷머리가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렸다. 바깥의 소음이 따라붙자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추운 나라야. 유명한 게 많은데……. 음, 눈이 많이 와.”
“눈? 스위스, 노르웨이, 그린란드, 또 어디더라?”
“땡.”
“눈 많이 오는 데가 한두 군데냐고.”
“핀란드?”
언니의 답에 창밖을 보던 엄마가 언니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딩동댕.”
“뭐야. 싱겁게. 엄청 대단한 덴 줄 알았네. 거긴 또 왜 좋은 건데.”
“오로라.”
오로라가 있어서, 그게 꼭 한번 보고 싶은 거라서, 엄마가 손가락 사이를 벌려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냥 소원이지. 너희도 못 가본 데를 엄마가 가서 뭘 하겠냐. 소원은 원래 그런 거야.”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언니가 느리게 가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 나는 창문을 올렸다. 더는 엄마의 머리를 헝클어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TV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온종일 보는 거라고. 그중에서도 요즘 채널 취향은 여행이구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너나 할 것 없이 여행이 대세이니만큼 더 그런가 보다 했다. 엄마는 지금껏 볼리비아나 핀란드는커녕 제주도도 간 적이 없었다. 엄마가 비행기를 처음 타게 된다면 못생긴 발 때문에 신발은 절대 못 벗는다며 버틸지 모른다. 언니나 내가 각자 한두 번 제주도를 다녀올 때도 엄마는 집에 있었다. 오 년 전에는 엄마 몰래 친구들끼리 인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소원은 원래 그런 거야, 라는 엄마의 말이 맴돌았다. 엄마는 이룰 수 없는 게 소원인 줄 아는 걸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소원을 포기하며 살았던 걸까. 정체가 풀리면서 차는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절인 배추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며 엄마는 일 층 출입문에서부터 성화였다. 한 손으로 난간 손잡이를 잡고서도 엄마는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고 언니는 옆에서 나는 뒤에서 쩔쩔맸다. 현관을 들어서며 엄마에게서 떨어지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욕실 주변으로 풀어헤쳐진 휴지와 샴푸 병, 식용유 병이 뒹굴었고, 욕실 안쪽은 해체되고 깨진 변기 조각으로 어지러웠다. 혼자 떠들고 있는 TV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래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며 환호성을 질렀다. 배추가 담긴 대야 아래에는 넘친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켜켜이 쌓인 배추들은 오랫동안 물이 닿지 않아 쪼글쪼글 말라 있었다. 파 냄새, 미나리 냄새, 마늘 냄새, 찝찔한 젓갈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모든 것이 야단법석이던 순간에서 그대로 멈춘 느낌이었다.
언니가 변기 업체를 찾아 전화를 건다며 설레발을 쳤다. 나는 대야에 걸쳐 있는 고무장갑을 들어 언니에게 내밀었다.
“언니, 고무장갑 껴 봐.”
언니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변기가 이런데 지금 김장이 급하냐고 말했다.
“걱정 마. 마트 화장실 쓰면 되니까 김장이나 해.”
언니는 허리에 짚고 있던 손을 풀고 마지못해 고무장갑을 받아들었다.
대야 앞에서 팔을 걷어붙인 채 고집을 피우는 엄마를 끌어다 TV 앞에 앉혔다.
“자, 엄마는 세계여행이나 계속하셔.”
TV 앞에 앉은 엄마는 TV가 아니라 우리만 봤다.
언니와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나란히 대야 앞에 앉았다. 이제 시작하면 밤을 새워야 할지 몰랐다. 마음이 바빠졌다. 배추를 건지다 돌아보니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엄마는 냉장고 안에서 돼지고기가 든 팩을 꺼내 절룩이며 싱크대로 걸어갔다. 깁스한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내 가슴에 쿵쿵 커다랗게 발자국이 찍히는 것 같았다.
첫댓글 재미도 있지만, 가슴 뭉클해지는 이야기네요. 단편소설은 이런 거구나, 하는 배우는 심정으로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보는 거 같네요 대단한 기교없이도 재미있고 가독성있어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