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상처를 받지 않고 옛 이끼까지 곱게 간직한 살아있는 민속촌-
경북 봉화 역사문화탐방
지난 10월 5일 파랑새문화회 주관으로 45명의 회원들이 경북봉화 기행을 다녀왔다. 동주대학교 박물관장 출신인 김도용교수님의 해박한 답사지 설명, 서예에 조예가 깊은 우산박현진님의 현판 글씨 해설과 김용일 사무국장의 익살스런 사회로 부산을 06:00출발 약 3시간 후에 첫 답사지인 청량산 입구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번 기행도 나의 카페 닉네임이 뜻하는 ‘여심(旅心)’을 흠뻑 느끼기에 충분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봉화는 외지인의 상처를 받지 않고 옛 이끼까지 곱게 간직한 살아있는 민속촌이다.” 라고 적은 바 있다. 봉화군은 한마디로 경상북도의 삼수갑산(三水甲山)이다.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봉화는 영주와 함께 경북의 오지로 꼽혔다. 백두대간의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싼 형국이라 어느 지역과도 왕래가 쉽지 않았기 때문. 덕분에 봉화는 전통 마을과 청정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산수 좋은 봉화에는 유난히 전통 정자가 많다. 게다가 내력 깊은 마을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종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렇게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해 온 봉화가 최근 ‘오지 탈출’을 선언하고 있다. 청량산과 내성천, 자연송이, 다덕약수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웰빙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청량산 깊은 곳 금강송숲에서 삼림욕을 즐기고 내성천에서 은어를 잡는다. 봉화의 명물 자연송이를 배를 채운 후 예로부터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다덕약수 한 잔 ‘쭈욱’ 들이키면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청량산 .청량사
기행팀이 제일 먼저 도착한 경북 봉화군과 안동시에 걸쳐 있는 청량산은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예부터 '소금강’이라고 불려왔다. 12봉과 12대, 8개의 동굴, 4곳의 우물, 그리고 청량 산의 명물인 '하늘다리’는 겨울여행 추천지로 관광객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청량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35번째,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41번째에 꼽히는 봉화 청량산 등산 코스는 입석-청량사-자소봉-뒷실고개-하늘다리-장인봉-청량폭포로 약 6km에 달하는 거리로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한다. 우리 기행팀은 시간관계상 약 2시간 산행을 하면 도착하는 청량사를 둘러 보고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자갈이 군데군데 박힌 바위와 어우리진 자연 경관은 청량산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퇴적암류가 융기해 암봉을 이룬 이 바위들은 주변의 환경과 함께 자연의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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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하면 신라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청량사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라고 알려진 청량사. 육육봉 12봉우리가 연꽃 잎처럼 청량사를 감싸고 있으며 연꽃의 수술 자리에 청량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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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량산 청량사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하나는 청량사의 현판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얼마 전 종영한 SBS드라마 '신의’의 등장인물 중 하나였던 고려의 공민왕이다. 이 유리보전은 고려의 마지막 왕 공민왕이 친필로 쓴 것이라 한다. 때문에 청량산 축융봉 일대에서는 공민왕과 관련한 유적들도 둘러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종이로 만든 부처인 과지불로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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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행팀이 이 곳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청량사를 지나 계속해서 산을 오르다 보면 경일봉의 중간쯤에 위치한 김생굴을 만날 수 있다한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인 김생이 10여 년간 글씨를 연마하던 곳으로 후에 김생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서체인 김생필법을 창조했다고 한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자연경관이 일품인 청량산은 맑은 공기와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부드럽고 봉긋한 열두 봉우리가 연잎처럼 산을 감싸고 천 년의 이름을 남긴 옛 사람들은 산의 이야기를 전한다. 청량산(870m)은 영남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찍이 인근의 청송 주왕산과 함께 경북 제일의 가을 단풍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청량산은 숲보다는 기암괴석이 더 돋보이는 산이다.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고풍스러운 절, 철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숲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청량산은 최고봉인 의상봉을 중심으로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등 12개의 암봉이 연립해 있는데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은 점도 큰 특징이다. 산속에는 27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던 터가 있다. 특히, 청량산은 훌륭한 인물들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아 답사 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 유리보전과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신라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은신한 공민왕당과 산성 등에서 ‘자연’과 ‘역사’가 절묘하게 어울린 ‘살아있는 박물관’ 이 그것이다.
응진전은 외청량을 대표하는 암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바깥 모습이 장관이다. 응진전은 고려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공주가 홍건적의 난을 피해 1361년 말부터 1362년 초까지 3개월가량 청량산에 머물 때 수시로 찾아 기도를 하던 곳이다. 응진전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김생굴은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 동안 글씨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굴이다. 그리 크지 않은 굴이지만 김생과 봉녀(베짜는 여인)의 전설을 떠올리며 발품을 팔아 한 번쯤 가 볼만한 곳이다. 청량산은 원효·최치원·이황 등 고승과 석학이 줄을 이었고, 명필 김생은 토굴을 파고 밤낮으로 먹을 갈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청량사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 7시 ‘오색단풍으로 노래하리!’를 주제로 산사음악회 준비가 한창이었다.다. 음악회에는 소리꾼 장사익, 솔 가수 BMK와 정수라,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심진 스님, 불자 성악인 허철영 등이 출연한다고 한다. 음악회까지 관람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발자취를 남기고 청량사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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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덕약수
기행하면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먹거리, 살거리도 이에 못지않다. 청량산 기행을 마치고 입구에는 선홍빛사과, 붉은고추, 고구마, 버섯, 더덕, 머루 등이 즐비했다. 이 곳에서 많은 여성회원들이 특산물을 구입한 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다덕약수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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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소나무가 우거진 이곳에 약수가 솟아나와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한다. 특히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이 약수를 마시고 많은 덕을 보았다하여 다덕약수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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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덕 탄산수는 태백산맥에서 솟아오르는 자연청정 탄산수이다. 한잔 마시면 탄산의 싸한 기운이 혀를 치는데, 이 물로 백숙요리를 하면 기름기가 적고 국물이 시원하다고 한다. 지기님과 나는 인근 가게에서 큰 물통을 구입 다덕약수를 가득히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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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실마을.청암정
이번 기행의 마지막 일정은 닭실마을이었다. 이 곳에는 청암정이라는 빼어난 정자가 있다. 김도용교수님의 기행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머리와 다리 그리고 꼬리까지 완연한 거대한 거북바위 위에 올라탄 정자인데, 처음 이 정자를 지었을 때에 마을에 궂은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거북이 물이 없는 맨땅 위에 드러나 있고 무거운 정자까지 지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북 바위 주변으로 둥그렇게 연못을 팠고, 돌다리도 놓았다. 그 뒤로 동네에 궂은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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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암정은 기묘사화 때에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낙향한 충재(沖齋) 권벌(1478~1548)이 세운 것으로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청암정 옆에는 권벌의 종손이 살고 있는 종가가 있고, 권벌의 <충재일기>, 권벌이 중종에게 하사받아 소장하던 <근사록> 등의 유물을 보관한 유물관도 있다. 닭실마을은 옛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편안하고 한가로운 동네라서, 역사문화답사, 가족 나들이를 할 만한 곳으로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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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암정은 <동이>, <스캔들>, <바람의 화원> 등의 촬영지로 사용됐다. 청암정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돌다리다. 돌다리를 건너고 이야기를 나누던 명장면들이 모두 이곳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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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만큼이나 유명한것이 거북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물. 물속에 비친 주인공들의 모습이 TV나 스크린 속에서 명장면으로 많이 보여졌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로는 이끼가 수북한 모습이었다. 이 돌다리를 건너면 버선에 고무신 신고 건너진 못했지만 기분은 영화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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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북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 '청암정' 봉화 닭실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는 마을이라 한다. 시월 청암정은 가을은 이미 무르익고 있었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혼자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보이는 청암정의 풍경은 여러가지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식재되어있어 각각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사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라고 정해서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사방이 다른 모습의 절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청암정은 어느 곳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곳이지만 자연과의 조화로움 속에 앉은 건물답게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자 안에는 미수 허목, 번암 채제공, 퇴계 이황 등 조선 중후기 명필들의 글씨로 새긴 현판이 즐비하니 옛 문인들이 이 청암정의 경치를 얼마나 칭송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미수 허목이 쓴 '청암수석'의 편액은 시원스럽고 청암정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사방이 개방되도록 꾸며진 청암정의 시원스런 대청마루에 서니 가슴이 뻥 뚫렸다. 청암정의 현팜은 남명 조식 선생님이 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청암정에서 보이는 서재 '충재'의 모습은 건물과 자연공간이 마치 한 몸인양 자연스러운 배치로 인해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인해 어떤 화려함이 없어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절로 사로잡게 만드는 한옥의 힘. 자연을 조화롭고도 슬기롭게 이용한 우리 조상들에 대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자세히 보니 그저 있는 그대로의 너럭바위를 그대로 깍아 계단을 만들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바위 모양의 지형지물을 있는 그대로 활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하나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든다. 충재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대문 너머 황금녁 들판이 계절을 재촉하고 있다. 글 읽는 선비가 맞이하는 수확의 계절 가을엔 어떤 학문이 익었을지 궁금해졌다.
'한옥의 美' 란 책에는 청암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장수를 의미하고 있는 거북 모양의 특이한 바위 위에 정자를 얹혀 거북이가 살도록 물을 넣어주는 연지를 만들고 자연을 벗삼아 정신수양과 학업을 하기위한 공간 배치의 안목이 뛰어난 곳이다. 이런 곳에 앉아 책 한권 펴고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싶을 만큼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풍기는 청암정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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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이 제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오히려 소박하기에 그 아름다움은 현대 건축물보다 배가 되는 것 같다. 건물을 지어도 자연 경관을 하나 헤치지 않고 사소한 모든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건축물 마져도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지어진 건축의 미학이야 말로 으뜸이 아닐는지. 누구나 그저 한 번 보면 '멋지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청암정' 이런 곳에 앉으니 편하게 앉아 책 한 권 읽고 싶은 마음 절로 들게 했다. 가을은 천고 마비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임을 청암정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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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면서
모두(冒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문화답사 또한 ‘여심(旅心)’을 흠뻑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번 기행은 여타 기행과는 달리 많고 회원들의 참여가 쇄도했으나 자리 관계상 함께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고, 그 지역 토속음식을 멋어 보는 것도 기행의 묘미였지만 출발지와 원거리에 위치하여 있고 식당예약이 어려워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던 점. 제25차 기행지는 11월 10일 ‘경남 거창기행’이다. 많은 님들이 하기를 기대해 본다.
아~! 아직도 닭실마을에서의 더 넓은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뒷풀이 장구장단에 맞춰 노들강변, 밀양아리랑을 다함께 합창한 노랫가락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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