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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편>
영농 베토벤
조 경 선
“처음에는 나비로 오지만 나중에는 쓰나미로 끝나는 큰 재앙이 있은 후에 이 평야를 살찌울 인물이 나타날 것이다.”
옛날부터 하봉리 마을에 불온하게 떠돌던 말이다. 재앙 후의 인물 운운 하는 게 마뜩찮아서인지 누구 하나 그 말에 관심두지 않았으며 마치 떠돌이 개 취급당하다 사라져버린 말이다.
서 이장은 석양 무렵이면 습관처럼 간이역 쪽을 보았다. 너른 평야의 젖가슴쯤에 외지와 연결된 대로가 누워있다. 가을이면 꽃무늬 허리띠 같은 코스모스 길을 따라 오던 아들을 기다렸다. 그때 정말 먼 지평에 고양이 눈알 같은 것이 나타났다. 뭘까, 서이장은 잠시 잠이 덜 깬 것처럼 몽롱한 자신의 눈을 비볐다. 눈을 들자 황금들판을 쓸던 바람이 그새 모든 것을 지워버린 뒤였다. 서 이장은 아쉬운 듯 돌아섰다. 그는 회관의 별채 헛간에 만들어 놓은 누에 방으로 갔다. 그곳은 뽕 향기로 가득했다. 성체를 짓는 누에를 보면서 일곱 살 어린 아들의 언짢은 추억을 떠올렸다, 샤샤샤샤샤, 빗소리를 들으며 누에와 같이 놀 요량으로 아이는 수북이 따다 놓은 뽕잎 속에 숨어들었다. 아이는 그 방에서 나는 빗소리를 즐기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무엇을 잡으려다가 몸을 튼 아이는 어느 틈에 누에 집에 머리를 디밀어 버렸다. 게걸스레 뽕잎을 먹어치운 4, 5령 누에들이 이번에는 아이의 입속과 사타구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는 몰래 숨어든 사탕가게에 행복해 하다가 입안에 문 사탕의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다. 물론 아이는 놀라 크게 울었다. 어른들도 아이의 입에서 퍼런 물과 함께 씹힌 채 꿈틀대는 누에를 보고 놀랐다. 지금도 누에 방에는 그때의 7살짜리 아들이 살고 있었다.
서이장의 아들 정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녔다. 정구는 같은 과에 다니는 애인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농업현장을 견학하고 왔다. 정구는 그 뒤부터 농촌의 혁신운동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자신의 꿈인 농촌 혁신운동을 잘 해 나갈 것 같았다. 그랬는데 그들의 짧은 행복이 뚝 끊어져서 다리아래 한강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정구 아버지, 여기 티비 좀 보시오. 서울성수 대교가 끊어져 난리가 났고 만, 혹시 우리 정구 별 일 없으까. 어제 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설쳤는 디, 정구헌티 언릉 전화 좀 넣어 보시오.”
“그려, 따르릉따르릉, 학교 가고 없나 안 받는고 만.”
수화기를 놓고 막 일어서려는 데 티비에서 누군가의 강한 절규가 터졌다. 그 소리는 티비 밖까지 뛰쳐나와 들녘으로 달아났다. 그때 전화가 왔다.
“따르릉따르릉”
“여보시오. 여보시오. 말씀하시오.”
“흑”
“참, 벨 일이네. 여자 같은 디……”
서이장은 잠실 실내 온도를 24℃⦁ 습도를 70%로 맞추어 놓은 다음, 잠실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가슴이 트였다. 논에서 벼들 사이를 살랑거리던 바람이었다. 누에와 벼, 그 둘이 좋은 바람을 타면 올 농사는 순탄할 것 같았다.
벼는 우리의 밥상이며 생명이다. 알면서도 서이장은 벼농사를 맥이 풀려 등한시하고 홀대까지 했다. 그러나 벼들은 참 대견했다. 포기를 한 손으로 쥐지 못할 정도로 제 몸을 부풀려줬다. 정구가 세상 뜬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여름에는 일손도 달리는 데다 서이장은 아들 잃은 슬픔 때문에 논일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벼들이 튼실하게 잘 자라고 익어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좁은 틈새에 한 톨의 곡식이라도 더 채우려고 몸 비벼 빼곡히 들어찬 벼들을 보면 슬픔이 엷어졌다. 서이장은 숙연해져서 석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농사가 실해야 농촌이 살고 국가도 사는 게 아닌가, 농촌이 푸르러야 시골도, 도시도 생기 푸른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우울했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등지는 바람에 빈집이 점점 늘었다.
어제 점심 무렵이었다. 상팔이와 덕만이가 서이장을 찾아왔다.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서 이장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다. 서이장이 하봉리 마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서이장을 믿고 따랐다. 찾아온 두 사람은 풀이 다 죽어 있었다. 덕만이가 시무룩해서 말문을 열었다.
“형님. 답답한 일이 생겨서 형님 의견을 들으러 왔어요.”
“답답한 일? 무슨 일인디?”
“아, 상팔이가 논을 판다지 않습니까.”
“나도 그 소문은 들었네. 서울 사람에게 판다며?”
“형님. 상팔이와 나는 약조를 했었죠. 논을 팔게 되면 함께 팔고 여기를 떠나게 되면 함께 떠나자고……그런데 상팔이가 먼저 논을 판다고 허네요. 거 참……자네도 나없으면 안되고 나도 자네없으면 안 되는 줄 빤히 알면서 논을 판다고? 이건 배신행위여. 퉤.”
“배신행위라니, 제 나름 살기위한 몸부림이여. 이제 갈라서는 마당이니 막 나겠다는 건가. 퉤 라니.”
나도 시방 천하에 배은망덕하고 잔인한 이 땅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인데 자네가 먼저 내게 침을 뱉어?”
성질 급한 상팔이가 덕만이의 멱살을 잡았다. 덕만이는 상팔이의 기세에 눌려 있는가 싶더니 소리쳤다.
“이거 놔. 꼴 보기 싫어!”
덕만이가 눈물을 훔쳤다.
“워워, 왜들 그러는가. 여기들 앉드라고.”
그들은 서이장의 만류에 못이기는 채 돌아서서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둘 다 한숨을 쉬었다.
“덕만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할 수 업시오. 나는 돈이 당장 필요하니께.”
말을 마친 상팔이는 울먹거렸다. 흙과 더불어 나이든 농사꾼의 표정에는 설핏 억울하다는 표정이 깃들었으나 곧 느긋해져서 서이장을 봤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논을 꼭 팔아야 하나. 이 사람들아. 그 논이 어떤 논인디 팔아. 자 네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어오던 논 아닌가? 그 할아버지는 우리 농촌 땅을 지키기 위해서 동학군에 참가하기도 했잖여.”
“형님. 우리도 이제 60이 다 되었어요. 쥐가 파먹은 고구마로 끼니를 이어가면서도 팔지 않던 논인데, 이제는 힘도 부치고 또 농사 지어 애들 대학보내기도 어렵구, 가문 팔아서 먹고 살수도 없구”
“팔고나면 상팔이 자네는 대관절 어떻게 할 챔이여? 여기를 떠날 참인가?”
“논을 팔아도 오 단 한 배미는 내가 어우리로 짓기로 했습니다. 그걸로 식량을 하면서 당분간 우리 마을에 있을 작정입니다.”
“그렁게, 자네는 자네 논을 남에게 팔고 자기 논의 소작인이 되겠다, 이건가베?”
상팔이는 불안과 노여움이 서린 눈으로 먼 들녘을 바라보았다. 논이 없는 농부는 농촌에 대한 애착이 줄어들었다. 농사꾼 중에서도 가장 실속 없는 농사꾼들이 소작인들이다. 그들이 많을수록 농촌은 우울한 흑백사진에 다름 아니다. 농촌이 이권다툼의 투기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서이장은 그런 농촌에 현기증이 일었다.
“상팔이 자네는 정이 많고 신나는 사람 아닌가. 그런 자네가 없으면 우리 동네는 무슨 재미로 살며 또 나는 어쩌란 말인가.”
하봉리에서 옛 풍물 치는 솜씨와 가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상팔이와 덕만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떠나면 굿의 전통이 깨어지고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문화적 정서도 사라질 지경이다. 거기다가 둘이 짝을 이루면 어떤 일이라도 해 냈다. 그들은 힘이 세고 흥이 많아 하봉리의 자랑스러운 장년들이었다. 푸른 힘줄이 돋아난 그들의 튼실한 두 다리는 아직도 30대가 부럽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상팔이는 바로 서이장의 이웃이라 서이장이 하는 누에치기와 논농사, 마을 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내 다시 말하지만 소작인이 되지 말고 동네를 위해서도 자네 논을 지키게.”
“당장 서울에 있는 자식 학비 땜이 급한데요. 그리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팔아야 지요.”
“그렇게 급한가? 그럼 농협에서 꾸어보지.”
“농협에 빚 진 것이 많아 그것도 안 되여요.”
“그럼 이렇게 허세. 내일 아침 나와 함께 정읍에 가세. 가서 그곳 농협에서 내 이름으로라도 돈을 빌려보세.”
“정말이에요?”
멀리서 장끼가 울었다. 까투리를 불러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까 잠깐 고양이 눈알처럼 깜짝 밝게 빛나던 실체가 나타났다. 사람이었다. 서이장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 그녀를 뒤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이 무거워 보이는 여행 가방과 함께 였다. 임산부였다. 걸음도 뒤뚱거릴 만큼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이장은 마루에서 일어나 마당 끝으로 갔다. 둥근 배를 한 손으로 받쳐 안은 그녀는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마을회관 간판을 훑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가 싶더니 그녀가 회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서이장을 보자 곧장 그의 앞으로 왔다.
“저, 실례합니다만 여기가 마을 회관인가요?”
“예, 그렇소만.”
“아버님께서 회관 주인이신가요?”
“그렇소만.”
“아, 아버님. 저, 힘들어서 그러는데 회관에서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그녀는 방랑에서 돌아온 것처럼 지쳐 보였다. 아버님이라, 참 들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그 호칭이 그의 귀에 스치는 순간 경계의 빛이 누그러지면서 그녀가 며느리 같은 착시까지 일었다. 서이장은 불시에 찾아든 낯선 임부가 큰 부담으로 다가 왔다. 반면에 낯선 여자의 출산에 대한 책임감과 측은함이 동시에 차오르기도 했다.
“이 마을 누구를 찾아 왔소?”
그녀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저, 잠깐 마루에 앉아도 되지요? 아이구 힘 들어라. 서 있기가 벅차네요.”
“그러시오. 그런디 애당초에 그 몸으로 집을 나선 것이 무리였던 것 같소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저, 지금 말하기도 힘드네요. 우선 물 좀 주세요.”
마치 대문 앞에 핀 맨드라미 같은 그녀가 말끝을 흐리더니 더듬더듬 마루의 기둥에 몸을 부렸다. 그녀는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헉! 숨을 몰아쉬더니 모로 몸을 꼬면서 눈물을 흘렸다. 서이장은 냉장고에서 물을 들고 나오다가 그녀의 모습에 당황했다. 심한 통증이 그녀의 죽지를 잡고 늘어지는 모양이었다. 헉! 그녀는 뜨거운 숨을 토하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이장은 퍼뜩 겁이 났다. 진통이 심해보였다. 그러니 뭘 더 묻는다는 것은 할 짓이 아니었다. 우선 그녀를 편안히 눕게 해야 했다.
“색시, 이를 어쩐대야? 방에 들어가 누어야 쓰겄는 디!”
서이장은 늘어진 그녀를 겨우 부추겨서 안채로 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산고를 참을 수 없는지 용을 썼다. 끄응, 아악!! 큰일 났다. 근방에는 병원이 없었다. 이십 리 길이나 되는 정읍까지 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긴박했다.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는 길에서 아기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서이장은 난처했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회관 가까이에 사는 상팔이를 급히 불렀다. 그에게 마실 나간 이장의 아내인 안터댁을 불러오라 일렀다. 이미 어둠으로 들판은 먹빛이었다. 조금 뒤 안터댁이 상팔이와 함께 벌건 얼굴을 하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요? 웬 모르는 샥시가 우리 집에 와서 애기를 낳는 다요, 참 별일이네.”
겉으로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불빛에 비친 안터 댁은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멸되어가는 ‘집에서의 출산’에 당황하는 서이장 부부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은 오랜만에 생기가 넘쳐보였다. 안터 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진통으로 고통하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소리쳤다.
“숨을 크게 쉬소. 크게 쉬었다 아랫배에 힘을 넣어 뱉어.”
안터댁은 그녀의 배를 열심히 쓸어 내렸다. 이따금 뒤트는 몸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면서 정성을 다해 산모의 출산을 도왔다.
“제 가방 속에 애 낳는데 쓰는 물건들이 있어요. 꺼내 쓰세요.”
그녀의 가방 속에는 해산 때 쓸 출산용품들이 얌전히 들어있었다. 체온기, 기저귀, 배냇저고리, 포대기, 그리고 가위, 요드 팅크, 연고 등, 가정집에서 애 낳을 것에 대비한 그녀의 만반의 준비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염치불구하고 찾아든 그녀의 행동이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치밀한 배신감에 안터 댁은 방문을 열더니 서이장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꾀부릴 줄 모르는 농민인지라 새 생명을 맞이하는 정중한 목소리로 안터댁은 마치 산모의 친정어미처럼 주문이 많았다. 이장에게는 놋대야를 깨끗이 씻어라, 끓인 물을 놋대야에 부어 미지근해질 때까지 식힌 후, 방에 넣어 달라. 상팔이에게는 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쓴 다음, 물을 쳐서 정갈하게 하라. 그녀의 턱에 닿는 신음소리가 담을 넘었다. 또 한 차례 모진 진통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진통으로 그녀는 이체면 불구하고 또 다시 다급한 소리를 냈다. 진통이 잦은 것으로 봐서 출산이 가까운 모양이었다. 서 이장은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 때문에 다급하고 불안했으며 난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갑자기 닥친 이 난리는 뭘까? 상실의 우울을 잠시 잊으라는 신의 은총일까? 아니면 꿈인가? 그때였다.
“아악! 엄마야~”
엄연한 현실이었다. 서이장은 문 밖 토마루에서 하늘을 봤다. 구름 낀 하늘이었다. 상팔이는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상팔이도 안터 댁도 산모 못 지 않게 산고의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요즘 시골 땅이 요동치는 일까지 겹쳐서 많이 속이 상한 이장은 공동운명체의 운명에 낯선 여자의 출산도 들어있었나? 그는 어둠속에서 혼자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바로 서이장은 고개를 도리질했다. 요즘 이 마을에서의 출산이 얼마만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경사였다. 안터댁은 그녀의 걷어 올린 치맛자락이 내려오지 못하게 붙들고 장차나올 새 생명 받을 준비로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아구 잘하네. 샥시, 어서 힘 좀 더 줘. 됐네. 어따, 됐어. 쬐금만, 어서 한 번 더 힘 주먼 풍! 나오것구만. 그래 잘하네. 옳치옳치. 쬐금만 더 힘주소. 어어, 아이고, 보자기 쓴 보물 이 나오네. 여거 봐. 정구아버지, 애기 나왔소! 근디 애기가 안 우네. 가만 있자. 애기가 왜 안 울 지?“
그녀는 몸이 텅 비자 바로 기진맥진해 버렸다. 그러나 하얗게 질린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애기가 안 운다고요?”
“너무 놀래지 말어. 어디 보자. 양수가 입에 들어갔능감? 그러 먼 그렇지. 애기 입에 양수 가 들어 갔고 만.”
“응애응애!”
서이장의 뛰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응애 응애”
“어따, 아들이네 아들이여 이런 경사가 있나!”
안터 댁이 속으로 많이 놀라 미처 못 한 ‘아들’을 비명처럼 외쳤다. 뒤이어 안터댁은 들뜬 목소리로 서이장을 향해 주문했다. 대문에 아들 쌈 줄을 걸어라. 미역 좀 물에 담가라. 서이장은 한쪽 옷자락이 심하게 늘어졌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처럼 생기 넘치는 안터댁을 보고 웃었다. 그러나 산모는 다시 기진맥진하여 구겨져 있다가 바로 잠에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흥건하게 밴 땀이 불빛에 싱싱하게 반짝였다.
“응애응애!”
힘차게 우는 새 생명! 서이장은 자신의 손주가 아닌 것에 잠시 떨떠름했던 기분을 가슴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러자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싱싱한 에너지가 되어 서이장의 가슴 가득 차올랐다. 안터댁은 양수에 불어 들뜬 아기를 보물처럼 안고 놋대야 물로 살살 씻겼다. 핏덩이인 갓난애가 버둥거렸다. 안터댁은 깨끗이 씻은 갓난애를 수건으로 감싸 닦았다. 그리고 아기를 그녀 옆에 뉘었다. 그녀의 진땀으로 얼룩진 몸과 얼굴도 닦아주었다. 그녀가 눈을 떴다. 옆에 누운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암튼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풀어진 외양을 수습하면서 부은 얼굴로 그들에게 미안해했다. 아기에게 빈 젖을 물리자 아기는 젖을 빨면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아기는 건강했다. 안터댁은 부엌으로 갔다. 아기가 당장 먹을 설탕물을 만들고 산모의 미역국을 준비해야 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아궁이에 싸리나무를 듬뿍 넣어 불을 지폈다. 곧 안채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밤하늘로 치솟았다.
“아니, 한밤중에 이장님 네 굴뚝에서 웬 연기가 저리 피어난데? 무슨 일이 있는가?”
상구는 며칠 전에 한국에 온 연변색시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가 한 마디 했다. 그때 밤 부엉이가 울었다. 그 소리가 이장 집 굴뚝의 흰 연기를 감아올리면서 먼 들판으로 아득히 퍼져나갔다.
상구는 연변에서 온 색시가 좋은 지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상구에게도 새 식구가 생겼다. 그는 솔가리 자리를 만들어 연변 색시에게 권하며 중얼거렸다.
“사실 땅은 생명을 품어 주는 곳인데 우리가 하늘의 별 딸 궁리만 하고 흙속에서 금 캘 궁 리는 포기해서 전부 서울행만 고집하는 거야. 나도 젊은이로서 포부가 커. 덕만이 형님과 함께 우리 농촌을 기계화하기로 했지. 벼농사는 기계로 하고 누에치기와 누에씨 수출로 고소득을 올리는 길을 연구 중이야. 그러니까 사는 일에 너무 걱정 마.”
연변 색시가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먼 곳의 갯내가 바람을 타고 훅 끼쳐왔다. 상구는 그 냄새를 새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러자 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늘 아침 서 이장은 상팔이와 함께 정읍 행 7시 버스를 탔다. 농협에서 상팔이가 쓸 돈을 대출받고 또 산모가 먹을 미역과 아이 분유를 사기 위해서였다. 산모가 젖이 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아기를 분유로 길러야 했다. 서이장은 자기가 좀 별나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그 뜨내기 산모를 집에 두려고 이런 귀찮은 일을 사서 하는지, 생각할수록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인력으로는 안 되는 이상한 힘이었다. 그 싱싱한 새 생명의 탄생은 방 안에 하얀 누에고치가 주렁주렁 열린 것 같은 꽉 찬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그 순수한 눈, 그 눈의 시선을 따라가면 새로운 황금벌판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버스바닥을 딛고 있는 발에 힘이 올랐다. 어서 장에 가야지, 서이장의 마음이 바빴다.
이른 아침 버스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십 여명 타고 있었다. 이장은 버스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아는 사이였다. 젊은이들과는 눈으로 인사하고 노인네는 찾아가 인사 했다. 해동이 어머니가 보였다. 둘이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는 겨? 정읍에 숨겨놓은 사람이라도 있나?”
“사람 잡는 소리하고 있네. 해동이 줄라고 그러는 거여.”
“뭔데?”
“꼬추, 마늘, 꽤여. 곧 김장철 아녀, 그때 쓰라고 주는 거여.”
“해동이 녀석 복도 많다. 어머니 잘 두어 호강하네. 나도 오늘 해동이를 만날기여.”
해동이는 시내 농협에 근무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농자금 좀 빌리려고. 해동이 만나면 내 일 잘 봐달라고 일러줘.”
버스는 얼마 전 포장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들판 한 가운데를 미끄럼 타듯 잘도 달렸다. 차창 밖 멀리 동학 농민군의 최초의 전승지인 황토현 언덕이 보였다. 전적을 기념하는 기념관, 탑도 보였다. 쌀 한 톨에 농민의 목숨이 달려있던 그 당시, 동학군의 민란은 농토를 재분배하여 농민이 농토의 주인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봐 상팔이, 우리는 동학농민의 후예들 아닌가? 즉 일 하는 농민이 농촌 경제의 주인이 되자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도시 사람들이 농촌의 새 지주가 되고 있단 말이네. 상팔이, 이런 때야 말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네. 우리 선대가 지킨 고향의 농토를 우리가 지키자 이거네. 공동화 되어가는 농촌이 걱정이고 만.”
“옳은 말씀인 것 알아요.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서 그러는 데 어쩔 것이요 “
“시대가 바뀌어도 농사는 우리의 생명이고, 천하의 근본이야. 그걸 명심해야 혀. 내가 일전에 어느 농업전문가의 글을 읽었는디 식량자급이 국가안보의 기본이라고 했더구먼, 옳은 말이야. 안 그런가? 전쟁이 났다고 가정해 보세. 식량이 없는 데 병사나 국민이 어떻게 싸우겠나. 첨단 무기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야. 식량자급이 국가안보의 기본이야. 어느 외국 대통령은 ‘식량주권 없이 국가주권 없다’며 농업개발에 온 국민이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한다는 말을 들었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민들이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어. 내 오늘 농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빌려 줄 테니 자네 논 팔지 말소.”
“고맙구먼요. 대신 땅문서는 형님한테 맡길게요. 근데 농촌을 살리려면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와야 하는데 앞으로 식량전쟁이 난다던데요.”
상팔이 말이 옳았다. 그래서 서이장은 하나 있는 아들 정구가 영농 후계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정구는 수원에 있는 농과대학에 들어갔다. 정구는 효자였다. 한 번은 서씨가 가을 추수기에 아파서 일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그걸 본 열다섯 살 난 정구가 중학교에 갔다 와서는 혼자 일단의 벼를 베어 뉘어놓았다. 장정도 하기 힘든 일을 앳된 중학생이 일주일 만에 그 일을 해 치웠다. 도시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농촌의 땅을 사들이면 농업의 부실은 불을 보 듯 뻔했다. 그런 자본가들이 농촌의 지주가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촌 사람들이 더 열의를 내어 자기 농토를 사랑하고 지켜야했다. 아들 잃은 서이장은 절망에 빠졌다. 아들의 희망은 농촌 부흥에 힘쓰는 일이었다. 서이장은 죽은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일어나자고 맘먹었다. 없는 용심을 썼다. 그는 주저앉은 농촌의 정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힘썼다. 마을 회관도 자기 집 별채를 개조해서 만들어놓고 동네 사람들이 아무 때고 회관에 와 놀면서 화목을 다지도록 했다. 누에치기도 새로 했다. 누에치기는 적은 자본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괜찮은 부업이었다. 서이장은 마을 일도 더 열심히 돌보았다. 머잖아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건강식품으로 개발하여 출시하겠다는 시에서 하는 사업에도 동참할 예정이었다.
서 이장은 농협에 들려 자기 논을 잡히고 돈을 대출 받아 상팔이에게 주었다. 해동이가 도와주어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그리고 조합장을 만나 그해 가을 정부의 쌀 수매 가격을 작년의 가격보다 10% 인상하도록 정부에 강력히 건의해 줄 것을 부탁했다. 농협일이 끝난 다음에 시장에 가서 분유와 산모의 먹거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서 보니 어느새 신생아의 우는 까닭이 동네에 퍼져버렸다. 동네 아낙네들과 어른들이 거의 다 집을 다녀갔다고 했다. ‘이 집에 큰 업이 들어왔군, 경사 났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모가 뭔가 수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정읍에서 돌아온 서 이장은 누에 방에 가보았다. 하얀 고치가 주렁주렁 열린 보화 방이었다. 이제 1,0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려 줄 참으로 사랑스러운 놈들이었다. 섶을 짓던 누에들이 거의 다 고치 안에 들어갔다. 서둘러 뽕잎을 정리하고 바짝 긴장했던 어깨를 풀자 눈앞에 아들이 어른거렸다.
그녀가 온 지 닷새 되는 날이었다. 산 너머에 사는 외동딸이 소문을 듣고 허겁지겁 친정집에 왔다. 얼굴에 못 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색시가 누군지 알기나 하세요?”
“모른다.”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놓고 애를 받기까지 해요?”
“그렇게 되었다. 색시가 나타나더니 곧 진통을 시작하는 디 어쩔 것이여.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지, 안 그러냐.”
“그럼, 어서 빨리 색시 신원을 알아본 다음, 색시가 갈 곳으로 데려다 줘야 쓰지 않겠어 요?”
“지금은 무리다. 색시가 원체 몸이 약해져서 움직이기가 힘들다. 당분간 우리 집에 더 있 어야 한다.”
“그러다 색시가 우리 집에 그냥 눌러앉는 게 아녜요?”
“애를 주어다 키우기도 하는데 제 발로 들어온 업을 키우는데 그게 어쩐다니?”
“왜 남의 새끼를 키워요.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으면 우리 집 용만이를 데려다 키우세요.”
“용만이를?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나는 또 아들을 낳으면 되니께.”
서 이장은 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재산이 문제였다. 그 속셈이 얄밉기도 했지만 이해할 만도 했다. 더구나 딸은 정구가 없는 집안에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좀 무리인 것 같다만 네가 온 김에 색시와 말을 해보자. 누구를 찾아 왔는지 알아보고 찾아온 사람에게 보내자.”
세 사람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색시 말할 기력이 있남?”
“네, 괜찮아요.”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올 것이 왔다는 긴장감이 얼굴에 나타났다.
“색시, 이 동네 누굴 찾아왔다고 했는디, 누굴 찾아왔능가?”
그녀는 한 동안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실은 서정구 씨 부모님을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서정구 부모님?”
“네.”
“뭐라고! 우리가 그 부몬디!”
이장 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채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 동안 말을 잊지 못 했다.
“그럼, 정구와는 어떤 사이여, 자초지종을 말 해봐!”
정구의 여자, 선아는 성수대교 복구사업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의 히스테릭한 자신을 다독여 잠재운 뒤였다. 전신의 힘이 쏘옥 빠졌다. 부모의 심한 간섭도 무거운 짐이 된 그녀는 늘 고민이 봉미산 천사봉 만큼이나 부풀었다. 21세 대학생이 감당하기에는 힘겨웠다. 그런 그녀는 미친바람 부는 마음 때문에 시내를 배회하다가 정구네 부모님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한강의 물소리가 정구의 소리로 신의 소리로 여울을 이뤘다. 한강둔치를 걸어 나왔다. 그녀는 벌써 임신 7개월 2주 2일째였다. 갑자기 비가 우둑거렸다. 건너편 빌딩에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던 창문들이 열리면서 형체 없는 눈들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가벼운 비를 그대로 맞았다. 사랑의 다른 이름인 비는 이마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눈들이 빌딩 벽을 타고 일제히 그녀 앞으로 달려왔다. 정구의 눈, 부모의 눈, 하늘의 눈, 아가의 눈. 그녀 부모님의 눈, 그녀가 눈들을 모아서 한강에 가두었다. 비는 더욱 얼굴을 때리고 공중에 뜬 조명은 물에 번져 붉으래했다. 시장이 큰 중동에서 많은 돈을 벌어온 D회사가 만든 다리인데다가 최신 공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그 다리가 두 동강 났다. 한강에 처박힌 버스에서 정구의 가방이 나왔다.
비가 내리는 데 개들도 나라의 안녕이 걱정 되나 산발적으로 짖어댔다. 난데없이 어디선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들려왔다.
“베토벤은 매독에 걸린 아버지와 결핵에 걸린 어머니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어. 아니, 사산, 유산, 기형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베토벤의 아버지는 부부의 일그러진 관계를 성을 방패삼아 아픈 아내와 소통하려 했던 모양이야. 그때 베토벤의 어머니는 결핵을 앓는 중이었대. 그런데 덜컥 임신이 되어버렸어, 그러나 베토벤의 부모들은 애를 낙태하지 않았어. 그 아기가 바로 악성 베토벤이래. 사실 베토벤 위의 형제 중 하나는 죽고, 셋은 불치병이었대. 선아, 혹여 모르니까 다짐해 두는 데 낙태는 절대 안 돼! 누가 알아? 선아한테서 세계적인 농업베토벤이 나올지.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농촌은 수지맞는 거야. 내 말 명심해!”
정구가 유언처럼 말했다.
아무튼 비밀한 임신으로 우울한 선아는 1년 남은 대학생활이 엉망이었다. 친구들은 취직시험준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정구와 함께 1년 아르바이트한 뒤, 그 돈으로 신개념농업을 보기 위해서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밭에 갔을 때였다. 눈 덮인 산으로 병풍을 두른 오렌지 밭은 겨울과 푸른 봄이 공존 하는 대자연의 품속이었다. 그녀는 정구의 고향인 대자연속에서 아기도 낳고 농촌 진흥에 이바지하는 사람을 위한 상금도 탈 요량이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계속 이어졌다. 아름다운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도랑물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바람이 불었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들자 바로 선아는 다 관두고 조용히 ‘영농후계자’의 출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선아는 더듬더듬 일어나 구석에 세워놓은 가방을 뉘여 서이장네 가족들 앞에서 열었다. 그 안에서 정구의 학생증과 안경, 그리고 둘이 함께 찍은 사진, 주고받은 편지를 꺼냈다.
“아이고 이런 일이! 니가 우리 며느리구나.”
안터댁이 그녀에게 무릎걸음으로 달려가 안았고 서이장과 그의 딸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을 수습한 안터댁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허냐? 네 올케 언니 미역국 좀 데워다 주지 않고. 어서 서둘러!”
이장은 누에 방으로 갔다. 하얀 눈밭, 누에고치들이 한 방 가득했다. 손자와 흰 눈밭 같은 고치방이라니! 후후후, 하하하, 흐흐흐. 서이장이 크게 웃었다. 9초 동안 만족했던 웃음이 사라지고 텅 비어 공허해진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갑자기 맥이 빠졌다. 뽕잎 속에 숨어있다 누에들의 습격을 받던 아들이 보였다. 아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늘 그리던 아들로 해서 서이장의 속은 흙빛이었다. 거기에 생겨난 것이 누에고 손자 녀석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친 손자가 생겼는데도 실감나지 않았다. 이장의 마음에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키를 돋우었다. 이장은 마음에 비문처럼 새겨놓았던 아들의 말을 떠올렸다. ‘농촌을 위해 살고 싶다.’ 그때 아들이 그의 앞에서 웃는 듯 했다.
“정구야, 아흐흐흑 흑”
이튿날 저녁 서쪽 해가 설핏했을 무렵이었다. 마을 회관에서 갑자기 꽹과리, 징. 장구, 북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일정한 가락에 맞춘 선율이 하봉리 대지를 신나게 들먹였다. 길가 나무위의 새들은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고 사람들도 놀라 밖으로 뛰쳐나와 귀를 세웠다.
“저 집에 업이 들어왔는디, 그래서 저런가?”
“가만있자. 오늘이 동네 남정네들이 동진강에 가서 고기 잡는 날 아니여? 월척을 많이 낚았나? 왜 저리 신 난다냐.”
서 이장은 온 동네가 어울려 먹고 노는 풍물놀이 행사를 일 년에 두 번 크게 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봄에는 줄포 만에 가서 바닷고기와 징거미새우를 잡아왔고 가을에는 동진강에서 민물고기와 창게 등을 잡아와 먹을거리 굿판을 벌렸다. 풍물놀이가 있다하면 사람들은 가슴앓이 같은 이웃에 대한 서운함이든가 일에 대한 고단함을 풀고 함께 어울렸다.
“아니, 저건 돼지 잡는 소리 아녀? 큰 판이 벌어진 모양이네.”
“이럴게 아니라 가보세, 가봐.”
회관 건물 정면에는 『농업이 곧 천하의 근본이다.』 란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앞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한쪽 평상에는 먹거리가 수복이 쌓여 있었다. 해동이 어머니가 떡과 술로 북쪽 땅을 향해 고수레를 마치자 동네에 몇 안 되는 아이들은 떡과 과자를 우악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돼지고기를 새우젓에 싸서 술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부엌 아궁이에서는 시퍼렇게 타고 있는 싸리 불이 연신 미처 덜 삶은 돼지고기를 마저 삶고 있었다. 그 삶은 돼지고기 냄새가 동네에 진동했다. 한편 마당 가운데에서는 풍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상팔이의 꽹과리가 가락을 선도했다. 꽹과리 하면 상팔이였다. 그가 꽹과리 잡은 손을 하늘 높이 쳐들면서 힘껏 치노라면 꽹과리 특유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북도 꽹과리를 따라 흥겨웠다. 연변 녀도 동네 여인들 속에 묻혀서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얼른 녹두부침개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가까이 온 상구에게 주었다.
이때였다. 서 이장이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고 안방에서 나오면서 외쳤다.
‘여러분들. 여길 보시오. 여길!”
풍물놀이가 뚝 그치고 일손들도 멈추었다. 갑자기 넓은 회관 마당에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이 일제히 서이장을 바라봤다. 그는 포대기를 열고 아이를 내보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 여기를 보시오. 영농후계자가 왔소!”
“그 아이가 누군디?”
“내 뒤를 이을 후계자요. 내 손자요!”
어리둥절해진 동네 사람들은 일단 와! 함성을 질렀다. 누군가 외쳤다.
“우리 동네 경사 났네. 하봉리에 경사났네.”
이때 상팔이가 냅다 마당 한가운데로 튀어나오고 덕만이도 뒤 따라 나와 꽹과리와 장구를 치자 이에 질세라 상구도 뛰어나와 덩실덩실 학춤을 추었다. 밤이 새도록 하봉리 마을에서는 흥겨운 잔치가 이어질 것 같았다.
선아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방을 주의 깊게 둘러봤다. 환히 밝힌 마루 전등불빛이 닿지 않는 헛간 쪽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누군가 뒤집었다. 타다닥,타다닥 튀어 오르는 불꽃에 비치는 아름다운 광경 하나가 우울한 선아를 잠시 행복하게 했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는 신생아의 꿈같은 모습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표현이 어려운 광경이었다. 선아는 이 매혹의 안식처에 감사했다. 하늘을 봤다. 달이 밝다. 장독대에 떠놓은 사발위에도 보름달이 떴다. 달은 조용히 사발의 물속에 들어앉아 울었다. 선아도 울었다. 눈물을 훔치면서 다짐했다. 정구씨, 정구씨 부모님과 함께 당신의 아들이랑 잘 살게. 당신의 뜻을 꼭 이룰 거야. 걱정 마. 알았지? 라고 말하자 말 뒤에 적막이 따라왔다. 적막 뒤에 하늘에 뜬 달이 따라와 선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선아는 홀쭉해진 자신의 배를 쓸면서 달을 봤다. 철부지 처녀가 어머니가 되었다는 두려움이 온 몸을 감쌌다. 그러나 자신은 전과는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며느리 선아를 소개하겠습니다.”
선아를 발견한 서이장이 자신의 곁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동네사람들은 ‘와 와’소리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선아가 멋쩍어했다. 선아가 더듬더듬 주저거리는 데 동네 사람들은 이미 서이장을 중심으로 원을 만들어 돌고 있었다. 선아는 자신의 작은 다락에서 내려와 드넓은 평야의 사람들과 살게 될 것을 예감했지만 낯선 사투리와 낯선 얼굴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20대 초반의 처녀로서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 숙였다.
“안녕하세요? 조선아예요.”
사람들은 환호했고 달은 더욱 빛났다. 낯선 곳, 낯선 시간 속에 처한 자신도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전생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이 이생에서 다시 모여 사는 게 아닌가 싶었나, 그녀의 눈에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어디서 본 듯해 보였다. 적어도 어머니가 되고 나면 사물부터 친근해지는 모양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아이 곁에 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살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이 자신을 실험도구로 삼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렇잖으면 젊은 자신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우다니! 허나 바로 마음을 바꾼 그녀는 여자의 일생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라는 듯,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쥔 채 선아는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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