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비새를 아시나요
김현숙
이른 아침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네요. “오늘 아침도 호비새가 우는 바람에 일찍 깨었다.”허더군요. 호비새가 날아와 울기 시작한 것이 벌써 며칠은 되었다지요. 그 새는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대문 옆 감나무에 앉아 한참을 울고 간답니다. 어머니가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 않고 웬만큼 울고 나서야, 집 둘레를 한 바퀴 휘이 돌고 날아간다 하네요. 지금도 울고 있는데 숫제 내게도 들리는지 물어 보시는군요. 글쎄요, 희미한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어머니의 집 전화로 마당너머에서 우는 새소리를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겠죠. 어머니는 이제 매일 아침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낙이 되었나 봅니다.
호비새를 아세요?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이랍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호비새는 홀어미 집에만 찾아와 우는 새랍니다. 왜 홀어미 집에만 찾아와 우느냐고 여쭈어 보았지요. 밭갈이 할 장정이 없다고, 추수할 임자가 없다고 걱정해 주느라 그렇다나요. 그럴 리가요. 피식 흘린 제 웃음이 좀 그랬나 봅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아주 못을 박으시고 서운한지 입을 다물더이다. 얼른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맞장구를 쳐드렸지요. 워낙 사이좋게 사셨으니 어머니를 두고 앞서 가신 아버지도 걱정이 되실 거라는 말씀도 해드렸지요. 어머니의 기분은 곧 좋아졌답니다.
글쎄, 얼마 전에는 밭에서 어머니 혼자 마늘을 포장하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더래요. 그것도 아주 낮게 한나절을요. 그 새가 어떻게 울었는지 아세요?
“이키로삼키로 이키로삼키로”
그렇게 울더래요. 마늘을 포장하고 저울에 올려놓고 정량을 맞추는 작업을 하려면 혼자서는 힘에 부치거든요. 지금까지 아버지와 손을 맞잡고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서글픈 마음도 들고 아버지 생각도 절실했겠지요. 얼마나 일에 치어 살았으면 어머니는 여태 새소리도 못 듣고 살았었나 싶은 게 괜히 부아가 나기도 하고, 아버지가 오죽 그리우면 그러실까 싶어 마음이 저릿하기도 하고…. 아무튼 제 마음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두어 해를 어머니는 아예 일손을 놓았었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셨지요. 그런 어머니에게 자식은 별 위로가 되지 않더군요. 열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나 아내를 대신할 이 없다는 말이 백 번 옳더라고요. 비약하면 우린 작은 새 한 마리만도 못한 꼴이 되고 만 거지요. 그래도 어머니가 새에게 위로를 받았다니 그것도 다행이지요. 물론 어머니는 아버지의 영혼이라고 믿었겠지만요. 혹여 그게 맞는지도 모르죠. 상심하고 있는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아버지의 영혼이 새를 빌어 울고 가는지도 모를 일이죠. 이제 어머니에겐 그 흔한 산비둘기 소리도, 보리누름의 뻐꾸기 소리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을 테지요.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문을 열어 기웃거리시는 걸요. 마치 마실 나간 아버지를 마중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누군가 나에게 ‘고지각시’라는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 매미는 낮에는 조용히 있다가 밤만 되면 “고지각시, 고지각시”하고 우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 소리가 아주 간장을 긁어내린답니다. 외로운 홀아비를 대신해서 각시를 부르는 소리라나요.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죠. 아무렇지 않게 존재조차 모르고 살던 것들이 어느 날 의미 있게 느껴진 적 없나요. 여러분도 호비새 한 마리 찾아보세요. 내 마음을 대신해 울어줄 귀여운 새를요. 아니 새가 아니어도 되겠네요. 고지각시도 있다 하잖아요. 꽃은 어떠세요, 나무는요. 이 세상엔 벗이 되고 위안이 되어줄 것들이 참 많더군요. 우리가 손을 내밀고 귀를 기울여줄 때, 그들은 우리가 듣지 못했던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지 않을까요.
아, 우리 어머니요. 물론 어머니는 지금도 그 새가 아버지의 영혼이라고 믿고 있겠지요. 요즘도 일을 하다가 고개를 빼고 주변을 휘이 둘러보곤 하거든요.(기우뚱한 균형, 6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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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
호비새는 아버지의 영혼이다.
동화체 서사
발단-전개-위기-절정-대단원 구성
서두문단과 종결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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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로 지은 집
홍경희
오랜만에 소꿉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서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만났지만 오붓하게 마주 앉기는 처음이다. 육십 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서로 연락처를 모르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자주 전화도 하지 않았다.
지난주 어쩌다 연결된 통화에서 선뜻 점심 약속을 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날은 서로 시간이 넉넉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깔끔한 옷차림과 편안해 보이는 표정은 듣던 대로 행복해보였다. 점심을 먹고 한적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등학교 때 얘기를 하다가 자식 이야기로, 소꿉놀이 하던 때를 말하다가 남편이야기로, 화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서없이 펼쳐졌다.
한동네에서 살던 그녀와 나는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늘 단짝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그곳 예산을 떠나면서 우리는 편지를 쓰기도 했고, 소문으로 소식을 듣기도 했고, 어떤 때는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월급쟁이 남편과 살고 있으며 아이가 넷이라는 게 그랬다. 남편 월급봉투의 두께와 2남 2녀와 3남 1녀의 차이가 있을 뿐.
아등바등 아이들을 가르쳐 모두 결혼시킨 이야기도 우리 둘은 흡사했다. 그러나 쏘다니기 좋아하고 비쩍 마르고 껑충하기만 한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요조숙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담한 키에 둥그스름하고 복스러운 얼굴에는 보살 같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자식들의 편안함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살았음이 역력해 보였다.
지나간 세월을 꿈꾸듯이 행복한 얼굴로 이야기하던 그녀의 표정에 잠깐 그늘이 스쳐 가는 걸 봤다. 아주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알아챘다. 나는 소꿉동무니까.
“둘이만 사니 어때?”
내가 묻는 말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 넷 교육비에, 큰집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시골에 사는 시어머님의 생활비며 시동생의 학비까지 도맡아야 했다. 노후를 설계하기는커녕, 아이들 등록금도 대출과 상환을 거듭하며 지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지금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넉넉하지는 않지만 착실히 살고 있다고 했다.
둘만 남아 허리를 펴고 살 즈음, 잦은 병치레가 생활을 어렵게 했다. 목돈으로 조금 받고 남은 퇴직연금과 아이들이 도와주는 것만으론 지탱하기가 빠듯했다. 그런 참에 주택연금제도가 생겼다.
저희들이 보태는 돈이 부모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 못한다는 걸 항상 죄송해 하던 큰아이가 가입 제안을 했다. 나머지 애들도 적극 찬성이었다. 어떤 집들은 자식들의 반대로 분란만 일어난다는데 다행스러웠다.
절차도 까다롭지 않고 진행도 빨랐다. 연금이 통장으로 입금되던 날, 기분이 묘했다. 마치 된서리가 하얗게 내린 벌판에 삼베옷을 걸치고 서 있는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잘못 살았나? 하는 회한과 알량한 집조차 지탱을 못하고, 애들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하고 간다는 것도, 모두 부모의 무능으로만 생각되더라 했다.
그래도 숨통이 트이니 살만했다. 손주들이 오면 용돈도 쥐어줄 수 있어서 좋고, 입학, 졸업, 생일 등을 넉넉히 챙길 수 있으니 좋았다고.
이야기를 끝내며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경희야, 우리 집은 과자로 지은 집잉 겨.”
“요새는 현관 문짝 귀퉁배기부터 야금야금 먹고사는 중여.”
깔깔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웃음 뒤에 물기가 느껴졌다. 어려운 결정을 한 소꿉동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너 정말 잘한 일이여.”
“나도 집에 가서 남편이랑 의논할 겨, 과자로 집을 지어 맛있게 먹으며 살자구.”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주행가능거리, 150~153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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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
과자로 지은 집은 맛있는 주택연급제도다.
이야기에는 서정 이야기와 사건 이야기가 있다.
...................................................................................................20180928
뒷모습
김윤선
막 해가 넘어가고 어스름이 깔린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마치 묵화를 보는 듯하다. 교각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 있는데 남편은 온전히 뒷모습만 보이고 나는 옆얼굴이 살짝 드러나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어깨가 아름답다. 친구가 우리 부부 모르게 슬쩍 찍은 사진이다.
평상복에 외투 하나를 껴입은 모습이 누가 봐도 늙수그레하다. 부스스한 머릿결 또한 예정된 외출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오히려 살갑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노을의 아름다움? 바다 건너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것도 아니라면 자질구레한 집안 사정? 어쨌든 각박한 얘기는 아니었을 터, 뒷모습에 살짝 여유 같은 게 보인다.
한때 뒤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뒤쪽에서 본 몸매나 모양’의 뜻이지만 연예인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높은 하이힐 위에 서 있던 모습은 아름다움을 먹고사는 이들이어서인지 우리와는 모양새가 확연하게 달랐다. 자연히 소홀했던 뒷모습에 관심이 갔다. 하기야 앞모습이 잘 화장한 얼굴이라면 뒷모습은 요즘말로 생얼이다. 민낯에서 발견되는 잡티가 되레 인간적인 정으로 다가오듯 경계를 늦춘 느슨한 뒷모습 또한 그러한데, 뒤태의 열풍에 그마저도 혼미해지겠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굴 표정이 보인다. 군것질거리를 사기 위해 어미 곁에서 보채다가 마침내 내준 동전 한 닢을 받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한때 나도 사는 게 무척 버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내 뒷모습만으로도 날 걱정했다고 한다. 세상의 눈을 피하고 싶었던 내 본심을 사람들은 뒷모습에서 먼저 읽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 제 어미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조카 한 놈이 어엿한 사회 초년생으로 출근하던 날, 동생은 아들의 각진 어깨에서 열린 세상을 보았다나. 기개로 무장한 표정 아니겠는가. 내가 잘했느니, 네가 잘했느니 한참을 다투다가 돌아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공연히 마음이 짠해지는 것도 앞모습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표정 때문이리라.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을 때 뒷모습까지 챙겨서 보는 일은 드물다. 심지어 급하게 외출해야 할 때는 머리 손질을 앞부분만 하고 나가는 때도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남의 눈에도 띄지 않겠지, 자기 속임수다. 그 때문에 밖에 나가서야 비로소 스타킹의 올이 빠진 것도, 치맛단이 터진 것을 아는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진솔해 보인다.
뒷모습을 본다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부부는 세상을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관계라고 한다. 돌아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전하는 얘기를 듣는 건 같은 시선을 가진 부부로서의 당연함이던가. 같은 일을 도모할 상대를 결정할 때는 역시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찾아야 할 성싶다.
아버지는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등을 죽 펴라는 말씀을 곧잘 하셨다. 너희와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으니 삶에 주눅 들지 말라는 또 다른 격려였을 게다. 멀찌감치 서서 등을 바라보다가도 여차하면 달려와 어느새 가슴을 내미시던 아버지, 시린 내 등 뒤에 서 계시는 아버지의 가슴은 늘 따뜻했다. 그러고 보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도 실은 등 뒤에서 닦달을 하기보다 언제든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는 관계라는 말인가 보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의 이임식장에 갔다. 단상에 오르자마자 첫 마디가 시원합니다. 홀가분합니다. 그리고 자유롭습니다, 라고 했다. 문득 같은 경험을 누린 자로서의 공감이 느껴졌다. 책임을 다하고 떠나는 이의 만족감, 뒷모습에서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어쩜 그건 때맞춰 떠나는 지혜,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때문이 아닐까. 어찌 보면 뒷모습이란 앞모습이 만드는 시간의 선물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그림자에 따라 뒷모습이 달리 보이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무인 카메라, 76~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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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
뒷모습은 앞모습이 만드는 시간의 선물이다.
왜?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으니까. 뒷모습으로 앞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
직유법과 은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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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비새를 아시나요 OK
과자로 지은 집 OK
뒷모습 NO
3편 중 2편 OK이므로 통과
이제 한 번 더 <연이은 OK> 남았습니다. 만약에 세 번째에 통과 못하면 두 번 통과 무효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신중하게 작품을 선정하기 바랍니다.
참고할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NO 받은 작품과 OK 받은 작품을 열 번이라도 읽어보며 비교해 보세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창작에세이 작법서 책 이름이 <형상과 개념>이라는 것이 힌트입니다.
네, 떨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