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현대시조와 불교 ⑤ 변혁의 시대, 깊어지는 불교적 사유 / 권성훈
특별기획 현대시조와 불교 ⑤ -1980년대 현대시조 혁신기
1.
198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군부, 쿠데타, 민주주의, 민중, 자유, 검열, 노동자, 저항, 올림픽 등이다. 그만큼 1980년대 한국사회는 1970년대까지의 군부독재 몰락으로 시작된 정치적 격동과 변혁의 시대로 기록된다. 1979년 10 · 26사태로 인한 박정희의 죽음과 동시에 등장한 신군부 세력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등에 업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탄압과 구속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자유와 민주화를 염원하며 신군부의 폭거에 저항하던 국민의 희생은 급기야 5 · 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생으로 절정에 달했다.
역사적 비극 속에서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으로 창출된 제5공화국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을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1980년 광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의 열기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목숨을 건 국민의 저항과 희생을 밑거름으로 민주화 시대를 열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전환해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회의식이 심화하던 1980년대는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민중들의 해방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당시 문단은 이 같은 자유 민주 정신과 함께 여전히 존재론적 서정성과 민족적 전통성을 추구했다. 거기에 민주화와 산업화의 여파는 해방문학을 비롯한 민중문학, 노동문학, 농민문학 등 다양한 장르 문학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현대시 부문에서도 정치와 문화, 문명과 도시, 농촌과 지역 등에서 생겨나는 문제의식과 사회적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시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다른 한편으로 서정성과 전통성을 계승하려는 시단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져 역동적인 흐름을 빚어냈다.
이 같은 영향으로 1980년대 시조시단은 1970년대까지 축적된 시의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적 · 외적 변화를 모색한 시기여서 ‘현대시조 혁신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내적으로는 자유 정신에 입각한 형식 실험과 시대에 부응하는 가치를 함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외적으로는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테면 시조시인들의 3장 6구 12음보 45자 이내라는 형식의 천편일률적인 작품 내용에 관한 자각과 개선을 내적으로 촉구했으며, 외적으로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소외된 시조의 위치를 되찾으려는 의식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외형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중앙과 지역의 문단에서 활동하던 1980년대와 90년대 등단자들 모임인 ‘역류’, 광주 지역의 ‘우리시’, 울산 지역의 ‘운문시대’, 안동 · 영주 지역의 ‘오늘’ 등의 동인 활동은 소그룹을 통한 시조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80년대 동인’과 ‘오류’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자립적으로 시조전문지 《열린시조》를 창간하면서 시조인들의 지면이 확대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1980년대 시조단에서는 시조시인들의 등단에 관한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문예지와 일간지에서 시조 등단 후 다른 저널로 재등단하는 매체 간 등단의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1980년대는 시조로 등단 후 자유시로 등단하거나, 자유시로 등단 후 시조로 등단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한국문학사에서 시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다(多)장르 활동을 하는 경우 좋은 작품을 남긴 사례를 찾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현대에 이르러 자유시와 시조를 병행할 수 있는 있지만, 역학적으로 작품 수준과 영향력의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한편 현대시조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시조시인에 대한 문학상이 다수 제정되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시조문학상으로 가람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 · 이영도 시조문학상을 들 수 있다. 가람시조문학상은 1979년 가람의 고향인 전북 익산 지역에서 가람 이병기 선생(1891∼1968)의 문학정신과 시조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1회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자로 정완영이 선정되면서 시조시인들의 위상을 알렸다. 1982년부터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1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자로 김상옥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이호우 · 이영도 시조문학상’은 경북 청도 출생의 남매 시조시인 이호우와 이영도가 남긴 뛰어난 작품 세계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생겨났다. 이 같은 시조문학상은 기성 시인들의 문학적 업적과 세계관을 재조명함으로써 현대시조의 품격을 확립하고 문학정신을 계승하면서 창작 의욕을 고취시켰다. 이후에도 고산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이 차례로 제정되어 시조문학의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80년대 시조로 등단하여 활동한 주요 시인들은 강영환, 박기섭, 김일연, 지성찬, 이정환, 전원범, 오승철, 문무학, 노중석, 이지엽, 이일향, 박옥위, 박연신, 정수자, 정공량, 이요섭, 김복근, 정일근, 오종문, 김연동, 전병희, 이재창, 박현덕, 홍성란, 고정국, 양점숙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조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간취할 수 있는 것은 신춘문예, 문예지, 백일장 등 다양한 경로로 등단한 20~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출신 지역 또한 편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
1980년대 시조시인들은 식민지배와 분단 그리고 내전과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충격적인 사건을 직간접으로 경험했다. 이들은 국가라는 절대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억압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시의 꽃’을 피웠다. 1980년대를 ‘시의 시대’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시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통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에 시인들은 시가 추구할 수 있는 사회상에 대한 현장성을 담아내는 한편 불교의식을 통해 존재론적 자아를 탐구하기도 했다.
살펴볼 시조시인들은 민주화 시대에서 시조 전통을 계승하면서 불교적 사유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당시 불교는 여전히 깨달음을 지향하는 중생구제와 자기실현이라는 구도의 방법으로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의 존재의의를 찾게 해 주었다. 이른바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하고 자아 성찰에 목적을 둔 한국불교는 국민을 다 같은 중생으로 보았으며 누구에게나 사찰을 개방하여 자비 정신을 일깨웠다.
따라서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사찰을 배경으로 시적 모티브를 찾는 시조시인들이 많았다. 이것은 절이 불교라는 특정 종교단체의 외형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 고유의 전통적 심성에 스며들어 있는 피안임을 의미한다. 사찰을 모티브로 한 시조가 시대를 넘어서 면면히 창작되고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1980년대 시조시인으로 사찰 배경의 시조를 창작한 박옥위와 양점숙을 주목할 수 있다. 당시 1950년대 출생의 신인 시조시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박옥위(1941~ ), 양점숙(1949~ )의 경우 1940년대생으로서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대 초반에 등단한 여성 시인이다. ‘시의 시대’로 불리며 젊은 계층에서 폭발적으로 문학에 관심을 보이던 이 시기에 박옥위와 양점숙의 등장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경주 남산 후미진 산중턱거리에 이르면
바위를 깨고 앉은 돌 보살을 만나리라
종소리 서라벌을 울릴 제 흘연 사라진 그 아낙
가슴이 없는 여인 눈물도 가당찮지
딸아인 종소리 되고 지아빈 장승 되고
종성(鐘聲)에 불려간 천년을 화석으로 박혔다
에밀레 에밀레 종소리가 우는 밤낮
우러러볼 하늘 잃고 바위 속에 갇힌 몸을
남산은 쪽진 머리로 좌선하게 하였겠다
종소리 끝에 나앉아 어미 찾는 가스나이
가슴을 녹여버린 서라벌의 가스나이
비천상 하늘을 울린 종이 된 가스나야
막고 싶은 귀를 열고 네 울음을 들은 어미
동해바다 파도 속에 쏟아놓은 통곡소리
공글러, 공글러 목을 놓는 처렁처렁 파도소리
울어라 가스나야 종이 된 가스나야
이 땅과 하늘 끝을 아스라히 평정할 때
서라벌 천년역사는 꼭두서니빛 물이 든다.
— 박옥위 〈돌 보살〉 전문
1983년 《현대시조》와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박옥위 시인은 첫 시조집 《들꽃 그 하얀 뿌리》(1990)가 있다. 국립부산사범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며, 부산여류시조문학회를 창립한 박옥위의 시는 동시대의 부조리한 세계를 향한 투쟁의 언어이자 존재 속에서 발효된 자기반성의 열매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옥위의 〈돌 보살〉은 불교 유적이 많이 발굴된 경주의 남산을 소재로 한다. 금오산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삼국유사》에 나올 정도로 신비한 곳이며 영험한 기운이 풍부하여 남산에서 유래한 전설이 여럿 전한다. 이 시는 ‘에밀레종’을 둘러싼 가족사에 얽힌 전설을 테마로 한다. 첫 수 “경주 남산 후미진 산중턱거리에 이르면/ 바위를 깨고 앉은 돌 보살을 만나리라/ 종소리 서라벌을 울릴 제 흘연 사라진 그 아낙”의 눈물은 2수 종장 “딸아인 종소리 되고 지아빈 장승 되고”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에밀레 종이 딸아이의 한처럼 ‘천년 화석’으로 박혀 “에밀레 에밀레” 하면서 ‘종소리가 밤낮’으로 울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는 ‘서라벌 천년 역사’를 가진 ‘에밀레종’의 전설을 통해 민주화 시대에서 허망하게 죽어간 이들의 ‘눈물의 소리’를 환기해주고 있다.
묵언 수행 중인 기단 아래 석인상
닳아 뭉그러진 얼굴 코가 없어도
간절한 염원을 이룬
누군가는 있었겠지
태어나 소원 하나 들어준 일 없었는데
천년의 그림자여 코가 없으면 어떤가
해체나 발굴이란 말이
염불처럼 번지네
아들 낳게 해달라고 떼어낸 코만큼의
눈물과 한을 비운 미륵의 자리 안에
해묵은 풍장의 노래는
흐드러진 돌미나리
— 양점숙 〈石人像-미륵사지〉 전문
위의 시조 〈석인상(石人像)-미륵사지〉를 쓴 양점숙은 1989년 제1회 이리익산문예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당선되어 시조단에 나왔다. 가람 선생의 영향으로 시조에 입문하여 첫 시조집 《기다림의 날 뒤에》(1990)를 펴냈으며, 한국문인협회 익산지부장을 역임하고 가람시조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모더니즘적 서정성을 지닌 그녀의 시조는 중용의 보수성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고 시대를 견인한다.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는 백제 시대의 절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조선시대 이후 대부분의 절이 산속으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평지에 있는 미륵사지를 통해 백제 불교의 기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익산의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무왕과 왕비가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연못을 메우고 탑과 법당을 세워 미륵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시의 ‘석인상’은 ‘미륵사지’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어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떼어”내서 코가 뭉그러졌다고 형상화된다. ‘미륵사지 천년의 그림자’라는 전설 속에서 ‘간절한 염원’과 ‘소원 하나’를 바라는 중생들의 심연을 ‘염불’처럼 달래고 있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 우리는 그 울창한 전나무 숲길을 갑니다/ 하늘이 맞닿는 아침햇살/ 적막한 마음 하나 비웁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잠시 머문 이승의 길/ 새소리 대숲소리, 더 깊은 기다림의,/ 이제는 그대를 위해/ 꽃길 하나 마련합니다./ 더 바랄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사랑을 위해/ 죽어서도 살아 두 손 가슴에 묻습니다./ 내 그대 시리도록 맑고 밝은/ 그리움이 눈부십니다.
— 이재창 〈내소사(來蘇寺) 가는 길〉 전문3)
이 시조를 창작한 이재창(1959~ )은 1979년 《시조문학》으로 추천된 후 1987년 〈중앙일보〉로 당선되었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목포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광주매일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와 6인 시조집《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등을 간행한 그의 시 세계는 직선이 아닌 곡선의 시선으로 세계를 투사하는 부드러운 어조를 구사하고 있다.
4수 1연으로 구성된 이 시조는 정형의 형태를 벗어난 작품이다. 1수 중장 ‘갑니다’ 종장 ‘비웁니다’ 2수 종장 ‘마련합니다’ 3수 중장 ‘묻습니다’ 종장 ‘눈부십니다’ 등 종결어미가 길어지는 한편, ‘내소사’ 풍경을 부드럽게 담아낸다.
전북 부안군에 소재한 ‘내소사’ 또한 천년고찰로서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 내소사는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이 문인 천왕문까지 펼쳐진다. 천왕문은 부처의 나라로 나가기 전 인간의 몸에 남은 작은 악귀마저 소멸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천왕이 거하는 곳이다. 이 가운데 “죽어서도 아름다운 사랑”과 “그 울창한 전나무 숲길” “새소리 대숲소리, 더 깊은 기다림” “내 그대 시리도록 맑고 밝은/ 그리움” 등은 사랑을 위해 모든 욕망이 제거된 그리움을 내소사 가는 전나무 숲길에서 노래한다.
자갈뿐인 길 위로/ 간밤 눈이 사태 졌다/ 화선지에 획 긋듯/ 시위불 앞을 지나/ 어머니 만삭의 몸 이끌고/ 와불님 뵈러 간다.// 저 도량에 묻어 있는/ 천불천탑 흔적들/ 내 잠시 마파람 되어/ 동백나무 흔들면/ 꽃잎은 낮잠 자는 미륵/ 간지럼을 피운다.// 하늘 그득 무리지어/ 울고 가는 기러기떼/ 솔방울만한 설움들이/ 한바탕 별로 뜰까/ 어머니 정안수 떠 놓고/ 기도하는 보름 밤.
— 박현덕 〈운주사(雲住寺)〉 전문
박현덕(1967~ )은 1987년 《시조문학》의 추천을 받고 그다음 해 《불교문학》 《현대시조》 《월간문학》 신인상에 각각 당선되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1983년 고등학생 시절 전남학생시조협회에 가입하고 시와 시조 각종 백일장에서 20여 차례 수상하는 등 일찍이 시조문학에 눈을 떴다. 첫 시조집으로 《겨울 삽화》(1994)가 있는 그의 작품 세계는 정형과 탈정형을 넘나들면서 고정된 형식의 틀에서 현대시조를 해방시키고 있다.
전남 화순군 소재의 절 운주사(雲住寺)의 이름은 풍수상 움직이는 배 모양의 땅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법당은 물론 석불과 석탑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중건되는 등 전란을 겪은 대부분의 절처럼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 만삭의 몸 이끌고” 찾아가는 ‘운주사’의 ‘와불’은 신성한 것으로서 분명 조상들의 “저 도량에 묻어 있는/ 천불천탑 흔적들”을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수 종장에서 부처님께 “어머니 정안수 떠 놓고/ 기도하는 보름 밤” 어머니의 심연에는 태아를 있게 한 조상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3.
불교의 윤회는 중생이 번뇌와 업으로 인해 생사 세계를 떠도는 것을 의미한다. 생로병사가 수레바퀴와 같이 순환을 거듭하는데, 사망한 다음 영혼이 되었다가 새로운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해탈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흐름은, 해탈이 없는 한 몇억 겁 세월에 걸쳐 이어진다. 생사를 거듭하는 동안 쌓은 선업과 악업이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기에 지금 생에서 고귀하고 천하고는 이전에 쌓았던 업보가 다시 온 것이니 공덕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인간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에 더욱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불교는 현생의 사람들에게 공덕을 베풀고 선함을 나누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하는 의미에서 윤회와 환생을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아래의 시인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고뇌하며 환생을 염원하는 시조를 남겼다.
맑은 영혼은/ 새처럼 날아가고// 추억은 느닷없이/ 백발로 와 있는데// 은하로 흐르는 인연이/ 먼 바다로 이어진다.// 이승에선 건넬 수 없는/ 내 마음의 거센 반란// 어디에 몸을 던지면/ 너 더불어 환생할까// 새벽별 돋아나듯이/ 내 귀 환히 열릴까.
— 이일향 〈환생〉 전문
이일향(1930~ ) 시인이 시조를 접하게 된 것은 1979년 남편과 사별하고부터다. 괴로워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가 정완영 선생에게 소개하여 시조를 배우게 했다. 1980년 시조에 입문한 그녀는 1983년, 시조시인 중 53세라는 최고령 나이로 《시조문학》에 추천 완료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첫 시조집 《아가》를 발간하고 10년 만에 4권의 시조집을 상재하는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펼쳤다. 그 사이 40대 초반의 아들이 사망하는 등 두 번째 죽음에 대한 절망을 체험한 그녀의 시조는 물리치지 못하는 죽음의 타나토스를 극한으로 견디면서 지상에서 낼 수 있는 ‘애절한 언어의 주문’이다. 이일향의 〈환생〉은 운명한 남편과 자식의 ‘맑은 영혼’을 달래면서 “은하로 흐르는 인연”을 통해 “너 더불어 환생할까”라는 불교적 기원으로 여운을 남긴다.
이저승을 넘나드는/ 인연의 끈에 매달려/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이 지면 꽃을 피우며/ 그렇게/ 애태우면서도/ 만나지 못해 서러워라,// 그리움의 성(城)을 쌓고/ 기다림의 탑(塔)을 쌓아/ 속살까지 물들이며/ 흔들리고 있더니/ 서로가/ 눈에 밟혀서/ 떠나지도 못하는가// 끝끝내 남은 말은/ 모두 다 불태우고/ 내리는 잎잎을/ 아픔으로 받으면서/ 한 자락/ 바람을 접어/ 꽃대만 세우는구나
— 전원범 〈상사화(相思花)〉 전문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전원범(1944~ )의 시조 〈상사화〉도 인연으로 인한 죽음 뒤의 삶을 보여준다. 전원범의 시는 존재의 문제가 인연의 무게에 있음을 직감하면서 초월적인 것을 향해 있다. 불교에서 상사화를 피안화로 부르기도 하는데 꽃이 피고 짐에 따라서 번뇌와 해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이라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가운데 “인연의 끈에 매달려” 있다. 인연은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이 지면 꽃을 피우”는 연기의 과정에서 ‘그리움의 성(城)’과 ‘기다림의 탑(塔)을’ 쌓고 있다. 어쩌면 시인이 말하는 상사화는 그러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간직한 누군가의 환생이 피워올린 꽃이 아닐 수 없다.
하나는 슬픔의 시간 또 하나는 사랑의 시간//
두 개의 시간을 가진 요술시계 있다면//
언제든 사랑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리//
전생에서 사랑한 그 사람은 누군지//
돌아가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질 때//
사랑의 시간에 맞추고 사랑하면 되리라//
윤회란 시차를 두고 다른 시간에 사는 일//
혹은 다른 시간의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
돌아봐! 당신을 찾아서 나 돌아가고 있으니
— 정일근 〈윤회〉 전문7)
위 시편을 쓴 정일근(1958~ )은 1981년 국풍 81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장원을, 1984년 《월간문학》 시조 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왔다. ‘국풍 81’은 정권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민족문화 창달을 앞세워 정치적 5일간 여의도에서 진행한 문화 축제로서 군부독재 시절의 산물이다. 이지엽, 정수자, 오종문, 황인원 정공량 등과 함께 1988년 결성된 ‘80년대 시조’ 동인인 그는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고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시에 나타나는 ‘윤회’는 불교적 사유와 시인의 상상력이 더해서 만든 새로운 시간을 말한다. “전생에서 사랑한 그 사람은 누군지/ 돌아가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질 때/ 사랑의 시간에 맞추고 사랑하면 되리라”라는 선택적 시간의 윤회로 보는 것이다. 그에게 “윤회란 시차를 두고 다른 시간에 사는 일”이며 현실의 시간에서 “다른 시간의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로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돌아가는 유희를 드러낸다.
인연에 따라서 돌고 도는 윤회를 1985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김복근(1950~ )은 다음의 시조에서 식물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다.
나뭇잎/ 방황하다/ 뿌리로 돌아가고// 가랑비 흩날리는/ 가을비 빗소리는// 새순을/ 틔워 올리는/ 현(弦) 없는/ 아악(雅樂)이다.
— 김복근 〈인과율(因果律) · 1〉 전문
이처럼 나뭇잎이 뿌리로 돌아가고 그것으로 새순을 올리고 다시 나뭇잎이 되는 과정을 불교에서 말하는 ‘몰현금’ 같은 “현 없는 아악”이라고 묘사한다.
4.
불교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정신적 비중은 일상 언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말 속에 깃든 불교적 용어가 그것이다. 불교적 용어가 언어적 기능을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불교가 무의식적으로 대중화되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언어에 함의된 불교적 어휘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보편적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372년) 이래 민족과 전통 속에서 한국인의 의식을 주관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불교적 용어는 1980년대 시조에서도 시인의 무의식에서 나타나며 시의 의장을 확보하는 데 사용된다. 아래 살펴볼 시인들의 시조에서 불교적 언어는 시적 사유와 함께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서랍 속 돋보기로/ 은단알을 굴리다가// 조그만 점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빠지지 무일푼 詩가/ 먼 시간의 알을 까고.// 점 속으로 점 점/ 점 밖으로 저엄 점// 나 무 관 세 음 보 살/ 나무, 관세음보살// 산수유 팝콘처럼 터지고/ 뻥이요 세상이 터지고.
— 전병희 〈채광〉 전문
이 시를 창작한 전병희((1953~ )는 198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되었으며 첫 시조집 《꿈꾸는 황사》가 있다. 한양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학도답게 치열한 도시 문명적 삶을 끌어안고 고통을 견디는 존재들의 모순과 문제들을 정제된 형식으로 흡수한다. 2수 6연으로 된 〈채광〉에서 ‘돋보기’를 통해 “점 속으로 점 점” 확대되어 보이듯이 시는 보이지 않던 비밀스러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나게 한다. 마치 “시(詩)가/ 먼 시간의 알을 까고”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한다는 ‘관세음보살’이 등장한다. 이 같은 시인의 언표는 ‘나무 관세음보살’과 같이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여 자신의 괴로움을 소멸시키고자 함이다.
잊어야 한다는 건 잊혀지는 일보다 더 아픈 것
그래, 사랑은 해안도로 휘돌아 휘돌아서 맘속 빈자리 다시 짚고 가는 것 어쩌다 사람 닮아 물이 되고 흙이 되고 삼계(三界)를 돌고 돌아 흘러흘러 가는 것 뼛속 빈자리 다시 치고 드는 그것,
토담집 헐린 하늘로 새 한 마리 길을 낸다
— 홍성란 〈무 · 무소유〉 전문
1989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홍성란(1958~ )은 첫 시조집으로 《황진이 별곡》을 펴냈으며 1999년 고정국, 오종문, 이달균, 이재창, 전병희와 함께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장의 칸타타》를 출간했다. 정서의 투사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그녀의 시에서는 내면의 결핍이 시의식을 추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초장 ”잊어야 한다는 건 잊혀지는 일보다 더 아픈 것“으로 시작되는 이 사설시조는 사랑이 남긴 부재의식을 통찰한다. 중장의 ‘삼계’는 불교의 영적 세계관으로 윤회하는 미망의 장소인 욕계, 색계, 무색계 등을 뜻한다. 시인은 ‘삼계’를 통해 “뼛속 빈자리 다시 치고 드는” 사랑의 아픔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면서 소유할 수 없는 떠나간 사랑을 강조한다.
이 땅 어디에고 깊게 뿌리내렸을 가을/ 존재의 슬픔에 대해 곰곰 생각하다가/ 한 생에 쪽물 들이며 가을산을 오른다./ 잎 떨군 갈참 한 그루 허리 세운 이 한낮/ 끝없이 매질 퍼붓는 무소유의 바람 두고/ 저 비탈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서고 싶다./ 아아, 그대 뒤에 눈부신 생의 길이 있다면/ 산 아래 서로 어울려 원망 풀어내고/ 세월도 젖어 흐르는 그 빛깔을 닮고 싶다.
— 오종문 〈가을 산을 오르며〉 전문
1986년 사화집 《지금 그리고 여기》(혜진서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오종문(1959~ )은 1976년 전국 최초의 학생 시조동인 전남학생시조협회에 참여하여 《토풍시(土風詩)》를 펴냈으며, ‘80년대시조’ 동인으로 활동했다. 청소년기에서 출발한 그의 문학에 관한 집념은 기성 시조시인에 대한 도전 정신과 실험적 형식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종문의 〈가을 산을 오르며〉는 “한 생애 쪽물 들이”는 가을 풍경을 통해 ‘존재의 슬픔’을 드러낸다. 여기서 등장하는 ‘무소유’는 가을 산에 “원망 풀어“냄으로써 불필요한 세속적 욕망이나 집착에서 벗어난 ‘가을 산’의 ‘그 빛깔을 닮고’ 싶어 하는 자유의지를 표상한다.
이처럼 불교용어는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시적 사유를 확장시키며 큰 여운을 남긴다.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연신(1960~ )의 시조 작품에서도 불교적 사유가 현현된다.
방금 피어난 흰 목련/ 나처럼 단출하네.// 꺾어서 못 보내고 사진으로 띄우니/ 무량심/ 아득한 길을/ 헤아려 오시어요.// 가만가만 오시었다 다시 돌아가시어도/ 새벽길 함초롬히 어머님 돌려주시면/ 부러진 날갯죽지가 광명(光明)이듯 살 돋으리.
— 박연신 〈내 집에 꽃 피어났으니〉 전문
이 시에서는 목련 꽃이 피어난 것을 보면서 어머니를 소환하는데, 한없이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의 자비를 뜻하는 무량심으로써 자식을 향한 어머니 마음을 상징한다.
5.
1980년대 시조에서 자연과 사물을 통해 존재적 사유를 드러내면서 불교적 서정을 표현하는 시편들도 많다. 단시조로 된 문무학(1949~ )의 작품은 자연 세계의 사물들을 통해 수행에 정진하는 불심을 일깨운다.
물소리 푸르게 안은 세진교(洗塵橋)를 건너서면
옥잠화 몇 송이가 선(禪)으로 가는 비알
대숲도 잎을 비비며 먼 생각을 닦고 있다.
— 문무학 〈산사 부근〉 전문
‘산사 부근’에 있는 ‘세진교’를 건너가던 시인은 비탈진 곳에 있는 ‘옥잠화’와 ‘대숲’을 고요히 바라보면서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선(禪)’을 지각한다. 1982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한 문무학은 그다음 해 첫 시조집 《가을 거문고》를 펴냈으며, 개인적 서정보다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언어로서 시조의 가능성을 추구했다.
그는 동해 바다에 딱딱한 몸을 담궜다
금방 불끈 피가 돌고 연한 살이 돋아
봄 숲에 따스한 대기가 돌며 그러하듯이
창창한 물굽이 넘어 다섯 큰 바다 돌아오며
한밤 내 물 속 것들에게 살과 피 뜯기가 그 몇 번
혼령도 제 것 아니리 검은 껍질만 남아
감은사 처마에 와 깜빡 혼절하였을 때
피멍만 남아 그것 눈 한 숨 붙이기도 전에
신새벽 스님이 매를 치며 날마다 깨우는 거였다
— 김일연 〈목어(木魚) 이야기〉 전문
이 시의 ‘목어’는 물고기 형상을 한 나무 법구로 불교 의식에 사용된다.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밤낮으로 쉬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사적 관점에서 창작된 김일연(1955~ )의 〈목어(木魚) 이야기〉는 동해 바다 물고기였다가 감은사 처마로 와 혼절한 목어를 “신새벽 스님이 매를 치며 날마다 깨우는” 사연을 담아낸 3수 3연의 작품이다. 1980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첫 시조집 《빈 들의 집》을 출간한 김일연의 시조는 불교적 수행과 같이 버림으로써 작고 가벼워지는 압축과 여백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오래도록 나를 키운 결핍은 곧은 죽비
마주한 시간에서 쉰내가 날 때쯤
별들의 푸른 귀엣말
들려주곤 했었지
빛을 가뭇 놓치면 더 큰 어둠에 싸여
공복이 환하도록 거듭된 오체투지
영혼의
극점에
끝내는 가 닿을 듯
그 빛 다 잊은 뒤, 포만의 밤들 사이
허기의 맑은 울림 삼겹살로 털곤 한 뒤
발 밑엔 무슨 목록만
빚처럼 쌓여가고
한밤이면 또 만난다, 내 안의 다른 목록
그동안 마구 삼킨 꿈이라는 욕망들
모두가
날것인 채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 정수자 〈목록만 빚처럼 쌓여가고〉 전문
1984년 세종대왕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당선된 정수자(1957~ )의 시 세계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길 위의 여행자와 같이 언어적 구도자로서 근원적 세계를 모색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원인으로 한 모순된 세계에 주목하며 죽음의 미학을 선보인다. 이 시는 화자의 ‘결핍’과 ‘공복’이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거듭된 오체투지’라는 수행의 산물로서 “영혼의/ 극점에/ 끝내는 가 닿을” 수 있다는 존재론적 역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의 ‘꿈이라는 욕망’은 또 다른 세계의 ‘빚’으로 있는 것이며 “날것인 채”로 소화되지 않는 ‘목록’에 불과한 것이다.
여자(女子),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여자(女子)/ 큰 스님 손바닥에/ 홍등(紅燈)을 내걸고/ 봉긋이/ 물오른 아랫도리/ 오, 니르바나/ 불빛 하나// 지새는 밤 그리움은/ 진창이라도 좋다/ 이것이/ 네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내 살에 꽃불을 놓아/ 그대 강(江) 건너리// 너를 보면 따뜻한/ 마을이 보인다/ 따뜻한 불빛 따뜻한 방(房)/ 따뜻한 무덤들/ 연분홍 바람의 살들이/ 흰 산(山)의/ 이마를 끌고 간다.
— 이지엽 〈연(蓮)〉 전문
이지엽(1958~ ) 시인은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1989년 첫 시조집 《떠도는 삼각형》을 출간했다. 등단 이전인 1975년 고등학생 시절 김동찬과 함께 2인 시집 《제목 없는 전설》을 발간하고, 시조집 《아리사의 눈물》을 펴낸 바 있는 그에게 시조는 존재해야 할 이유다. 하늘, 생명,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문학 세계는 시조로써 이르는 순수 존재에 대한 성찰의 미학이다.
이 시 〈연〉은 종이로 만들어서 공중에 높이 날리는 도구다. 연이 “큰 스님 손바닥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지상과 멀어지지만, 하늘과 가까워진다. 이때 땅은 집착이라는 욕망이며, 하늘은 깨달음이라는 진리를 표상한다. 연은 바로 ‘니르바나’다. 니르바나는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번뇌에서 행방 된 ‘연’은 욕망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진리라는 “네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1980년대의 시조시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불교라는 유구한 민족 정서에 기대면서 사찰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음 생의 영혼을 시조 작품에 투사시켰다. 때로는 불교적 언어를 사유하면서 자연과 사물에 함의된 부처님의 진리를 각자의 형식과 내용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암흑의 시대에 맞서서 불교적 사유를 통해 민족과 민중을 바라보면서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현대시조 혁신기‘를 꽃피웠다. ■
권성훈 poemksh@naver.com
문학평론가.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한신대 종교학과, 경기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고려대 박사후과정 수료.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 외 2권과 저서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등이 있다. 현 경기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출처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