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일(월)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자신의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주십사 했습니다. 주님은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하셨습니다.
특히 목회자는 가족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우선이고 사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행 7:2-4; 수 24:2,3참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아버지 데라와 그 형제들을 떠나서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함으로 하란에서 지체했습니다. 그러나 데라의 죽음과 함께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부르심으로 믿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창 12:1).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구별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는 무엇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선입니다(마 4:22).
하나님께 속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하나님께 거룩히 바쳐진 나실인과 같은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족을 이 시대의 나실인으로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의 중심과 구별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나면서부터 구별된 나실인이 있는가 하면, 부름을 받았을 때부터 구별되는 나실인도 있고, 또 나실인의 규례를 좇아 스스로 구별하여 일정 기간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원하는 나실인이 있었습니다(민 6:1-21).
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별해야 했습니다. 구별된 삶 자체가 헌신이었습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민 6:6-8)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6-39)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타나심(강림)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안이 열려 예수님과 성령님을 만나고 있고 또 천국을 다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라는 표현은 강림하셔서 자리하심을 달리 표현한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은사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아니 더 크고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역사임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반대하면 성령훼방죄에 걸리게 됩니다.
찬양에도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 모든 백성에게 부어 주리라.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욜 2:28,29; 행 2:17,18 참조)라는 찬양이 있고 교회들마다 부릅니다. 찬양을 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않고 업신여기고 비방한다면 어디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누구에게서 구원을 받을 수있을까요?
처음 예수님과 성령님이 방문하시고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들었으나 우리를 반대하는 가족들의 구원에 대해 여쭈었을 때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영안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영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가진 신앙지식으로 판단하여 업신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데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시골에 모여 한 목소리로 악하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악하게 판단하는 소리를 전해 듣고 많은 문자메시지로 고통과 정죄를 당해도 때가 되면 알리라는 믿음으로 참으며 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영안은 예수님이 열어주시는 것이기에 영안을 업신여기는 것은 곧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물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결코 작은 것으로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주는 선물(특히 방언)이 작다고 업신여겨 받지 않으려고 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주시는 주님을 작게 취급하는 것으로 큰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성경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거나 반대하면 성령훼방죄에 걸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체를 입고 사역하실 때는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은 괜찮고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구분하여 말씀했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임하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은 곧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임을 성령님께 여쭈어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구원을 받지만 교회를 출석하며 직분을 맡고 봉사해도 성령훼방죄에 걸리면 구원마저 상실한다는 사실입니다(마 12:31; 막 3:29; 요일 5:16). 상급을 쌓았어도 구원을 잃어버리면 그 상급마저 잃게 됨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마귀가 하는 일로 악하게 말하여 성령을 훼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