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28年(紀元前 545年)
二十八年春, 無冰. 梓愼曰 : 「今玆宋鄭其饑乎. 歲在星紀, 而淫於玄枵, 以有時菑, 陰不堪陽, 蛇乘龍. 龍宋鄭之星也, 宋鄭必饑. 玄枵, 虛中也. 枵耗名也. 土虛而民耗, 不饑何爲?」
이십팔년춘, 무빙. 재신왈 : 「금자송정기기호. 세재성기, 이음어현효, 이유시치, 음불감양, 사승룡. 용송정지성야, 송정필기. 현효, 허중야. 효모명야. 토허이민모, 불기하위?」
[解釋] 양공 28년 봄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노나라 대부 梓愼이 말하기를, 「금년에 송나라와 정나라에는 기근이 들 것이다. 歲星이 星紀의 방향 곧 丑方에 있어야 할 것인데, 지나가서 玄枵의 방향 곧 子方에 있으므로, 시절에 재앙이 있어, 음기가 양기에 눌려, 뱀이 용을 탄 형상이다. 그런데 용은 송나라와 정나라의 별이므로, 송나라와 정나라에는 반드시 기근이 들 것이다. 玄枵란, 가운데가 비었다는 듯이다. 또 枵란 감한다는 의미이다. 곧 토지가 비고 백성의 배가 줄어든다는 뜻이므로, 기근이 한 들고 어찌되겠는가?」라고 했다.
夏齊侯, 陳侯, 蔡侯, 北燕伯, 杞伯, 胡子, 沈子, 白狄朝于晉, 宋之盟故也. 齊侯將行, 慶封曰 : 「我不與盟, 何爲於晉.」 陳文子曰 : 「先事後賄, 禮也. 小事大, 未獲事焉, 從之如志, 禮也. 雖不與盟, 敢叛晉乎? 重丘之盟. 未可忘也. 子其勸行.」
하제후, 진후, 채후, 북연백, 기백, 호자, 침자, 백적조우진, 송지맹고야. 제후장행, 경봉왈 : 「아불여맹, 하위어진.」 진문자왈 : 「선사후회, 예야. 소사대, 미획사언, 종지여지, 예야. 수불여맹, 감반진호? 중구지맹. 미가망야. 자기권행.」
[解釋] 여름에 齊나라, 陳나라, 蔡나라, 北燕, 杞나라, 胡나라, 沈나라 白狄의 임금들이 진나라로 와서 동맹을 하니 송나라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제나라 경공이 장차 나갈 때에, 慶封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동맹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무엇하러 진나라에 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陳文子가 말하기를, 「먼저 일을 치르고 후에 공물을 바치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이오. 소국이 대국을 섬길 때에,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여러 차례 대국으로 가서 명령을 받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이오. 비록 동맹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진나라를 감히 배반할 수 있겠소? 중구의 동맹에 참석하도록 권하시오. 중구의 동맹을 잊어서는 아니 되오. 당신은 임금님께 동맹에 참석하도록 권하시오.」라고 했다.
衛人討寗氏之黨, 故石惡出奔晉. 衛人立其從子圃, 以守石氏之祀, 禮也. 邾悼公來朝, 時事也. 秋八月, 大雩, 旱也.
위인토녕씨지당, 고석악출분진. 위인립기종자포, 이수석씨지사, 예야. 주도공래조, 시사야. 추팔월, 대우, 한야.
[解釋] 衛나라 사람이 영씨의 일당을 토벌했으므로, 石惡은 진나라로 도망갔다. 그래서 위나라 사람이 그의 조카 圃를 세워서, 계사를 계승하게 한 것은,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邾나라 悼公이 노나라로 내조한 것은, 시절의 의례적인 일이었다. 가을 8월에, 기우제를 대대적으로 지낸 것은, 가물었기 때문이었다.
蔡侯歸自晉, 入于鄭. 鄭伯享之, 不敬. 子産曰 : 「蔡侯其不免乎. 日其過此也, 君使子展迋勞於東門之外, 而傲, 吾曰猶將更之, 今還, 受享而惰, 乃其心也. 君小國, 事大國, 而惰傲以爲己心, 將得死乎? 若不免, 必由其子. 其爲君也, 淫而不父. 僑聞之, 如是者, 恒有子禍.」
채후귀자진, 입우정. 정백향지, 불경. 자산왈 : 「채후기불면호. 일기과차야, 군사자전광로어동문지외, 이오, 오왈유장경지, 금환, 수향이타, 내기심야. 군소국, 사대국, 이타오이위기심, 장득사호? 약불면, 필유기자. 기위군야, 음이불부. 교문지, 여시자, 항유자화.」
[解釋] 蔡나라 임금이 진나라로부터 돌아갈 때에, 鄭나라로 들어갔다. 鄭나라 임금이 그를 대접하는데, 그는 공경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정나라 子産이 말하기를, 「蔡나라 임금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날 진나라로 갈 때에 우리나라를 지나가게 되어, 임금님께서 자전으로 하여금 동문 밖에서 그를 위로하게 했을 때에도, 오만했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태도를 고치라고 했는데도, 지금 돌아오다가, 대접을 받으면서도 나태하니, 이는 그의 본심이 그러한 것입니다. 작은 나라의 임금이, 큰 나라를 섬김에, 예법에 게으르고 오만하여 그의 마음이 여전하니, 어찌 편안히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그 아들에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임금이 되어, 음탕하고 어버이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듣건대, 이런 자는, 항상 자식에게 화를 당한다고 합니다.」고 했다.
孟孝伯如晉, 告將爲宋之盟故如楚也. 蔡侯之如晉也, 鄭伯使游吉如楚. 及漢, 楚人還之曰 : 「宋之盟, 君實親辱. 今吾子來, 寡君謂吾子姑還, 吾將使馹奔問諸晉而以告.」
맹효백여진, 고장위송지맹고여초야. 채후지여진야, 정백사유길여초. 급한, 초인환지왈 : 「송지맹, 군실친욕. 금오자래, 과군위오자고환, 오장사일분문저진이이고.」
[解釋] 孟孝伯이 진나라로 간 것은, 송나라에서의 동맹에 따라 초나라로 갈 것을 보고 하기 위해서였다. 蔡나라 임금이 진나라에 갔을 때에, 鄭나라 임금은 游吉로 하여금 초나라로 가게 했다. 그래서 유길이 한수에 이르자, 초나라가 사람들을 그를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송나라에서 동맹할 때에, 정나라 임금이 친히 온다고 약속했었소. 그런데 지금 당신이 왔으니, 우리 초나라 임금께서는 당신이 잠시 돌아가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역마차로 진나라로 달려가서, 물어보게 한 뒤에 당신에 알리겠다고 말씀하셨소.」라고 했다.
子大叔曰 : 「宋之盟, 君命將利小國, 而亦使安定其社稷, 鎭撫其民人, 以禮承天之休, 此君之憲令, 而小國之望也. 寡君是故使吉奉其皮幣, 以歲之不易, 聘於下執事.
자대숙왈 : 「송지맹, 군명장리소국, 이역사안정기사직, 진무기민인, 이례승천지휴, 차군지헌령, 이소국지망야. 과군시고사길봉기피폐, 이세지불이, 빙어하집사.
[解釋] 그래서 子大叔이 대답하기를, 「송나라에서 동맹을 맺을 때에, 당신네 초나라 임금이 명령하셨는데 소국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작은 나라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식을 안정시키고, 인민을 鎭撫하여 예절로서, 하늘의 복을 받게 하였으니, 이것이 당신네 임금의 법령이요, 또한 작은 나라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임금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모피나 직물을 받들고 가서, 금년의 모든 일이 용이하지 않아서, 저에게 임금님을 대신하여 여러 고관들을 방문하게 한 것입니다.
今執事有命曰, '女何與政令之有? 必使而君棄而封守, 跋涉山川, 蒙犯霜露, 以逞君心.' 小國將君是望, 敢不唯命是聽? 無乃非盟載之言, 以闕君德, 而執事有不利焉. 小國是懼. 不然, 其何勞之敢憚?」
금집사유명왈, '여하여정령지유? 필사이군기이봉수, 발섭산천, 몽범상로, 이령군심.' 소국장군시망, 감불유명시청? 무내비맹재지언, 이궐군덕,
이집사유불리언. 소국시구. 불연, 기하로지감탄?」
[解釋]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명하시기를, '당신이 어찌 정령에 관계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너희 임금으로 하여금 너희 나라의 국사를 중지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서리와 이슬을 뒤집어쓰고서라도 와서, 우리 초나라 임금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고 하십니다. 작은 나라들이모두 당신네 임금만 바라고 있으니,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이 맹세한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은 아니지만, 임금으로서의 덕을 잃으면, 제후들이 이탈할 것이므로 여러분들에게로 불리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小國은 다만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고생이라도 감히 꺼릴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子大叔歸, 復命, 告子展曰 : 「楚子將死矣. 不修其政德, 而貪昧於諸侯, 以逞其願, 欲久得乎? ≪周易≫有之, 在復[☷☳]之頤[☶☳], 曰, '迷復凶.' 其楚子之謂乎. 欲復其願, 而棄其本, 復歸無所, 是謂迷復, 能無凶乎?」
자대숙귀, 복명, 고자전왈 : 「초자장사의. 불수기정덕, 이탐매어제후, 이령기원, 욕구득호? ≪주역≫유지, 재복[☷☳]지이[☶☳], 왈, '미복흉.' 기초자지위호. 욕복기원, 이기기본, 복귀무소, 시위미복, 능무흉호?」
[解釋] 子大叔이 정나라로 돌아와, 復命하고, 자전에게 고하기를, 「초나라 임금은 장차 죽을 것입니다. 정치의 덕은 닦지 않고, 제후들에게 욕심만 내어, 자기의 소원을 만족시키려 하니, 오래하려해도 오래 갈 수가 있겠습니까? ≪周易≫에 말하기를, '復卦[☷☳]가 頤卦[☶☳]로 변할 경우에, 말하기를 '돌아오는데 홀리니 흉하다.'고 하였으니, 바로 초나라의 임금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자기의 소원만 이루고자 하여, 그 근본을 버리므로, 복귀하려해도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이것은 돌아오는 데 홀린다는 것으로, 흉하지 않겠습니까?」
君其往也, 送葬而歸, 以快楚心. 楚不幾十年, 未能恤諸侯也. 吾乃休吾民矣.」 裨竈曰 : 「今玆周王及楚子皆將死. 歲棄其次, 而旅於明年之次, 以害鳥帑周楚惡之.」
군기왕야, 송장이귀, 이쾌초심. 초불기십년, 미능휼제후야. 오내휴오민의.」 비조왈 : 「금자주왕급초자개장사. 세기기차, 이려어명년지차, 이해조탕주초악지.」
[解釋] 우리 임금이 초나라로 가실 때에는, 초나라 임금은 반드시 죽어 그를 장송하고 돌아옴으로써, 초나라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줄 것입니다. 초나라는 10년이 되지 않고서는, 제후를 구제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우리 백성들이나 편히 쉬게 하십니다.」고 했다. 정나라 대부 裨竈가 말하기를, 「금년에는 주나라 천자와 초나라 임금이 모두 죽을 것입니다. 歲星이 그 자리를 잃고, 명년의 차례로 넘어가서, 주주의 꼬리를 치니 주나라와 초나라는 악한일이 있을 것입니다.」고 했다.
九月, 鄭游吉如晉, 告將朝于楚以從宋之盟. 子産相鄭伯以如楚, 舍不爲壇. 外僕言曰 : 「昔先大夫相先君適四國, 未嘗不爲壇. 自是至今亦皆循之. 今子草舍, 無乃不可乎?」
구월, 정유길여진, 고장조우초이종송지맹. 자산상정백이여초, 사불위단. 외복언왈 : 「석선대부상선군적사국, 미상불위단. 자시지금역개순지. 금자초사, 무내불가호?」
[解釋] 9월에, 鄭나라 游吉이 晉나라로 가서, 장차 초나라에 조회함으로써 송나라에서의 동맹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고서 자산이 정나라 임금을 도와 초나라로 가서, 초가집을 지어 놓고 토단은 쌓지 않았다. 그러자 담당자가 말하기를, 「옛날 먼저의 대부들은 선군을 도와 사방 여러 나라로 갔을 때에, 壇을 쌓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그런 전통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네들은 초가집만을 지어 놓으니, 불가하지 않소?」라고 하자,
子産曰 : 「大適小, 則爲壇, 小適大, 苟舍而已. 焉用壇? 僑聞之, 大適小有五美. 宥其罪戾, 赦其過失, 救其菑患, 賞其德刑, 敎其不及. 小國不困, 懷服如歸. 是故, 作壇以昭其功, 宣告後人, 無怠於德. 小適大有五惡. 說其罪戾, 請其不足, 行其政事, 共其職貢, 從其時命. 不然, 則重其幣帛, 以賀其福而弔其凶, 皆小國之禍也. 焉用作壇以昭其禍, 所以告子孫? 無昭禍焉可也.」
자산왈 : 「대적소, 즉위단, 소적대, 구사이이. 언용단? 교문지, 대적소유오미. 유기죄려, 사기과실, 구기치환, 상기덕형, 교기불급. 소국불곤, 회복여귀. 시고, 작단이소기공, 선고후인, 무태어덕. 소적대유오악. 설기죄려, 청기부족, 행기정사, 공기직공, 종기시명. 불연, 즉중기폐백, 이하기복이조기흉, 개소국지화야. 언용작단이소기화, 소이고자손? 무소화언가야.」
[解釋] 子産이 대답하기를, 「대국이 소국으로 갔을 때에는, 곧 토단을 만들지만, 소국이 대국에 갔을 때는, 집만 지어도 됩니다. 어찌 반드시 단을 쌓아야 합니까? 제가 듣건대, 대국이 소국으로 갔을 때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운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의 죄를 용서하고, 그 나라의 잘못을 사하며, 그 나라의 재난을 주게 하고, 그 나라의 덕과 형벌을 상 주며, 그 나라가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작은 나라는 곤란한 바가 없고, 복종할 것을 생각하기를 귀의하는 것과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단을 만들어 그 공로를 밝혀, 후인에게 널리 고하여, 후인에게 덕을 닦는 데 게으름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소국이 대국에 도착했을 때는 다섯 가지 나쁜 일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죄를 설명하고, 그 나라의 부족함을 요청하며, 대국의 정령을 행하고, 대국이 바라는 공물을 바치며, 대국에서 조회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폐백을 중히 함으로써, 복을 빌고 그 나라의 재앙을 위로해야 하니, 이것들은 모두 작은 나라들의 화입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단을 만들어, 화를 밝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손들에게 화를 밝히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고 했다,
齊慶封好田而耆酒. 與慶舍政, 則以其內實遷于盧蒲嫳氏, 易內而飮酒. 數日, 國遷朝焉. 使諸亡人得賊者, 以告而反之. 故反盧蒲癸, 癸臣子之, 有寵, 妻之.
제경봉호전이기주. 여경사정, 즉이기내실천우로포별씨, 역내이음주. 수일, 국천조언. 사저망인득적자, 이고이반지. 고반로포계, 계신자지, 유총, 처지.
[解釋] 齊나라 慶封은 사냥과 술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들 경사에게 정치를 맡기고, 자기 집의 보물과 처첩들을 노포별의 집으로 옮기고, 서로 아내를 바꿔하며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러므로 며칠 안에, 제나라에서 경봉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가 노포별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경봉은 지금까지 국외로 도망가 있던 자라도 도적을 잡아와서 고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을 전부 돌아오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노포계도 귀국하여, 자지의 신하가 되어, 사랑을 받으니, 자지는 노포계에게 딸을 주어 장가들게 했다.
慶舍之士謂盧蒲癸曰 : 「男女辨姓, 子不辟宗, 何也?」 曰 : 「宗不余辟, 余獨焉辟之? 賦詩斷章, 余取所求焉, 惡識宗?」 癸言王何而反之, 二人皆嬖. 使執寢戈而先後之.
경사지사위로포계왈 : 「남녀변성, 자불피종, 하야?」 왈 : 「종불여피, 여독언피지? 부시단장, 여취소구언, 오식종?」 계언왕하이반지, 이인개폐. 사집침과이선후지.
[解釋] 경사의 부하가 노포계에게 말하기를, 「부부는 성이 달라야 하는데, 원래 경씨와 한 집안인 당신이 종씨을 따지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우리 종시가 나를 버리지 아니하니, 내 또한 어찌 그를 버리리오? 시를 읊을 때 한 구절만 잘라 읊는 것과 같이, 나는 욕구만 채우면 됐지, 종씨를 알아서 무엇 하겠소?」라고 했다. 노포제가 王何의 이야기를 하여 귀국시키며, 두 사람이 모두 경사의 사랑을 받다. 경사는 그들로 하여금 잠자리에서까지 무기를 들고 지키게 했다.
公膳日雙鷄, 饔人竊更之以鶩, 御者知之, 則去其肉, 而以其洎饋. 子雅子尾怒. 慶封告盧蒲嫳, 盧蒲嫳曰 : 「譬之如禽獸, 吾寢處之矣.」 使析歸父告晏平仲, 平仲曰 : 「嬰之衆不足用也. 知無能謀也. 言弗敢出, 有盟可也.」
공선일쌍계, 옹인절경지이목, 어자지지, 즉거기육, 이이기계궤. 자아자미노. 경봉고로포별, 로포별왈 : 「비지여금수, 오침처지의.」 사석귀보고안평중, 평중왈 : 「영지중부족용야. 지무능모야. 언불감출, 유맹가야.」
[解釋] 그때 제나라 경공은 하루에 닭 두 마리씩을 먹었는데, 요리를 담당한 자가 몰래 닭 대신 오리로 바꾸었고, 시중드는 자는 이것을 알고, 그 고기를 모두 빼고, 국물만을 갖다 드렸다. 그래서 子雅와 子尾가 성을 내었다. 慶封이 盧蒲嫳에서 이 사실을 알리니, 盧蒲嫳이 말하기를, 「그것을 금수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그 짐승들을 잡아 그 가죽이나 털을 깔고 자는 격이지요.」라고 했다. 그래서 析歸父로 하여금 晏平仲에게 알리게 하니, 안평중이 대답하기를, 「우리 집안에 있는 무리들은 부릴 수가 없소이다. 그들의 지혜도 또한 같이 꾀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비밀을 누설하지 말고, 동맹을 맺는 것이 옳을 것이오.」라고 했다.
子家曰 : 「子之言云, 又焉用盟?」 告北郭子車, 子車曰 : 「人各有以事君, 非佐之所能也.」 陳文子謂桓子曰 : 「禍將作矣, 吾其何得?」 對曰 : 「得慶氏之木百車於莊.」
자가왈 : 「자지언운, 우언용맹?」 고북곽자거, 자거왈 : 「인각유이사군, 비좌지소능야.」 진문자위환자왈 : 「화장작의, 오기하득?」 대왈 : 「득경씨지목백거어장.」
[解釋] 이에 子家가 말하기를,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찌 반드시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北郭子車에게 알리니, 北郭子車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각기 주인을 섬기는 도리가 있으니, 좌내가 말할 바가 아닙니다.」고 했다. 陳文子가 아들인 陳桓子에게 말하기를, 「화가 장차 일어날 것이니, 내 어찌할꼬?」라고 하니, 진환자가 대답하기를, 「慶氏의 재목 백 수레가 6통 거리에 있으니 그것을 얻으면 됩니다.」고 했다.
文子曰 : 「可愼守也已.」 盧蒲癸王何卜攻慶氏, 示子之兆曰 : 「或卜攻讎, 敢獻其兆.」 子之曰 : 「克見血.」
문자왈 : 「가신수야이.」 로포계왕하복공경씨, 시자지조왈 : 「혹복공수, 감헌기조.」 자지왈 : 「극견혈.」
[解釋] 그러나 진문자는 말하기를, 「근신하며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盧蒲癸와 王何는 사람들이 慶氏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이 성공할 것인가를 점쳐서, 그 점괘를 子之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원수를 공격하고자 점을 친 것인데, 그 징조를 보여드립니다.」고 하니, 子之는 말하기를, 「이긴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피를 볼 것이다.」고 했다.
冬十月, 慶封田于萊, 陳無宇從. 丙辰, 文子使召之, 請曰 : 「無宇之母疾病, 請歸.」 慶季卜之, 示之兆曰 : 「死.」 奉龜而泣, 乃使歸.
동십월, 경봉전우래, 진무우종. 병진, 문자사소지, 청왈 : 「무우지모질병, 청귀.」 경계복지, 시지조왈 : 「사.」 봉구이읍, 내사귀.
[解釋] 겨울 10월에, 慶封이 萊지방에 가서 사냥할 때에, 陳無宇도 따라갔었다. 丙辰日에, 진문자가 사람을 시켜 陳無宇를 부르고, 경봉에게 말하기를, 「無宇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으므로, 돌려보내 주기를 바랍니다.」고 하였다. 慶季가 점을 쳐 보고, 조짐을 진무우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자네 어머니는 죽을 것이다.」고 해서, 진무우는 점괘가 나타난 거북 껍질을 붙들고서 울므로, 경봉은 곧 돌려보냈다.
慶嗣聞之曰 : 「禍將作矣.」 謂子家, 速歸, 禍作必於嘗, 歸猶可及也, 子家弗聽, 亦無悛志. 子息曰 : 「亡矣. 幸而獲在吳越.」
경사문지왈 : 「화장작의.」 위자가, 속귀, 화작필어상, 귀유가급야, 자가불청, 역무전지. 자식왈 : 「망의. 행이획재오월.」
[解釋] 경봉의 친척 慶嗣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난리가 장차 일어날 것이다.」고 말하고, 子家로 하여금, 속히 돌아오라고 하면서, 난리가 반드시 상제를 지날 때에 일어날 것이니, 돌아오면 진압할 수가 있겠다고 했으나, 子家는 듣지도 않고, 또한 뉘우치는 빚도 없었다. 子息이 말하기를, 「망하리라. 천행이 있어야 오나 월 지방으로 달아날 수 있으리라.」고 했다.
陳無宇濟水, 而戕舟發梁. 盧蒲姜謂癸曰 : 「有事而不告我, 必不捷矣.」 癸告之. 姜曰 : 「夫子愎, 莫之止, 將不出. 我請止之.」 癸曰 : 「諾.」
진무우제수, 이장주발량. 로포강위계왈 : 「유사이불고아, 필불첩의.」 계고지. 강왈 : 「부자퍅, 막지지, 장불출. 아청지지.」 계왈 : 「낙.」
[解釋] 陳無宇가 황하를 건너자, 배를 부수어 버리고 다리도 무너뜨려 버렸다. 노포계의 아내 포강이 남편에게 말하기를, 「무슨 일이 있을 때 저에게 고해 주시지 아니하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합니다.」고 하므로, 노포계는 아내에게 사실을 고했다. 그러자 노포강이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성질이 괴팍하여, 말리지 아니하면, 장차 나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서 말리겠습니다.」고 하니, 노포계는 말하기를, 「그렇게 하시오.」라고 했다.
十一月乙亥, 嘗于大公之廟, 慶舍涖事. 盧蒲癸告之, 且止之, 弗聽曰 : 「誰敢者?」 遂如公. 麻嬰爲尸, 慶奊爲上獻, 盧蒲癸王何執寢戈. 慶氏以其甲環公宮. 陳氏, 鮑氏之圉人爲優.
십일월을해, 상우대공지묘, 경사리사. 노포계고지, 차지지, 불청왈 : 「수감자?」 수여공. 마영위시, 경혈위상헌, 노포계왕하집침과. 경씨이기갑환공궁. 진씨, 포씨지어인위우.
[解釋] 11월 乙亥日에, 大公의 사당에서 상배를 지낼 때에, 慶舍도 거기에 참석하려 했다. 盧蒲癸는 그 사실을 알고, 또한 말렸으나, 듣지 않고 말하기를, 「누가 감히 나를 상대할 것이냐?」고 하고서, 곧 경공의 궁중으로 갔다. 제사에는 麻嬰이 제후가 되고, 慶奊이 초헌하고, 盧蒲癸와 王何가 칼을 작고 있었다. 慶氏는 무사를 동원하여 제나라 경공의 궁을 포위했다. 그러자 陳氏와 鮑氏의 하인들이 연극을 시작했다.
慶氏之馬善驚, 士皆釋甲, 束馬, 而飮酒, 且觀優, 至於魚里. 欒高陳鮑之徒介慶氏之甲, 子尾抽桷, 擊扉三. 盧蒲癸自後刺子之, 王何以戈擊之, 解其左肩.
경씨지마선경, 사개석갑, 속마, 이음주, 차관우, 지어어리. 난고진포지도개경씨지갑, 자미추각, 격비삼. 노포계자후자자지, 왕하이과격지, 해기좌견.
[解釋] 그때 慶氏의 말[馬]들은 놀라기를 잘하여, 무사들이 모두 갑옷을 벗고, 말을 붙들어 맨 뒤에, 술을 마시고, 연극을 보러, 魚里로 가 버렸다. 그러자 欒氏, 高氏, 陳氏, 鮑氏의 무리들은 慶氏의 갑옷을 입고, 子尾는 허리춤에서 작은 철퇴를 꺼내어, 종묘의 문을 세 번 쳤다. 그것을 신호로 삼아 盧蒲癸는 뒤쪽에서 창으로 子之를 찌르고, 王何도 긴 창으로 子之를 찔러, 그 왼쪽 어깨를 잘라 버렸다.
猶援廟桷, 動於甍, 以俎壺投, 殺人而後死. 遂殺慶繩麻嬰. 公懼, 鮑國曰 : 「羣臣爲君故也.」 陳須無以公歸, 脫服而如內宮.
유원묘각, 동어맹, 이조호투, 살인이후사. 수살경승마영. 공구, 포국왈 : 「군신위군고야.」 진수무이공귀, 탈복이여내궁.
[解釋] 자지는 그래도 종묘의 서까래를 잡아 패자, 지붕이 우르르 무너지고, 재상 위에 있는 도마와 순행들을, 먼저 사람들을 죽인 뒤에 자신도 죽였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慶繩과 麻嬰도 죽였다. 제나라 경공이 두려워하니, 鮑國이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임금님을 위해서 거사한 것입니다.」고 하였다. 陳須無가 경공을 모시고 돌아가자 경공은, 상복을 벗고 궁중으로 들어갔다.
慶封歸, 遇告亂者. 丁亥, 伐西門, 弗克, 還伐北門, 克之, 入伐內宮, 弗克. 反陳于嶽, 請戰, 弗許, 遂來奔. 獻車於季武子, 美澤可以鑑.
경봉귀, 우고란자. 정해, 벌서문, 불극, 환벌북문, 극지, 입벌내궁, 불극. 반진우악, 청전, 불허, 수래분. 헌거어계무자, 미택가이감.
[解釋] 慶封은 돌아오다가, 난을 알리려 가는 자와 만났다. 丁亥日에, 경봉은 西門을 정벌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또한 北門을 정벌하여, 이기고, 다시 쳐들어가 내궁을 정벌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는 악 지방으로 후퇴하여, 진씨, 포씨의 일당과 싸움을 걸었으나, 상대해 주지 않아,
그대로 우리 노나라로 달아나 왔다. 그리하여 경봉은 季武子에게 수레를 바쳤는데, 그 수레는 아름답고 광택이 나서 거울과 같았다.
展莊叔見之曰 : 「車甚澤, 人必瘁. 宜其亡也.」 叔孫穆子食慶封, 慶封氾祭, 穆子不說, 使工爲之誦茅鴟, 亦不知.
전장숙견지왈 : 「거심택, 인필췌. 의기망야.」 숙손목자식경봉, 경봉범제, 목자불열, 사공위지송모치, 역부지.
[解釋] 이에 노나라대부 展莊叔이 그 수레를 보고 말하기를, 「수레가 너무 윤택하니, 백성들은 반드시 피폐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叔孫穆子가 식사에 초대했는데, 慶封이 제사를 지내면서 공경스럽지 못하므로, 叔孫穆子는 기뻐하지 아니하고, 使工악공으로 하여금 茅鴟라는 시를 읊게 하자, 경봉은 그 뜻도 알지 못했다.
旣而齊人來讓, 奔吳. 吳句餘予之朱方, 聚其族焉而居之, 富於其舊. 子服惠伯謂叔孫曰 : 「天殆富淫人? 慶封又富矣.」 穆子曰 : 「善人富謂之賞, 淫人富謂之殃. 天其殃之也, 其將聚而殲旃?」
기이제인래양, 분오. 오구여여지주방, 취기족언이거지, 부어기구. 자복혜백위숙손왈 : 「천태부음인? 경봉우부의.」 목자왈 : 「선인부위지상, 음인부위지앙. 천기앙지야, 기장취이섬전?」
[解釋] 그러는 동안에 제나라 사람이 와서 꾸짖으므로, 그는 오나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구여는 경봉에게 주방 지방의 땅을 주고, 그의 가족들을 모아다가 살게 하니, 그의 재산이 제나라에 있을 때보다 부자였었다. 子服惠伯이 叔孫에게 말하기를, 「하늘은 악인을 부자로 만드는가요? 경봉이 또한 부자가 되었습니다.」고 하자, 숙손목자는 대답하기를, 「착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을 상이라고 하고, 악인이 부자가 되는 것을 앙이라고 하오. 하늘이 그에게 재앙을 주려고 하는데, 반드시 다른 가족들은 모두 모은 뒤에 한꺼번에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癸巳, 天王崩. 未來赴, 亦未書, 禮也. 崔氏之亂, 喪羣公子. 故公鉏在魯, 叔孫還在燕, 賈在句瀆之丘, 及慶氏亡, 皆召之, 具其器用, 而反其邑焉. 與晏子邶殿其鄙六十, 弗受.
계사, 천왕붕. 미래부, 역미서, 예야. 최씨지란, 상군공자. 고공서재노, 숙손환재연, 가재구독지구, 급경씨망, 개소지, 구기기용, 이반기읍언. 여안자패전기비륙십, 불수.
[解釋] 癸巳日에, 주나라 천자가 죽었다. 사신이 와서 알리지 아니했으므로, 또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예의에 맞는 것이었다. 제나라에서 최저의 난에, 여러 공자들을 잃었다. 그러므로 공서는 노나라로, 叔孫還은 연나라로 가는, 구독의 언덕으로 도망가 있었는데, 경봉이 도망가자, 모두 불러들어, 가제 도구를 주어, 원래의 봉읍으로 돌아가게 했다. 제나라 경공은 晏子에게 邶殿지방 근처 60 고을을 주려 했으나, 받지 않았다.
子尾曰 : 「富人之所欲也, 何獨弗欲?」 對曰 : 「慶氏之邑足欲, 故亡. 吾邑不足欲也, 益之以邶殿, 乃足欲, 足欲, 亡無日矣. 在外, 不得宰吾一邑. 不受邶殿, 非惡富也. 恐失富也.
자미왈 : 「부인지소욕야, 하독불욕?」 대왈 : 「경씨지읍족욕, 고망. 오읍부족욕야, 익지이패전, 내족욕, 족욕, 망무일의. 재외, 부득재오일읍. 불수패전, 비오부야. 공실부야.
[解釋] 子尾가 말하기를, 「부자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인데, 당신만은 어째서 바라지 않소?」고 하니, 인자가 대답하기를, 「慶氏네 땅은 그이 욕망을 채웠으므로, 그는 멸망하였소. 내 본래의 땅이 욕심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邶殿땅을 더 보태어, 내 욕심을 채우면, 그 욕심을 채웠으므로, 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오. 도망가서 밖에 있게 된다면, 나는 한 고을도 차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패전 땅을 받지 않는 것은, 부자 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부를 잃을까 두려워해서요.
且夫富, 如布帛之有幅焉, 爲之制度, 使無遷也. 夫民, 生厚而用利, 於是乎正德以幅之, 使無黜嫚, 謂之幅利. 利過則爲敗. 吾不敢貪多, 所謂幅也.」
차부부, 여포백지유폭언, 위지제도, 사무천야. 부민, 생후이용리, 어시호정덕이폭지, 사무출만, 위지폭리. 이과즉위패. 오불감탐다, 소위폭야.」
[解釋] 대저 부란, 포목의 폭과 같은 것으로, 규격을 만들어 변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소. 또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후하여 한없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바른 덕으로써 욕망의 폭을 규제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게 하는 것을, 幅利하고 하오. 이가 지나치게 되면 패하게 되오. 내가 감히 많은 것을 탐하지 않는 것도, 이른바 幅이라고 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與北郭佐邑六十, 受之. 與子雅邑, 辭多受少. 與子尾邑, 受而稍致之. 公以爲忠, 故有寵. 釋盧蒲嫳于北竟, 求崔杼之尸, 將戮之, 不得. 叔孫穆子曰 : 「必得之. 武王有亂臣十人. 崔杼其有乎? 不十人, 不足以葬.」
여북곽좌읍륙십, 수지. 여자아읍, 사다수소. 여자미읍, 수이초치지. 공이위충, 고유총. 석로포별우북경, 구최저지시, 장륙지, 부득. 숙손목자왈 : 「필득지. 무왕유란신십인. 최저기유호? 불십인, 부족이장.」
[解釋] 北郭佐에게 60 고을을 주니, 그는 모두 받아들였다. 또 子雅에게 읍을 주니, 대부분을 사양하고 일부만을 받아들였다. 子尾에게도 읍을 주니, 먼저 받아 놓았다가 천천히 경공에게 돌려보냈다. 그래서 경공은 그를 충성스럽게 여겨, 사랑했다. 그리고 盧蒲嫳을 북쪽 변경지방으로 쫓아낸 뒤에, 崔杼의 시체를 찾아 벌을 주고자 했으나, 찾지를 못했다. 叔孫穆子가 말하기를, 「반드시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나라 무왕에게는 난리를 잘 다스리는 신하가 10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崔杼에게는 그렇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의 심복 10명이, 한 마음이 아니면 비밀리에 장사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고 했다.
旣崔氏之臣曰 : 「與我其拱璧, 吾獻其柩.」 於是得之. 十二月乙亥朔, 齊人遷莊公殯于大寢, 以其棺尸崔杼於市. 國人猶知之, 皆曰崔子也. 爲宋之盟故, 公及宋公, 陳侯, 鄭伯, 許男如楚.
기최씨지신왈 : 「여아기공벽, 오헌기구.」 어시득지. 십이월을해삭, 제인천장공빈우대침, 이기관시최저어시. 국인유지지, 개왈최자야. 위송지맹고, 공급송공, 진후, 정백, 허남여초.
[解釋] 얼마 되지 않아 崔氏의 신하가 말하기를, 「崔氏의 관 속에 있는 큰 구슬을 나에게 준다면 내가, 그 관을 바치겠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곧 찾아냈다. 12월 乙亥 초하루에, 제나라 사람은 장공의 시체를 침소에서 다시 염을 하여 새 관에 넣고, 헌 관에 최저의 시체를 넣어 시장에 벌여놓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모두 崔子라고 말했다. 송나라에서 동맹을 가졌기 때문에, 노나라 양공은 宋나라, 陳나라, 鄭나라, 許나라의 임금과 같이 초나라로 갔다.
公過鄭, 鄭伯不在, 伯有迋勞於黃崖, 不敬, 穆叔曰 : 「伯有無戾於鄭, 鄭必有大咎. 敬民之主也, 而棄之, 何以承守? 鄭人不討, 必受其辜. 濟澤之阿, 行潦之蘋藻, 寘諸宗室, 季蘭尸之, 敬也, 敬可棄乎?」 及漢. 楚康王卒.
공과정, 정백부재, 백유광로어황애, 불경, 목숙왈 : 「백유무려어정, 정필유대구. 경민지주야, 이기지, 하이승수? 정인불토, 필수기고. 제택지아, 행료지빈조, 치저종실, 계란시지, 경야, 경가기호?」 급한. 초강왕졸.
[解釋] 양공이 정나라를 지나가는데, 鄭나라 임금은 없고, 伯有가 黃崖 지방에 와서 위로할 때에, 백유가 공경스럽지 아니하므로, 穆叔이 말하기를, 「백유는 정나라에서 죽음을 당하지 아니함은, 정나라는 반드시 튼 재앙을 만날 것이다. 공경은 백성들의 주인인데, 그것을 버리면, 어떻게 직책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정나라 사람들이 토벌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다른 재앙을 받을 것이다. 매우 토박한 땅에서는, 작은 개울가의 보잘 것 없는 나물이라도, 그것을 종묘에 바칠 때에, 깨끗한 아가씨가 정성껏 이를 다투면, 그것이 공경인 것이다. 그러니 공경스러움을 어길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 후 양공이 한수에 이르자, 楚나라 康王은 죽었다.
公欲反, 叔仲昭伯曰 : 「我楚國之爲. 豈爲一人, 行也?」 子服惠伯曰 : 「君子有遠慮, 小人從邇. 飢寒之不恤, 誰遑其後? 不如姑歸也.」
공욕반, 숙중소백왈 : 「아초국지위. 기위일인, 행야?」 자복혜백왈 : 「군자유원려, 소인종이. 기한지불휼, 수황기후? 불여고귀야.」
[解釋] 양공이 돌아가고자 하니, 叔仲昭伯이 말하기를, 「우리가 초나라로 가는 것은 초나라 때문입니다. 어찌 그 나라 왕 한 사람 때문에, 가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子服惠伯은 말하기를, 「君子는 먼 생각을 하나, 小人은 가까운 것에 좇는다. 배고픔과 추위를 구휼하지 못하는데, 어느 누가 그 뒷일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잠시 돌아가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고 했다.
叔孫穆子曰 : 「叔仲子專之矣, 子服子, 始學者也.」 榮成伯曰 : 「遠圖者, 忠也. 公遂行. 宋向戌曰 : 「我一人之爲, 非爲楚也. 飢寒之不恤, 誰能恤楚? 姑歸而息民, 待其立君而爲之備.」 宋公遂反.
숙손목자왈 : 「숙중자전지의, 자복자, 시학자야.」 영성백왈 : 「원도자, 충야. 공수행. 송향술왈 : 「아일인지위, 비위초야. 기한지불휼, 수능휼초? 고귀이식민, 대기립군이위지비.」 송공수반.
[解釋] 叔孫穆子가 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말하기를, 「叔仲子는 혼자서 완전히 맡은 바에 사신의 직책을 해낼 수가 있는데, 子服子는 아직도 처음 배우는 자로다.」고 말했다. 또 노나라 대부 榮成伯이 말하기를, 「원대한 계획이 있는 자만이, 충성스럽다.」고 했다. 양공은 드디어 갔다. 宋나라 向戌이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한 사람을 위해서 가는 것이고, 초나라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림과 추위를 구휼하지도 못하면서, 누가 초나라를 구휼할 수가 있겠습니까? 금시 돌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저쪽에 임금이 선 다음에 다시 갈 준비를 하십시다.」고 하므로, 송나라 임금도 드디어 되돌아갔다.
楚屈建卒. 趙文子喪之如同盟, 禮也. 王人來告喪. 問崩日, 以甲寅告, 故書之. 以徵過也.
초굴건졸. 조문자상지여동맹, 예야. 왕인래고상. 문붕일, 이갑인고, 고서지. 이징과야.
[解釋] 楚나라 屈建이 죽었다. 趙文子가 그를 조상하는데 동맹에서 대하는 것과 같이 한 것은, 예의에 맞는 것이었다. 주나라 천자가 보낸 사람이 와서 주나라 영왕의 상사를 보고했다. 죽은 날짜를 묻자, 甲寅日이라고 했으므로, 이것을 적어, 잘못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