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yodXsojRrqI
요사이 제법 글빨이 솟구치다가 늦가을
서리 맞은 배추닢처럼 그 잘난 글빨이 폭삭 사그라지고 있다 .
글이란 건 쓰기 위한 글이 되어서도 안되고
누군가에게 자랑질 하려 해도 안되는 내면의 울부짖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아마 원고지에 올렸으면 수 백장의 원고지를 구겨 버렸어야 했겠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
뱃살에 기름끼가 꼈으니 글이 튀어 나올 턱이 있겠나 !
분주한 일상도 아닌데 허무맹랑하게 하루가 낭비되고 만다 .
묵상이야 졸음을 부르니 사양을 하더라도
참禪 하는 척 , 면벽 하며 적막의 시간 속에서 다시 나를 돌아 봐야지 하는 다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마음만 촐랑거리며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된다.
이럴 땐 손 놓고 있으면 된다고 어떤 잡놈 꼬임에 습작 노트까지 날린 적이 있으니 그저 잡문이라도 끄적거리면서 불쑥 다시 솟구쳐 올 글빨님의 우렁찬 발기를 기다려 본다 .
1979 년 초봄 . 몇 달의 벼락치기 공부끝에 지방직 5급 乙 공무원 시험을 치뤘었다.
대접 받지 못하던 말단의 급여가 세금 떼고
6 만원을 살짝 넘던 시절이었으니 그리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었다.
또 대기 기간도 만만치 않아서 그 사이 전에 다니던 회사의 공장에서 잠시 일손을 덜어 주고 있었다 .
" 정 기사 사우디 한 번 안 가볼래 ?"
공장장 형이 말레이시아 국제건설 ( 두환이에게 날아 간 양정모 회사 ) 현장에서 근무하다 휴가 차 귀국해 있었다 .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귀에 남는 말은 딱 한 마디였다.
" 한달 40만원쯤 벌수 있어 "
귀가 번쩍 ! 심봉사 눈 뜨듯 귀가 번쩍하는 뉴스였다.
어렴풋이 해외 근로자들 수입이 짭잘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열대 햇볕에 검게 탄 얼굴로 자랑질을 하는데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야 야 ~ 그깟 공무원 10 년 해 봤자 내일이 있냐 ? 해외에서 딱 3 년만 뛰면 10 년치 수입이 되니까 잘 생각해봐 "
허간 그 때도 슬근슬근 역마살에 떠돌이 병이 도지고 있던 참이었는데 장작불에 휘발유 , 아니 화약을 때려 붓는 격이었다 .
결국 시급이 괜찮은 직종을 골라서 속성으로 기술을 배우고 몇 달 후 , 오산시에 있던 M 이라는 건설 회사에 실기 시험을 보러 갔겠다 .
웃기는게 될 놈은 자빠져도 여인네 치마 폭에 자빠진다고 수월하게 타일 몇 장 때려 붙히고 떡 하니 합격을 하게 되었다 .
시급도 무려 1 달라 32 센트 .
여튼 그렇게 해서 사우디아라비아 역한 기름 냄새에 토할 것 같은 사막의 땅으로 진출을 했다
< 건설의 역군으로 조국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건설 기능공으로 ....>
이 대사는 그곳 현장 상량식에 소장의 축사를 작성해 준 것 중의 일부분 .... ㅋㅋ
덕분에 O.T 도 더 받았지만 .....
( 중간 생략 / 훗날 그 때 일도 올리겠다만 )
그렇게 지내다 귀국일이 다가 왔다 .
남 들이야 마누라와 아이들 . 식솔들이 있으니 귀국 준비 한다고 이것저것 구입을 하였다 .
SONY 카세트 580. 펜탁스 . 캐논. 쫌 있는 놈들은 니콘 . 등등 ~
나도 뭔가 귀국 선물이라도 해야 할텐데
엄니 . 형수님 . 집안에 여자가 두분이니 또 여자 물건에 대해 깜깜하니 ~참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소니 워크맨 하나 사고 , 니콘 FM2 , 사고 나니 뭐 마땅히 살 것이 없었다.
버스로 세 시간 씩 걸리는 도시 마켓에서 코티 화장품 열 개를 구입했다 .
딱분에 립스틱이 붙어있는 지금 보아도 기발한 모양의 화장품이었다.
껍데기는 빨간 바탕에 장미가 양각으로 새겨진 품격있고 격조 높아 보이는 , 그러니까 제법 있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컴팩트한
여성용 화장품이었다 .
열 개면 거금이다 .
싸구려 야시카 카메라 한 대 가격보다 더 많았다.
왜 ?
왜 ? 열 개씩이나 샀냐구 ?
허긴 지금이나 그때나 정신나간 헛짓꺼리는 일관성있게 저지르는 놈이니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
다 생각이 있으니 그런거지만 .....
뭐 한 개는 엄마 드리고 또 한 개는 형수님 드리고 . 작은 어머님 드리고 나머지 일곱개는 팔아서 장사 한다구요 ?
정신나간 말씀 마세요 .
일곱 개 가지고 혹시나 여인네라도 확실히 꼬셔볼까 하는 애처러운 마음에 거금을 투자 한것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귀국하기 전부터 이상하게 돌아 갔다
" 정 형 ! 딱 분 나한테 두개만 팔어 "
같이 귀국하는 동기가 처제들 것 준비를 못했다고 팔라고 한다 .
귀국일이 내일모레라 다시 시장에 나갈 틈이 없다.
" 싫어 "
" 너 그거 다 쓸거 아니잖아 "
" 나 여자 많어. 옛날 애인들 선착순 줄 세워서 줘야혀 "
" 그러지 말고 팔어라 "
" 싫다구 "
그 녀석은 완강하게 거부하는 나에게 다시 제의를 해왔다.
" 10 리얄 더 붙혀 줄께 "
" 안 돼 , 귀찮게 하지마 "
사실 그냥 제 돈에 주어도 되고 막상 열 개씩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는데 짜식이 맨날 처제 자랑질만 하고 소개 시켜 달래도 뭐 어리대나 어쨋대나 ~
사진을 보여 주는데 그렇게 매력적으로 뽑은 像도 아니었다만 그 자랑질에 아니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
" 그럼 한 개만 팔게 . 20 리얄 얹어 봐 "
결국 40 리얄을 붙혀서 두 개를 넘겨 주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
그 40 리얄은 비행기에서 면세주 두 병을 구입하게 되었다 .
그러면 열 빼기 둘이면 여덟이다 .
" 엄마 ~"
기분좋게 엄니에게 딱분과 영양제를 선물로 드렸다 .
형수님께도 똑같이 딱분과 영양제를 드리고 나니 여섯개가 남았다 .
동생 녀석에게 물었다
" 너 애인 있냐 ?"
" 없어 "
" 한심한 녀석 . 혹시 마음에 있는 여자한테 하나 줘봐라 "
막내는 은행엘 다니고 있었다.
신입 행원이니 일 배우느라 다른데 한 눈 팔 틈이 있었겠나 !
( 요즘은 100% 전산 처리지만 당시만 해도 수기 작업으로 일일결산을 허던 시절 )
그래서 세개가 후딱 날라가고 말았다 .
작은 집. 작은 어머니께 또 영양제 한 개와 함께 드리고 오니 네 개가 남았다 .
며칠후
" 주연아 , 너 그거 남았지 ? 하나만 더 다우"
여자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자랑을 하고 싶어서 몸살을 한다
당시야 외제 화장품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엄니가 친구분께 자랑을 하셨나 보다
" 더 안되요, 저두 애인 생기면 하나 줘야 하잖아요 "
엄마는 기분좋게 한 개를 강탈해 가셨다 .
아들은 기분좋게 강탈을 당하고 말았다.
잘난 코티 분 하나로 엄마 어깨가 올라가시면 그것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나 ?
자꾸 줄어드는딱분 .
이제 꼬부쳐 둬야 할 때인데 형한테 전화가 왔다 .
주인 집을 통해서 왔다.
" 수고 많았다 . 한 잔 받아라 "
귀국 했다고 밥 한끼 산다고 하더니 사돈 드린다고 하나 가져 오란다 .
가방 안에 꼬부쳐 두었던 딱 분 한 개가 또 날아 갔다 .
이런 ~ 이런 ~ 이런 ~
딱 두 개 남은 코티 딱분.
빨리 애인을 꼬셔야 한다
역사적 사명을 띈 채 작업에 돌입해야 했다
더 빼았기기 전에 .....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
여자랑 담 쌓고 살은지가 몇 해이던고 ?
첫사랑 그 애랑 헤어지고 칠 팔년이 되어가는데 .
다시는 사랑 나부랭이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아닌 다짐을 했는데 .....
" 주연아 . 그거 하나만 더 다우 "
" 아 ~ 안되요 . 없어요 "
" 없긴 뭐가 없어 . 내가 봤는데 "
다시 모친마마의 권력 앞에 수탈 당하는 힘없는 아들로 변신을 했다
딱 하나 남은 코티 딱분
그러나 나는 그 놈의 향방을 모른다 .
왜냐하면 두 달이 넘어서 다른 회사로 출국을 하게 되었다 .
내가 바람둥이 였다면 술집 아가씨에게 라도 주었을지 모른다 .
그러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그렇다
어디로 간지 모르는 딱분 한 개도 결국 어느 여자의 볼과 입술을 화려하게 장식 했을 것이다 .
엄니 . 형수 . 작은 어머니 . 사돈에. 엄니 친구분 . 동생 친구 ~ 등등 모두 애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다음 본 귀국할 때에는 사왔을까 ?
안 사왔을까 ?
지금도 잊지 못할 코티 딱분 사건의 전말이었다 .
오 ~ 코티 !!
이제 이 나이에 애인이 생길리야 만무하겠지만 한겨울 눈밭에 복수초 꽃잎처럼 귀여운 할매 애인이라도 만난다면
필히 코티 립스틱이라도 한개 앵겨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