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tylm7Uyx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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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기 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단추만 누르면, 이 신기한 기계는 지가 알아서 뜸까지 들여주니, 세상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를 지경이다.
옛날과 아니 사오십 년 전과 비교해도 그 편리성은 비교 조차할 수 없다.
홀애비 혼자 부뚜막에서 쭈구린채 설거지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아 ! 시어빠진 냄새나는 궁상의 스틸이 아니겠나 !
이런 문화의 발전은 특히 나처럼 혼자 살아가는 이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
콩 한 줌을 물에 불리고 , 냉장고 아랫칸을 뒤져서 보리 한 줌 마저 불려서 검정 쌀 과 어떤 마음씨 고운 할매 천사가( 올 여름 정말 천사가 되었다) 보내준 찹쌀 한 줌 끝으로 쌀과 함께 정성껏 씻어, 뜨물은 냄비에 따라 된장찌개 육수로 덜어 놓고, 그래도 남으면 자반 고등어 한 쪽 툭 담가놓고
십년 가까이 사용하는 쿠쿠 전기 밥솥에 물 조절을 몇 번씩 째려보며 맞추고 또 맞추는 신성한 예식을 거쳐 , 마지막으로 잡곡 모드의 보턴을 콕 !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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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보다, 수제비나 끓인 누룽지가 주식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본다 .
아마 5 학년쯤으로 기억한다 .
여름 방학 이었지.
" 주연아 . 냄비에 쌀 씻어 놨으니 밥 좀 해라 "
엄마는 내게 명령을 내리고 잠시 외출을 하셨다
아마 짧은 시간이었으니 길음동 세명약국 삼거리 독집 대모님 댁에 무언가 전해 주러 가셨으리라 짐작된다.
당시 여름이라 취사용으로 연탄 화로를 사용했다.
나는 무심코 정말 속없이 냄비를 연탄 위에 올려 놓았다 .
한번만, 정말 한번만 냄비 뚜껑을 열어 보았더라면 그 날의 일은 기억에도 없을 것이다.
없는 집구석에서 쌀 한 톨의 의미는 남다르다
질릴만큼 먹었던 수제비가 폄훼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윤기 흐르는 밥 한 공기에 간장 한 숟갈 떠 넣고 김치면 김치 . 장아찌면 장아찌 한 가지 반찬이면 어떠리 !
둘러 앉아 먹는 둥근 소반 주위엔 형제들의 기쁨이 밥맛보다 더 번져 나왔으니 그 위대한 성찬의 기쁨을 요즘 아이들은 알까 모르겠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돌아 오셨다
그리고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엄마의 그 표정에 무언가 무지막지하게 큰 사건이 벌어졌구나 생각했다.
" 와장창 !!"
" 이 놈의 자식 . 밥 좀 하랬더니 "
냄비는 집 마당으로 굴러 깨어지고 마당엔 검은 쌀알갱이들이 폭탄 맞은듯 퍼지고 글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되었다 .
분명 쌀 씻어 놓으셨다고 했는데 .....
나는 안다
엄마의 그 때 심경을 말이다 .
며칠만에 어렵게 됫빡 쌀 사다가 밥 한번 해 먹이려 절반은 냄비에 담고 내게 그 쌀 씻어 밥 하라 하신걸 말이다 .
그런데 아이큐 55 짜리 아둔하고 눈치없고 맹추 같은 나는, 엄마가 쌀을 씻어 물 까지 얹어 놓았는 줄 알았지 뭐야 !!
분노 게이지가 꼭대기 까지 오른 엄마의 매운 손바닥은 아둔한 나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
불꽃이 일었다.
우쒸!! 꽃으로도 때리지 말랬는데 .....
서러움이 밀려 왔다
얼굴은 화끈거렸다 .
마당에 엎질러진 쌀을 줏우려 해도 이미 그 쌀은 쌀이 아니었다 .
" 나가 !! 이 ** 야 ! . 지 애비 잡아 먹더니 에미 마저 잡아 먹어 ! "
갑자기 눈에서 왜 눈물이 나는지 .....
정말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를 잡아 먹었는지 알고 싶었고 그 말은 어린 시절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였고 , 내가 아버지를 죽인 천하의 못된 놈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
형과 동생이 축은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
동생은 금방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세째는 부산으로 내려가 있던 시기였다.
만일 그 때 내 나이가 사춘기시절이었으면 정말 집을 떠났을 것이다 .
국민학교 오학년 .
세상은 온통 두려움의 세계였으니 감히 그런 생각 조차 못할 나이였다 .
그런데 나는 뛰쳐 집을 나왔다 .
" 어디가 ? 이 놈의 ** "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터졌다.
뛰었다 .
눈물이 날렸다 .
어디론가 뛰어야 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상하게 허기가 몰려왔다
물 한모금 목을 축일 곳이 없었다
우리 동네 뒤에는 돌산이 있었다
화강암을 남포를 터뜨려 깨어내고, 석수쟁이는 돌을 쪼아 작게 두부모처럼 만들었던 곳이었다 .
그 작업이 멈춰진 돌산이 있었다 .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애를 밴 처녀가 떨어져 자살을 하였다고했던 그 돌산.
딸 잃은 절름발이 흔들이 아저씨가 술 마시고 떨어진 곳 .
비 내리는 밤이면 죽은 처녀가 귀신이 되어 아기를 찾는다는 사연도 많은 돌산이었다.
큰 나무는 없어도 키 만큼 자란 명아주 숲과 흔해 빠진 들풀과 갖은 곤충들이 밤이면 관현악을 연주 하는 곳이었다
돌틈 사이로 떨어지는 물을 손바닥으로 받아 허기를 채웠다 .
돌산 꼭대기.
높은 곳을 오르면 세상이 훤하게 보인다
멀리 장위동 고갯길에 버스 유리창이 반짝거리며 꼬물거린다 .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나왔다가 그치고 다시 쏟아졌다 .
미안해서 눈물이 나오고
아픈 뺨이 서러워서 또 울고
기억을 더듬어도 흐릿해져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찾으려고 울고 , 세상 슬픔은 모두 나에게만 밀려드는 듯 하였다.
지나가던 산동네 아저씨가 흘낏 쳐다보고 지나 간다 .
고추 잠자리 수 천 마리가 늦여름 파란 하늘을 비행하고 그들도 사라질 무렵 , 황혼이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건너편 서라벌 예대 뒷산을 물들이더니 태양은 무정하게 빨리도 떨어지고, 그새 까만 어둠이 내려 앉았다.
여름이지만 어둠은 춥고 무서웠다 .
" 어디로 가야 하지 ? "
밤이면 우는 베짱이가 삼베 길쌈하듯 여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
총총 뿌려진 하늘의 별 .
아직 안경을 쓰기 전이라 얼굴을 찌푸린채 시신경을 모아야 볼 수 있던 여름밤의 별자리들 .
입안엔 까맣게 물이 들었다
저녁 때쯤 이르게 익어버린 까마중 몇 개를 따 먹었나 보다 .
" 주연아 ~. "
" 주연아 ~"
" 언니 ~~~"
언니라고 부르는 막내의 목소리가 저 아랫쪽에서 들려왔다 .
엄마와 형 동생이 나를 찾아 나왔다 .
열두 살 나에게 그 어떤 선택권은 없었다
자수하는 탈영병의 지친듯한 모습으로 산을 내려왔다 .
땀 찬 고무신이 미끌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
다만 내년이면 입학할 동생만이 내 손을 꼭 잡고 놓치지 않았다 .
엄마는 저녁밥을 차려 놓으셨다 .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안 먹겠다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또 손바닥이 날아 왔겠지만 ....
폼푸를 길어 세수를 하고 다리깽이를 씻었다
속으로 울다가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도 울었는데 .....
허기가 길어지면 그 다음엔 배고픔마저 잊게 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
자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먼훗날 나 아비되고 알았지만, 그때의 그 쓸쓸함은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었다 .
마루 바닥에 쓰러진 채 길고 긴 잠에 빠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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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가 지난 후 엄마는 도시락을 만들어 시내로 팔러 나가셨다.
밥 장사를 하니 일단 굶지 않았고 처음 보는 반찬들을 맛 보게 되었다
갖가지 국부터 제육볶음 . 생선조림 . 계란말이. 여러가지 나물들 .
나는 효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목재소에서 화목을 사 오거나 도시락 설거지를 맡아 하였다 .
그렇게 먹는 것에 대한 불안은 꺼져 갔지만 이후 나를 혼돈의 세계로 몰고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
언제 이 부끄러운 고백을 써야 할 날이 있겠지만 말이다 .
장작을 때워서 솥밭을 짓고 뜸을 들이고
뚜껑을 열면 엄마는 언제나 기도를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와 무탈의 기원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
빤히 쳐다보는 나에게 엄마는 자식에게만 보일수 있는 그런 미소를 보여 주었다.
참 이쁜 엄마의 얼굴이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내가 밥을 지을 때에도, 내가 그 자리에 있을라치면 나도 성호를 긋고는 하였다 .
그때의 기억은 아름다웠지만 당시 그 성호의 의미를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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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된지 벌써 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사고로 일 년을 넘게 고생한 아이들의 밥 담당은 나 였다.
물론 그 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성호의 의미를 모른다.
하나 둘 . 아들과 딸이 곁을 떠난 후
다시 혼자 남은 날의 밥짓기는 며칠에 한 번쯤 걸러 뛰게 되었다 .
전기 밭솥의 뚜껑을 열면 기름지고 반짝거리는 밥에는 모락모락 김이 솟아 오른다.
거룩한 마음과 경건한 손길로 성호를 그어본다.
" 주님 . 제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 당신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
당신이 주신 이 양식처럼 저도 어느 허기진 이에게 밥으로 다가가게 하소서 . 누군가에게 밥이 되는 은총을 주소서 .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 아멘 "
우리에게 정신적 스승이셨던 김 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 떠오른다.
생전에 가난한 이에게 밥이 되고자 하셨던 가르침대로 가슴에 그 말씀을 새긴다.
이제 성탄이 며칠 남지 않았다 .
매년 반복되는 나와의 약속. 스스로 짓고 쌓지도 못하면서 허물어지는 텅빈 그릇에 남은 삶,
어느 것을 담아 드려야 할지 .....
부끄러운 날의 고백을 올려 본다 .
마음만 늘 앞서는 행동하지 못하는 빈손같은
오늘의 부끄러움을 언제나 채울지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