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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바.보조.고문단(SG)13:17 새글
하느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첫째 계명이고 둘째 계명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던 제가
<거내영>을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지식으로
눈이 뜨여지고 귀가 열렸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셨지만,
뒤틀리고 교만하고 불충한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조차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죽도록 죽기까지 내맡겨드리겠다는
저의 고백을 들으신 아버지께서
나의 황량했던 내면 안에 사랑의 길을 내어주시네요~
"애매하고 어둡고 일정한 모양이 없"는 사랑이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를 통하여
살아있는 눈으로 귀로 말로 행위로
"포괄적이고 사랑이 담긴 지식"이 되어지다니요!
참으로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만이
끊임없는 저의 사랑가가 되었습니다.
이 부족한 자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지향으로
새로 살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죽을 목숨이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더 더 뜨거운 아버지기도로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해드리고 싶습니다.
지도사제 10.08.09 10:50
내맡긴 영혼들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無가 되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든 생활의 습관까지도 모두 "에포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포케"한 사람들이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바로
"느낌(feel)"입니다.
멈춰야 느낌 속에서 울려 나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육이 이리저리 움직여 시끄러운데
어떻게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멈출 때야 비로소 자꾸 느낌이 주어지게 되고,
주어진 느낌들이 날카로운 영적무기로 거듭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아님말구"를 자꾸 체험시켜 주십니다.
아님말구를 통해 날카롭게 갈아진 느낌이 바로 "영감"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멈추는 영혼에겐 "靈感"으로 말을 걸어오시고,
"영감"으로 당신 가까이로 데려가십니다.
멈추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대화법이 바로
"영감"임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님말구를 통하여 만들어진 영감은
그때부터 거의 아님말구가 사라집니다.
이때가 가장 영적으로 위험할 때인데,
그럼에도 내맡긴 영혼들에게는
그리 겁나는 시기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마저 기꺼이 받아 주신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맡김은 신비"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맡긴 영혼은 내맡김으로
벌써 "신비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지도사제 10.09.19 08:39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어떤 노력과 기술과 방법들"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의지와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간의 노력보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한 "인간의 이끌림"이 중요하며,
그 이끌림이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기술이 아닙니다,
방법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는
그분의 "이끄심에 이끌리는 것"이
바로 "노력"이요, "기술"이요, "방법(법칙)"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얼마나 충실히 이끌려 드리느냐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분에 대한 "사랑"에만 집중하십시오.
그 사랑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분의 음성이 가까이 들리게 됩니다.
"느낌"을 통해서, "영감"을 통해서 말입니다. >
바로 그겁니다.
생활 속의 작은 느낌(feel)들을 소중히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바로 영감(inspiration)입니다.
영감은 뭐 그리 커야 하고 이상해야 하고
신비로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죠.
거룩히 살며 짝은 느낌들을 소중히 여길 때,
그 느낌들이 "신비로움"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많은 "아님말구"를 통하여,
"거룩한 영감"이 완성됨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느낌"을 소중히 하는 겸손한 이들을
당신 가까이 불러 주십니다.
똑똑한 이들은 느낌을 기다리지 않고
자꾸 지가 무얼 하려고만 합니다.
"하느님은 동물에겐 본능을 인간에겐 영감을 주셨다" >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느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느낌을 말입니다.
느낌을 소중히 하고 느낌을 느끼려면
생각과 경험과 지식(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버리는 가장 쉽고 탁월한 방법이
제가 그토록 외치고 있는 <끊임없는 화살기도>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가 생각을, 경험을, 지식(방법)을 없애주며
올바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올바른, 정확한 느낌을 얻기 위해서는
<아님말구>를 거쳐야 합니다.
자신이 올바른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여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 즉시 <아님말구>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님말구를 여러 차례(영혼마다 다름) 거치다 보면 영적인 느낌,
소위 靈感을 얻게 됩니다, 靈感을!
그다음부터는 받은 靈感대로, 영감을 따라가면 됩니다. ]
이제 이렇게
< 끊임없는 화살기도 >로 정화된 사람들 안에 찾아오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영혼을 서서히 정화시키신다.
세례 후 그동안 자신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사랑해 드리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욕심대로 살아온 그를
★<완전한 회개의 길>★로 이끄신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아니, 자기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이
자기의 참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만들어 주신다.
그 사람 눈에서는 뜨거운 통회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주신다.
영혼 깊은 곳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께
뜨거운 찬미와 찬양이 그치지 않는다. ]
지도사제 17.12.02 20:48
두 달 전, 내가 아는 지방 교구의 어느 후배 신부가
에니어그램의 창시자이며 <벌거벗은 지금>의 저자인
<리처드 로어> 신부가 그 책에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 성직자가 많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후
자신도 그 중의 한 사람임을 깨닫고 큰 쇼크를 받아,
자신의 사제생활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리차드 로어 신부는 그 책에서
"하느님 체험 없는 성직자는 남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없었기에,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신자들을
<성당생활과 성사생활>에 기대는 존재로 만들고,
'프로테스탄트'는 신자들을
<테크닉으로서의 신앙>에 기대는 존재로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전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해> 전할 뿐이다.
그러니 지도자의 가르침에 <힘>이 없고
<교리>와 <이론만> 있을 뿐이다. ]
[ ■ 내맡긴 영혼은 ■
나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한다.
지도사제 10.08.03 00:51
(..)
기도는 "빌祈와 빌禱"의 글자로 이루어졌다.
뭐가 자꾸 필요해서 神에게 달라고
자꾸자꾸 빌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얼 해 달라고 비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정말 많은 "지극 정성"과 거기에 또 "돈"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무당에게 찾아가서 뭘 빌어달라고 빌 때는
들어가는 돈이 정말 만만찮다고 한다.
비는 일에 따라 때로는 집 한 채의 거액이나 아니면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은 그냥 날아간다고 한다.(..)
개신교에서 성도들이 평상시 개인의 만사형통과 천국을 빌기 위해서도
십일조의 큰돈이 들어가야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참으로 복도 많지~~~
제가 어린 시절 저의 어머니로부터, 주일학교 수녀님으로부터,
소신학교 때의 신부님으로부터, 대신학교 때~~~~
우와! 쩡말 지겹게도 들어온 말이 이말, "기도하라!"는 말이다.
증말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다. 우~~ 쩐다 쩔어~~~
그리고 영성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왜 그리 기도를 그렇게 쪼고 있는지?
고스톱할 때도 화투갲고 너무 쪼면
그냥 싸뻐릴 확률이 아주 높은데 말이다.
기도하고 부르스 댕기는 시간이 길믄 길 수록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히 자알 살아가는 싸람으로 착각하는
우리 교회 풍토를 과연 누가 만들어 왔는가?
분명히 거룩하신 성인들께서 한 몫을 하셨고 무엇보다 그 성인들을 이용해
밥블어 먹는 싸람들이 아주 큰 몫을 거들었음을 저는 말하고 싶다.
아님말구!
기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기도가 본시 읎었던 옛날의 금잔디 동산인 에덴을 회복하여
그곳에서 하느님의 발자욱 소리도 들어가며 그냥 살믄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순리"라고도 말하는 모양이다.
순리를 따를 땐 하는 일이 모두 순조롭고 물흐르듯 하다.
순리를 역행하면
무지(無知)무지(無智)하게 힘만 들뿐이다.
무엇이든 잘못되었으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도가 그토록 죽을 때까지
어려운 것이라면 분명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기도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끈기있게
그 어려운 과정을 무릎팍이 썩어져라
욜씸히 하다보믄 "문리"가 틀 날이 올 것이라고
거짓뿌랑을 늘어 놓는다믄
이 담에 큰 행님 앞에 나설 때 아주 큰 코 다칠 줄 알아야~~
예수님께서
"가끔" 따로 한적한 곳을 가셨지 "맨날" 가신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최후의 가장 중요한 역사를 앞두고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에
깨어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지 "
맨날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남편과 새끼덜
어떻게 자빠져 자고 있는지도 모리면서
밤을 붙들고 맨날 밤부르스를 땡기면
하느님이 로또를 맞게 해 주시나
아니믄 하느님이 내 가심 속으로 쏙 들어오셔서
영원히 내 곁에서 빠져 나가지 않기라도 해 주시나?
회복해야 합니다, 원상회복을~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그 상태를 말입니다~
그 상태를 회복하면 기때부터 "기도가 살아 집니다."
기도를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게 됨으로 그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랑나눔"입니다.
서로 사랑을 느끼고 서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끊임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1테살5,16)
사랑이 끊기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맡기면 하느님이 내 안에서 영원히 빠져 나가지 않으십니다.
내 안에 항상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 합니다.
그러니 기도(사랑나눔)가 끊길 수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기도를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맡김"은 인간의 모든 실수를 인정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완죤히 쏙 들어간 상태를
회복시켜 주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내맡기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이 완죤히 다 하느님의 것이 되고,
왜? 하느님이 나의 모든 죄와 부족을 다 받아 들여 주셨기에,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됨으로
내 것이 곧 하느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소위, "내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방법은 이 방법이 가장 훌륭하고
사실 이 보다 더 뛰어난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기도요,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작은 예수님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기도요,
성무일도가 섭섭함을 느껴도
하느님의 뜻이 성무일도를 벗어나
당신이 주신 일과 사람으로 이동했음을 확신하며
어느 기도에도 얽매임 없는 삶!
특히, 기도를 살아 가는 삶!
내맡김으로 "참자유"를 선물로 받은 이들만 누리게 되는 삶!
그것이 바로 "자유기도"인 것이리라! ]
[ 지도사제 2019.06.23.
(..)
하여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내맡김>과 <끊임없는 기도> 이 두 가지이다.
<첫째>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은 다
하느님께 내맡기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내맡겨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반드시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하느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을 신앙인이라 말할 수 있나?,...
<둘째>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 후,
가장 중요한 것이 <끊임없는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는 또한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의 <영과 육의 정화>를 위해
매우 소중한 도구이다.
끊임없는 기도는
그런 과거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들을 정화시켜
나날이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켜 준다.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로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항상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교회교리서,
제4편1부 그리스도의 기도
2712 관상 기도는 하느님 자녀의 기도이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고 더욱 사랑하여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바라는 용서받은 죄인의 기도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우리의 사랑 역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것임을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는, 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더욱 깊이 일치함으로써,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에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것이다.
2714 관상 기도 안에서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신다.
이로써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게 되고,
우리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
기도에 대해 이렇게 확실하게 정리한 것은 처음 본다. (테바)
< ▣ 주일강론
연중 제18주일(2011,7,31), 하느님 체험 없이는
지도사제 11.07.29 16:09
영적인 '깨달음'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이나 마찬가지이다.
예로부터 깨달음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부터 깨달음을 전수 받는 것이 가장 쉬운 일
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 깨달음을 얻으려는 많은 이들이
깨달음을 깨달은 훌륭한 스승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과 12제자들이나 72제자들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장 올바른 길, '참 진리를 찾아 얻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의 참 진리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있어서의 참 진리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아 얻는 일'이다.
바로 '하느님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 체험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이다.
제가 그래서 여러분께 그토록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아 얻기를 호소하는 것이다. >
[ 지도사제 16.10.05. 09:24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때로는
,
,
엄청 이끌어주십니다, 왕창
왕창 열어주십니다,
< 靈眼 >을 왕창 말입니다.
소위 < 明悟 >가 열립니다,
아니 명오를 열어주십니다.
저는 처음엔 < 영안이 열린다 > 는 것이 그런 것인 줄을 잘 몰랐습니다.
저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는 <영적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영적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영안을 <먼저>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
《 지도사제 2022.01.11
[제가 잘나고 모든 것이 여러분보다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타종교의 깨달음에 있어서도 <가르침의 스승>이 필요하듯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영적지도자 사제>가 필요합니다.]
제가 5년 동안 살던 지리산을 나와 지리산 작은 마을을 시작으로
제가 거쳐간 문정동 성당(2011년), 동경한인성당(2012년), 강동성심병원(2015년) 그리고
삼성산 피정의 집(2018년)에서 은퇴(2019년)를 하게 된 모든 곳의 성직자, 수도자들은
저를 무지 싫어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육의 형제 친척들, 친구 신부, 선후배 신부, 교구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12년 동안 이곳을 거쳐간 7천명이 넘는 신자들도 다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한 번 이해욱 신부에 대해서 물어보십시오.
그들의 입에서 사이비 영성을 전하는 교주 신부니 성질이 못됐느니 등등
저를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ㅋ
저는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저의 내맡김의 삶의 시작부터 그런 생각을 아예 집어치워 버렸습니다.
저는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어와서
아마도 무~지 오래 살 것 같습니다. ^ ^
그리고 저는
오래 살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죽으면
여러분의 영적지도를 어느 사제가 맡아 줄 수 있겠습니까?
저의 개인적 고해사제도 처음엔 거내영을 잘 받아들이는 듯하더니
그게 아니어서 이미 오래 전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영성의 최고봉인,
주부적(수동적) 영성인 거내영을 지도하려면
영성수준이 적어도 거내영 사도단 이상의 소유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영적지도가 불가능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버지께 저의 후임을 보내 주십사 바래 왔지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가까운 기간 내에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지도할
부드럽고 친절하고 상냥하신 제 후임 지도신부를 보내주실 때까지
오래오래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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