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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거내영 이론 ㅣ 무화 >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Q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이단이 아닐까?
Q 2. 개인의 신심행위를 공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
(2)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
Q 3. 끊임없는 화살기도만 강요한다.
Q 4. 묵주기도를 못 하게 한다.
(3)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Q 5. 봉헌을 강요한다.
(4)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
Q 6. 반복 교육
Q 7. 앵무새 같은 댓글들과 구호
댓글 쓰는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군대 같은 느낌이 든다.
Q 8. 가톨릭이 아닌 타종교, 뉴에이지 강의를 듣도록 지도한다.
Q 9.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을 갈 수 있다.
Q 10.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Q 11. 그냥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5) 카페운영규정
Q 12. 댓글 지도에 너무 치중한다.
Q 13. 조금만 잘못해도 강퇴시키고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Q 14. 댓글 쓰는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군대 같은 느낌이 든다.
(6) 영적지도
Q 15. 영적지도가 너무 강하다.
(7) 기타
Q 16. 동경 한인성당에 계실 때 “신주쿠 북카페”(2014년)에 대한
영적지도 사제에 대한 헛소문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한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집회 15,1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시기를"(집회 15,14)원하셨고,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1743항)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19항)
“인간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하는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순종으로 응답한다.
신앙의 순종은
하느님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고,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보증하시는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25항)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이해욱 신부님이 만들어낸 개인적인 영성이 아니라,
이 신부님이 병을 얻고 2006년 2월,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면서 얻게 되었던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체험하였던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만난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뜨겁게 만난 사람들은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만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해욱 신부님에게 찾아주신 하느님께서도
더욱 많은 영혼들에게 찾아가시기를 강하게 요구하셨고,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요청에
신부님의 모든 것을 다하여 기쁘게 따라드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신부님께 바라시는 그 요청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며,
신부님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소명을
생명을 다하여 완수하시고자 전국 각지로 강의를 다니시다가
2009년 12월 다음(Daum) 포털에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 카페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테살로니카 1서 4장 3절에 나와있듯이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며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지만,
말과는 달리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또한 사실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머리나 지식으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 배우자, 자녀, 재산, 신분 등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의 주인도 하느님이심을 굳게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요구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 드리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하느님 앞에 봉헌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뜻대로 살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봉헌한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삶에서 기도가 끊기지 않아야 하며
그래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권유하는 기도가 바로
“화살기도 성가”입니다.
이 성가 이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모든 성가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되풀이되는 화살기도처럼
마음속으로나 입으로나 끊임없이 노래(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 신부님의 체험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험이라고 말했듯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과거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하느님 신앙의 근본 영성'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 뜻대로 살다가 믿음의 조상이 된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또한
하느님 뜻에 순명으로 대답하여
하느님의 어머님이 되신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하느님 뜻에 순명으로 태어나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 순명으로 돌아가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또한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 "작은 길(Little Way)"을 저술한
<성녀 데레사의 영성>이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결코 새롭지 않은 아주 오래된 최초의 영성이면서도 "새로운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성이 그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이해욱 신부님이 지리산 생활에서 체험한 '하느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장 삐에르 드 코사드), '거룩한 위탁'(동 비딸 러오데)
이 두 서적이며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고,
거룩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여 내맡겨 사는 삶은
자연히 거룩한 삶이며,
그 삶이 바로 내맡김의 삶,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 * *
그동안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는
2016년에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며 변화된 신자들 33명이
'가톨릭출판사'를 통해 증언집을 출간했고
지금까지 8쇄, 1만 6천 권을 발행했습니다.
이 책은 가톨릭출판사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한 증언집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민범식 신부님의 감수를 받아
<끊임없는 기도모임>이라는 평신도 (사립)단체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9년 10월에는
'가톨릭 출판사'에서 이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지금까지 4쇄, 9천 부가 발행되었으며
이 책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께서
해외 신자분들을 위해 영어로 번역해 주신 덕분에
6월 말 영어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2020년 11월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의해 <온라인 화상 나눔>을 시작하였고
이 화상 나눔에는
서울대교구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 또 해외 신자들까지 함께 하여
뜨거운 나눔의 장을 이루었는데,
온라인 특성상 교구를 망라한 이 화상나눔은
단체 사목을 관장하는 교구 행정지원팀의 허락과 지원을 이미 받은 바 있습니다.
<끊임없는 내맡김 화살기도 성가>들은
모든 곡이 화살기도문 감수는 물론이고
서울대교구 출판검열위원회로부터, 출판승인을 받았습니다.
* * * * * * * * *
Q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이단이 아닐까?
그동안 <거내영>의 글들이 온라인상에서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고 있고,
거내영에 들은 신부님들이 많은데,
'이단적인 요소'가 아니라
교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소지가 있는 글이 있다면,
벌써 옛날부터 '이단으로 공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모신심에 대한 어리석은 판단'으로 떠드는 사람들과
'영적지도 사제에 대한 험담'은 있었을 지언정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자체에 있어서는
그 어느 신부님들도, 주교님조차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Q 2. 개인의 신심행위를 공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
거내영은 이 신부님의 <개인의 신심행위>가 아닙니다!
<하느님 신앙의 근본 영성>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한글이며,
한자로는 "委托 (위탁)의 靈性"입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의탁의 영성"이 "위탁의 영성"이며,
위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
더 정확히 말해서
하느님께 맡기기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이해욱 사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하느님 신앙의 영성" 입니다!
또한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그리고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작은 길(Little Way)"이야 말로
<내맡김의 영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적지도 사제의 말씀
어떤 분께서는 제가 전하는 "내맡김의 영성"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그렇지, 결코
어디서 새로 생겨나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영성"이 전혀 아닙니다.
왜 이미 널리 알려진 신앙(위탁의 영성)을, 한 사제가 하느님을 만난 체험을
<주교회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도 교회의 전통 영성으로 하느님을 만난 체험과 그에 대한 <증언>을?
아무나 얻을 수 있는 보물은 보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목숨까지도)을 다 내맡긴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대충 얼렁뚱땅해서 하느님을 소유하려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느님을 <싸구려 취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는 거내영에 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미!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당신은 하느님을 체험하셨습니까?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한 적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습니까?
(2)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7-18)
유래
우리 교회는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어떻게 하면 늘 깨어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왔었고
그 방법으로 주님의 기도나 시편 등 성경의 짧은 구절들을 외워
모든 시간을 ‘끊임없이 기도’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상태'를 살고자 하는 시도로
기도에 직접적으로 바쳐진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였고
러시아 전통에서 교부들은 분심을 피하려고
행위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음에 이런 습관적 자세를 부여>하기 위하여
구송기도로 그것을 지속적으로 암송함으로써
반복해서 하는 짧은 기도를 창안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내용의
예수기도가 탄생되었고
'러시아의 순례자'에서는 <반복해서 하는 짧은 기도>의 효과에 대하여
"점차 3.000번에서 6.000번으로, 마침내는 12.000번으로
더 이상 회수를 셀 수 없이 예수를 부르다 보면
입술은 잠자는 중에도 저절로 움직이다가
그 움직임이 입술에서 혀로, 혀에서 심장으로 옮겨가 심장 박동과 하나가 된다.
기도를 자기 심장 박동에 일치시키는 사람은 절대로 기도를 멈출 수 없다.
기도는 사실상 존재 자체의 활발한 작용이 된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예수기도>가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의 전신입니다.
도움말
【 “성서는 불가능한 어떤 것도 명령하지 않는다.” (증거자 막시모) 】
【 “기도를 필요한 일들에 결합시키고, 일들을 기도에 결합시키는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한다." (오리게네스) 】
"피곤함도 분심도 기도 행위의 외적인 지속을 방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도의 삶은하나의 상태, 하나의 정화(katastasis), 하나의 습관적 마음 자세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 이런 습관적 자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까시아노) 】
【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열렬히 주님을 불러라.
성당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노동과 식사 중에,
그리고 너의 잠자리 위에서 중단 없이 이것을 하여라.
한마디로 눈을 떠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렇게 하여라.
정확히 햇볕에 어떤 것을 쪼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영적인 세계의 태양이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이 기도를 통해 마음으로 들어가 갈망했던 목표에 도달할 때,
너의 무질서한 생각들이 멈춰지고
네 영혼의 움직임들을 이끌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은둔자 테오파네 - 필로메노 아빠스의 가르침) 】
【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기도문을
염불 외우듯 쉬지 않고 되풀이 하는 "예수의 기도"를 권장하고 있다."
(인류의 스승 헨리 나우엔) 】
【 "끊임없이 하느님을 열망하고, 짧지만 열렬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화살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은 하느님과 친밀해지며,
우리 영혼은 하느님 현존의 향기에 흠뻑 젖게 됩니다.
화살기도는 세상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쉽게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신심 생활 입문 ) 】
【 "돈 보스코는 화살기도를 가리켜 '상인(商人)의 기도'라고 부른다.
'세상 한복판에서 활동하는 이의 기도'라는 뜻이겠다.
하루의 바쁜 일과 중에서도 짧은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의 애정을 주님께 쏘아 올리는 것이다."
(스콧 한 - 가톨릭 신앙의 40가지 보물) 】
【 "자꾸자꾸 반복하여 말하고 되뇌어라!
수시로!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이 기도이다."(토머스 머튼) 】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61)
입술로 아멘 ㅣ ‘아멘’ 고백, 먼저 입으로 하는게 중요!
발행일 : 2014-03-23 [제2887호, 13면]
반복된 말의 효과를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 ‘아브라카 다브라’ 다.
히브리어 ‘아브라카 다브라’ 는 “말하는 대로 된다”는 뜻이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말하다’를 뜻하는 ‘다바르’ 동사다.
성경에서 ‘다바르’의 힘은 무한이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한다.
하느님이 “빛이 생겨라”라고 ‘다바르’ 했더니
빛이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것들도 ‘다바르’를 통해 같은 형식으로 창조된다.
글자 그대로 ‘아브라카 다브라’, 말하는 대로 된다!
이렇듯이 말은 창조력을 지닌다.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민수 14,28).
줄여 말하여, ‘아브라카 다브라’, 말하는 대로 된다!
성가를 자주 부르면 그 은혜로운 노랫말들이 우리 내면에 체화된다.
그것들이 저절로 내면에 차고 넘치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
* * *
내용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끊임없는 기도를 말로만 하게 되면 힘이 들고 지루해지기 쉽기에
여기에 운율을 붙여 부르기 쉽게 성가로 만든 것으로
집중해서 오래 부르게 되면
성가가 우리의 몸과 영혼에 배어
기도가 단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게 되는
기도를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쉽고도 탁월한 방법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의 내용은
<내가 믿는 하느님은
나를 포함한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그러한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시기에
<나는 다른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오직 그분이 알아서 나를 처리하시도록
나의 모든 것을 그분께 내맡기겠다>는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성가로 된 화살기도>는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단 하나의 기도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내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간절히 염원하는 내용인데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기도>이며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 즉 내 안에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고
<반드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위탁(내맡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자비를 구하는
그 옛날 동방정교회에서 유래된 <예수기도>보다
개념이 더 확장된 기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 * *
실행 방법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는
이 화살기도를 습관화하기 위하여
24시간 끊임없는 기도가 돌아가도록
<아침 기상 전 기도>, <하루의 첫 성호경 기도>, <취침 전 기도>와 함께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4대 의무기도>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로부터 유래한 <100일 기도>와
<인간이 무엇이든지 마음을 먹은 것을 3개월만 실천, 능구(능히 지속)하면,
모든 방면에서 달인이 되고 성인이 된다>는 중용의 말씀과
그밖의 다른 수덕생활 <영성 수련가의 경험>과
<과학 상식>과
<영적지도 사제의 체험>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오직 하느님께만 집중하기 위하여
그동안 해 오고 있던
인간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도들은 모두 화살기도 지향에 넣고
하느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
주님의 기도의 핵심 요약인 <내맡김의 화살기도>만 100일 동안 할 것을
권하며 이를 <능구 3개월>이라 합니다.
화살기도를 3개월간 집중하여 끊임없는 화살기도가 습관화된다는 것은
자신의 온 존재에 이 성가가 배어 삶이 기도가 되어
지속적으로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됨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하루 중 비어 있는 순간은 물론이고,
집안일을 하면서 또 잠 잘 때도 깨어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능구 3개월의 기간이 끝나 기도가 생활화되면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어
주님께서 해야 할 기도를 이끌어 주시는 대로 하면 되는데
화살기도로 내 안에 오셔서 자리 잡으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전에 비해
성경과 가까워지고 묵주기도도 더욱 감미로워지고
기도하는 것이 재미있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기도> 없이는 어느 누구라도 신분과 관계없이
절대로 하느님 가까이로 나아갈 수 없으며
또,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만큼
끊임없는 기도를 가능케 하는 쉬운 방법이 없습니다.
* * * * * * * * *
Q 3. 끊임없는 화살기도만 강요한다.
Q 4. 묵주기도를 못 하게 한다.
화살기도를 강조 하니까 많은 분들이
마치 다른 기도를 무시하라고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데,
그것은
이 카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몇 번 읽어 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정말 화살기도는 "주님의 기도"의 보충이며,
주님의 기도를 생활 속에 생활이 되게 하는 기도입니다.
어떤 훌륭한 성인이 사적 계시를 통해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어떤 훌륭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하더라도,
그 기도가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윗 자리에 서거나 더 훌륭한 기도라 우기면
그것이야말로 "이단"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 1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님의 "주님의 기도"를 듣고 계실 뿐 아니라
더 깊은 주님의 기도 속으로 빨려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다른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이며
주님의 기도 이외에 사실 다른 기도는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모든 기도를 다 끊어도 좋을 만큼
'주님의 기도'가 가장 완벽한 기도이며
그 기도의 핵심요약이기에 불안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단 3개월 동안만입니다.
무슨 일이든 3개월을 집중하면 그것이 아주 몸에 배이게 되며,
그 효과도 3개월이 지나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개월 후에는
잠을 자면서도 화살기도가 저절로 입에서 마음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내맡김의 영성(삶)'을 살기 위한 각오와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함
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겁니다.
모든 기도를 끊고 3개월간 화살기도만 하는 이유는
더욱 깊은 내맡김에로 이끌어 드리려함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원하시는 대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밝혀진 것처럼,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것뿐입니다..
( 참고로 무형의 성전에서는 성모의 달 5월에
합동 <성모성가 1단 묵주기도>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
도움말
【 "인간이 무엇이든지 3개월만 실천하면,
달이면 달마다 날이면 날마다 변함없이 굴러간다."
"무엇이든 마음을 먹은 것을 10년, 100년을 지속하라는 것이 아니다.
겨우 3개월만 지속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이든지 마음을 먹은 것을 능구(능히 지속)하면,
모든 방면에서 달인이되고 성인이 되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11강(능구와 3개월) 중에서) 】
【 글라라수녀원에서 펴낸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이라는 책에
수덕생활 영성 수련가의 경험에도
3개월 정도면 기도의 효과를 본다고 했다.
"3개월 동안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영혼은 틀림없이 완덕에 도달한다."
(베르니에,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
【 90일을 한 기간으로 정하여 오로지 수행의 도만을 해야 한다.
즉 90일 동안 몸으로는 항상 수행하되 휴식함이 없어야 하고,
입으로는 항상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쉬지 말아야 한다.
(염불의 공덕 p.88) 】
【 세포수명을 고려할 때
현재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은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건강관리를 해야
몸 전체의 세포가 새롭게 바뀌면서 몸도 변한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부실한 세포를 좋은 세포로 만들려면 순수 자연식의 음식이 들어가야 하고,
기혈의 순환과 기운이 좋아지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며,
생명력과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평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보름, 혹은 한 달 정도 무엇인가를 해보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꾸준히 최소 3개월 혹은 6개월을 열심히 매달려야 한다.
(HANNGILL`S FITNESS CENTER 세포의 수명) 】
【 옛날 우리 조상들도, 뭔가 원하는 일이 있으면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손이 닳도록 백일기도를 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다 아는데,
세상의 지식으로 채워진 현대인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머릿속에 인간의 지식으로 채워진 똑똑한 지식인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이해욱 신부) 】
(3)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 [ 카페 운영규정 ]
<마리아처럼-거룩한내맡김-끊임없는화살기도> 카페 운영규정
제6조 【회원 탈퇴 및 재가입】
가입 후 1년이 경과한 하덧사가 봉헌하지 않는다면 탈퇴된다. >
[ 카페 운영규정 ]에 명시된 바와 같이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는
능구 3개월이 지나 화살기도가 습관화되면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권합니다.
* * * * * * * * *
Q 5. 봉헌을 강요한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이란,
대부분의 신자들이 세례와 견진 때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느님께 자신의 생명까지 다 내놓을 각오(결심)>를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진정으로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 - 목숨까지 하느님 앞에 내놓겠다는 굳은 결심>을 봉헌하여
세례와 견진성사의 약속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내맡김의 봉헌>에 있어서도 반드시 <식>이 필요하며
이러한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서약>은 미사를 통하여 봉헌됩니다.
만일, 외적인 의식을 통한 <서약> 없이도
혼자만의 굳은 결의로
많은 이들이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그렇게 수많은 수도공동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고 더 나아가 짐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있어서 <의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내맡김의 봉헌 서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호한, 맹세 수준의 100%의 결심을 한 봉헌자는
삶의 모습이 단 순간에 변화하며
우리의 결심이 <완전>하면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100% 다 받아주시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성화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가장 큰 활력이 되는 것이 "화살기도"입니다.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 개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해도
<내맡김의 봉헌식>을 올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은 주님께 내맡기며 산다 해도
이곳에 가입한 사람의 가입목적은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 봉헌 없이 무형의 성전에 머무는 것 >은 그리 큰 의미가 없으며
가입 후 1년 내 봉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
<능구 3개월>을 하여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한 다음
중요한 것은,
거룩한 내맡김의 굳은 결심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 결심이 변질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계속하여야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대한 앎이 그렇듯이,
하느님 신앙에 대한 성숙, 영적성장은 <교육이 필요>하므로
반드시
<무형의 성전을 방문>하여
영적지도 사제의 지도를 받으며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성전에서 진행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상의 우도와 같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로 한순간에 변화, 성화될 수도 있지만
극소수의 한정된 사람에게만 해당될 것이고
오랜 기간 굳어진 습관과 함께 삶의 모습이 변화하려면
그만큼의 오랜 시간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변화와 성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도움말
【 < 논어>
陽貨篇第十七(양화편제십칠)
17-2 자왈: "性相近也, 習相遠也."(성상근야, 습상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하게 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후천적으로 배양되는 습관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배우고 수양하여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
【 생 각 → 행 동 → 습 관 → 성 품 → 운 명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sow, a thought, reap a action)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sow, a action, reap a habit)
습관을 바꾸면 성품이 바뀌고 (sow a habit, reap a character)
성품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지속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서 좋은 습관을 익히고 실천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출처]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
* * *
어떻게 진행되나?
이러한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의 <신앙교육>은
게시글과 댓글을 통한 <무한 반복교육>이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일 뿐더러
그래야 ‘머리’에 새겨지고
머리에 새겨진 것이 ‘삶(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사람의 기억과 깨달음은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에
영적성장의 지름길이 바로
<끊임없는 반복 교육>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형의 성전 안에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쌓여 있으며
가입 전에 올려졌던 많은 글들을 다 읽어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가입 시기가 다른 회원들을 위하여
보조교사들이 회원들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과거의 게시글>들의 댓글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도움말
헤르만 에빙하우스 (Hermann Ebbinghaus)의 망각곡선
- 1800년대의 독일의 심리학자
보시다시피 학습이 끝난 후 10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만 지나도 약 절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개인마다 조금씩의 정도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러한 모양의 망각곡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반복학습과 복습을 통해서
공부한 내용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빨간색 그래프는
우리가 한번 학습을 한 후 그대로 시간이 흐른 기존의 그래프와 동일합니다.
노란색 그래프는 10분 후 다시 복습을 했을때의 그래프입니다.
이경우에는 놀랍게도
첫 학습후 1일이 지났을때 기억량이 40%까지 감소한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기억량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억량은 감소하게 됩니다.
파란색 그래프는
첫 학습후 10분째에 한 번,
그리고 다시 기억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1일째에 또 한번 더 복습을 했을 경우입니다.
이 내용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바로 위의 그래프인데.
확실한 것은 일정한 시간주기를 기준으로 복습을 반복할 경우며,
결국에는 장기기억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망각곡선을 역이용하여서 학습을 한다면 더 효율적인 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둔산동 대치학원] 에빙하우스 망각곡선. )
* * * * * * * * *
Q 6. 반복 교육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이천 년 전부터 행해오는 미사성제도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똑같은 예식의 미사가
오늘날까지 지금처럼 반복(되풀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기억(말씀과 행적)은
벌써 오래 전 쉽게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기억도 반복 되풀이하지 않으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사라집니다.
아니 하느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내 안에서.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의 댓글난은
무척 은혜로운 곳이며
무형의 성전의 앵무새와같은 댓글을 유치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사람의 기억이,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며 말하는 것을 글로 쓸 때
그 기억의 효과가 한층 더 배가 된다는 사실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끊임없는 카페 방문을 하며
무형의 성전에서의 거룩한 글들을 읽으며 적극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여
하느님 사랑을 키워 나가야합니다.
도움말
【 가장 훌륭한 기도는
영혼 안에 하느님께 대한 분명한 생각을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분께 대한 우리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 하느님 기억 - 성 베네딕도 화순 수도원 홈페이지 ) 】
【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은 먼저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상의 순간마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태도와 판단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예수님처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기억한 사람은
자신 안에 일어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울과 바르나바가
유다인들의 박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히 설교하며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기억하고 이야기한 것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실천을 이끌어 냅니다. (송용민 신부) 】
Q 7. 앵무새 같은 댓글들과 구호
댓글 쓰는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군대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이미 다 앵무새였습니다.
그들을 한결같이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2-3)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코헬렛1,9)
도움말
【 <아멘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멘’이다.
그분은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시다”(묵시 3,14).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그 모든 약속이 ‘예’가 되기”(2코린 1,20) 때문에
기도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끝맺는다.
신앙고백 끝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동의이자
감사이고 찬양이다.
기도 끝의 ‘아멘’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열렬한 바람을 표명하는 것이자
간청을 하느님이 들어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 성경의 마감 부분에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 쓰여있다.
‘아멘’ 에는 하느님께서 친히 약속한 바를 실현해 주시기를
또한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청원이 담겨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당신 뜻에 따라 청을 들어주신다는 확신도 포함된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200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가톨릭마산 8면) 】
* * * * * * * * *
무형의 성전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에 대한 Q & A
Q 8. 가톨릭이 아닌 타종교, 뉴에이지 강의를 듣도록 지도한다.
비공식적 통계로
유사종교나 신영성 <뉴 에이지>에 빠져들어가는 기성 종교인들 중에,
우리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지금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의 기성종교에 매력을 잃은 많은 젊은 이들이 찾는
신체적, 정신적 해방구가 바로 <뉴 에이지>이며
뉴에이지 영성이나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빠지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신의 종교와 신앙에 기초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무지하니,
그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싫다고
마르크스, 레닌 등의 공산주의 이론을 무시할 수 없듯이
타종교, 뉴에이지, 사이비 종교 더 나아가서는
<반 그리스도교적>인 강의들도 잘 공부해서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1베드 3,15)준비를 하여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떠버리(사도 17,18)가 되어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교회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서서
무형의 성전에서는 <뉴 에이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
종교간의 대화가 거론되는 현대에
타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지한 신앙인>은 복음을 전할 수 없으므로
적어도
세계 <5대 종교>와
특히 요즘의 <뉴에이지>, 신천지를 비롯한 <유사 종교>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조금은 알아야 되며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시니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모든 다른 영성도
폭넓게 공부해야 하며
부족함과 <무식함>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움말
【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어로 그 신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아시아 안에서 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할 건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됩니다.
유럽의 문화들이 점점 확장되어 가면서
신대륙의 발견 외에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들도 접하면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있는 오늘날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 지
좀 배워야 됩니다.
포괄주의( Inclusive),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
독일 신학자인 칼 라너가 이부분을 굉장히 강조를 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가톨릭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그 구원의 보편성을 지니시고
모든 사람들을 당신 나라에 초대해 주시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가톨릭은 힌두교, 불교 등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교회는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한다."
- 교회헌장,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문 2항 -
( 박재찬 신부,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35회 , 토마스 머튼 ) 】
Q 9.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을 갈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 5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526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다.[222]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223] 작은 이가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가[224] 되기 위하여 “하느님에게서 나고”,[225]
“위로부터 태어나야”(요한 3,7) 한다.
543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546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의 전형적 형식인
비유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오도록 부르신다.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한다.
898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의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1691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그대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빛과 하느님 나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1]
(가톨릭 교회 교리서)
도움말
【 소화 데레사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 (후버트 반 딕 신부, ORC)
1997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화 데레사" 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교회박사에 올렸다.
"사람들은 연옥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에
여러 해에 걸쳐 정립된 그녀의 생각과 의구심과 사상이 발전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연옥에 대한 소화 데레사의 가르침"이 생겨나게 되었다.
(참조: hilippe de la Trinite, 연옥에 대한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
연옥은 피할 수 있는 것일까?
데레사는 말하기를,
죽은 다음에 곧장 하늘나라에 간다는 믿음이 부족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무례를 범한다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곧바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떻게?
단순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는 것이다.
빨리 거룩하게 되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는방법은
<아기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그것이었다.
작아짐으로 부터 영적 아기가 되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장점을 계산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을 배운다.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의 영성이다.
1. 성녀 데레사는 <교회의 박사>이다.
교회에는 35명의 박사가 있으며 현재까지는 그중 네명이 여자다.
교회에서 박사를 선택할 때에는
그녀의 가르침에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세대를 불문하고 크리스천 영성을 돕기 위해 특별히 교회에 의해 추천된다.
성녀 데레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는 작아짐의 길의 박사이며
연옥의 가르침은 그녀의 작아짐의 길의 일부이다.
2. 성녀 데레사는 철저한 정통파 였다.
즉 그녀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이
<절대로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음>을 말한다. 】
【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
그것은 소화 데레사 성녀가 말씀하신 대로
‘아기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
당신께 내맡긴 영혼의 모든 것을 정화시켜 주시어
절대 연옥을 거치지 않도록 섭리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해 주신다.
(이해욱 신부의 창 화살 제1부 04) 】
Q 10.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외적 신심행위를 신앙생활의 전부로 아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이사 1,13)
외적 신심행위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하더라도
내 뜻대로 나의 만족을 위하여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가르침>에서 온 것으로 추측하는데
재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에 끝났으나
공의회의 정신은 그 이후에도 신앙인들의 생활 속에 계속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적인 행사나 교육으로만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으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쇄신시키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신자 개인들의 노력에 합하여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은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신자 스스로 아무리 외적 신심행위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설령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순서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일>이며,
그 다음으로 <곁들여 받게 될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도움말
【 37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쉽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6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천상의 책 12-18,)
14 내 뜻을 혼수상태로 있게 하는 그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겉모습만을, 그 옷만을 보여 줄 뿐이다.
내 뜻을 그런 상태로 버려두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도 꾸벅꾸벅 조는 상태가 되어
빛과 선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천상의 책 20-26) 】
【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의 눈에는 가장 옳고, 가장 거룩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의지를 버리고, 천주의 의지에 따르는 열성이다."
(거룩한 위탁 3편7장) 】
Q 11. 그냥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내맡김의 영성은 정적주의와는 전혀 다른 영성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내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의 영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느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따라 드리기에
'능동의 영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내맡김이 영성은 수동 + 능동의 영성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최대로 억제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하느님께 다 반납(내맡김)하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동적인 삶인 동시에,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하느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이끌려 드리는(능동)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능동)에 대한 충실한 이끌림(수동)처럼
탁월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이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곧 <화살기도>이며
화살기도를 통한 하느님에 대한 <집중>과 <몰입>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도움말
【 하느님께서 자아포기의 상태로 부른 영혼들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동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적극적인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아포기의 상태란 바로
일상적인 위탁의 덕이 보다 균형 있고 완전하게 실천되어 강화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무가 실행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내맡김의 상태란
하느님의 뜻대로 쓰시도록
하느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모두 내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위탁, 내맡김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유형무형한 것이 순간순간 빚어지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거기서 바라보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이 이런 영혼 안에서 찾아보시는 것은
당신 자신의 활동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마음가짐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장 삐에르 드 코사드,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제4장 03, 04) 】
【 정적주의[靜寂主義]
명사 :
[종교]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를 최대로 억제하고
권인적인 신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수동적 사상.
좁은 의미로는
17세기에 에스파냐의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 등이 주창한
가톨릭 내의 한 사조를 이른다. (Daum 사전) 】
(5) 카페운영규정
카페 운영규정
<마리아처럼-거룩한내맡김-끊임없는화살기도>
제2조 【설립취지 및 목적】
<마리아처럼>은
하느님 뜻대로 살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인“거룩한 내맡김”영성을 익히고,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생활화하며,
영적 지도자의 이끄심에 순명하는 한편,
회원 상호간의 영적 성장을 도와
성모 마리아처럼 내맡김의 삶을 사는데 그 목적을 둔다.]
제4조 【회원 등급】
카페 활동의 정도에 따라 상하의 등급으로 변경될 수 있다.
(1) 준회원 : 등업 이전 가입회원 전체 대상
(2) 정회원 : 가입인사 후 한 달내에
<내맡김 영성>과 <내맡긴 영혼은> 두 게시글 중
한 개의 댓글을 쓰시면 바로 정회원 등업.
(3) 우수회원 : 카페 방문 15회, 댓글 3회, 영적 지도자의 느낌
(4) 新나지르인 : 카페 방문 30회, 댓글 5회, 영적 지도자의 느낌
(5) 하내영 :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한 회원
제5조 【회원 의무】
(1) 카페 방문 시 “성호경”과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2) 적어도 하루 한 번의 카페 방문을 원칙으로 한다.
(3)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생활화한다.
(4) 회원간의 호칭은 “식구”로 한다.
(5) 모든 회원은 영적 지도자(보조교사 포함)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명한다.
(6) 아래 <매일의무기도>를 권장한다.
- 이불속에서 바치는 아침을 여는 기도
- 하루의 첫 성호경 기도
-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마음에 떠오르는 성가들
- 성경읽기(한 페이지 이상)
- 이불속에서 바치는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
제6조 【회원 탈퇴 및 재가입】
- 회원의 카페 탈퇴는 자유의사에 준한다.
- 사전 예고 없이 한 달 이상 카페 방문이 없을 경우
또 한 달에 한 번 이상 댓글이 없을 경우 회원자격이 상실된다.
- 영적 지도자에 불순명할 경우에도 회원자격이 상실된다.
- 봉헌자는 매일의 카페 방문과,
유고(알림)없이 한 주에 1회 이상의 댓글이 없으면 탈퇴 조치 된다.
* * * * * * * * *
Q 12. 댓글 지도에 너무 치중한다.
Q 13. 조금만 잘못해도 강퇴시키고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Q 14. 댓글 쓰는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군대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단체에서 그렇듯이
카페 마리아처럼 회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게시판 【 카페운영규정 】에 나와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만 얘기하자면
<무형의 성전>의
최소한의 일정 방문과 함께 글쓰기는 회원의 의무이며
그 의무가 지켜지지 않는 회원은
<카페 운영규정>에 맞지 않으므로 탈퇴되는 제도가 있습니다.
또한
<무형의 성전>에서의 모든 교육은
카페의 게시글과 댓글을 통하여 지도 사제의 영적지도와 함께
회원 상호간의 영적인 교류와 영적인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글쓰기는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살아 있는 역사>이며
아주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은 말 그대로 성전이며
이 댓글들은 고스란이 하느님께 올라가는 기도입니다.
한마디로 댓글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댓글 지도에 치중하는 이유입니다.
이를 위하여 댓글을 쓸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은 주로
눈에 피로하지 않게, 또 읽기 쉽게하기 위한
다른 회원들에 대한 <배려>차원에 근거하며
여기에 따른
익숙하지 않은 회원들을 돕기 위한 보조교사들의 지도가 있습니다.
회원들은 지도 사제와 보조교사의 영적지도에 순명해야 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키라>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의 규정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적지도 사제의 말씀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이곳 거룩한 무형의 성전은 그렇게 <무자비한 곳>이 아닙니다.
<하덧사>들에게 대한 카페규정도 사실 그리 어려운 규정도 아니며
특히 <하내영>들에 대한 카페규정은 정말 아주 <최소한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목숨까지 내드렸다는 하내영에게 있어서
한 달에 4개의 댓글?
하하하하하~~~~~~~
정말 우습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웃으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알며 지내는 사람이
3개월에 단 한 번도 연락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면
그 사람의 사이는 결코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의 모든 회원들이 서로 친밀하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친밀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 오랜 세월을 <전혀 무관심>하거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그냥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그래, 너희들은 잘~ 놀아라 나는 지켜만 보겠다!"
1년이 지나도 3년이 지나도 6년이 지나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는데,,,,,,,,,,,,,
저는 4,000명에 달하는 강퇴된 많은 <아주 열심한 신자>라는 사람들은
저의 카페 운영방식을 싫어하며 저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저를 비난하고 거룩한내맡김의영성조차 폄하시키며 말입니다.
카페에 가입해서 괜시리 야단이나 맞고 이리해라 저리해라
<아멘>을 외쳐라 등이 싫으면 <자퇴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입니다.
자퇴해서라도 화살기도를 뜨겁게 열심히 부르면 저는 참으로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화살기도를 뜨겁게 끊임없이 바치게 되면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하느님을 체험하면 체험한 하느님께서 이곳으로 다시 보내주실테니까요,
정말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하여 댓글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께서는,
카페지기 테바님께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소위 <유고有故>라 하지요.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는 것을 <무고無告>라 하구요.
■유고有故
특별한 사정이나 사고가 있음(다음사전에서)
무고 결석이나 무고 결근은 스스로
학교나 직장을 포기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죠!
여러분이 학생시절이나 직장시절 하셨듯이
그대로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시면
연락을 주실 때까지 이곳에서 <결코> 강퇴되지 않으실 겁니다!
도움말
【 토마스 머튼은 점점 영적으로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글쓰기라는 것이 자신의 관상가로서의 삶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글 쓰는 동안 그 시간은 바로 기도시간이었고,
글 쓰는 동안 내가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하느님께 가까와지고,
글을 씀으로 인해 더 깊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회 토마스 머튼의 생애 2
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
(6) 영적지도
하느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적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긴 역사를 보아도
수많은 성인성녀들의 경우를 통해서 이미 증명이 된 사실입니다.
어떤 지도자든
< 자기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는 지도자 >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제직을 세우신 첫사제, 참사제이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처럼은 <무형의 성전>이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만 사랑하는 사람>으로 새로이 태어나고 있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마리아처럼의 최고 영적지도자는 <스승 예수님>이십니다.
보조교사(영적지도자)는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느님을 죽도록 뜨겁게 살아가는 신앙인>을 길러냅니다.
따라서
이곳의 모든 회원은 영적지도 사제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 예수님의 뜻 >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굳이 이 성전에 머무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 * * * * * * *
Q 15. 영적지도가 너무 강하다.
무형의 성전에서 영적지도의 규정이나 원칙이나 기준은 단 하나,
그것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입니다.
이곳에서의 영적지도는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나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수준>에 따라, 그리고 <사도직급>에 따라
영적지도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초보자, 하덧사, 하내영, 사도단 순서에 따라
영적지도의 강도가 더욱 강해집니다.
강한 영적지도는 내맡긴 영혼들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며
마지막에는 <하느님나라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 카페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 카페가 스승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어느 정도 수준의 더욱 거룩한 카페가 될 때까지
더욱 거룩하고 알찬 무형의 성전을 만들기 위해서
강한 영적지도는 계속될 것입니다.
▶ 영적지도 사제의 말씀
제가 평소에 가끔 말씀드리듯이
이곳에서는 제가 아무리 부족한 사제라 하더라도,
저의 <영적지도>를 반드시 따르셔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주님께 100%를 내맡겼다 하더라도
저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죄를 짓는 한 인간입니다.
누가 완전하고 누가 불완전하니 누구를 꾸짖고 누구를 지도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실지 모르지만,
스승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역할을 대신할 역할을
<부족하고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실도
간과해서는 아니 돨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지도자라면
<영성지도자>의 영적지도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성지도자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든 살살 토닥거리든>
모든 것을 다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밀어붙임은 <교만마귀를 퇴치>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다 ~ 부족합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전부>가 아님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보태서 주님 앞으로 보내드리는 일이
제가 가끔가끔 제 남은 생의 가장 기쁘고 복된 생의 목표라 말씀드렸는데,
왜 제가 영적지도 사제로서의 권한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겠습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슬퍼하시고
저의 영을 닫아 당신의 지혜를 내려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머릿속에 어떤 지혜가 저장되어 그 지혜로 영적지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그때그때마다
주님께서 <상대방의 언행>과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지금까지 매번 저에게 답(영적지도)을 주셔왔습니다.
지금도 이 카페로부터 강퇴된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영육으로 진실된 하내영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영적지도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순명을 무기삼아 여러분을 제 휘하에 두려는 생각은 티끌도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모두를 아버지 휘하에 두려는 불타는 마음>뿐입니다.
<무형의 성전> 관리인으로서의 저는
하루에도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 함께 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저의 영적지도에 순명으로 따르는 모든 <하덧사>들을 <하내영>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느님나라의 상속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제가 이곳의 영적지도 사제로서,
스승 예수님의 보조교사로서 존재하는 그날까지
저의 너그럽지 못한, 혹독한 영적지도는 계~~~속 될 것입니다!
저의 영적지도는,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저에게 주신
분별(식별)의 은사에 의한 영적지도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이곳 성전에서
여러분에 대한 강한 영적지도로
여러분을 제 앞에 복종시키려 하는 것입니까?
제가 이곳의 회원들을 굴복시켜
저의 <추종세력>으로 만드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교주>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저의 강한 영적지도는오히려
이곳의 모든 이를 <하느님의 추종세력>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이곳 성전의 주인이시며 참스승이신 예수님의 보조교사로서
저의 본분을 다할 뿐입니다.
저에게 맡겨진 여러분을
여러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복종시키기 위해서 일 뿐입니다.
예수님께 한번 여쭤보시고
아니면 여러분이 이다음 하느님 앞에 가셔서
한번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의 영적지도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고 더 나아가
저보다 영적으로 뛰어난 사제가 계시다면,
언제든 그 사제를 영적지도 사제로 모시라고 말씀드렸던 대로
편안히 떠나가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마리아처럼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룩한 무형의 성전입니다.
아버지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이 무너져도
이 무형의 성전은 당신의 나라로 친히 모셔갈 것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이곳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에 남아 있을 수 없으며,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제가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나라'를 살게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더사 여러분,
제가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사제이지만
제가 가르쳐드리는 대로만 잘~ 따라오시면 정말 직천당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열매를 보시고!.
이 무형의 성전의 <하내영들>은
제가 정말 책임지고 <하느님의 나라>로 모셔드릴 것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자신!!!
< 어떤 본당 신부가 나와서
"여러분들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행동을 모방하십시요."
이런 신부가 있다면 이건 글쎄요, 아마 세계에 몇 없을 거예요.
얼마나 자신 있으면 그런 말 했겠느냐? > (고박귀훈요한 신부님 강론에서)
아니 저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행동을 모방하십시요>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하는 <말>을 꼭반드시 제~발 믿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도
여러분이 정말 100% 주님께 맡긴 사람이라면,
과감히 저를 따라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말합니다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44)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15,14)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줄 사람들을 보내실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영적 지도자들이다."(헨리 나우웬)
* * *
Q 16. 동경 한인성당에 계실 때 “신주쿠 북카페”(2014년)에 대한
영적지도 사제에 대한 헛소문
이해욱 신부님은 40년의 사제생활 동안,
여러 본당에서나 특수 기관에서나 '행정적인 과오'나 특히
'재정적인 과오'를 단 한 번도 범한 적이 없으셨으며
북카페의 설립은 분명
"나가라! 대화하라! 함께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따른 결과였고
건립 경비는 약 2억원이 소요 되었습니다.
2억원 중에
경비의 약 3분의 1은 마리아처럼 신앙카페 회원들이
그리고 또 약 3분의 1은 신부님의 뜻을 따르는 동경한인성당의 신자들이,
그리고 나머지는
신부님과 신부님의 지인들의 정성과 도움을 통하여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헛소문과는 전혀 달리,
시작 처음부터 북카페의 건립기금에는
동경한인성당의 건축기금과 예산은 단 1엔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호 거내영 이론을 작성할 기회를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무형의 성전에서 공부한 글들을 구술로 꿰는 듯한 느낌입니다.
잘 공부해 두었다가
이끌어 주실 때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자료로 쓰겠습니다.
보조교사 카페에 호 영성론 자료를 올려주신 보조교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가져온 글들은 따로 츨처를 쓰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오며
부족한 제가 아버지의 충실한 사도가 되게 하소서.
거내영 전파의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모든 사도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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