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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엠블럼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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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미래를 보는 기준
120년에 이르는 자동차 역사(내연기관 기준)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20세기(1900년대)는 기계공학자들이 지배했던 자동차 양산의 시대다. 성능 좋은 차를 품질 좋게 만드는 게 경쟁력의 관건이었다. 초기에는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주요국이 각축을 벌였다. 그리고 후발로 일본과 한국이 뛰어들었다. 결과는 대중차에서는 대량생산과 품질관리(QC)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토요타가 방점을 찍었고, 고급차에서는 기술과 안전, 브랜드 가치로 대표되는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가 있었다.
21세기(2000년대)에는 자동차의 전자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자동차와 IT(정보기술)가 만난 것이다. 자동차의 각종 전자기기를 운전자 또는 휴대전화와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가 경쟁력이 된 것이다. 포드가 IT업계의 거장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해 다시 살아난 것이 이러한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휘청한 회사가 벤츠다. 안전과 고급스러움에서는 여전히 세계 정상이지만 IT와 관련해서는 전혀 앞서지 못했다. 특히 한국시장에서는 내비게이션이나 블루투스 같은 IT 기술력에서 BMW에 뒤지면서 수입차 1위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지난 100년간 벤츠는 ‘자동차의 미래를 알려면 벤츠를 보라’라는 문장에서처럼 앞서가는 자동차 회사의 상징이었다. 빛나는 ‘삼각별’의 벤츠는 1998년 미국 대중차 크라이슬러(연산 300만대)를 인수하면서 눈에 띄게 쇠락했다. 당시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는 ‘생산량 기준 세계 빅5에 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주장이 거셌을 때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틀린 말이다. 프리미엄과 대중 브랜드의 결합은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합병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독일과 미국 조직문화의 충돌이 거셌다. 미국 언론은 ‘독일 나치가 돌아왔다’면서 벤츠를 몰아세웠다. 신차 개발에서도 혼란이었다. 고급차 기술을 크라이슬러에 접목하면서 일부 모델은 저렴한 벤츠가 됐지만 두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희석됐다.
그러자 한참 뒤처졌던 BMW와 아우디가 기회를 잡고 맹추격을 했다. 벤츠 S클래스가 독보적이었던 대형 세단각주1) 시장에 BMW 7시리즈, 아우디 A8이 야금야금 점유율을 늘렸다. 특히 BMW는 벤츠가 취약한 중소형 세단과 SUV 모델을 앞세워 2006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벤츠를 제치고 고급차 1위에 올랐다. 아우디도 벤츠의 턱밑까지 추격해 곧 따라잡을 모양새다.
벤츠에게는 크라이슬러가 독이 든 사과였다. 정신을 차린 벤츠는 10조 원 이상을 손해 보고 나서야 크라이슬러를 포기했다. 그리고 프리미엄 시장의 챔피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은 컸다. 큰 차를 팔아 이익을 냈던 시대가 가고 소형차와 친환경차 소비층이 두터워진 것이다.
쇄신을 외친 벤츠는 가장 먼저 ‘나이 든 부자가 타는 큰 차’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30, 40대 성공한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후륜구동각주2) 만 만들던 벤츠는 소형차 개발을 위해 2000년대 초 전륜구동각주3) 모델을 내놓았다. 차고가 높은 해치백각주4) 스타일의 A·B클래스가 그것이다. 10여 년간의 숙련을 거치며 2012년과 2013년에는 ‘전륜구동도 벤츠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신형 A, B클래스를 출시했다. 엔진을 전륜구동에 맞도록 처음으로 가로배치로 바꿨다. 승차감을 좌우하는 서스펜션각주5) 도 잘 숙성해 코너링도 날렵하게 했다. 키는 낮추면서도 실내공간은 더 넓게 다듬었다. 벤츠가 바뀐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는 첫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벤츠가 새롭게 내놓은 모델들은 모든 자동차 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2003년에 나온 4도어 쿠페각주6) CLS가 대표적인 경우다. 유선형 쿠페는 날렵하게 떨어지는 뒷유리창 곡선이 특징이지만 이런 디자인 때문에 뒷좌석은 비좁아 애완견이나 겨우 태울 정도여서 2도어가 상식이었다. 하지만 벤츠는 쿠페의 대중화를 위해 뒷좌석에도 어른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탑승이 편리한 4도어 쿠페 CLS를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자동차 업체도 비슷한 콘셉트의 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벤치마킹해 재미를 본 것이 폭스바겐의 4도어 쿠페 CC다. 요즘 벤츠 모델에 붙는 엔진 배기량각주7) 과 엇비슷한 숫자 모델명은 1970년대에 도입했다. 1982년에는 요즘 C클래스의 원조격인 소형차 190시리즈를 내놓아 대형차부터 소형차까지 풀라인업을 갖췄다.
날렵한 몸체를 자랑하는 4도어 쿠페 C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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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의 역사는 ‘자동차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비롯해 1935년 최초의 디젤 승용차(260D), 최초의 트럭 및 버스 개발, 최초의 레이스 우승으로 이어졌다. 자동차의 안전에 어느 브랜드보다도 많은 투자를 했던 다임러-벤츠는 1930년대 강화측면보호대와 안전도어 잠금장치를 자동차 업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1951년에는 충돌사고 때 엔진이 아래로 밀려나 운전자의 부상을 막는 안전 차체를 개발해 특허를 땄다. 1953년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차체구조(크럼플 존각주8) )를 개발했으며, 안전벨트 역시 1959년에 벤츠가 처음 설치했다. 1959년에는 세계 최초로 충돌 테스트를 실시했다. 2000년 이후에 대중차까지 기본으로 달리는 안전장비 ABS각주9) (브레이크잠김방지장치)와 에어백 역시 벤츠가 처음 적용했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바퀴가 헛돌거나 코너에서 밀려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자세제어장치각주10) 같은 것도 모두 벤츠 아니면 어려웠던 신기술이다.
벤츠 역대 최고의 명차로는 1954년 출시된 스포츠카 300SL이 꼽힌다. 세계 최초로 문이 새의 날개처럼 열려 마치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걸윙도어각주11) ’ 양산차다. 3L 215마력각주12) 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250킬로미터를 냈다. 걸윙도어는 디자인적 가치는 높지만 안전성 확보가 어려워 생산하기가 무척 어렵다.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는 ‘벤츠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300SL은 1954~63년에 3,258대가 생산됐다. 이후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 업체에서 걸윙도어 붐이 일었다. 이 차는 2010년에 다시 태어났다. 신형 SLS AMG가 그것이다. 걸윙도어는 그대로 살리고 현대적 디자인으로 다듬었다. 최고 시속은 3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한국에 배정된 30여 대는 2억 8,000만 원 고가에도 한 달 만에 모두 팔렸다.
한국은 벤츠의 최고 시장 가운데 하나다. 2억 원에 육박하는 대형 S클래스, 중형 E클래스 판매 순위는 미국, 독일, 중국, 영국에 이어 세계 5위다. 2010년에는 전 세계 140여 개 해외 지사에서 성장률 1위(전년 대비 90%)를 기록했다. 오죽하면 독일 본사에서 ‘한국을 배워라’라는 자료까지 만들었다.
고유가로 인한 소형차와 친환경차, 그리고 자동차의 IT화가 요즘 신차 개발의 확실한 트렌드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벤츠의 창업 정신, 그리고 그에 걸맞은 최고의 차를 만들었던 벤츠가 새로운 시대에 어떤 차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세계 최초로 ‘걸윙도어’를 적용한 양산차 300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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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역사는 곧 벤츠의 역사
메르세데스 벤츠의 뿌리는 독일 만하임의 발명가 칼 벤츠(Karl Benz)에서 시작한다. 그는 1886년 1월 29일, 휘발유 엔진을 단 최초의 자동차를 특허등록(‘페이턴트 모터카’)했고, 이미 1883년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벤츠&시에’를 설립했다. 또 다른 창업자인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 역시 1886년에 ‘말 없는 마차’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개발한 데 이어 1890년 다임러자동차(DMG)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30여 년간 독일차 발전을 주도했다.
칼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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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짚어볼 것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에 대한 이견이다. 당시 독일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앞다퉈 자동차를 개발했다. 1987년,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 교수도 자동차 특허를 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검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로 인정받은 것은 특허 등록 기준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세데스(스페인어로 ‘우아하다’는 뜻)는 1902년 다임러가 만든 모델명에서 나왔다. 당시 다임러의 오스트리아 판매 지사장이던 에밀 옐리네크가 자기 딸의 이름인 메르세데스를 차명으로 써줄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세상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벤츠&시에와 DMG는 1926년에 합병했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경제난이 이유였다. 회사 이름은 ‘다임러-벤츠’였다. 로고는 원 안에 세 개의 별을 결합한 다임러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육지, 바다, 하늘’에서 최고가 된다는 의미다. 레이스에 역점을 둔 다임러와 안전을 중요시한 벤츠의 만남은 절묘했다. 벤츠는 소량생산으로 희소가치를 높이고 비싸게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해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부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급차가 됐다.
S500(5L 엔진) 같은 방식으로 엔진 배기량을 모델 이름에 사용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80년대에는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값싼 대중차 붐이 일자 벤츠는 소형차 190시리즈(현재의 C클래스)를, 1985년에는 중형차 300시리즈(E클래스)를 개발하며 연산 100만 대 규모에 진입했다.
현재의 C클래스의 초기 모델인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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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창업자의 철학은 남달랐다. 칼 벤츠의 ‘발명에 대한 열정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다임러의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창업 정신이 오늘날 영광의 토대인 셈이다. 1980년대에는 막대한 자금(이익을 차곡차곡 모아둔 잉여금)을 바탕으로 독일 가전업체 AEG, 우주항공 메이커 MTU를 흡수하며 사세를 넓히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승승장구다. 2011년에 1만 대 판매를 넘겼고 2012년에는 2만 대를 돌파했다. 2013년 말에는 벤츠가 가장 잘 만드는 대형 세단의 기함인 신형 S클래스를 내놓았다. 전통적인 벤츠의 보수적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다듬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벤츠는 자동차의 명가답게 세계 최초의 신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쉬운 점은 2011년부터 BMW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50, 60대 사이에서는 여전히 ‘고급차=벤츠’라는 등식이 설립한다. 역으로 이 점은 한국시장에서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수입차 세대로 성장한 30, 40대가 선호하는 BMW와 아우디에 비해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벤츠는 S클래스 같은 대형차보다 소형차인 C클래스, B클래스, A클래스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이런 차를 젊은 층에 많이 팔아야 벤츠의 가치를 체험해본 이들이 40, 50대에 중형차인 E클래스로, 50대 이후에 자연스럽게 S클래스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벤츠가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에서도 예전 명성을 유지할지는 두고 볼 관심사다. 전기차는 벤츠 브랜드를 빼면 최고라고 주장할 만한 기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새롭게 출시된 최고의 럭셔리 세단 S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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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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