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을 증득하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광명을 성취하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화신을 보이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내가 공 무상에 대해서 철저히 깨달았다고 한다면
절대 여기서(수행관에서 삼매에 드실때를 비유하실때) 나올者가 없습니다,
공 무상에 대해서 철저하지 않고 앉기 때문에, 산에 가서 두려움이 많아지고
여기서도 무서워 하는 경우도 있고
(당번 설 때 어둑 어둑해지면 전체가 고요하니까...더러는 그렇기도 하다.)
산 속에서 앉아있을때 새소리, 기타 다른 소리도 많이 나고 ,조그만 소리도 울림이 크고 그래요.
거기서 전부 인연 연기관계로 일어나는것이지, 어떤것이 있다고는 생각을 절대 안해
그래야 들어갈수 있습니다,그건 묘관찰지에 대해서 몰라서 그래
진여문에 들어가는데는 묘관찰지가 필수 요건입니다.
공 무상-실체가 없다는 것이고 일정한 형상이 없다는것이죠.
이 공부를 해야지 염불도 지관이 바로 됩니다
화신으로 보면 깊은 염불이예요.
나무아미타불 만번하는거하고,저 분이 아미타불 화신이다 보는거하고
화신으로 보는게 더 낫습니다.
심하게 이야기 했나?이것은 관법이니까.
공 무상 비유비무가 묘관찰지잖아요,
최고의 대승의 깨달음인데 여기에 들어가질 못해
공 무상 비유비무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그 말이 뭐냐?하면 화신
공 무상 비유비무를 이만큼 정확하게 표현한것은 없다.
이 공부는 불교의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근기가 문제가 아니고 신심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불교에 5년이든 10년이든 상관없이 불자라고 한다면 바르게 회복해야되고
보시한것,그리고 물론 복받을 좋은일도 했겠지만 ,그것가지고는 전혀~~안 되고
저는 출가자이지만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면 분심을 즐깁니다,
결국은 결정했습니다,
불교에 체 상 용의 힘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그 힘을 발휘하는것이 나의 행복이고
다른 사람한테 기쁘게 하는것입니다,
내가 번뇌 망상이 가득해서 오늘 저녁에 고민하고 일 할까 말까
돈 있으니까 좋은일 하다가 죽자 이거는 전혀 도움이 안되고
인간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건 묘하다 묘해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떳떳합니다
체-우리의 본성
상-정토를 느끼는것
용-보살님이라는것-->
(함께 공부하는 도반님의 질문과 동시정리)
체가 공 무상 비유비무고 실체가 없다는걸 알아야하는거구요.
그래야지 일심을 증득하고 이해하는겁니다(스님말씀)
체하고 용하고 상은 떨어진게 아니고
체의 공덕과 바깥에 보는 모습을 두개 다 안고 있는거에요.
용은 체 상을 다 안고있는 용이예요.
기신론에는 중도 딱 한번만 나오는거예요.
근래 사람들이 중도를 많이 이야기 하는데 중도는 금방 이해를 합니다,
중도는 계속 이해시킬 필요없이,일심을 이해시키는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심을 이해시키면 공 무상이잖아요.
일체경계가 본래일심이면
원효가 마지막으로 한것이 뭐냐?하면
번뇌가 남아있는 상태에서도 망법을 다 비추어본다는거예요.
망법은 허망한 법,불교를 잘못 보는법이예요.
잘못 이해하는것이 망법이예요.
번뇌가 남아 있으면 지혜가 안 일어나잖아요.
번뇌가 실체가 있어가지고 여래장 이것을 꽉 눌러 막고 있으면 안되지만
오직 구슬처럼 밝아 있으니까 빡~~뚫어버리는것은
얼음처럼 쇠꽂이 끝을 불에 달궈서 얼음을 뚫으면 구멍이 뚫리잖아요.
뚫어버리면 안이 밝잖아요,
육감(직감)에 의해서 어떤것이 보여지고 맞혀지고
그것이 삼매의 힘이야
본인이 모른다니까,
나는 염불도 많이 안 하고 참선도 안했는데 어떻게 되냐?고 하는데
된다니까,이건 안해도 된다는게 아니고 원효는 전생에 많이 닦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실상의 이치에 수순하는 중도관과 진여문에 들어가는 정관의 지헤
보세요.
말하자면,일체 법의 실상을 말로써 설명을 하고,또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모든 법은 공 무상으로 존재를 하지만
-->매직펜-일정한 모양이 없어요 불로 태우면 휘어지거나
없어져요.일정한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다,이 종이도 찢으면 찢어진다.이것이 공 무상이라,)
공 무상으로 존재하지만 실상이 있음을 긍정하는것이니.-->
공을 없다고 하면 안 되고,우리도 공입니다,사물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사람을 생각하세요.
공인데 없는건 아니죠,생각하고 말하고 하잖아요.
공인데 말을 한다니까,아예 없는게 아니고
나무가 실체가 없는 공인데 계속 자라죠.공인데 크잖아요,
실체가 없어도 작용을 한다 이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체와 용만 가지고 설명을 했어요-실체가 없어도 작용은 있다에 대해서만
원효가 다른것은 뭐냐하면,체 상 용을 가지고 상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
상 가운데 하나가 정토야,
법이 아예 없다고 단정하는것이 아니다, 일체의 법은 실체가없고 모양도 없지만 엄연히 작용하고있으나 그 자체를 어떻게 설명하거나 생각할 수도 없고,얻을만한 법도 없다는것이다,
이와같이 일체의법은 공 무상이지만 비유비무로 이해를 한다면 이를 중도관(正觀)이라 하며,
곧 실상의 이치에 수순하는것이다,만약 갖가지 분별하는 생각을 떠난다면 정관의 지혜를 얻게 된다--->공 무상이라고,실체도 없고 형상도 없다고 여기서 끝나버리면 안 되고 ,
소승에서는 여기서 끝납니다, 비유비무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승에서는 여기서 끝나면 안돼 ,공 무상이라고 아예 없는것이 아니고
있다고 작용한다는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비유비무라는 말을 써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도관中道觀이라고 하고 正觀이라고 합니다,
중도=정관이라고 하고 비유비무로 관하는것을 정관의 지혜라고합니다,
비유비무를 묘라고 합니다,공 무상으로 관하는건 간단해,사람들이 단순하다고
공이니까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니까 일정한 모양이없다 이런거는쉬운데
비유비무를 동시에 관하는것은 15,6년 전부터 이렇게 썼어요.
이렇게 썼는데 사람들이 묘관찰지는 비유비무로 관하는것이 아니다라고
법의 실상을 관하는것이니까 묘라고 했는데...
묘妙라고 하는 뜻을 잘 알아야돼
묘妙 는 하나가 여러가지가 되는것을 묘妙 라고 해요.
원효가 명확하게 써놨어요,비유비무로 보기 때문에 묘 妙라고 한다고.
얼마전에 발견을 한겁니다,
범부는 하나를 동시에 못 보는것을 범부라고 합니다,
범부를 규정한 여러가지 중에,실체가 있냐?없냐?이렇게만 보는거에요.
실체가 없으면서 작용을 한다 이렇게는 못봐요.이것이 범부라,
범부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은 하나에서 두가지를 봐
비유비무로 보니까 이것은 범부가 아니야.
***여기까지는 도반님들의 질문과(쉬는시간)동시에 스님께서 해답과정리를 해 주셨기 때문에
함께 실었습니다,어느것 하나 놓칠수가 없어서 ㅡ특히 공 무상 비유비무의 단어가 많이 중복이 되지만 여러번 반복할 수록 이해가 빠를것 같아서 그대로 옮겨 실었고 계속 싣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또 원효의 이름을 빌려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원효가 사람으로 태어나가지고,가장 최고의 지헤를 얻을수 있는것은 부처님이후에
무분별지라는겁니다,
무분별지는 초지보살에서 올라가는겁니다,
초지보살에서 십지보살까지는 다 보살이죠.
원효는 초지부터 칠지까지를 하나로 봤어요.비슷해요.
초지부터 칠지까지는 항상 삼매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아무때나 돌아다니고하면, 청정한 행이 나오는것이 아니고
항상 내가 지금 우주의 중심에 있지만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을 해가지고 삼매 가운데 있어야됩니다.
한번에 다 끝난다는데...어림도 없는 소리,
중요해
삼매에서 깨어나면 바로 자아의식이 발동해버려
너무 중요한거야
여러분은 정정취를 올 겨울까지든, 언제까지든 다 느끼고 이해를 해버리고
초지보살이라는것에도 도전을 해야돼.
웃을 일이 아닙니다.
너무 너무 자기가 변해버리기 때문에 도전을 해야됩니다,
그래야지 확신을 갖는다니까,가능성
위에것들을 왜. 자꾸 이야기를 하냐하면 이것이 증명이 된다고 하니까.
아래 단계에 있는 수행을 열심히 하죠.
인간이 얻을수 있는것은 무분별지인데 초지부터 칠지까지야.
원래 10지까지인대 그 뒤에는 모르겠어.이건 뭐냐하면
이건 무분별지인데 무분별지가 가장 중심이 돼.
인간이 염불을 통해서나,진여문에 들어갈려면 일단은 '깨달음을 얻어야 됩니다,
이 깨달음은 상사각相似覺 라고 합니다.
아주 특별한 사자가 비슷할 似자예요.
상사각~~
인간에게 가장 요구하는 깨달음은 분별을 안 한다는 무분별지입니다,
축생과 인간 ,남자와여자 주객 이것과저것으로 분별을 안 한다는겁니다,
似는 불교에서는 아주 많이 쓰고 재미있는 글자입니다.
비슷하다는것인데 비슷하다는 기준이 뭐냐?하면 무분별지입니다,
似는-->사람인에다가 써이를 쓰는데 서로 비슷한
무분별지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데 여기서는 자세히는 안 해놨어요.
소승불교도 상사각이있고,대승불교도 상사각이 있습니다.
소승불교의 상사각은 뭐냐?하면 공을,완전한 공을 깨닫는 비슷한것을 상사각이라고합니다,
대승에서는무분별지 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깨달음은 이름은 틀려도 뜻은 같은게 많아.
우리가 지금 깨달음을 추구하는것은 상사각이예요.
초지보살이 깨닫는 깨달음이랑 비슷하다 이 말입니다,
무분별지는 아닌데...비슷해
이 상사각이 정정취예요.
화신으로 보는건 상사각이예요.
무분별지하고 비슷해-완전히 분별이 떨어지는것은 아니야
(00화신 00화신 다 이렇게 이름이 다르잖아요)
무분별지는 어떻게 보느냐하면 전부 뭘로 보냐하면-나의 모습으로 보거나
정토사상으로는 광명으로 보는거야.
정토사상하고 다른게 이거야
여기서는 상사각이라고 했잖아요.
정토사상에서는 상사각이란 말을 안 쓰고 화신으로 관하게 한단말이야
화신으로 관하는게 상사각이야
교학에선 전부 하나의 모습으로 보는걸 일행삼매라고 하는거야.
일행삼매나 일상삼매는 똑같애요
정토사상에서는 종교화시켰기 때문에 일상삼매니 일행삼매라는 말을 안 쓰고
모두 무량광명으로 보라는거야.
일행할때 行자는 내 행위가 이렇게 했다는게 아니고
전부 하나의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말이야.
초지보살부터는 수분각이라고 하는데 어려워요.
수분각은 번뇌가 미세하게 조금 남아 있다는 소리예요.
구경각은 부처님인데 완전한 깨달음이고...
여러분은 어쨌든 건너뛰면 안 되요.
내가 말하는 정정취, 상사각 ,공 무상 비유비무 여기에 집중해야 됩니다,
이치만 완전히 이해하고 앉으면 삼매에 깊게 들어가는거야
기차를 매일 타고 오르내리면서도 전에는 깊은밤에 오르내릴때는 몰랐는데
요즈음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아침이나,낮에 오르내리는데 밝아서 바깥 경치가 다 보이잖아요,
시속250KM달리니까 산과 들이 빠르게 지나가잖아요,이거구나 이거~~
그렇게 달려도 저는 꼼짝 않고 있잖아요,
정확하게 증명이 되는거라,
공부(연구)를 안 하던지.참선을 안 하던지.
원효가 어떻게 심하게 써 놨냐?하면
부처님 당시에 禪을 해서 깨달은 사람이 없지 않느냐?이렇게 해 놨어요.
다 이치를 알아버리니까.바로 바로 알아버리는거야.
아라한도 일주일만에 깨달아서 들어갔죠.칠엽굴 바깥에서,,,
2500년후에 우리가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면 되겠느냐?이 말이지,
생멸문
생멸운은 쉬워요
고요한 상태의 마음에 바로 들어가는것이 아니고
고요한 상태의 마음이 어디가 있어요?우리 마음안에 있죠.
진여의 본성 자리를 만들어서 내가 지금 체험할려는거 아니예요.
들어갈데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들어간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지금 그 상태를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느낄려는거 아니예요.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냐?
첫번째:공 무상에 대해서 철저히 알아야지 ,나한테 들어오는 경계들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거아그래야 적정에 들어가지,
그렇지 않으면 밤낮으로 흔들려서 앉아 있질 못해
밖에서 새벽 두시에 복도에 뭐가 뚜벅 뚜벅 걸어가죠.그럼 귀신인거 같고,,,
공 ,무상,비유비무야,그래야 전혀 흔들리지 않지.공 무상 비유비무야
없어-실체가 없는데 지가 생각을 하면 나타나버려.
비유비무야-아무것도 없는데...저것이 귀신같다고 생각을 했죠.
누가 문 두드리면...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거야. 크게
이렇게 크게 들릴수가 없어.
부처님이 어떻게 중생의 마음을 알까요?
부처가 원래 부처, 보살이 아니고 부처님이 범부였어,본래
원효는 이런말까지 써놓고 ...내가 어떻게 ...고민을 했다고
그런데 우리에게 있는 번뇌는 모두 지혜의 원천이야.
부처님이 범부였거든.
내가 맑아졌죠?그럼 저 사람들이 돌아가는걸 다 본단 말이야.
여러분이 머리 굴리는걸 본다 말이야.
여러분이 머리 굴리는건 누구 머리야??지머리야.
너무 너무 양심적으로 봐야돼.
여러분이 전부 실체가 있었으면...여러분 실체하고 제 실체하고 이것을 다 헤아릴수가 없잖아
다 공하잖아,공하니까,그런 생각을 하면 그런 행동을 하거든.
그러니까 여러분을 보는거는 나를 보는거야,
진여문은 고요한 상태로 자기가 들어가는거고
생멸문은 고요한 상태가 아니고 번뇌가 요동을 치고 있어,
번뇌가 요동을 치는데...어떤거 부터 잡아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냐?이 말이야.
생멸문에 들어가는 조건
이것은 간단합니다.
생멸문이 어떻게 생겨났냐?이 말이야.
고요했는데 생멸하는 마음이 일어났어요.
나하고 기분 나쁜 경계가 일어나면 나의 업력과 맞지 않는 경계가 일어나면
짜증을 내잖아요.
내 정서(업력)하고 맞는 현상을 만나면 좋다고 집착을 하잖아요.
이게 생멸문이예요.
이것이 왜?일어났느냐?하면 여래장에 의해서 생겨났다니까.
여래장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났다니까.
여래장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났다 그래야지
생멸하는 이 마음을 없애버리면 여래장이 드러나지,
파도는 고요한 물에 의해서 일어났죠?
파도를 잠재우면 고요한 물이 일어나잖아요.
고요한 물이 파도를 없애버리면은 아무 효험이 없어
중생 자체가 없어져 버려.
진여라는게 없어져버려,그러면 써먹을 일이 없다고
그러니까 이거는 모든 법이 없다고하는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라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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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은 여래장에 의해서 요동을 치는데 요동 치는것을 잡는 방법
여래장에 의해서 생멸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말이야.
여래장이 생멸하는 마음과 화합을 했느냐?
생멸하는 마음이 여래장과 화합을 했느냐?이 말이야
여래장이 생멸하는 마음과 화합을 한거예요.
여래장이 생멸하는 마음과 화합해서요,그래서 일심사상에서는
아뢰야식이라고 안 그러고,여기서는 여래장식이라고 그래
생멸하는 마음을 없애는것인데.
팔딱 팔딱 뛰는 마음을 생사해탈에 들어가는 문,열반에 들어가는 문,정토에 들어가는 문
이런 말이예요.
(프린트)
생멸심(파도)이 여래장(고요한 바다)과 화합한것이 아니라,여래장이 생멸심과 화합한것을
마음의 생멸문으로 삼았으니,이는 여래장을 버리고 생멸심을 취하여,생멸문으로 삼은것이 아니다,
-->우리가 번뇌를 이야기할때 항상 번뇌만 잘라 버리만 안 된다 이 말이예요.
번뇌를 자르고 난 뒤에--번뇌의 바탕은 뭐예요.
번뇌의 바탕은 지혜에요,번뇌를 자름과 동시에 지혜가 나오는거예요.
그래서 번뇌즉보리예요.
번뇌와 지혜가 따로 있는게 아니고.두 개가 있어서 번뇌를 다 잘라내면 지혜가 나오는게 아니고
번뇌하고 지혜하고 한 덩어리(주먹을 쥐어보이시면 비유를 하신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관계.
번뇌만 잘라 버리면 된다.항상 이렇게만 가르치면 안 되고.
번뇌를 지우고 나면 바로 보리-지혜가 나온다.이렇게 해야 된다 이 말이라.
생멸심(파도)이 여래장과 화합한것이 아니라,여래장이 생멸심과 화합한것을
마음의 생멸문으로 삼았으니.....
바다가 파도를 생멸하는것이라고 했잖아,
여래장이 생멸하는 마음과 화합을 한거예요.
생멸하는 마음이 여래장과 화합을 한게 아니고.
이거는 거꾸로 나오는 것이죠.
여래장이 생멸하는 마음과 화합을 해가지고 아뢰야식이 생겼어요.
많이 일어나는것이고
지혜가 일심하고 화합한다고 한것은 틀린거예요.
이건 지혜가 열려서 일심하고 되는것이고,-광명의 세계가 열리는것이고
무명의 세계가 전개되는거예요.
이건 거꾸로예요.
이건 본인들이 수행을 하면서 알아집니다,
일심이라고 딱~ 관하고 있는겁니다.
일심이라고 관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모습이 맑게 보이면서도 여러분의 모습-무명이 움직이는 모습
이것도 보이는겁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지혜가 일심하고 합해져서 그런거예요.
이론적으로 아는건 증명을 하기 위해서 그런거예요.
생멸문은 파도-우리 마음에 파도가 치는건데...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가는 정관
마명이 기신론에 뭐라고 써놨냐 하면
<기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생멸문으로부터 진여문에 들어가는것을 나타내보이겠다,
말하자면,오음(五蔭.五蘊)을 추구하면 색色과 더불어 심心인데,육진의 경계는 필경에 무념이며
(六塵境界 畢竟無念),마음에도 형상이 없으니,시방에서 그것을 구하여도 끝내 얻을수가 없다,
마치 사람이 깨닫지 못한 때문에 동쪽을 서쪽이라 말하지만 방향은 실제로 바뀌지 않은것처럼,
중생도 역시 그러하여 무명으로 깨닫지 못한 때문에 마음이 생각이라 하지만 마음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잘 관찰하여 마음에 생각이 없는 줄을 알면 곧 수순隨順하게 되어 진여문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신론에 육진경계 필경무념,육진경계는 밖에 있는 색성향미촉법을 말하는것이죠.
육진경계라 -이것이 나한테 번뇌를 일으키니까 티끌이라고 한거야.
다 좋은것인데 왜 육진이라 하느냐.
이것으로 인해서 번뇌를 일으키니까 육진이라고 하는거예요.
정토에서는 또 이거야.이것으로 인해서 번뇌를 일으킨다는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닦으면,요것도 청정하게 보이겠죠?
번뇌를 깨끗이 닦을수가 없어요.
죽을때까지 번뇌를 못 닦겠어요.
자꾸 일어나서,,,
그래서 부처님이 생각하기를 말세의 중생들은 방법을 바꿔야겠다 생각을 해가지고
스스로 번뇌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고
대상을 청정하게 보는 방법으로 깨달음의 방향을 바꿔버렸어.
깨달음의 방향전환(제가 쓴말)-정말입니다,
내 마음을 닦으면 세계가 청정하게 보이거든요.
왜?말세 중생에게 이걸 가르치냐?하면 마음을 닦든지,대상을 청정히 보든지.
똑같단 말이야.
진여문으로 들어가나.생멸문으로 들어가나, 본성에 들어가는것은 똑같애요
차이가 좀 있어요.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하면 광명으로 화신으로 봐버리는거예요.
그러니까 ,거꾸로 한다는것이지
그래서 깨달음의 방향전환이지,
자각의 수행은 전부 무상 무념야.
-생각만 일으키면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거든
너무 중요한 것들이지,
無相無念-자각의 수행이든지 참선이든지, 전부 깨달아야하는것들은 무상무념이라,
상이 있으면 모두 번뇌의 조건이 되고,범부는 생각만 일으켰다고 하면 번뇌를 만든는거예요.
그래서 무상무념을 종으로 삼아서 수행을 해야 되는거예요.
여자는 호박으로, 돈은 돌로--여자를 이쁜 꽃으로 돈을 돈으로보--번뇌무성
有相有念-정토 염불에서는 유상유념
밖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긍정을 하는데,여자를 여자로 보는게 아니고
화신으로 보라고 했다니까.
화신으로 보고, 생각도 모두 화신 광명으로 생각을 하라고 했다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말법시대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
번뇌가 있는 상태야
주객이 있는 상태라,
이렇게 해야지 시대적(서구에서나 젊은사람들에게)으로 상응하는 수행법이 됩니다,
그래야 시대적으로 합리적으로 수용이 됩니다,
무상무념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3년을 앉아 있는 사람 앞에 가서 자극적인 行(ex:방귀)하나면 됩니다,
그러면 경계가 바로 드러나버립니다,
방귀냄새를 맡고 짜증을 내도 틀리고 ,안 내도 틀리는겁니다,
두 개다 틀리다니까
짜증을 내면 분명히 틀린거는 맞고,안 내면 왜?틀릴까요?
목석과 같으니까 틀립니다.
깨달으면 바로 行으로 나와야되는것이고
행위를 한 사람(냄새품은 사람)을 기분 안 나쁘게 가르쳐줘야 도인입니다,
그 정도 가르쳐 줄려면 앉아 있질 않아요.
진작에 나왔지.
생멸문에 들어갈때도 진여문 보다가 수준이 낮다고 그랬어요.
육진경계 필경무념
마명이 해 놓은걸로는 73억명중에 한 사람도 풀어내기 어려워
마명이 풀어놓은글을 2천년동안, 원효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못 풀어내버려.
그 중에 하나가 이거야.
육진경계는 필경무념이다,육진경계 있죠?
색 수 상 행 식있죠? 물질이고 뭐고 다아~~~~~~
요건는 끝내가서는 무념이다 ,생각이 없다 이 말이라.무념 -그 말일까?
기신론이나 내가 강의하는거 1년동안만 다 풀고 이해하면 화두가 다 보여버립니다.
바깥에 보이는 경계들 있죠?
모든 삼라만상이 ,냄새나는것까지-색 수 상행식이니까 그죠?
이것들이 필경에 끝내는 무념이라.
생각이 없다 이 말이라.-번역도 안 되고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해놔요.
그러면 밖에 있는것들은 생각이 없다 그 말인줄 알잖아.
거의 그렇게 해놨어 번역에 해설까지.
원효가 아니면 해설 안되는게 너무 많아.
<기신론소>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통발로부터 뜻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전체적으로 나타낸 것,
두 번째는 각각 해석하는 것,세번째는 전체를 맺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타낸 것 중에 ‘오음을 추구하면 색과 더불어 심인데’
라고 한 것은 색음을 색이라 하고,나머지 넷은 심이라 한 것이다.
각각 해석하는 중에 먼저 색관을 해석하였다.
모든 색은 부수어서 극미에까지 이르게 되면 영원히 얻을수가 없으니,
마음을 떠난 밖에는 생각할 만한 상이 없다.
그러므로 ‘육진의 경계는 필경에 무념’이라고 한 것이다.
비단 마음 밖에 다른 색이 없을 뿐 아니라,마음에서 색을 구하여도 또한 얻을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에도 형상이 없으니,시방에서 그것을 구하여도 끝내는 얻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필경 무념을 뭐라고 했어요. 육진경계는 필경무념이다 .이게 무슨말이냐?하면
육진경계는 색 이죠.색성향미촉법이 다 색이라.
이 색을 가져와가지고 소승불교에서는 모두 석공으로 가르친다고했죠.
여기서 원효도 그대로 썼잖아요,
모든 색을 가져와서 절구통에 부수어서 ---> 극미에 까지 이르게해가지고
영원히 얻을수가 없이니-->다 갈아버리면
여기에서 먼지 흙, 돌 실체라 할만 것을 얻을수 없다.이말이라.
육진경계는 (필경에)끝내 생각할 만 모양이 없다는걸 무념이라고 했다니까.
여기서 무념이란 말은 그런거야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면 안돼
원효가 아니면 저 머리로는 세세생생 생각해도 풀어버릴수가 없어요.
누가 가르쳐 줄일도 없고 육진경계는 필경에 얻을만한 형상이 전혀없다.
이것을 필경무념이라 한다 이 말이라.
원효가 생멸문에 들어갈려면 어떻게 해야된다고 생각했냐?하면
색깔있죠.색에 전혀 형상이 없어.
물질에는 일정한 형상이 없다-실체가 없다 이 말이야.
그리고 마음에서 색을 구해도 색이 없다.
이것은 왜?연필이라고 하느냐하면-여기에다가 마음을 줬기 때문에 연필이라고 그러고
마음을 줬기 때문에 컵이 된거예요.
소승불교에서도 원효는 명확하게 일심사상을 읽을수 있게 해 놨다니까.
일심사상을 읽을수 있게 해 놨다고 소승불교을 읽을때도...
일체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이야
여러분이 아무리 불자라도 제가 마음을 주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는 거기서 훌륭하다고 해도
대통령도 내가 대통령이라고 마음을 갖지 않으면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살은 전부 저 사람을 사람이라고 보지를 않고
저 사람은 이쁜사람,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마음을 두지 않고
내 모습이라고 마음을 둔다니까.-그러니까 움직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것이지.
결국에는 원효가 아주 강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대승불교는 나에게 있는 체에 대해서
맛을 봐야 되는데 여기서 체험을 할려면 일체가 실체가 없다는걸 확실히 알아야 들어갈수 가 있다,왜그러냐하면 밖에 있는것들이 가치가 있고 실체가 있는것이라고 생각을 해버리면
마음이 여기에 쏠려서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수행을 할려면 일단 외연을 끊어야됩니다.
외연을 끊는것중에 가장 크고 골치 아픈게 누구예요?
사람이예요.사람이고 가장 옆에서 걸리적 거리는거야.
출가는 다른 것이 없고 발심을위한 조건이다.
발심은 원효가 말하는 발심은 그냥 발심이 아니야.
보리심하고 연결된 발심이야 그래서 달라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발심을 사홍서원이라 생각한단 말이야.
그거야 어림도없지.
원효가 말하는 발심은 삼신을 얻기 위한 발심이죠.
다 연결되어 있어요.
발심을 하기 위한 출가이기 때문에 발심을 안 하면 스님이 아니예요.
원효사상에서는 아니야.
원효의 사상에서는 발심을 해서 성취를 했지.
발심을 해서 지혜를 얻었지.얻었으면 출가의 목적을 다 한것이라.
계속 장가 안가고.출가의 신분을 지키는 것은 형식이라.
형식도 중요해,형식도 불교를 이끌어가는데는 중요한것이지
원효는 출가의 목적을 다해버렸어.
부처님이 요구하는 출가의 목적을 다 해버렸다고.
원효는 출가는 딱하나야.
출가의 복덕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데-복도 많고 전생에 어쩌고..구대가 흥하고..등등
원효는 딱~ 하나 싹 지워버리고 딱~~ 하나
출가는 오직 발심을 위한 방편이라고 해놨다고
출가의 목적이 성취되면 지 알아서 해도돼.
원효는 체 상 용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무열왕 아래 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였다.
100% 성공한것입니다.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갈려면 일단 낮은거부터 하는 거예요.
색과 마음이 공하다는걸 알아가지고 들어가는거야.
제가 원효에 대해서 놀란글은 이거 하나
육진경계 필경무념--이것은 마명이 쓴 글입니다.
그 밑에 원효가 설명한걸로 유명한 것은
비직심외무별색진,(非直心外無別色塵) 어심구색역불가득(於心求色亦不可得)
---비단 마음 밖에서 별다른 물질이 없을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색을 구하여도 또한 얻을수가없다.
그러므로 ‘마음에도 형상이 없으니,시방에서 그것을 구하여도 끝내 얻을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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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바탕 위에 생각(마음의그림자)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것이지 마음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음을 알 것이다-->우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죠.갖가지 생각을 이것을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이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일심사상에서 말하는 마음은 이런 마음이 아니고,움직이지않는 마음이라 이 말이라.
움직이지 않은 마음이 장애요소를 만나서 움직이는 마음이 되어버렸다고
여기서는 생각과마음을 구별하는거라.
원래 일심사상에서 요구하는 마음은 변하지를 않는다고.항상 그대로 있다고
마음의 바탕에서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야.
그러니까 이것은 잡을래야 잡을수도 없어,잠시라도
금강경에 나오죠
과거심 불가득,현재심 불가득,미래심 불가득이라고 나오죠.
얻을수 없다고.
이것은 생각을 말합니다.
만약 잘 관찰하여 색법과 심법이 모두 공 무상인줄을 알면 곧 아공과 법공의 이치에 수순하는 방편관을 닦게 된다,---내가 공하고 물질이 공하다고 가르치고 있거든
이건 방편관이라는거예요, 정관이 아니고.
아공과 법공을 가르치는 것은 방편관인데 무엇 때문에 방편관이라고 하느냐?하면
모두 일심법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일심법이라 한다 이말이야.
그리하여 공을 깨달은 지혜에 그치지않고,비유비무의 이치에 수순하는 중도관을 닦아서 마침내 분별하는 생각을 떠난면‘일체 법은 공,무상,비유비무라는 정관의 지혜(묘관찰지)을 얻고
진여문에 들어갈 것이다.-->이것만 가르쳐도 한국불교에 큰 수확이예요.
공만 깨달으면 안된다고ㅡ공만
한국불교는 해방이후 이조말부터 거의 공만 노래했습니다
이조때부터 일본이 침략하고 지금으로부터 100년이됐잖아 ,100년
그 전부터 다아~~
희망이 없죠?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노래는 뭔줄 아세요?
공이고 무상이고 허무고 그런거야.
다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다.
저 잘난 사람을 부자를 나는 따라갈 길이없다.
저 많이 배운 사람을 제가 따라 갈 수가 없어요.
거기에 위로를 삼는 것이 뭐냐하면
많이 배워도 다 헛것이야,공수레 공수거야.
죽을 때 무엇을 가지고 가냐? 이 노래를 부르는것입니다, 아시겠어요?이것이 불교를 망치게 하는 원인이라니까.
불교가 희망이 없었으니까.이조 중기부터 그런 시만 쏟아냈어요.
희망적인 시가 없고--광명의 물결이라든지,시가 없어
불교의 궁극은 광명의 물결이라.
전부 청정한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아침에 연탄 실은 리어카 끌고...
새벽에 나가서 아나고 대가리 손질하고
멸치 잡고 하는것도 전부 안에 마음은 빛나고 있습니다,
자식,손자 잘 키위기 위해서
도망간 며느리 손자 손녀 잘 키우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이걸 이야기하는겁니다.
다 실체가 없는 놈들인데 어마 어마한 공덕을 일으키잖아요.
그러니까.비유비무지 -공에 빠지면 안 된다고
중도가 끝이 아니고 비유비무야.
거기서 어마 어마한 힘이 나온다니까.
묘관찰지를 얻었잖아요,공하다는 이치를 확실히 알고
거기서 어마 어마한 힘이 나온다니까.
묘관찰지를 얻었잖아요,공하다는 이치를 확실히 알고
진여 우리의 참 본성의 맛을 느끼면 무한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또 믿어야돼,
공에서 그치면 안 되고
이거는 내가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것이고 내 생명이야,생명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잘못 깨달으면 잘 사고 못사는 여기에
전부 공 무상만 노래 부르고 있다니까.
복이란걸 우리가 실제로 안 봤는데 ,실제로 복짓는 일을 하면 복이 온다니까.
이게 비유비무지미
우리가 번뇌라는거 안 봤죠?수술해도 번뇌라는거 없어요.
니가 니 식데로 살아봐라,바로 번뇌가 작용해버리죠.
이게 바로 비유비무죠.
비유비무 바탕에 뭐가 있냐? 진여가 있습니다.
진여가 그것이 어디에 있냐?우리속에 있다는걸 이야기 하고.
여기까지 해서 이것의 근거가 여래장사상이라.
다음시간부터는 체 상 용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부처님 지혜 이야기하고 ,이러면 열려
열리는 것을 자기가 아느냐?
조금 알고 거의다 몰라.
모르면서 알아,모르면서 안다고 이거 妙하죠.
알면은 아는놈이 있고 집어 넣은 머리가 있어요.
두 개가 되요.
두 개가 되기 때문에 실제로 작용이 잘 안 일어나요
계속 진지한 사람은 아는 것이 몸에 베어버려요,
몸에 베어버리니까 아는놈이 없지.
다음주는 쉬겠습니다.감사합니다.
늘 보던 건물도 가끔은 더 깨끗하게 보일때가 있고
늘 마주하던 사람도 더 가깝게 느껴질때가 있고
강성하기 보다가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싶을 때가 있고
걸르지 않고 직선적으로 내뱉던 말들도 한번더 걸르게 되고
내가 토해내는 말들로 조금은 힘들어 할 상대를 먼저 생각할수 있게 해준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알게 된것이 참으로 많이 감사한 시간입니다,
작은것들에도 많이 감사해지고 좀 더 마음을 펴 보이고 싶은 오늘이 있도록
배움을 펼 쳐 보여주시는 스님께 진심을 감사의 禮를 갖춥니다,
그리고 물러섬 없는 배움이 될 수 있도록 아미타전에 염불합니다,
나무아미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
필경님, 수행원에서 지킴이 하시면서 정리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波 _()()()_
필경님!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일체 인연에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스님따라 다니면서 법문 들을수 없는데
이렇게 해주시니 너무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정목스님!!!
계속"감격""감격""감격" 감명입니다.
"일심사상"의 위대한 "힘" 정목스님
대한민국.세계.우주.....불교 의 희망입니다.
아미타불 "종정" 정목스님 감사드립니다.
필경님! 축하합니다.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ㄴ아미타 아미타파 아미타한국!!!
생멸문에서 번뇌를 지우는 연습. 번뇌와 청정은 혼합물로 존재하니 딸 잘라낼수가 없으니, 지우는 연습, 지우지 못하는 광명으로 쏘는 연습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필경보살님 감사합니다.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필경님 이렇게 긴 글을 현장김있게 만들어 주시는 필경님의 보살도를 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인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스스로 번뇌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고, 대상을 청정하게 보는 방법으로 깨달음의 방향을 바꿔버렸어."
정토의 법 ‘아미타’와 ‘일체경계 일심’의 깨달음이 다함께 녹아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일심 광명 화신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일심광명화신아미타아미타아미타()()()
필경님의 무량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_()()()_
불교에 체 상 용의 힘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그 힘을 발휘하는것이 나의 행복이고
다른 사람한테 기쁘게 하는것입니다,
인간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건 묘하다 묘해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떳떳합니다.
하나를 동시에 못 보는것을 범부라고 합니다,
범부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은 하나에서 두가지를 봐
비유비무로 보니까 이것은 범부가 아니야.
(아주 큰 사찰의 주지스님께 고교시절에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40여 년 참선을 해왔지만 못 들어가봤다.
이제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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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필경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파
일심사상의 마음은 고요한 마음, 생각은 움직이는 마음,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진다.
금강경의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의 심은 생각이다.
정관의 지혜는 중도관을 말하고 묘관찰지(공,무상,무원)는 말한다. 중도가 끝이 아니고(아는것) 비유비무를 실천하는것이 중요하다.
요즈음 무아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한생각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한 생각 일으키는 것이 엄청난 것임을 봅니다.
한생각을 비유비무로 관하고 공,무상,무원으로 실천하도록 애쓰겠습니다.
기록하여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파 _()()()_
보살님, 덕분에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생생한 기록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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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필경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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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광명.화신.아미타!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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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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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마음 밖에서 별다른 물질이 없을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색을 구하여도 또한 얻을수가없다.>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십시요 나무아미타()()()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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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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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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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누어서~~ 읽다가 생각하다 ~~ 했습니다.
우리스님께서는 光明을 비추고 계십니다.
( 한 말씀 한 말씀이 안심 입니다 )
일심광명.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
일체의 인연공덕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 ()
일심 광명 화신
필경보살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_()()()_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파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