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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성탄절 전 4주간) 스크랩 성탄절의 은총 /대강절 마지막 주일
기획실 추천 0 조회 24 14.09.24 15: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
이샤야 61:1-3

성탄절이 두 주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 최고 축복절기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탄절을 잘 준비해서 성탄절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최고 축복의 은총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탄절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50년경 장차 오실 메시아의 탄생, 십자가의 죽음, 부활 등 메시아 사역에 대하여 예언 하였습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를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는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의 신분을 말씀합니다.

1절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왕(王)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제사장(祭司長)을 세울 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선지자(先知者)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직임을 위해 기름을 부음 받은 사람을 ‘그리스도라’ 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 부릅니다. 그 뜻은 그 분은 만왕의 왕으로서, 만인을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릴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예수님의 신분(身分)이 무엇인지를 알고 성탄절을 축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탄은 대단한 분..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절기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날 정도를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가 하늘에서 오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크리스마스’ 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 -크리스토 미사-라는 말로서 ‘그리스도께 경배 한다’ ‘그리스도께 예배드린다’ 는 뜻입니다. 성탄은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께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날이지 생일축하 하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원일의 성도님들은 성탄절을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동방박사들처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처럼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날로, 예배드리는 날로 성탄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성탄절을 잘 지킬 수 있게 됩니다.

□ 아름다운 소식을 가난한 자에게 가지고 오신 분

1절 앞에 보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메시아로 탄생하신 예수님 사역(使役) 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세상의 가장 큰 문제인 빈곤(貧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가지고 오신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싶지 않습니까..? 그 소식을 들으면 우리의 가난 문제도 해결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너희가 배불리 먹고 기름과 골수를 먹으리라..’

레위기 25:18-19절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바로 이소식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사는 민족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을 보십시오, 청교도신앙이 건국이념이 된 미국을 보십시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가 된 것입니다. 가장 부강한 초일류국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숭배 하는 나라들을 보십시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같은 불교국가들을 보십시오, 힌두교를 섬기는 인도, 네팔, 부탄, 스리랑카 같은 나라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나 어렵게 삽니까..?

우리나라가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라 1000년 동안 불교를 섬겼고, 이조(李朝) 500년 동안을 유교를 섬겼습니다. 우리민족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여러 말 할 것 없이 ‘보리고개’ 를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보리고개’ 넘기가 어려웠다고 하면... 엄마 그런 고개가 어디 있는데..! 라고 물어 봅니다.

우리민족이 불교를 섬기고 유교를 섬길 때는 양식이 부족하여 다음농사철까지 먹고 살 것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지금과 똑같은 땅에다가 농사를 지었는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가난하고 빈핍하였습니까..? 지금은 우리나라 4500만 인구가 배가 터져라 먹고도 쌀이 남아돌아 갑니다. 해마다 수십만 톤의 쌀을 이북에 퍼다줍니다.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가 되었습니까..?

기독교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고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때부터 이런 축복이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서양의 기술문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우리민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농사기술이 개발되고, 산업이 발달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는 날게를 난 듯 발전하기 시작하여 1961년도에 1인당국민소득이 83달러이던 것이 1993년에는 무려 7,466달러가 되고, 그리고 지금은 1만 달러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는 세계 11번째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1965년도에 국민1인당 평균영양섭취 칼로리가 2,189 칼로리였으나, 1991년에는 2,883칼로리가 되었고, 2005년인 지금은 너무나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므로 우리나라도 이제 비만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고 살을 빼는데 연간 수조원의 돈이 소모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IT 산업의 1등 국가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단말기가 3000만대가 넘어서는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축복이 왔습니까..?
이렇게 된 것은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1000만 명이 넘게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되어...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입니다.

시편 144:13-15절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 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이런 축복의 소식을 가져오신 메시아 이십니다.
우리도 이 성탄의 계절에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가지고 탄생하시는 예수님을 잘 영접하므로 놀라운 번영의 축복을 받아서 복되게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다시 한번 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 됨을 고백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부귀와 영화의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러 오신 분

1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여러분..!
금년 성탄절은 마음이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치유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마음은 아주 예민하여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받기 쉽습니다. 마음이 상처받으면 육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병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의 속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심장에 나쁜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뛰어 오르는 것’(Running up) 이고, 또 하나는 ‘뛰어내리는 것’(Running down) 하는 것이다."

이 속담에서 ‘뛰어오르는 것’ -Running up- 하는 것은 과도하게 흥분하는 것으로 심장마비에 걸리기 쉬운 것을 말하고...또 ‘뛰어내리는 것’ -Running down- 한다는 것은 남을 깎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깍아 내리고 비판하면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되어 심장에 병이 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결함이 많은 사람이 남을 많이 비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남의 말을 많이 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자기의 결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미움과 질투로 무장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것은 실제로는 자기의 부족함과 결함을 감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방어와 자기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높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약점을 돌아보면서 성령을 통하여 치유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외치며 통회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럴 때 죄 사함의 용서와 함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므로 모인 무리들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케 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시켜 주십니다. 인간적인 노력이나 방법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만이 상한 마음을 고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 성도들의 상처난 마음들을 주님께서 치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1년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살아왔습니까..? 정말 나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 그 마음의 상처는 골이 깊게 패이고, 그 아픔이 너무나 커서 잘 회복이 안 되고, 지금까지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지난 1년 동안 내가 누구에게 상처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고, 또 나는 누구를 상처 주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서로 간에 상한 마음에 치유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서로를 용서하기를 힘쓰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 는 그의 ‘집단심리학이론’ 에서 사이가 가까워갈수록 미움도 자라나고 상처를 입게 된다는 말을 ‘쇼펜하우어’ 의 우화(偶話) 고슴도치 이야기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겨울날 아침이었습니다. 고슴도치 한 쌍은 추위에 떨며 지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데우기 위해서 몸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몸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 돋친 수많은 가시가 서로를 찔러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에는 상처만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고슴도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슴도치처럼 몸이... 가장 사랑하는 것,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찔려서 상처를 입듯이... 우리의 마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마음을 ‘상한 마음’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습니까..? 벤자민 플랭크린은 ‘빈 자루는 똑바로 서지 못한다, 그러나 곡식을 담으면 세울 수 있다..’ 고 의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상처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우게 되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치유하게 만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이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면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이 고침을 받고 건강해 지는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가져와서 치료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포로 된 자에게 자유와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시는 분

1절 뒷부분을 또 보십시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직접적인 배경은 메시아가 오시면 바벨론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임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인간을 죄의 사슬에서부터 놓임을 얻게 하리라는 구속사적인 사죄의 은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십자가사건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용서하실 주님의 메시아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서의 자유함을 얻는 것이 금년 성탄절의 가장 큰 빅 이벤트가 되는 사건이므로 성탄절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성탄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메시아 아기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성스러운 성탄절에 지난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자유와 해방의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성탄절의 은총
마태복음 1:18-25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신림동이 많이 개발이 되어서 달동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만, 20년전 만 하더라고 신림동 달동네는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참으로 가나한 동네였습니다. 그 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는 어느 목사님이 달동네에서 혈혈단신으로 혼자 사시면서 남의 집 파출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할머니 교인집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 아궁이에 연탄도 제대로 넣지 못해 방은 냉방이었고, 장판도 벽 도배지도 낡아서 다 떨어져 있는 참으로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심방예배가 끝나자 할머니는 목사님을 대접한다며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무엇을 도와 드릴까 생각하며 방안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던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벽에 자기앞수표 한 장이 붙어있었습니다. 가짜겠거니 생각하고 가까이 가보니 진짜 은행수표였습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수표에 적힌 액수였습니다. 집을 한 채 사고 남을 만한액수가 적혀있었습니다. 그 돈을 은행에 맡기면 그 이자만으로도 편히 잘 살수 있는 그런 큰 금액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찻잔을 들고 들어오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 수표가 왜 여기 붙어 있지요..?” “아 그거요 별거 아니에요, 목사님 차 먼저 드세요” ‘할머니 차는 천천히 마시고요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거요, 지난해 부인도 없고, 자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병간호를 못하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제가 병간호를 얼마동안 해 드렸지요, 어느 날 그 분이 저를 부르더니 저걸 제 손에 쥐어주기에 고맙다고 받았지요, 그런데 그 분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났는데 그 분이 주고 간 선물이어서 기념으로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 할머니 저건 돈이에요, 돈도 엄청나게 큰 돈이라구요.!.” “저 종이 쪼가리가 무슨 돈이래요..?” “할머니 저건 수표라는 건데요, 이걸 은행에 가져가면 집도 사고 평생 먹고 살수 있는 큰 돈이 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혀를 차며 “이이고 이놈의 까막눈 이를 어쩌면 좋담..!” 하며 한숨을 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귀한 것도 그 가치를 모르면 휴지처럼 여기고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할머니의 모습으로 성탄절을 지내기가 쉽습니다.

오늘은 대강절 넷째주일입니다.
성탄절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주일이고, 이번 토요일이 성탄절 이브가 되는 날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탄절잔치를 화려하고 성대하게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이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고 있다면, 하나님이 왜 독생자를 이 성탄절에 보내주셨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거액의 수표를 벽에다 붙여놓고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의 모습처럼, 우리도 성탄절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교인들이 될 것입니다.

성탄절에 탄생하신 아기예수님은... 내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축복과 은총이 그 분 안에 있습니다. 내 인생 전부를 올인 할 수 있는 가치가 그 분에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비밀이 그 분 안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내 인생의 기쁨이요, 생명이요, 소망이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성탄절에 이 땅에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부요함과 풍성함의 은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탄절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탄절을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그냥 지내시면 안 됩니다. 이 성탄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천국을 발견 하고 영생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세상과 바꿀 수 없는 희망과 행복의 비밀이 이 성탄절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는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감격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 가족사랑 회복의 기쁨입니다.

본문 18-20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마리아와 요셉의 관계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혼직전입니다. 물론 결혼한 관계는 아니고 정혼한 관계-약혼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어떻던 지금 파혼하고 이혼하려는 직전의 위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 계속 보면...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런 가정의 위기를 보시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십니다. 급히 요셉에게 나타나서 요셉을 설득합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네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마리아가 무슨 부정(不貞)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신 것이다.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이름을 예수라 지어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다.

그래서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왔다고 말씀합니다.
깨어질 번 한 갈등관계에 있는 부부사이가 다시 회복되고 사랑의 관계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혹시 부부사랑에 금이 가고, 심각한 갈등과 가정에 불화가 있는 가정이 있습니까..? 행복이 깨어진 가정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번 성탄절에 그런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셔서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금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 성도들의 가정마다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도시에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살았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각각 걱정이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하고 싶은데 너무 가난해서 선물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꼭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델라는 자기의 아름다움의 상징인 삼단 같은 금발머리카락을 잘라서 남편의 손목시계에 매달 아름다운 시계줄을 선물로 샀습니다. 한편 남편 짐은 아내를 위해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궁리 끝에 자기의 손목시계를 팔아서 아내의 금발머리에 꽂을 예쁜 머리핀을 크리스마스선물로 샀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이 되어 두 사람은 각각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머리핀을 선물로 주었으나 머리핀을 꽂 울 수 있는 금발머리가 없었습니다. 또 아내는 아름다운 시계줄을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계줄을 달 시계가 없었습니다. 준비된 선물들은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뜨겁고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멎진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사랑은 엄동설한의 추위도 녹입니다.
여러분들도 금년 성탄절에 가족끼리 부부끼리 이런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잊을 수 없는 성탄의 감격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24-25절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이 짧은 본문 속에는 성탄의 계시(啓示)를 체험한 요셉의 감격이 묻어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비록 꿈속에서이지만 천사를 생전처음 만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천사가 20절에 보세요 -‘다윗의 자손 요셉아..!’ -하고 자기이름을 불러 준 것 입니다. 놀라운 영적인 경험이요 감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크리스마스의 감격을 체험한 요셉은 새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일의 구경꾼이요 방해꾼이 아닌 자신을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적극적인 동역자로 나서게 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요셉과 같은 크리스마스의 은혜 체험과 감격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탄절이 얼마나 은혜스럽고 복된 교회절기인 것을 알게 됩니다.

성탄절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얼마나 복된 절기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성탄하신 아기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발견하고 감격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70평생이 지나면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그런 한계가 있는 생명입니다. 그 누구이든 이 한계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탄으로 인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우리는하나님께로 선물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한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기적처럼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그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사고는 그의 두 눈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남자는 의사를 붙들고 통곡했지만 의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환자의 등만 쓸어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안구이식을 하는 것 말고는 가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곧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한 꼬마소녀를 만났습니다. 옆 침대에 입원중인 아이는 놀아줄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워했습니다. 그 소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 눈이 꼭 미라 같다. 아저씨, 아저씨, 말 못해?”

그러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만큼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소녀가 자꾸만 성가시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눈을 감싸 쥐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러자 소녀가 곁에 와서 손을 꼭 잡으며 말합니다. “아저씨, 울지마... 울 엄마가 그러는데 자꾸 울면 병이 안 낫는대..!”

그 날 이후로 그 남자는 그렇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 말을 붙여준 소녀와 단짝이 되었습니다. 함께 정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도 주고받았습니다. “아저씨, 나 있잖아 아저씨랑 결혼할래?” “정혜는 아저씨가 그렇게도 좋니?” “응 좋아.”

그러나, 남자와 일곱 살 꼬마소녀의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남자가 퇴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녀는 자기가 퇴원할 때 꼭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꼬마가 퇴원하는 날 꼭 예쁜 꽃을 사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안구기증자가 나타나서 눈을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뛸 뜻이 기뻤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는 잃었던 빛을 찾았고 온전한 새 세상을 찾았습니다.

시력이 회복된 다음 병원에서는 기증자가 보낸 편지 한통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그 편지를 보고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편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아저씨, 나 아무래도 아저씨랑 결혼은 못 할 것 같애. 그래서 아저씨 눈 할래.”

일곱 살 어린꼬마가 하늘나라에 가면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밝은 눈이었습니다.

여러분..!
2000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준 그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그 생명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 자기의 생명을 대신 준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성탄절은 이 같은 새 생명을 얻은 감격을 가슴에 지니고 성탄절을 지켜야 합니다.
성탄의 은총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눅2:25-35절) / 104.167장

1. 서론
오늘부터 ‘대강절(대림절/강림절)’ 절기가 시작이 된다.
‘대강절’이라는 말은 ‘기다릴 대(待)’자와 ‘내릴 강(降(강)자를 써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이다.
‘대강절’을 다른 말로 ‘대림절’이라 혹은 ‘강림절’이라고도 부른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때가 언제인가? 바로 ‘성탄절’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기준으로 해서 4주전부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대강절 절기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이 대강절 절기를 지키는 중요한 의미는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의미’가 이 대강절의 의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모두가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대강절 절기를 맞이하면서 먼저는 2000년에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대강절절기를 지키시고, 그리고 또 이 대강절 절기 동안에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소망했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안나’라는 사람이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는 이들 두 사람만이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살았다.

당시 유다 나라의 형편을 보면,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면서 생활을 거의 자유가 없는 생활을 하였고, 사회적으로는 대제사장들과 유대지도자들의 억압과 착취로 인해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 그분이 오시면 로마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고,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고통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실 당시 거의 모든 백성들이 다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신앙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 사람들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 두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허락해주셨기 때문이다.

해서 오늘은 이들 두 사람이 어떤 신앙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우리도 이들의 신앙처럼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1) 먼저 ‘시므온’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말씀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 보면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충실하게 잘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이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는 말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메시야가 오시면 고난 당하고 고통 당하는 그 백성들을 위로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위로 해주실 분은 누구냐? 바로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말은 바로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살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므온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늘 함께 계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므온은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율법의 전례를 지키기 위해서 성전에 오는 예수님의 부모님들과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마 성전 안에는 시므온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인데 특별히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게된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시므온에게 메시야를 만나는 영광을 주셨느냐?
그것은 바로 시므온이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모두가 우리도 시므온처럼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부정과 부패가 많아도 우리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시고,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사시고, 그리고 늘 성령충만한 가운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또 한 사람 오늘 말씀에서 가장 모범적인 신앙으로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은 바로 ‘안나’라는 여 선지자이다.

오늘 말씀 36절과 37절에 보면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하였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안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첫째 안나는 ‘여 선지자’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여자 선지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 ‘안나’라는 사람이 여 선지자라는 말은 이 안나라는 사람이 당시에 보기드문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안나’는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시집을 가서 7년 만에 남편이 죽고, 과부로 산지가 벌써 84년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지금 나이가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혼자서 살았다는 말이다.

이 말씀 속에서 이 안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평생을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안나는 그런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나하고 어떻게 살았다고 하였느냐?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안나라는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하였다.
그런 가운데 마침 성전에서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영광을 얻게된 것이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우리도 안나와 같은 신앙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안나와 같이 늘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고, 늘 기도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안나에게서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38절 말씀에 보면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하였다.

안나는 메시야 예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자기처럼 메시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수님을 증거하였다고 하였다.
이제 곧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 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만, 우리가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을 세상에 증거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수님이 누구신지,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증거 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에는 우리 모두가 안나와 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3. 결론
오늘 시므온과 안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이들 중 한 사람은 할아버지고 한 사 람은 할머니이다.
이들의 가문이나 신부은 많이 다릅니다만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바로 이들은
둘 다 경건한 신앙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둘 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세상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맞이하는 영광을 얻게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일천 만이 넘는 성도들이 살고 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며 대강절 절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경건한 신앙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 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아마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가 아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기다리기 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하셨고, 그리고 예수님은 약속 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믿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대강절 절기 동안에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다시 세상에 오실 예수 님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기간동안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더욱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서 기도하면서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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