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100주년> 숨겨졌던 일제치하 석면피해 공개 일본정부 "1960년 이전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책임 없다" 회피일관
일본이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가동했던 석면 공장과 석면 광장에서 일했던 재일한국인 및 국내 근로자들의 석면피해사례가 세상에 공개됐다.
26일 열린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 ‘센난 재일한국인 석면피해 사례보고’ 기자회견에 초청된 재일교포 마 쓰시마 가나(66. 한국명 한고자)씨는 “머리나 속눈썹, 눈, 코에 석면 분진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인체에 치명적인 재난을 일으키는 줄 몰랐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당시 석면공장의 상황을 증언했다.
마쓰시마 씨는 집이 가난해 10살 때부터 석면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센난(泉南)의 석면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 상당수는 재일 한인들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한인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의 차별과 저임금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위험한 석면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사카 센난 지역은 20세기 초부터 석면 방직업이 집중적으로 들어선 곳으로, 1940년 보험원 조사에서 전체 조사 대상자의 12.3%, 근속 20년 이상 노동자는 100% 석면폐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석면 공장에서 일했던 마쓰시마씨의 남편은 이미 석면에 의한 폐암판정을 받았고, 마쓰시마씨 역시 몸 속에 석면이 누적돼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증 석면폐 질환을 앓고 있는 오카다 요코씨. 현재 오카다씨는 센난지역 석면피해자들과 일본정부에 관리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또다른 재일교포 오카다 요코(54)씨는 석면에 의한 간접피해자다.
오카다 씨는 “부모님이 석면 공장에 나를 데려가 돌보면서 일했기 때문에 석면폐를 앓게 됐다”며 “항상 산소마스크를 쓰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지만, 석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상을 받지도 못한다”고 밝혔다.
당시 오카다씨가 살았던 한난시는 석면 공장 4개가 처마를 잇대고 있었고 근처의 아이들은 석면 원료 더미 위에서 뛰어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20년간 석면 공장에서 일한 오카다씨의 어머니는 현재 석면폐에 속발성 기관지염으로 투병생활을 하고있고, 심한 기침과 가래 등으로 호흡에 고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오카다씨의 아버지 역시 15년 동안 호흡곤란으로 고통받다 도중에 폐암이 발병했음에도 석면폐 때문에 수술을 받을 수 없어 암진단을 받은지 1년 후 사망했다.
◇ 일제치하 석면광산서 일한 근로자, 3대에 걸쳐 피해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일제의 한반도 석명광산개발에 의한 피해사례도 공개됐다. 일제가 1930년대 초부터 전쟁물자 생산의 일환으로 채굴을 시작한 석면광산에서 근무했던 근로자 및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서 석면성 질병 증세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가 개발한 석면광산서 일했던 3대가 석면성질환으로 시달리다 사망했다
3대에 걸쳐 석면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정지열씨는 “조부와 숙부, 당숙과 형, 당숙의 아들이 모두 석면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며 “3대에 걸쳐 8명의 석면광산 근로자 중 7명이 폐질환 환자”라고 밝혔다.
정지열씨의 조부와 숙부는 1930년대 광산 시초부터 해방때까지 근무한 이후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그의 형 역시 1957년부터 약 2년간 근무했음에도 석면질환으로 2008년 사망했으며 특히 당숙의 아들인 정지훈씨는 광산 노동자가 아니었음에도 환경성 석면질환으로 지난 6월 사망에 이르렀다.
정지열씨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석면법을 제정해 피해보상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보상에 나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로부터의 피해보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5월 오사카지방법원이 센난 지역 석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일본 정부가 항소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1960년 사이의 석면공장 및 광산에서 일한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정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석면과 질환 사이의 연관성이 1959년 들어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센난지역 석면피해 시민모임 대표인 유오카 가즈요시씨는 “일본이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가동했던 석면 공장에서 일했던 재일 한인들은 현재까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서도 이같은 피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양국정부가 손을 잡아 당시 피해자와 가족들이 되물림되는 고통을 받지 않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