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눈물 꽃
전산우
작은 꽃이 마냥 아름다울 때가 있다.
봄날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제비꽃이 그렇다. 눈밭에서 웃고 있는 복수초의 눈망울이 그렇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 될 수 있었다. 금녀 씨는 오늘 그런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꽃밭을 다녀왔다.
합동장례식이 I대학병원에서 있었다. 지난해 기증된 시신 28구의 넋을 기리기는 자리였다. 아래층 할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송이 작은 꽃으로 피어나 있었다. 종교 의식과 헌화, 분향, 발인 등의 순서로 의식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소수의 다정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다정한 사람들이 메마른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분들의 참된 사랑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 옆에 당신들이 항상 함께하실 것입니다.
의과대학장의 추모사는 눈물샘을 찌르는 송곳이 되었다. 식장 곳곳에서 유가족과 친지들이 숨죽여 흐느꼈다. 금녀 씨도 금세 눈물이 핑 돌았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 지퍼를 열어 손수건을 꺼냈다.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미래였다. 언제 어떤 바람이 불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슨 그림을 그리게 될지. 평지를 만날지 절벽을 만날지. 살아가다 보면 엉겁결에 발걸음 하나를 내딛을 때가 있다. 그 발걸음 하나가 한 사람의 미래를 바꾸는 단초가 될 때가 있다.
***
함박눈이라도 쏟아지려는 걸까. 검은 구름이 마구 모여들어 있었다. 성미 급한 눈송이들은 이미 유희를 하듯 머리 위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엉성한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속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들. 목덜미가 움찔움찔 움츠러들었다. 하늘도 마당도 어둑한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난감한 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던가. 서로 간에 어설픈 신경전이 벌어진 그날. 한 사람의 마음만이라도 상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듯 흐지부지 넘어갔다면. 역시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일을 위해 해가 뜨고 해가 질 터였다. 등이 휘고 손이 갈퀴가 되어 늘어지게 고생만 하다가 눈을 감을 터였다. 산 너머 대처에는 어떤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지지고 볶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깜깜나라로. 무엇을 구하기 위해 아옹다옹 목숨들을 거는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꼴도 보기 싫어요. 제발 어디든 가라구요!”
“오냐, 원대로 어디든 가 주마.”
두메산골의 동짓달 마당은 마냥 어수선했다. 한두 번 당하는 말 펀치가 아니었건만. 불쑥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만 예순다섯의 시어머니. 가장의 기제사를 모신 다음날이었다. 그 자리에 두 사람만 있었던들 대뜸 그렇게 어기대진 않았을 것이었다. 명색이 시어머니였다. 자식들 앞이었다. 아랫것이 시어머니를 내치는 말을 뱉어 놓은 것이었다. 가슴 한복판이 뻐근했다. 주먹만 한 차돌멩이가 숨통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어무이, 나랑 같이 가요.
막내는 지난해 기일에도 팔목을 잡아끌었다. 말만으로도 기껍고 고마웠다. 그렇다고 쉽사리 따라나설 염치가 없었다. 막내의 처지가 훤해서 그랬다. 도시로 나간 게 언젠데. 아직도 제 입이나 겨우 건사하는 눈치였다. 그런 형편에 혹을 붙이러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눈 뜬 사람 코도 베어 간다는 도시라는 괴물단지도 마음에 걸렸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시어머니가 이상했다. 막내를 따라간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전의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성질이 불같은 사람처럼 인내심의 구멍이 뚫린 적이 없던 시어머니였다. 저 밑에 웅크리고 있다는 분심(忿心)의 도화선이 화염을 일으킨 적도 없던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가슴속에 커다란 단지를 숨겨놓고 있었다. 그 속에 토해내고 싶은 말들을 차곡차곡 쟁여놓고 있었다. 그러나 여간해선 뚜껑을 열지 않는 검질긴 인내심의 단지였다. 그런 시어머니가 집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별일이야. 어서 가세요, 해 떨어지기 전에.”
혼잣소린지. 주위가 다 들으란 건지. 차끈한 말이 미꾸라지처럼 둘째네 입술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점성(黏性)이라곤 삶은 누룽지만큼도 없는 말투였다. 점성은커녕 사막에 굴러다니는 메마른 모래알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의 말이란 할 말 있고 안 할 말 있는 것이었다. 한번 나가면 장기판의 행마처럼 물러 달랄 수 없는 것이 말이었다. 여럿 앞에 던져진 극단적인 말은 의절이라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었다.
막상 시어머니가 떠나가면 밑지는 쪽은 며느리였다. 시어머니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휘뚜루마뚜루 휘갑을 잘했다. 정말일까? 아니겠지. 정말 가면? 안 되지. 김매기가 무섭게 여기 보란 듯 무성해지는 잡초는 누구 손을 빌릴 거야. 제대로 거두지 못해 푸성귀들이 납작 엎드려 고랑을 기면 어쩔 거야.
시어머니를 내치려 한 건 분명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한 배후에는 다른 의도들이 숨어 있었다. 하나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를 타깃으로 던진 말이었다. 맏이도 아닌 둘째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흰소리를 떠는 일종의 유세였다. 다른 하나는 말은 그렇게 해도 당신이 갈 데가 어디 있겠냐는 느긋함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시어머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둘만의 언어였다.
시어머니는 늘 허리춤에 전대(纏帶)를 차고 다녔다. 때가 되면 막내를 위해 요긴하게 쓸 요량이었다. 딱히 감출 데도 없고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걸 알겨먹고 싶어 입맛을 다시는 중이었다. 그동안 좋은 말로 빌려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꼭 돌려주겠노라고 입 맹세도 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예전처럼 선뜻 전대를 풀지 않았다. 완전히 귀머거리 행세를 했다.
이것아, 이번엔 절대 안 속는다. 그거이 어찌 만든 건데 또 넘겨다봐 넘겨다보길. 손톱 발톱 다 제켜지두룩 감자 파고 산나물 하고 품 팔아 모은 거여. 막내 아 장가보낼 때 보탤라구.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는 게 아니지. 한번 가져갔다 하면 가물치 콧구멍인 것을. 물론 가슴속 비밀 단지에 넣어 뚜껑을 닫은 속말이었다. 전대를 내놓으면 가란 말이 가재 뒷걸음치듯 냉큼 들어간다는 것도 빤히 내다보고 있었다. 늘 저것에게 쥐어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쓸 곳이 정해져 있는 것을 던져줄 수는 없었다.
사실 마음에 없는 말이 불쑥 나온 것이었다. 애초 산속을 떠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앞에도 산이고 뒤에도 산이고 사방이 산이었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뱀이 기고 고라니가 달리는 산이었다. 아직껏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산이었다. 산울타리는 높고 겹겹이었다. 그런데도 답답하다거나 무섭다거나 못 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시루떡의 팥고물처럼 골짜기마다 밭고랑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세월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더 심한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무를 바라보았다. 뿌리 내린 곳을 단 한 뼘도 떠나지 못하는 나무. 그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운명이려니 했다. 흘려들으면 그뿐이었다. 산으로 들로 잰걸음을 치다보면 그럭저럭 없는 일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목격한 막내가 있었다. 씨근벌떡 어깨로 숨을 쉬던 막내가 늙은 손목을 잡아당겼다. 아들의 손아귀에 묵직한 힘이 들어 있었다.
“어무이, 당장 같이 가요!”
그 바람에, 그만 엉겁결에, 마음의 운전대가 방향을 튼 것이었다. 못 이긴 척 한 발자국을 떼어놓고 만 것이었다. 그새 유희를 하듯 날리던 눈이 눈보라로 변해 있었다. 하얀 눈 세상이 두툼하게 살이 오르고 있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새하얀 눈길에 두 모자의 발자국이 다정하게 찍혀지고 있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병풍 같은 산들이 서운하게 굽어보고 있었다. 발걸음이 자꾸 휘청거렸다. 눈보라가 앞을 가려서 그런 건지.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런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는 도시 사람이 되었다. 도시는 두메산골 같지 않았다. 보이는 것, 만나는 것들마다 낯설고 두려웠다. 자연히 바깥출입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감옥살이가 따로 없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두메산골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눈을 감고도 능히 오르내리던 산길이 한없이 그리웠다.
집 안에 가만히 있을 때면 좀이 쑤시고 가슴이 답답했다. 제 엄마와는 달리 할머니를 졸졸 따르던 손자 녀석들이 보고 싶었다. 재롱둥이 누렁이와 점박이를 쓰다듬고 싶었다. 한숨에 달려가 며느리 손바닥에 옜다, 전대를 내던지고 싶었다.
도시란 괴물은 낯가림을 하듯 쉽사리 곁을 주는 법이 없었다. 횡단보도 때문에라도 살 수 없는 곳이 도시였다. 금 근 데로만 건너가라고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는 신호등이 불만이었다. 상전도 아닌 것이 양쪽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가라, 마라, 명령하는 것이 정말이지 눈꼴이 시었다. 정신 사납게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들도 불만이었다. 이따금 차바퀴에 희생된 동물들의 처참한 시체를 마주쳤다. 그런 날은 비위가 거슬려 밥이 제대로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자주 지나가면 길이 되는 곳. 꽃바람처럼 새소리처럼 제 마음이 내키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곳. 내 마음이 길이 되고 자리가 되는 곳. 그런 세상이 점점 그리웠다.
“아래층 할머닐 어쩜 좋아요. ㅎㅎ!”
김 선생은 아내 금녀 씨 쪽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저녁 밥상머리에 오른 것이었다.
“글쎄 말예요. 할머니랑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말예요. 중간쯤에서 할머니가 갑자기 뒷걸음질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왜?”
“정지선에 죽 서 있는 차들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다는 거예요.”
예요, 로 끝나는 아내의 변하지 않는 화법에 김 선생은 속으로 웃었다. 사람의 습관이란 참 무섭다는 생각을 언제나처럼 반복하면서.
“당연하지. 나온 지 얼마나 되셨다고. 더 재밌는 레퍼토린 없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아래층 총각의 어머니였다. 하늘 밑 첫 동네. 정선 땅 비행기재 너머. 아득한 두메산골. 거기서 아들을 따라와 전혀 새로운 세상과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잿빛 무색 치마저고리에, 흰 고무신에, 드럼채만 한 비녀를 턱하니 꽂은 쪽머리를 하고 주택가 뒷골목에 홀연히 나타난 할머니. 거기다가 할머니는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주치는 것마다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신기해서 그러는 것도 같고 눈에 익히려고 그러는 것도 같았다. 그런 모습이 할머니를 더욱 촌뜨기로 보이게 했다. 외출할 때면 왼쪽 치마말기를 오른쪽 옆구리로 쓱 잡아당겨 붙이고 아장아장 새색시 걸음을 걸었다. 그러다가 저쪽에서 남정네라도 다가오면 다 지나갈 때까지 모로 돌아 서 있다가 그 사람이 지나간 다음에야 갈 길을 재촉했다. 요조숙녀도 그런 요조숙녀가 없었다. 이제는 골동품 가게에서도 볼 수 없는 내외법이 할머니에겐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할머니는 오자마자 동네 명물이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나오는 말마다 허리를 부러뜨렸다.
“왜 없겠어요. 지난 일요일에는 말예요. ㅎㅎ. 점심때 아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었다는 거예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지 뭐예요. 글쎄 라면에다 엉뚱한 걸 넣고 끓인 거예요. 퀴즈예요. 무얼 넣어 끓였는지 맞춰 보세요.”
금녀 씨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뜸을 들였다.
“그것도 문제라고 내나. 그런 문제만 수능에 나온다면 우리 학생들 모두 올백 받겠네. 아들이 술 좋아하니까 고춧가루를 듬뿍 풀었겠지.”
“땡! 할머니가 한 말 그대로 해볼게요. 스픈가 뭔갈 뜯어 너어겠잖소. 몇 갠가 되도. 다 넌 줄 알았는데 하나가 더 있질 않겠소. 봉지 하나에 다 담지 않구서. 왜 여러 갤 맹글었는지 이상하도. 만드는 데 품도 더 들고 뜯는 데 손도 더 가질 않겠소. 근데 그거이 나를 빠아니 쳐다보는 게 아니오. 할머니, 나도 저 애들 따라갈래요. 그리 말하는 거 같았소. ㅎㅎ. 스프는 물론 방부제까지 몽땅 털어 넣은 거예요. 아들은 또 뭐라는 줄 알아요. 우리 어무이 아님 그런 라면을 언제 먹어 보겠어요. 시금 텁텁한 게 좀 희한하긴 하데요.”
지금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무던한 아들이었다. 김 선생의 배꼽이 한바탕 말춤을 추었다.
할머니가 도시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수월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킬 때가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네 탓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에 기대 살아온 할머니여서 그랬을까. 라면 사건 이전이나 이후나 그 어떤 실수 앞에서도 할머니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내가 이래 몬자라 그러잖소.
김 선생은 할머니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지 수십 년.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뚜렷한 이 시의 배경은 이러이러하다. 은유적 표현인 이 행은 승(承)을 슬쩍 뒤집은 전(轉)에 해당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쓴 작품이다. 이 부분이 입시 전선의 약방에 감초다. 빨간 펜으로 밑줄 쫙! 긋는다. 꿈나라를 헤매는 녀석들에겐 절대 비밀로 하기다.
오랜 경력은 전학년 교과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저장시켰다. 준비된 동영상이 따로 없었다. 버튼만 터치하면 일사천리였다. 구관조처럼 똑같은 말을 떠드는 대가로 밥을 벌어먹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남의 글이나 분석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는 자신이 늘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왜 나는 나의 글이 없는가. 왜 나는 나의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을 만들지 못하는가. 부끄럽고 억울한 생각만 자꾸 들었다.
소설가!
문학 소년 시절부터의 지지부진한 꿈이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컴퓨터가 원고지였다. 타다닥 타닥. 파지가 나지 않았다. 휴지통이 늘 시장하다고 투정을 부렸다. 악필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글씨체도 클릭 한번이면 마음대로였다. 강조하고 싶은 문장은 굵게 하면 되었다. 색깔을 넣어 눈에 딱 띄게 할 수도 있었다. 편집 기능이 죽여주었다. 캡처해서 어디든 갖다 붙이고 뗄 수 있었다. 죽이고 살리는 것도 마음대로였다. 교정도 퇴고도 편리했다. 자료를 찾는 것도 검색창이 해결해 주었다. 다만 필자를 향해 작품이 손을 벌리는 것은 삼빡한 이야깃거리였다. 식지 않는 열정이었다.
‘소설은 실패자의 기록이다.’
단 한 줄의 훈수. 단절된 시신경과 청신경의 회로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눈과 귀가 뻥 뚫리기 시작했다. 창작 매뉴얼 최옥정의 <소설 수업>을 선물로 받은 것은 김 선생에게 행운이었다. 글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아래층에 있었다. 아래층에 올 때까지의 할머니는 어쩌면 인생의 실패자였다. 지나온 삶의 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좌충우돌 도시와 밀당을 하면서 벌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되도록 많이 수집하고 싶었다.
쉬는 날이면 할머니 주변을 기웃거렸다. 어느 날 할머니가 이웃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동네 공원의 황혼 무렵이었다. 밑동이 커다란 은행나무는 스파이 놀이에 적당했다. 조촐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막걸리 잔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들 자랑 손자 자랑이 늘어지고 영감 흉에 며느리 흉에 침들을 튀기고 있었다. 한참 들려오던 웃음소리가 그치더니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선 아라리였다.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할머니였다. 왜소한 몸 어디에서 그런 구성진 소리가 나오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리는 다음 절로 넘어가지 않았다. 금 간 엘피판처럼 첫 절만 반복했다. 일부러 그 절만 반복하는 건지, 후렴구 끝에 도돌이표가 붙어 있어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양의 단조처럼 우리의 계면조처럼 서글프고 처량했다. 저 깊은 어딘가를 후벼 파는 듯 애절했다. 고달픈 산골 여인의 한숨 소리 같은 노랫가락이었다. 할머니에게 저런 면이 다 있다니! 나중에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남의 일을 가서 감자를 팔 때마다 따라 부르다 보니 입에 뱄다는 것이었다.
넉넉한 에피소드를 수집해야 그럴듯한 소설의 집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를 쉬면서까지 할머니를 미행할 수는 없었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고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는 법. 해답은 아내였다. 금녀 씨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묻지 않아도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종달새처럼 지줄거리곤 했다. 재밌는 할머니라고 관심을 보이자 금녀 씨는 화분을 물어 나르는 꿀벌처럼 부지런히 이야기를 물어 날랐다.
“할머니 때문에 못 살아요, 내가.”
“또 무슨 엉뚱한 일이라도 벌이신건가?”
호기심이 발동한 김 선생. 넌지시 아내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번엔 말예요. 웃을 일이 아니예요.”
“웃을 일이 아니라면 울 일이라도 된다는 거야.”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대문을 막 들어서는데 아래층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 문을 밀치고 들어갔지 뭐예요.”
아내는 결론으로 직행하지 않고 이야기를 엿가락처럼 늘이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거예요. 앓는 소리를 끙끙 내면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겁이 더럭 나지 뭐예요. 어디 아프시냐고 물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좀 아프다 말 거라면서요. 문득 어디서 쉰내가 솔솔 나서 둘러보았더니 커다란 냄비가 뒹굴고 있지 뭐예요. 상한 음식을 드셨던 거예요. 아깝다고요.”
“저런, 아까울 게 따로 있지!”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엘 모시고 다녀왔다고 말하는 아내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일이 아니라더니 왜 웃어?”
“개밥 같아서요. 글쎄 말예요. 먹다 남은 음식들을 말예요. 다 모아서 비빔밥을 만들었더라고요. 그 냄비. 우리 세 식구가 먹고도 남을 거예요. 그걸 할머니가 혼자 다…… ㅋㅋ.”
“쉰 음식을 드시면 어쩐대?”
“그러게 말예요.”
“자그만 양반이 웬 배가 그리 크대?”
“산골에서 너무 곯고 살다 보니 배만 키웠다나 봐요.”
김 선생은 이 좋은 세상에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 사는 길이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라지만. 결국 너도 한세상 나도 한세상. 벌거벗으면 다 똑같은 사람. 누구는 꾸역꾸역 밑바닥을 기고 누구는 삐까뻔쩍 폼생폼사 하는 걸까. 높이가 들쭉날쭉한 도시의 건물들처럼 고르지 못한 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퍼뜩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아래층에 든 손님과 반주를 겸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길을 나선 김에 종고모를 뵈러 왔다는 전 모(全 某)라는 중년의 남자였다. 몇 순배 술잔이 오갔을 때였다. 할머니와손님은 두메산골에서 고생하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상두 고상두. 그런 고사이 또 있을까.”
“어디도 없지요.”
“다시 그 세월 살라문 나는 안 살 거네.”
“잘 나오셨지요.”
“그렇다네. 예서야 죄다 편치 않은가. 막내 아가 손에 쥔 거 없고 장개 몬 간 게 걱정이라문 걱정이지. 내야 가아 덕에 등 따숩고 배 부르다네.”
“고려에 충성한 분들 덕분이지요. 나라가 망하자 첩첩산중으로 숨어든 조상님들요. 그때부터 600년 가난에 들었지 뭡니까.”
손님은 까마득한 저 너머의 전설 같은 조상의 역사를 들추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씨족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이라는 화두 앞에, 손님은 가난한 현실의 책임을 고려 말기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마음 편히 동의할 수 없는 접근법이었다. 장구한 세월의 저쪽. 누군가 세속에 타협하지 않았던 조상 때문에 먼 후일의 후손들이 나락에서 헤맨다니.
“여보게. 나는 생각이 쪼매 다르이. 저쪽과 이쪽이 너무 먼 거 같아서. 그 중간에 누구라도 너른 버덩으로 나왔어야지. 세상에 나오는 게 겁들이 난 게지. 누굴 원망할 게 없는 게야. 여기 막내를 보아도 그렇잖나. 지금도 거기에 있었음 예보다 낫겠나. 사람들이 둘쨀 시에미 내쫓은 년이라고 한다지. 나 이젠 그 아를 원망 안 허네. 그 아가 되려 고맙다네. 그때 그런 일 없었으면 산 귀신밖에 더 되겠나. 시방도 날마다 산비탈을 헤매겠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인생을 이만큼 살다 보니 다 헛것으로 보여. 나쁜 것도 없구. 좋은 것도 없구.”
김 선생은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다시 쳐다보였다. 겉보기에 촌스러운 것과 세상 이치를 꿰뚫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어느 구석에 잠들어 있던 생각들이 새소리처럼 조롱조롱 밀고 나오는 걸까. 아무렴. 그 나이가 그냥 되었을라고.
-인생을 이만큼 살다 보니 죄다 헛것으로 보여. 나쁜 것도 없구. 좋은 것도 없구.
김 선생의 마음은 마지막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는 얼추 30년짜리 골초였다. 설 자리가 좁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지정석이 아닌 곳에서 연기를 내뿜으면 숫제 야만인 취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금연은 금식보다도 금애(禁愛)보다도 그 어떤 고산준봉보다도 넘기 어려운 봉우리였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10만 원 벌금을 내기로 했다가 피 같은 돈을 날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에 걸친 실패담 또한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튼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도, 중년으로 접어든 건강을 위해서라도 모질긴 놈과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한 번 접착되면 떼어내기 힘든 강력 본드 같은 것과 영영 작별을 고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신종 플루란 못된 놈에게 걸려든 것이었다. 갑작스레 38도의 고열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근육통과 두통이 몰려오고 오한이 엄습했다. 그것만도 아니었다. 마른기침이 자꾸 나고 콧물이 나고 극심한 인후통으로 이어졌다. 그중에도 괴로운 것은 폐부를 발기발기 찢겠다고 달려드는 잦은 기침이었다. 이러다가 가슴이 파열되어 죽는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놈들이 횡행할 때면 각종 매체들은 전 세계에서 신종 플루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수만 명에 이른다고 다투어 보도를 했다.
담배와 가까이하지만 않았어도, 일찍 금연만 했어도 이런 고통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다 부질없는 사후 약방문이었다. 무조건 식칼로 무 자르듯 끝을 내야 했다. 당장을 위해서라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녀석과의 이별은 예스와 노 어느 하나에 방점을 찍어도 되는 선택사항이 될 수 없었다. 독감은 나쁜 놈이지만 그놈이 위세를 떠는 통증을 이용하기로 했다.
위기는 기회였다. 찬스를 놓치면 두고두고 이어질 고생길. 거기까지 생각을 한 김 선생은 어금니를 작신 물었다. 한마디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당장 니코틴의 추궁을 받은 몸이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통증이 금연 의지를 지원 사격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신비로운 몸의 역설이고 적과 아가 손을 잡는 아이러니였다. 결국 그가 승리했다. 금연을 하자 이삼 일 후부터는 나오던 검은빛 가래가 점점 엷어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아주 자취를 감추었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무엇보다 가족과 학교 동료들의 마르지 않는 찬사가 듣기에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독감과 금연. 결국 나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다는 말도 되었다. 유가 무고 무가 유라는 종교적인 말과도 연결되는 말이었다. 나쁜 것두 없구. 좋은 것두 없구. 할머니의 말이었다. 희한한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싱긋 웃으며 손님에게 물었다.
“아범이 시방 몇 학년 몇 반인가?”
“예? 고모님,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이래 유식해졌구먼.”
“……네?”
김 선생이 빙긋 웃으며 통역을 했다.
“전 선생님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신 겁니다.”
아, 멋쩍게 웃으며 옆머리를 긁는 손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꺼멍이, 그거 맛이 좋더이. 우리 이따가 꺼멍이 먹으러 갈라나.”
“꺼멍이라니요?”
언제였더라. 짜장면 때문에 뒤집어진 날이 있었다. 그날도 금녀 씨가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 아래층 할머니가 말예요. 이건 정말 해외토픽감이란 말예요, ㅋㅋ.”
“뭔데. 뜸 좀 들이지 말고 말해 보라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어요. 거기에 할머닐 보내봐야겠어요, ㅋㅋ.”
“거긴 왜?”
“출연시키게요.”
“무슨 출연?”
“괜찮은 제목도 생각해 뒀다고요. 아, 그거. 아직도 때물이 벗어지지 않은 토종 자연인. 아무튼요. 꺼멍이를 말예요. 오늘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드셨다는 거예요.”
“꺼멍이가 뭐야?”
“짜장면요.”
“방금 꺼멍이라고 했잖아.”
“그래요. 그게 그거예요. 꺼멍이가 짜장면이라구요. 꺼멍이가 아니고 짜장면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할머니는 꺼멍이라고만 말하시는 거예요. 꺼머니까 꺼멍이라는 거예요.”
할머니는 꺼멍이를 아주 좋아했다. 아는 사람만 만나면 꺼멍이 칭찬이 늘어졌다. 그리고 두메산골 며느리를 추켜세웠다. 그 아 덕택에 이래 대처에 나와 맛있는 꺼멍이를 다 안 먹어 보오. 이래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지고. 이 좋은 세상 구경도 하고 지고. 꺼멍이 맛이 참말로 좋소.
금녀 씨는 아래층에 자주 내려갔다.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여간 재미가 나는 게 아니었다. 마주앉아 마늘을 까기도 하고 상추쌈을 싸기도 했다. 둥굴레차를 따끈하게 마시고 궂은 날이면 부침개 냄새를 창문으로 자욱하게 내보냈다. 할머니를 보면 친정 엄마가 새록새록 그리웠다. 효도는 고사하고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엄마. 돌아가신 엄마보다 열 살은 아래인데 엄마와 동갑내기로 보였다. 그래서 그럴까. 촌스러워서 그럴까.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지남철 같았다.
금녀 씨는 할머니의 생활교사였다. 아래층에 내려가는 빈도가 늘면서 할머니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횡단보도가 무섭지 않았고 전기코드 만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슈퍼에서 물건을 고를 줄 알았고 혼자서 버스와 전철을 타고 내렸다. 세탁기를 돌릴 줄 알고 오래된 음식을 버릴 줄 알았다. 드라마를 찾아 볼 줄 알고 커피포트를 다룰 줄 알았다. 틈틈이 가르친 글이 길거리 간판을 떠듬떠듬 읽을 만큼 늘었다.
“같은 음식이라도 이렇게 그릇에 담아 놓으니 어때요?”
“그래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는가 보오. 내가 이젠 대처사람 다 되었나 보오. 이기 다 애기엄마 덕이 아니고 무엇이오.”
할머니는 마른 논의 소낙비 같았다. 말하는 족족 받아 마셨다. 그러니 가르치는 선생도 기분이 짱이었다.
“할머니,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하루는 보세옷을 사들고 갔다. 치마저고리를 벗기려 들자 할머니는 질겁을 했다. 미안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억지 춘향이로 바꾸어 입혔다. 옷이 날개였다. 하르르 몸매가 살아났다. 몇 푼 안 들였는데 촌티가 날아가고 사람이 달라졌다. 보기에 좋았다. 할머니가 눈물을 찔끔 쏟았다. 처음 보는 눈물이었다. 목멘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서 어쩌오.”
금녀 씨는 할머니를 바꿔 나갔다. 천천히 하나씩. 하늘이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할머니 손을 마당가로 끌어 당겼다. 주섬주섬 염색도구를 풀어놓자 할머니 눈동자가 살구 알만큼 커졌다. 무얼 하려는 거요, 눈으로 묻고 있었다.
“머리에 서리가 너무 내렸어요, 예쁘게 해드릴게요.”
“아니오. 난 이대로가 좋소.”
집 안으로 도망가려는 할머니를 간신히 붙잡아 앉혔다. 젊어서는 한 솜씨 하던 그녀였다. 한창 미용실이 잘 돌아갈 때 시집을 갔다. 그래서 가게를 넘겼다. 아마 지금쯤 작은 재벌은 되었을 건데. 지금도 그게 억울했다.
비녀를 빼고
머리를 자르고
약을 칠하고
분홍빛 피스를 두 올 애교로 슬쩍 넣고
감고
기다리고
풀고
씻고
말리고
빗으니
딴사람이 되었다.
“난 모르오, 이걸 어쩌오!”
거울 앞으로 간 할머니 입에서 소프라노가 터져 나왔다. 좀 보태서 10년은 젊어 보였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눈물을 찔끔 쏟았다. 창피해서 나오는 건지 행복해서 나오는 건지 물어보지 않았다. 무엇이건 처음 한 번이 문제였다. 한 번 잡은 손 두 번 잡고 두 번 잡은 손 세 번 잡고 그렇게 다음 코스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눈물도 처음 한 번이 문제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할머니는 때물을 벗었다. 시장도 같이 다니고 목욕탕에도 같이 가서 때를 밀어 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보다 십 년은 더 젊어 보인다고 했다. 늘어났던 나이가 원대복귀를 한 것이었다. 모녀지간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할 말 못할 말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글쎄 영아 할망구가 나더러 이러잖소. 대여섯이나 된다는 아들딸들은 어째 코빼기도 안 내민대. 그래 내가 이래 말하지 않았소. 다들 먹고 살기 바빠 안 그러오. 그런 자식들을 뭣 하러 그렇게 많이 낳아 놓았대. 그래 내가 또 받아치지 않았겠소. 그럼 가장이 옆으로 오는데 피하오.
새싹이 뾰족뾰족 솟아오르는 봄날이었다. 겨우내 유리창에 붙였던 뽁뽁이를 제거하고 집 안 청소를 끝내니 저녁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아래층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궁금해서 내려갔다.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대뜸 말을 꺼냈다. 왠지 말에 기운이 없었다.
“옛말 치고 하나도 그른 것 없소.”
“할머니, 그게 무슨 말예요?"
“저 아가……, 저 아가…….”
“만수 총각이 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할머니. 눈물 두 줄기가 주루룩 야윈 볼에 골을 파듯 흘러내렸다. 한참 만에 말문이 열린 할머니.
“저 아가 중한 병이 들었다고 하오. 단벌 신세, 씻고 벗고 두 벌만 돼도 죽는다고 하잖소. 월급도 오르고 짝 맞출 아도 생기고 지도 맘 잡고 살겠다고 술도 담배도 끊고 그랬잖소. 저승사잔지 뭔지 어찌 나 같은 거를 안 잡아가고 생때같은 거를 데리고 가려는지 모르겄소.”
만수(萬壽).
가장이 지은 막내 이름이었다. 장수(長壽)하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값을 못하게 된 이름이었다. 이름 잘 지어 만수 장수한다면 전화번호부의 빽빽한 사람들 이름이 모두 만수 장수일 터였다. 어떤 전화번호부나 책갈피 속의 이름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그걸 보면 가장의 작명은 한낱 부질없는 소망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만수는 효자였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이 미미했다. 그나마 제 이름자는 쓸 줄 알았다. 군대는‘원거리 면제’를 받았다. 두메산골 장정에게 주어졌던 나라의 배려고 혜택이었다. 그만큼 까마득한 산속에서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형제들 모두 나 몰라라 하는 엄마를 모셔온 효자였다. 그런 만수가 몹쓸 병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점점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복수에 물이 차올랐다. 간이 굳어가고 있었다.
금녀 씨는 의사 공부를 하고 있는 외동딸 도연이를 불렀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장기를 공여 받아 이식을 받는 것이었다. 공여는 혈연도 비혈연도 된다고 했다.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간을 내놓겠다고 울고불고 사정을 했다. 여러 가지가 맞지 않았다. 할머니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이었다. 전화로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성질이 되우 급하고 고약한 놈에게 잘못 걸려든 만수였다. 그렇게 만수는 늙은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갔다. 다신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갔다. 형제애는 미약해도 장례식 날만은 다들 모였다. 그동안 남보다 못하게 지냈지만 그래도 한 배에서 나온 형제지간이었다.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만수가 간 뒤 할머니는 말문을 거의 닫았다. 음식도 드는 둥 마는 둥이었다. 무심한 낮과 밤은 슬픔과는 아랑곳없이 열리고 닫혔다. 할머니의 왜소한 몸은 점점 축이 갔다. 할머니의 일과라곤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 전부였다. 아들을 내다버린 납골당이 그 방향이었다.
이러구러 석 달이 지나간 어느 날이었다. 둘째네 내외가 할머니를 보러 왔다. 할머니를 따르던 손자들을 앞세우고 왔다. 둘째네 내외가 할머니 무릎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였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었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요, 어머니. 내가 네 속 다 안다. 물려받은 거 하나 없이 산다고 을매나 힘이 들었겠노. 어서 기운 차리시고 일어나세요. 기운 차리시는 대로 고향으로 모시러 다시 올게요. 고맙구나. 그래야지. 늘상 고향이 보고 싶어 마당에 나가 두리번거리지 않았노. 부모자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잘잘못 같은 과거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날. 할머니의 중대 선언이 있었다.
“아범 어멈아. 내 부탁 하나만 꼭 들어다구. 언제든 사람은 죽기 마련 아니냐. 만약 말이다. 내가 죽게 된다문 말이다. 나를 병원에다 넘겨다오.”
“어무이.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어미 몸을 기증하고 싶구나.”
“다 돼도 그건 안 돼요, 어무이.”
“막내 아를 그래 보내고 나서 오래 생각했구나. 그 아도 저승에서 어무이가 잘했다고 할 거야.”
막내를 그렇게 보낸 것이 한이 된 할머니였다. 의술이 아직 병에 따르지 못해 막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의술이 늘려면 죽은 사람의 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병든 아들을 지켜보는 동안 귀동냥으로 알고, 티브이에서 보고 들어 알았다.
워낙 할머니의 의지가 강했다. 도연이에게 부탁해 이미 시신 기증 희망의 빈 칸을 다 채워놓은 상태였다. 자식 동의 란에 도장만 꾹 누르면 되었다.
도장을 찍으라느니,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느니 똑같은 말이 오고 갔다. 종일을 그러다가 아들 내외가 어머니에게 두 손을 들었다. 미리 준비한 막도장을 할머니가 아들 손에 쥐어 주었다. 도장을 찍는 손이 벌벌 떨었다. 두 내외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그러고 나서였다.
할머니는 전대를 풀어 둘째네 손에 얹어 주었다. 그쩍에 에미에게 줄 걸 그랬구나. 그 아 장개 보낼 밑천이라 줄 수가 없었구나. 미안타, 에미야.
***
아래층이 비었다. 만수가 가고 나서 일 년이 안 되어 할머니도 아들을 따라갔다. 애간장이 끊어져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더니 그리 된 것이었다. 어떤 말도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는데 힘이 되지 않았다.
시신기증 절차가 진행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는 해부학 실습실로 옮겨졌다. 점점 시신 기증자가 줄어들어 순서가 앞당겨지는 실정이라고 했다. 도연이는 실습 연차가 아니어서 참관만 했다.
실습실 중앙에는 카데바(실습용 시체) 관 4개가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포르말린 냄새가 은은히 실내를 떠돌고 있었다. 실습복을 입은 학생들이 굳은 얼굴빛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도교수가 들어오고 실습 시 주의사항을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각 조마다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과 해부도구가 주어졌다. 실습 전에 교수의 기도를 겸한 마지막 멘트가 있었다.
“여기 누워 계신 분들은 자신의 몸을 기증하신 훌륭한 분들이시다. 어떤 말로도 이 고마움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 이보다 고귀한 성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촛불 같은 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기기 바란다. 메스 하나마다 감사의 마음을 깃들이고 마지막까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 의사의 윤리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군들, 다 함께 묵념을 올리자.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데 모아서 모두 묵념!”
교수의 지시에 따라 각 조의 학생들이 시신을 덮은 천을 벗겨 냈다. 다른 기증자들과 함께 할머니의 맨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검불 같은 몸이었다.
한 학생이 안경을 고쳐 썼다. 이미 그려 놓은 해부도(解剖圖)에 따라 메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찮은 한 인생이 해체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만큼은 결코 남루하지 않았다. 하냥 아름다웠다. 도연이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눈자위에 고인 눈물의 둑이 와락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일이란 정녕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은 수시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혼돈의 땅이 아닐까. 시도 때도 없이 눈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부는 막막한 곳이 아닐까. 그래도 이 세상은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뜨고, 찬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따뜻한 바람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눈보라치던 날, 엉겁결에 내딛은 한 발자국. 그 한발자국은 한숨이고 상처였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의 표정은 평온했다. 매화꽃보다 고매했다. 장미꽃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할머니는 들꽃처럼 작고 순수한 꽃이었다. 아니, 한 송이 순진무구한 눈물 꽃이었다. 이 세상의 한 뼘을 촛불처럼 밝히고 떠나가는.
첫댓글 와우! 소설 올리셨군요. 잘하셨어요.
종종 들여다보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