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타도록 새까맣게 그을린 화강암 사잇길을 이틀째 달리고 있었다. 골프가 이렇게 조용하고 세련된 달리기 감각이었던가. 5세대의 숙성된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4세대의 높은 품질감과 정제된 디자인을 받아들인 6세대 골프는 생산비용까지 대폭 절감해 폭스바겐에 보다 많은 돈을 벌어다줄 기세다
시로코에서 가져온 DCC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을 달아 골프 특유의 정교한 핸들링은 한층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진 것이 무엇보다 반갑다. 다기능 스티어링 휠, 크롬 원형 계기판은 윗급 파사트 CC를 연상시킨다
DCC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 작동부위를 볼 수 있는 투시도. 컴포트와 스포트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액셀러레이터 세팅이 달라진다
1세대: 1974∼1983년, 약 680만 대합리적인 FF(앞 엔진 앞바퀴굴림) 2박스 해치백으로 세계에 경종을 울린 초대 골프. 심플하고 깨끗한 스타일링은 주지아로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1979년에는 골프 카브리올레가 선보였다. 위 기간은 생산기간, 대수는 판매대수(이하 생략).
2세대: 1983∼1991년, 약 630만 대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초대 골프의 후속으로 거의 10년 만에 등장. 초대 모델의 우수한 컨셉트를 이어받으면서 실용성을 극대화해 골프의 인기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3세대: 1991∼1997년, 약 480만 대라이벌의 출현에 대응해 보디 사이즈를 키운 것이 특징. 카브레올레가 부활했고 VR6의 추가, 직접분사 디젤의 투입 등을 시도하기도.
4세대: 1997∼2003년, 약 430만 대고급화 노선을 걷기 시작. 네바퀴굴림 4모션, 2.5L V5, GTI, R32 등의 고성능 모델도 등장했다. 초대 아우디 A3이 4세대 골프보다 조금 먼저 데뷔했다.
5세대: 2003∼2008년, 약 290만 대+α데뷔 당시 직접분사 FSI 휘발유 엔진, 뒤 4링크 서스펜션이 주목을 받았다. 이후 TSI 엔진, 트윈 클러치 방식의 변속기 DSG 등으로 파워트레인에 혁명을 불러왔다.
6세대: 2008년∼5세대에서 이룩한 최고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C세그먼트의 궁극적인 모델을 목표로 한 6세대. 높은 품질과 효율성, 간단명료한 디자인이 포인트이다.
과거로 회귀한 디자인, 크게 줄어든 노이즈와 친환경의 도도한 경지에 오른 TDI 엔진. ‘내추럴’, ‘클린’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아이슬랜드에서 신형 골프 시승회가 열린 것은 이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신이 아찔할 만큼 허허한 화산의 땅에서 6세대 골프를 정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차에 타자마자 곧바로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째는 골프 팬들이 추종하는 4세대에서 뚜렷했던 높은 품질감이고, 둘째는 한층 폭넓은 계층에게 통용될 조용하고 세련된 달리기 감각. 마지막은 초대 모델에서 시작된 합리적인 소형 해치백의 정신이다. 6세대는 바탕이 된 5세대보다 만들기 쉬우면서 이익은 더 많이 창출할, 진정한 베스트셀러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었다.
시로코의 영향을 받은 앞모습
2007년 1월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이 새로 폭스바겐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때부터 아우디에 있던 그의 심복들(디자이너 발터 데 실바, 엔지니어 울리히 하켄베르크)이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본부를 쓰나미처럼 휩쓸었다.
발터 데 실바 디자인팀은 이미 진행 중이던 6세대 골프의 프로젝트를 건네받아 새 얼굴을 완성했다. “골프는 단순하고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는다. 폭스바겐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태리 출신의 발터 데 실바가 한 말이다. 그는 이처럼 적은 것으로 훨씬 많은 것을 얻어내는 정책을 굳게 지키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다른 메이커들이 쉬지 않고 디자인을 섹시하게 다듬느라 분주할 때도 폭스바겐이 단연 두드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스바겐은 눈에 띄고 화려한 패밀리카들의 물결을 뒤엎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6세대 골프의 생김새를 보자. 유럽포드나 오펠 등 다른 메이커들이 보기에는 따분하게 비칠 수도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골프가 갖는 오랜 생명력의 근원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번 변화가 대단히 새롭고도 반갑다.
전체적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표면 처리와 곳곳의 날카로운 터치들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가운데 아웃도어 핸들, 사이드 미러 등 디테일에도 세심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앞으로 폭스바겐의 패밀리룩이 될 수평 그릴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크롬을 입힌 두 개의 얇은 바와 비스듬히 뉘인 커다란 엠블럼이 영락없이 시로코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루프라인 역시 시로코의 디자인 특성을 따른다. C필러 디자인은 4세대에서 완성된 것. 뒷모습에서는 변함없이 엠블럼 속에 감춰진 트렁크 열림 스위치가 마음에 든다.
파사트급의 인테리어 품질감과 장비
아이슬랜드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새차의 차안은 평화롭기만 했다. 한층 고급스러워진 실내 분위기가, 윗급 모델에서 가져온 값비싼 부품과 편의장비들이 안락함을 높여 주어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 수입차에 대한 기대심리를 채우기에는 ‘심하게’ 모자랐던 5세대 골프의 수수한 인테리어를 6세대에서는 크게 개선했다.
사실 5세대 골프는 뒤 서스펜션, TSI 엔진, DSG 변속기 등 메커니즘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룬 반면 인테리어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생산비용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들어 6세대가 생각보다 빠른 5년 만에 출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6세대는 5세대의 섀시와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해 개발비를 낮추면서 생산시간도 줄여 생산비용을 20%나 절감했다고 한다.
대시보드는 5세대보다 살짝 높게 자리했고 스위치류의 배치도 쓰기 편하게 바뀌었다. 다기능 스티어링 휠과 크롬으로 액센트를 준 원형 계기판, 자동온도 조절 시스템 등은 파사트 CC에서 가져온 것이다. 도어트림의 파워 윈도 스위치는 5세대보다 앞쪽에 자리잡아 손목을 꺾지 않고 스위치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보기 싫게 드러난 플라스틱 재질을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그런데 매력적이었던 계기판의 파란색 조명이 흰색으로 바뀐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급화된 6세대 골프에는 흰색 조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을 고쳐먹는 수밖에.
뒷좌석 공간은 변함이 없고 안전벨트 확인장치가 새로 더해졌다. 프리젠테이션 행사장에서 만난 인테리어 담당 디자이너는 “실내공간은 5세대와 같지만 무릎 에어백을 포함해 7개의 에어백과 충격완화재, 각종 안전장비 등이 추가된 것을 고려하면 공간 효율성은 오히려 좋아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6세대 골프는 5세대의 플랫폼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차 크기나 휠베이스, 트레드가 대체로 변함이 없다. 여기에는 새차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세워진 컨셉트가 깔려 있다. 전직 폭스바겐 총책 볼프강 베른하르트는 당시 신형 골프의 목표는 한층 단순하고 값싸게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바꾸겠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논리가 절실한 시점이다(최근 골프의 행보를 보면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골프의 실내공간은 5세대도 넉넉하고, 6세대에 이르러서도 그 평가는 유효하다. 그러니 크기 따위는 잊어버리자. 6세대 골프의 실내 디자인과 품질, 장비는 같은 가격대의 차종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수준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섀시 컨트롤 신무기, 골프 팬들이여 기대하라!
달리기 성능은 얼마나 변했을까. 6세대는 5세대의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쓰므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일정부분 맞는 얘기다. 그런데 실제로 운전을 해보면 차가 상당히 조용해졌고 엔진음색도 좋아졌으며 토크변화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번 시승회에서 주로 타본 모델은 앞으로 국내 고객들과 자주 만나게 될 2.0L 140마력 TDI였다. 기본적으로는 5세대와 같은 엔진이지만 골프에 새롭게 도입된 두 개의 밸런스 샤프트 덕에 소음과 진동이 크게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5세대 동급 엔진보다 연비는 약 10% 좋아진 20.4km/L. 이밖에 TDI 엔진은 110마력짜리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이 엔진의 연료효율성과 친환경성이 놀랍다. 22.2km/L의 연비에 CO₂ 배출량 119g/km. 이미 연비효율성을 인정받은 5세대 동급 엔진보다 L당 약 2.6km를 더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링 소음에서 롤 소음까지 크게 줄어든 6세대 골프의 뛰어난 정숙성은 엔진 자체에서부터 기인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풍절음을 줄인 사이드 미러 디자인(주행 중 날벌레도 덜 낀다)과 윈드실드에 내장된 특별 소음방지 필름이 새롭게 개발된 도어실, 사이드 윈도 가이드, 롤링 소음이 적은 타이어와 함께 주행소음을 줄이는 데 한몫 한다.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인 DSG(다이렉트 시프트 기어박스)는 빠르고 부드러운 변속으로 보다 활기차면서도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완성시켰다. 다소 울컥거렸던 엔진반응이 사라진 데다 5세대에서 공들여 개발한 4링크 뒤 서스펜션은 여전히 빛을 발해 탁월한 승차감과 핸들링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시로코에서 가져온 값비싼 장비 하나가 골프 특유의 정평 있는 핸들링을 더욱 수준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바로 ‘DCC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이라는 적응형 서스펜션 프로그램. 스티어링과 드로틀 감각을 조절하는 ‘스포트’(sport)와 ‘컴포트’(comfort) 모드를 갖춰 노멀 상태까지 세 가지 감각을 맛볼 수 있다. 굽이진 도로에서 스위치를 ‘스포트’ 모드에 놓자 서스펜션이 단단해지고 스티어링과 액셀러레이터 세팅이 더욱 날카로운 세팅으로 바뀌면서 차가 아주 민첩해진다.
차간거리와 차의 속도를 자동으로 맞춰주는 ACC(Adaptive Cruise Control)와 티구안에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주차보조 장치를 비롯해 후방 카메라, 회전식 크세논 헤드램프도 6세대 골프에서 새롭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환상적인 7단 DSG, 우리에겐 그림의 떡인가
폭스바겐 역사에서 빛나는 7단 DSG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튿날 억척스런 폭스바겐코리아의 방실 부장이 유럽 기자들과의 시승차 확보 경쟁에서 선물처럼 7단 DSG를 얹은 TSI 모델을 쟁취(?)해와 의미 있는 시간을 이어갔다. 실은 폭스바겐 7단 DSG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7단 DSG는 고성능 TSI 엔진에만 옵션으로 준비된다. 6세대 골프의 휘발유 엔진 라인업은 1.4L TSI 160마력, 1.4L TSI 122마력, 1.6L 102마력, 1.4L 80마력 등 네 가지. 여기에 지난 파리모터쇼에서 2.0L TSI 210마력 엔진을 얹은 GTI가 추가로 발표되었다.
7단 DSG는 수퍼차저와 터보를 함께 쓰는 1.4L 160마력 FSI 엔진과 호흡을 맞춰 아이슬랜드의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제패할 기세였다. 수동기어와 같은 빠른 반응에다 연비효율성까지 갖췄으니 폭스바겐에서 시작된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끌게 된 것도 가히 짐작이 간다. 이 환상적인 파워트레인의 조합이 OBD 문제로 국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시승에서 기자를 감동시킨 것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앞에서 멀어질 줄 모르는 아름다운 풍광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의 교감을 방해하지 않는 TDI의 점잖은 엔진소리, 또 다른 하나는 척박한 땅에서 더욱 빛난 인테리어였다. “너무 조용해져서 골프 같지 않아.” 시승 중 누군가 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이것만으로도 6세대 골프 TDI는 분명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2,600만 대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
의기양양한 폭스바겐의 파이프라인에는 군침 도는 새차가 꽉 들어차 있다. 그 중에서 신형 골프가 제일 먼저 파이프에서 튀어나왔다. 5세대가 등장한 것이 2003년. 이로부터 5년 만에 모델 체인지가 이뤄졌다. 신형 골프는 지난 10월 유럽에 정식 출시됐고,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그리고 북미 지역에 차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국내에는 내년 하반기 들여올 계획이라고 폭스바겐코리아는 밝혔다.
<자동차생활, 2008년 11월호 - 저작권자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