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헬라어 원전 TR / NIV / 한글 KJV고찰
* 이 글은 깁니다. 꼭 읽으셔야 하는 건 아니고 읽으실 분만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
Textus Receptus와 KJV과 역본들에 대하여
들어가는 말
1. 이 글은 헬라어 원문에 대한 내용이며 KJV과 NIV성경와 한글 KJV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동안 산재한 자료들을 모아본 것입니다.
2.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즉 용어를 미리 정리한 것입니다.
KJV : 1611년 영어 KJV
한글 KJV :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나온 정동수 역 한글 KJV
(1)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나온 한글KJV인 '박사성경'을 보면 번역 :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으로는 개인이 다 번역을 했는지 출판사 번역부에서 했는지는 제가 알 수가 없고, 일단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저는 이 글에서 다른 역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동수 역 한글KJV만 말하고 있습니다.
(3) 혼동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미리 구분을 안 했군요. 그 점은 죄송하고 다음과 같이 추가설명을 드립니다.
현존 한글 KJV는 두 가지입니다. 말씀보존학회에서 낸 것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낸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한글 KJV'라 함은 정동수 목사의 출판한 것을 가리킵니다. 위에서 정리한 바입니다.
이송오 목사가 출판한 바는 제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주된 강조점이나 사상의 흐름은 피터 럭크만--> 클라렌스 라킨 (다른 점은 있습니다.)--> 이송오 말씀보존학회라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것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은 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 역본에 대하여만 생각해보려는 것입니다.)
3. 이 글에서 언급되는 분이 있으나 그것은 그분을 비판하기 위함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개괄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영어 KJV을 오래 전부터 신뢰하고 보아왔지만
1) KJV이 영감된 성경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며
2) 최근 나온 한글 KJV을 인정하지만
(1) 한 군데 오류라 생각하는 부분이 있음과
(2) 한 개인의 번역으로 성경이 잘 번역되는 것이 가능하기는 어렵다 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그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5. 피터 럭크만은 좀 지나친 KJV신봉주의자입니다. 그가 말하는 바에 잘못된 부분도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도 완전한 스승이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KJV도 헬라어 원어성경과 마찬가지로 영감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비판을 받은 바 있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중간에 나옵니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분별하지 않고 말함으로
"헬라어 절대 신뢰-역본들 그만한 신뢰아님"의 평형관계를 깨뜨리고
"헬라어-KJV 절대 신뢰-역본들 조악한 역본"이라는 주장으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그의 분별없는 말로 인하여 (이유가 나옵니다.) KJV절대신뢰자들 파를 생성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동수 목사가 한글 KJV을 개인이 번역하여 여기에 가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가세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너무 높이 올라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헬라어 성경TR과 같은 급의 영감된 성경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며 이것은 성경을 추가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6. 정경의 파괴나 왜곡의 문제
역사상 사단은 정경을 왜곡하려고 외경과 위경을 포함하라고 압력을 넣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정경의 테두리를 허무는 방법) 그것이 안되니 이제 번역본에서왜곡이라는 방법,. 혹은 삭제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와서 생명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아실 분은 아시지만 한국내 명백한 이단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신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즉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복음서는 성경이고 사도 바울의 설교와 편지인 서신서는 성서이다.
이렇게 그는 성경과 성서를 나누었고 이어서 (재정의 작업)
"성령 충만 나의 설교도 사도 바울의 서신서와 같이 성서의 가치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성경의 테두리를 허무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성경위에 자기를 높이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을 따라 또 다른 사역자도 성령 충만하면 그의 설교도 성서가 되겠고 결국 66권이 아니라 200권도 가능할 것입니다. (성경에 추가 작업)
이 말이 바로 사단의 장난이며 성령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실 리 없는 것입니다.
사단이 처음 하와에게 접근하여 한 짓이 바로 이것입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의 경계를 허물고 자기의 사상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인류역사상 번역본의 문제에서 나타난 사단의 노력입니다.
이런 현상은 초대 교회에도 있었고 외경이나 위경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며 그것은 "정경형성사"에서 참된 성경에 포함될 수 없다고 제외되었습니다.
한 외경은 예수님이 어릴 적에 놀다가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를 저주하여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을 죽게 하신 것처럼 본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그는 그 외경을 가까이 할 것입니다.
하와는 몇 단어를 더 집어넣고 한 단어를 뺀 것입니다.
창세기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 정녕 죽으리라.(shall die의 의미)
하와 : 죽을까 하노라. (maybe die의 의미)
뱀이 기회를 타서 완전 반대로 말합니다.
창세기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말씀 다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인데 말씀이 허물어지면 성령의 역사는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말씀은 조금 몰라도 성령의 역사는 있다" 라는 상당히 말이 안되는 사상을 완벽히 제거해야 합니다. 이 사상은 그리스도인 안에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저를 말씀신봉주의자이고 성령의 은사와 역사는 없는 자인가? 라고 오해하시지 마십시오. 그런 아닙니다.
위의 사단의 말과 접근을 불신자는 '신에게서의 독립'이나 '너도 신이 될 수 있다' 라는 말을 제공하는 그들의 정경으로 볼 것입니다.
"봐라 우리의 신인 사단이 이렇게 여기서 말하잖니?"라고 할 것입니다 .
사단이 새로이 자기들의 경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거나 반대로 쓰면 그렇게 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사단은 창조자가 아니므로 사상이 개념조차 창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곡, 변개, 타락, 비비꼬음의 작업이 그의 작업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원어의 의미를 보고 살아야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KJV을 강조하고 한글개역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훌륭한 일이나 그것이 온 한국 교회의 신앙을 낮추어볼 일은 아닙니다. 물론 성경이 그렇게 되어서 한국에 이단이 판을 친다 라는 분석도있으나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것입니다.
KJV를 너무 높여서 영감된 성경이라 하는 것은 또 다른 실수요 교만입니다.
절대 헬라어 성경과 같은 영감된 성경이 아닙니다.
이 글을 보시면 왜 이 말이 타당한 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딱 봐서 다르다 아는 건은 분별력이 필요 없습니다. 눈만 뜨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모조품 명품가방이나 위조지폐를 가려내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감(느낌)으로만. 이 아니라 어떤 특정 기준이나 기술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기독교 안에도 지금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는 TR에 대하여 살펴보고
KJV이나 한글 KJV이 영감된 성경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NIV등이 왜 문제인가
그리고 결론으로 원어성경을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그래도 인정받는 번역본과
같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Part I. T.R.은 무엇인가?
1. KJV
우리가 잘 아는 영어 KJV은 흠정역(欽定譯聖經, Authorized King James Version, 줄여서 KJV 또는 Authorized Version)이라고 합니다.
1611년에 영국왕 제임스 I 세의 명령으로 47명의 학자가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며 TR 헬라어 사본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이 영어 성경은 권위가 있을 뿐 아니라 영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개역성서(改譯聖書)가 나올 때까지 영국 국민이 성서로 사용하였다. 고 합니다.
* 흠정역이라는 의미는 공경할 흠(欽)자를 써서 '공경할 만한 번역본'이라는 의미입니다.
* 흠모(欽慕) 공경하고 그리워 하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영국 문화에 KJV가 수 백년 동안 영국의 언어생활과 문학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영어를 전공한 사람들은 그 정도는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국에서 흠정역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만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정동수 목사가 번역한 한글KJV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흠정역'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KJV은 아주 훌륭한 번역본이지만
원어 성경과 같은 영감 받은 성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피터 럭크 만은 영어 KJV 번역본도 영감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사본학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최초로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쓴 성경만을 하나님이 영감하신(God Breathed)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위치이며 다른 어떤 것도 이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러나 이 영감 된 성경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 좋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손으로 필사를 하여 전달해온 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필사하였다고 하여도 백과사전도 아닌 두께의 책이며 소중한 성경이기 때문에 무조건 오류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본이 잘 보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인쇄술이 발명한 것은 한국이지만 구텐베르그가 최초로 인쇄한 것이 1516년 바로 에라스무스가 모은 사본 TR 헬라어 사본입니다.) 우리나라는 인쇄술로 우상숭배를 위한 불경을 찍고 유럽에서는 성경을 찍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1500년 동안 성경이 필사되었다면 필시 문제가 있을 터이다 생각할 것이지만 이에 대하여 KJV를 옹호하는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이 보존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영감된 성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여러 가지 역본에 대한 것입니다.
2. T.R.이란 무엇인가?
T.R.은 헬라어 원본 성경을 말합니다. Textus Receptus를 줄인 말입니다. 라틴어로 보이는데 받아들여지는 본문이라는 의미이고 결국 '수용본문'이라고도 하고 '공인본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예전에 www.jsoft21.co.kr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저는 '내 사랑하는 책'이라는 컴퓨터 성경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아주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아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감사드리며 . 여차 저차 하여 헬라어 원전을 한 번 조사했습니다. 어느 것이 믿을만한 것인지 궁금해서요..
제가 비교해본 결과 '내 사랑하는 책'(성경프로그램--이것을 사용하시기를 강추합니다. )의 헬라어는 스테파노스 1550년판 헬라어 원전과 같습니다. 원전(源典>으로서는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스테파노스 1550년 헬라어 원전은 신뢰받는 사본입니다.
2006년 11월 1일 장보웅 목사가 펴낸 '흐레마성경'(쿰란출판사)은
스테파노스 1550년 판 헬라어 원전인데 그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 원전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스테펜 원전을 기초로 하였습니다.
본 원전은 매우 귀중한 원전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원전은 스테펜과 많은 차이가 있는 넷슬(Nestle/Aland)원전입니다.
( 주 : 저도 신학교 때에 이것을 보라고 추천을 들었습니다만 그때에는 원어의 역사에 대한 것이 많이 정립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립되었으리라 봅니다.
이 네슬판은 1800년경에 가톨릭 신학자 Westcort and Hort가 변개하였다고 하는 원전입니다. 정동수 목사가 번역한 '박사성경'의 글을 빌리면 다음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처음부터 '소수본문'만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 '소수본문'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몇 개 되지 않으며 (전체 사본의 1%정도)
(주: 이것은 초대 교회에 많이 회자되는 성경이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즉 유명하고 신뢰성 있는 사본은 많이 회자되고 닳아지지만 잘못 필사되고 오류가 발견된 사본은 회자되지 않고, 닳지 않고 구석쟁이에 쳐박아둡니다. 최근에 그런 것중 하나가 작년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신뢰할 사본은 아닙니다. )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전시용으로 보존되어 온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산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시내 사본'이 있다.
바로 이 두 사본에 근거해서 1881년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공인본문을 무려 5,604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 그리스어 본문'(Revised Greek Text)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변개한 단어는 무려 9,970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본문에 나오는 140,521개의 단어의 7%가 되는 양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에 1898년에는 네슬(D.E.Nestle)가 티센도르프의 8판과 위마우스의 3판과 함께 신약성경 본문을 편집하여 네슬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라는 본문을 만들었다.)
본 스테펜 원전(Greek Text of Stephen's, 1550)은 엘제비르(Elzevir Text of 1624)와 함께 공인본이라 불려지는데 이 공인본 들을 기초로 1611년 King James Version(흠정역)과 Luther's German Bible, William Tyndale's Bible, Olivetan's French Bible, The Geneva Bible 등이 번역되었고 그 외에도 The Gothic Bible, The Cetic Bible, The Gallic Bible 등 수많은 번역본들이 기초가 되었습니다."라고 2006년 11월 1일 장보웅 목사 "흐레마성경(쿰란출판사)의 서문에서 말합니다.
이에 관련하여 몇 가지 알려드릴 사항입니다.
1) 네덜란드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그가 구할 수 있는 사본을 모아서 1514년 8월 바젤에서 헬라어 신약성서를 인쇄하고 발행함.
1515 / 5개월 만에 인쇄 종료.
그는 평생 헬라어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몇 개 안되는 중세 이후의 후기 사본으로 편집하고 사본에 직접 표기했고 4복음서는 오직 12세기 사본에만 의존. 요한계시록은 라틴어역 불가타 본문을 역으로 함.
2) 그런데 '버트 어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왜곡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 에라스무스의 사본이 매우 열등하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서 말씀보존학회 등에서는 이 에라스무스가 평생을 헬라어 연구에 몸 바쳤으면 결국 좋은 사본확보를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그 에라스무스의 사본이 편집되고 나타난 것이 Textus Receptus입니다. 줄여서 T.R.이라고 말합니다.
3) 이 TR이라는 표현의 근원은 1633년 아브라함 엘제비어와 보나켄추르 엘제비어가 에라스무스의 이 초판 출판을 대량출판하면서 그 1633년판 성서서문에 기록하기를 “여러분은 이제 모두가 수용하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변개된 것이나 개악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텍스투스 리셉투스 Textus Receptus (T.R.) 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출판이 이러한 신뢰성이 있는 사본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인문학자로서 평생을 헬라어 연구에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버트 어만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악평을 한다. (저는 버트 어만이 잘못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1. 특정한 그리스어 본문 형태를 말하는 것이고 2. 오래된 우수한 사본이 아니라 에라스무스가 펴낸 그리스어 성서본문을 근거로 만든 본문으로 300여년 동안 출판한 것이다. 킹제임스 역부터 다른 영어 성서와 19세기 말 다른 번역본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바로 이 수용본문이라고 하는 열등한 본문이었다.”라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아주 훌륭하게 인정되고 있음.
1611년 제임스왕이 킹제임스 역을 번역할 때에 이 에라스무스의 출판한 이 사본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함. 결국 T.R.에서 나온 것이 KJV입니다.
2) 1551년 제 4판 스테파누스 사본에서 장절을 구분함
결론 : 내 사랑하는 책의 헬라어 원전은 스테파네스 1550판이고 T.R.입니다.
신뢰할 만한 좋은 것입니다.
(이상 Part I은 성경왜곡의 역사, 박사성경 부록, 흐레마 성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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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I. 다음은 '킹제임스 길라잡이'(정동수 목사)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Textus Receptus는 KJV의 근간이 되는 공인본문이다.
('내 사랑하는 책'이라는 프로그램에 있는 헬라어 성경이다.)
방대한 그리스어 사본들의 대다수는 곧 95%는 서로 일치한다.
그것은 수세기동안 성경을 믿는 참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전수되어 왔고 1516년 에라스무스가 이것을 모아 출판하여 '공인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루터나 칼빈등이 말한 성경은 바로 공인본문이다. 킹 제임스 성경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 바티칸 사본 : 1481년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된 고급 양피지인 벨럼(Vellum)에 기록된 것 그러나 창세기 1:1.46:28 시편 106-138편, 마태복음 16:2-3, 사도바울의 목회서신들, 히브리서 9:14-13:25, 계시록 전체가 삭제됨. 그리고 외경을 포함함.
(주: 한 가지 주를 답니다. 히브리서 이 부분, 9:14-13:25에는 예수님의 대속사건의 희생제사가 단 일 회(just once)임이 확실하게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일회로 드려진 제사가 영원히 그 후대 사람들에게 적용됨(applied)이 바로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 앞으로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일부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도 적용된다고 허술하게 믿지만 비성경적입니다.)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mivan, 미안,one) '영원한' eij" to; dihneke;" ",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 continous)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2 aujto" de; mivan uJpe;r aJmartiw'n prosenevgka" qusivan eij" to; dihneke;" ejkavqisen ejn dexia'/ tou' qeou',
10:12 But this man, after he had offered one sacrifice for sins for ever,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God;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영원한' 이란 '영원히 존재하는'(everlasting) 의미보다 '영원히 적용되는( continuously, continuous, 한 번의 제사가 계속된다 라는)' 의 의미입니다. 즉, 그 예수님의 보혈이 계속 십자가 사건 이래로 후대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고 구원과 구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톨릭은 이 부분을 숨기고 왜곡함으로서 1500년이상을 속여온 것입니다.
이 히브리서를 읽고 가톨릭 사제이거나 스페인 등지의 가톨릭 신학교의 교수이었던 사람도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 바로 "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49인의 신부이야기"라는 책입니다. 여기서 49명이나 되는 신부 혹은 교수들이 자신의 변화를 간증하고 있는데 대부분 미사에 속은 원인이 이 히브리서 말씀을 자기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이 김일성이 늘 태양이라고 믿게 만든 것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성경을 왜곡하고 숨길 경우 우리의 신앙이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왜곡하지 않으려는 개신교를 믿는 우리들이라고 할지라도 해석을 잘못 하거나 잘못 생각하여도 사실 결과는 같은 것입니다. 성경번역이 잘못 되는 것은 또한 이러한 마귀의 역사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경말씀은 사실 이 가톨릭이 자주 드리는 미사(Mass * 예수님이 다시 화체, 즉 몸으로 변한 것을 제물로 드린다는 개념의 제사인데 개신교의 예배가 아니다. 사제 (priest, 신부)가 드리지만 누구에게 드리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데 이 미사 자체가 신성모독적인 행위이고 반기독교적인 행위이다.)가 헛되고 신성모독적인 행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미 가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으로 선포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위일체설을 발표할 것입니다. ]
올바른 사본이 보존되고 있던 안디옥 지방에 비하여 아프리카 북부의 알렉산드리아에는오리겐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는 성경 거의 모든 책에 대한 주석을 하였다. 그는 오리겐 학파의 시초이다.
바티칸이나 시내 사본이 이 영향이라고 본다. (이 사본들은 신뢰성 없음. 바티칸 사본에는 외경도 포함되어 있고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시내(시나이) 사본은 위경도 포함되어 있다.)
오리겐은 여호와의 증인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의 피조된 신으로 믿었고 예수님께서 육체로 지상에 거하셨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웨스트코트는 성공회의 주교였으며 호르트는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는데 이들은 강신술 등에 심취한 신비주의자요 지옥이나 마귀등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창세기 기록을 신화로 생각한 인본주의자였다. 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안 좋은 것들이 계속 나옵니다.)* 이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헬라어 공인본문을 5.604군데 수정하여 수정본문을 만들었다.
삭제한 것들 왜곡한 것 뿐 아니라 아예 삭제를 해버린 것도 있다.
'공인본문'에 비하여 네슬 알란드(Nestle/Aland) 판 (현대 역본들의 근간)이 2,886자 부족함. 수정본문이 1952군데 삭제하고 네슬레와 알란드 본문은 그보다 934단어를 더 삭제하였다.
(주: 참고로 다음 구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올바른 TR 요한일서 5.7 o{ti trei'" eijsin oiJ marturou'nte", ejn tw'/ oujranw'/, oJ pathvr, oJ lovgo", kai; to a{gion pneu'ma: kai; ou|toi oiJ trei'" e{n eijsin.
= KJV / 5:7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한글 KJV / 5: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
그러나
개역성경 /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로 삭제한 부분이 있음.
이 부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주지만 구체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는 에베소서 1장에 자세히 나타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은 그 단어가 성경에 안 나오지만 예수님의 세례받으시던 때, 창조 기사 등등 곳곳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 부분을 없앤다고 삼위일체론을 왜곡하거나 없애려 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네슬판이 이렇게 변개시켰습니다.
Nestle /Aland 요한일서 5.7 o{ti trei'" eijsin oiJ marturou'nte",
다음 부분이 없습니다.
ejn tw'/ oujranw'/, oJ pathvr, oJ lovgo", kai; to a{gion pneu'ma: kai; ou|toi oiJ trei'" e{n eijsin.
한글개역성경(1961년판)은 최근에 개역개정으로 개정되었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옛날 쓰던 단어들을 변화한 것등 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내 사랑하는 책 프로그램을 통하여 개역한글성경과 TR 원어 등을 같이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저는 한글개역을 오랫 동안 읽었으므로 그 단어에 익숙한데 의심이 나면 혹은 마지막 글을 쓰기 전에 개략적으로 TR 원어를 살펴봅니다.
저는 KJV을 보시기를 바라며 TR 원어를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한글 KJV에 대하여는 제가 아직 좋은 평가를 하기가 그렇습니다.
* 내 사랑하는 책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면 원어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과 그 해석이 바로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사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 번역본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추가적인 생각 :
KJV이 우리나라에서 강조된 것은 말씀보존학회의 영향이 큰데 사실 이미 보던 사람들은 KJV을 늘 신뢰해왔습니다. 말씀보존학회의 접근과 그 외의 다른 사상들이 문제이기 때문에 교계에서 문제가 되고 장로교 쪽에서는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견은 말씀보존학회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몇 가지 실수한 것도 있다고 봅니다. 개개 사안으로 처리해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중 잘 한 것은 개역한글판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알린 것입니다. 그 오류가 있다고 라고 해서 이단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구원을 못 얻고 주님을 못 만나는 것도 아니며 가톨릭처럼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정확한 성경을 갖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원이므로 이 개역한글의 오류를 알린 것은 잘 한 일이라고 봅니다. 몇 몇 강사들은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사단의 육화'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 KJV은 두 가지가 있는데 말씀보존학회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출판사의 두 가지입니다.
역자 정동수 목사가 새로이 출판을 하였는데 원어를 보고 번역을 한 것인지 KJV을 번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건대 원어와 다른 부분도 한 구절 있다고 봅니다.(계시록 20:4, 그 부분은 조만간 올릴 예정입니다.) 여기까지 저의 주입니다.)
구약의 신뢰할 만한 본문은 어떤 것인가?
KJV은 '벤카임 마소라본문'(1524년 출간)에서 번역 그 후 400여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표준 마소라본문으로 인정받아온 본문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반유대주의 사상을 주입시킨 키텔은 1937년에 자기가 편집한 마소라 성경인 BHK 제3판에서 킹 제임스 성경의 벤카임 마소라 본문을 벤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바꾸고 20,000-30,000군데의 변개를 시도함. 1967과 1977넌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키텔의 BHK를 개정한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를 출판 이 마소라 성경이 모든 현대 역본의 모체가 되고 있고 이것 역시 많은 변개/삭제 구절을 담고 있다.
( 이상은 Part II는 정동수, 킹제임스 성경 길라잡이 p.154,155에서 발췌하고 주를 달았습니다.)
Part III. 저의 중간 결론
원어성경이나 번역성경은 어떤 것인가가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봐도 번역본 자체가 문제가 있다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느니라"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느니라"라고 읽어놓고는
"아니, 우리 집에 니 아버지가 들어갈 만한 가방이 있었더냐?" 라고 어머니가 황당해하시게 하는 것은 아들이 마음대로 읽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구약 히브리어 성경은 모음도 없었고 후대에 유대인이 붙인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원어성경에는 신구약에 쉼표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1. 원어 성경도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온전한 것이라고 봄이 좋고 이것의 올바른 해석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2. 이외의 번역본, 영어 KJV, 한글 KJV, 개역한글 개역개정, NASB, 등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글 KJV은 좋은 번역이지만 개인이 홀로 번역한 것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성경번역이란 단어 대 단어의 번역 이상을 신학이 가미되는 것인데 한 사람이 모든 신학을 다 온전히 가지고 있다 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동수 목사는 방언을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하므로 성경번역이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바는 아닙니다.
한 사람만의 번역이 온전할 수 없다는 의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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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V. 축자영감설은 원어 헬라어 성경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 이러한 부분은 신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입니다. 저 혼자 연구하고 아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성경의 영감설이나 성경해석학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피터 럭크만은 사실 광신적인 KJV주의자 라 할 수 있는데. 영감 받은 헬라어와 같이 정확하게 번역되었으므로 영어 KJV도 영감 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 말로 그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감된 성경인 헬라어 성경은 곧 TR로 전수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헬라어의 그 단어를 선택함은 하나님의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가 사용하는 그 시대, 그 헬라어는 사실 보통 사람이 쓰는 언어였는데 왜 하나님은 수많은 언어들중에서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뉘앙스의 차이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 KJV이 영감된 성경이 아닌 이유
'영감된 성경(God breathed Bible )'이라면 흠이 없고 완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정의를 우리는 영어 KJV 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할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찾아봅니다.
사례 1) 예를 들어서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1. 아가파오 ajgapw : 무조건적인 사랑,
2. 필레오 filew : 형제나 친구의 사랑
3. 애로스 erw'" : 이성간의 사랑, passionate love
4. _____ : 부모의 사랑 등이 있습니다.
영어나 우리말은 어떨까요?
영희 : 너 나 좋아하지? (like, 이성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철수 : 아니 사랑해. (love, 좋아하는 그 이상이다.)
라는 것처럼 '좋아하다'와 '사랑하다'를 구분하기는 합니다.
'좋아하다'는 이성관계이면 '사랑하다'의 전 단계, 동성간이면 우정을 의미합니다.
다음의 예를 보십시오. 아실 분들은 다 아시고 설교도 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A. 사랑이라는 단어는 개역한글/ 한글KJV / KJV 다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말과 헬라어의 차이입니다.
한글개역 / 요한복음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의 질문은 파란 글자이고 베드로의 대답은 빨간 색입니다.
같은 내용을 세 번 물으셨으니 삼세번 원칙이나 강조하느라 라고 해석할 수 있으나 원어를 보면 다른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B. KJV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 같은 love입니다.
John
21:15 So when they had dined, Jesus saith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1)
He saith unto him,
Yea, Lord;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2)
He saith unto him, Feed my lambs.
21:16 He saith to him again the second time,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3)
He saith unto him,
Yea, Lord;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4)
He saith unto him, Feed my sheep.
21:17 He saith unto him the third time,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5)
Peter was grieved because he said unto him the third time, Lovest thou me? And he said unto him,
Lord, thou knowest all things;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6)
Jesus saith unto him, Feed my sheep.
C. 그러나 TR은 다르게 씁니다.
21.15 @vOte ouhjrivsthsan levgei tw'/ Sivmwni Pevtrw/ oJ !Ihsou'", Sivmwn !Iwna', me plei'on touvtwn_ levgei aujtw'/, Naiv, kuvrie, su; oio{ti
(2) filw' se. levgei aujtw'/, Bovske ta; ajrniva mou.
21.16 levgei aujtw'/ pavlin deuvteron, Sivmwn !Iwna', (3) ajgapa'/" me_ levgei aujtw'/, Naiv, kuvrie, su; oio{ti (4) filw' se. levgei aujtw'/, Poivmaine ta; provbatav mou.
21.17 levgei aujtw'/ to; trivton, Sivmwn !Iwna', (5) filei'" me_ ejluphvqh oJ Pevtro" o{ti eiaujtw'/ to; trivton, Filei'" me_ kai; eiaujtw'/, Kuvrie, su; pavnta oisu; ginwvskei" o{ti (6) filw' se. levgei aujtw'/ oJ !Ihsou'", Bovske ta; provbatav mou.
즉 처음 (1) 아가파오 (2) 필레오 또 아가파오 펠레오 그리고 필레오 필레오 입니다. 의미의 변화가 있습니다
D. KJV만 그대로 번역하면 위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번 헬라어의 의미를 고려하여 번역을 해본다면 다음입니다.
사실 올바른 번역이라면 이 헬라어 원어의 차이 및 뉘앙스도 고려하여 번역을 해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다른 언어로 하루아침에 번역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은 뉘앙스인데 이것을 고려하면 문장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21:15
예수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느냐 (사실 나는 네가 나를 배반한 것도 알지만 너를 용서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나를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 :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좋아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렇게까지 저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할 면목이 없습니다. 주님. )
예수님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 어린 양을 먹이라
21:16 (그러나 예수님 그 마음이 안 차십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베드로가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를 예수님은 바라시는 마음에서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예수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해보아라.)
베드로 : (양심이 있지요 거짓말은 못합니다. 제 행위를 아는데 제가 이렇게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 : 내 양을 치라
21:17 ( 이번에는 한 단계 낮추어서 물어보십니다.)
예수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필레오)
베드로 :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 : 내 양을 먹이라
왜 근심하였을까요? 세 번이나 물어보면 사람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사실 이러한 고백을 하게 하심으로 베드로의 결단을 촉구하신 것 같습니다.
종종 이 말씀으로 주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언제 알았을까요? 신학교에서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대학 때에 C.C.C.에서 한 간사님의 설교를 듣고 알았습니다.
(이걸 저의 자랑이라고 착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설교들은 것이 저의 자랑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오 그렇구나."하고 새로운 사실이 있구나 알았습니다.
이 정보는 오래된 정보입니다.
참고 1. 이러한 뉘앙스까지 생각하여 번역하는 것이 의역(의미번역, 필립스 역, 유진 피터슨의 The Message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의역은 번역자의 신앙과 신학이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의 신앙을 보고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또 다른 것입니다. 즉 설교를 듣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역된 성경은 영감된 성경이 당연히 아닙니다.
E. 한글KJV(그리스도 예수안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개역 / 요한복음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정동수역 한글 KJV 21:15 : 이처럼 그들이 식사를 한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이하 중략
당연히 한글 KJV도 '사랑하다'의 다른 의미나 뉘앙스는 전달하지 않은 채로 성겨을경을 번역했습니다 .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나
원어에서는 다른데 우리말로는 같은 말로 함은 원어 성경을 변화시킨 것이 됩니다.
엄. 밀. 하. 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완벽한 번역본은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 KJV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랑한다는 단어에 한 가지 단어 love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가 원어 성경과 똑같이 영감 되었고 흠 없이 정확하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피러 럭크 만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오늘날도 KJV을 영감 된 성경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KJV은 그 있을 위치에 있는 것이지 절대적 성경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안 됩니다.
또한 KJV가 절대적이라고 하므로 그에 비한 열악한 성경을 본이들의 신앙이 열악하다고 혹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원어를 보는 이들이 신앙이 제일 좋아야 합니다.
그러면 또 갈리기를 원어 시험 점수 90점 이상과 60점 이하의 신앙이 다르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 우스운 모범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러하지 이러한 사례들은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헬라어와 영어의 근본적 의미의 차이 때문입니다.
결국 피터 락크 만은 이러한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은 분열된 곳에서는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편 133)
* 저는 지금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누구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의 번역 법칙만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글KJV도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꿔주다'와 그냥 '주다'는 다릅니다. 준다는 말이 있다고 다 같으면 ............... 말이 안 됩니다.
의사소통이 단절됩니다.
아가페오와 필레오는 다른데 같이 사랑하다 로 번역하는 건 분명 성경의 경우 잘못입니다.
영감된 성경이란 정확무오 해야 하는데 하나라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헬라어로 기록하신 성경에 비하여 KJV나 한글 KJV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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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VI. NIV에 대하여
3. 최근 많이 나오는 NIV은 어떤 이들은 좋다고 하지만 절대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 글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 미국 상당수의 교회가 선호하며 한국 교회 교인들이 지참하고 있는 한영대역 성경에는 영어와 한글개역 성경이 나란히 있는데 영어성경은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신 국제역본)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NIV가 어느 때, 어떻게, 누가 번역하였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967년 일리노이 Palos Heights에서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의 각 교단의 대표 학자들이 모여 번역을 시작하였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하기 위하여 KJV의 'thou' 'doest' 등을 'you' 'do'로 대체하였다. 번역에 사용된 원본은 히브리어로 된 구약은 가장 최근에 발간된 Biblia Hebraica와 사해사본, 70인역, 제롬의 라틴역본 등을 참조하였다.
헬라어의 신약은 Greek New Testament를 사용하였다. 1973년에 신약을, 1978년에 구약을 발간하였다.
그 과정에 여러 번의 교정과 개정을 거쳐 1983년에 지금의 NIV가 완성되었다(비교: 필자의 글 '성경의 진실'에서 언급한 KJV는 400년 동안 네 번의 교정만 있었다).
영어권의 다섯 나라와 10여 개의 교단에서 선출된 100여 명의 학자들이 10여 년간 번역한 성경이라는 화려한 선전과 더불어 발간된 NIV는 교회와 교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한 검토가 없이 겉포장만을 믿고 영어권의 신자들에게 교직자들은 아주 최신의 성경이라고 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NIV 번역자들이 선택한 원본들은 오염 투성이인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성경이기 때문에 아무리 심혈을 기울려 번역해도 좋은 성경이 나올 수 없다.
성경의 번역은 번역자들의 신앙이 우선한다. NIV 번역자들의 신앙이 어떠한지 그들의 신앙 고백을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 주: 즉 번역자의 신학, 사상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어만 번역했으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신학사상은 배후에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번역자가 누구냐를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한 사람이 다 번역한 성경도 온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만이 번역한 성경 시중에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1. 한글 KJV : 정동수
(위에서 밝혔지만 개인이 번역하였다 라고 하는 생각이며 말보판 한글KJV은 제 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2. The Message : 유진 피터슨이 의역(paraphased)한 것 (성경이라 하기도 그렇습니다만 읽기로는 꽤 인기는 있는 것입니다.)
3. J.B.Phillips역 : 영어권에서 오래 전에 나온 것인데 경건하게 번역한 것인데 의역한 것입니다.
셋 다 좋은 번역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parapharsed된 것은 그 단어가 영감 되었다는 축자영감설을 벗어납니다.
축자영감설은 오직 헬라어 처음 기록된 성경에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본이 똑같이 기록했다면 그것은 사본도 영감 되어 있다. 라고 말할 것이 아니고 원본과 같으므로 바로 그 처음 기록된 성경이 그러하다 함이 옳습니다.
표현상의 문제인데 이 표현이 올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본 NIV(자신이 번역한)는 오늘 날 몇몇 정통 기독교 내에 만연되어 있는 크나큰 오류, 곧 '거듭남이 오직 믿음에 기초하고 있고 사람이 거듭나려고 하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오류를 밝혀주고 있다."
(주장: 이것을 오류로 말한다면 기독교의 기초를 흔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는 분명하고 결정적인 본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 이것은 정말 잘못입니다. 성경은 수없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있고 그 고백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서에도 많지만
디모데전서 3:16를 보면 다음 구절이 있는데 비교를 해봅시다.
1) 한글개역 디모데전서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이 구절은 바로 전부 예수님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 기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T.R.을 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위에 있습니다. 위의 (*)부분입니다.
2) T.R.
3.16 kai; oJmologoumevnw" mevga ejsti;n to; th'" eujsebeiva" musthvrion: qeo;"ejfanerwvqh ejn sarkiv, ejdikaiwvqh ejn pneuvmati, w[fqh ajggevloi", ejkhruvcqh ejn e[qnesin, ejpisteuvqh ejn kovsmw/, ajnelhvfqh ejn dovxh/.
3) 한글 KJV (이송오 역) : 3:16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올라 가셨음이라.
4) 한글 KJV(정동수 역) 3:16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시이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 믿게 되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 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이로 볼 때에 한글개역성경이 삭제하거나 빼놓은 단어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바로 원어성경을 그 번역자들이 어떤 것을 골랐는가 하는 것도 원인이 있습니다.
5) kai; oJmologoumevnw" mevga ejsti;n to; th'" eujsebeiva" musthvrion: qeo;" ejfanerwvqh ejn sarkiv, ejdikaiwvqh ejn pneuvmati, w[fqh ajggevloi", ejkhruvcqh ejn e[qnesin, ejpisteuvqh ejn kovsmw/, ajnelhvfqh ejn dovxh/.
* Nestle/Aland판은 : qeo;"가 있을 자리에 관계대명사 Os 를 넣어서 변개시켰습니다.
Part V. 한글 KJV 정동수 역의 고찰
여기서 잠시 멈추어서 한 가지를 말씀드린다면 정동수 목사는 한글 KJV의 번역(그리스도 예수 안에 출판사)에서 전치사 '엔(ejn)'을 모두 "...안으로" 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그다지 좋은 번역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괜히 흠을 잡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 정동수 역의 오류 하는 계시록 20:4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흠을 잡자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글 KJV(정동수 역) 3:16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안에 나타나시고 성령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시이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 믿게 되시고 영광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의 분석
정동수 역 한글 KJV은 전치사 엔을 그저 ..안에 라고 주로 번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이유는 추정하기로는 영어 KJV의 영감된 성경이라는 것 때문에 축자영감설을 적용하고 그리고 그냥 단어만 번역해도 옳을 것이라 생각한지 모릅니다. 이건 정동수 목사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만.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피터 럭크 만의 "KJV의 영감된 성경이다." 라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1.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치사 in(ejn)의 용법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Arndt and Gingrich 헬라어- 영어사전에도 그 해설이 3 페이지나 나와 있습니다.
이 경우 딤전 3:16의 경우는 영어로는 ' of clothes, in, with'이라고 해설합니다.
즉 육체를 입으셨다는 의미로 보자고 사전이 단어의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은 것처럼 육체를 입으셨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2. 육체 안에 나타나신다는 말과 육체로 나타나신다는 말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육체 안이라면 누구의 육체이냐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육체로 라고 하면 육체를 입은 채로, 육체로 라는 의미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이 말을 정확히 따져보자면 "하나님이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육체는 다른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성전에 나타나셨다'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성전은 다른 것임이 분명합니다.
3. 초기 이단 중에 영지주의가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를 빌려 입고 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육체만 죽고 예수님은 육체가 죽기 이전에 육체를 탈출 했다.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단 사설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번역과 유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4.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와 '육체로 나타나시고'는 우리말에서 더 나아가서 생각의 전개를 할 때에 다른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육체로 나타나셨다고 하면 육체를 입고, 육체화 하여 곧 육화되신 것이며 이는 성육신입니다. 그러나 '육체 안으로' 라고 하면 이는 신학이나 성경의 진리를 모르는 이들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므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즉, 가) 육체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육체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다. 누구의 육체를 빌린 것이냐?
예수라는 사람의 육체를 빌린 것이다. 라고 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단이 하는 말이며 우리는 그렇게 해석도 생각도하지 않습니다.)
나) 육체화 되신 것이다(이 경우는 육체로 변화 되였다.) 라고 보며 성육신이라는 개념과 일치합니다. 육체가 되셨으니 육체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옳은 말입니다. 즉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시므로 육체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단지 입고 있다가 벗을 요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 육체로 부활하시고 그 육체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사람의 같은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는 분이라는 것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육체 안으로 나타시고'는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이것은 번역된 것이고 저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그 신학도 공부하였기 때문에 별 문제나 영향이 없지만 만일 10살 아이가 이 성경을 읽는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할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나)는 신학을 알고 성경을 아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번역은 온전하고 안정적인 번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영어전공이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임을 이해하십시오. 영어교육과는 문학보다는 영어학에 집중합니다.
5. 제가 억지 같아 보이신다면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봅니다.
영어 시험시간입니다.
문제 1. 다음 문장의 올바른 번역은?
<다음> He wear in red.
1) 그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다. 2) 그는 빨간색 안에 입고 있다.
해설:
1) 그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다. --올바른 번역입니다.
2) 그는 빨간색 안에 입고 있다. --그릇된 번역입니다.
시험이라면 2)는 틀린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우리말의 목적어가 없습니다. 영어에도 물론 목적어가 없는 문장입니다. 언어구조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닙니다. 2) 처럼 하려면 반드시 무언가가 또 있어야 합니다. 빨간색 안에 와이셔츠나 조끼나 이런 것이 하나 더 있어야할 것입니다. 혹은 빨간색 코트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6. 영어문장에 in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반드시 '....안에'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번역이 아니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은 그것을 들은 자가 명확하게 이해하고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도록 내용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좋은 번역입니다.
즉 그 성경본문의 상황과 신학을 알고 한국어로 했을 때에 그 상황과 신학에 변동을 주지 않는 채로 번역을 해야 올바른 번역입니다.
저는 영어를 전공하고 미국의 원서를 번역한 기독교 책을 보면 어떤 경우는 매우 불편하게 읽힐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영어를 보는 것이 속편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영어에 익숙해도 영어번역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알지만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영어보다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토종 소설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즉 국어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번역하였을 때에 국어의 어휘나 문장이 우리나라 고유한 말의 뉘앙스의 차이를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외국 번역서가 매우 많기 때문에 '영어식 한글'이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언어는 변화됩니다.
7. '번역'이란 원리상
1.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데 완벽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두 언어가 다르고 단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릅니다.
2. 한 단어가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3.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매칭이 아니라 그렇게 번역하였을 때에 전체적인 의미가 원래의 문장과 같아야 합니다. 노력하는 번역은 일대일 매칭이 아니라 전체적 매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cf. 번역작업은 힘든 작업입니다. 돈은 안 되면서.....
4. 언어는 시대에 따라 그 정의가 바뀌고 용례가 바뀝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한 사람만의 번역이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좀 더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특성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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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 이것' 그렇습니다. 성령 안에서 라는 말은 좀 생소합니다.
천사들에게 보시이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 믿게 되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저는 이것보다는 한글개역이 보다 더 나은 번역이라고 봅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여기서는 '엔'을 '수단나 방법의 의미인 '....으로'로서 해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by, through 등)
그게 그거지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더 나은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계속 NIV의 분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NIV 성경번역자들은
첫번째 고백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베드로전서 2장 2절을 변개하여 가톨릭 신앙을 두둔하고 있다.
두번째 고백은 디모데전서 3장16절을 변개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억지로 부인하고자 한다(현명한 독자들은 KJV와 NIV를 비교하여 보면 곧 알 수 있다).
지금 세계는 하나로 통일하고자 하는 운동이 신속히 확장되어 가고 있다. 정치ㆍ경제ㆍ문화 등과 더불어 종교도 하나가 되고자 ‘One World Religion(단일 세계 종교)운동’이 추구되고 있다.
개신교가 가톨릭과 연합하고, 기독교가 불교와 연합하고,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는 동일하다는 기치 아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서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그들의 신앙에 맞게 변개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KJV를 부인하고 변개된 성경으로 인류로 하여금 진리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일 것이다.
NIVㆍNASBㆍLiving Bible 등은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하며 앞으로는 '종교 통합성서'가 요구된다는 UN에서 근무하는 어느 고위직의 실토가 현실화 될 때가 언젠가는 오리라고 생각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라고 누가복음 18장8절에서 말씀하셨다. -- NIV는 어떤 성경인가[시카고 중앙일보] 김의선/ 실로암 성경침례교회 목사
[종교역사기행] 기사입력: 01.23.09 14:12-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니라(잠 30:5)” ]
그러므로 NIV는 안 읽으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4. 저는 한글개역성경, T.R. 헬라어 (내 사랑하는 책에서 원어 분해까지 됨.)
내 사랑하는 책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역본, 기본적으로 KJV
그리고 주석,
그리고 Arndt and Gingrich 헬라어 영어 사전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본문을 해석할 경우 관련된 다른 성경의 진리들을 참고합니다.
( 그것은 조직신학이나 일반적으로 성경 많이 읽기 등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카페의 글들은 이러한 성경적 배경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내 사랑하는 책' 설치를 추천합니다. go to www.jsoft21.co.kr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