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노트
유미리 노래
안개 속을 걸어 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 가슴
잡으려면 어느새 사라지는 젊음의 무지개여
커피를 마셔 봐도 느낄 수가 없는 나의 빈 가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젊음의 고독이여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써야만 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모든 인생 이야기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써야만 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이 세상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모든 인생 이야기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1. 유미리 이력
유미리는 1965년 8월 19일생이며 경기도 출생이다. 본명은 이미애이다. 봄 키 155cm이며 혈액형은 B형이고 학력은 김제 여자고등학교 졸업, 버클리 음악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졸업, 1986년 MBC 강변가요제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차지하며 데부히였다.
유미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 1985년 전미주 교포학생 가요제에 참가해 1위를 하였다. 이후 2학년 재학중이던 유미리는 1986년 경기도 남이섬에서 열린 제7회 MBC 강변가요제에 참가, '젊음의 노트'로 전미대표로 출전하여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유미리는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986년 10대 가수이자 신인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정식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활동을 접게 됩니다. 매니저가 돈을 관리하였기에 한 푼도 받지 못 했다.
미국으로 상처를 안고 돌아가 학업을 마친 후 15년간 노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증이 오면서 2007년 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었다. 미국 시민권까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영어를 가르치고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며 재기를 꿈구었지만 사기 맞은 집을 담보를 끼고 샀기에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당시 우울증으로 16층에 살았는데 자살하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유미리는 2020년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을 통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14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 미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나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도 모르는 새 제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다. 강변가요제 이후 한국에서 활동할 때 미국에 있던 친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 여 동안 편지를 보냈다. 저도 날마다 전화를 걸었다. 남자 친구는 그가 가수로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결혼 후엔 미국에서 살 것을 원했다. 이에 유미리는 노래를 선택했다. 이에 남자 친구는 헤어지자고 했다. 이별의 상처는 잘 가시지 않았다. 20년이 지나도. 꿈속에서 그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허전하고 아프다. 헤어질 당시에는 몰랐는데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노래 대신 그와 결혼해 알콩달콩 자식 낳고 살 걸 그랬나? 그 친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저와 인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만나고 싶다는 진실.
김범룡이 유미리를 챙겨주었다. 30년이 넘는 우정을 과시했다. 으과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팝뮤직을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92년 김범룡 작곡의 <하이하이하이'를 발표하고 활동을 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2007년 <New 미리> 음반으로 복기하여 활동하였다.
2009년 <지못미>라는 곡으로 트로트가수로 변신했으며
2012년 <외사랑>
2016년 <빠져>라는곡을 발표하며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