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코스별 지명의 유래
■ 대간1구간(지리산) : 중산리 ~ 벽소령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하동군,함양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1915m)은 한글로는 지이산으로 쓰고 지리산이라고 부른다. 지이는 원래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다. 두래는 두류의 한자를 붙여 산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고 두류산이란 이름은 백두산의 맥세가 백두대간으로 이어져 이루어진 산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지리산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이라 불렀고,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칭인 방장산은 삼신산 가운데 하나로 중국 전설의 삼신산은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등으로 신선이 살고 불로초가 많다는 산이다. 지리산은 방장산, 봉래는 금강산, 영주는 한라산을 지칭한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중산리(500m)는 백두대간 북진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의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1685년(숙종 12)에 창건하여 대원암이라 하였고, 1890년(고종 27)에 중건하여 대원사라 하였다.
치밭목(1470m)은 취나물 밭 길목의 줄임말이다.
써리봉(1602m) 능선은 국수봉에서 구곡산으로 이어지는 일명 황금 능선으로 산세가 험하고 원시림과 울창한 산죽 때문에 등산로 찾기가 어렵다.
중봉(1873m)에서 북쪽으로는 하봉과 두류봉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써리봉으로 연결된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경계에 솟은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1915m)은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거대한 암괴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 5악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이라 불리워 왔다. 지리산은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 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고,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의 그 깊은 의미를 빌어 방장산이라고도 하였다. 1967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타야 지날 수 있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제석봉(1808m)은 신당이던 제석당과 관련해 제석을 산봉우리에 동일시해 숭배하여 일컬은 지명이다. 제석은 삼신제석, 천주제석, 제석천이라고 하는 하늘신이며, 도리천에 살면서 불법을 보호하는 불교의 호법선신이다. 제석은 토속신앙인 천신신앙과 결합하였고,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제석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장터목(1653m)은 옛날 산천군 시천면 주민들과 함양군 마천면 주민들이 물물거래를 하던 장소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하봉(일출봉)은 지명이 없었으나 1970년대 초 지리산악회 전신인 연하반에서 명명한 이름으로 연기연, 놀하자를 사용하여 늘 운무가 자욱해 연기가 노는 듯한 풍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화장봉(삼신봉)은 영신에게 세석평전의 철쭉을 가꾸게 했던 음양수 전설 속에 나오는 산신령이 살았다는 곳으로 지리산의 삼신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신봉 아래 영신사, 의신사, 신흥사 세 사찰을 삼신사라 한다.
촛대봉(1703m)의 옛이름은 촉봉, 촉대봉으로 봉우리의 모양이 촛대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있어 이름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석(1560m)의 세석평전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백무동은 백명의 무당이 거주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뭄이나 재난이 발생할 때 제사를 지내왔다.
영신봉(1652m)의 이름은 영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칠선봉(1558m)은 일곱개의 암봉이 각각 기묘한 조화로 서 있어 이것이 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비샘(1500m)은 덕평마을에 조상 대대로 화전을 일구며 배우지 못하고 가난과 천대를 받으며 살던 이씨 노인의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고싶어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샘터 위에 매장 했고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샘에서 물을 마실 때마다 인사를 하게 되어 선비대접을 죽어서나마 이루었다고 전한다.
덕이 많은 땅을 품은 봉우리로 알려진 덕평봉(1522m)은 남원 덕평리에서 유래된이름으로 추정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 경계의 벽소령(1350m)은 약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다. 달밤에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푸르게 보인다 하여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음정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있으며 음지편에 있다 하여 음정이라 불리운다. 발음상 양지말 음지쪽에 있는 마을로 음정동이라 한다.
■ 대간2구간(지리산) : 벽소령 ~ 성삼재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 경계의 벽소령(1350m)은 약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다. 달밤에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푸르게 보인다 하여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제봉(1453m)은 옛날 성불하던 두 형재가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유혹을 경계하기 위해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있다가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삼각고지(1586m)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마을에서 연하천 산장으로 이어진 직등 코스로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 이헌상이 신출귀몰하게 토벌군 괴롭히던 곳이자 625 동란을 전후한 반란의 역사 현장으로 삼각고지 명선봉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일명 남부군 피의 능선이라 부른다.
연하천(1440m)은 숲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구름속을 흐르는듯 하여 연하천이하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 경계의 명선봉(1586m)부터 벽소령까지의 능선은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 국군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어서 피의능선이라 불리기도 한다.
총각샘은 심마니 노총각이 처음 발견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장터목산장의 샘인 산희샘과 조화를 시키려 했다는 설이 있다.
운봉무덤(1477m)은 화개재를 넘나들며 운봉에서 소금장수를 하던 노인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토끼봉(1534m)은 봉우리의 위치가 반야봉을 기점으로 24방위의 정동향의 묘방에 위치하여 묘봉으로 불리게 된것이 토끼봉으로 불리게된 것이다.(토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명임)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의 줄기의 뱀사골은 돌돌골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길이 14km의 골짜기를 말한다.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도 근처에 있었던 배암사라는 사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에서 뱀이 죽었다는 뱀사골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 등이 전한다.
화개재(1316m)는 옛날 화재장터와 산내 운봉지방의 물물교환을 위해 넘나들던 고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계의 반야봉(1732m)은 지리산의 제2봉우리로 반야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일대의 낙조는 지리산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산의 이름은 어떤 도력이 있는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물리치고 사찰의 안녕을 이루면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과 지리산의 산신인 천왕봉(1915m)의 마고할미 전설이 전한다.
하늘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 도인 반야를 만나 결혼하여 8명의 딸을 낳았다. 그런데 반야는 어느날 득도한 후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반야봉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던 마고할미는 반야를 기다리다 석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반야가 득도하기 위해 머물렀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8명의 딸은 전국에 흩어져 팔도무당이 되었다고 전한다.
삼도봉(1550m)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어 삼도봉이라 부른다.
노루목(1498m)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는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 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피아골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의 골짜기로 한적한 이곳 선경을 찾은 선객들이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어 피밭골이하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며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
날라리봉(1550)의 원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정상의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또 낫날봉이 변형되어 날라리봉, 늴리리봉(닐리리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98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도의 표지석을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 임걸령(1320m)은 옛날에 임걸 또는 임걸년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은거하던 곳이어서 임걸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돼지령(1390m)은 멧돼지가 원추리의 뿌리를 파먹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토지면 경계의 노고단(1507m)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이며 민족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지리산 중에서도 영봉으로 꼽힌다. 노고단(1507m)은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를 국모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올린 곳이다. 노고단이란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인 서술성모(선도성모)를 일컫는 말이다.
무넹기(1250m)는 물길을 다른곳으로 돌려서 고개를 넘겨 흐르게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 노고단 서쪽의 화엄사(230m)는 2009년 12월 사적 제505호로 지정되었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가 세웠다고 전한다.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명명되었다.
성삼재(1102m)는 천은사와 성삼재휴게소까지의 구간을 말하며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에 있는 지리산의 고개로 마한의 군사에게 쫓기던 진한의 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살 때 때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치이고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도록 하여 황영재, 남쪽은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종석대(우번대)는 노고단에서 보면 종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바위에 부딫히는 바람소리가 돌종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관음대라고도 한다.
■ 대간3구간(만복대) : 성삼재 ~ 고기리(주천마을)
성삼재(1102m)는 천은사와 성삼재휴게소까지의 구간을 말하며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에 있는 지리산의 고개로 마한의 군사에게 쫓기던 진한의 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살 때 때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치이고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도록 하여 황영재, 남쪽은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전북 남원시 주생면과 금지면, 대강면 경계의 작은고리봉(1248m)은 수려한 산세를 지닌 바위산으로 바위병풍을 연상케 한다. 옛날에 경상도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배 끈을 묶는 쇠고리를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두었다 하여 고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묘봉치는 이곳에 오르면 봉우리인지 고개인지 헷갈리기에 묘봉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만가지 복을 불러온다는 만복대(1433.4m)는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으로 산정에 돌탑(Cairn)과 정령치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 경계의 고개인 정령치(1172m)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이름지어졌다.
큰고리봉(1305m)의 북동쪽에 세걸산, 남서쪽에 만복대를 마주보고 산의 정상에는 고리가 있는데, 아득한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를 이루어 배를 대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기리(주천마을)는 본래 남원군 상원천면 지역으로 1914년 고촌리와 내기리가 행정구역 통폐합이 되었고 고촌과 내기의 이름을 따서 고기리하 하고 주천면으로 편입되었다. 고촌은 지대가 높다하여 붙은 이름이고 안터는 골짜기 안쪽에 깊숙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 대간4구간(고남산) : 고기리 ~ 권포리
고기리(주천마을)는 본래 남원군 상원천면 지역으로 1914년 고촌리와 내기리가 행정구역 통폐합이 되었고 고촌과 내기의 이름을 따서 고기리하 하고 주천면으로 편입되었다. 고촌은 지대가 높다하여 붙은 이름이고 안터는 골짜기 안쪽에 깊숙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주천면 덕치리, 이백면 효기리에 걸쳐 있는 수정봉(804m)은 옛날에 산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산의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뫼식 산성인 노치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입망치(545m)는 수정봉 북쪽, 이백면 과립리 동쪽, 운봉읍 행정리 서쪽에 위치한 고개다. 입망치는 과립리와 연관된 이름으로 서서 멀리 보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수정봉에 성터 흔적이 보이는데 예전에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여원재(480m)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고개로서, 산줄기는 고남산과 수정봉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왜구의 손길이 거쳐 간 자신의 왼쪽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하였다는 이 고갯마루 주막 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자결한 이 여인의 원혼은,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가 운봉과 함양 등지에서 노략질 중이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운봉읍 한복판의 황산으로 진군할 때, 백발의 노파로 나타나 승전의 전략(고남산에서 3일간 기도)을 일러주었다 한다. 왜장 아지발도를 무너뜨린 이성계가 돌아가는 길에 노파를 위로하기 위한 여원(女院)이란 사당을 지어놓아 이 고개이름이 여원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나들던 고개라 하며 연재라고 부른다. 여원재 남원쪽 고갯마루의 암벽에는 왼쪽 가슴이 없는 마애불이 있다고 하는데, 전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장치(장동마을)은 남원시에서 출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 여원재를 올라서면 좌측으로 첫 번째 바라보이는 곳이 연재마을이며 그 마을 안쪽으로 장치부락(장동)이 있다. 예부터 노루가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형국이라 하여 노루골이라 불렀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표기해서 장동(노루장)이 되었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여원재에서 고남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고개이다.
까막재(관음치)는 간엄치, 혹은 간암재라고도 하며 덤몰(가동)에서 산동면 대기리로 가는 고개이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의 고남산(846.4m)은 고려 말 우왕 6년(1380)에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나서 산신제를 올리고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여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 불린다.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여원재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까지 뻗어내린 모양이 마치 긴 다리를 놓은 것 같아 장교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통안재(작은 독골재 670m)는 권포에서 산동 월석리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독골재에 비하여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란 의미이다. (동리 안 고개)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권포리는 고남산 아래에 이성계의 군사가 주둔할 때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마을의 권세가 하늘에 닿도록 끊임이 없다 하여 권포리라 하였다.
■ 대간5구간(시리봉) : 권포리 ~ 복성이재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권포리는 고남산 아래에 이성계의 군사가 주둔할 때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마을의 권세가 하늘에 닿도록 끊임이 없다 하여 권포리라 하였다.
통안재(작은 독골재 670m)는 권포에서 산동 월석리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독골재에 비하여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란 의미이다. (동리 안 고개)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매요리는 이 곳 지형이 말허리와 같다 하여 매요라 부르게 되었다.
유치재(420m)는 매요리와 가산리의 중간, 사치마을과 연결되는 삼거리다.
사치재(아실재 498m)는 모래언덕고개라는 뜻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비안낙사 기러기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이라 한다.
시리봉(770m)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위치하며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시리 구역 역에 물이 나오듯 비가 오라는 의미에서 시리봉이라 하였다.
복성이재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에 위치하며 복성이로 넘어가는 재라 하여 복성이재라 하였고 복성이는 임진왜란 초에 피난차 들어온 변도탄이라는 선생이 천기를 본 즉, 복덕성이 비쳤다 하여 복성이라 부른다.
■ 대간6구간(봉화산) : 복성이재 ~ 중재
복성이재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에 위치하며 복성이로 넘어가는 재라 하여 복성이재라 하였고 복성이는 임진왜란 초에 피난차 들어온 변도탄이라는 선생이 천기를 본 즉, 복덕성이 비쳤다 하여 복성이라 부른다.
치재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에 위치하는 작은 고개이다.
다리재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에 위치하며 지명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봉화산(919.6m)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 일대리에 위치하며 옛날 전쟁시에 봉화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봉화산이라 한다.
광대치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에 위치하는 고개이다.
월경산(981.7m)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 위치하며 달이 떠오르면 산봉우리에 거울같이 빛이 보인다하여 월경산이라 하였다.
중치(중재 650m)는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인데 이 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이다.
중고개재 고개의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 영은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는 절고개이며, 중들이 많이 넘나들었다는 이 고개는 중고개라는 이름이다.
원지지 마을은 마을 설립 전에 지관 한분이 지나다가 말하기를 지주곤이 있다고 하여 마을이 설립되자 세칭 부르기 쉽게 지지리라 칭하다 변하여 원지지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 대간7구간(백운산) : 중재 ~ 무령재
중치(중재)는 서쪽으로 장계와 번암면을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남북으로 진행한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이다.
중고개재 고개의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 영은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는 절고개이며, 중들이 많이 넘나들었다는 이 고개는 중고개라는 이름이다.
백운산(1278.8m)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백전면에 경계이다. 산의 이름은 흰백, 구름운을 써서, 산이 높아서 산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감싸 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선바위고개(1040m)는 백운산에서 영취산으로 가면서 만나게 되는 작은 고개이다.
영취산(1075.5m) 신령령, 독수리취를 쓰는데, 그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인 이름에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무령고개(900m)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을 넘는 첫 고개로, 마치 춤추는 용과 같다 해서 무룡이라고도 불린다.
■ 대간8구간(구시봉) : 무령재 ~ 육십령
무령고개(900m)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을 넘는 첫 고개로, 마치 춤추는 용과 같다 해서 무룡이라고도 불린다.
영취산(1075.5m) 신령령, 독수리취를 쓰는데, 그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인 이름에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민령(민재)는 깃대봉과 영취산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논개의 생가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고, 무덤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이다. 민령은 바로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대간의 고갯길이다.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 이름이다.
깃대봉(구시봉 1014.8m)은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에 있다.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육십령(734m)은 육십현 또는 육복치라고도 하는데, 백두대간 중의 덕유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다. 이름에 대한 유래로는 함양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의 거리가 60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도 60리(24km)라고 하여 육십령이라 하고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육십령이라고도 한다.
■ 대간9구간(남덕유산) : 육십령 ~ 월성재
육십령(734m)은 육십현 또는 육복치라고도 하는데, 백두대간 중의 덕유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다. 이름에 대한 유래로는 함양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의 거리가 60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도 60리(24km)라고 하여 육십령이라 하고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육십령이라고도 한다.
덕유산(1614m)은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광려산, 여산으로 불렸다. 이성계가 고려장군시절 이산에서 수도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렸으나 한 번도 해를 입지 않아 덕이 넘치는 산으로 덕유산이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남덕유산(1510m)은 육십령에서 동엽령까지를 남덕유라 하고 주봉은 장수덕유(서봉)산 1510m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봉황산) 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다.
할미봉(1024m)은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미봉이라 했다는 설과 원래 쌀미봉인데 할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조선 시대 때 이곳에 합미성이 있어 합미봉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옛날 한 도승이 할미봉 정수리의 암장을 보고 우리나라 군사가 수년 먹을 쌀이 쌓여 있는 형상이라 했다 하여 합미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대포바위는 할미봉의 턱밑에 위치하는데 임진왜란 때 장수를 치기 위해 육십령을 넘던 왜군들이 대포바위를 조선군의 대포로 착각하여 함양으로 우회해 남원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군 일원이 피해를 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가까이 보면 남자의 성기와도 비슷하여 남근석으로 불리는데, 남자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이 바위에 다가와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서봉(장수덕유산 1510m)은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봉황산) 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다.
남덕유산(1507.4m)은 덕유산 연봉들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덕유산에 남녁 남자를 붙인 이름이다.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일대를 북덕유산, 장수군에 있는 서봉을 장수덕유으로 일컫는다.
참샘은 남덕유산의 산상에 있는 샘으로,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찬물이 솟아난다. 남강의 젖줄,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외에도 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육십령은 금강의 발원샘, 북쪽 바른 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의 지류 황강의 발원샘이다.
월성치(1240m)의 월성은 산 아래 월성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달이 마을 앞 성삼봉에 비친다 하여 달월, 재성 이었던 것을 달월, 별성의 월성으로 바뀌었고 양지편에 자리하므로 양지라고도 부른다.
■ 대간10구간(무룡산) : 황점, 월성치 ~ 백암봉
전북 무주/장수군 경남 거창/함양군에 걸쳐있는 덕유산(1614m)은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하였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 덕유산은 남부지방에 있으면서도 서해의 습한 대기가 이 산을 넘으면서 뿌리는 많은 눈 때문에 겨울산행 코스로 최고의 인기를 모으는 곳이다.
주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무풍면의 삼봉산(1254m)에서 시작하여 대봉(1300m), 백암봉(1503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산(1507m), 서봉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약 35Km에 걸쳐 줄 지어 솟아 있어 일명 덕유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겨울철 덕유산 향적봉의 철쭉군락과 주목, 구상나무숲이 보여주는 설화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연상케 한다.
무주 구천동 계곡은 폭포, 담, 소, 기암절벽, 여울 등이 곳곳에 숨어 구천동 33경을 이룬다. 금강과 낙동강의 수원(발원지)이고 75년 오대산과 더불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지역적으로 무주, 진안, 장수를 합쳐 무진장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의미는 엄청나게 많아서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고 다 함이 없음을 말 한다.
황점(640m)은 봉황산밑에서 쇠를 만드는 점이 있으므로 황점이라 했다. 유황을 많이 구웠다는 데서 황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월성치(1240m)의 월성은 산 아래 월성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달이 마을 앞 성삼봉에 비친다 하여 달월, 재성 이었던 것을 달월, 별성의 월성으로 바뀌었고 양지편에 자리하므로 양지라고도 부른다.
삿갓봉(1418.6m)은 삿갓 모양을 하고 있어 삿갓봉이라 불렸고, 골재는 무룡산과 삿갓봉 안부를 이루어 사람들이 넘나드는 고개다. 삿갈골재대피소는 국립공원 대피소가 위치해 있고 샘이 있어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삿갓골재는 무룡산과 삿갓봉 사이에 위치하며, 삿갓봉의 이름을 따온 명칭으로 보인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와 전북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경계의 무룡산(1492m)은 용이 춤추는 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불영봉, 불영산이라고 불렀다.
동엽령(1270m)은 전북 무주군의 안성면 공정리에서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거창군 북상면 월상리로 넘나드는 재를 말한다. 한자의 의미로는 겨울잎인데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백암봉(1503m)은 흰바위봉이라는 의미로 안성 방면에서 산정의 바위가 하얗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 대간11구간(백암봉) : 백암봉 ~ 빼재(신풍령)
백암봉(1503m)은 흰바위봉이라는 의미로 안성 방면에서 산정의 바위가 하얗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귀봉(1400m)은 모습이 기괴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귀신봉이라고도 한다.
가로 자르는 고개라는 의미의 횡경재(1250m)는 백련사에서 대간을 넘어 송계사와 교통하던 고갯마루다.
지봉(1342.7m, 못봉)은 월음재과 횡경재 사이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못봉으로 표시되어 있고, 옛날에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한자 연못지를 우리말로 못봉으로 표현한것으로 보인다.
월음재(달음재)는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고개라는 의미로 지봉과 대봉사이의 가늘고 긴 능선 끝에 위치한다.
대봉(1263m)에서 서쪽으로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향적봉이라 불렸다는 북덕유의 정상부 향적봉 능선이 조망되고 싸리나무 군락이 있다.
갈미봉(1210.5m)은 가리(미)봉이 변한 말로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우뚝하다는 의미로 미는 어미이다.
빼봉(1039.3m)은 표지석이나 표지판도 없는 아주 평범한 봉우리다.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어 이곳이 빼봉임을 알 수 있다.
빼재(800m)는 전북 무주군의 무풍면 삼거리의 고개로 경남 거창군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재로 수령, 상오정고개, 신풍령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빼어날수 고개령의 수령이라는 이름에서 빼재라는 이름이 생긴듯 하다. 다른 이야기로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 대간12구간(대덕산) : 신풍령(빼재) ~ 덕산재 ??
빼재(800m)는 전북 무주군의 무풍면 삼거리의 고개로 경남 거창군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재로 수령, 상오정고개, 신풍령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빼어날수 고개령의 수령이라는 이름에서 빼재라는 이름이 생긴듯 하다. 다른 이야기로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수정봉(1030m)은 아무런 표식이 없어 구분이 잘 안되고 편안한 등로를 이어가다 우측으로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된새미기재는 큰(된) 새목 고개이다. 된새목이재 -> 된새모기재 -> 된새미기재로 변화했다.
호절골재는 막힌 계곡의 안쪽이 매우 넓다는 뜻이다.
삼봉산(1254m)은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뫼산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사고개(680m)의 소사라는 마을 이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으로 불려졌다 한다.
초점산(삼도봉 1248m)은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룬다.
대덕산(1290m)은 이곳으로 살러 오는 사람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으로 불렸다 한다.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렸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한다.
덕산재(644m)는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 대간13구간(삼도봉) : 덕산재 ~ 삼마골재, 물한계곡 ??
덕산재(644m)는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선황당재는 약간 평평한 안부로 별다른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부항령(690m)은 무주 무풍 금평리 숙뱅이와 김천 부항 어전리 가목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백수리산(1034m) 정상에 헬기장이 있으며 넓은 공터로 사방이 나무들 우거져 있어 휴식장소로는 좋지만 조망하기엔 부적합하다.
삼도봉(1177m)은 이름 그대로 3개의 도에 걸쳐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남한에 3개의 삼도봉이 백두대간 줄기에 있다.
- 초점산의 삼도봉(1248.7m) : 경북, 전남, 전북
- 지리산의 삼도봉(1,550m) : 경남 하동군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
- 민주지산의 삼도봉(1177m) :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
충북 영동군 용화/상촌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경계에 있는 민주지산(1242m)은 소백산맥의 일부로 전북/충북/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각호산(일명 쌀개봉, 1176m), 석기봉(1200m), 민족화합을 상징하는 삼도봉(1176m) 등과 연봉을 이루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접경을 이루었던 산 이다. 산의 이름은 산정에서 연봉을 두루 굽어볼 수 있다 하여 붙여졌다.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 경계의 석기봉(1200m)은 바위산이며,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 대간14구간(석교산) : 삼마골재 ~ 우두령
충북 영동군 용화/상촌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경계에 있는 민주지산(1242m)은 소백산맥의 일부로 전북/충북/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각호산(일명 쌀개봉, 1176m), 석기봉(1200m), 민족화합을 상징하는 삼도봉(1176m) 등과 연봉을 이루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접경을 이루었던 산 이다. 산의 이름은 산정에서 연봉을 두루 굽어볼 수 있다 하여 붙여졌다.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 경계의 석기봉(1200m)은 바위산이며,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경계의 삼도봉(1176m)은 민주지산 줄기의 봉우리로 충청,전라,경상의 삼도와 접한다 하여 삼도봉이라 부른다. 지리산의 삼도봉(날라리봉,1550m)은 전북,전남,경남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정상의 바위가 낫의 날처럼 생겼다고 하여 낫날봉인데 음이 변형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려졌다. 이외에도 강원,충북,경북에 결쳐있는 삼도봉(1064m)도 있다.
삼마골재는 경북 김천시,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등 3개 도가 만나는 화전봉(삼도봉) 북쪽 자락에 있는 고개다.
밀목령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가래점마을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대야동마을 간을 왕래하던 고갯길로, 면목재라고도 불린다.
석교산(화주봉,1207m)의 다른 이름은 화주봉으로 우두령과 밀목재 사이의 봉우리로 97년 조선일보 발행 실전백두대간종주산행의 제14소구간에 화주봉(1207m, 일명 석교산)으로 백두대간 지도에 화주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에 황악산은 추풍령-괘방령에서와서 서쪽으로 석교산-삼도봉을 일구었다 하였으니 석교산이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 돌다리 같은 존재라는 뜻인 것 같다.
경북 김천시 대덕면과 경남 거창군 웅양면 경계의 우두령(질매재,720m)은 소백산맥의 대덕산(1290m)에서 동쪽으로 가야산(1430m) 방면으로 뻗는 지맥 중의 국사봉(875m)과 수도산(1317m)과의 안부에 위치한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우두령은 고개로 이어지는 산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대간15구간(황악산) : 우두령 ~ 괘방령
경북 김천시 대덕면과 경남 거창군 웅양면 경계의 우두령(질매재,720m)은 소백산맥의 대덕산(1290m)에서 동쪽으로 가야산(1430m) 방면으로 뻗는 지맥 중의 국사봉(875m)과 수도산(1317m)과의 안부에 위치한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우두령은 고개로 이어지는 산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성산(985m)은 동으로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 등이 조망되며, 서쪽으로 흥덕리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여정봉(1030m)은 숲으로 인하여 조망이 없다.
경북 김천시의 대항면 주례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연결하는 바람재(810m)는 지형조건으로 인해 풍속이 빠른 바람이 부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풍령, 바람골 이라고도 하였다.
형제봉(1020m)은 정상에 표지석도 없고 쉴만한 공간도 없는 능선길에 불과하다. 두 개의 봉우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는 듯하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면 경계의 황악산(1111.3m)은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백운봉은 황악산의 동봉이자 직지사 백련암의 배후에 자리한다.
운수봉(천덕산, 680m)은 운수동과 관련된 이름으로 천덕산이라고도 부른다. 근처 골짜기의 마을을 터목이라 불렀고 한자로 대항이라 표기했는데 면사무소가 생겨 면의 중심지로 본리라 부르다가 1914년 일제 때 본리, 돌모리, 백운동(박수점)을 통합해서 운수동으로 개명하였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경계의 여시골산(621.1m)은 예부터 여우가 많이 살아서 여시골이라 불린 골짜기 배후에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여시는 여우의 사투리이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를 잇는 괘방령(330m)은 조선시대에 이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웃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추풍령 대신 이 괘방령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 대간16구간(눌의산) : 궤방령 ~ 추풍령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를 잇는 괘방령은 조선시대에 이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웃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추풍령 대신 이 괘방령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경북 김천의 가성산(730m, 정상석 716m)의 이름은 산 동쪽아래 가성마을을 가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산 중턱에는 옛 성터가 있다.
장군봉(625m)은 무사의 장군이 아니라 장가 성씨의 총각인 장군이라고 하며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신갈나무 무성한 부드러운 육산이라는 설이 있다.
충북 영동군의 추풍령과 매곡면,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계에 있는 눌의산(743.3m)은 조선 시대에 걸쳐 눌이라고 표기되어 왔으며, 언제 부터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이가 의로 표기가 바뀌었다. 다른 이름으로 눌이항산, 누리산, 느릅산, 선개산등이 기록되어 있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계의 추풍령(220m)은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추풍령휴게소는 1971년에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추풍령은 가을바람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가수 남상규가 바람도 자고 가는 구름도 쉬어 가는 추풍령 고개라고 노래했다.
■ 대간17구간(국수봉) : 추풍령 ~ 큰재
경북 금릉군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황금면의 경계의 추풍령(221m)은 노랫말처럼 구름이 쉬어가고, 바람이 자고 가는 고개다. 추풍령은 말 그대로 가을 바람이 부는 고갯 마루란 뜻이다. 추풍령 일대의 지역 벌판이 드넓어 가을이면 풍요롭다는 의미에서 추풍이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장지현이 왜군과 분전하다가 전사한 곳이다.
금산(385.3m)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경부선 철도, 고속전철 시공 및 보수를 위해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골재 채굴로 대부분의 산 자락이 훼손된 곳이다.
사기점고개(390m)는 옛날 사기를 구워 팔던 마을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고 사기점은 고령토를 이용하여 사기그릇을 구워 만드는 곳을 의미한다.
묘함산(733.4m)은 김천시 어모면 은기리와 봉산면 상금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토끼가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난함산이라고도 한다.
충북 영동 추풍령면 작점리와 경북 김천 어모면 능치리 도계에 있는 작점고개(능치, 장동재 340m)는 새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참새작자, 유기점포가 많아 가게점자를 따서 작점이라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곰재, 곰티, 성황뎅이고개, 여덟마지기고개라고도 하며 용문산과 난함산 중간의 안부(재)이다. 능치 주변 동쪽으로 능점, 능청이 있는데 능점은 도자기점으로 현재도 사기점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도자기와 관련이 있는듯하다. 고개의 이름은 고개너머 작점리에서 온 이름이고, 여덟마지기고개는 고개를 넘어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는 고개라 하여 성황뎅이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갯마루 아래 김천시쪽 정자에는 능치쉼터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고갯마루 아래 능치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다.
무좌골산(474m)은 전에 삼각점봉이었다.
갈현은 칡고개라는 의미다.
용문산(710m)은 1800년경 박송이라는 유생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이라 하였으며 이후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용문산 동쪽에 애향숙 기도원을 세우고 용문산기도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북 김천시 어모면의 용문산기도원은 용문사 아래에 위치하며 1950년 나운몽 목사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 경계의 웅이산(국수봉 794.1m)은 웅산, 용문산, 웅이산, 곰산으로 불리고 낙동강,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라 한 듯 하고 정상에 웅신당(일명 용문당)이라는 대가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 이라고도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이천)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
큰재(우하재 320m)는 영동군 모동면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 대간18구간(백학산) : 큰재 ~ 지기재
경북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의 큰재(우하재 320m)는 영동군 모동면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골가실은 밤이면 갈가지(호랑이의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던 곳이라 하여 갈가실이라 불리던 것이 변화되어 골가실로 불리게 되었다. 봉산리응 마을 뒷산의 형상이 봉황의 형상이라 하여 봉곡 또는 봉산리라 부르게 되었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의 봉산리는 마을 뒷산의 형상이 봉황의 형상이라 하여 봉곡 또는 봉산리라 부르게 되었다.
회룡재(340m)는 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마치 용이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는 듯한 형상이라 하여 회룡재라고 한다.
개터재(380m)는 유용하게 식량을 제공한 날짐승들이 많아 개터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산세가 마치 개들이 모여 살고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부근의 봉산마을, 효곡마을,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위해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윗왕실재(400m)는 산세가 왕이 기거하는 왕궁과 같다하여 왕재라 하였으나, 민초들이 함부로 왕을 입에 올리지 못하던 시절이라 뒤에 실자를 붙여 왕실재가 되었다고 한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의 백학산(615m)은 산을 하얗게 덮을 정도로 백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머리재(소정재 290m)는 모서면 소정동과 대표동(일명 함박골)을 잇는 도로로,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소정재라고 부른다. 소정동은 산 중복에 위치하여 식수를 길어 올려야 했기에 우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의 소정, 대표동은 이곳 지세가 북두칠성의 자루인 두 병이 능히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부른 것이라 한다.
경북 상주시 모서면의 지기재(260m)는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 하여 도둑적자를 사용한 적기재 라고 하였으나, 지기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기재로 부르고 있다 한다. 일설에는 적기의 사투리가 지기로 된 것 이라는 말도 있다.
■ 대간19구간(윤지미산) : 지기재 ~ 화령재
경북 상주시 모서면의 지기재(260m)는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 하여 도둑적자를 사용한 적기재 라고 하였으나, 지기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기재로 부르고 있다 한다. 일설에는 적기의 사투리가 지기로 된 것 이라는 말도 있다.
경북 상주시 화동면 신의터재(280m)는 임진왜란 전에는 신은현이라 불렸고, 임진왜란 때 의사 김준신이 의병을 일으켜 상주진에서 6백여 의병으로 1만 7천의 왜병과 맞서 싸우다 임진년 4월25일 순절한 이후 신의터재로 불렸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 때문에 어산재로 바뀌었던 신의터재가 제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96년 12월의 일이다. 신의터재 인근 화동면 판곡리에는 낙화담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엔 김준신의 가족들이 왜병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몸을 던졌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옛날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으로부터 승진, 도는 복직 등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무지개산(473m)은 선교리와 어선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북동쪽으로 400m쯤 벗어나 있다. 산의 이름은 정상 남쪽 골짜기의 무지개 폭포에서 유래했다. 무지개산에는 아름다운 무지개폭포가 있으며, 주변에는 낙화담, 철새도래지, 판곡저수지 등이 있다.
윤지미산(538m)은 지장봉으로 불리며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지미산으로 바뀌었고 원래 이름은 소머리산이었다고 한다. 윤지미산은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인생 전반을 다 안다.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화령재(320m)의 화령은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의 지명이다. 북쪽은 봉황산을 거쳐 속리산 문장대로 남쪽은 국수봉으로 이어지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화령재는 불화, 재령으로 표기하는데 옛지명은 될화, 편안할령이다. 화령이란 이름에 대해선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 지역이고 김유신 장군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여 불화자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대간20구간(봉황산) : 화령재 ~ 피앗재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화령재(320m)의 화령은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의 지명이다. 북쪽은 봉황산을 거쳐 속리산 문장대로 남쪽은 국수봉으로 이어지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화령재는 불화, 재령으로 표기하는데 옛지명은 될화, 편안할령이다. 화령이란 이름에 대해선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 지역이고 김유신 장군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여 불화자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봉황산(704.8m)은 1300년 전에 봉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에서는 태봉산이라고도 부르며 송천을 발원시키는 화령의 진산이다. 일설에는 봉황산 장군이 싸움에 이겨서 봉황산, 반면 싸움에 진 장군이 있는 산은 남쪽에 위치한 원통산(594.5m)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비재(427m)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비조재, 비조령이라 불렀으나 근래에 와서 비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한다.
백두대간에 유일한 습지라는 못제(655m)에 대한 전설로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주변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이때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견훤은 세력 다툼을 하며 거의 매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싸움을 벌인 족족 황충은 패하고 만다. 이에 황충은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캐기 위해 부하를 시켜 견훤을 미행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아내 이 사실을 황충에게 알렸다. 황충은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고 소금 삼백 가마를 못제에 풀었다. 그러자 견훤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다.
갈령(443m)은 칡이 많은 곳 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봉(832m)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과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북면 등 삼개면이 만나는 삼면봉으로 암봉이 두개로 되어 있다.
피앗재(620m)는 난(전쟁)을 피했던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대간21구간(속리산) : 피앗재 ~ 늘재
피앗재(620m)는 난(전쟁)을 피했던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왕봉(1058.4m)은 일제가 왜곡한 정상의 명칭을 천황봉에서 천왕봉으로 변경하였다. 천왕봉은 한남금북정맥이 나누어지는 분기점으로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대간과 정맥으로 나뉘어 한강, 금강, 낙동강으로 흐르고 3대강의 발원지로 삼파수봉 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이름은 원래 아흔아홉개의 연봉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구봉산 혹은 소금강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들어 지금의 속리산이 되었다. 세속이(을) 떠난 산이라는 이름의 뜻과는 달리 가장 세속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속리산의 비경 팔봉 팔석문 팔대는
- 팔봉 : 천왕봉(1058m), 비로봉(1032m), 길상봉, 문수봉(1031m), 보현봉, 관음봉(982m)
묘봉(874m),수정봉(566m)
- 팔석문 :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
- 팔대 : 문장대(1054m),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
비로봉(1032m)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자 광명을 의미하는 말인 비로자나불을 줄인 말에서 유래되었다.
입석대는 기둥 모양의 바위로 높이는 약 13m이고 법주사 동북방 5.5㎞, 관음암에서 1㎞ 지점에 위치하며 전설에 의하면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끝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신선대(1028.8m)는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봉우리의 바위에 백학이 춤추는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승이 황급히 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아무도 보아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고 그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불럿다고 한다.
문수봉(1031m)은 옛날 사자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수보살을 상징하는데 이는 문수보살이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기도 하고 경권을 손에 든 모습도 있지만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반야경을 편집하고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문장대(1033m)는 세조대왕께서 친히 올라 문신들과 함께 시문을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명명하였다고 하고, 하늘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운장대라고도 하며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화북지구 밤티재(487m) 일원은 백두대간 출입통제 구간 중 일부로 멸위기종인 삵 등이 서식하고 있어 그 생태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 곳이다. 고개 서쪽에 밤티마을이 있는데 진짜 토종밤이 많이 난다고 한다.
경미산(693m) 정상에는 잡목 있는 평범한 곳으로 정상석이 없고 삼각점만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속리산 문장대, 신선대 능선의 조망이 아주 좋다.
늘고개(늘재377m)는 청화산과 속리산을 이어주고 경상과 충청의 경계이며 낙동강 한강 금강 삼파수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 이다. 진고개, 진재는 긴 고개라는 뜻이고, 늘티, 늘재, 늘고개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충북 보은/괴산군,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고 천년고찰의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1058m)은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솟아 있다. 784년(신라 선덕여왕 5)에 진표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 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속리악)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인 천왕봉(1058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길상봉,문수봉,보현봉,묘봉,수정봉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구봉산이라 하였고 하였고, 광명산,미지산,형제산,소금강산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에는 천연기념물 제103/207호인 정이품송, 망개나무와 문장대,입석대,경업대,봉황대,산호대,배석대,학소대,은선대 등 8대와 8석문(내석문,외석문,상환석문,상고석문,상고외석문,비로석문,금강석문,추래석문)이 있다.
■ 대간22구간(대야산) : 늘재 ~ 밀재
늘고개(늘재 377m)는 청화산과 속리산을 이어주고 경상과 충청의 경계이며 낙동강 한강 금강 삼파수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다. 진고개, 진재는 긴 고개라는 뜻이고 늘티, 늘재, 늘고개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청화산 중턱의 정국기원단은 어지러운 나라를 평탄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기원하는 제단이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의 청화산(987.7m)은 산죽 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고 동북쪽으로 조항산과 이어져 있다. 청담, 청화산인이란 호를 가진 이중환(1690~1752)이 청화산을 좋아해 여러 해 머물렀고 그의 호까지 청화산인으로 지었다고 한다.
청화산과 조항산 사이의 갓바위재(769m)는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화양구곡으로 유명한 화양천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경계의 조항산(953.6m)은 소백산맥 줄기에 속하는 산으로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고모치(고모령, 고모재)는 경북과 충북을 잇는 12km나 되는 험준한 재로, 옛날 부모가 없는 질녀와 고모가 함께 살았는데 질녀가 우연히 병사하자 이를 애달피 여긴 고모가 식음을 전폐하고 재에 올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다 한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고모재(치)라 하였다 한다. 고모샘은 이곳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다.
밀재(밀치)는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골과 가은읍 완장리 용추골을 넘나드는 고갯마루다.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곳으로 벌고개를 의미한다.
■ 대간23구간(청화산) : 밀재 ~ 버리미기재
밀재(밀치)는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골과 가은읍 완장리 용추골을 넘나드는 고갯마루다.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곳으로 벌고개를 의미한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의 대야산(비로봉 931m)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대하산. 대화산, 대산, 상대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산의 이름은 홍수가 날 때 봉우리가 대야만큼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은읍 벌바위 방향의 용추계곡 중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회백색 화강암 한가운데로 하트모양의 깊게파인 소가 있고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고 폭포 양쪽의 화강암 바위에는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하다 남긴 용비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촛대봉(661m)은 대야산과 불란치재 사이에 솟아있고 봉우리가 촛대처럼 뾰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란치재(510m)의 옛이름은 불한령, 불원치로 춥지 않은 고개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계곡이 깊어 겨울에도 바람이 불지 않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곰넘이봉(733m)은 예전에 곰이 넘어 다녔다고 해서 곰넘이봉이라 한다.
버리미기재(490m)의 버리는 보리를, 미기는 메다를 의미하는 말로 보릿고개를 의미하는 이름으로 보여진다. 보리 먹이가 변화 되었다는 설과 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설도 있다.
■ 대간24구간(장성봉) : 버리미기재 ~ 은티재
경북 문경시 가은읍 버리미기재(490m)의 버리는 보리를, 미기는 메다를 의미하는 말로 보릿고개를 의미하는 이름으로 보여진다. 보리 먹이가 변화 되었다는 설과 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설도 있다.
긴 성이라는 의미를 가진 장성봉(916.3m)은 멀리서 보면 암봉처럼 보이고, 동쪽에 희양산(999m), 서쪽에 남군자산(827m), 남으로 대야산(931m), 북쪽으로 칠보산(778m)이 둘러싸고 있고 능선 아래에는 수정광산으로 쓰던 석굴 4~5개가 있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경계의 막장봉(887m)은 장성봉(916.3m)과 연결되어 속리산국립 공원에 속하고 살구나무골에서 갈라진 시묘살이 협곡이 광산의 갱도 모양이고 그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라 하여 막장봉으로 불리워 진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칠성면의 경계의 악휘봉(845m)은 5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으며, 제4봉이 주봉이다. 정상 부근은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아름답고 제3봉과 4봉 사이의 벼랑 위에는 4m 높이의 입석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산의 이름은 벼슬아치들의 관모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은티재(오봉정고개 530m)는 괴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점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봉정고개, 은치재라고도 하는데, 마을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보여지고 1812년 동절목에는 인지동 의인촌리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후 왜인들이 민족정신이 함유된 이름이라는 이유로 마을의 이름을 은티로 개칭 하였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 안에 남근석을 세워 놓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며 제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하고 제물을 나눠먹는 동고사를 지내고 있다.
■ 대간25구간(희양산) : 은티재 ~ 사다리재
은티재(오봉정고개 530m)는 괴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점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봉정고개, 호리골재, 은치재라고도 하는데, 마을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보여지고 1812년 동절목에는 인지동 의인촌리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후 왜인들이 민족정신이 함유된 이름이라는 이유로 마을의 이름을 은티로 개칭 하였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 안에 남근석을 세워 놓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며 제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하고 제물을 나눠먹는 동고사를 지내고 있다.
주치봉(683m)은 구왕봉과 악희봉 사이에 있으며, 구슬(구슬주)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은티(치)마을의 뒷산이라고 하여 은치봉으로도 부른다.
호리골재(605m)는 소가 쟁기를 끄는 모습의 고개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의 경계의 구왕봉(879m)은 동쪽으로 인접한 희양산과의 사이에 지름티재라는 고개가 있다.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로 옛 기록에는 구룡봉 이라 불렸다.
구왕봉 남쪽에는 봉암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가 심충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봉암사 자리를 정하고 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메울 때 대사가 신통력을 이용하여 못에 살고 있던 아홉마리의 용을 구룡봉으로 쫓았는데 그 곳이 바로 구왕봉이다. 봉암사에서는 이 산을 날개봉이라고도 하는 창건 설화가 전해져 오며 매년 소금단지를 묻어 기를 눌러준다고 한다.
신라시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특별수도원인 봉암사와 부속암자로 백련암이 있는데 881년(헌겅왕 7)에 도헌이 창건 하였고 음력 초파일을 전후하여 약 한 달 가량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극락전은 경순왕이 잠시 피난 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되었다. 구산선문의 구산은 실상산(실상사), 가지산(보림사), 동리산(태안사), 봉림산(봉림사지), 성주산(성주사지), 사자산(법흥사), 희양산(봉암사), 수미산(광조사지), 도굴산(사굴산, 굴산사지) 등을 말하며 달마의 선법을 전래하여 그 문풍을 유지하여 온 산문이다.
지름티재(650m)는 지명에서 짐작되듯 은티마을에서 봉암사를 질러가는 지름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봉암사쪽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 경계의 희양산(999m)은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928m 지점의 희양산성은 해발 988m의 희양산 주봉 뒷편 산기슭에 있는 성으로 험준한 계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석성이다. 성벽의 높이 1~3m, 폭 4m이며 약145m 정도가 남아있다. 북쪽은 큰 돌로 축조되었으며 주변에 군창터 등이 남아있다. 이 성에 대해서는 신라말에 견훤이 군사를 보내 축조했다는 설과 경순왕과 대적하던 견훤이 가은현을 포위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배너미평전(790m)은 먼 옛날 천지개벽 때 배가 올라 왔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능선 상에 분지를 이룬 특이한 지형으로 백두대간이 직각으로 꺾이는 곳이기도 해서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다.
시루봉(876.2m)은 벙상부의 바위 봉우리가 시루떡을 거꾸로 엎어 놓은 것 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시루봉은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단이 있던 곳으로 옛 문헌에는 불일산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만봉(989m)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에 위치하며 옛날 만호라는 벼슬을 한 이씨가 이곳에 살았다 해서 붙여졌고 이만호 골이 시작되는 도막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 권율이 군막을 쳤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임진왜란 때 이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곰틀봉(971.6m)은 꿈틀꿈틀이라 꿈틀에서 곰틀이 되었다는 설과, 옛날에 곰을 잡던 틀을 놓던 봉이라 곰틀봉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다리재(830m)는 충북 괴산 분지리와 문경 가은 원북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 골짜기의 이름이 사다리골 이고 오르내리는 경사가 급하여 마치 사다리를 타는 것과 같아 붙여졌다. 미전치라고도 하며, 고사리밭등으로 부르는 고개다. 이곳을 넘나들던 연풍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다 하여 고비 미자를 써서 미전치라 하였다.
■ 대간26구간(백화산) : 사다리재 ~ 이화령
사다리재(830m)는 충북 괴산 분지리와 문경 가은 원북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 골짜기의 이름이 사다리골 이고 오르내리는 경사가 급하여 마치 사다리를 타는 것과 같아 붙여졌다. 미전치라고도 하며, 고사리밭등으로 부르는 고개다. 이곳을 넘나들던 연풍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다 하여 고비 미자를 써서 미전치라 하였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뇌정산(992m)은 우레, 천둥, 번개의 이름을 가진 산으로 유래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평전치(890m)는 평평한 산밭이라는 뜻인데 실제의 지형은 전혀 다르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선교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 천혜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백화산(1063.5m)은 겨울철에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학산(912.8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위치하며 억새와 참나무 숲이 아름다운 산으로 등로가 뚜렷하지 않아 독도법이 필요한 곳이다.
조봉(673m) 이화령의 옛이름인 (큰)새재의 뒷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화령(이우릿재 548m)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하여 이유릿재(이우릿재)라 하였다. 그 후에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 대간27구간(조령산) : 이화령 ~ 조령
이화령(이우릿재 548m)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하여 이유릿재(이우릿재)라 하였다. 그 후에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령약수(조령샘)는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을 쌓을 때 새재 정상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샘은 조선조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넘나들 때 타는 목을 적셔 주는 역사 속의 명약수로 사시사철 마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샘의 물을 많이 마시면 장수를 한다는 백수영천이라 전해 온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경계의 조령산(1025m)은 옛날에 공정산, 조령으로 불리웠고 이화령에서 3관문까지를 조령산이라 한다. 대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과 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눈길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절경인 산이다.
신선암봉(937m)은 조령산 주능선상의 북쪽 방향에 있는 바위층이 많은 산이며, 조령산 구간 중에서 어려운 암릉 코스에 속한다. 다른 이름으로 신선봉, 고사리봉, 할미봉, 온산 등으로 불리였고 신선봉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신선이 달밤에 놀았다고 해서, 할미봉이란 지명은 마고 할머니가 이곳에 와 놀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깃대봉(치마바위 835m)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모습이 깃대처럼 뾰족하게 솟아 올라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부 남서면은 치마바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듯하다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조령(문경새재 650m)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령으로 되어있고 새재, 초점이라고도 한다. 새재는 새로난 고개, 새나 넘나들 수 있는 험한 고갯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졌고, 초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갯길이라는 뜻이다.
조령 관문중 주흘관(1관문)은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는 관문으로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에 설관하였고 초곡성(주흘관)이라 하였다.
조곡관(2관문)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 또는 주서문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고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였다.
조령관(3관문)은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 대간28구간(탄항산) : 조령 ~ 하늘재
조령(문경새재 650m)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령으로 되어있고 새재, 초점이라고도 한다. 새재는 새로난 고개, 새나 넘나들 수 있는 험한 고갯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졌고, 초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갯길이라는 뜻이다.
조령 관문중 주흘관(1관문)은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는 관문으로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에 설관하였고 초곡성(주흘관)이라 하였다.
조곡관(2관문)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 또는 주서문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고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였다.
조령관(3관문)은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충주시 수안보면,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마역봉(마패봉 920m)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곳을 넘다가 잠시 쉴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문봉, 마력봉 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말을 놓아먹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부봉(917m)은 정상부위가 솥뚜껑처럼 볼록하고 생겼다, 멀리서 볼 때 가마솥을 얹어 놓은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부봉 정상은 대간 등로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북쪽의 주흘산(영봉 1106m)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이 개창한 혜국사는,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명해졌고 임금님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칭하였다. 역사의 애환과 수많은 사연을 지닌 문경관문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주흘관(제 1관문), 조곡관(제 2관문), 조령관(제 3관문)의 세 관문과 및 부속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흘산의 명소로 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혜국사, 팔왕폭포, 문경 1,2,3관문등이 있는데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과 노송,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절경을 이룬다.
월항재(평천재 753m)는 월항마을에서 동화원과 미륵리로 가는 고개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의 탄항산(856m)은 월항삼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뾰족한 봉우리가 3개 나란히 서 있어 삼봉이라고도 하고,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삼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재(520m)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 마목, 마골 등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얼핏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520m)는 이름처럼 높지는 않다.
계립령은 속칭 겨릅산(마골산)이라고 하는데 껍질을 벗긴 삼대를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대원령, 대원현, 마골점 등으로도 불리였다고 한다. 마목이나 마골은 계립을 한자로 뜻옮김 한 것이다.
■ 대간29구간(포암산) : 하늘재 ~ 부리기재
하늘재(520m)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 마목, 마골 등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얼핏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520m)는 이름처럼 높지는 않다.
계립령은 속칭 겨릅산(마골산)이라고 하는데 껍질을 벗긴 삼대를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대원령, 대원현, 마골점 등으로도 불리였다고 한다. 마목이나 마골은 계립을 한자로 뜻옮김 한 것이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경계의 포암산(962m)은 옛날에는 베바우산이라고 하였다. 문경읍에서 갈평리를 지나 관음리로 접어들어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하늘을 가득 채우며 우뚝 솟은 포암산이 마치 커다란 베를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한 희게 우뚝 솟은 바위가 껍질을 벗겨 놓은 삼 줄기,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보이고, 계립산이라고도 한다.
관음재(780m)는 문경읍 관음리 뒷고개로 미륵리와 연결된다. 옛날 신라의 망국태자인 마의태자가 지금의 관음리에서 관음보살을 현몽하고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에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관음리에 사점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신라 사람들이 세운 절이 있었다고 한다.
마골치(923m)는 포암산과 만수봉의 갈림길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제천시 덕산면 경계의 꼭두바위봉(838m)은 바위가 마치 꼭지처럼 생겼다 해서 꼭두 바위라고 하였으며, 마을도 바위 이름을 따서 꼭두바위 또는 꼴두바우라고 불리어 졌다고 한다. 그후 1860년경 안동김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부리기재(870m)는 대미산 서쪽에 위치한 노루목으로 제천과 문경을 걸어서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부리기재는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고 날카롭다는 고개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기는 명사형 어미다. 마침 서북쪽 4Km지점에 꾀꼬리봉이 있어 새의 부리임에 힘을 싣는다.
■ 대간30구간(황장산) : 대미산 ~ 벌재
여우목 고개는 문경읍과 동로면 경계에 운달산 준령의 재로 그 모양이 여우 목과 비슷하다 하여 여우목이라 불렀고 여우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고 하여 여우목이라고 하였다는 말도 전한다.
경북 문경시의 문경읍 중평리, 동로면 생달리,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경계의 대미산(1115m)은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봉우리가 돋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검은 눈썹의 산이다
눈물샘은 대미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1045봉을 향하다가 가장 낮은 안부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이곳에서 가끔 산삼을 캤다는 소문이 들리는 심마골이다. 심마골로 내려서는 잘록이에서 70m 아래에 산악인들이 샘을 보수하고 눈물샘이라 이름 붙인 샘이 있다. 10년 전쯤에는 샘이라기보다 그냥 물이 조금 고여 있는 웅덩이로 낙엽에 덮여 있어 식수로 사용이 불가능했던 것인데 주위의 돌을 모아서 샘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눈썹 아래에 위치해 있다 하여 눈물샘이라 한다.
새목재는 옛날 보부상들이 한양에서 배를 타고 청풍 나루까지 와서 육로로 단양을 넘어가는 통로였다고 한다. 고개의 모양새가 새의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며, 동산과 작성산을 연결하는 안부지점이기도 하다.
차갓재(756.7m)는 안산다리와 차갓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차갓은 왕을 뜻하는 것으로 선화공주가 다녔던 곳이라 하여 차갓재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차돌이 많아 차갓재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차갓재를 넘으면 우망골이 있는데 넓은 밭에 풀이 많아 가축을 먹이기에 좋아 소 수십마리를 먹여도 풀이 남는다고 하여 우망골이라 한다.
비바위는 바위에 햇빛이 비치면 햇살 사이로 비가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비바우라 하였고 길쌈 할때 베를 짜서 걸어놓았다고 하여 비바우라고 불렸다 한다.
작은 차갓재는 황장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다. 가팔라지던 숨결이 편안해질 즈음, 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이루며 호젓해지는데, 내리막이 끝나면 또 한 고개가 나타난다. 그래서 대간꾼들이 작은차갓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생달리는 안산다리와 바깥산다리로 구분되는데 워낙 협곡에 위치한 마을로서 둘레에 산과 저녘달만 볼 수 있다하여 산다리라 이름 지어졌다 또는 바깥다리 어귀에 안산다리로 통하는 길에서 고불멱으로 가자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그 높이가 5-7m 가량되어 흔히 장날 같은날 술에 만취되어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 아래 개울로 떨어지는 사람이 많았으나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없어 산다리라 불리어 졌다는 양설이 있다.
황장산(1077m)은 월악산국립공원 동남단에 있는 산으로, 북쪽계곡에 고려시대의 산성이 있어 조선 말기까지 작성산이라 불렸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인 1680년(숙종 6) 대미산(1115m)을 주령으로 하는 이 일대가 봉산(나라에서 궁전, 재궁, 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 보호하는 산)으로 지정된 데서 산이름이 유래하였으며, 그 이유로 황장봉산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 표지석인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7)이 인근의 명전리 마을 입구에 서 있다. 대원군이 이 산의 황장목을 베어 경복궁을 지었다고도 전해진다.
감투봉은 암릉지대와 황장재를 지나서 만나는 암봉으로 주위가 깎아지른 벼랑이다. 감투는 벼슬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남자들이 머리에 쓰던 탕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장재는 감투봉과 치마바위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동로면 명전리를 잇는 길이다.
폐백이재는 치마바위와 928봉 사이에 위치한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치마바위와 연관있는 듯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혼자서 길 가는 것을 꺼린다는데,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폐백이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묏등바위와 황장산 사이의 감투봉이 비녀를 꽂아 쪽을 진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벌재(625m)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 위치한 고개로 이 고개를 넘어서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연결된다. 1930년 도로가 개설된 이후 83년 동안 산맥이 단절되었으나 산림청의 백두대간 마루금 생태축 복원사업에 따라 2013년 7월 복원되었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바로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 표기가 붉을적자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대간31구간(촛대봉) : 벌재 ~ 뱀재
벌재(625m)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 위치한 고개로 이 고개를 넘어서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연결된다. 1930년 도로가 개설된 이후 83년 동안 산맥이 단절되었으나 산림청의 백두대간 마루금 생태축 복원사업에 따라 2013년 7월 복원되었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바로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 표기가 붉을적자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들목재는 벌재 도로가 생기기 전 대간을 넘나들던 길이다.
문복대(문봉재 1074m)는 예전에는 운봉산, 운봉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운봉재라고 부르는 것은 문복대의 벌재 방향으로 잘록한 부분을 통해 석항리 주민들이 산 너머의 마을로 오가던 길이 있다는 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 서서 복을 불러오는 문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녀봉은 저수령과 벌재 사이에서 가장 높아 사위가 모두 내려다보인다. 옛날에 옥녀라는 처녀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정혼자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이 되었다는 조금은 흔한 전설이 전해온다. 옥녀가 정혼자를 기다린 곳이 먼 길까지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옥녀봉이라고 한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 경계의 소백산(비로봉 1440m)은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쪽으로 국망봉, 남쪽으로 민배기재와 연봉을 이루어 예로부터 태백산과 함께 신성시되는 산이다. 원래 소백산맥 중에는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ㅂ.ㄺ 에서 유래된 백산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이다.
저수령(저수재 850m)은 경북 예천군의 상리면 용두리에서 단양군 대강면 울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촛대봉(촉대봉)은 소백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저수령 건너편의 옥녀봉과 마주 서 있다. 세워놓은 촛대와 같이 높게 솟아 있다. 촉대는 촛대의 한자어다.
투구봉은 정상에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시루봉(1080m)은 소백산에서 월악으로 이어지기 전 두 개의 봉우리가 시루봉과 촉대봉이다. 떡쌀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밑에서 무엇이 받쳐주는지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배재는 마을의 등뒤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싸리재는 저수령이 없던 시절 예천 용두리에서 이 고개를 거쳐 남조리로 넘어가면 단양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걷는 거리로는 저수령보다 싸리재가 더 가깝다. 남조리의 단양유황온천으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이곳에서 갈라진다.
흙목 근처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에 흙목마을이 있다. 토항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명풍수 박성이라는 사람이 산천에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운 곳이라고 하여 토향(토할토, 향기향) 이라고 적기도 한다. 토향이 토항, 흙목이라 와전되었다고 한다.
뱀재는 대강면 남조리와 상리면 초항리를 넘나드는 고갯길로 뱀처럼 길다고 하여 뱀재로 부른다.
■ 대간32구간(도솔봉) : 뱀재 ~ 죽령
뱀재는 대강면 남조리와 상리면 초항리를 넘나드는 고갯길로 뱀처럼 길다고 하여 뱀재로 부른다.
솔봉은 도솔봉 구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솔봉은 소나무봉이다.
모시골은 마을터가 모시 광우리 같다고 모시골이라한다. 풍기군수 겸암 유운룡이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했다는 겸암굴이 마을 북쪽에 있으며 웃모시골 아랫모시골로 나뉜다.
묘적령은 묘적봉 남쪽 사거리의 안부로 대간은 이곳에서 경북 예천군과 단양군의 지경으로 들어선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묘적봉(1148m)은 소백산국립공원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도솔봉(1314m)과는 50분 거리에 있으며, 도솔봉은 소백산국립공원과 동떨어진 죽령 남쪽에 위치한다. 묘하게 쌓여진 봉우리이니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든 경관이 빼어나다.
도솔봉(1314m)은 소백산국립공원 구역의 남쪽에 속해 있으며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도계를 이루는 산이다.
삼형제봉은 대부분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상을 산 이름으로 지은 것이 많은데 봉우리의 숫자에 따라 형제봉, 삼형제봉, 칠형제봉 등의 이름이 있다.
죽령(689m)은 충북 단양군의 대강면 용부원리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소백산맥의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에 위치한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은 옛날부터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라 했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연결하는 죽령 터널은 중앙고속도로 구간에 위치하고 총길이 4.6㎞ 이다.
■ 대간33구간(도솔봉) : 죽령 ~ 늦은맥이재
죽령(689m)은 충북 단양군의 대강면 용부원리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소백산맥의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에 위치한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은 옛날부터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라 했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연결하는 죽령 터널은 중앙고속도로 구간에 위치하고 총길이 4.6㎞ 이다.
연화봉(제2연화봉 1394m)은 철쭉군락이 뒤덮여 있어 매년 소백산 철쭉제가 열리고 있으며 철쭉여왕 선발과 산신제 등 다채로운 행사가 거행되며 연분홍 철쭉과 울긋불긋한 등산객들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곤 한다. 이곳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국립 천문대와 공군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어 우리나라 천문공학의 요람이며 소백산의 여러 줄기에서 오르는 등산로의 합류 지점이다.
희방사(850m)의 이름과 관련한 전설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어느 날 두운조사가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목에 비녀가 걸렸는데,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주고 호랑이를 살려주었다. 그 후 호랑이는 두운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는데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의 무남독녀였다. 경주호장은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 절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기쁠희),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모방)을 써서 희방사라 이름 지었다.
비로봉(제1연화봉 1439.5m)의 비로란 불교 용어로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의 준말이다. 원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종파마다 각각 달리 불리는데, 화엄종에서는 석가모니불, 진언종에서는 대일여래, 천태종과 법상종에서는 법신불 등으로 부르는 부처다.
소백산은 조선조 유명한 풍수지리가이며 실학자인 격암 남사고가 죽령을 넘어 가다가 이 산을 보고 사람 살리는 산이라고 말하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고 지나갔다는 산이다. 소백산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등뼈와도 같은 태백산령의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 큰 산계를 이루는 소백산령의 어깨 격인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소백산이라는 이름 또한 눈을 이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자, 작은 백두산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산이다.
국망봉(1420.8m)은 신라의 마지막 왕, 부왕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에 머물렀고 마의태자는 엄동 설한에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도달하여 신라의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리다가 월악산의 덕주공주를 찾은 후 개골산으로 향했으며 이후부터 국망봉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전한다.
상월봉(상월불각자 1394m)은 국망봉에서 상월봉을 바라보면 봉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상월불각자다. 옛날 여러 스님들이 불교에 입문, 득도를 위해 법문을 오르려고 무수한 세월을 보내다 끝내 이르지 못했는데, 구인사의 중창조사인 상월원각대조사 상월 스님이 9봉8문을 올라 신선봉과 국망봉 사이의 암봉에 상월봉이라 새겨 놓았고, 그로 인해 그 암봉이 상월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해지기도 한다.
늦은맥이재는 1272봉과 상월봉 사이에 가장 낮은 허리부분으로 느슨한 혹은 낮은 고개라는 의미 이지만 해발고도가 1220m 정도로 낮은 고개는 아니다.
■ 대간34구간(마당치) : 늦은맥이재 ~ 고치령
늦은맥이재는 1272봉과 상월봉 사이에 가장 낮은 허리부분으로 느슨한 혹은 낮은 고개라는 의미 이지만 해발고도가 1220m 정도로 낮은 고개는 아니다.
신선봉(1389m)은 중선(중선마을) 동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중선이라는 지명도 신선봉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선봉은 안개가 봉우리를 감싸고 있을 때가 많아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산으로, 옛날에 신선들이 장기를 두며 놀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마당치는 고갯마루가 마당처럼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봉(1177m)은 산의 정상 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다 하여 형제봉이라 불리고 있으며 풍수지리학상 옥녀직금 형극(선녀가 내려와 비단을 짜는 형극)이라 하여 조선시대에 많은 풍수가들이 운집했다 한다.
고치령(770m)은 신라시대 근처에 절을 지으려고 터를 잡았던 일로 절터고개라 불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옛고개라는 뜻의 고치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엔 곶적령으로 적고 있다.
■ 대간35구간(갈곶산) : 고치령 ~ 늦은목이
경북 영주 단산면의 고치령(770m)은 신라시대 근처에 절을 지으려고 터를 잡았던 일로 절터고개라 불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옛고개라는 뜻의 고치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엔 곶적령으로 적고 있다.
미내치는 경사가 완만하여 옛 주민들이 고개의 정상을 향해 걷다 보면 벌써 고개가 끝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구령(820m)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고개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길이라 하여 마구령이라 불린다.
갈곶산(966m)의 갈곶은 가리곶이 본딧말이다. 노적가리처럼 둥글둥글하면서도 꾈만큼 뾰족하다는 뜻이다. 갈은 음차한 것이다. 바다로 돌출한 육지로 꽂 보다 크면 반도라 하고 반도의 말단부를 곶이라 한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늦은목이(786m)는 부석면 남대리와 물야면 오전리를 넘나드는 고개다. 늦은은 느슨하다는 뜻이며 목이는 노루목이나 허리목 같이 고개를 뜻하는 말에 명사형 어미 이를 붙인 것이다. 따라서 느슨한 고개로 풀이된다. 낮은 고개로도 볼 수 있다.
■ 대간36구간(선달산) : 늦은목이 ~ 도리기재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늦은목이(786m)는 부석면 남대리와 물야면 오전리를 넘나드는 고개다. 늦은은 느슨하다는 뜻이며 목이는 노루목이나 허리목 같이 고개를 뜻하는 말에 명사형 어미 이를 붙인 것이다. 따라서 느슨한 고개로 풀이된다. 낮은 고개로도 볼 수 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경북 봉화군 물야면 및 영주시 부석면에 걸쳐 있는 선달산(1236m)은 한자로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도 하고, 먼저 올라야 한다는 의미와 남쪽 기슭에 신선굴이 있어 선달산이라 한다. 또한 선비의 기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박달령(1009m)은 선달산과 옥돌봉 중간지점에 위치한 박달령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물야면에 걸쳐 있는 옥석산(1222m)은 일명 옥돌산이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단군인 환인께서 천지순회를 하다가 이른 곳은 옥이 안난곳이 없고 선경이 아닌곳이 없었다 하는데 환인이 순회한 곳이라 하여 이름을 옥돌봉이라 하였다 한다. 또 이산 정상에는 흰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빛이 예천까지 빛났다 하여 예천 바위로 전해오고, 이곳은 6.25사변시 공산게릴라와의 치열한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도래기재(763m)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서벽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본래 이 곳에 조선시대 역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력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갈 수 있다.
■ 대간37구간(구룡산) : 도리기재 ~ 차돌배기봉
도래기재(763m)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서벽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본래 이 곳에 조선시대 역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력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갈 수 있다.
구룡산(1345.7m)은 경북 봉화군의 춘양면 우구치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덕구리에 위치한 산이다.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부에 있어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이 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가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구룡산 아래를 천평이라 하는데 이는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을 때 태백산 정상을 천령이라 하였고, 천제단이 있는 곳을 천산이라 하여, 그 아래 있는 들을 하늘들이라 하여 천평이라 하였다 한다.
경북 봉화군의 춘양면 애당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사이의 고직령은 고개가 높고 곧은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 서북쪽으로는 구룡산(1344m)과 삼동산(1078m)으로 이어진다.
곰넘이재는 옛날부터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였으며 특히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이었다. 웅현이라고도 하며 순 우리말로 순화하여 곰넘이재로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선봉(1300m)은 신선이 산다는 봉우리 이다.
차돌배기는 지나는 행락객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있었다 하여 차돌배기라 전하여 오고 있다.
■ 대간38구간(태백산) : 차돌배기봉 ~ 화방재
차돌배기는 지나는 행락객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있었다 하여 차돌배기라 전하여 오고 있다.
깃대배기봉(1368m)은 예전 신라시대에는 채백산과 부소산 그리고 깃대배기봉을 연결하는 대간길을 하늘고개라는 뜻의 천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성시했다고 한다. 깃대처럼 높은 봉우리로 배기는 명사형 어미다.
부소봉(1547m)은 장군봉, 천제단과 비슷한 높이임에도 두 봉우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봉우리로 솥두껑처럼 생겨서 부르는 이름이다.
태백산(1567m)은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의 종주이자 모산이다. 태백산은 천년병화가 들지 않는 영산이며, 단종이 악령이 되었다 하여 단종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단종비가 망경대에 있다. 또한 이 산에는 태백산사라는 사당이 있었고, 소도동에는 단군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1989년에 이 일대는 태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태백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어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를 열고 천제를 지낸다. 태백산의 문수봉은 여성의 풍만한 젖가슴을 닮아서 젖봉이라고도 부르는데 볼거리로는 산 정상 부근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불리는 주목나무 군락과 고산식물, 6월 초순에 피는 철쭉이 유명하다.
태백산 천제단은 옛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으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3산 5악 중의 하나인 북악이라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산으로 섬겨 왔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은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 남쪽에는 그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 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역을 이루고 있다.
천왕단의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으로 천원지방의 사상 때문이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 또는 구령탑이라 하고 마고탑이라 하기도 한다. 특히,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드는데 중앙에 태극기와 칠성기를 꽂고 주변에는 33천기와 28수기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
사길령 산령각(산신각)에서 사길령의 본래 이름은 새길령으로 고려시대에 새로 개척한 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화방재(939m)에 대해선 고갯마루 정상 일대에 진달래와 철쭉이 꽃방석처럼 핀다하여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일제강점기 방화선이 설치되며 이처럼 불렸다는 설도 있지만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의 이름을 따 화방재로 불렸을 가능성도 높다. 화방재는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부터는 내땅이라고 하여 어평재 또는 인근의 정거리마을을 따라 정거리재 등으로도 불린다.
■ 대간 39구간(함백산): 화방재 ~ 싸리재
화방재(939m)에 대해선 고갯마루 정상 일대에 진달래와 철쭉이 꽃방석처럼 핀다하여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일제강점기 방화선이 설치되며 이처럼 불렸다는 설도 있지만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의 이름을 따 화방재로 불렸을 가능성도 높다. 화방재는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부터는 내땅이라고 하여 어평재 또는 인근의 정거리마을을 따라 정거리재 등으로도 불린다.
수리봉(1214m)은 함백산 구간의 가장 남쪽 봉우리로 독수리의 일종인 수리가 살던 봉우리다.
만항재(1330m)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다.
정암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와 함께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힌다. 정암사에는 그 사리가 산의 위 중턱인 수마노탑에 모셔져 있다. 수마노탑은 용왕이 보내준 마노석을 쌓은 탑으로 알려져 있다.
창옥봉은 특이한 점 없는 흙길의 능선봉우리와 이어지는 안부 능선 길로 표지석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옥봉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 경계의 함백산(1572.9m)은 상함백(은대봉), 중함백(본적산), 하함백(함백산)을 아우르고 있다. 묘범산이라고도 불리였으며 묘범산은 묘고산과 같은 말로 대산이자 신산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박산이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중함백 정상엔 인공으로 깍은 듯 자연스레 깎인 넓은 돌 판 쉼터가 있다.
은대봉(1442.3m)은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1527.9m), 창옥봉(1380m) 중 상함백산을 가리킨다.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두문동재(싸리재 1268m)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사이의 고개로 두문동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다른 이름으로 싸리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 대간 40구간(매봉산): 싸리재 ~ 건의령
두문동재(싸리재 1268m)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사이의 고개로 두문동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다른 이름으로 싸리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대봉(1418.1m)은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으로 금대라는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봉을 양강 발원봉이라고도 한다.
이 산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굼터의 석간수에서 솟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 나와 514km의 한강발원지가 된다. 지금까지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오대천과 창죽천의 합수지점인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도상실측을 한 결과 창죽천이 약 32km나 더 긴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국립지리원에서 한강의 발원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검룡소라는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쑤아밭령(1100m)의 쑤아밭은 지금의 소나무밭에 해당한다. 솔밭이 소리 변화된 말로 일부에서는 사리밭으로 보기도 한다. 단충나무가 많아서 축치라고도 부른다.
비단봉(1279m)은 추전마을 고랭지채소 단지의 서족 봉우리다.
매봉산(1303m)은 태백산맥의 여맥인 중앙산맥 중의 한 산으로 서북쪽에 대덕산(1307m), 서남쪽에 함백산(1573m), 동쪽에 육백산(1244m) 등이 솟아 있다. 남쪽 산록의 연일 정씨 묘에서 바라보면 매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알을 품을 때 수리가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매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원래의 이름은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천의봉이라고 한다.
삼수령(피재 920m)은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하는데,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노루메기(800m)는 피재의 북동에 있는 낮은 고개로 노루목이의 방언으로 변화된 구어다.
새목이(850m)는 조항이라고 하며 풍수지리에서 새의 목과 닮은 산세에서 유래하였다.
건의령(840m)은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 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대간 41구간(덕항산): 구부시령 ~
건의령(840m)은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 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푯대봉(1009.2m)은 대간 등로에서 50여 미터 떨어져 있고 측량 깃발이 세워졌던 곳이라 하여 푯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내령은 삼척시 도계읍의 한내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것으로 보인다.
구부시령은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구부시령은 이름과 달리 고개가 아닌 봉우리 형태의 구릉이다. 옛날 고개 동쪽 한 대리 쪽에 주막을 하던 팔자가 기구한 어떤 여인이 서방마다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새서방을 아홉 명이나 모시고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 후 대기리의 뒷산인 이곳을 인생의 고단한 삶을 표현하여 구부시령으로 부른다고 한다.
덕항산(1070m)은 태백산맥의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두타산(1353m), 서쪽에 노목산(1150m), 남쪽에 대덕산(1307m), 응봉산(1303m) 등이 솟아 있다. 이 산은 삼척쪽에서 일명 덕메기산이라고 불렀는데 저 너머(태백 하사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고원)가 있는 뫼라는 뜻이라고 한다. 산정에는 산제당이 있어서 지성으로 빌면 크게 덕을 본다는 전설이 있다.
지각산(890m)은 삼척에서 가장 깊고 우람한 협곡인 대이리 동굴지대의 복판에 솟은 산이다. 지각산은 허리쯤에 환선굴을 품고 있는 산이다. 그래서 지각산이란 이름보다 환선봉이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대이리 동굴지대는 환선굴, 관음굴,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제암풍혈, 큰재세굴 등 6개의 동굴이 분포하며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암재(장암재)는 환선굴의 뒤편에 위치한 고갯길이며 동굴마을인 대이리와 귀네미마을을 연결한다. 자암재는 고갯마루에 있는 바위들이 자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바위에는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자주색은 바위 속의 철분이 녹슬면서 나타나는 색이다.
큰재는 1062봉에서 lKm쯤 떨어진 곳에 귀네미마을에서 개간지로 넘어오는 임도와 대간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황장산(1059m)은 임금님의 관을 만드는 데 쓰는 품질 좋은 황장으로 된 목재용 소나무 황장목을 생산한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댓재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죽령, 죽치라고도 하였으며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서쪽의 하장면으로 통한다라고 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 대간 42구간(두타산/청옥산): 댓재 ~ 이기령
댓재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죽령, 죽치라고도 하였으며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서쪽의 하장면으로 통한다라고 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햇댓등은 산신각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 산신이 강신하기 가장 좋은 곳에 횟대를 세우고 산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는데 횟대는 대나무를 말하며, 두 개의 대나무를 잘라서 통째로 세우고 꼭대기에 오색천을 걸었다. 횟대는 경상도와 이북, 강원도에서 햇대로 변음된 사투리로 햇댓등의 지명은 댓재와 합성하여 햇댓이라 한 것으로 보이며. 등은 산줄기에서 전망하기 좋게 뛰어 나온 부분을 말하는데 두타산과 청옥산은 물론이고 주변의 산군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이상적인 곳으로 보아 세 곳의 뜻을 합성하여 햇댓등이라는 지명이 붙었을 것 이라 전한다.
명주목이는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속하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이다. 원래 이름은 데바지령이며, 협소한 계곡의 지류를 따라 오르기가 힘들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
통골재(980m)는 두타산 남쪽 허리가 잘록한 노루목으로 목통령이라고도 부른다. 목통령은 원래 순 우리말로 동물의 목에 해당하는 목통이다.
두타산(1352.7m)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과 삼척시 하장면, 미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며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하고 있다. 산이름은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쉰움산(670m)은 정상 암릉에 오십정으로 이름된 우물 같은 웅덩이가 50개 가량 파여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박달령은 청옥산과 두타산의 중간에 위치하며, 무릉계곡의 박달폭포로 내려서는 분기점이다. 박달골과 박달폭포의 뒤편 고개를 뜻한다. 박달고댕이라고도 부르는데 고댕이는 고개의 강원도 방언이다.
문바위재는 문을 닮은 바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청옥산(1404m)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과 삼척시 하장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푸른 옥돌(청옥석)이 나왔다 하여 청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전국 각지에서 대들보가 될 만한 목재를 구하였는데, 마침 청옥산 주봉에 있는 소나무가 적재로 결정되어 하장천을 이용, 뗏목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
연칠성령(1184m)은 백봉령과 댓재 한 중간에 위치한다. 빼어난 여러 봉우리을 연결하는 고개로 난출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험하고 멀어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망군대는 연칠성령의 서쪽 봉우리다. 고적대와 함께 전망 좋은 곳이다. 조선 광해군 때 재상을 지낸 택당 이식이 정계에서 은퇴해 중봉산 단교암에 머물면서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나랏일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도성의 임금을 바라보다 또는 한양을 바라보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고적대(1353m)는 강원 동해시와 삼척시, 정선군의 경계에 있다. 산악에서 대라는 지명은 대체로 주변보다 높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고적대는 특히 높게 쌓여 있다는 의미로 여러 대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갈미령(갈미봉 1271m)은 노적가리나 볏가리는 꼭지가 우뚝한 형태를 표현하는 우리말이다. 갈은 가리의 준말이다. 미는 꼬리 혹은 끝이라는 뜻의 명사형 어미다. 갈미봉은 꼭지가 우뚝한 봉우리를 의미한다.
괘병산(수병산 1220.5m)은 공룡 발자국 모양의 샘이 여러 곳 있고, 바다조개껍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억년 전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형상을 하였다고 괘병산이라 하며, 암벽이 흰색으로 변하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의 피마름골은 임진왜란때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의 피가 흘렀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기령(810m)은 동쪽 아래의 동해시 이기동 뒷고개라서 붙여졌다. 이기는 귀가 비롯되었다는 뜻인데, 옛 사람들의 눈에는 이곳 형세가 귀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상월산(970m)은 높은 산이라는 의미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한다.
오대산(1563.4m)은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으로,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있는 오대산을 보고 너무 흡사하여 오대산이란 이름을 지었다 한다. 오대의 두가지 유래로 비로봉(1563m), 효령봉(1560m), 상왕봉(1493m), 두로봉(1422m), 동대산(1433m) 다섯 봉우리가 각각 대(사방을 멀리 바라 볼 수 있게 솟아오른 곳)를 이루고 있어 오대라 하였다. 다른 한가지는 관음암(동대), 수정암(서대), 미륵암(북대), 지장암(남대), 사자암(중대)의 다섯 사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원방재(730m)는 동해시 신흥동 관촌과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를 이어주는 매우 험준한 고개이다.
부수베리는 옛날 이곳에 부싯돌로 쓰는 돌이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달팽이산은 지명에대한 유래는 찾기 힘들었지만 원방재에서 1022봉으로 오르는 산의 능선 모습이 달팽이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 되었다.
1022봉은 원방재에서 백봉령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등로에 우뚝솟은 봉우리로 정상부는 비상 헬기장으로 되어 있는 곳이다.
백복령(780m)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개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한약재로 쓰이는 복령 가운데 백복이 많이 나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소나무를 벌채하면 나무 뿌리에 수액이 응고되어 생성된 것을 복령이라 한다.
■ 대간 43구간(석병산): 백복령 ~ 삽당령
백복령(780m)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개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한약재로 쓰이는 복령 가운데 백복이 많이 나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소나무를 벌채하면 나무 뿌리에 수액이 응고되어 생성된 것을 복령이라 한다.
자병산(872.5m)은 돌의 색깔이 불그레하여 자줏빛 병풍을 드리운 것 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자병산이라 했다(붉은 석회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 또한 가물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한다.
한라시멘트에서 석회석 채석장으로 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는곳으로 자병산의 대부분이 훼손된 상태이다.
생계령(640m)은 주위에 도토리 나무가 많아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도토리 열매를 채취하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고병이재(골뱅이재)는 강릉 산계리와 정선 임계리를 동서로 잇는 고개이다.
석병산(1055m)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에 걸쳐 있다. 태백산맥의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만덕봉(1035m), 서쪽에 대화실산(1010m), 서남쪽에 노추산(1322m), 동남쪽에 자병산(873m) 등이 솟아 있다. 깍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이라 이름 붙여졌다.
두리봉(1033mm)은 둥글둥글하다의 순 우리말인 두리로 둥근 모습을 한 봉우리를 말한다.
삽당령(680m)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 와 목계리를 잇는 고개이다. 삽당령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고갯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로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 대간 44구간(화란봉) : 삽당령 - 닭목령(12.7Km)
삽당령(680m)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 와 목계리를 잇는 고개이다. 삽당령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고갯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로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들미재(810m)는 개활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는 의미다.
독바위골은 독(항아리)처럼 생긴바위가 있다하여 독바위골이라 부른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대용수동은 연못에서 물고기가 용으로 변해 등천한 일이 있어 용수동이라하며 후에 연못의 크기가 커서 대용수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석두봉(982m)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위치한다. 정상부가 바위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화란봉(1069.1m)은 이름 그대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다.
닭목재(706m)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북서쪽에는 서득봉(1053m)이 있고 남동쪽에는 화란봉(1069m)이 있다. 닭목재를 한자화해서 계항치라고도 한다. 고개의 모양이 닭목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개 주변에 닭목골, 닭목이, 닭목교 등의 관련 지명이 있다.
■ 대간 45구간(고루포기산) : 닭목령 - 대관령 (13K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재(706m)는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북서쪽에는 서득봉(1053m)이 있고 남동쪽에는 화란봉(1069m)이 있다. 닭목재를 한자화해서 계항치라고도 한다. 고개의 모양이 닭목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개 주변에 닭목골, 닭목이, 닭목교 등의 관련 지명이 있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과 강릉시 왕산면에 걸쳐 있는 고루포기산(1238.3m)은 태백산맥의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한다. 북쪽에 능경봉(1123m), 동쪽에 서득봉(1052m), 남쪽에 옥녀봉(1146m) 등이 솟아 있고, 백두대간 상에 솟아 있는 산으로, 울창한 숲과 초원지대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어 풍경이 아름답다.
횡계치는 용평스키장과 대관령목장, 마을마다 즐비한 황태덕장, 그리고 고랭지채소 덕분에 부촌으로 변한 도암면 횡계리에 있는 고개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의 능경봉(1123m)은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세 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대관령 능선 아래 있다고 해서 능정봉이라 한다. 둘째, 산의 모양이 둥그스름하여 마치 큰 왕릉처럼 생겨서 능정봉이라 한다. 셋째, 활시위처럼 생겨서 소궁음산이라 한다. 소궁음산은 소우음산의 잘못된 표기로 여겨진다. 소우음산은 위에 영험한 샘이 나는 곳이 있으며 가뭄이 들어 비가 오기를 빌면 신통하게도 비가 온다고 하여 능정산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과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의 대관령(832m)은 대령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동쪽 경사면의 도로는 아흔아홉구비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명칭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 대간 46구간(선자령) : 대관령 - 진고개 (25Km)
대관령(832m)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과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대령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동쪽 경사면의 도로는 아흔아홉구비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명칭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선자령(1157m)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선잘령, 보현산, 만월산 이라고도 불렸고 보현사에서 보면 선자령이 떠오르는 달과 같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현사는 신라의 낭원국사 보현이 직접 창건한 절이다.
나즈목이는 낮은 목의 강릉 사투리로 안부라는 뜻이다.
곤신봉(1127m)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세 지역에 걸쳐 있는 산이다. 곤신봉은 강릉부에서 볼 때 거의 서쪽, 즉 전통적 방위 용어로 곤신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1173m)은 옛날 미데기(바닷물)가 이곳까지 올라왔을 때 매 한 마리가 겨우 앉을 자리만 남기고 이 봉 꼭대기까지 바닷물이 가득찼다고 해서 이 봉우리를 매봉이라 불러오고 있다.
황병산(1407m)은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의 한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서쪽에 노인봉(1338m), 동대산(1434m), 동북쪽에 천마봉(999m), 동쪽에 매봉(1173m) 등이 솟아 있다. 소황병산의 정상은 대관령목장의 초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표지석과 함께 안내판이 서 있다. 황병산 정상은 대간에 위치하지 않는다. 황병산은 누른황 자루병처럼 길다랗게 생긴 산이라 붙여졌다.
노인봉(1338m)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와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사이에 위치하는 산이다. 산삼을 캐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면 노인이 나타나서 심메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과 산정에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백발의 노인처럼 보인다고 해서 노인봉이라 불린다는 속설이 있다. 봉우리 모양이 노인이 지팡이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또한 주상절리로 형성된 산의 겉모습이 노인의 주름살처럼 보여서 이렇게 지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진고개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개 이름은 긴 고개가 소리 변형되어 진고개가 되었다고도 하고 비가 오면 땅이 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 대간47구간 : 진고개 ~ 구룡령
진고개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개 이름은 긴 고개가 소리 변형되어 진고개가 되었다고도 하고 비가 오면 땅이 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동대산(1434m)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도암면 및 강릉시 연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오대산을 이루는 다섯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오대산은 동쪽의 만월봉, 서쪽의 장령봉, 남쪽의 기린봉, 북쪽의 상왕봉, 중앙의 지로봉 등이 그 봉우리마다 편편한 대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바로 동쪽의 만월봉을 오늘날 동대산이라고 부른다. 오대는 비로봉(1563m), 효령봉(1560m), 상왕봉(1493m), 두로봉(1422m), 동대산(1433m)을 말한다.
두로봉(1422m)은 북서쪽의 비로봉, 상왕봉, 서쪽의 효령봉, 남동쪽의 동대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지맥을 이루는 오대산맥 중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두로령(1310m)은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이다.
신배령(1173m)은 연곡면 삼산 3리와 홍천군 내면 조개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예부터 맛이 신 돌배가 많이 자생하여 신배령이라 불리운다.
만월봉(1280.9m)은 약200년전 조선조 말 어느 시인이 이 봉을 바라보고 시를 읊었는데 시중에 바다에 솟은 달이 온산에 비침으로 만월이 가득하다 하여 만월봉이라 한다.
응복산(1360m)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과 양양군 서면, 현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의 모양이 매가 엎드린 형국이라 하여 매복산 또는 응복산이라고 부른다.
마늘봉은 약수산과 응복산의 한가운데 독립적인 하나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마늘처럼 동그랗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약수산(1306m)은 강원도 양양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산이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 위치한 명개약수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산의 주변에 많은 약수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산에서 발원하는 미천골계곡에 불바라기약수(미천약수)가 있고, 갈전곡봉과의 사이에 있는 구룡령계곡에는 갈천약수가 있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 경계의 구룡령(1013m)은 아홉 마리의 용이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를 넘다 지쳐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 하여 구룡령이라 이름이 붙여진 길로 56번국도 상에 있다. 용이 구불구불 긴 몸통을 휘저으며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룡령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전설도 있다.
■ 대간48구간 : 구룡령 ~ 조침령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 경계의 구룡령(1013m)은 아홉 마리의 용이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를 넘다 지쳐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 하여 구룡령이라 이름이 붙여진 길로 56번국도 상에 있다. 용이 구불구불 긴 몸통을 휘저으며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룡령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전설도 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 경계의 갈전곡봉(1204m)은 원이름이 치밧골봉으로, 주로 홍천군 방향에서 이 이름으로 많이 불려 왔다. 치밧골이란 이름에서의 치밧이 칡밭에서 나온 것임을 한자명 갈전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왕승골(819m)
쇠나드리(옛조침령)는 바람이 황소까지도 날려버릴 만큼 그 세기가 엄청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야기로는 쇠(소)나들이가 본디말로 옛날에 소 등에 올라타고 넘나들던 먼 길이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연가리골은 정감록에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 일대는 난리를 피할수 있는 최고의 피난처로 3둔(살둔, 달둔, 월둔)과 4가리(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또는 곁가리)를 꼽고 있는데, 그만큼 이 주변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지였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 경계의 조침령(877m)에서 조침은 산이 높고 험하여 새도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대간49구간 : 조침령 ~ 한계령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 경계의 조침령(877m)에서 조침은 산이 높고 험하여 새도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암령(925m)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한계령을 기준으로 할 때 북쪽)과 마주보고 서 있는 점봉산의 동쪽 산줄기에 해당하며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의 집단 분포지로 알려진 곳이다.
단목령(809m)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지구의 점봉산(1424m) 동쪽에 있다. 단목령이라는 명칭은 박달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하였고, 박달재 또는 박달령이라고도 부른다.
점봉산(1424m)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과 기린면 및 강원도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일명 점붕산이라고도 하며 옛이름은 덤붕산이다. 등벙산 또는 등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1982년에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계획(Man and Bioshere Project)에 의하여 남한에서 처음으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점봉산은 2003~2005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2006년부터는 비법정등산로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2002년도에는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다.
망대암산(1236m)은 강원 인제군 인제읍과 양양군 서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은 정상이 첨봉이고 망대암과 금표암 등 기암괴석으로 덮여 있다. 주전골 바위굴에서 사전을 주조하려고 놋그릇을 부셔 위조주전을 만들다 적발되어 이후로 이곳을 주전골이라 하였다. 망대암산은 이를 감시하던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암산을 볼 수 있는곳이라 망대암산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십이담계곡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의 오색지구에 있는 망대암산에서 한계령 방면으로 약 30분 거리의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계곡이다. 계곡 하부에 열두 폭의 비단폭처럼 굽이쳐 흐른다는 십이폭포가 있고, 그 아래로 주전골(주전계곡)이 이어진다.
한계령(1004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일명 재내, 와천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소동라령 또는 오색령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 대간50구간 : 한계령 ~ 마등령
한계령(1004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일명 재내, 와천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소동라령 또는 오색령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끝청(1604m)은 설악산 중청봉 서쪽에서 이어지는 서북주릉상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중청봉(1676m)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소청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 이다. 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청봉(1707.9m)은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예전에는 청봉, 봉정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 성해응이 지은 동국명산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봉정암(1244m)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봉정암은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 부속암자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하다.
설악산(1708m)은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 설봉산, 설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라고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불린다고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소청봉(1550m)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에 인접한 봉우리 이다. 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이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희운각대피소(1086m)는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하여 설악산 죽음의계곡(옛지명 반내피)에서 등반훈련을 하던 중 1969년 2월 14일 계곡의 막영지에서 눈사태를 당하여 전원(10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고 이후 희운 최태묵 선생이 이곳에 대피소를 세우면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본인의 사재를 들여 지금의 이 자리에 대피소를 건립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희운 선생의 호를 따서 지금까지 이곳을 희운각이라 부르고 있다.(수용인원 30명)
무너미고개(1060m)는 물 나눌 고개의 우리말이라 한다.
공룡능선은 2013년 3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리킨다.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능선이자 속초시와 인제군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용아장성능선과 함께 설악산을 대표하는 암봉 능선이다. 명칭은 연이어진 암봉들이 마치 공룡의 등같이 생겨 용솟음치는 것처럼 장쾌해 보인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공룡릉이라고도 불린다.
나한봉은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첫 봉우리다. 정상에 서면 1275봉과 천화대가 바로 앞에 펼쳐지며 멀리 대청봉과 서북릉이 검푸른 모습으로 하늘과 경계선을 긋는다. 서북릉 앞으로 한줄기 험악한 산자락이 길게 늘어지는데 이것이 용아장성릉이다. 나한은 불교용어로 오백나한의 준말이다. 나한봉은 뽀쪽뽀쪽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수많은(약 500개) 봉우리가 좁게는 서쪽 아래에 세워진 오세암을, 넓게는 마귀로부터 사바세계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금강굴은 자연동굴로 1300여년 전, 원효대사가 수행기도하셨던 곳으로 민중교화승인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금강삼매경론의 머리를 따라 금강굴이라 한다. 설악8기중의 하나인 이 곳 금강굴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외설악 비경으로 공룡능선과 천화대능선 및 화채능선 사이로 계곡이 펼쳐 보이며, 계곡 양쪽으로 솟은 봉우리들은 각기 모습이 다른 천 분의 부처님 형상을 새겨놓은 듯하여 천불동이라 부른다.
권금성은 옛날에 설악산에 권씨와 김씨의 천하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나서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피난갈 곳을 찾아보니 산속이라 산 위밖에 없어, 산 위로 달아나니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결국 둘이 의논한 끝에 성을 쌓기로 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큰 돌이 없고 산 아래 강가에 있었다. 그래서 권장사는 밑에서 돌을 던지고 김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기로 하여 며칠만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에 있는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라 했다고 한다. 화재로 7차례 소실되어 위치를 옮기며 재건되었고 현 위치에 1783년(정조 7)에 최붕과 설담이 재건하고 백담사로 개칭하였고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이 먼 내설악에 자리한 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에 있는 백담계곡은 백개의 못(담)이 있다고 하서 붙여진 것인데 가야동계곡,구곡담계곡,백운동계곡,귀때기골,대승골(흑선동계곡),곰골,길골 등 십이선녀탕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설악의 물줄기가 모이는 큰 계곡이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에 있는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암자로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관음암이라 하였으며, 1643년에 설정이 중건한 뒤부터 오세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오세암에 전해지는 관음영험설화로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다 키울 때, 월동을 위해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고 절에 남아있는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이틀 동안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으나 폭설로 신흥사에 발이묶여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왔는데 법당에 목탁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며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경계의 마등령(1220m)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태백산의 지맥으로 고개가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마등령이라고 한다. 또 고개가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마등령이라 부른다는 기록도 있다.
■ 대간51구간 : 마등령 ~ 미시령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에 있는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라 했다고 한다. 화재로 7차례 소실되어 위치를 옮기며 재건되었고 현 위치에 1783년(정조 7)에 최붕과 설담이 재건하고 백담사로 개칭하였고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이 먼 내설악에 자리한 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에 있는 백담계곡은 백개의 못(담)이 있다고 하서 붙여진 것인데 가야동계곡,구곡담계곡,백운동계곡,귀때기골,대승골(흑선동계곡),곰골,길골 등 십이선녀탕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설악의 물줄기가 모이는 큰 계곡이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에 있는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암자로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관음암이라 하였으며, 1643년에 설정이 중건한 뒤부터 오세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오세암에 전해지는 관음영험설화로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다 키울 때, 월동을 위해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고 절에 남아있는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이틀 동안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으나 폭설로 신흥사에 발이묶여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왔는데 법당에 목탁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며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경계의 마등령(1220m)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태백산의 지맥으로 고개가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마등령이라고 한다. 또 고개가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마등령이라 부른다는 기록도 있다.
마등봉(1327m)은 마등령을 지나 봉우리 지점으로 그 우측으로 세존봉이 보인다.
세존봉(1186m)은 마등령 동쪽 오르막길에 삐죽 솟은 암봉으로 명칭은 석가세존에서 따온 것이다.
저항봉(걸래봉, 1250m)은 저항령에서 너덜지대를 올라 뾰족하게 솟은 바위 암봉으로 너덜지대 중간 지점에는 625참잔 용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저항령(1100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 고개로 명칭은 원래 길게 늘어진 고개를 뜻하는 늘으목 또는 늘목에서 유래한 늘목령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한 장항령을 거쳐 지금의 저항령이 되었다고 한다.
황철봉(1381m)은 북봉(1319m),황철봉(1381m),남봉으로 나누어지며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신선봉,진부령까지의 북주능선상에 위치한다. 이 구간은 자철이 많은 황철봉으로 인하여 나침반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철봉에서 450m지점에서 우측으로 남봉 갈림길이 있고 직진하면 저항령으로 이어진다.
울산바위갈림길(1066m)은 미시령터널 지점에서 황철북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미시령의 폭포민박에서 용소골,울산바위서봉,839봉을 지나 황철북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만나는 지점의 갈림길이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사이의 미시령(826m)은 한계령과 함께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고개일 뿐 아니라, 진부령,대간령,대관령 등과 함께 태백산맥을 넘는 주요 교통로였다. 인근의 다른 고개에 비해 높고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고개를 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미시령(두루미, 때시, 재령)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형상으로 금강산과 비슷하여 한계령이 금강산의 비로봉 고개에 빗대어지는 것과 같이, 미시령은 금강산의 만물상 고개에 비유된다.
■ 대간52구간 : 미시령 ~ 진부령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사이의 미시령(826m)은 한계령과 함께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고개일 뿐 아니라, 진부령,대간령,대관령 등과 함께 태백산맥을 넘는 주요 교통로였다. 인근의 다른 고개에 비해 높고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고개를 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미시령(두루미, 때시, 재령)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형상으로 금강산과 비슷하여 한계령이 금강산의 비로봉 고개에 빗대어지는 것과 같이, 미시령은 금강산의 만물상 고개에 비유된다.
상봉(1241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 북주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2003년 8월 설악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으며, 화암사~상봉~신선봉 구간은 멸종위기 1급인 산양과 2급인 삵의 서식지로서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암재(1050m)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소간령, 작은새이령 이라고도 한다. 화려한 모습의 바위들로 가득한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신선봉(1204m)은 남쪽 백두대간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결하는 중간 통로 구실을 하는 봉우리로 정상 주변은 험한 바위 너덜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 아래에 신라 때 창건된 화암사가 있다. 흔히 금강산을 1만2000봉이라고 하는데 그 중 5개 봉우리는 휴전선 남쪽에 있다. 5개 가운데 향로봉이 가장 북쪽에 있고 그 밑으로 삼봉, 둥글봉, 칠절봉, 신선봉이 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 사이의 대간령(660m)은 샛령 혹은 새이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진부령과 미시령의 사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샛령,새이령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이 되었고, 큰 샛령(새이령)과 작은 샛령(새이령)으로 구분하여 대간령, 소간령이 되었다.
병풍바위는 병풍 모양의 바위로 향로봉등이 조망 된다.
강원도 고성군의 간성읍 토성면 경계의 마산봉(1052m)은 산세가 말과 같이 생겨 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부령(529m)은 강원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태백산맥의 고개로 중부지방 태백산맥의 여러 고개 중 높이가 가장 낮다.
■ 대간특별구간 : 용대리 ~ 진부령
미시령과 진부령으로 갈라지는 용대삼거리의 매바위 인공폭포는 겨울철 빙벽훈련장으로 인기가 높다. 높이는 120여m로 다리 건너편에서 바라볼 때 바위의 모습이 흡사 매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용대 자연휴양림은 1994년 개장하였고 최대 8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북부지방산림청에서 관리한다. 연화동은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화동 전적기념관은 1996년 강릉지구에 잠수함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과의 이곳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장병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과 고성군 간성면 경계이고 백두대간 구간중 남한의 북쪽 끝지점인 칠정봉(칠절봉 1172m)은 신선봉 동굴봉 삼봉 향로봉과 함께 금강산 1만 2천 봉 가운데 남한에 있는 5개 중 하나이다. 칠절봉은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2009년 민간인 통제선이 1Km 북쪽으로 이동하여 국방부 관리지역에서 신림청 관할지역으로 변경됨에 따라 산행이 가능하게 되었고 2011년 6월에 통일의 염원을 담은 백두대간 표지석이 정상에 세워졌다.
칠절봉(1172m)은 인제군 서화리 동개동에서 일곱굽이 돌아서 있기에 칠절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조선시대에 도적이 많아 영동, 영서 주민들이 이곳을 지나려면 일곱번 절을해야 통과할 수 있었다하여 칠절봉이라한다는 설도 있다. 정상에서 향로봉과 맑은 날에는 금강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진부령(529m)은 강원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태백산맥의 고개로 중부지방 태백산맥의 여러 고개 중 높이가 가장 낮다.
둥글봉(1150m)은 모습이 둥그스름해서 두리봉 또는 원봉으로도 부른다.
향로봉(1296.3m)은 강원 인제군, 고성군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고 험준한 산머리에 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구름이 걸쳐 있어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신라시대에는 가리라봉, 조선시대에는 마기라산으로도 불리었다.
고성재(740m)는 향로봉을 지나 계속 북진하면 건봉산에 이른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향로봉 정상을 거치지 않는다. 백두대간은 향로봉을 거치지 않고 왼쪽인 서북쪽으로 꺾어져서 고성재로 내려서는 능선을 타야 한다.
삼재령은 진부령 이후 백두대간은 칠절봉 둥글봉 향로봉 고성재에 이어 남한 구역의 끝인 삼재령으로 이어진다. 삼칠령이라고도 부른다. 남한 쪽 백두대간인 지리산 천왕봉으로부터는 도상 662㎞, 실제 900㎞가량 떨어져 있다. 삼재령은 인제와 고성이 걸쳐있는데 고개로 동쪽으로는 외금강, 북쪽으로는 내금강으로 통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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