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위치: 유럽대륙 서쪽 북대서양
인구: 68,796,170명 (2023년 추계)
수도: 런던
면적: 242,495㎢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기후: 서안해양성기후
민족 구성: 켈트족, 앵글로색슨족
언어: 영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양원제
종교: 성공회(43%), 로마가톨릭(9%), 개신교(8%), 기타 기독교 종파(20%), 이슬람(2%), 비종교(13%)
화폐: 파운드 (£) 환율계산기
국화: 장미
대륙: 유럽
국가번호: 44
GDP: USD 2,936,286,000,000
인구밀도: 279명/km²
전압: 240V / 50Hz
도메인: .gb
영국과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해방 이전
▶ 해방 이후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 교류·교민 현황
요약
유럽 북서쪽에 놓인 섬나라. 가장 큰 섬은 그레이트브리튼이고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의 북부에 위치한다. 그 외 수많은 작은 섬들과 3,080㎢에 달하는 내륙 수자원을 포함한다. 최대 인종 집단은 잉글랜드인이고 공용어는 영어이며 종교는 영국국교회와 그리스도교가 우세하다. 화폐단위는 파운드(pound/£)이다. 양원제를 채택한 입헌군주제이며 국가원수는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북서 유럽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국 해협과 북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다. 인접국가로 남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네덜란드·덴마크가 있다.
영국을 이루는 섬 중 가장 큰 그레이트브리튼은 섬의 거의 2/3를 차지하는 남쪽의 잉글랜드(13만 440㎢)와 섬의 1/3에 해당하는 북쪽의 스코틀랜드(7만 8,770㎢), 그리고 서쪽의 웨일스(2만 760㎢)로 이루어져 있다.
얼스터라고도 불리는 북아일랜드는 면적이 약 1만 4,120㎢이며, 아일랜드 섬의 북부에 위치한다. 영국은 또한 수많은 작은 섬들과 3,080㎢에 달하는 내륙 수자원을 포함한다. 북위 49~61°(남북길이 약 970km), 동경 1°에서 서경 9°(최장동서길이 약 464km) 사이에 걸쳐 있으며, 수도는 런던이다.
자연환경
영국은 군도로 이루어져 지형이 다채로우며, 자연적인 유산도 다양하다. 대서양 방면으로 유라시아의 한쪽 끝에 위치한 영국의 국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만의 독특한 전답과 주거양식을 형성해 다채로운 경관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영국 내에서 해발 100m 미만의 저지대와 해발 100∼490m의 고지대가 비슷한 면적을 차지하며, 해발 480m가 넘는 고지대는 전체면적의 5% 정도이다. 잉글랜드의 북부·서부·남서부의 3개 지역은 최고높이가 해발 900m 정도에 달하는 고지대이며, 남동부와 동부의 2개 지역은 해발 300m 이하의 저지대이다. 잉글랜드 북부 고지대 지역에는 페나인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최고봉은 크로스펠로 높이가 893m에 이른다. 레이크디스트릭트(잉글랜드 서북부의 호수가 많은 산악지대)의 컴브리아 산맥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978m의 스카펠파이크 봉이 솟아 있다.
이들 5개 지역 사이에는 주로 비옥한 곡창지대인 잉글랜드의 평원이 가로놓여 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강은 템스 강과 세번 강이며, 머지 강과 험버 강 어귀는 항구로서 중요하다. 스코틀랜드는 지형학상 크게 3개 지역, 즉 북부 고지대, 중앙 저지대(해발 150m 이상), 남부 고지대(최고 해발 853m)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부 고지대의 최고봉인 높이 1,342m의 벤네비스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에는 호수가 많은데, 네스 호는 특히 유명하다.
중요한 강으로는 클라이드·스페이·트위드 강 등이 있다. 웨일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형은 컴브리아 산맥으로, 목축을 하기에 적합하다. 웨일스의 최고봉은 높이 1,085m의 스노든 산이며, 주요강은 디·티위·타이피 강 등이다. 북아일랜드는 주로 낮은 고원과 구릉지대(평균해발 150∼180m)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에는 총면적 389㎢로 영국에서 가장 큰 호수인 네이 호가 자리잡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강들로는 밴·언·포일 강을 꼽을 수 있다.
거주유형 영국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시대별로 고찰해보면, 그 관계가 18세기말에 가장 밀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교통이 영국 내 각 지역을 하나의 통일된 사회로 묶어줄 만큼 발달했지만, 스코틀랜드·잉글랜드·웨일스·아일랜드 각 지방은 물론, 특정지역들에 대한 주민들의 소속감을 파괴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지역 주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획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된 언어들은 각 지역에서 통용되는 표준어나 방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 각 지역의 특색이 활짝 꽃피던 전성기는 지났지만 지금도 그 특색은 남아 있다. 영국 내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관계에 있는 하일랜즈 스코틀랜드인과 로랜즈 스코틀랜드인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인·스코틀랜드인·웨일스인·콘월인 등 각자가 갖고 있는 자기 지역에 대한 소속감은 이들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만큼이나 뚜렷하다. 잉글랜드는 각기 독특한 전통을 지닌 8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① 현재의 노섬벌랜드·더럼·컴브리아·타인위어·클리블랜드 주를 포함하는 노스컨트리(North Country) 지역은 5세기 중엽에서 6세기말 사이에 앵글로색슨족이 정착한 이래로 앵글족이 지배하는 노섬브리아 왕국의 중심부가 되었다. 이 지역은 이후 수세기 동안 스코틀랜드와의 국경분쟁을 치렀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전통과 민속이 강화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풍부한 석탄과 철 매장량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이후 이 지역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전통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었다.
197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마침내 이 지역과 분리된 요크셔 주는 로마 시대 이래 여러 형태로 노스컨트리 지방의 일부를 이루었는데, 이런 유대관계는 덴마크인들이 지배하는 요크 왕국이 된 이후로 1641년(튜더 왕조 당시 잉글랜드 코먼 로의 공정한 집행을 위해 설립된 국왕대권재판소인 북부지방법원이 해체된 해)까지도 계속되었다.
이전에는 웨스트라이딩으로 불렸던 요크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직물 산업의 발전으로 이 주의 농촌경제에 중대한 변화들이 생긴데다 자연경관이 다른데도 요크셔 주민들은 여전히 이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② 페나인 산맥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랭커스터 지역은 산업혁명 이전의 어느 때부터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랭커스터는 이 지역만의 전통·방언·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같은 독자성은 이 지역 주민들이 오랜 세월 동안 면직물 산업에 종사한 것에서 기인한다.
③ 잉글랜드의 미들랜즈는 크게 두 지역, 즉 웨스트미들랜즈와 이스트미들랜즈로 나뉜다. 웨스트미들랜즈 지역은 버밍엄이 중심지로 부상한 이래 지역성이 훨씬 더 강해졌고, 이스트미들랜즈 지역은 물리적·역사적 연대감은 강한 반면 경제적 연대감은 다소 약하다.
④ 노퍽·서퍽·케임브리지셔 주와 엘리 섬 지역은 과거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이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주로 농촌지역으로 런던을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 남동부와는 현저한 대조를 보인다.
⑤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은 인구 규모와 밀도에 있어 잉글랜드 내에서 가장 큰 지역이다.
⑥ 웨식스 지역은 영국의 작가 토머스 하디의 작품들에서 생생히 표현된 바와 같이 지역성과 애국심이 강한 지역으로, 햄프셔 구릉지대가 그 중심지이다.
⑦ 세번 강 어귀의 동쪽 지역은 서머싯 평원과 함께 잉글랜드 서부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중심지는 브리스틀 시로 여겨진다.
⑧ 세번 강 어귀의 양안 지역은 전국적 규모의 고속 자동차도로망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세번 다리가 완공된 이후 세번사이드라는 한 단위의 지역으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코틀랜드의 하일랜즈와 로랜즈는 지형적 특성은 물론 전통에 있어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북아일랜드의 강한 지역성은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정치·종교 분쟁에서 명확히 엿볼 수 있다.
영국 내 각 지역의 주거 유형은 천차만별인데, 이는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럽 대륙으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온 이주자·망명자·정복자·무역상들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의 거주 형태는 결집으로 생기는 사회적·경제적 이점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그와 맞먹게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대체로 중세 이후 사유지와 소작지가 생겨나면서 거주지가 분산되었을 뿐 아니라 토지가 울타리와 담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군데군데 주거지가 밀집되어 형성되는 것은 영국 시골 풍경의 특징으로 남아 있는데, 선형·원형·타원형과 반지 모양의 마을들이 있다. 이 마을들 중 상당수가 옛 녹지대들을 마을 공동재산으로 공유하고 있다.
어떤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가 잘 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는 도시가 이 나라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단위이자 더 나아가서는 국토의 효율적 세분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주거 형태의 가장 큰 변화는 초기 산업발전 시기에 대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났고,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도시화되었다. 영국 인구의 약 80%는 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중 40%는 8개의 주요집합도시, 즉 대도시권 중 하나에 살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은 수도인 런던으로 항구도시이자 최대의 산업 중심지이며, 가장 중요한 사무 중심지이기도 하다(→ 광역 도시권, 그레이터런던). 그밖의 대도시권으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웨스트요크셔·머지사이드, 스코틀랜드의 센트럴클라이드사이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를 꼽을 수 있다.
1970년대에 많은 도시인구가 비(非)대도시권으로 이주했고, 외떨어져 있던 셰틀랜드 제도는 북해 유전이 개발되면서 급격히 인구가 증가했다. 최근 들어 환경보호법이 제정되어 그 폐해가 어느 정도 줄고는 있지만, 영국 전역은 인구와 산업의 과다한 집중으로 계속 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공해 억제).
국민
영국의 최대 인종집단은 잉글랜드인이며, 스코틀랜드인·아일랜드인·웨일스인도 전체인구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50년대초 이후에는 영연방국가들, 특히 인도·서인도제도·파키스탄 등지에서 몰려온 이주민들로 인해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영국의 독특한 언어유산은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해 유럽 대륙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초기 언어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2종류의 켈트어, 즉 게일어(아일랜드 게일어, 맹크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를 파생시킴)·브리톤어(고대 콘월어와 현대 웨일스어를 파생시킴)이다(아일랜드어). 현대의 켈트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웨일스어이며, 그 다음은 스코틀랜드 게일어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게일어가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맨 섬에서 고대에 쓰인 맹크스어는 그 형태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콘월어는 18세기초에 사멸되었고, 현대영어는 주로 4개의 게르만어 방언, 즉 5세기에 브리튼에 이주해온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사용했던 것들과 790년경부터 여러 차례 브리튼을 침공해온 데인족이 사용했던 것이 발전해서 생겨난 것이다.
잉글랜드가 중세 노르만족과 앙주 왕가 왕들의 지배 아래서 유럽 대륙 제국의 일부가 되고, 새로운 통치자와 영주들의 지배 아래 오랜 기간 프랑스와 연관을 맺게 됨으로써 영어는 마지막으로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대에는 여러 나라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들어 대부분의 도시지역 주민들은 몇 개 국어를 사용한다.
영국의 연평균인구증가율은 매우 낮고, 출생률·사망률은 1871년 이래 계속 감소추세이나, 유아사망률은 다른 선진국보다는 높은 편이다. 2016년 기준 유아사망률은 3.8명이었다. 연평균인구증가율은 1970년대 후반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상승세를 회복해 0~1%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인구는 6,879만 6,170명이며, 인구밀도는 281명/km²이다.
출생률이 낮기 때문에 전체인구는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15세 이하의 어린이가 전체인구의 1/5도 못 되는 반면 60세 이상은 1/5을 넘는다. 평균수명은 상당히 높아 남자가 80세, 여자가 83세이다(2020). 1871년 이후 대체로 출국이민수가 입국이민수보다 많았으나, 유럽 대륙으로부터 피난민이 몰려들었던 1930년대와 영연방국가들로부터 이주민이 쏟아져 들어왔던 1957∼62년은 그 반대였다(인구이동).
언어
영국 영어가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웨일스어, 스코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얼스터 스코트어, 아일랜드어, 콘월어가 소수에 의해 쓰이고 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국어를 정하진 않았으나, 사실상(de facto)의 언어는 영어이다. 영국 인구의 95%는 오직 영어만을 할 줄 알며, 대략 5.5%에 달하는 국민들만이 최근의 이민자들이나 교육의 영향으로 외국어를 모어로 한다. 영어 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아시아계 언어는 인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펀자브어, 우르두어, 벵골어, 힌디어, 구자라티어 등이 있다. 다만 2011년 통계 결과에 의하면, 최근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급증하며 폴란드어가 영국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라고 한다. 2019년의 경우에는 7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어를 완전히 쓰지 못하거나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의 토착 민족인 켈트어의 후계 격으로는 웨일스어, 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어 등이 따로 존재하였으나,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영어에 밀려나 결국 완전히 소멸되었다. 다만 20세기 후반 들어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현재에는 소수의 사용자가 있다. 2011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웨일스인 전체의 19% 정도만이 웨일스어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에는 약 20만 명 정도의 웨일스어 사용자가 거주하고 있다고 하며, 북아일랜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10.4% 정도만이 아일랜드어를 조금이나마 구사할 줄 안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토착어의 소멸 정도가 워낙 심각하여, 전체 인구의 2%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토착 스코틀랜드어를 구사할 줄 알며 현재도 영어 구사자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스코틀랜드어를 사용하는 영국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캐나다 등지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용되고는 있으며, 웨일스어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무조건적으로 제2외국어를 배워야만 한다. 보통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가장 많이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 웨일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16세가 넘었을 때부터 점차 웨일스어를 제2국어로 배워야하며, 아예 웨일스어를 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영국은 서구문명에 길이 남을 위대한 문화와 지성을 꽃피워왔는데, 선사시대에 세워진 스톤헨지(거대한 돌들의 2중 환열), 셰익스피어와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들, 헨델의 〈메시아 Messiah〉, 진화론, 〈옥스퍼드 영어사전〉 등이 모두 대표적인 예이다. 보다 지역적인 면에서 보면 몇몇 문화적 특성과 관습들이 가장 영국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는데, 그 예로는 켈트족의 춤과 음악, 음유시적인 전통, 초가지붕을 인 오두막으로 대변되는 전원적 풍경, 마을 술집, 철저한 스포츠맨십, 오후의 사교적인 모임 등이 있다. 영국의 문화는 1945년 이래 폭넓게 변화해왔다.
역사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묘사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현생 인류는 대략 3만 년 전쯤부터 영국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다. 선사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들은 켈트족이라는 민족을 구성하며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고, 브리튼 섬에는 브리튼인이, 아일랜드에는 게일인이 등장하였다. 그러던 중 기원후 43년부터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였고, 이들이 약 400여 년 동안 브리튼 섬 남부를 지배하며 브리튼인들을 로마화시켰다. 이후에는 게르만계의 앵글로 색슨족이 쳐들어왔고, 본래 섬에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웨일스 지방으로 몰아낸 후에 섬의 주 지역들을 대신 차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약 10세기 경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되었고, 5세기 경 아일랜드에서부터 이주해와 브리튼 섬 북서부에 살고 있던 일부 게일인들은 픽트족과 통합되어 9세기 경에 스코틀랜드 왕국을 건국하였다.
1066년, 노르만족이 프랑스 북부에서 건너와 잉글랜드를 침공하였고, 웨일스, 아일랜드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며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자리를 틀며 프랑스식의 봉건제를 지역에 정착시켜나갔고, 본래 있던 앵글로색슨 지배계층들과 교류하며 섬의 엘리트층으로 떠올랐다. 이후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왕들은 웨일스 지방을 정복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는 데에는 실패하여 132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반강제적으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1700년대에 합병될 때까지 시시건건 잉글랜드와의 충돌을 반복하게 된다.
잉글랜드의 역대 국왕들은 결혼과 전쟁 등을 반복하여 프랑스 본토 내에도 상당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도 가지고 있었기에 프랑스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 다툼에 깊이 휘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와 벌인 백년전쟁으로,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구 가톨릭과 신교 간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잉글랜드는 새로운 국교인 성공회를 조직하고 가톨릭 교회들이 갖고 있던 토지들을 몰수하고 왕권 강화에 활용하였다. 이때 즈음에 이르자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되었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위 하에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되었다. 한편 잉글랜드 왕국은 현재의 북아일랜드 지방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토지들을 몰수하여 근왕파 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은 하나로 통합되게 되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궁정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겼으나, 여전히 각각의 왕국들은 따로 노는 성향이 강했으며 정치적, 법적, 종교적으로는 제각각으로 활동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이 3개의 왕국들 모두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잠시 왕정이 폐지되었으며 국왕 찰스 1세가 참수당했고 잠시동안 커먼웰스가 세워지며 단명한 공화국이 창설되기도 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에는 섬이라는 영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영국 출신의 수많은 해적들이 활동하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들을 약탈하여 악명을 떨쳤다.
단명한 공화정이 폐지된 이후 왕정이 복고되었으나, 전제군주정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또한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로마 교황의 간섭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뜸해졌고, 권리장전 등 국왕의 권력을 제약하고 의회의 힘을 강화하는 법들이 연이어 통과되며 이후 영국은 의회제도와 입헌군주정에 기반한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한편 1660년에는 왕립위원회가 창설되며 과학계에 대한 후원이 대폭 증가하였고,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해군력이 크게 증강되었으며 해외 식민지 탐사에 눈을 뜨게 되며 북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에 대대적인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영국은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 논쟁은 영국의 해외 군사 배치의 일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둘러쌌다.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2010년에 연립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막대한 양의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 투표에서 55.3%의 주민들이 독립을 거부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2016년에는 약 51.9%의 영국 국민들이 유럽 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2020년 1월 31일까지만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았고, 이후에는 유럽과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코로나19 범유행은 2020년과 2021년에 영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교육에 큰 지장을 초래했으며,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9월 8일,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오래 재위한 영국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왕 사후, 그녀의 장남인 웨일스 왕자 찰스는 찰스 3세로 영국 왕좌에 올랐다.
종교
영국 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그리스도교 종파는 모두 교파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대 규모의 종파 분리는 16세기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의 절대권력에 반기를 들면서 일어났다. 로마 교황청과의 이같은 결별로 신교 교리들이 생겨났고 급기야는 영국국교회가 탄생했는데, 이는 현재도 잉글랜드의 국교로서 그 신자수는 영국 전체 그리스도교 신자수의 약 3/5을 차지한다. 기타 신교단체로는 침례교, 조합교회, 프렌드파(퀘이커교), 감리교,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등이 있다. 가톨릭 신자의 수는 전체인구의 1/11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신교도와 구교도가 정치적·종교적으로 반목하고 있다.
1290년 브리튼에서 추방된 유대교인들은 17세기에 첫 유대교 지역사회를 런던에 형성했고, 현재 많은 도시에 상당수의 유대교인들이 있다(유대인). 20세기에 해외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영국에 다양한 동양종교들을 전파시켰는데, 이들 동양종교의 신전은 거의 모두 대도시나 대학가에 밀집되어 있다.
종교를 가진 국민의 절대다수가 기독교도이고, 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이다. 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대략 1,400여 년 전부터 이미 브리튼 섬에 전래되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20세기 들어서 이미 교회 참석율은 급격히 떨어졌으며 대부분 무슬림들로 구성된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쏟아져들어오면서 영국 내부의 종교 분포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18세기까지만 하여도 완벽한 기독교 국가였던 데에 반하여, 현대에 들어서는 다종교 국가, 혹은 세속국가, 혹은 탈기독교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2001년의 조사 결과, 영국인의 71.6%가 자신들을 기독교도라고 밝혔으며 2.8%의 무슬림, 1.0%의 힌두교도, 0.6%의 시크교도, 0.5%의 유대교도, 0.3%의 불교도, 기타 종교 0.3% 정도가 그 뒤를 이었다. 대략 15% 정도의 사람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고 밝혔으며, 7% 정도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한편 기독교도 비율에 비하여 교회 참석률은 극히 저조하여서,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만이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며 기독교도 비율은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1년에는 10년 만에 12%p 정도나 기독교도 비율이 하락하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무슬림의 비율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서, 매년 약 5%씩 급격한 증가세를 겪고 있으며 2001년에는 16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반하여 2011년에는 270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며 영국에서 2번째로 거대한 종교로 뛰어올랐다.
한편 기독교의 경우에는, 영국 성공회가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9%, 그 외에도 동방정교, 개신교 등의 종교들이 약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며 18세와 24세 사이의 젊은 층의 71%가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밝혔다. 영국 성공회는 영국에서 발원한 기독교 분파로, 영국 의회에도 대표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국왕이 최고 권위자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스코틀랜드 국교회가 따로 있으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한편 영국 국왕은 무조건적으로 성공회 신자여야 하며, 즉위할 때에도 ‘신교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선서해야만 한다. 웨일스와 아일랜드에도 각각 국교회가 있었으나, 웨일스는 1920년에 국교회가 해체되었고 아일랜드는 그보다 이른 1870년에 해체되었다.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
영국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영국의 국교이기도 하다.
흔히 성공회(Anglican)를 영국 국교 또는 영국국교회라고 하는데 영국국교회 또는 영국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말한다. 영국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었다. 전세계 성공회(Anglican Church 또는 Episcopal Church)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상통하는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모태다.
로마 가톨릭교회:
영국 기독교인들의 소수를 차지하며 영국교회와 아일랜드 교회가 휘트비 회의로 합병된 5세기부터 영국 종교개혁 이전까지 영국 교회를 지배하였다.
개신교:
역사적으로 장로교회(스코틀랜드 종교개혁으로 형성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교다.), 감리교, URC(United Reformed & Methodist Church) 등이 있다.
영국과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해방 이전
영국과 한국의 관계는 1845년 영국 군함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그 뒤 1882년 4월 청나라의 중계로 영국의 G. O. 윌스 제독과 한국 정부 사이에 조·영조약이 체결되었고, 1883년 11월에는 청나라의 중계 없이 직접 한국과 맺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이 그전의 조약을 대체했다. 영국은 1885년 3월에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거문도를 발진기지로 점령했다가 조선 정부의 항의와 영국·러시아 관계의 정상화로 1887년 2월에 철수했다. 양국간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영국은 특히 광산채굴권을 포함하여 각종 이권의 획득에 힘쓰다가 1930년대에 이르러 일본인에 의해 한국에서 밀려났다.
한국에 최초(1865. 9. 13)로 들어온 영국인은 스코틀랜드 출신 성공회 목사 R. J. 토머스였는데, 그는 186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號)를 타고 다시 한국에 도착했다가 다른 일행과 함께 살해당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관한 책을 쓰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영국인은 스코틀랜드 장로회 선교사 J. 로스 목사였다. 그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개신교 성서인 <로스 번역본(Ross Version)>을 간행했으며, 그의 세례를 받은 한국인 서상륜은 황해도 장연군 송천에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영국인이 한국에서 발행한 신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서울 프레스>가 있다.
해방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영국·소련의 3상회담에서 영국은 한반도 신탁통치안에 찬성했으나, 1949년에 대한민국의 설립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영국 내의 반대여론이 있었음에도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군대를 한국에 파병했다. 영국은 한국 단독수교국이다. 1949년 1월 양국간에 수교합의가 이루어진 뒤 같은 해 3월에 주한영국대사관이, 1950년 2월에 주영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다.
1986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고, 1986년 5월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한국을 답방했다. 1989년 11월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고, 1992년 11월에는 에드워드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황태자비 내외가 방한했다. 이후 1995년 1월 김영삼 대통령,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다.
1999년 4월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1883년 한국과 영국이 한영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래 영국의 국가 원수로서는 첫 방한이었다. 방한 기간 동안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하고 한국 국민과 교류하는 일정을 가졌다. 특히 방한 기간중인 4월 21일 73세 생일을 맞아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 한국식으로 차린 성대한 생일상을 대접받고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2010년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으며 2013년 11월에는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 및 투자 규모를 65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하는 한·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17년 3월 브렉시트 이전까지, 영국은 EU 소속국가로 한국은 한-EU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혜택을 받고 있었다. 영국의 EU 탈퇴협상 이후로는 새롭게 추진될 한-영 FTA에 따라 양국의 교역 추세는 달라질 전망이다. 한국의 대영국 주요 수출품은 해양구조물, 승용차, 선박, 항공기부품, 자동차부품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원유, 승용차, 그림, 의약품, 백금 등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영국 수출액은 62억 8,840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52억 1,231만 달러이다.
양국간에는 항공협정(1960. 5), 사증면제협정(1969. 12), 투자증진 및 보호협정(1976. 3), 이중과제 방지협정(1978. 5), 문화협정(1982. 7), 과학기술협력협정(1985. 6), 원자력협력협정(1991. 11), 사회보장협정(2000. 8), 에너지 기술협력 양해각서(2012. 5) 등의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1983년에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기념사업회가 구성되었으며, 학술 심포지엄과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가 양국에서 열렸다. 양국간에는 친선의원협회·민간친선협회·한영경제협력위원회·대한무역자문위원회 등 각종 단체가 설립되어 있다. 런던대학교·셰필드대학교·헐대학교에 한국학 연구과정이 개설되어 있고, 더럼대학교·케임브리지대학교 등에서는 한국 음악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의 공공기록보관소(Public Record Office)에는 6·25전쟁 관련 자료들을 포함해 한국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대영박물관에는 그림, 도기, 칠기, 불교조각, 철제 거울, 철제 머리 핀, 선사시대 유물, 옥, 철제 골동품 등과 불경 및 훈민정음에 관한 옛날 전적 등 한국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2021년 기준 영국에는 3만 6,690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4,392명의 영국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