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위치: 중앙아메리카 남부
인구: 5,212,173명 (2023년 추계)
수도: 산호세
면적: 51,10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코스타리카 공화국 (Republic of Costa Rica)
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백인(94%), 흑인(3%),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 에스파냐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로마가톨릭(76%), 개신교(14%)
화폐: 코스타리카 콜론 (₡)
국화: 카틀레야
대륙: 남아메리카
국가번호: 506
GDP: USD 61,287,000,000
인구밀도: 99명/㎢
전압: 110V/ 60Hz
도메인: .cr
코스타리카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 교류·교민 현황
요약
아메리카의 국가. 수도는 산호세이며 남동쪽으로 파나마, 남서 해안선이 태평양에 면해 있다. 화산지대를 형성하여 인구집중지역인 센트랄 계곡도 활화산 지대로 주기적으로 지진이 일어난다. 코스타리카는 커피와 바나나 수출을 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1인당 GDP도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수도는 산호세이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니카라과와 경계를 이루며, 300km의 북동 해안선이 카리브 해에 맞닿아 있다. 남동쪽으로 파나마에 접해 있고, 1,015km에 이르는 남서 해안선이 태평양에 면해 있다.
자연환경
태평양 연안의 너비가 좁은 지역으로 중앙 고지대 쪽으로 급하게 융기한다. 국토의 뼈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험한 고지대는 넓은 대서양 쪽 카리브 해 평원으로 연결되면서 완만하게 낮아진다. 태평양 연안은 저지대로서 카리브 해안처럼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국토의 약 1/5이 해발 120m 이하이다. 과나카스테 산맥과 센트랄 산맥은 북서부의 니카라과 국경지방에서 코스타리카의 핵심지역인 센트랄 계곡까지 계속 이어지는 화산지대를 형성한다. 산간분지인 센트랄 계곡에서 남동쪽으로 융기하는 탈라망카 산맥은 비(非)화산성 산맥으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치리포그란데 산(3,819m)을 포함한다.
지질학적으로 세계에서 화산작용이 가장 활발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지만 북쪽에 있는 몇몇 이웃나라들과는 달리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구집중지역인 센트랄 계곡은 잠재적으로 폭발위험이 있는 활화산 지대로 주기적으로 지진이 일어난다. 1910년 4월 카르타고 부근에서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나 1,7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연평균강우량은 카리브 해 부근의 저지삼림지역과 태평양에 접해 있는 남서부에서 4,500∼5,000㎜를 기록한다.
평균기온은 25℃이다. 북서 태평양을 따라 있는 건조한 대초원지대에서는 연평균강우량이 1,875㎜이며, 1월에는 25㎜만 내린다. 중앙 분지의 온화한 기후는 커피나무 재배에 알맞다. 해발 2,250m 이상 되는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5℃를 넘지 않는다. 열대기후권에 속하기 때문에 동물상이 다양하다. 다양한 종의 곤충·새·파충류 등이 있으며, 북아메리카산 사슴·수달·여우 등과 남아메리카산 원숭이·나무늘보·개미핥기 등 많은 포유동물이 서식한다. 대체로 천연자원이 부족한 편이지만 금광석과 은광석이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국민
코스타리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센트랄 계곡은 생활풍습이나 혈통에 있어서 스페인적인 특성이 두드러진 곳이다.
인구의 약 1/12이 태평양 북서부의 과나카스테 지방에 살고 있다. 이 지방 주민은 스페인인·인디언·흑인 등의 혼혈종족이다. 이들은 명목상으로만 로마 가톨릭교를 신봉한다. 카리브 해 동부 저지대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 특히 많다. 이들은 철도를 건설하고 바나나를 재배하기 위해 서인도 제도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후손이다. 대부분 스페인어와 영어의 자메이카식 방언을 사용하며, 종교는 개신교가 가장 우세하다.
남쪽 태평양 해안과 북부 저지대의 일부인 산카를로스 평원은 언어 및 종교 분포가 일정하지 않다. 수천 명의 인디언이 국토 남단에 살고 있다. 2023년 추계인구는 521만 명이며, 전체 인구의 79%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고 15세 이하의 인구는 22%에 이른다.
언어
공용어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소수 언어가 된다. 스페인어 사용자의 다수는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 지역에 있다. 멕시코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스페인어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등이다.
문화
코스타리카에서는 태평양 북서부에서 만들어진 커다란 상,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소형 석조 부조, 작은 금제품 등을 포함하여 신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예술품이 풍부하게 발견된다. 산호세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견본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 방면에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1919∼58년 호아킨 가르시아 몬헤가 산호세에서 편집한 잡지 〈레페르토리오 아메리카노 El Repertorio Americano〉는 지적·문학적 가치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로베르토 브레네스 메센과 리카르도 페르난데스 과르디아는 교육과 역사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소설가 파비안 도블레스는 사회적 항거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19, 20세기의 회화 및 데생이 산호세에 있는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다.
역사
코스타리카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1502년 지금의 리몬(푸에르토리몬)에 상륙했다. 당시 이곳에는 보루카·카리브·초로테가·코로비시·나우아 등 소규모의 독립적인 인디언 부족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은 쉽게 점령되지 않았으며, 스페인인들이 영구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거의 60년이나 걸렸다. 코스타리카는 매우 천천히 발전했다. 원주민 노동력이 부족하여 격리된 농장들이 소규모로 만들어졌다.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귀족제도는 발달하지 못했다. 가난하고 광물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스페인 왕은 코스타리카를 소홀히 다루었다. 18세기말 스페인이 다른 중앙 아메리카 식민지를 인텐덴시아(intendencias)로 승격시켰을 때 코스타리카는 니카라과에 복속되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코스타리카는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단명한 멕시코 제국에 합병되었다. 1823년에는 중앙 아메리카 연방의 창설을 도왔으나 다른 네 나라 사이의 불화로 1838년 관계를 단절했다.
이즈음 코스타리카의 고립주의가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19세기 코스타리카의 경제는 커피 수출에 많은 힘을 입었다. 19세기말 카르타고와 리몬을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그때까지 바나나 재배에만 사용되었던 토지들이 개발되었다. 1886년 의무교육이 시작되었으며 1871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1890년 호세 호아킨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 선거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자유롭고 깨끗하게 치러진 선거로서, 민주주의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코스타리카는 이 선거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명해졌다.
1948년 혁명이 일어났으나 1917년에 일어났던 혁명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했다. 1949년 군대는 축출되고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평화상태를 유지했으며, 1980, 1990년대에는 이웃하는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사이의 내전을 중재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런 노력으로 1987년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종교
주민들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다. 코스타리카에서 개신교도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복음주의적 개신교 활동이 활발하다. 기독교 72.6%[1] 무종교 27% 기타 종교 0.4%
코스타리카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코스타리카와 한국은 1962년 8월 15일 국교를 수립했다. 1974년 9월 주코스타리카 상주대사관이 개설되었고, 1982년 11월에는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1993년 이후,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관은 예산 문제로 인해 잠정 폐쇄되었다가, 2002년 3월 재개설되었다. 북한과는 1974년 2월 10일 외교를 수립했으나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이후 1983년 12월 7일 단교했다.
정상외교는 1981년 로드리고 카라조(Rodrigo Carazo), 1985년 루이스 몽헤 대통령, 2001년 미구엘 로드리게즈 대통령, 2012년 로라 친칠라 대통령, 2016년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대통령이 방한하여 회담을 나눈 바 있고, 한국에서는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여 당시 아벨 파체코 대통령과 회담을 나누었다. 코스타리카는 수교 이후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기반으로 우호 협력 관계를 쌓아오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과 코스타리카의 교역은 1970년대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점차 증가해 1980년 5백만 불 규모를 달성했고, 1990년대에는 1억불 이상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대코스타리카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인쇄회로, 전자제품, 철강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컴퓨터, 반도체, 의료기기, 커피, 파인애플 등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대코스타리카 수출액은 1억 9,126만 달러, 수입액은 4억 2,095만 달러이다. 양국 간에는 문화협정(1966. 7), 무역협정(1974. 3), 과학기술협력협정(1979. 8), 투자보장협정(2000. 8), 봉사단파견협정(2007. 5) 등이 체결되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양국 간에는 문화 예술 분야의 다양한 교류가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은 2012년 개최된 코스타리카 국제예술제 주빈국으로 참가하여 한국의 전통 및 현대 문화를 선보였다. 코스타리카에서는 한국드라마와 한국영화, K-POP 등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UNA대학교와 국립코스타리카대학, 국립기술대학(UTN)에서는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코스타리카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405명이며, 2021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코스타리카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6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