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기(氣)
글; 무애(한국선도학회장)
우리는 각 민족의 전통음악이 기공과 깊은 관련 속에서 발생되고, 발전되어 왔음을 이해하고 주목해야 한다. 고대의 수행자들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소리의 연관성에 관한 일련의 법칙을 발견해냈다. 자연은 음(音)의 객관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한 사람들은 특수한 소리,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표현물들을 조정할 수 있다.
모든 민족의 민요(民謠)는 자연력에 대한 주문(呪文)과 일정한 연관을 갖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빗소리와 바람소리의 효과음으로 된 의례(儀禮)를 행한다고 한다. 위대한 인도 음악가였던 탄센(Tan Sen)은 노래의 주력(呪力)에 의해 불을 끌 수 있었다.
찰스 켈로그(Charls Kellogg)도 1926년 뉴욕 공연에서 소리의 진동효과에 의해 불을 끄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듯이 소리굽쇠를 활줄로 빠르고 크게 그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노란 불꽃이 2피트 정도 솟아오르더니 텅 빈 개스 튜브 속으로 튀어올랐으며, 탁탁 튀는 푸른 불꽃으로 되었다. 또 한 번 활줄을 그으면서 날카로운 진동소리가 나자 그에 의해 불이 꺼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음악이 아름다움(美)의 정보 뿐 아니라, 일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수단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의 유명한 음악은 대부분 구도자들에 의해 작곡되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음악가(音樂家)를 ‘바가바타(bhagavathar)’라고 하는데, 이는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음악가인 왕산악(王山嶽), 우륵(于勒), 백결(百結) 선생 등도 모두 선가(仙家)의 수행을 한 분들로 알려져 있다. 왕산악이 거문고로 연주를 하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일화나, 신라의 유명한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는 모두 우리의 전통음악이 기공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남방선도인 화랑도는 음악을 중요한 수행방법으로 크게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양의 위대한 종교음악은 그것이 인체 내의 신비한 핵의 중심(차크라, 竅)을 일깨워 일시적인 진동(振動)을 일으킴으로 해서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한 희열의 순간에 명상자에게는 자신의 근원적 신성(神性)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
20세기의 위대한 요기 요가난다(Yogananda)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전통음악은 종교, 그리고 수행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을 통해 그 공간에 에너지장을 만드는 음악회는 모두 -궁중음악회에서 거리의 음악회까지- 효과적인 정신수련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정신집중이 가능하게 하며, 또 근원적 사고와 소리에 깊이 몰입하게 해준다. 인간 자체도 창조적인 음(音, 정보)의 한 표현이기 때문에, 소리는 그에게 직접적이고도 유력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의 바탕인 옥타브의 7개 기본음은 고대인도의 신화(神話)에서 색채와 짐승의 음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즉, 도(Do)는 초록색과 공작(孔雀) 새에 상응된다. 레(Re)는 붉은색과 종달새에 상응되고, 미(Mi)는 금색과 양(羊)에, 파(Fa)는 노르스름한 흰색과 왜가리에, 솔(Sol)은 검은색과 나이팅게일 새에, 라(La)는 노란색과 말(馬)에, 시(Si)는 모든 색채 배합과 코끼리(象)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전통음악의 오음(五音) 역시 기에 연관되어 있다. 즉,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는 각각 오행에 상응되는 음(音)이다.
그리고 리듬의 기원 역시 인간의 동작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음악적 리듬의 기원은 우주의 운동에 연관되어 있다. 소우주인 인간의 모든 동작, 운동은 결국 우주적 운동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여러 전통음악 중에 특히 우리 국악은 기공수행과 더 깊은 관련이 있으며, 비할 바 없는 우수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세계 최대의 음역으로 성악가들에게 경이의 대상인 판소리의 비밀은 무엇일까? 판소리의 창법(唱法)은 기공의 호흡 수련법에서 나온 것이다. 판소리의 발성법과 서양의 벨칸토 창법을 비교연구한 김기영(金基鈴) 교수(연세대 의대 이비인후과)에 의하면 서양창법에 없는 ‘단전호흡이 바로 판소리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판소리 가수의 폐활량은 남자가 4200cc, 여자가 2600cc 내외이며, 음성 지속시간은 남자가 30초, 여자가 20초 내외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단전호흡을 해야만 가능한 것으로 실험결과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서양음악은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의 구별이 있으나, 판소리는 한 사람이 모든 음역을 담당하는 만큼 자질도 비할 바 없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전호흡과 같은 힘든 수련을 요구하는 판소리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극음악(劇音樂)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 음악이 장차 미래의 세계 음악에 그 바탕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견도 있다. 아래는 미래 음악을 예견한 김준원 선생(한울슬기회 큰스승)의 말이다.
“우리 음악이 서양음악과 크게 다른 점은 끝이 흔들리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음의 길이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게 길이를 조절할 수 있으면서도, 지휘자 없이 평등하고 조화롭게 합창이나 합주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건설하려는 자가 있다면 이 음악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