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원 제1권 - 제1장 하늘, 그대를 저주(詛呪)하겠소! -2
구주(九州)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경(勝景). 그것은 월광(月光) 속
으로 장엄히 솟아오른 동악(東嶽) 태산(泰山)의 기암거봉(奇岩巨
峯)이리라.
대종(岱宗). 태산은 대종이라고 불린다. 태산은 제(齊)와 노(魯)
를 가르고 있다. 노(魯)는 공자의 고향이 아닌가! 태산 아래 공자
묘(孔子廟)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태산(泰山) 남천문(南天門) 근처. 오랫동안 관부(官府)의 관리가
없었던 탓에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공자묘 하나가 서 있다. 바로
그곳에 천하에서 가장 천(賤)한 사람들 사오십 명이 모여 살며 잡
초 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태산(泰山) 행자방(行者幇).
사람들은 그곳을 행자방이라고 부른다.
노창기(老娼妓)들, 맹인(盲人), 안마사들, 불구(不具)에 오갈 곳
없는 고독한 사람들, 버림받은 아이들…….
가진 것은 하나도 없는, 아니 힘을 써서 지켜야 할 것이라곤 오직
허기진 창자뿐인 사람들이 거기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밤안개가 유난히도 짙을 때였다.
두우-두두-, 한 대의 사두마차가 남천문(南天門) 쪽에서 공자묘
쪽으로 들이닥쳤다.
산의 유적(幽寂)함이 말발굽 소리로 인해 깨어지자 더위를 피해
밖에 나와 모깃불을 피워 놓고 모여 떠들던 걸인들의 시선은 자연
히 마차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두터운 휘장으로 차상(車廂)을 가린 사두마차! 마부석에는 얼굴을
커다란 죽자(竹子:죽립)로 가린 청년 마부가 앉아 있었다.
걸인들은 그를 보고 모두 활짝 웃는다.
"헤헤, 어느 종자(種子)가 밤잠을 깨우는가 했더니 떠돌이 중의
떠돌이 백리웅(百里雄)이로군!"
장군부(蔣軍府)의 요리장이었다가 죄를 짓고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당하는 지독한 형벌)에 처해진 바 있는 구노인(具老人)의 누
런 이가 드러났다.
어디 그뿐이랴?
"낄낄낄, 네가 왔구나."
행자방의 대형(大兄)인 장노육(蔣老六)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장
노육은 웃음이 헤픈 사람이다. 그는 사 년 전,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소년 백리웅을 구한 장본인이었다.
백리웅은 그 뒤 일 년 간 행자방에서 여러 가지 재간을 배웠다.
가무(歌舞), 도박(賭博), 구걸하는 법, 남의 동정을 자아내는 표
정을 짓는 법, 인심 좋은 사람과 성질이 포악한 사람을 가려 손을
내미는 법…….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모
든 방법을 일 년 동안 배운 백리웅은 은자(銀子) 다섯 냥만을 지
닌 채 행자방을 나섰었다. 그리고 지금 마부가 되어 돌아오는 것
이었다.
장노육은 백리웅을 반기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백리웅의 거동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일까? 혹 죄를 짓고 쫓기는 것은 아닐까? 왜 저리 서두를
까?'
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리웅이 제 나이답지 않게 철석간장(鐵石肝臟)을 지니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그런 백리웅이 조급히 행동하고 있으
니 놀랄 수밖에.
히이이-잉-! 사두마차는 공자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장노육을 보고 재빨리 물었다.
"석노(石老) 계십니까?"
"있지. 한데 왜 갑자기 와서는 그를 찾지? 혹 병이라도 났느냐?"
"제가 아픈 것이 아니라, 마차 뒤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유난을 떤 것이로구나. 하긴 네놈은 네 일보다 남의
일에 더 흥분을 하곤 했었지."
장노육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도와줘라!
그것은 그가 자신을 대형(大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묵시의 명령이었다.
밤이 가고 아침이 가기 전, 멀리는 제남부까지 가서 동냥판을 벌
일 거지들이 우르르 달려가 휘장을 들쳤다.
엄살을 잘 떠는 황소석(黃少石). 닭피를 뒤집어 쓰고 중상을 입은
체하며 행인들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가 제일
먼저 탄사를 발했다.
"항아(姮娥)를 훔쳤군? 달(月)에서 실족(失足)한!"
"오오, 이런 절색(絶色)이 있다니……."
"웅은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마부 노릇을 하더니 헤헤, 천하의
미인 하나를 훔쳐 왔구나!"
마차 안,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지
않는가.
세필(細筆)로 그은 아미(蛾眉), 찡그린 단순호치(丹脣浩齒)의 고
운 선, 지분(脂粉)을 약간 발라 미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십칠
세 남짓한 설부화용(雪膚花容)의 미녀. 그녀는 곧 묘내(墓內)로
옮겨졌다.
미광(微光)에 젖은 토실(土室). 백리웅은 두 무릎을 차가운 흙바
닥에 댄 자세로 앞쪽을 보고 있었다.
오 척 단구의 노인 하나가 좌정한 채 이름 모를 여인의 맥(脈)을
집는 중이었다. 노인은 맹인이었다.
태산석의(泰山石醫).
이십 년 전만 해도 그는 산동(山東) 제일의 명의(名醫)였다.
그는 꽤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피(血)를 싫어
하면서도 의원이 되었고, 그 덕에 말년에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피 보기가 싫어 술을 즐겼다. 결국 술에 취한 채 침술(針術)
을 쓰다가 왕후(王侯)의 딸 하나를 맹인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
르고 말았다. 그 죄로 그는 두 눈알을 뽑히는 형벌에 처해졌던 것
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위쪽에서 싹뚝 잘리고
말았다.
"으음, 맥(脈)이 이상하다. 귀식대법(龜息大法)이라는 무공을 사
용하고 있는 듯한데……."
석의는 눈살을 찌푸렸다.
"구할 방도가 없겠습니까?"
백리웅은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몸 안에 사기(邪氣)를 지닌 어떤 것이 있다. 일단 그것을 제거해
야 한다!"
"……."
"옷을 모조리 벗겨라!"
석의는 아주 단호히 말했다.
"오…옷을 벗기라니요?"
백리웅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쯧쯧, 남녀의 예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어서 옷을 벗겨라!"
태산석의의 목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으음…음, 아파……."
가는 신음 소리를 내며 죽은 듯 누워 있는 절색의 미인. 백리웅은
그녀의 숨소리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떠돌이 마부이기는 하나 아직 동정(童貞). 여인을 조금 안다고는
하나, 눈앞에 누운 여인만한 미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백
리웅이기 때문이었다.
"급하네!"
태산석의가 다시 재촉했다.
"하…하는 수 없군요."
백리웅은 여인의 옷고름에 떨리는 손을 갖다 댔다. 여인은 몸에
착 달라붙는 녹삼(綠衫) 차림이었다. 옷이 피에 젖어 살결에 달라
붙는 탓에 옷을 벗겨내기가 꽤나 힘들었다.
하여간 백리웅은 여인의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
터질 듯 풍만한 젖봉우리 두 개, 움푹 들어간 배꼽 하나, 백리웅
으로서는 이제 처음으로 보는 여인의 비소(秘所), 곱게 뻗어 내려
간 허벅지와 미끈한 다리…….
'이를 두고 우물(尤物)이라 하는구나.'
백리웅은 무엇인가 목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어디를 다쳤는지 말해 다오!"
태산석의의 창노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저…젖가슴 가운데 상처가 있습니다. 손바닥 자국인데, 핏빛입니
다."
"역시 혈옥천강수(血玉天 手)라는 파괴수법에 당했군."
"혈옥천강수요?"
"강호의 고수급만이 시전할 수 있는 상승 기공이지."
"으음!"
"훗훗, 또 다른 상처가 있을 테니 잘 찾아보게!"
태산석의는 재차 명했다.
백리웅은 여인의 몸을 세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달의 광휘에 젖고 있는 한 마리 은어(銀魚). 살집이 조금만 더 풍
만해도 미(美)가 깨어지리라. 허리가 조금만 더 가늘어도 너무 연
약하게 보일 것이다.
완전미(完全美). 여인은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깨어질 독존(獨尊)
의 미색을 갖고 있었다.
군살이 없는 아랫배, 배꼽과 회음부(會陰部) 사이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백리웅은 그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말했다.
"복부에 상처가 있는데 그곳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역시… 암기(暗器)에 당한 것이다. 어서 뽑아야 한다!"
"어떻게요?"
"훗훗, 일단 입을 소독해라!"
태산석의는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작은 호로병을 꺼내 백리웅에게
건네주었다.
호로병 안에는 아주 지독한 빼갈(白乾酒)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술로 입 안을 닦아낸 다음, 상처 부위를 빨아내라!"
"입…입으로요?"
백리웅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흡철석(吸鐵石)이 있으면 흡철석으로 빼낼 수 있다. 하나, 그것
이 없는 이상 호흡으로 빨아내는 수밖에 없다."
태산석의는 역시 의원이었다. 그는 백리웅이 남자이고, 다친 여인
이 천하절색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하여간 백리웅의 얼굴은 풀무질되어지는 숯불처럼 달라올랐다.
'구하는 길이 그것뿐이라면…….'
그는 속으로 되뇌이다가 호로병의 마개를 땄다. 지독한 주향(酒
香)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백리웅은 호로병을 기울여 독한 빼갈을 입 안 가득 물고 술기운으
로 입 안을 말끔히 세척한 뒤, 술을 맨땅에 뱉아냈다.
그는 여인의 아랫배에 입술을 갖다 붙였다. 여인의 살갗은 꽤나
차가웠다. 피가 많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백리웅의 입
술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는 난생 처음 입맞춤하는 청년처럼 수줍어하며 상처 부위를 세
게 빨아냈다. 한순간 무엇인가가 입 속으로 빨려들었다.
'역시 석의는 명의다.'
백리웅은 입 안에 여인의 피(鮮血), 그리고 여인의 고운 살을 찢
고 파고들었던 암기 하나를 문 채 입술을 떼어냈다.
"푸우."
그는 입 안에 문 것을 뱉아낸 다음, 다시 술로 입술을 씻어냈다.
땅바닥, 지극히 정교한 암기 하나가 뒹굴었다. 별모양으로 생긴
작은 물체인데 비발의 축소처럼 생긴 것이었다. 그 표면에 만병
(萬兵)이라는 두 글자가 해서로 파여 있었다.
백리웅은 그것을 손에 들고 그 모습을 태산석의에게 아주 세밀히
설명해 주었다.
"역시!"
태산석의의 표정이 전과 달라졌다. 그는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내뱉었다.
"창궁오열사(蒼穹五烈士)에게 당한 것이다!"
"예?"
"혈의맹의 다섯 사자(使者)를 모르느냐?"
석의는 다섯 명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창궁오열사(蒼穹五烈士). 이들은 어떠한 특정인이라기보다 창궁혈
의맹이 갖고 있는 다섯 지위를 말한다. 즉, 대(代)를 이어 물려
줄 수 있는 지위라는 것이다.
창궁오열사는 중원 무림계가 변황(邊荒)의 마도 세력과 싸우기 위
해 형성한 창궁혈의맹의 기둥들이었다.
혈의맹주(血義盟主)! 그만이 다섯 사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한
다.
생사혈판군(生死血判君) 광도옥(曠桃玉).
혈의맹주만이 정체를 알고 있다는 다섯 열사. 이들은 혈의맹주에
게서 독단적으로 살인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들의 활약은 신출귀몰(新出鬼沒)하다 할 수 있었다. 세력을 암
중에 쌓아나가다 그들에게 제거된 거마의 수가 어디 한둘이겠는
가!
그들은 과히 신룡(神龍)이라 불릴 만했다. 강호인들은 그들을 존
경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두려워했다.
태산석의는 천천히 등을 돌려 앉았다. 왜일까? 그는 하나의 돌덩
어리처럼 차가워졌다.
"구해서는 아니 된다!"
"아…아니 되다니요?"
백리웅이 아연해 했다.
"공적(公敵)이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만에 하나, 이 여인을 구
한다면 엄청난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부를 것이다!"
태산석의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그는 지금 한 사람의 의원이
라기보다 백리웅을 보호하려는 다정스런 노인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구하고자 해도 방도가 없다!"
"방도가 없다니? 어인 말씀이십니까?"
"이 여인은 극독(極毒)에 당했다. 이 여인을 구하자면 만독(萬毒)
을 몰아낼 영약이 있어야 한다. 오풍초(烏風草) 정도의 약은 있어
야 하는데 그것은… 적어도 은자 오천 냥은 있어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태산석의는 무자비할 정도로 단호히 말했다.
창궁혈의맹이 제거하려 하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 젊음의 혈기(血氣)와 의협심(義俠心)을 멈춘다는
것은 그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리라.
은자(銀子) 오천 냥.
행자방(行者幇)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 아니겠
는가. 한데, 백리웅은 체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은자 오천 냥… 오풍초(烏風草)."
그는 중얼대며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내라면 꿈에서라도
안고 싶은 절색의 미인. 누가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
가.
물론 백리웅이 그녀의 미색에 취해 이성을 잃은 것은 절대 아니었
다.
"구해야 한다. 꼭……."
그는 중얼거리며 손을 목에 갖다 댔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백리웅의 손에 금사(金絲)에 매달린 홍옥
패(紅玉牌) 하나가 달려 나왔다.
<백리장군부령(百里將軍府令)>
겉면에는 그렇게 양각(陽刻)되어 있었고, 뒷면에는 음각(陰刻)된
글이 있었다.
<사랑하는 웅(雄)아!
폭군 경극제(景極帝)는 대충신(大忠臣)이신 네 아버지를 참수(斬
首)하고 백리가(百里家)의 구족(九族)을 멸하게 했다. 복수심이
일 것이나 아아, 그는 천자(天子)이고 간신들의 거짓 진언에 속아
우리 가문을 멸족하는 것이니 어이하겠느냐?
너만이라도 혈로(血路)를 뚫고 살아남기 바란다.
살게 되면 버려라. 너의 과거를…….>
그런 글이었다. 사 년 전, 조정의 간신배들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
하다가 참수당한 백리광(百里曠) 대장군(大將軍)!
그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리웅은 가문의 혈겁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돌
이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것이라면… 만 냥 가치는 있다.'
백리웅은 그것을 쥐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가면 아니 된다."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가로막은 사람은 태산 행자방의 대형(大兄)인 장노육(張老六)이었
다.
그는 호안(虎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손에는 피에 젖은 소책자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범인이 봐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
는 난해한 암호자(暗號字)가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수록되어 있
었다.
<창궁혈의서(蒼穹血義書)>
겉장에는 정자(正字)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장노육은 그것을 보
이며 차게 내뱉았다.
"자네 마차를 정리해 주려다가… 이 책을 발견했네."
그는 책을 바닥에 내던졌다. 활짝 펼쳐지는 창궁혈의서.
그 안의 암호자(暗號字)는 창궁혈의맹에 비밀입맹(秘密入盟)한 중
원 고수들의 인명(人名)과 지위였다.
"이 책은 천하에서 가장 귀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책이
변황(邊荒)의 세력에 들어가면 중원무림계에 파란이 인다!"
장노육의 목소리는 꽤나 차가웠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
기는 정녕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근처에 괴영(怪影)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이 책 때문인 듯하다. 저 여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구해서는 아
니 될 여인임에 틀림없다!"
"대형(大兄)! 죽어가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사람된 도리이고,
그 도리만은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바로 대형이 제게 가르쳐 주
시지 않으셨습니까? 가진 것은 없어도 곧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요."
백리웅은 반문하며 장노육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정기(正氣)를 가
득 담고 있는 눈빛.
장노육은 그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사라졌던 웃음이 다시금 맴돌았다.
"만에 하나, 네 녀석이 주저앉았다면… 이 죽장(竹杖)에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는 죽장을 쳐든 다음 옆으로 물러났다.
"대형, 감사합니다. 약을 사올 때 술도 사오겠습니다!"
백리웅은 기뻐 말하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장노육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웅(雄), 멋진 녀석이다! 하나, 이 세상은… 너 같은 녀석이 마음
놓고 살기에는 너무도 험하고 옹졸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위기가 지나가면 네게… 세상 사는 법을 자세하게 일러 주겠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중원 제1권 - 제1장 하늘, 그대를 저주(詛呪)하겠소! -3
일다경(一茶頃) 뒤.
"어서 가자!"
히이이-잉-! 백리웅은 마차에서 떼어낸 용아(龍兒)의 등에 올라
말의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기라성(綺羅星)이 펼쳐져 있고 계집의 눈썹처럼 고운 상
현월(上弦月)은 흑운(黑雲)에 가리워 그 그림자만을 살짝 내보이
고 있었다.
히이-잉-! 용아는 달무리 아래를 운진(雲塵)과 함께 달려갔다.
같은 시각, 스으으- 스슷-! 암흑 속을 질풍처럼 내달리는 일단
의 무림인들이 있었다.
"본파(本派) 특유의 천리추종향(千里追踪香) 내음이 저쪽으로 이
어지고 있다."
"어서 가자! 촌각이 급하다!"
휘휙- 휙-!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무리들. 그들은 암흑을 뚫고
공자묘(孔子廟)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경(二更). 백리웅은 제남부(齊南府)에서 가장 거대한 만운대전
방(萬運大錢房)에 있었다.
전방주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그의 손바닥 위에는 귀하디
귀한 천산혈옥(天山血玉)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이것을 일만 냥에 판다면… 노부에게는 정말 많이 남는 장사
가 될 것이오. 하나, 이것은… 멸족당한 백리장군부의 물건이라,
받기가 거북하오."
"주인, 그것은 제가 태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발견한 시신의 품 속
에 있던 것입니다. 주인께서 보도(寶刀)를 써서 글씨를 지우기만
한다면 아무도 그 물건의 내력을 모를 것이니, 처리해 주십시요.
오천 냥만 주시면 됩니다."
백리웅은 조급하게 재촉했다.
오천 냥이나 싸게 팔다니? 탐욕스럽게 생긴 전방 주인은 간사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온갖 생각을 해 보다가는 고개를 끄덕였
다.
'횡재했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꽤나 애를 쓰고 있었
다.
뜨거운 차 한 잔이 식을 시간이 지난 후, 백약상점(百藥商店). 산
동일의(山東一醫)라는 백약노옹이 직접 운영하는 제남 제일의 약
점(藥店)이다.
하수오(何首烏), 산삼(山蔘), 웅담(熊膽), 사향(麝香) 등의 영약
이 고가(高價)로 거래되는 곳으로, 하루종일 문이 열려 있는 곳이
다.
백약노옹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숨어 있는 사람들 말대로 해독약을 찾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속으로 중얼대고 있었다.
그 앞, 죽립을 쓴 젊은이 하나가 노심초사하며 서 있는데, 그는
바로 천산혈옥패로 오천 냥을 취한 백리웅이었다.
"없습니까?"
그가 묻자, 백약노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기는 있소. 하나……."
백약노옹은 말꼬리를 흐리며 뒤쪽을 흘낏 쳐다보았다.
약포 뒤에는 병풍이 하나 있는데 십이폭(十二幅)의 산수화가 그려
져 있는 병풍으로 아주 귀한 것이었다. 병풍은 약향(藥香)에 절어
있었다.
백약노옹은 병풍 쪽을 슬쩍 보다가는 탄식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마치 잠깐 사이 무슨 말이라도 들은 듯.
"있소. 사기를 원한다면… 곧 내다드리리다. 운남성(雲南省)의 오
지(奧地)에서 자란 오풍초(烏風草) 가루 한 봉지를!"
그는 공탁 위에 있는 작은 종을 쳐들었다.
땅그랑- 땅-! 맑은 종소리가 나자 끼이익, 약실(藥室)로 통하는
소문(小門)이 빠끔히 열리며 갈색 단삼을 걸친 십오 세 소년 하나
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사부님?"
갈의(褐衣) 소동(少童)은 백약노옹 밑에서 의학을 배우며 잡일을
거들고 있는 진운(陳雲)이라는 아이였다.
백약노옹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풍초를 내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소동은 날렵한 다람쥐마냥 작은 문 뒤쪽으로 되돌아갔다.
일 각 후, 백리웅은 종이봉지 하나를 품 속 깊이 지닌 채 용아(龍
兒)의 등에 올라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두우-두두-! 용아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 건각(健脚)을 힘차
게 내달렸다. 메마른 땅에서 먼지 구름이 뭉클뭉클 일어났다.
용아가 거리 모퉁이를 돌아 하나의 점으로 화할 때였다.
"쫓자!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스으으- 스슷-, 약점(藥店) 위쪽에서 다섯 그림자가 훌훌 날아
올랐다. 그들은 준마(駿馬)보다도 빠른 경신술(輕身術)을 지니고
있었다.
다섯 사람의 신법은 각기 독특했다. 한 사람은 소림비전(少林秘
傳) 일위도강(一葦渡江)으로 날아올랐다. 그 뒤쪽 사람은 제운종
(蹄雲踪)으로 움직였고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법으로 날아올랐다.
치달리는 말보다도 빠르게 움직여가는 사람들. 천하의 후기지수
(後起之秀) 중 이렇듯 절묘한 경신술을 시전할 사람은 천하에 다
섯 뿐이다.
창궁오열사(蒼穹五烈士). 아아, 바로 창궁오열사가 아니겠는가!
새벽이 좋다. 산중(山中)에서 맞이하는 새벽의 맛은 아침이슬을
밟는 상큼한 느낌일 수도 있고, 모골을 송연케 하는 안개의 느낌
일 수도 있다.
남천문(南天門) 쪽, 어디에선가 화광(火光)이 일고 있었다. 무시
무시한 불길이 십오 장 높이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백리웅은 신분을 상징하던 가보(家寶)를 판 대금으로 오풍초(烏風
草)를 들고 가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행…행자방 쪽이 아닌가?"
그는 깜짝 놀라며 말의 박차를 가했다. 두우-두두-, 용아는 꽤
나 늙은 말이지만, 옥총마(玉總馬)나, 연지마(燕脂馬), 적토마(赤
土馬) 못지않게 빠르게 내달렸다.
히이이-잉-! 말울음 소리는 고고일성(孤高一聲)이 되어 적막산
천(寂寞山川) 멀리 멀리 메아리쳤다.
태산(泰山) 행자방(行者幇). 천하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 천하에
서 가장 다정(多情)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불타고 있었다.
"오오, 이것은 꿈이리라!"
백리웅은 말에서 내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로 앞, 대형(大
兄) 장노육(張老六)의 수급(首級)이 뒹굴고 있었다.
그는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죽었다. 죽기 직전 아주 무서운
것을 본 듯.
태산석의(泰山石醫)의 시체도 있었다. 그는 아랫배에 구멍이 뚫려
창자를 밖으로 쏟아낸 채 뒹굴고 있었다.
피(血)! 피가 꽃처럼 피어나 이십 장 안을 뒤덮고 있었다.
타닥- 탁-, 불에 활활 타던 공자묘 건물은 일시에 우르르 무너
져 내렸다. 살아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백리웅이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오행대진(五行大陣)으로 에워쌉시다!"
"살인 수법은 중원의 것이 아니요. 필경 마접(魔蝶)의 한패가 한
짓이오."
휘휙! 백리웅 뒤쪽에서 다섯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 중 하나는 허
공에서 방향을 꺾으며 백리웅 바로 뒤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등에 장검(長劍)을 비끄러
매고 있었다. 면사를 뚫고 나오는 두 줄기 청망(靑芒)은 가히 번
갯불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백리웅의 어깨를 거머쥐었다.
"혈의맹(血義盟)의 총관(總管) 비천유협(飛天儒俠)에게 기녀 행세
를 하고 접근해 비천유협을 죽이고 창궁혈의서를 훔쳐간 마접(魔
蝶)이란 계집을 보았느냐?"
우두둑, 그는 다짜고짜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마…마접이라니?"
백리웅은 힐끗 뒤쪽을 보았다. 면사 쓴 사람의 어깨 위로 솟아난
검자루가 보인다. 순간!
"너…너희들이 살겁(煞劫)을 일으켰구나!"
백리웅은 혈안(血眼)이 되어 노호(怒咆)를 터뜨렸다.
눈을 부릅뜬 백리웅. 그의 모습은 한 마리 성난 사자와 같았다.
"후훗, 조무라기가 제법 성깔을 부리는군. 사실 네놈에게 물을 말
이 많다. 네놈이 오천 냥으로 오풍초를 산 이유부터 우선 알아야
겠다. 자, 오천 냥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해라!"
면사 쓴 사람은 백리웅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장심(掌心)에
서 진기(眞氣)를 가했다.
찌리리리-릿-, 백리웅의 혈맥 속으로 자전진기(紫電眞氣)가 흘
러들었다.
"크으으-윽-!"
백리웅은 너무나도 아픈 나머지 눈물 한 방울을 떨궈야 했다.
"말해라, 마접을 보았는지!"
면사 쓴 사람이 다시 추궁할 때였다. 휙-휙! 흩어져 사위(四圍)
를 뒤지고 다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 하나가
손바닥을 내밀며 차게 말했다.
"물어보나 마나요. 만병보(萬兵堡)에서 만들어진 성형비도(星形飛
刀)가 저 안에 있었소! 마접의 몸에 박혔던 바로 그것이오!"
그의 손바닥 위에는 백리웅이 여인의 배에서 흡입해 빨아냈던 기
이한 모양의 암기가 떨어져 있었다.
면사 쓴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눈에서 흉광(兇光)을 흘렸다.
"이곳은 필경 혈가람사(血伽藍寺)가 중원에 심어둔 비밀분타(秘密
分舵)였을 것이오!"
"이놈은 변황에서 자금을 받고 중원을 배반한 첩자임에 분명하
오."
"저놈의 눈을 보시오. 미친 눈이 아니요?"
사람들의 입이란 무서운 것이다. 백리웅은 그들의 몇 마디 말에
어처구니없게도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일단 이놈을 총단(總壇)으로 끌고 갑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중요한 것은 뒷수습이 아니겠소?"
"창궁혈의서는 암호로 되어 있는 것이니, 빼앗겼다 해도 지금 당
장 낭패를 보지는 않을 것이오. 어서 맹주께 이 일을 알립시다!"
스슷- 슷-, 다섯 사람은 백리웅을 잡아들고 호선을 그으며 날기
시작했다.
백리웅은 진기에 의해 점혈(點穴)당해 의식을 잃은 채 알지 못하
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노마(老馬) 용아는 백리웅이 잡혀 가자, 분한 듯이 히힝거리며 뒤
쫓았으나 십 리도 못 가 주인의 모습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어디일까? 쏴아아, 냉한천(冷寒泉)에서 길어 온 빙백지수(氷魄之
水)가 뿌려진다.
"깨어나라!"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철실(鐵室) 안.
"푸우!"
찬물을 뒤집어쓰며 잃었던 의식을 되찾는 허름한 옷차림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여섯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창궁혈의맹은 비밀결사(秘密結社)이기 때문에 내부인끼리도 서로
얼굴을 감추며 지낸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변황(邊荒) 무림계
(武林界)의 세력이 수백 년 이래로 가장 막대해졌기 때문이었다.
창궁혈의맹에 든다는 것은 목을 거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변황
과 중원의 싸움에서 변황이 이긴다면 창궁혈의맹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고 말 것이다.
창궁혈의맹을 조직한 광도옥(曠桃玉)은 백도인들의 그런 위험을
감안해 입맹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 주고 있는 것이었
다.
여섯 쌍의 눈은 조롱에 가득 차 있었다. 백리웅(百里雄), 그는 여
섯 명에게는 한 마리의 벌레일 뿐이었다.
백리웅은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점혈당한 탓에 사지(四肢) 중 어
느 것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어이해 양민을 무공으로 학대하느냐? 너…너희들은 천리(天
理)도 모르느냐? 어서 나를 풀어 다오!"
백리웅이 크게 말했다.
"훗훗, 네놈은 천민 차림을 하고 있다. 한데, 오천 냥을 갖고 와
오풍초를 사갔다!"
누군가 냉소치며 캐물었다. 오천 냥이라는 액수, 그것은 천민에게
있어 환상 속의 숫자이다. 그들이 의심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
연한 일이었다.
"마접이 시켜 한 일이 아니냐?"
"마…마접이 누군지도 모른다!"
백리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거금을 어디서 구했느냐?"
"그것은……."
백리웅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처지였다.
자신이 백리장군가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아니 된
다.
백리웅이 머뭇거리자 한 사람이 앞으로 다가섰다.
"역시 이놈은 첩자입니다. 제게 맡겨 주신다면 분근착골(分筋錯
骨)로 고문해 창궁혈의서가 어디에 있는지 즉시 알아내겠습니다!"
아무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백리웅은 아주 간단히 첩자로 낙인
찍히고 만 것이다.
강호(江湖)에 대해서는 일자무학(一字無學)인 백리웅. 그로서는
하늘을 저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면사 쓴 사람은 두 손을 깍지 끼고 차게 웃는다.
"죽는 것이 오히려 편하리라. 훗훗……."
그는 손가락뼈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다가 십지(十指)를 활짝 폈
다.
파팟-팟-! 한순간 백리웅의 옷에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백리웅은 옷에 뚫린 무수한 구멍만큼이나 많은 침(針)에 맞아 흡
사 고슴도치가 된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가마솥으로 들어가 푹
푹 삶아지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차라리 몸이 으스러지면
좋으리라. 무공을 모르는 백리웅에게 분근착골은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말해라, 변황의 첩자. 정녕 혈가람사의 밀정이냐? 창궁혈의서를
훔친 마접을 어디로 데려 갔느냐?"
"크으으, 하…할 말은 없다."
백리웅은 오공(五孔)으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하늘(天), 하늘이 천민(賤民)에게도 있단 말인가?
파팟-팟-팟-! 우두둑-뚝-! 백리웅의 근골(筋骨)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바른 대로 말하면 살 수 있다."
보다 못해 누군가 전음(傳音)으로 충고했다. 그러나 백리웅은 이
미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후였다.
'어차피 나는 사 년 전에 죽은 목숨이었다. 이제는 삶에 대해…
한 가닥의 애착도 없다.'
그의 눈은 서서히 빛을 잃어 갔다. 죽은 눈(死眼). 보라, 백리웅
의 표정이 아주 이상하지 않는가.
그는 히죽 웃고 있었다. 분근착골의 고문 속에서도 웃고 있다니?
"독종(毒種)! 분명 변황의 첩자로 특수한 훈련을 받은 자다. 하
나, 나도 만만치는 않다! 꼭 실토를 시키리라!"
파팟-팟-! 고문하는 사람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우두둑-뚝-! 백리웅의 팔다리가 제멋대로 뒤틀렸다. 인간으로서
는 참지 못할 극형(極刑).
백리웅은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형벌을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악착같이 참아냈다. 목숨이라는 것, 그것이 더러울 때도 있다. 백
리웅은 지금 그것을 알고 목숨을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푸우!"
그는 입 안 가득 고인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다.
"천하독종(天下毒種)!"
"이렇게 입이 무거운 자는 처음 봤소!"
"조급히 결정할 일은 아닌 듯하오. 한 십 일 정도 더 두고 보다가
이자의 처리문제를 결정합시다!"
여섯 사람은 벌레 씹은 표정이 되어 한곳에 모였다. 백리웅의 목
숨은 이제 남의 손에 멋대로 좌지우지될 운명에 처해지고 만 것이
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