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감상글

<히든> 감상평 1.엔딩씬마지막 장면은 혹시 영화의 장면이 아닌 또 다른 테이프인가? <히든>의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때 들었던 첫번째 생각이었다. 나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관객들 대다수가 위와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철저하게 유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히든>이 어떤 방식으로 이런 생각을 유도하는지 알아보자. 2.테이프오프닝 장면에서 영화는 죠르쥬의 집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그렇듯 우리는 <히든>의 첫 컷을 이 씬의 설정샷 정도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컷에서 죠르쥬와 아내의 대화가 시작되고 죠르쥬가 집밖으로 나와서 설정샷이 찍혔을 곳으로 보이는 곳을 확인해보는 옆모습 풀샷이 나왔다가, 죠르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기존의 설정샷으로 다시 컷이 전환된다. 그리고 설정샷 화면이 지글거리더니 화면의 빨리 감기가 시작되고 우리는 이 샷이 죠르쥬와 아내가 티비로 보던 테이프 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소품인 비디오 테이프를 영화의 샷처럼 보여준 것이다. 이 샷은 단순한 설정샷이 아니라 감독이 앞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들의 기초가 되는 장치다.이 장면 이후 아들이 집에 오고 가족이 밥을 먹는 장면, 아들이 수영 강습을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수영장면 이후 장면에서 또 한 번 영화의 오프닝과 똑같은 구도의 설정샷이 등장한다. 시간은 밤이고 퇴근하고 돌아온 듯한 죠르쥬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 장면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괌객들은 이 샷을 보고 또 테이프인가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샷이 테이프인지 그냥 설정샷인지 알려주지 않고 바로 다음 씬으로 넘어간다. 다음 씬도 엄청 오묘하다. 티비 방송을 하는 죠르쥬의 바스트샷이 나온다. 죠르쥬는 방송을 끝맺는 인사말을 하고 카메라는 줌 아웃을 한다.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죠르쥬에게 스탭이 다가와 무언가 말해주고 죠르쥬는 세트장에서 나와 전화를 받는다. 영화는 줌 아웃한 카메라를 패닝하며 샷을 끊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전에 비티오 테이프들을 보여주었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이다. 이번에도 소품인 방송카메라로 찍은 것을 영화의 샷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 장면 이후 어떤 피를 토하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 인서트샷이 나오고 또 한번 죠르쥬 집의 설정샷이 나온다. 아까 영화의 오프닝과 두번째로 등장했던 설정샷과 같은 구도에 밤이고 죠르쥬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 샷에서 또 죠르쥬와 아내의 대화가 시작된다. 두번째로 등장했던 설정샷도 테이프였던 것이다. 영화는 이 이후로 오프닝 같은 구도의 죠르쥬 집 설정샷이 총 두 번 더 나온다. 죠르쥬가 출근하려고 아들과 함께 집에서 나오는 장면과 영화 후반부에 마지드와의 화장실 씬 이후 죠르쥬가 몸이 안좋아 일찍 퇴근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두번의 샷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이 샷이 테이프일까 생각하게 되지만 두샷은 모두 테이프가 아닌 그냥 설정샷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테이프란 장치를 통해서 와이드한 설정샷이 나올때마다 관객들이 이 샷이 테이프인지 의심이 들도록 한다. 어떨 때는 설정샷이고 어떨 때는 테이프다. 영화의 엔딩장면의 샷은 엔딩 포함해서 두번 등장하는데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죠르쥬가 아들을 태우러 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 시작의 설정샷이 엔딩장면과 똑같은 구도인데 이 장면에서는 아들이 건물에서 나오고 아빠차로 이동하는것을 카메라가 달리로 따라가면 테이프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엔딩샷에서는 아들이 나오고 마지드의 아들도 등장하더니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데 영화는 대화 내용을 들려주지 않고 와이드한 설정샷을 유지한채 계속 이 장면을 보여주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온다. 배경은 다르지만 오프닝과 일종의 수미상관이다. 그리고 영화를 처음부터 계속 봐온 우리들은 감독이 일반적인 설정샷, 알고보니 테이프였던 설정샷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계속 관객들을 속여온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마지막도 테이프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3.테이프의 의미와 죠르쥬의 심리 죠르쥬는 어릴 때 마지드와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듯이 말한다. 마지드의 자살 이후에 아내와 대화할 때는 욕설을 섞어가며 수십년 전 일 가지고 테이프를 보내고 자살을 한다는 둥 마지드를 욕한다. 겉으로는 어릴 때 마지드를 음해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잊지 못하고 있고 본인의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속으로 계속 이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는 죠르쥬의 죄책감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4.테이프를 보낸 범인은 누구인가? 영화는 범인의 존재 뿐만 아니라 아내의 불륜에 대한 사실관계 그리고 죠르쥬 아들과 마지드 아들의 관계(마지막 엔딩씬에서 둘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중상모략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같은 학교 학생이고 친구라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지) 등등 많은 사실들을 무언가 숨겨진 것들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범인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고 테이프는 단순히 감독이 죠르쥬의 죄책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한 것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반복되는 테이프,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드러나는 죠르쥬의 위선들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기 때문에 단순히 범인을 밝혀내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노리는 후더닛 장르의 탈만 쓴 채 그 카타르시스를 비껴간 것이지 감독이 범인의 정체는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테이프를 보낸 범인은 죠르쥬 그 자신이다. 완전 어릴 때의 사소한 일이라고 죠르쥬는 말하고 다니지만 마음 깊숙하게 마지드를 잊지 못하고 있었고 마지드에 대한 죄책감이 테이프로 본인도 모르게 드러나는 것이다. 마지드의 자살로 없어질 것 같았던 죄책감은 결국 없어지지 않았고 이를보여주는 것이 묘한 엔딩씬이다. 어쩌면 마지드 아들의 존재도 죠르쥬의 죄책감이 없어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감독의 카메라와 영화속의테이프를 왔다갔다하는 구조 자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쥬르쥬의 죄책감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드 아들과의 화장실 대화 이후 죠르쥬는 퇴근을 일찍하고 약을 먹고 잠을 자는데 그 다음 장면이 죠르쥬의 꿈으로 추정되는 어릴 적 마지드가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도 와이드한 설정샷 하나로 쭉 보여주는데 이 장면 역시 비디오테이프로 관객들이 충분히 의심할 수 있고 테이프가 마지드의 죄책감을 상징하는 것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이 씬은 설정샷 롱테이크 하나로 보여준게 단순히 우연일까? 또 한가지, 죠르쥬가 마지드의 집으로 처음 갈 때 아파트 복도를 걸어서 마지드의 집 47호에 도착하는 장면. 이 장면은 헨드헬드 시점샷에서 죠르쥬가 프레임 인을 한다. 아파트 복도를 걷다 47호에 도착하는 네번째 테이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헨드헬드 시점샷으로 복도를 겄다 47호 방이 나오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는 죠르쥬가 나오는 영화 장면은 죠르쥬가 프레임 인을 한다는 것이다. 프레임인 전까지는테이프의 구도와 무빙이 사실상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흡사하다. 이것도 단순히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지금까지 얘기해 온 영화의 컨셉을 생각해 봤을 때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죠르쥬가 거짓으로 마지드를 음해해 그를 집에서 쫓아낸 일과 죠르쥬가 테이프로 마지드를 몰아가고 결국 마지드가 자살하게 되는 일이 묘하게도 겹친다.  5. 그 외의 것들 죠르쥬의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잠이 줄었다고 한다. 스쳐지나가지만 죠르쥬와 죠르쥬 엄마의 대화 씬 마지막에 자려고 방을 나가던 죠르쥬가 엄마에게 불꺼드릴까요 물어보는데 엄마가 켜진 상태로 두라고 한다. 엄마는 죠르쥬가 처음 마지드를 언급할 때 마지드를 기억 못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기억하고있었고 좋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생각을 안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죠르쥬가 마지드 이야기를 계속 하자 대화의 주제를 아예 다른 것으로 돌려버린다. 엄마는 어릴 적 마지드 일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 아닐까? 영화 후반부에 죠르쥬가 일찍이 퇴근해 약을 먹고 대낮에 불을 다 끄고 커튼도 철저히 친 채 잠을 자는 장면이 묘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죠르쥬도 앞으로 편히 잠을 못 자게 되지 않을까? 이어지는 마지드가 쫓겨나는 꿈 장면이 나오는 것은우연이 아니다. 죠르쥬는 프랑스인, 마지드는 알제리인. 마지드 부모님에게 일어난 비극 등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이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닐것이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를 영화에 대입해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