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 2-아버지의 눈으로 말씀을 들일 때

[다이페이스]

아버지의 눈으로 말씀을 들을 때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에서 말한다.
   
“눈으로 듣는 법을 배우도록 
저들의 귀를 때려 부셔야 할까?”1

왜 니체는 눈으로 듣는 법을 배우도록 
저들의 귀를 때려 부셔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눈은 듣는 기관이 아니라 보는 기관인데 왜 
<하나님의 얼굴>의 부제는 
‘아버지의 눈으로 성경을 읽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의 눈으로 성경을 들을 때’일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가운데 세우고 
예수에게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했다.

이때 예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다. 
그런데 성경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다’고 했다(요 8:8, 9). 

우리나라 말로는 무엇을 들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영어성경은 ‘they heard Him’이라고 하지 않고 
‘they heard it’이라고 했다.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게 아니라, 
예수께서 땅에 쓰신 글을 들은 것이다. 

성경은 글로 쓰여 있어도 듣는 책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그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사 29:18)이라고 하셨다. 

우상은 보일 뿐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눈으로 성경 책을 읽을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15세기에 그린 다빈치의 그림은 
지금도 볼 수 있지만, 
18세기에 친 베토벤의 피아노 소리는 
들을 길이 없다. 

과거의 그림은 볼 수 있어도 
과거의 소리는 듣지 못한다. 

성경의 글을 듣는 말씀으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의식한다는 뜻이다. 

항상 현재를 사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보아도 듣는 것이다. 

1년 동안 그린 그림을 1분 안에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시간 말씀하신 것을 듣기 위해선 
한 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세상 신은 죽은 신이기 때문에 
정지화상(停止畫像)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소리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동화상(動畫像)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하나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거의 모든 종교는 암송으로 
그 목적을 이루려 한다. 

그 목적이 깨달음이었으면 
암송으로 깨달음에 이르려 하고, 
그 목적이 청정이었으면 
암송으로 청정에 이르려 하고, 
그 목적이 영원한 삶이었으면 
암송으로 영원한 삶에 이르려고 한다. 

그래서 불교인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수천번씩 외우고, 
이슬람은 코란을 암송하지 못한다고 하여 
총으로 쏴 죽이고, 

힌두인들은 경전을 정확히 외우기 위해 
거꾸로 외우기도 하고, 
홀수번째 또는 짝수번째 글자를 외우는 등 
외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왜 성경은 암송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할까? 

암송은 자아를 버리고 복종하는 일이다. 
암송의 핵심은 무심(無心)이다. 

그러나 믿음은 자의식을 가진 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져본 뒤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성경은 암송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 세계의 ‘믿음은 (깨달음에서 나고, 
깨달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롬 10:17)는다. 

성경을 믿기 위해 말씀을 들어야 하지만 
따져봐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믿기 전에 따져봐야 한다.

중국인들은 ‘배운다’는 뜻의 학(學)에서 
아들 자(子)를 빼고 볼 견(見) 자를 넣어 
‘깨달음’을 뜻하는 각(覺)을 만들었다. 
세상의 깨달음은 봄으로 얻는 것이다. 

애굽의 공주는 
아기 모세가 우는 소리를 보았다. 

When she opened it, she saw the child, 
and behold, the boy was crying, (Exd 2:6 KJV, NAS) 

히브리 사상가인 아브라함 헤셀은 
‘그가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고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상 종교에서는 소리도 본다고 한다. 
중생의 소리를 듣는 보살의 이름은 
청세음(聽世音) 보살이 아니라 관세음(觀世音) 보살이다. 

세상 종교인이 소리를 본다고 한다면 
성경 종교인이  글을 듣는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인간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변형이 가능한 물질적 신은 
변질이 가능한 영역인 공간 안에서 
시각적으로 그 뜻을 펴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시간을 타고 
청각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예수 이름을 부른다 할지라도 
그의 신앙이 시각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예수 신앙이 아니다. 

미스테리아 종교는 
시각 종교로서 시각적 신(visual god)을 
가시적 신(visible god)으로 전환하였으며, 

성경 종교는 청각 종교로서 
성경의 예언자들은 가청적 신(Audible God)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준다.  

우리나라에선 태어난 날을 
‘귀빠진 날’이라고 한다. 

인간은 들을 귀가 빠져야 
드디어 태어난다는 뜻이니,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 있는 자를 찾아 호소하지 않으시고 
귀 있는 자들에게 들으라고 호소하셨다(마 11:15 외 10곳). 

본 고로 믿는 자 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시고(요 20:29), 
본 것은 말하지 말라 하셨다(마 8:4). 

성경의 예언자들은 
시각적 형상을 보고 행동한 자들이 아니라 
청각적으로 다가온 말씀을 듣고 행동한 자들이요,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본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을 들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철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철학 책을 경험론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듯이, 
성경 읽기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합리론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비합리적 표현이 나오면 
성경 자체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철학책을 경험론적으로 이해하려면 실망하듯이 
성경을 합리론적으로 이해하려면 실망할 수가 있다. 

성경이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성경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이야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가정은 비상식이 통하는 곳이다. 
사회에선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가정에선 용서를 받고,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가정에선 무상으로 주어진다. 

오직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이 비상식이고도 비합리적인 일이 
성경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성경의 하나님이 나의 친 아버지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 세계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눈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었으나 
듣는 일은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빛보다 먼저 있은 것은 소리였다. 
태초에 모든 만물은 소리에서 탄생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듣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며 
듣기를 멈추는 순간 언어를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은 
입에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듣지 못하면 말을 못한다. 

인생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것도 귀요 
가장 늦게까지 깨어 있는 것도 귀이다. 

의식이 있는지 아닌지는 
귀가 열려있는지 아닌지로 판가름한다. 
귀가 열려 있는한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림은 관객을 기다리지만 
소리는 청자를 찾아간다. 

짐승들은 갑자기 비치는 밝은 빛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지만, 
찾아오는 소리 앞에선 머리를 들고 
귀를 쫑긋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으시고 
소리로 찾아오시는 것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어머니 같은 사랑 때문이요,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 원하시는 
아버지 같은 사랑 때문이다. 

신화의 어떤 신이 인간을 어미처럼 애타게 찾으며 
인간이 머리 들기를 아비처럼 원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신을 애타게 찾지만, 
그들에게 신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물상을 만들어 공간에 두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시간을 타고 흐르는 소리로 인간을 부르신다. 

네 살쯤 먹은 아이와 숨바꼭질하는 아빠는 
벽장 속에 숨어서 아이가 가까이 오면 숨을 죽이고 
아이가 멀리 가려고 하면 휘파람을 불어 아이를 부른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아이는 결국 휘파람 부는 아빠를 찾아내고야 만다. 

신화의 어떤 신이 인간에게 발견되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는가? 

<하나님의 얼굴>은 
인간을 부르시는 소리를 눈으로 듣고 쓴 
아들의 고백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