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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예수의 체포와 안나스의 심문 및 베드로의 예수 부인과 빌라도의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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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제 18-21장까지 이어지는 요한복음 종결부의 일련 기사의 시작 부분이다.
이 종결부는 본래 성자 곧 제 2위 하나님이셨으나 태초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의 법에 따라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우리의 절대 유일의 구속주이신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최종 성취하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주의 부활 및 부활 이후 잠시 더 세상에 머무시면서 이제 구약을 성취 확장한 신약 복음의 실체인 구속 사역이 성취된 시점에서 다시 향후 세상 끝 날까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택한 자가 회개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며 구원 얻을 때까지 계속 진행될 구속사(救贖史)의 전개에 임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위로와 약속을 주신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 18,19장이 예수의 체포와 심문, 십자가 수난과 장례로 이어지는 예수의 구속 사역의 성취 과정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제 20,21 두 장은 십자가 수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당신의 부활의 확실성을 제자들에게 증거하시며 또한 당신이 이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을 최종 실현시키시려 다시 재림하실 세상 끝날까지 이 땅에 남은 성도들의 신앙의 요람이 될 교회를 세울 사명을 맡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와 목양(牧羊) 소명의 수여와 위로를 주시는 등 승천 직전에 주께서 행하신 여러 사역을 증거하고 있다.
이런 문맥 하에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 중 예수의 체포와 수난이 숨막히게 진행된 바로 그날인 금요일의 새벽과 오전 중에 있었던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인한 예수의 체포와 당시 대제사장이던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의 심문, 그리고 베드로의 예수 부인과 당시 유대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1차 심문에 대해 보도하는 본장의 각 문단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1절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대인들과 로마의 군인들에게 체포되신 사실을 기록한다. 한편 다른 복음서보다 상세히 기록된 본문의 주님의 체포 기사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당신의 전 우주적인 전지전능한 주권을 스스로 인지하시고 또 이를 분명히 밝히시면서도 스스로 그리고 순순히 체포당한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그 체포와 십자가 처형 등 일련의 주의 수난이 단순히 정치, 종교적 수난이 아니라 성육신(成肉身)하신 제 2위 성자 하나님만이 수행하실 수 있는 택한 죄인 모두를 구원할 구속 사역을 위한 자발적(自發的)인 수난이었음의 증거이다.
이는 대적자들이 예수 앞에서 엎드러진 사실(6절)과 베드로가 검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Malthus)의 귀를 자르고 또 그를 해하려 할 때 예수께서 이를 만류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라고 하신 사실이 증거한다. 또한 주님께서 대적자들에게 자신은 체포하되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자들임을 아셨으면서도 그 제자들은 놓아주기를 요구하신 사실에서 우리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는가를 발견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주님의 구속 사역이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희생의 결과였음을 깨달아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12-27절은 예수께서 당시 대제사장이던 가야바에게로 끌려가던 중 가야바 이전의 대제사장으로서 실질적 권세를 갖고 있었으며 또한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Annas)의 집에서 그의 심문을 받은 사실과 거듭되는 베드로의 예수 부인(否認) 사건을 보도한다. 안나스에게서 심문받는 동안 예수께서는 시종 의연한 태도로써 자신이 유대인들 앞에 드러내어 놓고 회당과 성전 등에서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가르침을 믿지 아니하고 배척한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완악함을 꼬집기까지 하셨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안나스의 예수에 대한 입장은 진리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속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그의 사위 가야바의 입장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에 대한 구속사적 교훈은 가야바의 심문 기사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마 26장, 눅 14장의 구속사적 개관을 참조하라. 그리고 여기서는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에서 발견하는 바 구속사적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전에 이에 대해 말씀하셨던 주님의 예언(13:38)과 이 사건 뒤에 다시 주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체험한 이후의 베드로 및 제자들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먼저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을 미리 예언하셨다는 사실은 앞으로 닥칠 당신의 십자가 수난(crucifxion) 사건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제반 사실을 세세히 다 알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는 결국 다시금 주님의 십자가 수난 사역은 주께서 힘이 없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으시면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당하신 구속 사역으로서 실로 우리가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분임을 중거해 준다. 둘째, 주님이 그토록 크신 은혜로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또 용기 있게 자발적으로 수난 당하셨지만 제자들은 곧 주님을 버리고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였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현실이 유독 베드로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구약 광야 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내내 그러하였으며, 오늘날 바로 나 자신도 수없이 주님을 부인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부인하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은 그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가! 세 번째, 주님이 베드로의 세 번 부인 등을 예언하신 것은 베드로나 제자들을 원망하거나 수치스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이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고 당신이 부활 승천하셨을 때 비로소 베드로를 일시한 모든 제자들이 이처럼 예수님은 앞일을 다 아셨던 전지전능한 주이시다는 것, 자신들이 주님을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주님의 뒤를 따라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볼 때에 이처럼 나약하던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새 힘을 받아 주님의 사랑과 진리의 복음을 죽음을 각오하고 전했음을 발견한다. 이는 인간은 연약하여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면 그분의 영원한 사랑과 은혜에 의지하여, 그 어떤 죄인도 권능과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구속사적 진리를 반영한다.
끝으로 28-40절에는 예수에 대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심문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인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지상(地上)에 속한 왕국이 아닌 천상(天上)의 왕국의 왕이시며 당신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 이를 위해 당신이 증거하는 진리를 믿고 따르는 자만이 당신의 왕국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담대히 증거하셨다. 이 같은 성자 예수의 직접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기는 커녕 예수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예수를 선뜻 석방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빌라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과 세상을 향한 욕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얼마나 큰 장애가 될 수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자(엡 2:2)인 사탄이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항코자 이렇게 이기심과 정욕으로 가득찬 인간들을 어떠한 술수와 유혹으로 이용하는가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우리도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 위에 바로 서지 않을 때 언제라도 이러한 사탄의 술책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경종이 된다.
또한 이 부분에는 빌라도조차 예수의 무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도 자신이 하신 말씀을 응하기 위하여(32절)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으시는 그리스도의 구속 섭리의 성취를 위한 자발적 순종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와 대비하여 빌라도의 무죄 선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를 죽이기 위해 공분하고 있는 유대인이 급기야는 유월절 특사로 예수 대신에 강도인 바라바를 택한 사실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고‥‥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란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게 된다. 이처럼 예수는 본래 제 2위 하나님이었으나 그의 구속의 대상인 인간으로부터 가장 큰 멸시를 당하는 고난을 받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구속사적 사건을 통하여 사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사악성과 더불어 이러한 인간을 구원 대상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와 그리스도의 회생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의 현 위치가 사탄에게 속해 있는지 아니면 멸시와 천대를 무릅쓰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내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하게 된다.
외울 말씀
내 나라를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예수의 체포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2 〇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베드로의 1차 부인
15 〇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안나스의 심문
19 〇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베드로의 2,3차 부인
25 〇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빌라도의 1차 심문
28 〇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〇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〇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본문 & 자료 노트
주요 주제-18:1-40 예수의 성 고난 주간의 행적
눅 22장 연구 자료 참조
삽화-18:1-40 예수 당시의 예루살렘
요 5장 연구 자료 참조
원어연구-18:6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에페산'으로 나와 있는데 이것은 '떨어지다'(fall)라는 뜻의 동사 '핍토'(rintw)의 부정 과거형에 해당한다. 여기서 부정 과거형이란 1회적인 동작으로 어떤 행위가 끝났음을 나타낸다.
한편 동사 '핍토'는 공중의 물체, 즉 별 따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 외에도 벽 따위가 '무너지다' (마 7:25: 눅 23:30) 또는 '넘어지다'(롬 11:11) 및 나라가 '멸망하다'(계 17:10)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경우 '엎드러지는지라'는 표현은 건물의 벽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거나 높은 곳에 있던 물건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듯 예수를 잡으려고 왔던 무리들이 예수가 의연한 자세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에 당황하여 모두 다 한꺼번에 엎드러진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공동번역은 개역성경의 '물러가서 엎드러지는지라'를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로 옮기고 있다. 이에서 우리는 예수의 위엄과 신적 권위에 무리들이 완전히 압도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말씀 한 마디로도 대적들을 제압하실 수 있었던 예수께서 순순히 그들에게 붙잡히신 것은, 곧 예수께서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기 위해 스스로 자진해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신 것임을 잘 보여 준다.
도표-18:1-18 관련된 주요 인물들
1. 가룟 유다: 예수를 은 삼십에 판 자(요 18:2)
2. 군대, 천부장 하속들: 예수를 잡아 결박한 자(요 18:12)
3. 가야바: 예수의 사형을 권고하던 자(요 18:14)
4. 안나스: 예수를 1차 심문한 자(요 18:19-24)
5. 빌라도: 예수의 2차 심문자, 사형 선고한 자(요 18:29-19:16)
6. 헤롯: 예수를 공식적으로 재판정에서 조롱한 자(눅 23:11)
7. 유대 군중들: 예수의 사형에 동조한 자(요 19:7-16)
8. 구레네 시몬: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자(눅 23:26)
9. 로마 군병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요 19:23,24)
10. 아리마대 요셉: 예수를 무덤에 장사한 자(요 19:38-42)
지도 -18:12-24 가야바 집까지의 경로
역사배경-18:33-40 빌라도의 보고서
예수를 재판하고 십자가형을 언도했던 당시 유대 주재 로마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 A.D. 26-36년)였다. 그런데 이 당시 예수를 재판할 때의 빌라도의 심정과 예수에 대한 그의 소견을 피력한, 소위 '빌라도의 보고서'(A Report of Pilate)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는 성경 외적인 자료로서는 예수 재판 당시의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서 학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보고서의 출처
로마 시대 법정 공문서로서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당시의 전문적인 서기관의 필체로 기록되었다 크기는 60×130cm가량으로 전체 50매로 되어 있으며, 현재 터어키의 성 소피아 사원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실제로 빌라도에 의해서 작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보고서가 당시의 로마 사가(史家)인 발레우스 파테르쿠루스(Valeus Paterqurus)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다. 발레우스가 자신의 역사책에서 전하는 이 보고서의 원명(原名)은 '예수의 체포, 심문과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 있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 Cornelius, A.D.55-117)에 의하면 발레우스는 예수 탄생 당시 19세였으며, 가이사의 친한 친구로서 16년간 로마군의 지휘관으로, 그리고 그 후에는 집정관으로 지낸 인물이라고 한다.
2. 보고서의 주요 내용
이 보고서는 크게 빌라도 자신과 유대 · 지도자들과의 정치적 갈등 관계, 청년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인상, 예수 심문 과정에 대한 자세한 소개, 그리고 예수 십자가 처형과 그의 부활에 대한 빌라도의 부관 '이슬람'의 보고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서 빌라도는 나사렛 청년 예수가 그렇게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이지 않았으며, 때문에 그는 예수를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그는 예수의 위엄 있는 모습에 압도되어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것처럼 두려움으로 사지(四肢)를 떨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교훈은 단순하면서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설교보다 더 힘이 있고 장엄하였다고 한다.
또한 빌라도는 유대 군중들이 얼마나 예수를 추앙하며 따랐는지를 언급하면서 로마 제국도 결국은 예수 종교를 국교(國敎)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리고 예수를 재판할 때 자신은 예수의 무죄함을 알고 그를 풀어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썼으나 유대 민중들의 폭동이 예상되어 어쩔 수 없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고 말한다. 한편 이 보고서에는 빌라도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예수를 못 박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을 한탄하는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예수 부활에 관한 소식을 부관에게 들었을 때 빌라도가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으로 되어 있다.
3. 의의
이 보고서가 실제로 예수 당시 유대 주재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작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이 당시에 얼마나 많이 알려졌으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역사적 사건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반증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삽화 - 18:3, 등과 홰
풍습-18:39 유월절 죄수 석방
본문에는 빌라도가 유월절 죄수 석방의 관례에 따라 백성들에게 예수와 강도 바라바 중 누구를 석방할 것인가에 대해 백성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유월절에 죄수를 석방시켰던 당시의 관례와 본 빌라도의 여기에 나타난 행동이 과연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살펴 본문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명절 특사(特)의 관례
본래 명절을 맞이하여 몇몇 죄수를 석방 조치하였던 관례는 로마의 관습이었다. 그런데 당시 팔레스틴이 로마의 통치 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관습이 다음과 같은 로마의 의도로 인해 준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점령지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로마 제국은 될 수 있는 대로 그 백성들의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하기 로마 총독은 유대에서도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유대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정을 감안하여 다른 점령지와는 달리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종교 양식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의 성전 제의를 존중해 주고, 또 그들의 가장 큰 축일인 유월절에는 죄수도 놓아주었다. 이러한 전례가 유대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로마의 총독은 유월절 절기에 정규적으로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그 죄수가 어떠한 죄를 저질렀든지 간에 죄수 한 명을 석방해 주었다. 결국 이는 유대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로마 제국의 한 회유책에 해당했다.
2. 의의
로마 정부로부터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석방시키도록 승인을 받은 유대인의 명절 특사 관례는 유월절 축제의 의의를 한층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곧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죄수 특사가 유월절 준수의 근본 취지에 맞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기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존중되어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잘 알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함을 알고 자신의 권한으로 충분히 그를 그냥 석방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죄수 석방에 대한 그들의 의사를 물었다. 그것은 또 다른 일면으로 그가 예수가 당시 지도자들의 시기로 인해 붙잡혀 온 자로 알았기 때문에 대신 백성들은 예수를 갈망하여 예수의 석방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의 무죄함을 직접 결정짓도록 하여 석방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약삭빠른 계획은 유대 지도자들의 획책으로 완전히 수포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빌라도의 오류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비록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는 하나 무죄한 자를 공의로 정당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는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불의한 재판을 하였다는 것이다.
18:1-11 체포당하신 예수
지금까지 우리는 본서의 제 1부(1-12장), 2부(13-17장)에 걸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 주는 일곱 가지 표적과 하나님의 아들의 교훈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에 이어 이제 본장에서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본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 3부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수난과 영광을 증거해 준다. 즉, 본장과 19장에서는 수난 주간 중 마지막 금요일에 있은 예수님의 체포, 심문, 죽음당하심 등과 같은 수난 사건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20,21장에서는 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행적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마침내 예수께서 대적들에게 체포당하시므로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실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서의 예수 수난 기사는 공관복음과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며, 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공관복음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으로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의 연약한 인성적 측면을 강조한 반면, 본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구속자로서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인간의 궤계로 인한 패배가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최후 승리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저자 요한이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사실은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동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① 배반자 유다가 이미 알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 즉 자신이 잡히실 곳으로 예수님께서 자진해서 찾아가셨다는 것(1-4절). ② 대적들에게 자신이 '예수'라고 분명히 신분을 밝히신 점(5-9절). ③ 대적들의 체포를 칼을 사용하여 제지하는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점(10,11절) 등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주님은 하나님의 때를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순종하시면서 자발적인 희생의 모본을 보이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대적들에게 체포를 당하시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제자들은 놓아 달라고 요청하신 것(8,9절)은 다시 한번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한편 베드로가 무력으로써 예수 체포를 저지하려 한 행동은 예수께서 행할 십자가 사역의 성격에 대하여 무지한 때문이었다. 물론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충성심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책동에 넘어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마 16:22,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만류한 베드로를 분명 꾸짖으신 것이다(11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지 못한 채 사람의 일만 도모하는 것은 사단의 책략에 넘어가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서 나의 열심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다.
18:1 이 말씀을 하시고. - '이 말씀'이란 17장에 나오는 제자들을 위한 예수의 '대제사장의 기도' (the Prayer of Consecrator)를 말한다. 한편 본절은 문자적으로 '이것들을 말씀하신 후에'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후에'(에이폰)는 분사로서 선행하는 시간 이후'를 강조하는 용법이다(Rienecker). 이러한 표현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예수님의 말씀들과 기도가 끝나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궁극적 목적인 수난 사역에 주의를 집중하려는 요한의 의도를 반영해 준다(Potterie).
제자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 현재의 '와디 싯티마리얌'(Wadi Sitti Maryam)으로서 예루살렘 북쪽에서 시작하여 성전이 있는 언덕을 거쳐 흐르는데, 감람산을 가로질러 사해까지 이르는 하천이다. '기드론'(케드론)의 뜻은 '어두움'으로서 아마도 물의 색깔이 어두운 특성을 반영한 이름인 듯하다. 한편 본문에서 '시내'라는 명칭은 문자적으로 '겨울 시내'(케이말로스)로서 이는 건기인 여름철에는 마르고 우기인 겨울철에만 흐르는 간헐천(Wadi)임을 나타낸다. 이전에 다윗왕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이 시내를 건너갔던 사건을(삼하 15:23) 생각해 볼 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도 굴욕과 고난을 위해 이곳을 건너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한은 마태와 마가가 이곳을 '겟세마네' 라고 구체적으로 밝힌 것에(마 26:36; 막 14:32) 반해 그 이름을 어느 곳에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또한 더 놀라운 것은 공관복음서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비중있게 다루는 사건인 겟세마네의 기도 자체를(마 26:36-46; 막 14:3242; 눅 22:40-46) 과감히 생략한다. 이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가장 가능성있는 해답은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과 관련된 것이다(Morris).즉 요한은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공관복음서가 다루는 사건들을 다시 언급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세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는 사건의 목격자적 증언과 아울러 새로운 관점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려는 신학적 의도를 가진다. 따라서 그는 겟세마네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인간적인 고뇌를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하나님의 아들의 자발적인 순종과 위엄을 강조하는 부분(4-11절)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 마태와(마 26:37) 마가가(막 14:33) 다른 제자들과 구분되는 세 제자들(베드로, 요한, 야고보)이 예수와 보다 가까이 있었음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데 반해, 요한의 관심은 오직 그 동산이 전에 제자들이 자주 모이던 곳으로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되어 있다 (2절). 한편 유대인의 관례와 연관하여 살펴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신 것은 그 밤이 지나게 되면 맞게 되는 유월절 예비일에는 예루살렘의 확장된 도시 경내(순례자들이 많으므로 임시적으로 확장됨)에 있어야만 한다는 규례를 지키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확장된 도시 경내에 예수께서 자주 머무셨던 베다니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겟세마네는 속했기 때문이다(Murray).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를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성부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잔을 마시고(11절) 자기의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이를 위해 성부께 기도하기 위함이었다(요 10:11,15).
18: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 '가끔 모이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라키스 쉬네크데'( )는 부정과거로서 그 이전에도 습관적으로 모이셨음을 의미한다(Robertson). 이 의례적인 모임에 대해 누가는 수난 주간 동안 예수께서 밤에는 감람산으로 가셔서 쉬셨다고 언급하는데(눅 21:37). 누가가 언급하는 감람산이 바로 요한이 말하는 이 '동산'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Morris). 또한 이 동산이 예수의 친구나 친분이 있는 사람의 소유였기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자주 가셔서 머무셨다는 추정도 있다(Meyer, Bernard).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 여기서 '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디두스'는 현재분사로서 유다의 배신행위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과정에 있음을 잘 표현해 준다. 이렇게 유다도 잘 아는 장소가 바로 그 곳이라는 사실을 주님 역시 알고 계셨다. 이로 보아 예수께서는 이 위기를 피할 의도가 전혀 없으셨던 것을 알 수 있다.
18:3 유다가 군대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페이라'는 통상 600명 정도의 병력을 지칭하지만 정황을 고려할 때 훨씬 규모가 작은 인원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Polybius). 하지만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유대 명절 중이라 소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로마당국이 수비대를 대규모로 증강시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Josephus) 통상적인 용법으로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듯하다(Brown, Murray). 또한 12절에 나타나는 대로 이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천부장이요. 로마 당국 자체가 죄인을 호송하는 데에는 과민 반응을 보인 예(例)를 고려할 때(행 21:31, 바울의 체포시에도 천부장이 출동함)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다소 많은 군인들을 보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예수를 적대시하던 유대인들조차도 예수님에 대해 심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 여기서 '하속'(휘페레테스)은 성전이나 산헤드린 공회를 지키며 치안을 유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한편 누가는 대제사장에게 속한 무리들과 장로 등 산헤드린 공회원도 거기에 있었다(눅 22:52)고 한다.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 이때는 유월절 무렵이었으므로 보름달에 가까왔으나 짙은 구름이 끼거나 숲 그늘로 인해 예수를 식별하지 못할 일에 대비해 어둠을 밝힐 등불과 횃불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또한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의 소요를 대비해 무기도 철저히 갖추었다. 공관복음서는 이 무기에 대해 일치하게 '검과 몽치'라고 밝히고 있는데(마 26:47; 막 14:48; 눅 22:52), 이러한 무기의 준비는 예수님 자신의 꾸짖음에서도 나타는 바와 같이(눅 22:52) 예수님을 강도 같은 폭력배로 대하는 것으로 이러한 일 자체가 주님에게는 치욕이었다.
18:4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어둠의 세력이 다가오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계셨던 예수께서는(눅 22:53)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무리들 앞에 담대히 나서심을 통하여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맞이하신다(4-11절).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본문에 서술된 것과 같은 예수님의 전지성(知性)에 대한 증거는 본서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요 1:42,47,48; 5:6; 6:64; 13:1,3; 21:17). 한편 본문에서는 성부의 뜻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순종과 결단이(Hendriksen) 체포하러 오는 무리들의 모든 준비를 무색케 하는 사실을 통하여 반어적 (ironical)으로 묘사된다. 한편 공관복음 기자들이 일관되게 기록하는 배반자 유다의 입맞춤은 (마 26:49; 막 14:45; 눅 22:47)이 시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한데, 요한이 의도적으로 이를 생략한 것은 이후에 전개되는 대로 예수님의 완벽한 상황 제어 능력을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는 위엄과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Morris).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셀코마이'는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엑스'와 '가다'를 뜻하는 '엘코마이'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이 말은 '동산 안쪽에서'(Alford), '동산 밖으로'(Godet) 혹은 '제자들로부터'(Dods) 나아간 것의 묘사로 보는 견해 등이 있으나 확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는 죽음을 타의에 의해서 마지 못해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수용하심으로써 구속사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가 나타나 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주님의 이 질문은 무리들이 찾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몰라서 묻는 물음이 아니다. 이는 이후 전개되는 체포 사건이 군인들의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의도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자발적인 예수님의 행동은 종종 사두개인들이 주장하던 공공질서의 파괴자라는 혐의를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Westcott).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 여기서 '대답하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리데산'은 복수형으로서 한 사람의 대답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어쩌면 얼떨결에) 대답한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라는 칭호는 예수의 호칭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인 듯하며(마 26:71; 막 10:47; 14:67; 16:6; 눅 4:34; 24:19; 행 2:22; Bernard) 아마도 당국에서 발표한 수배자 예수의 공식 칭호였을 것이다. 성경의 용례를 보더라도 당시에 사람의 이름 앞에 그 사람의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과(요 21:15-17) 출신 지역을 붙여 부른 것은(요 20:1) 가장 일반적인 호칭법이었으며 이 경우에는 출신 지역을 반영한 이름이다.
내로라 하시니라. - '내로라'(에고 에이미)는 주님께서 자신의 메시야성을 선포하시는 때에 하신 답변과(요 4:26; 8:24,28,58; 9:9) 일치하는 것이다. 한편 이와 동일한 말을 마가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위치시켜 예수의 메시야이심을 증거한(막 14:62) 반면 요한은 그의 체포 시에 이 말을 기록함으로 인류의 구속을 위한 예수의 단호한 결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 유다의 입맞춤을 생략하는 대신 저자 요한은 유다가 예수의 맞은편에 서 있었음을 기록함으로 유다가 어느 편에 속해 있었는지를 분명히 밝히면서(Morris) 아울러 유다의 배신행위를 축약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축약은 복음서 기자들 상호 간에 자주 사용되던 기술 방법이다. 예를 들면 마태는 마가와 누가가 상세히 묘사하는 중풍병자 인도 과정(막 2:3-5; 눅 5:18,19)을 생략하면서 마가와 누가가 기록하지 않는 '안심하라'(마 9:2)는 한 마디로 그 생략하는 부분을 축약 묘사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마 9:20,21과 막 5:25-33도 비교해 보라.
18: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 예수님의 체포 과정에 대해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기록하지 않은데 반해,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일관되게 묘사해 온대로(요 7:30,44; 8:20,59; 10:39; 12:36) 주님의 도덕적 우월성과 신적인 권위가 체포자들을 압도했음을 밝힌다(Bernard). 즉 그들은 '내로라'하는 권위 있는 말씀에 신적 공포감을 느끼고 두려워서 뒤로 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8: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 본절에서는 4,5절에 기록된 것과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즉 주님은 동일한 질문을 던졌고 체포자들도 그대로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동일한 질문과 동일한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반복하여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시며 당당히 죽음에 임하심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동일한 질문을 하셨고(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8절 주석 참조) 당시 체포하기 위해 파견된 자들은 예기치 못한 질문에 상당히 놀랐으며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두려움에 질려 기계적으로 같은 대답을 반복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Bernard). 또한 요한이 이를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더불어 당시 체포된 자가 분명히 예수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 두 번씩이나 반복하여 '누구를 찾느냐'라고 질문하여 확인하신 주님의 또 다른 의도가 드러난다. 즉 예수께서는 '나사렛 예수'라는 체포의 대상을 거듭 확인하게 하신 후 그 대상은 '바로 자신' 임을 강조하심으로써 열한 제자들이 함께 체포되는 것을 면하게 해주신 것이다. 자신이 겪는 위기의 순간에도 제자들을 보호하시는 주님의 배려는 양떼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요 10:12-15) 연상케 한다.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 제자들을 보호하신 예수의 행동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자구적 일치는 아니지만 요 6:39; 10:38; 17:12 등에서도 이미 이 같은 말씀이 나타나 있다. 문제는 이전에 하신 예수의 말씀은 하늘의 영생과 관련해 영적인 보호를 말하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이 말이 제자들의 육신적인 도피에 적용되는 것이 상이할 뿐이다. 그러나 본문 역시 궁극적으로는 제자들에 대한 영적 보호와도 관련된다. 즉 당시 제자들의 믿음의 수준으로 보아 그 때에 그들이 체포되었다면 예수의 공범자로서 겪을 고문과 박해를 견디지 못할 것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하여 영적 생명을 계속 유지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Calvin, Luther). 이처럼 이 순간에는 육적 보호가 곧 영적 구원의 보장이었던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상용구이다(요 13:18; 17:12; 18:32; 19:24,28,36; 눅 4:21; 18:31; 행 1:16; 13:27, 29). 이 용어가 예수 자신의 말씀을 이루셨을 때도 동일하게 사용된 것은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구약의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Hendriksen).
18:10 예수님이 마련해 주신 육체적인 도피의 기회를 비겁한 것으로 생각한 베드로는 이전에 장담했던 대로(요 13:37)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많은 무장한 군인들을 대항한 베드로의 용기는 자못 대단한 듯하나 이것은 그의 자만과 헛된 용기에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요한이 기록하는 이 사건은 공관복음서에도 병행 구절을 가지는데(마 26:51-54; 막 14:47; 눅 22:50,51), 요한복음의 특징은 짧은 서술이지만 베드로와 말고라는 사건 당사자의 이름이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 요한이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밝히지 않는 베드로의 이름을 밝히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① 당시 신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이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사건들의 목격자적 증언을 제공한다는 기록 목적과 연관된다. ②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는(A.D. 90년 이후) 이미 그 가해자(베드로)가 죽었으므로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Hendriksen, Meyer). 한편 '검'(마카이란)은 원어로는 '작은 칼'을 의미한다. 군인들이 휴대하는 것같이 공개적으로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면 몸속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칼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때 제자들은 두 개의 검을 휴대하고 있었는데(눅 22:38), 그중에 하나를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하고 물었으나(눅 22:49) 성급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 베드로가 굳이 대제사장의 종을 택해 칼을 휘두른 것은 그가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아마도 중무장한 로마 군인보다는 경무장이거나 비무장이었을 그가 상대하기에 수월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정황을 추측해보면 아마도 베드로는 그리 길지 않은 칼로 말고를 향해 마구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지 말고의 오른쪽 귀 하나만 잘랐을 뿐인데(공관복음 기자 중 누가만이 요한과 더불어 그 귀가 오른편이었음을 밝힘, 눅 22:50), 그 이유는 아마도 말고가 재빨리 몸을 피했기 때문일 것이다(Robertson).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은 저편 체포자의 무리와 함께 있던 유다와 비교할 때 사제지 간의 정을 목숨을 걸고 드러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무력 사용에 대한 예수의 평가나 예수께서 가시려는 십자가 길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때(11절) 그의 행동은 한갓 영웅주의적 만용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처럼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수준 이상을 행할 때는 언제나 나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Calvin).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 저자의 목격자적 증언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더구나 요한은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15절) 그 종의 신분을 어둡고 혼란한 와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 문자적으로는 검을 집에 '던져 넣으라'(발레)는 뜻으로 사태의 악화를 막으려는 강하고 급한 명령이다(Bernard, Morris). 한편 의사였던 누가는 이때 예수님께서 종의 귀를 만져 고쳐주셨음을 기록하고 있다(눅 22:51). 그런데 요한이 누가가 기록하는 말고의 치유나 마태가 기록하는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는 말씀(마 26:52)과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들을 불러 명하실 수 있다'는(마 26:53) 말씀들을 생략한 것은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대적으로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요한이 생략하는 공관복음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마 26:39; 막 14:36; 눅 22:42). 그런데 공관복음서 기자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동산에서의 기도의 내용이었지 이 문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생략한 겟세마네 동산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용어가 예수님 체포 과정의 핵심을 밝히는 것임을 상기하고 이 부분에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배치한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체포에 저항하려 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이 그를 위해 싸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Robertson). 이처럼 이 부분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발적인 것임이 확실히 드러나는데, 이는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한 구속적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때 행한 예수의 무저항은 항복이 아니라 실제로는 승리인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도 같은 운명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모두 도망쳐버렸으니 주님의 십자가 길은 승리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외로움의 길이었다. 한편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는 원문이 부정적인 감탄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Abbott)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수사 의문문(rhetorical question)이라는 데에 동의한다(Brown), 또한 '잔'에 대해서는 '슬픔'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으나(Weymouth) 이를 구약적인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구약은 일관되게 잔을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의 문맥에서 설명한다(시 75:8; 사 51:17,22; 렘 25:15; 겔 23:31-33). 이는 원래 범죄한 인간들에게 돌아갈 '진노의 잔', 즉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이 ‘진노의 잔'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구원의 잔'(시 116:13)을 들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18:12-27 예수에 대한 안나스의 심문과 베드로의 예수 부인
본문에는 앞단락 (1-11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대적들에게 체포당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산헤드린 공회의 원로인 안나스에게 심문을 당하며(12-14, 19-24절)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했던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 기술되어 있다(15-18, 25-27절).
즉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하신 예수님께서는 즉시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가셨다(12,13a절). 그런데 안나스는 실제로 당시 현직 대제사장이 아니라 전임 대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사위 가야바를 대제사장 자리에 앉힐 정도로 유대 사회의 배후 실력자였다(13b절). 그렇기 때문에 안나스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가야바의 집에 소집되어 있는 산헤드린 공회로 이송함으로써(24절). 예수님의 유죄와 사형을 확정시킬 수 있는 거짓 증거와 증인들을 조작해 내려고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마 26:59-62). 그러나 이와 같은 안나스의 사악한 계략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전혀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셨으며, 오히려 그의 심문 내용을 반박하고 책망하시기조차 하셨다(20-23절). 이는 실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위엄과 권세를 드러내 보이신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본문에는 안나스에게 당하신 예수의 심문이 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공관복음은(마26:57-68; 막 14:53-65; 눅 22:54-65) 이후 일어난 사건인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집에서의 심문을 보다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공식적인 심문에 보다 주의를 기울인 반면, 요한은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실제적인 주요한 심문이 이미 이루어졌던 안나스에게서의 심문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른 복음서에는 생략되어 있는 예수의 심문 현장에 요한이 있었다는 사실과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본서 저자가 목격자로서 세부적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과 더불어 초대 교회 독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했던 당시의 정황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문은 베드로의 예수 부인(否認) 사건을 두 부분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15-18절, 25-27절).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지라도 자신만은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불과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이처럼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문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째 부인하자마자 곧 새벽닭이 울었다고 기록함으로써(27절), 그의 부인(否認))에 대한 예수님의 예고(요 13:38)가 현실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열성적이고 자신만만했던 베드로의 이러한 좌절과 실패를 통해, 우리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너무나 연약하고 비열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스스로의 인간적 의지와 지식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려고 하기보다, 보혜사 성령께서 베푸시는 능력과 지혜를 힘입어 예수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 이후에 베드로가 보여 준 역동적 신앙과 삶 역시 바로 여기에 그 비결이 있었다(행 2:1-41:3:1-26).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 3절에는 단순히 '군대'로만 나오나 여기서는 로마 군대를 지휘한 자의 직책까지 명시된다. 한편 '천부장'(킬리아르코스)은 본래 240의 기병과 760의 보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을 가리키는 용어이다(막 6:21; 계 6:15; 19:18). 이 직책의 장교가 거느리는 병력에 대해 보다 작은 규모를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으나(Winter, Morris)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직책은 로마 정부를 대표하여 군사적인 행동을 취할 때 그 병력들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자주 묘사된다는 사실이다(행 21:31-33; 22:24-29; 23:10,15,17-19; 24:7,22; 25: 23). 따라서 여기서도 군대와 천부장이 먼저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예수님을 결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Hendriksen).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 '잡아'(쉬넬라본)와 '결박하여'(에데산)는 공식적인 체포를 의미하는 전문용어이다(마 26:55; 막 14:48). 실상 그 결박은 죄인인 우리들이 당해야 할 것이었으나 주님은 그 자신을 결박당하도록 내어주었다. 또한 이 예수님의 결박은 무고히 결박당했던 이삭에게서 이미 예표되었다(창 22:9).
18:13 본절 이후로는 베드로의 부인 기사(15-18,25,26절)와 더불어 본격적인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즉 예수께서는 유대 교권자들의 심문을 시작으로(12-27절), 빌라도 총독의 심문을 받고(18:28-19:16)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걸어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심문 과정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심문당하신 곳이 안나스의 집인지, 가야바의 집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13,24절을 보면 안나스의 집인 듯하고 공관복음 기사(마 26:58; 막 14:54; 눅 22:54) 를 보면 가야바의 집인 듯하다. 이 부조화에 대해 칼빈(Calvin)은 안나스의 집에 잠시 머물고 가야바의 집에서 주로 심문을 받은 것으로 본다(15절 이하).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 요한이 여기서 '먼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에게서 행해진 심문을 구별하기 위함이다. 즉 이 말을 통해 후에 있을 가야바 앞에서의 심문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먼저 안나스에게 예비적 심문을 받으신 이유는 재판을 위해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될 때까지 예수를 안전한 곳에 가두어 두려는 의도였을 것이다(Robertson). 또한 두 대제사장의 집은 같은 뜰 안에 있었으므로 이동을 위해서 많은 시간이나 절차를 소요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Godet, Alford). 한편 안나스는 A.D.6-15년까지 대제사장의 지위에 있던 자로 복음서가 기록하는 예수님의 시대와 이후 사도들의 시대까지도 이 사람과 관련된 가족들이 대제사장으로 있었다. 9년여를 재직하던 그는 로마의 행정관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에 의해 축출당했으나 그 후에도 1년간 그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이 대제사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이후 약 1년의 공백기 후에는 그의 사위였던 가야바가 A.D. 18-36년까지 오래도록 대제사장으로 재직하였다(요 11장 연구 자료 참조). 그러나 비록 대제사장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했어도 종교 · 정치계의 대부(代父)로서 막강한 실세는 안나스가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Westcott). 이러한 사실은 요한이 안나스가 현직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장인이었음을 기록하는 것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탈무드는 안나스와 그 가족들(대제사장들)에 대해서 유대 종교를 타락으로 몰아넣는 자라고 악평을 하며 저주를 선포하는데(Talmud 중 Pesach., 57a.), 본래 바리새파에는 호의적이었고 사두개파에는 반대했던 탈무드가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아 안나스와 그의 추종 세력들은 사두개파의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Robertson). 이러한 경향성은 예수님의 심문과 처형 과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 이 구절을 본서의 저자가 유대의 대제사장직이 1년 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하면서 본서를 유대의 풍습에 익숙했던 요한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Tasker). 왜냐하면 본서의 저자는 대제사장 가문의 가족 관계까지 파악하였으며 대제사장직의 계승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그 해'라고 의도적으로 밝힌 것은 단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유명한 해(annus mirabilis)에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기록일 뿐이다.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 본절은 오랜 세월 동안 지워지지 않고 응어리로 남아있던 요한의 기억으로 과거에 가야바가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예수의 죽음이 로마로부터 유대를 지키는데 유리하다는 맥락에서 무의식 중에 한 말이(요 11:49 이하) 예언같이 성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요한의 심정을 반영한다. 또한 요한은 이 가야바의 말을 기록함으로 예수께서 당하실 일련의 재판에서 석방되는 일이란 결코 있을수 없음을 암시하려 한다(Morris, Reynolds).
18:15 예수님 체포 당시 도망갔던 제자들 가운데 두 명만이 염려하여 그 뒤를 쫓아왔다. - 그러나 공관복음에 나타나 있듯이 당시 베드로는 몹시 겁에 질려있어 멀찍이 예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마 26:58; 막 14:54; 눅 22:54).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 베드로와 더불어 스승의 뒤를 따른 이 제자의 정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있는데, 이 제자를 ① 아리마대 요셉(요 19:38), ② 니고데모(요 3:1-15;19:39), ③ 무명의 제자(Calvin), ④ 마가(Valois) ⑤ 요한의 형제 야고보(Godet, Watkins), ⑥ 사도 요한(Meyer, Plummer, Westcott)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본서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제자를 묘사하는 여러 용례들이(요 1:35,37; 13:23,25; 19:26,27; 20:2-8; 21:7,20-24) 본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자신을 가리키는 겸양적 표현이란 점에서 볼 때 본절에 등장하는 익명의 제자 역시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 여기서 친분 관계를 묘사하는 '아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스토스'는 다만 면식이 있는 사소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극히 한정된 관계를 지칭한다(Dodd). 그렇다면 이 제자는 대제사장의 친지였는가? 혹자는 이에 대해 요한 자신도 제사장이었고 이때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추론을 하기도 하나(Polycrates) 이는 무리한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요한의 모친은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였던 마리아와 자매 간이고, 이 자매들은 제사장 가문인 엘리사벳과 친족 간이었으므로(눅 1:5,36) 요한이 대제사장과 일련의 관련이 있었다는 추정도 경우에 따라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학자들은 당시에 갈릴리와 예루살렘 간에 소금에 절인 생선의 거래가 활발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고용인을 거느린 세베대를 어업뿐 아니라 생선 유통까지 관장한 유력 인사였던 것으로 보고 그의 아들이었던(막 1:20) 요한 역시 대제사장 가족들과 거래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Nonnus, Hendriksen, Morris).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 여기서 '뜰'로 번역된 헬라어 '아울렌'은 큰 저택이나 궁궐의 '넓은 뜰'이란 의미도 있고 또한 '전체 관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한결같이 이곳을 넓은 안뜰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마 26:69; 막 14:66; 눅 22:55) 안나스는 가야바의 관저 안에 기거하며 뜰을 공유(共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obertson). 비록 모든 제자들은 도망하였을지라도 베드로와 이 제자는 예수님을 대제사장 집으로 끌고 가는 무리들을 계속 따라갔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베드로는 두려운 가운데 멀찍이 따라가고 있었다(마 26:58; 막 14:54; 눅 22:54). 하지만 이제 예수께서 심문당하실 대제사장의 뜰로 들어가는 문에서 베드로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면식이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제자와는 달리 베드로는 더 이상은 주님과 가까이 있을 수 없는 듯이 보인다.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 여기서 '문 밖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테 뒤라'는 요한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용례(요 20:11,12)로서 문 밖이긴 하나 문과 바로 밀착된 근거리를 나타낸다. 즉 베드로는 대제사장을 아는 그 제자가 들어간 후 안타까운 심정으로 문에 바짝 붙어서 서성거렸던 것이다(Morris).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 히브리인들은 문지기로서 여자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행 12:13; Bernard).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 영향력이 있었던 그 제자는 문지기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요한과 안면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재판이 열릴 중대한 시점에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베드로)을 들여보내 줄 수 없었으며 더구나 여종은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라는 어느 정도의 심증이 있었으므로 베드로와 예수와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했고 이 여종의 질문은 베드로를 충분히 당혹시킬 만한 것이었다.
18:17 베드로의 부인 기사를 다루기에 앞서 저자 요한이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이미 상세하게 기록한(마 26:69-75: 막 1466-72: 눅 22:56-62) 기록을 다시금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제사장을 아는 그 제자의 정체와 관련하여 이 부분은 목격자만이 기록할 수 있는 자세한 필치를 보이고 있으며, 말고(10절)와 같은 정확한 이름을 밝히는 저자가 이 익명의 제자의 이름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추론할 때(Tacker) 본서는 여기에 등장하는 익명의 제자와 동일인인 사도 요한이 저술함에 있어 겸양적인 표현으로 자신을 숨겼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 문맥의 상세한 기록은 저자 요한이 베드로의 실패의 원인이 결국 자신에게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주님께서 예언하신대로(마 26:34;막 14:30:눅 22:34)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이 베드로를 법정뜰 안으로 데려온 책임을 말하며 베드로의 부인을 전적인 베드로의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Hendriksen). 아울러 요한은 당시에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과오가 제자들 전체, 나아가서 요한의 복음서를 읽는 청중들, 더 궁극적으로는 오늘의 나를 포함한 전 인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이 부분을 보다 자세히 기록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을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 요한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미 베드로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여종은 '아니오'라는 답변을 예상하는 정중한 듯하지만 유도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편 여기서 예수를 지칭하는 ‘이 사람의'(투안드로푸 투투)라는 말 속에 이미 경멸적인 어조가 들어있었으며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경멸적인 모욕이 됨과 아울러 베드로의 부인을 한층 용이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실력자도 없었고 여종의 질문도 이미 '아니오'란 말을 예상한 질문이었으며 예수의 제자란 신분 노출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베드로는 그만 운명적인 부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즉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던 맹세는(요 13:37)간 곳 없고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여종 앞에서 조차 어처구니 없이 쉽사리 주님을 부인해 버린 것이다.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 벌어진 정황을 참작하여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베드로가 부인하고 있는 것이 자신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사제 관계임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누구라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관한 신앙 즉 예수님을 자신의 주라 고백하는 문제를 회피하고서 그럴사한 신앙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Calvin).
18:18 그 때가 추운고로. - 요한만이 상세하게 기록하는 상황으로 이 때의 추위를 통상적인 예루살렘의 기후가 아닌 비정상적인 기후로 보는 것(Westcott) 보다는 예루살렘의 해발 760m정도의 높은 고도로 인한 통상적인 봄밤의 차가운 바람 때문에 추위가 엄습했던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Brown).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 '숯불'(안드라키안)에 관한 기록은 마가(막 14:54)나 누가(눅 22:55) 보다 본서가 상세하다. 이 단어는 70인역에 나오는 고어로 '숯더미'를 가리킨다. 한편 예수님을 부인할 때 소도구로서 등장하는 본문의 숯불이 다시금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이 베드로를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요 21:9).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을 부인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를 철저히 회개케 하고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금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편 요한이 이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예수의 의도적인 배려를 알고 있었던 그 자신의 섬세한 성격을 보여 준다(Morris).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 이미 신분이 노출된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 베드로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것이다. 숯불을 중심으로 모여선 사람들 전전긍긍했을 끼어드는 것도 위험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무리들과 떨어져 있으려니 더 눈에 잘 뜨이게 될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또한 베드로는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추위를 느꼈을 것이므로 불가로 가서 불을 찍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주님께서는 한밤중 한기에 경직된 몸으로 오랜 시간 심문받으시고 조금 후에는 채찍질마저 당하시는 고통을 겪으실 것이다(요 19:1).
18:19 대제사장이. - 이제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받으시는 기사가 나타는데(19-24절), 이 대제사장이란 공식 직함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 전직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가 아닌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Hengstenberg, Barrett, Godet). 이러한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13절과 14절에 24절을 갖다 붙여 읽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문장 구조로 볼 때 예수님이 안나스에게 끌려오신 후 가야바에게 가기까지(24절) 안나스에게 심문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Lange, Mey 18:22er, Moulton, Morris). 장관으로 있다가 물러난 경우에도 예의상 계속해서 장관으로 흔히 부르듯이 여기서도 그러한 의미로 안나스에게 대제사장이란 명칭이 부여된 것이다(Robertson).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 안나스는 아마도 자신의 경험이나(마 21:23) 그의 첩자들을 통해 예수의 교훈이나 제자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안나스의 이 질문은 왜 추종자들을 모았으며 그 모임을 통해 어떠한 모의(예컨대 소요나 반란 같은)를 꾸몄는 대해서 묻는 심문자의 의례적이고 기초적인 질문이다. 특히 안나스의 관심은 그의 제자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승의 체포로 소요 사태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대제사장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골치 아픈 사람이나 되는 듯 심문하고 있는데 가증한 교권주의자가 이 땅의 구속을 위해 오신 참 선지자를 심문하는 것은 주님에게는 극단적인 치욕이었다(Calvin).
18:20 안나스의 질문의 핵심은 '제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 대해서 직접 답변하지는 않으신다.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제자들을 염려하시던 주님께서는(8,9절) 자기 제자들을 무지한 군중 취급하는 조소를(요 7:45-52) 무시하시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자신의 사역과 가르침에 관해서 당당하게 증거하신다. 즉 잘못된 권위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합리적 이유없이 멸시하는 대제사장의 상투적인 질문을 자신의 가르침이 공개적이었다는 증거로 반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 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 예수의 가르침 속에 어떤 비밀스럽고 사악한 것이 들어 있지 않느냐는 복선 깔린 안나스의 심문을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개적이고 정당했던 말씀 사역 활동을 들어 반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이나 요 2:19; 7:14; 8:20; 10:23) 회당(막 6:2; 요 6:59)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 장소에서 가르쳤고 바닷가(눅 5:1)나 산(마 5:1)과 같은 곳에서 가르치실 때도 늘 공개적인 가르침을 행했다. 혹시 예수께서 대중들에게는 선포하지 않은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더라도(마 13:10-17; 막 4:10-12) 그것은 어떤 사악한 모의가 아니라 다만 제자들을 훌륭한 선생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다.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 자신에게 자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적법 절차에 따라 증인을 불러올 것을 요구하시는 항의조의 답변이다. 본래 유대 재판법에는 증인이 동석해야 했고 재판받는 자를 변호하는 증인들도 참여해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Morris, Lightfoot). 아울러 당시의 연행은 정당한 고소인도 없이 자신을 체포한 불법적인 것이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이 말씀은 예수 자신의 공개적이고 떳떳한 가르침과 대조적으로 합법적인 절차도 갖추지 않은 불법적 심문과 재판을 강행하려는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에 대한 정당한 지적이었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관례를 볼 때 예수께서 하신 행동은 놀라운 일이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재판관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일반적인 태도는 겸손, 소심함, 자비를 구함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Antiquity XIV.IX.4).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이 자신의 가르침에 충실함을 확신하는 표현이다.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르되. - '손'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라피스마'는 본래 막대기나 그 비슷한 도구들을 의미했으나 점차 맨손이란 의미로 변했다. 약에서의 용례는 모두 이렇게 손으로 때리는 의미로였다(막 14:65; 요 19:3, Morris). 한편 본래 유대인들에게 있어 뺨을 치는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었으므로 금기시(禁忌視)되었다(Dodd). 뿐만 아니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에게는 가혹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때 예수께서 당한 것은 치욕적인 모욕이었으며 이사야 50:6의 예언, 즉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나의 뺨을 맡기며…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란 예언의 성취로 본다.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 대제사장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천한 하속은 경멸적인 어조로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꾸짖었다. 범죄자라고 해도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은 강요당하지 않도록 되어 있으며 적법한 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히브리 법이건만 그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갖지 못하고 당하시는 주님의 모욕은 바로 우리들 자신들이 당해야 할 것이었다.
18:23 요한만이 예수께서 경멸당하신 후에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에게 있어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안나스에 대해 당당한 예수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음에 틀림없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서더라. - 여기서 '말'은 금하신 말씀이(21절) 아니라 예수께서 평소에 가르친 교훈(20절)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문맥을 잘못 이해한 때문인 것 같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당한 불법적인 인격 모독에 항의하며 절차를 밟은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안나스와 하속은 적법한 절차도 무시하고 이유도 없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이며(요 15:25) 예수께서는 다시금 그것에 항의하신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한쪽 뺨을 맞으신 후 다른 편 뺨을 돌려대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평소에 가르치셨던 것(마 5:39)을 시행하지 않는 언행 불일치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교훈은 복수를 하지 말라는 문맥에서 사용된 것이고, 지금 예수께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친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가 가장 큰 사랑을 가진 자라고 하신 말씀을(요 15:12-14) 실천하시려는 도상(道上)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님의 교훈이나 말씀을 문맥을 무시한 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Robertson).
18:24 가야바의 심문을 상세히 기록하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안나스의 예비 심문을 서술하는 요한은 이제 안나스가 예수를 법적 대제사장이었으며 산헤드린공회의 의장이었던 가야바에게로 보내어 산헤드린 공회에 회부한 사실을 언급한다.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 안나스에게 보내어졌을 때 결박된 상태였던(12절) 예수는 라그랑(Lagrange)의 추정대로 심문을 받는 동안 내내 결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행 22:30을 보아도 공회를 열어 죄인을 심문할 때에는 결박을 풀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결박한 그대로'로 번역되어 계속 결박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데메논'은 '매다'는 의미의 '에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결박되어 호송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지 심문 과정 중 내내 결박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가야바에게로 보내질 때 다시금 결박된 듯하다(Robertson, Bernard). 한편 이 말('결박한 그대로')은 예심을 끝내고 '혐의를 그대로 가지고' 재심문을 받기 위해 호송되는 것을 기술적으로(artificially)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obertson).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 단순히 가야바 개인에게 보낸 것이라기보다는 피의자를 심문할 준비를 갖추고 모인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에게 보낸 것이다. 28절에 기록된 '저희'가 바로 그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의미할 수 있다(Brown). 그런데 안나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예비 심문은 아무런 유죄의 증거를 얻지 못했다. 다만 공회가 소집될 시간적 여유만을 확보했을 뿐이었다(Hendriksen). 한편 이 부분에서 본서는 공관복음서에 대한 보충적 특성으로서의 기록 목적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한다. 즉 본서는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재판은 전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아 마태(마 27:1 이하)나 마가(막 15:1)의 상세한 기록을 보라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산헤드린 공회가 실제로 두 번의 심의를 했다는 사실도 공관복음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생략한다. 즉 마태(마 26:57,59,60-68)와 마가(막 14:53,55-65)에 의하면, 산헤드린은 밤에 예수를 심문했을 뿐만 아니라 본래 밤에는 산헤드린 공회가 공식적으로 열릴 수 없었으므로 밤에 결정된 바를 추인하기 위해 새벽에 정식으로 공회를 소집했다(눅 22:66-23:1). 그러나 요한은 바로 이 사실을 모두 생략한 채 마치 예수의 신병(身柄)을 가야바에게서 곧바로 빌라도에게 보낸 것처럼(28절) 기록한 것이다.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 첫 번 주님을 부인할 때 베드로는 앉아서(마 26:69; 눅 22:56)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 불을 쬐고 있다. 결박당한 스승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을 곁눈질로만 지켜보아야 하고 떳떳이 바라볼 수도 없는 안타까움과 초조함이 반영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주님을 부인하고 난 후라 후회와 자신에 대한 못미더움으로 더욱 불안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 당시 불 가에 모인 사람들의 화제(話題)는 당연히 '심문받고 있는 예수'였을 것이므로 낯선 사람이며 신원이 확실하지 않았고 이미 예수의 추종자의 혐의를 받았었던 베드로에게 사람들은 이제 거의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지금 심문받고 있는 예수와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또다시 부인한다. 위선적인 가야바보다도, 그의 얼굴을 때리는 하속들보다도 예수에게는 이러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부인이 더욱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Hendriksen).
베드로가 부인하여. - 예수께서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는 동안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다(마 26:57-68; 막 14:53-64; 눅 22:63-71). 이 선언은 심문을 지켜보는 자들에게 참람된 말이라 불리었고 그로 인해 예수께서는 비방과 모욕을 당하게 되었다(마 26:67,68; 막 14:65; 눅 22:63-65). 이러한 예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수제자 베드로가 다시금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지켜보셔야(눅 22:61) 했던 것이다. 한편 공관복음에 나타난 베드로의 부인 기사와 본서의 기록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즉 공관복음은 그 기록 자체가 상세하거니와 순서에 있어서 대체로 ① 바깥뜰에서 한 비자에게 ② 앞뜰에서 또 다른 비자에게 ③ 시간이 흐른 후 여러 사람에게 부인한 것으로 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본서는 바깥뜰에서 한 비자(문지기에게 했던 부인을 다룬 후; 15-18절), 두 번째 부인은 사람들에게 했고, 세 번째 부인은 말고의 친족에게 했던 것으로 기록한다(25-27절). 이같이 이 부분을 25절과 26,27절로 구별하여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으로 다룬다는 일반적 입장과는 달리, 이것을 세 번째 부인을 좀더 상세히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즉 공관복음에는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으로 묘사된 반면, 이곳에서는 예수에 대한 부인이 연속된 사건이요 시차가 거의 없이 동시에 있었으므로 따로 구별하여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입장을 취할 때 두 번째 부인을 생략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리라는 것은 주님의 예언이기도 했고(마 26:34; 막 14:30; 눅 22:34; 요 13:38) 또 초대 교회 성도 및 복음서 독자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요한은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과 같이 비자 앞에서 행한 두 번째의 부인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기 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사람들 앞에서, 특히 말고의 일가가 위협을 준 상황에서 이루어졌던 세 번째 부인 사건을 중심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전혀 밝히지 않는 말고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그로서는(10절) 목격자적 증언으로서 이 세 번째의 부인 기사를 부각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세 번째 부인을 특히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17절 주석 참조) 요한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던 사실에 대해 자신의 책임도 있는 것으로 베드로의 책임을 완하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말고의 친척이 결정적으로 베드로를 지목하는 '위기'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불가항력적으로 부인했던 상황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이 세 번째의 부인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했던 것을 기록하는 것에(마 26:74; 막 14:71) 비해, 요한은 단순히 '또 부인하니'(27절)라고 간략히 서술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요한이 베드로의 두 번째 부인을 생략하고 세 번째 부인만을 부각시켰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 부분이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을 종합하여 요약하고 있다는 주장이 보다 더 일반적이며 타당한 것 같다.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 곤경에 처한 베드로를 더욱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베드로가 동산에서 귀를 자른 말고의 친척인 자로부터 세 번째 주어지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던 자였고(15절) 말고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0절). 따라서 그가 말고의 친척되는 자를 알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그가 베드로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말고와의 친분 관계를 직접 말했을 수도 있다. 한편이 세 번째 질문은 눅 22:59에 의하면 두 번째 질문과 한 시간쯤의 시간적 간격을 지닌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 이 문장의 원어는 문법적 형태로 보아 긍정적인 대답을 바라는 것이나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양자 모두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단정적인 질문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Hendriksen). 이러한 사실은 마 26:73에서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란 언급에서도 알 수 있다. 즉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본절에 묘사되어 있듯이 베드로가 예수의 체포 현장에 있었다는 명확한 사실과 더불어 베드로 역시 예수의 고향이었던 갈릴리의 방언을 사용한다는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베드로를 심히 추궁했던 것으로 보인다.
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 이제 거의 정신이 나갈 만큼 당황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주하며 맹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마 26:74; 막 14:71). 이제 단순히 아니라고 하는 정도의 부정만으로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정황이었을 것이다.
곧 닭이 울더라. - 이때 닭은 두 번째 울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께서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는 예언과 더불어 막 14:72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당시의 상황은 처음 닭이 울던 때와 다르다. 이 순간 베드로는 자신을 쳐다보는 예수님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눅 22:61). 아마도 이때 예수님은 가야바에게서 심문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가는 과정에 있었기에 베드로를 마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Sizoo). 주님께서 고통과 모욕을 당하시는 가운데서도 베드로를 쳐다보시는 눈길은 아마도 사랑이 가득찬 것이었을 것이다(Hendriksen). 주님의 이 사랑과 연민의 눈길은 드디어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서(요 13:38) 그는 밖으로 나와 심히 통곡한다(막 14:72; 눅 22:62). 이처럼 다른 복음서는 닭이 울고 난 후에 베드로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한 장면이 묘사되나(마 26:74; 막 14:72; 눅 22:60) 요한은 이를 생략한다. 이러한 사실과 연관하여 베드로와 관련된 전설 한 토막을 살펴보면 요한이 베드로의 회개를 생략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새벽마다 닭이 울 때면 자신의 죄가 생각나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한 그는 평생을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지냈다고 한다. 이처럼 베드로의 회개는 복음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요한은 이 부분을 간략히 기록한 것이다. 한편 이 구절과 연관해서 미쉬나(Mishna)에는 예루살렘에서 수탉의 양육이 금지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Baba Kamma 7:7), 이를 근거로 해서 복음서 기자들이 이 기사를 창작해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 미쉬나의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의문이므로 예루살렘에서도 닭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Brown). 또한 버나드(Bernard)와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것이 닭의 울음이 아니라 시간을 알리는 나팔 신호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나팔 신호는 '수탉울음'(cockcrow)이라고 불리우는데 아마도 수탉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소리였던 것 같다. 한편 당시 예루살렘에서 이러한 나팔 신호가 세 번 정도 울렸는데 새벽 12시 30분, 1시 30분, 2시 30분에 각각 울렸다(Kosmala, Lattey). 만약 여기서 이때 닭 우는 소리를 나팔 신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면 베드로의 세번째 부인은 새벽 1시 30분 이전에 있었던 것이 된다. 막 14:30 주석 참조.
18:28-40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심문
앞 단락의 대제사장 안나스의 심문과 베드로의 예수 부인(12-27절)에 이어 본문에서부터 요 19:16까지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소개된다. 비록 본서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열린 산헤드린 공회는 이미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죄를 적용해 사형을 결정했으며(마 26:65,66; 눅 22:66-71). 이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배반자 유다가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마 27:3-10). 하지만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당시의 유대 사회에는 상당 부분 자치권이 허용되어 있기는 했어도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로마 정부에서 파견한 총독에게 속해 있었다. 따라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이송시켜(28절), 사신들이 이미 결정한 대로 사형을 선고해서 집행해 주도록 요구한 것이다(29-32절).
물론 이러한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그들이 내세운 예수님의 죄목은 결코 신성 모독과 같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에 대해 반역을 꾀하여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정치적 죄목이었다(33-35절). 그런데 로마제국의 식민지들 중에 가장 말썽 많은 지역으로 손꼽힐 만한 여호와의 선민(選民) 의식이 투철하여 이방인을 배척했던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이방인의 법정에 무고히 고소하고 마치 자신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들인 양 행동한 것은 실로 가식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정녕 사악한 자들은 스스로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서 라면, 그토록 자신들이 추구하던 이상(理想)과 명분을 단번에 뒤바꾸는 처사도 서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가이사랴에 통상적으로 머물고 있다가 유월절 명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의 죄인을 판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곳에 와 있던 총독 빌라도는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예수님을 넘겨받자마자. 이번 사건 뒤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즉시 간파해 내었다. 즉, 평소에 자신의 관할 지역 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빌라도로서는 예수님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 전개되는 대림과 갈등 현상을 낱낱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예수님에게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죄목으로 재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31절), 또한 유대 지도자들의 강요에 못 이겨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도(33-38절) 유월절 특사로 석방시키려고 했다(39절). 즉 본문에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으나 빌라도는 1차 심문 후 예수의 무죄를 확인하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예수를 당시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에게 보낸 사실이 있다(눅 23:6-12). 본문 39,40절에 나오는 유월절 특사로서 예수를 석방하려는 시도는 헤롯 안디바에 의한 심문 이후에 일어난 빌라도 2차 심문 시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빌라도의 시도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온 인류의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비롯된 신앙적 행위가 아니라(38절) 본질적으로 자신과 별로 상관 없는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의도에서였다. 즉, 그의 태도는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려는 의지가 결여된 무사 안일 그 자체였으며,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결코 세속 권세를 가진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였다. 때문에 그는 백성들의 요구에 밀려 예수 대신 바라바를 풀어줌으로 결국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으로 불리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40절). 이와 관련하여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자세와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눅 23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아무튼 이상과 같은 본문은 예수의 무죄성을 분명히 증거해 주는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적 죽음이셨음을 일깨워준다. 이는 정녕 메시야의 수난 예언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 53:4-9).
18:28 본절부터 요 19:16까지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받는 모습을 기록하는데 대부분의 기록이 공관복음에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것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본절이 밝히는 대로 유대인이 관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빌라도 자신이 관정을 들락거리며 바쁘게 재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곱 번 정도 출입하며 재판을 하고 있다(요 18:28-32 밖, 33-37 안, 38-40 밖, 19 1-3 안, 4-7 밖, 8-11 안, 12-16 밖).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 '관정'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이토리온'은 '프라에토리움'(Praetori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 로마 군대의 진지 안에 있는 '장군의 장막'을 가리켰다(Robertson). 그런데 이것이 후일에 로마 총독의 관저(官邸)를 가리키게 된다. 한편 로마 총독은 평소에는 가이사랴에 머물렀으나(행 23:33) 축제가 있어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때는 소요를 대비하기 위해 임시로 예루살렘으로 이동했다. 이때 총독이 머물었던 곳에 대해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는 총독들이 호화로왔던 헤롯의 궁전을 사용했다고 한다(Ederahem). 하지만 당시 빌라도는 아마도 성전 지역 서북쪽 로마 군인이 주둔하던 안토니아 성(castle of Antonia)에 있었을 것이다(Robertson, Reynolds, Hendriksen).
새벽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는 마 14:25과 막 13:35에도 나오는 표현인데, 문자적으로는 이른 시간(the early hour)이라는 뜻으로 로마 시간 계산법에서 밤의 마지막 시간인 4경(4시-6시)을 가리킨다. 그러나 눅 22:66에 나오는 2차 산헤드린에서의 공식 심문의 시점을 '날이 새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 있은 빌라도에게로의 송환은 해뜨는 시점과 가까운 4경 마지막 때였던 것 같다. 이것으로 보아 가야바의 집에서 모인 산혜드린 공회는 성의 없는 속전속결의 재판을 한 후 예수를 총독의 관정으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로마의 재판은 이렇게도 이른 시간에 있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혹자는 당시 로마인들의 공적 업무는 오늘날과는 달리 해뜨기 전부터도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베스파시안 황제(the Emperor Vespasian)의 예를 들어 증거하고 있다(Sherwin-White).
저희는. - 24절은 예수께서 안나스에게서 가야바에게로 보내어졌다고 기록한다. 요한을 가야바에 의해 주도되었을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 및 유죄 판결은(마 27:1; 눅 22:66-71) 생략했지만 여기에 나타난 복수 명사는 이에 관여한 산헤드린의 유력한 공회원을 포함한 호송 인원들이었을 것이다. 이어 나타나는 진술과 같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부정함을 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아도 이들은 유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하게 되므로 하루를 지내고 옷을 빨아야 정해질 수 있다는 규례가 있었다(민 19:7; 신 23:11; 행 10:28). 그들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했기에 그러한 자격이 하루가 지날 때까지 박탈되는 이러한 의식적인 더럽힘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적법한 절차도 밟지 않는 재판으로 죽이려 하는 도덕적 부정은 안중에도 없이 이러한 의식적 부정만을 면하려는 지독히도 위선적이고 관념적인 종교주의에 빠져 있었다(Hendriksen).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 여기에 나타나는 유월절 잔치에 대해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의 시작 시점에 유월절 양을 먹는 것이라거나(Bernard, Godet) 그 이튿날부터 있는 무교절기의 모든 잔치를 가리킨다는(Hengstenberg, Lange) 상반된 견해가 있다. 여기서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자들은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의 식사를 하셨다는 점을 강력한 근거로 제시한다(마 26:2,17-19; 막 14:1,12,14, 16; 눅 22:7,8,11,13,15). 그러나 이미 각 부분의 주석에서 밝힌 바대로 당시 예수께서 베푸신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당일의 식사가 아니라 이를 하루 앞당겨 시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의 '유월절 잔치'란 표현도 유대인들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시점에 시행하는 식사라고 보아야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만 시행되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이 거룩한 식사에 의식상의 부정함으로 동참치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꺼려했던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요한은 당시 예수를 고발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아울러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희생당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 26장 자료노트 참조.
18:29 그러므로 빌라도가 . - 처음 나타나는 이름인 데도 아무 설명이 붙지 않는 것은 그의 이름이 기독교인 사이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암시한다(Reynolds, Brown).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설교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행 3:13; 4:27; 13:28) 1세기의 교인들에게 그는 이미 익숙히 알려진 인물이었던 듯하다. 그는 A.D. 26-36년까지 유대를 다스렸고 유대에 부임한 총독들의 순서를 따지면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뿐 아니라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글에도 둘째 이름(nomen)인 본디오(Pontius)와 셋째 이름(cognomen)인 빌라도(Pilate)만 기록되어 있을 뿐(눅 3:1; 행 4:27) 첫째 이름(praenomen)은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이처럼 그의 성격과 인상을 밝혀줄 자세한 기록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가 예수를 사형 선고하는 장면에 나타나는 그의 성격을 볼 때 군중의 요구에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의지가 약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는 빌라도가 성전에 있던 사람들을 처형토록 한 잔혹한 일을 기록하는 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잔혹한 성격도 있었다(눅 13:1). 필로(Philo of Alexandria) 역시 그를 잔인한 격정에 사로잡히고 교만하며 방종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Reynolds), 또한 A.D. 3세기 경의 로마 신경(Roman creeds)에서부터 나타나는 그의 이름은 오늘날 사도신경에까지 예수를 죽인 재판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빌라도에 대해서는 마 27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 유대인을 경멸하고 교만했던 빌라도가 유대인의 요구에 응해서 이른 시간에 재판을 시행하며 관정 밖으로까지 나온 것은 당시가 유대인 축제 기간이었고 유대인들을 자극할 경우 민란이 일어날 우려도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 예수와 유대인 교권자(敎權者)들 간의 알력을 이미 알고 있었을 빌라도에게 있어 이 질문은 의례적인 것이었고, 아마도 그는 유대인들의 정식 고발 내용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18: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대제사장 집의 문 지키는 여자에게 사용된 것과 비슷하게(17절 주석 참조) 경멸적인 의미로 쓰인 용법이다(Bauer).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콘 포이온'은 문자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로 빌라도가 묻는 바 고소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악에 대한 유대와 로마의 관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신성 모독이 사형에 해당하지만(레 24:16) 로마인에게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모반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조금 무례하다고 볼 수 있는 표현으로 구체적인 고소의 증거를 제시하기를 요구하는 빌라도에게 이미 재판을 했으므로 판결만 내리면 된다는 뜻을 암시한다.
18: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 유대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빌라도는 이러한 사건을 기회로 사형권을 가진 총독의 권위도 드러내며 유대인들의 무례함에도 제동을 걸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아무튼 빌라도가 예수에 대해 한마디의 심문도 하지 않은 채 재판을 다시금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로 되돌리는 것은 이미 모든 내막을 알고 있었음을 암시 한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바라는 재판의 결과가 사형임이 드러난 것이다. 단 한 번 취한 빌라도의 재판 거부 제스처(gesture)에 공회원들은 그들의 흉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는가?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 한 사건(요 8:2-11)과 스데반의 죽음(행 7:54-60), 야고보의 순교(행 12:2) 등을 보면 그들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듯하다. 비록 정식적으로 부여받은 법적 권한은 없었더라도 로마 당국이 이러한 내부적이고 지엽적인 처형을 묵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당시 로마 식민지하에서 합법적인 죽음인 십자가형으로 예수를 죽이고자 원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 형벌은 극악한 죄수를 사형하는 형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이긴 하지만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경험하기를 원하셨던 방법이기도 하였다(Hendriksen). 이에 대해서는 마 27장 자료노트, '십자가 수난을 통한 구속 성취의 이해'를 참조하라.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 예수께서는 어떤 죽음을 당할 것인가를 미리 친히 예언하셨다. 즉 요 3:14에서는 '들려야 할 것'을, 또한 요 8:28에서는 '인자를 든 후에' 즉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에 깨닫게 되는 바를 예언하고 계신다. 그리고 요 12:32에서도 인자가 들리면 사람들을 그에게로 이끌 수 있다고 하셨으며, 마 20:19에서는 이방인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셨다. 이러한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인의 총계에 의해 당시 전 세계의 최강국인 로마의 형벌법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죽인 책임을 져야 한다(Reynolds).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빌라도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요한이 생략했지만 유대인들이 눅 23:2에 나타나는 고소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빌라도 역시 고소 요지에 따라 예수가 과연 ① 유대 백성을 미혹하고 ② 가이사에게 납세를 금했으며 ③ 자칭 왕(王)이라고 주장했는지 심문해야 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 가운데 정치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었던 ③의 질문만을 한다. 이것은 빌라도가 지나칠 수 없는 고소 내용으로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반역을 용납않는 가이사에게 책잡힐 수 있는 중대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예수께도 또 다른 의미, 즉 영적인 왕이심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했지만(요 6:15), 빌라도에게도 이는 세속적 왕권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질문은 대명사 '네가'(쉬)에 강조점이 주어 지는데, 이는 피고격인 예수 자신에게 보다는 원고격인 유대인들을 비웃는 질문이었다. 즉 이처럼 초라한 너를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한 것이 참으로 우습다는 간접적 의미를 지닌다.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 '그렇다'거나 '아니다'고 한 마디로 잘라 대답하기 힘든 빌라도의 미묘한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하신다. 즉 유대인들이 고소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의미의 왕은 아니고, 빌라도가 예수님이 참으로 위대한 왕이냐고 묻는 물음이라면 예수께서는 분명히 영적 왕이었으므로 양자의 구분을 확실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Meyer. Alford, Lange).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 여기서 '내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는 부정적 답이 당연함을 나타내는 강한 반문적 의미를 가진다. 즉 빌라도 자신이 만약 예수가 왕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모욕적이라는 뜻의 반문이다. 사실상 그는 유대인의 종교 문제에는 깊은 관심도 없었고. 이른 시간에 더구나 하찮은 종교 의식상의 문제로 함께 모여 있지도 않은 피의자와 고소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죄인을 심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짜증이 날 만도 했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 실무적인 태도로 예수의 범죄의 성격을 묻는 것이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빌라도와 예수님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불행은 사실상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정신세계에 산다는 것 때문이었다. 빌라도에게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왕국이란 관심 밖이었다. 전지하신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으나 여기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보다 핵심적인 문제인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과 근원에 관한 영적 선언을 하고 계시다. 본질적으로 세상과는 다른 통치와 권위와 조직을 가진 나라가 바로 그리스도의 왕국인 것이다. 한편 초대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글에 보면 도미티안 황제(the Emperor Domitian)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형제 유다의 손자들이 했던 대답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대답했다. 그것은 세상적이거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있고 천사적(angelic)이며 세상의 종말에 세워질 것이다'(Brown). 반면 어거스틴(Augustine) 이래로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 쉴리어(Schlier) 등에 의해 꾸준히 주장되어온 '하나님의 영역주권'(Sovereigntry of God)사상의 핵심은 '그의 나라가 여기에 있고 세상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는 것이다. 이것도 또한 사실이나 이 땅 자체가 곧 완성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주님 자신의 진술대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리라. - 여기서 '종들'(휘페레타이)이 천사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으나(마 26:53, Bengel, Lampe) 이 세상에서 예수를 추종하던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좋다. 실제로 군중들은 예수를 임금으로 삼으려 했고(요 6:15) 이때 예수께서 이들을 규합했으면 능히 세상의 통치자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정치적이며 폭력적인 통치에 대해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의 폭력을 만류했던 것이다.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 문제의 요점을 좀 더 다그치기 위해 36절에 나오는 '내 나라'란 예수의 말을 받아 빌라도는 '왕국이 지상에 있지도 않은데 왕 같은 행세를 하는 너는 누구냐? '는 의미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 질문은 '왕'에 관한 내용만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빌라도의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그러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쿤'은 신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는 접속사로 곁으로 나간 문제의 핵심을 다시금 본 주제로 돌리는데 사용되는 것이다(Blass, Debrunner). 즉 빌라도는 33절에 했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왕인지의 여부를 심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 빌라도가 조롱조로 다시 질문했지만 예수께서는 여기서 긍정적으로 '그래 당신이 옳게 말했소, 내가 왕이요'라고 말씀하셨다(Bultmann, Dodd).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빌라도의 질문을 액면 그대로 시인하는 것이라기보다(마 26:11 참조) 요한이 일관되게 서술하는 예수의 메시아성 선포로서 '나는~이다'(에고 에이미)란 형식과 연관된다(요 6:25; 8:12; 10:11; 11:25; 14:6).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 이 문장에 2번 나오는 '이를'은 '진리에 대한 증거'를 말한다. 즉 예수께서는 구원을 위한 진리의 선포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 여기서 '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이아'( )에는 정관사가 붙어서 그리스도 자신으로 말미암은 바로 그 구원의 절대적인 진리, 즉 복음을 말한다. 예수의 삶은 성육신 자체로 이미 충만한 진리를 형상화했고(요 1:14) 그의 인격 자체는 바로 진리의 계시였다(요 14:6). 또한 그의 전 삶은 진리 증거로 일관되었다. 이러한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만이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진리에 속하는 자만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나님 이 선택하신 자만이 구원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사실과 더불어(요 3:27; 6:44,45) 당시 빌라도가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그 근본 원인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18:38 빌리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 절대적 입장에서 참 진리되신 자신을 증거하는 예수에게 빌라도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상대적인 진리(정관사가 없음)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진리가 자신 앞에 서 있으나 그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빌라도를 유명하게 한 이 질문에 관한 언어 유회(word-play)가 있다. A.D. 5세기에 제롬(Jerome)이 번역한 라틴어역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에 보면 본문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Quid erst veritas?' 그런데 이 글자들의 위치를 바꾸면 'Est vita quiadept'가 된다. 그 뜻은 '지금 앞에 있는 그 사람이다'가 된다. 이러한 표현은 빌라도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참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대적 진리만을 반복하여 외치는 미련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 빌라도가 비록 진리를 깨닫지는 못했으나 그는 예수가 왕으로 있는 진리의 왕국이 가이사의 나라를 위협할 가능성은 전혀 없음을 확신했다. 여기서 '죄'(아이티아)란 바로 형법상의 죄를 말하며 따라서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로마 실정법상 무죄임을 선언한 것이다. 또 계속해서 예수를 무죄로 선언했어도(요 19:4,6)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는 결정적 과오를 범했다(요 19:16). 이러한 이율배반적 행동은 결국 그가 '진리가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8:39 빌라도는 그의 판단대로라면 예수를 조건 없이 석방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가 제시한 조건은 재판장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 되며 강도 바라바와의 선택에서 결국 제외된 예수는 졸지에 강도보다 더 악한 자가 되고 말았다. 강도들과 함께 처형장에서 죽게 된 치욕과 함께 이것은 예수께 말할 수 없는 모욕이 되었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의 총독은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이나, 죄가 정해진 죄인이라도 풀어 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러나 본절의 전례는 로마 총독의 사면권 차원에서 보다는 유월절과 관련된 유대 지방 특유의 풍속에서 비롯된 것 같다. 즉 이 풍속에 대하여 고대 문서인 '엠페사임'(M.Pesahim)에는 '그들이 감옥에서 석방해 주고자 하는 자를 대신하여 유월절 양을 죽일 수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어 유대 지방에서 매년 유월절에 죄인의 사면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풍속이 진짜 있었는가에 약간의 다른 견해가 있다. ① 유월절에 총독이 죄인 한 명을 석방할 수 있었으나 백성들이 죄인을 지명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Breanscomb). ② 이 풍속에 대하여는 복음서에 전부 기록되어 있으며(마 27:15; 막 15:6; 눅 23:17,18). 또한 고대 문서에도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죄인이 풀려난 기록이 있으므로 역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The Papyrus Florentinus, 61,59). 그러므로 전자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있었으며 더욱이 본문의 '놓아주는'이라는 말이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죄인을 놓아주는 풍속이 해마다 시행되어 정례화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하여튼 빌라도는 이 전례에 근거해서 사람들(고소자들뿐 아니라 이미 날이 밝았으므로 흥미 있는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많은 군중들을 포함)이 예수를 석방시킬 것을 예상한 듯하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 '유대인의 왕'이란 공회원들의 고소와 더불어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의 중심 죄목으로서 빌라도가 고소자와 더불어 피고인인 예수를 경멸하여 부르는 호칭인 듯하다.
18: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 빌라도의 가냘픈 기대는 무너졌다. 바로 5일 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시에 그렇게도 열렬히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며 환호했던 그 군중들의 태도가 이렇게 급변하게 된 것을 간교했던 빌라도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군중의 선택에 대해 마태와 마가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설득과 충동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마 27:20; 막 15:11). 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리들의 양심과 선택은 타락의 무저갱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ynolds).
바라바는 강도러라. - '바라바'라는 이름의 뜻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는 민란을 일으킨 죄로 살인 죄목을 가지고 투옥되었던 자이다. 비록 그는 범법자이긴 했으나 로마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으므로 열심당원 같은 극좌파나 유대 민중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죄하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란 정치적 죄목으로 고소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게 한 상황에서, 반대로 실정법을 위반한 정치범으로서 파형에 해당하는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백성들의 어리석고도 말할 수 없이 불의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 역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즉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바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예수
께서는 죄가 없으심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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