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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감독과 집사의 자격 및 본서 기록 동기의 천명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13절은 초대 교회 당시 에베소 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목회의 주요 현안과 관련하여 신학 원리적인 측면에서 목회 지침을 주고 있는 본론 전반부 1:3-3:13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이런 문맥 하의 본문은 공중 예배와 관련된 몇 가지 목회 지침을 기록한 전장에 이어 성도 간의 일치와 교회질서 유지의 관건인 교회조직 정비와 관련하여 감독(overseer)과 집사(deacon)의 자격 요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좀 더 상술하자면 1-7절에서는 교회를 책임 맡아 감독하며 교인들을 가르치고 그 신앙생활 전반을 보살펴주는 직무를 담당하는 감독의 자격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8-13절에서는 교회의 재정(財政)과 행정 업무 등을 맡아보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집사의 자격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후반부 14-16절은 내용상 대칭을 이루는 본서 본론의 전반부 1:3-3:13과 후반부 4:1-6:2을 구분하는 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일종의 삽입 단락이다. 본서 기록 동기를 천명하면서 교회(Church)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교회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것과 교회의 설립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전반부 1-13절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대할 때 우리는 감독과 집사와 같은 교회 직분과 직제에 관련된 실로 의미심장한 구속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Church)란 다름 아니라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의 신앙생활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사회 조직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질서의 하나님을 믿는 택한 백성들인 교회 공동체는 더욱 질서와 조화가 필요하다(살후 3:7). 따라서 교회 공동체의 질서(秩序)와 조화(調和)를 이루기 위한 교회 조직 정비는 필연적이다. 또한 교회(Church)는 세상을 향하여서는 복음 선교의 전진 기지이기도 하다. 물론 구속사(救贖史)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구속사를 당신의 절대 주권에 입각하여 단독으로 경륜하신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는 필히 성도들의 순종과 사역을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를 전개하시는바 성도는 개인과 교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복음 선교의 전진 기지인 교회는 그 선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하여 교회의 체계적 조직 정비를 통하여 정책 수립, 성도의 자질 향상 등을 도모해야 한다. 구속사의 주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나 그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성도들의 순종과 사역이 요구된다는 대전제 위에서 그 수단과 효율적 방법으로서의 교회의 조직 정비는 시대를 불문하는 구속사의 현실적인 요청이다. 한편 이러한 교회 조직이 그 기능을 올바르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회 조직의 핵심인 장로(감독)와 집사와 같은 직분자들이 그 영적 자질에 있어서나 성품과 실생활에 있어서 다른 성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외적으로 교회의 건덕(健德)을 위해, 또 대내적으로 직분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성도들의 일치(一致)와 질서(秩序)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를 비롯하여 교회의 직분을 맡은 교회지도자들은 자기 한 사람이 다른 성도들과 교회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여 신앙과 생활에 있어 항상 타의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후반부 14-16절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대할 때 바울이 본서의 저작 동기를 밝히면서 비록 간략하나마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16절)은 실로 지상 교회가 담당해야 할 구속사적 사명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다. 사실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제 1위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과 제 3위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과 함께 전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자(創造者)로서 절대적 통치권을 가지신 제 2위 하나님(God, The Son)이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의 죄 값을 대신 갚는 대신 인간을 구원해 주시려는 성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법인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시고자 구약의 거듭된 약속과 예언에 따라 성육신(Incarnation) 강림하셨다. 그리하여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께서는 훗날 재림하사 현 세상의 역사를 종결시키시고 모든 인간을 당신이 행하신 구속 사역을 믿고 회개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가르시어 각각 천국의 영생과 지옥의 영원한 벌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새 약속 곧 신약(新約)을 주셨다.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자가 이 신약 복음을 듣고 회개토록 하기 위하여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Church)에 이 복음 전파 사명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주의 제자된 성도들은 세상 끝 날까지 주의 새로운 약속인 이 복음(福音)을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가장 효율적으로 감당하며 이 사명 수행에 방해가 되는 사탄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더욱 진력하여야 할 것이다.
외울 말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3:16)
감독의 자격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집사의 자격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본서의 기록동기
14 ○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본문 & 자료노트
원어 연구-3:2, 근신하다
딛 1장 자료노트 참조
원어 연구-3:2, 아담하며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코스미오스'( )이다. 이 단어는 '코스모스'( )에서 유래 하였는데, 신약 성경에서 '코스모스'는 주로 '세상'(the world), '세계'라는 뜻으로 쓰여 인류가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킨다(마 26:13; 요 21:25; 행 17:24; 고전 3:22; 빌 2:15). 또 죄로 인해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불신앙적인 사람들이나 그러한 경향성을 가진 악한 일들을 가리킬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요 7:7; 고전 1:21;
요일 2:16). 그리고 '코스모스'란 단어는 위의 뜻 외에도 '질서'(order), '정돈'(arrangement)이란 의미와 함께 '장식'(decoration), '단장'(ornament)이란 뜻도 지닌다. 이는 우주 만물의 질서 정연함과 아름다움에서 유래한 의미들일 것이다. 본절에서의 이 단어는 이런 의미에 연유하여 '잘 정돈된'(well arranged), '예절 바른'(seemly). '정숙한'(modest) 등의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절에서 '아담하며'란 의복이나 장식물 등으로 치장한 결과 갖는 외형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차분하게 질서가 있고 또 예절이 발라 그 드러나는 인격이 매우 고매함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참된 아름다움은 물질적이거나 외형적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숙한 삶과 신앙 인격에서 나오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보감-3:16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 15대 사역과 그 목적
사역의 목적
1. 낮아지심: 성도를 높이기 위함(요 6:38; 14:3)
2. 탄생하심: 성도를 거듭나게 하기 위함(요 1:14; 3.3)
3. 가난해지심: 성도를 부요케 하기 위함(고후 8:9: 약 2:5)
4. 종이 되심: 성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심(갈 4:6,7)
5. 집을 갖지 않으심: 성도가 하늘 처소를 갖게 하기 위함(마 8:20)
6. 굶주리심: 성도가 영적 양식을 먹게 하기 위함(요 6:50)
7. 목마르심: 성도에게 구원의 물을 마시게 함(요 19:28)
8. 곤고하심: 성도를 안식하게 하기 위함(마 11:29)
9. 헐벗으심: 성도에게 새 옷을 입게 하기 위함(고후 5:4)
10. 버림받으심: 성도를 버림받지 않게 하기 위해(히 13:5)
11. 슬퍼하심: 성도를 기뻐하게 하기 위함(사 53:4,5; 빌 4:4)
12. 구속당하심: 성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요 8:32-37)
13. 정죄 당하심: 성도를 의롭게 하기 위함(고후 5:21)
14. 죽으심: 성도를 다시 살게 하기 위함(요 5:24,25)
15. 다시 내려오심: 성도를 하늘 처소에서 살게 함(살전 4:16,17)
3:1-13 감독과 집사의 자격
본문은 목회의 주요 현안과 관련하여 신학 원리적인 측면에서 목회 지침을 주고 있는 본론 전반부 1:3-3:13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바울은 앞장에서 공중예배 시의 중보 기도와 질서 유지에 관해 교훈한 데 이어 본문에서는 성도 간의 일치와 교회 질서 유지의 관건인 교회 조직의 정비와 관련하여 감독(1-7절)과 집사(8-13절)의
자격 요건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다.
초대 교회 당시 감독(overseer)은 가르치는 일과 교인들의 생활 전반을 보살피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집사(deacon)는 교회의 재정과 행정 업무를 맡아 보면서 감독을 보좌하였다. 이러한 감독과 집사는 교회 질서 확립과 교회 사업 전반의 효율적 진행을 위한 교회 조직에 있어 핵심이 되는 직분자들이다. 따라서 감독과 집사는 신앙 인격에 있어서나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에 있어 다른 성도들의 모범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바울은 본문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교훈한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 요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신앙 인격에 관한 것이다. 즉 교회 지도자는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덕을 나타내며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신앙 인격을 갖춘 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앙 인격과는 상관없이 경제적 능력이나 사람들의 인기에 따라 교회 지도자들을 피택하는 그릇된 관례를 낳고 있는 현대의 교회 상황 가운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3:1 미쁘다 이 말이여. - 바울의 목회서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특이한 애용구로써(딤전 2:15) '모든 사람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일 만하다', 혹은 '전적으로 확실하다'란 의미의 말이다. 그런데 이 애용구가 앞장의 마지막 단락(딤전 2:8-15)과 연결되는 것인지(Chrysostom, Leck, White) 아니면 본장에 언급된 감독의 직분에 연결되는 것인지(Bengel, Alford, Vincent)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본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감독의 직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첨부된 내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Hervey). 즉 사도 바울은 전장의 내용을 마감 짓고 다시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러한 애용구를 문두에 이끄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 ‘감독’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코포스'( )는 신약에 9회 나타나는데(2절; 눅 19:44; 행 1:20; 20:28; 빌 1:1; 딛 1:7; 벧전 2:12,25), 이는 '~에 대하여' 또는 '위에'란 뜻의 헬라어 '에피'( )와 '돌보다'란 뜻의 헬라어 '스코포스'( )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이 말은 '교우들을 돌보아주는 역'이라는 뜻을 지닌다. 즉 감독은 교회를 다스리는 직능과 더불어 교인들의 생활 전반을 보살펴주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감독의 직은 유대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바울의 교회 직분 목록(고전 12:28; 엡 4:ll)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 장로(elder)는 직명인데 비해 감독(bishop or overseer)은 그 직의 내용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초대 교회에서 장로는 말씀 선포를 전담한 '가르치는 장로'와 봉사의 기능을 전담한 '다스리는 장로'가 있었다. 그런데 사도 시대 이후 교회 직제가 발달하면서 점차 감독직을 장로직과 구분하여 장로직보다 우위에 두기 시작하였는데 곧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나 동방 정교회 등에서 볼 수 있는 감독직이다. 이러한 감독 또는 장로직에 대하여서는 본장 연구자료, '교회의 직분 이해'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자세한 사항은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선한 일을. - 여기서 '선한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온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들을 통칭하는 말로 볼 수 있는데 목회서신에서는 6회 나타난다(딤전 2:10; 딤후 2:21; 3:17; 딛 1:16; 3:11). 그중 딤전 2:10에서는 여자가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행으로 할 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이 감독의 본분임을 시사하고 있다. 즉 감독은 가르치는 일을 혹은 다스리는 일을 전담하게 되긴 하나 결국 그들은 각 성도를 돌보며 교회를 책임 맡은 자들이니 그 직분을 가볍게 여길 수 없으며 형제를 돌보며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일은 '선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직이 직제화되고 교권적이 되면 이와 같은 감독 본연의 성격은 잃어버리기 쉬운 법이다. 즉 그 같은 직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청지기 직분임을 알고 수직적으로는 하나님 사랑, 수평적으로는 인간 사랑의 차원에서 수고하고 봉사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같은 직은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권세를 행사하는 잘못된 결과를 낳기 쉽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곧 감독 중의 감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교황직이다.
사모한다 함이로다. - 이것은 감독이라는 직책이 세상적인 명예와는 구별된 거룩한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과 긴밀히 연관된 직책임을 강조하는 말이다(고전 12:31; 14:1). 그런데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에서 자원하여 교회의 감독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희생 제물(犧牲 祭物)이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협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더욱이 거짓 선생들이 복음의 참된 기초를 파괴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회를 돌보는 일을 맡는 데는 반드시 철저한 헌신과 자기희생이 요청 되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는 그 어려운 일을 자원하여 맡고자 하는 자들에 대한 칭찬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 본절 이하 7절까지에서는 감독의 덕목으로 15종이 제시되는데 그 중 6종은 소극적인 성격의 것이며 9종은 적극적인 성격의 것이다. 그런데 본절의 첫 덕목은 15종 전체를 총괄하는 성격의 것으로 딛 1:6,7에도 제시되어 있다. 즉 감독은 '선한 일'을 힘쓰는 자이므로(1절) 덕행의 전형이어야 하며,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비행(非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 이것은 집사의 자격과도 관련하여 요구되고 있는 것으로서(12절)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은 논란이 있다. ① 다처주의(多妻主義)를 금한 것이라는 해석이다(Strack).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중에도 이 풍속이 있었고 또한 초대 교회에도 이 같은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② 아내를 둔 자의 불륜한 행동을 금한 것이라는 견해이다(luther, Lock). 즉 이런 성행위는 당시 헬라 문화적 배경의 사회에서 그리 심각한 악덕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초대 교회 교인들 간에서도 자행되었기 때문이다(고전 5:1,2; 6:15-20). ③ 아내가 죽은 후 재혼을 금한 것이라는 견해이다(Tertullian, Orison, Afford, White, Vincent). 이는 감독이 재취(再娶)해서 또 다른 자녀를 낳을 경우 복잡한 가정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그럴 경우 교인들의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세 견해들 중 비교적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 번째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재혼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인 점(고전 7:8,9,39,40)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당시 초대 교회의 엄격한 신앙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두 번째 설이 보다 보편타당성을 지닌다고 하겠다(Lenski).
절제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오스'( )는 고전 헬라어에 종종 나타나나 신약 성경에서는 목회서신에만 특별히 나타난다(딛 2:2). 이 말은 좁은 의미에서 술과 고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긴 하나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세상적 인 모든 욕망을 제어하는 중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Hervey).
근신하며. - 앞선 '절제'와 유사한 의미로서 모든 일에 조심하며 깊이 생각하는 심적 자세를 가리킨다(딛 1:8; 2:2). 그래서 크레다누스(Creadanus)는 이 절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것은 과도한 상상이나 무식이나 어리석음을 떠나 사색에 있어서 순전하고 단정함을 의미한다. "
아담하며. - 근신이 내적 자세인데 비해 아담은 외적 태도를 가리킨다. 즉 의복을 입은 것이나 행동이 단정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상 사람의 행위와 모습은 바로 그 사람의 속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 초대 교회 당시는 오늘날에 비해 교통이나 숙박 시설이 매우 낙후하였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많은 곤욕을 치뤄야 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함은 옛 부터 크나큰 미덕으로 간주되었다(출 22:21; 신 10:19; 딤전 5:10). 더욱이 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으로 인하여 의지할 곳이 없어 유리하는 신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에 대한 대우 문제는 초대 교회의 당면 문제이기도 하였다. 또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자들이 성도들 집에 머물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당시에도 경제력이 없는 고아와 과부 및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교인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 행해야 했던 일이었다(롬 12:13; 벧전 4:9).
가르치기를 잘하며. - 이것은 단순한 능변(能辯)을 가리키지 않고 자신의 믿는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는 능력을 뜻한다. 즉 불신자에게 전도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능통한 것을 말한다. 사실 교회의 지도자는 자신의 양떼를 말씀으로 양육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적극 힘써야 한다(마 9:35). 그러나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즉 말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 사도시대까지만 해도 가르치는 직은 감독과 장로에게 공통되는 것이었으나(딤전 5:17; 딛 1:9) A.D. 2세기경에 이르러서부터 감독의 고유한 직무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하여 이 때 초대 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선지자(엡 4:11)란 직도 없어진 듯하다.
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이것은 술에 중독이 된 것을 가리킨다(잠 23:32; 딛 1: 7). 정도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感性)의 지나친 자유를 허용하며 어떤 때는 인간을 '개'처럼 행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술 자체가 악한 것일 수는 없으나 지나친 음주(飮酒)는 이처럼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오기 때문에 금하는 것이다. 더욱이 감독은 남의 지도를 받는 자가 아니라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자이니 술에 중독되어 이성(理性)을 잃어서는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
구타하지 아니하며. -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이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 '언사(言辭)로써 남을 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그밖에도 손이나 발을 써 폭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지나치게 술 마시는 결과에 따르는 부작용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와 같은 자는 감독 같은 지도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2절 '근신'에 포함된 문제이기도 하다.
오직 관용하며. -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손해나 아픔도 감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납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눅 6:27).
다투지 아니하며. - 이것은 진리를 위한 다툼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 문제에 얽힌 다툼을 금하는 것이다. 이는 곧 관용(寬容)의 정신과 통하는 말로써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일을 삼가하고 타인의 의견도 수렴(收斂)할 수 있는 자세를 가리킨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 이것은 단순히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는 정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을 느껴(시 23:1) 하나님보다 더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가리킨다. 한편 지나친 탐욕은 한 인간을 철저히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버리기 마련이다(6:8; 딛 1:8). 그러나 정당하게 돈을 벌어 정당하게 쓰면 도리어 성경적이나 다만 물욕(物慾) 때문에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쓰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이와 관련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부자 되기를 원하면 결국 빨리 그렇게 되려 하고 따라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하게 된다'고 하였다.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 당시 로마 사회에서 웬만큼 사는 가정은 자녀 교육을 대개 노예들에게 일임하였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부모의 직접적인 훈계와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 중 많은 이들의 풍기(風紀)와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려 많은 이들에게 본을 보여야만 했다. 왜냐하면 자기 집을 잘 다스림은 교회의 다스림에 대한 모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감독이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아니할 때 그 자녀들이 아비께 순복할리 만무하며 그러한 감독이 교인들 앞에서 경건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있기 만무하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 ‘단정함’ 이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제재하여 위신과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을 가리키지 남들을 엄격히 다루거나 흑은 자기를 높이는 행동을 가리키지 않는다(Barclay). 이와 같이 교회의 지도자는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도 위신을 지켜 그 자녀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아비의 말에 순복하게끔 하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밖에서 교회의 일을 보다가 가정으로 돌아와서는 피곤하여 자칫 아비와 교회 지도자로서의 품위를 저버리고 아무렇게나 행동할 경우 그것을 보는 자녀들이 그를 업신여기고 그 말에 순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3:5 한글 개역 성경에는 본절에( )가 쳐져있다. 그 이유는 헬라어 성경 사본들에 따라 본절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생략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절이 4절에 대한 설명구로서 일종의 삽입 구절임을 시사해 준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 이것은 감독을 택할 때에 그의 가정 사정에 대하여 고려하여야 한다는 말이지 이미 임직을 받은 감독의 자식이 패역하게 되었을 때에 그 감독의 직분이 정직(停職)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경우에 감독은 사직하거나 정직되어야 한다는 성경의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장성한 자녀들은 자유인이고 독립인이니 부모가 모든 일에 일일이 다 간섭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구약 시대에도 비록 성직자의 자녀가 범죄하였을지라도 그 성직자는 자신의 직무를 계속하였다(삼상 2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은 잘못 양육된 자녀들로 인한 해악은 다른 교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해를 가져올 뿐 아니라 성직자의 무능까지도 드러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자신의 자녀가 불량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사직(辭職)한 자처럼 근신하는 태도로 겸손히 처신해야 된다는 것이 본절의 부수적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목회자가 자기의 가정에 충실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오퓌톤'( )의 문자적인 뜻은 '새로 심은 나무'이다. 이는 최근에 개심하여 세례 받고 교회에 등록한 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본절 전체는 이 같은 자들이 너무 급격히 교회의 중책을 맡게 되면 자만심에 빠지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한편 초대 교회 당시 개종자들은 부활절 때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은 자는 부활절 전야서부터 다음 주일까지 흰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주일이 '흰 주일'(Dominica in albis)로 불리웠다고 한다.
교만하여 져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포데이스'( )의 문자적 의미는 '연기에 싸이다' 또는 '안개에 휩싸이다'이다. 이는 새로운 개종자가 갑자기 확보된 지위에 대하여 확실한 소명의식이 결여되어 그만 자만심에 휩싸이는 상태를 가리킨다(Earle, Lenski, Robertson). 이 같은 자만심은 그로 하여금 그릇 행하게 만들기 쉬운 법이다(잠 16:18).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이 구절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서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양분되어 있다. 그 까닭은 '마귀'라는 낱말 때문이다. 이 말은 목회서신에 6회(7,11절; 딤후 2:26; 3:3; 딛 3:33), 다른 서신에 2회(엡 4:27; 6:11)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타락한 천사인 사단을 가리킨다. 그래서 학자들은 본절의 '마귀의 정죄'를 ① 마귀가 꾀어 빠뜨리는 그 정죄라 주장하기도 하며(Bernard, Lock, Vincent, Gealy), ② 마귀가 최후에 받을 정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obertson, Olshausen, Lenski, Chrysostom, Calvin, Bengel, Alford, Ellicott). 그런데 여기서 문맥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이 중 두 번째 주장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본절은 초신자가 교만하여 그릇 행하게 되면 장차 마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정죄와 심판과 같은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 말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바울은 초신자가 짧은 신앙의 연륜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기보다는 인간적 자랑거리로 여겨서 자신과 교회에 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회가 될 수 있는 한 오랜 신앙 연륜과 덕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직을 맡기고,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함부로 교회의 일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훈한 것이다. 한편 '마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그랜드 종합 교리 '귀신론' 부분을 참조하라.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 여기서 '외인'(호 엑소)의 문자적인 뜻은 '외적인 것'이다. 즉 이것은 잔의 겉과 몸의 외부의 장식과 무덤의 외부와 성전의 바깥 뜰 등과 같은 외부적인 것 또는 바깥을 의미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 말은 교회의 회원이 아닌 사람, 즉 불신자를 가리킨다(고전 10:32; 골 4:5; 살전 4:12). 따라서 본절은 감독 자격의 마지막 조건으로서 감독은 무릇 교인들뿐만 아니라 불신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가 교회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였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규정은 너무 엄격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불필요한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규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성도들을 가리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교훈하신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사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가득 풍겨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성도가 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는 책임이다(마 5:13-16; 고후 2:15).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이는 서로 연관된 표현으로 '마귀의 올무'가 곧 비방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즉 도덕적 결함으로 인해 교회의 지도자가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게 되면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로서 마귀의 간사한 술책에 교회가 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벧전 2:12). 따라서 목회자는 단순히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빛'이요 '진리의 보루'라는 입장에서 모범이 될 만한 인격과 삶을 갖추어야 한다.
3:8 본절에서부터 13절까지는 감독될 자의 자격 요건과 유사한 집사될 자의 자격에 관해 논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 여기서 '집사'(디아코노스)란 원래 '종' 또는 '시종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Earle). 그런데 집사(deacon) 제도가 초대 교회 안에 정착되면서 이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감독과 다른 일들을 맡아 보았는데 곧 교회의 감독 및 장로들을 보좌하는 일을 주무로 하였고(행 6:1-7; 빌 1:1) 특별히 교인들 중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썼다. 사실 집사가 초대 교회의 직분으로 자리잡게 된 최초의 동기는 구제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행 6:1). 그런데 이 '디아코노스'란 말은 초대 교회 내에서 정식 직분화되기 전까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되어졌다. 즉 공적인 면에서 집사의 직제를 가리켰고(빌 1:1), 비공식적인 면에서는 봉사하는 자 모두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엡 6:21). 결국 집사는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온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책임에 분명하다. 한편 어떤 학설에 의하면 '집사'는 장로를 가리키는 별명이라고 하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집사직은 성경에서 엄연히 장로직과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행 6:3). '집사'와 관련해선 본장 연구자료, '교회의 직분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단정하고. - 이것은 '신중한 행동' 곧 자기 제재에 엄격하고 규모 있게 행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결코 잘난 체하거나 짐짓 점잖은 모양을 취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4절 주석 참조.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 여기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말로써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Benoel, Robertson). 집사는 되는 대로 말만 늘어놓는 자가 아니라 말한 바를 실천에 옮길 줄 아는 신실한 자이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집사는 교회의 재정과 같은 중요한 일들을 맡은 자로서 그 무엇보다 신실성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 감독에게도 경계된 조목이다(3절). 즉 집사들은 구제를 위해 각 가정을 다녀야 하는데 만일 그들이 술을 즐긴다면 자신이 맡은 일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을 뿐더러 당연히 말이 많아지고 험담과 쓸데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것이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 '더러운 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이'를 뜻하는데 이것은 공금을 도용(盜用)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따라서 이 같은 일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 큰 문제가 됨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성경에서 발람(벧후 2:15,16), 게하시(왕하 5장), 가룟 유다(마 26:14-16)는 더러운 이를 탐한 하나님의 종으로 두드러진 본보기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부정의 대가는 결국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당한 이익이라 할지라도 과도하게 취하고자 함 또한 탐욕을 낳게 되니 이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3:9 깨끗한 양심에. - 이것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리킨다(1:5). 이는 중생한 자의 양심으로,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려 하고 그렇게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선 회개하는 양심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하여 '양심'에 대해서는 롬 2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 바울은 집사들에게 단지 '깨끗한 양심'만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여기에다 '믿음의 비밀'까지 더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처럼 '양심과 믿음'을 함께 연결 지음은 본서의 한 특징으로(딤전 1:5,19), 신앙과 행위의 불가분리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약 2:26). 한편 '비밀'이란 본래 오래 동안 숨겨져 있다가 마침내 공개되거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것은 신비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신비적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으로 인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의 진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란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복음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 여기서 '시험하여 보다'(도키마조)는 금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듯 참과 거짓을 구별해 내기 위한 시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은 어떤 주제와 기간을 정해 놓고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실성과 구원의 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알아보는 교회 전체의 관찰이라 할 수 있다(Alford, Earle, Lock, Vincent). 영국에서는 집사의 직분을 사람들에게 맡길 때에 감독의 개인적인 면담에 의해 작성된 간증서를 제출케 할 뿐만 아니라 성직 수임시 회중들 전체의 동의를 얻은 후에 집사직을 임명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서도 교회 재정 증대나 기타 인본주의적 목적을 위해 아무나 함부로 집사로 임명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봉사의 사명을 부여받는 거룩한 직분이라는 점에서 엄정성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조차도 그 직책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질서 있게, 또한 모두가 합력하여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요 15:16).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할 것이요. - 이 구절은 집사로 임명받을 자가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음이 교회 회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직분을 수여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교회 내에서 직분을 맡을 자는 그 직분을 감당할 자질을 지닌 자여야 하고 또한 그 자질을 회중들에게 인정받을 때만이 그 직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 여기서 말하는 여자들이 누구냐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이 의견이 다양하다. ① 흠정역(KJV)에서와 같이 집사들의 아내를 가리킨다고 본다(luther, Bengel, Weiss, Vincent). ② 감독들과 집사들의 아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CaIvin). ③ 여자 집사들로 본다(De Wette, Alford, Robertson, Lenski, White). ④ 일반 부녀자들(the women)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런데 이상의 주장들 중에 세 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또한 실제적으로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본문의 '이와 같이'란 말이 앞절의 남자 집사들에 관한 자격(8-10절)과 '마찬가지로'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에는 여자 집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롬 16:1에 나오는 뵈뵈(Phoebe)가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단정하고. - 남자 집사에게도 공통적으로 요구되었던 자격이다(8절). 이것은 경솔과 반대되는 덕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함에서 나오는 신중성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런 덕을 소유한 여인으로는 이가봇의 모친(삼상 4:19-22), 사렙다의 과부(왕상 17장), 수넴 여자(왕하 4:8), 훌다(왕하 22:14), 에스더(에 4 : 15, 16). 예수의 모친 마리아(눅
1:46-55), 안나(눅 2:36,37), 마리아(눅 10:38-42), 루디아(행 46:14,15), 브리스길라(행 18:26), 뵈뵈(롬 16:1) 등이 있다.
참소하지 말며. - 여기서 '참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 )는 '비방자', '사단'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Hendriksen), 이는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해 준다. 즉 남을 비방하는 것은 마귀적인 행동으로 온 교회를 어지럽히고 만다는 것이다(계 12:10). 그런즉 '참소하지 말라'는 것은 남자 집사에게 요구되었던 '일구이언'을 하지 말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8절).
절제하며. - 이는 세상 것에 취하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있음을 뜻한다. 이에 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 - 여기서 '충성'이란 '신실'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일에 있어 거짓이 없으며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끝까지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고전 4:2).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 바울은 여기서 다시 남자 집사에게 돌아와 그의 가정적 의무를 말하는데 그 내용은 감독에 대하여 주었던 교훈과 같다(2-4절).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머리가 되는 것'이다(4절) 롬 12:8과, 살전 5:12에서는 이 단어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에피스코포스)에게 적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선 가장(家長)으로서 한 가정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남자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지금까지는 감독과 집사될 자의 마땅한 자격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선 그러한 감독과 집사가 자기 직분을 잘 감당했을 때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보상은 두 가지로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담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지위. - 여기서 '지위'(바드모스)란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보이는 낱말인데 문자적인 뜻은 '터', '기초', '계단'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선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양하다. ① 집사의 직에서 보다 높은 장로나 감독의 직으로 승진함을 나타낸다(Jerome, Bengel, Lightfoot, Vincent). ② 교회 내에서 보다 높은 평판을 얻게 됨을 나타낸다(Lutaler, Calvin). ③ 자신의 믿음이 진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Gealy). ④ 최후의 심판 때 좋은 보상 받게 됨을 의미한다(Alford, De Wette, Ellicott). 이중 가장 타당한 견해는 두 번째인데 실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 뿐 아니라 교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기 마련인 것이다.
믿음에 큰 담력. - 여기서 '담력'(파레르시아)은 히 10:19에도 나온다. 이 낱말은 원래 '언론의 자유'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복음을 증거하고 수호함에 있어서 담대한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의 일꾼은 자신의 맡은바 직을 충실히 행하기 위해서 소심한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인해 대담성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보상의 일종인 것이다.
3:14-16 본서 기록 동기 천명
본문은 일종의 삽입 단락으로서 내용상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는 본론 전반부 1:3-3:13과 본론 후반부 4:1-6:2을 구분하는 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에게 본서를 써 보내게 된 본서 기록 동기를 밝히고 있다(14절). 그것은 바로 에베소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줌과 동시에(15절)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의 심오함을 깨닫게 하여 더욱더 힘써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어진 것이다(16절).
당시 로마 1차 투옥(A.D. 61-63년경)에서 풀려난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베소에서 디모데를 만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처할 필요성을 느껴 디모데를 그 곳에 남아 있게 했었다. 그리고서 마게도냐로 여행한 바울(딤전 1:3,4)은 속히 볼 일을 마친 후 다시금 디모데를 만나보려고 하였으나 사정 이 여의치 못해 지체하게 되었다. 이에 우선 본 서신을 보내 디모데를 격려하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디모데를 친아들처럼 여기고 위하는 노사도(老使徒)의 사랑의 반증이며 또한 후배 사역자를 잘 지도하고 격려해야할 선배 사역자들에게 요청되는 자세에 대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비록 짧지만 이러한 본문에는 바울의 교회관(敎會觀)이 잘 피력되어 있다. 즉 바울은 여기서 교회(Church)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유이며 또 교회의 본질이 진리(眞理),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목회자들은 물론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바른 교회관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우리 모든 성도들이 진정 추구하여야 할 것은 먼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로서 절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교회의 본질되는 진리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정통 교리의 수호와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3:14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일종의 삽입구로 본서의 저작 동기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 당시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일차 풀려나 소아시아 지방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베소에서 디모데와 합류한 바울은 에베소의 여러 문제에 대처할 필요성을 느껴 디모데를 그곳에 남아 있게 하였다. 그리고서 자신은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한 일전의 자신의 약속(빌 2:24)을 지키기 위하여 마게도냐로 여행하였다(딤전 1:3,4). 바울은 그곳에서 속히 볼 일을 마친 후 다시금 에베소로 돌아가 디모데를 만나보려 하였다. 본절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행이 지체될 것 같자 우선 편지를 보내 디모데에게 목회상 중요한 사항들을 지시한 것이다. 딤전 1:3 주석 참조. 그런데 본장에 기록된 지침들은 디모데가 모르고 있었을 리 없는 지침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지침을 확고히 해두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인 디모데에게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지침들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올바른 신앙을 유지하며 모든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주의 영광을 위해 힘쓰도록 하기 위해 이와 같은 지침들을 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 ‘이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우타'( )의 문자적인 뜻은 '이것들을'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교회에서의 기도와 제직에 관한 지침(딤전 2,3장)을 가리키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뒤따르는 기사를 포함하여 본서 전체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 여기서 '집'(오이코스)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전'을 가리켰으나(왕상 3:1; 6:1; 대상 22:2; 29:2; 시 52:8), 여기서는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성도들의 집합체인 교회를 가리킨다(고전 3:16,17; 엡 2:20-22; 벧전 2:4,5). 이와 같이 교회를 집으로 비유한 어구 자체는 이곳에만 보이나 신약의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이해한 사상은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초대 교회는 가정에서 시작되었다(행 1:13; 12: 12; 16:40; 롬 16:5; 골 4:15; 몬 1:2). 그리고 바울은 신자를 '하나님의 권속'(엡 2:19)이나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고후 6:16)이라 하였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고전 4:1)라 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정적인 일면을 잘 나타내 준다. 즉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리스도를 남편이라 하고(엡 5:24; 계 19:7), 신자들은 서로 형제라 부르고,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 하며, 천국은 아버지 집이라 한다(요 14:2). 한편 바로 이러한 명칭 속에 성공적인 목회의 비결이 암시되어 있다. 즉 목회자는 교회를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는 행복한 집으로 만들어야지, 한갓 사교장이나 공회당이나 강의실 같은 곳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말은 생명 없는 우상과 대조되는 말이다(살전 1:9), 즉 이 말은 하나님 자신이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살아계시고 또한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전능자요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해 준다(Benoel). 그리고 '교회'(엑클레시아)란 '불러내었다'는 뜻으로 본래 헬라 도시 국가에서 시민들을 집회장이나 재판장으로 불러낸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교회에 적용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니 곧 세상에서 부름 받은 자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교회는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는 형성될 수 없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형성된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마 18:17).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그랜드 종합 교리 교회론', '교회에 대한 성경적 용어들'을 참조하라.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이것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와 동격으로 교회를 가리키는 또 다른 명칭이다. 여기서 먼저 '진리'(알레데이아)란 공간적으로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이요, 시간적으로는 영원불변한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요 17: 17) 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1:14,15; 14:6)를 가리킨다. 이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항상 우리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 것이다. 한편 다음으로 '기둥과 터'는 견고성과 확실성 또는 토대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교회가 진리를 전파하고 떠받드는 기관임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께서 친히 교회를 지키시고 돌보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 도 굳건히 진리를 전파해야할 것이다(마 28:27; 요 16:33).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 여기서 '경건'은 본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낱말로써(딤전 4:7,8; 6:3,5,6,11; 딤후 3:5) 일면 '믿음'과 동의어로도 인정된다(딤전 2:2). 그리고 '비밀'이란 계시된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9절). 즉 비밀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데 그는 지금까지 숨겨져 있다가 성육신(成肉身)하사 이 세상에 나타나셨으므로 비밀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는 관계 대명사로서 who, what, that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것을 ① '그리스도'(Origen, Alford, Nestle, Aand, KJV, RSV등), ② '하나님'(Chrysostom, Bengel, AV, Luther), ③ 바로 앞선 '경건의 비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전후 문맥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고 관계 대명사로 표시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외경심을 더하게 하기 위함에서인 것 같다.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과 선재(preexistence)라는 두 가지 중요한 기독론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인 예수께서 육신을 취하사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요 1:14; 롬 1:3; 요일 4:2). 이에 관해서는 막 10장 자료노트, '예수의 성육신과 대속 수난을 통한 인간 구원의 필연성' 및 요 8장 자료노트, '그리스도의 선재성'에서 비교적 상세히 언급 하였으니 참조하라.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 이는 비록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을 좇아 이 세상에 나셨으나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죄인을 위한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후 승천하사 본래의 신적 영광을 회복하고 죄 없으신 분임을 드러낸 것을 가리킨다(빌 2:5-11).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 이것은 하늘의 존재들조차 진리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함으로 예수께서는 천사들에게 자신을 보이셨다는 말이다. 사실 예수의 전생애를 살펴볼 때 천사들은 항상 예수를 부종(附從)하였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사실을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찬미한 존재도 천사이며(마 1:18-25; 눅 2:12-14) 사십 일간 금식 기도하신 예수를 수종 든 존재도 천사이다(마 4: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시고(마 28:1-7) 승천하실 때에도 천사들이 곁에서 수종 들고 호위하였다(행 1: 9-11).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 이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 제자들이 믿음의 도리이자 구원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의 지경에까지 다니면서 증거한 사실을 가리킨다(마 28:18,19; 행 1:8).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쉬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하신 모든 자들이 다 구원을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롬 11:25,26).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 이것은 예수께서 성취하신 구속(救贖) 사역과 그의 일꾼들이 전파한 복음으로 인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믿게 된 것을 가리킨다.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 이 구절은 하늘로부터 초림(初臨)하신 예수께서 다시금 하늘로 올라가신 것, 즉 승천을 의미한다(마 25:31),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이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니 모든 사람들에게서 찬송과 영광,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마 16:27; 빌 2:11). 이에 관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기독론' 중 '그리스도의 승천' 부분 및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 부분을 참조하라.
연구자료
교회의 직분 이해
초대 교회 시대 중에서도 정확히 사도 시대(A.D. 30-100) 때의 초대 교회 시대는 이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되었던 변혁기였음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A.D. 30년경의 예수의 부활 직후 사도들을 중심으로 이제 막 예루살렘에서 태동한 이래 유대 지경을 넘어 세계만방에까지 폭발적으로 확장되어 가던 격변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교회는 그 조직과 신학을 아직 확고히 정립하지 못하였었다. 따라서 이처럼 모든 것이 미분화되었던 시기의 초대 교회의 상황을 보도한 신약 성경으로부터 교회의 바람직한 직제 전체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초대 교회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이다.
또한 어느 조직에 있어서든 그 조직에 필요한 여러 직분의 직급과 직책 및 이를 체계화한 직제란 고정 불변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 그 조직의 본령(本領)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나 재조정할 수 있는 가변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초대 교회 시대의 여러 직분에 대한 신약 성경의 정보를 취합하여 먼저는 교회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직분과 이에 대한 자세 및 교회의 직제 전체에 대한 원리를 추출하여 현대 교회의 직제 편성의 원리를 수립하는 자료로 삼고자 한다. 이는 또한 교회에서 현재 수고와 봉사의 직분을 맡은 각 직분자가 자기 점검의 기준으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1. 직분의 정의와 분류
성경에 사용된 직분(office or post)이란 기본적인 직급과 직위 및 이에 따르는 대강의 직무 구분을 표시하는 포괄적 용어이지,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한 직분에 속한 자가 각각 맡게 되는 다양한 직책 전체까지 세세히 밝히는 용어가 아니다.
한편 교회의 직분은 크게 비상 직분(非常職分)과 통상 직분(通常職分)으로 구분될 수 있다. '비상 직분'이란 초대 교회의 창립을 위하여 존재하던 직분으로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직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통상 직분'이란 이제 일단 건립된 후 세상 끝 날까지 이 지상에 항존적 제도로서 존속할 교회가 비상 직분자들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해서 안정된 체제를 구축하고 또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항존적으로 세우신 직분을 가리킨다.
2. 비상 직분에 속하는 직분들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가 이에 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약 교회의 설립을 위하여 자신이 공생애를 통하여 내내 훈련시키신 자들로서 새 언약 곧 신약의 인간 측 대표가 되었던 것은 물론 이제 직접 당신으로부터 교회 설립의 명령까지 받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이 비상 직분을 주셔서 일단 도처에 교회를 설립토록 하셨다. 이러한 비상 직분은 초대 교회의 설립이라는 한정적 사역을 위한 직분으로서 특별히 강력한 권능과 신적 권위가 보장되었는데, 그들의 사역 결과 신약 교회가 현존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직분의 영향력은 계승된다 하겠으나 그 직분 자체는 시효가 성취 종료되었으므로 현대 교회에는 이 직분을 가진 자가 없다.
① 사도(Apostle)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초대 교회 설립의 사명과 신적 권위를 부여 받은 자들로서 특별한 이적적 권능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초대 교회를 건립하고 그 기본 조직과 신학을 정비한 베드로 등의 12제자와 바울 등이 가졌던 직분이다. 이들은 또한 신약 성경의 직 ․ 간접의 저자들로서 신약 성경의 권위의 인간 측 보증자가 되었다. 행 1장 자료노트, '사도의 이해'를 참조하라.
② 선지자(Prophet)
초대 교회 당시의 일종의 순회 설교자들이 가졌던 직분이다. 물론 이들도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처럼 장래에 되어질 일을 예언하기도 하였다(행 11:27,28). 그러나 이들은 초대 교회의 신앙 확립을 위해 말씀의 은사를 보다 풍성히 받은 자들이었으므로, 한 교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사도들이 선포한 말씀을 여러 방면으로 확증함으로 사도들을 돕는 일에 주력하였다(고전 12:28; 엡 2:20; 딤후 4:ll).
③ 전도자(Evangelist)
성경은 초대 교회 당시에 사도와 선지자 외에도 전도자란 비상 직분이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행 21:8; 엡 4:11; 딤후 4:5). 이 전도자는 일명 '복음 전하는 자'로도 불리웠는데(엡 4:11) 이들 또한 사도들의 동역자요 조력자들로서 사도들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고서 파송되는 등 사도를 돕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대개 어느 한 교회에 얽매이지 않은 점에서는 선지자와 유사했으나 선지자들이 일단 복음이 전해진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사역했다면 이들은 주로 복음이 미처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다니면서 복음을 일단 널리 확산시키는 일에 주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어느 한 교회에 파송되어 오래 동안 머물면서 장로와 집사를 세우고(딤전 3:1-13; 5:22; 딛 1:5) 권징을 시행하기도 하였다(딛 3:10). 이러한 전도자의 직분 자체는 직접 전수된 것이 아니지만 그 사명의 본질이 현대의 선교사들에게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통상 직분에 속하는 직분들
비상 직분을 세워 초대 교회를 창립하심으로써 일단 교회의 기초를 놓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세상에 항존적으로 있을 교회를 위하여 통상 직분을 세워 교회가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며 세대에서 세대로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지며 효율적으로 운영 유지되게 하셨다.
이러한 교회의 각 직분들은 모든 조직의 직분이 다 그러하듯이 직무와 직책의 개념은 물론 직급과 직위의 개념까지 반영한 것으로서, 물론 각 직분 사이에 그 권위와 질서의 순서에 있어서 분명 위계(位階)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 조직의 위계질서는 일반 세속 사회의 계급 조직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일반 사회의 계급 조직은 각 계급에 따른 책임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특권이 기계적으로 부여되며 또한 상명 하복식의 강제권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교회의 직분 조직은 그 책임은 주어지나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그 구원과 상급에 있어서 기계적 특권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원칙적으로 사랑과 순종의 관계이지 강제력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다스리는 장로는 주로 그리스도의 왕 직을 반영하여 교회의 치리권을, 가르치는 장로 곧 목사는 근본적으로 주로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을 반영하여 교회의 교리권을, 집사는 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반영하여 교회의 사역 권을 각각 그 주요 임무로 분담하고 있는바 각 직분은 근본적으로 상호 협력의 관계이지 상하의 관계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이하 제시된 교회의 통상 직분에 대한 설명은 초대 교회 당시의 원형적 개념을 말한 것이며 각 직분은 이러한 초대 교회의 원형적 개념을 근거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다변화해가는 현실의 요청에 따라, 그리고 각 교파에 따라 상당히 변화가 되었음을 필히 기억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현재 각 교파의 지 교회에서의 통상 직분의 현재적 개념과 본고에 게재된 각 통상 직분의 원형적 개념과의 차이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① 장로(Elder)
성경을 살펴보면 장로들은 초대 교회에 일찍부터 나타나서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들과 함께 교회 지도자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로 직분이 초대 교회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방법으로 세워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행 6:1-6에 집사 직분을 세운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자 그 효율적 관리와 치리를 위해서 유대교의 전통적인 장로직을 본 따 자연스럽게 장로들을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세워진 장로 직분은 이후 각 지교회에서도 속속 세워지게 되었을 것이다(행 20:17; 딛 1:5).
한편 이 장로의 주된 직무는 크게 교회를 다스리며 치리하는 일과 교인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장로는 그 권위와 책임에 있어서는 같지만 다시 그 맡은바 직무가 다른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로 세분되게 되었다.
ㄱ. 다스리는 장로:
교회가 점점 더 수적으로 증가함으로 말미암아 사도들만으로는 교회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장로를 세워 다스리는 직무를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 다스리는 장로는 일명 '감독'(Bishop)으로도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행 20:28 ; 딤전 3:1: 딛 1:5,7). 이에 관하여 몇몇 신학자들은 '장로'란 명칭이 '연장자'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감독'이란 명칭은 '관리자'를 뜻하는 점을 들어 '장로'는 직급을 강조하는 말이며 '감독'은 직책 또는 직무를 강조하는 말이었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그리고 또 다른 일부 신학자들은 '장로'란 이스라엘의 장로 제도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 교회에서 주로 썼던 명칭이며 '감독'이란 이방인 교회에서 주로 썼던 명칭이라고도 주장하는데(Bavinck), 사실 여부가 분명치 않다. 어쨌든 후대로 가면서 감독은, 특히 감독제 교회 내에서는 지교회의 일반 장로를 넘어 광범위한 지역의 최고 직분을 가리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ㄴ. 가르치는 장로:
초대 교회 시대 중에서도 초창기에는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 등이 가르치는 직무를 맡았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비상 직분자들이 사라져가자 장로들이 가르치는 일도 맡아 보아야 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산 증인들이었던 사도들이 하나 둘씩 별세하는 반면 교회 내에서 점차 이단 세력이 발흥하게 되자 그에 맞서 사도들의 교훈을 수호하며 옹호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장로들 중에 특히 가르치는 은사를 풍부히 받은 자들을 다시 구별하여 세워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토록 했던 것이다.
한편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 가르치는 장로는 일명 '목사'(Pastor)로도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엡 4:11). 오늘날의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함께 통상 직분 중의 하나로 존속하고 있는 목사 직분은 물론 현대 개신 교회에 이르러 그 직무가 더욱 다변화 되어 본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를 양육시키는 직무 이외에도 교회의 각종 직무의 통합 조정자 및 그 대표자로서의 기능까지 가진 직분이 되었으나 근본적으로는 가르치는 직무를 가진 장로의 직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 집사(Deacon)
성경에서 '집사'라는 직분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은 롬 16:1; 빌 1:1; 딤전 3: 8-13이다. 그러나 행 6:1-6에 언급된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명의 피택 받은 직분자들이 곧 집사들이었으며 이들이 가졌던 직분이 집사 직분의 기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이유는 이들 일곱 명의 적임자들에게 요구된 자질이 딤전 3:8-13에 언급된 집사의 자질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저들을 세운 목적이 저들로 하여금 구제의 일을 전담하게 함으로 장로들이 그 일에서 벗어나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언급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초대 교회 당시 집사직은 교회가 시행하는 구제, 재정 관리 등의 주요 사업의 실무직을 담당케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그 후 교회의 성장, 발전에 따라 교회의 대 사회적 과업과 교회 내에서 요구되는 각종
봉사도 점점 늘어나게 됨으로써, 집사의 직무도 보다 늘어나고 다양하게 되었다.
*. 초대 교회 시대의 직분의 하나로 교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앞서 설명된 직무들처럼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직분이라기보다는 다만 가르치는 직무를 담당했던 여러 계층의 사역자들의 직분을 통칭하는 용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4. 교회 직분자의 자질 및 덕목
초대 교회 당시에만 존재하였던 비상 직분(非常職分)의 경우에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도로 세우셨거나 또는 하나님의 특별하고 비상한 은사를 받고서 격변기에 하나님께서 역동적으로 이끄시는 대로 사역하도록 된 직분이었기에 이 직분자의 보편적 자질은 논할 계제가 못된다.
그러나 장로와 집사 같은 통상 직분(通常職分)의 경우는 그 선출 과정이 일단 교회 구성원에게 위임되어 있으므로 교회 전체의 건덕과 질서 유지를 위한 차원에서 직분을 맡기에 합당한 자를 가릴 수 있는 기준으로서, 또한 이미 직분을 맡은 자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의 기준으로서 그 기본 자질 또는 덕목을 교회가 구체적으로 확립할 것이 요청된다. 이에 성경이 직접 제시하여준 장로와 집사의 자질과 덕목의 목록을 일람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자질과 덕목이란 궁극적으로 성숙한 신앙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들로서 일반 사회 지도자들에게 우선 요구되는 능력과 학식, 권력과 재력 등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자질 장로 집사 관련성구
1. 책망할 것이 없음 딤전 3:2; 딛 1:6,7
2. 한 아내의 남편 됨 딤전 3:2,12; 딛 1:6
3. 절제함 딤전 3:2; 딛 1:8
4. 근신함 딤전 3:2; 딛 1:8
5. 아담함 딤전 3:2,8
6. 나그네를 대접함 딤전 3:2; 딛 1:8
7. 가르치기를 잘 함 딤전 3:2; 5:17; 딛 1:9
8. 술을 즐기지 않음 딤전 3:3,8; 딛 1:7
9. 구타하지 않음 딤전 3:3; 딛 1:7
10. 관용함 딤전 3:3
11. 다투지 않음 딤전 3:3; 딛 1:7
12. 돈을 사랑하지 않음 딤전 3:3
13. 자기 집을 잘 다스림 딤전 3:4,12
14. 새로 입교한 자는 불가 딤전 3:6
15.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음 딤전 3:7
16.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음 딤전 3:8; 딛 1:7
17. 깨끗한 양심 딤전 3:9
18. 믿음의 비밀을 가짐 딤전 3:9
19. 일구이언하지 않음 딤전 3:8
20.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함 딤전 3:4,12; 딛 1:6
21. 고집대로 행치 않음 딛 1:7
22. 급히 분내지 않음 딤 1:7
23. 선을 좋아함 딛 1:8
24. 의롭고 거룩함 딛 1:8
5. 직분자의 기본자세
하나님은 절대 초월자요 역사와 우주의 창조자로서 홀로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태초부터 종말까지의 구속사(救贖史)를 전개해 나가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사역을 필히 경유하여 당신의 섭리를 관철하신다. 따라서 직분을 맡은 것 자체가 곧 상급의 보장은 결코 아니지만 분명 하나님의 구속사에 크게 기여할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직분자들은 그처럼 위대한 직분을 맡겨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는 물론 더욱더 큰 상급을 얻기 위하여서도 먼저는 하나님을 향하여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고전 4:2; 10:30). 실제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러한 직분자들의 노고에 대한 상급을 직 ․ 간접으로 언급하고 있다(빌 3:14; 딤후 4:8; 계 2:10).
또한 직분자들은 그 직분 자체의 내용에 따라 각 성도들을 향하여서는 그들의 믿음의 선배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선도할 의무가 있다. 이때 직분자들은 일반 사회에서와 달리 권위와 이해타산에서가 아니라 희생과 겸손으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선도와 보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벧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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