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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가는 나그네 | |
강 준 배(제6회 평생학습대상 성인교육자 부문 대상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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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생각나기도 하고 잊어버리곤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을 항상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깃거리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4학년 2학기 국어 과목에 윤봉길의사라는 단원에 나오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나의 인생의 지침이 되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시대의 일이었다. 공부를 많이 한 선비가 저녁에 산길을 넘어 다른 마을로 가고 있었는데 산길을 내려가서 마을 입구에 다다를 무렵 산 중턱에서 한 농부가 공동묘지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무심코 걸어가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 농부가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농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덤 앞에 있는 나무로 된 묘비를 파고 있었는데 모든 무덤 앞에 있는 묘비가 모여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선비는 그 농부에게 가서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여쭈어보았다. 그 농부는 이번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마을 공동묘지에 와서 묻었는데 여름이 지나 벌초를 하러 와 보았더니 다른 많은 무덤이 생겨서 글을 모르는 농부는 어느 무덤이 아버지의 것인지 몰라 고민을 하다가 무덤 앞에 세워진 묘지를 모두 뽑아서 마을로 가져가서 아버지 이름을 찾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왜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었고,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이 글속에 담겨 있었다. 이 내용을 가르치면서 야릇한 떨림 같은 것이 가슴속에서 느껴졌었고 아직도 그 내용을 잊지 않게 되었다. 순진한 농부는 글을 아는 사람을 이 산골까지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자기만 고생하면 될 거라는 순수한 마음에 묘비를 파서 찾으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났다. 자기 아버지의 무덤을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무덤까지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시절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직장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 나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부산교대에 들어가게 되고 교사의 길을 걷게 되면서도 교사로서의 소신과 사명감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후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사명과 책임을 느끼게 되었고, 30년 넘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정말 나를 교사의 길로 걷게 된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1974년 12월에 서울서 대학을 다니던 형이 제주에 내려와서 제주에 야학을 만들고 싶다면서 아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하려는 모습에 의아심이 들었지만 나의 친구들과 제주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고, 형이 알고 있는 분과 1975년 2월 1일에 동려야간학교 설립을 하게 되었고, 그 해 4월 3일에 동려야간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교사들은 땀과 노력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어려운 재정이나 여러 가지 문제들도 젊음이라는 말로 해결해 낼 수 있었다.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야학교사로 활동을 할 때는 학교 건물이 헐리게 되자 학교 교실을 구하려 돌아다녔고, 일제강점기시대에 일본군들이 쓰던 막사에 교실을 만들어 운영을 하곤 했다. 이후 여러 차례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없어질듯 하던 야간학교는 1987년 현재의 학교로 이설되어 오면서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2000년부터 야간학교 신축을 위한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총공사비 4억을 들여 야학건물 준공을 마치게 되었다. 2001년 법인으로 설립을 한 동려에서는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야간학교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고, 2004년에 제2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그 당시 법인 활동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재정적인 문제와 운영적인 문제 등 순수한 마음으로 설립한 법인이 존폐의 위기까지 가게 되었다.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법인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또한 운영진들도 30년이 지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초창기시절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교사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 이사장을 맡게 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우선 창립회원과 과거에 열성적이었던 회원들을 규합을 하고 새로운 임원진을 꾸렸고, 동려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동려 30년사 책자를 발간하기로 하였다. 편찬위원회를 설립하여 여러 차례 학교를 이전하면서 사라진 자료들을 모으고 과거회원들이 갖고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는 등 1년 동안 함께 매일 사무실에 모여 과거를 정리하면서 동려 30년사를 편찬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도약을 차근차근 진행하였다. 조직을 정비하기위해 동려야간학교 총동문회를 발족시켰다. 그동안 기수들끼리 친목단체로 활동을 하고 있던 졸업생들은 사단법인과 연관을 맺게 되고 야간학교와의 유대관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제주도 대학 내에 존재하고 있는 동려 동아리와의 대화를 통해 야간학교의 교사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졸업생들을 위한 모임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여 제주대학교 동려 동문회, 제주교대 동려 동문회, 제주한라대학 동려동문회, 제주산업정보대학 동려 동문회를 구성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교 건물이 완성이 되었지만 복도에 유리창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비만 오면 겪는 야간학교 학생들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도지사를 면담하여 복도에 유리창 시설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성인문해자들에게 소홀히 할 수 있는 컴맹을 없애기 위해 컴퓨터를 마련하고, 학교 교실에 컴퓨터실을 준비하여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인의 가정 큰 문제점은 운영자금이었다. 법인 운영비는 물론 야간학교 지원비, 대학동려회 지원비 등 재정마련이 아주 힘들었다. 독지가의 지원도 점점 줄어들고 무작정 지원을 바랄 수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CMS 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1년 동안 활동을 한 결과 250여명의 후원회를 구성하게 되면서 사단법인 활동의 예산마련에 많은 도움이 되게 되었다. 이 CMS 후원회에서 마련되는 돈이 1년에 1,500여만원에 이르게 되었다. 3년 동안 이사장직을 역임하면서 법인 운영이 안정되게 되었다. 또한 학교운영도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를 법인이 운영하는 형태로 학력미인정 학교형태의 평생교육시설로 교육청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과거 동려를 거쳐 간 많은 회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친목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동려 한마당체육대회를 매년 개최하여 동려와 관련이 있는 교사, 회원, 졸업생들과 자리를 함께 마련할 수 있도 록 했다. 또한 사단법인 동려의 조직을 개편하였다. 가장 핵심사업인 동려평생학교, 학교부적응으로 학교를 자퇴한 학생들을 위한 동려청소년학교, 소외계층을 위해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동려교육문화원, 대학생 및 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동려봉사단 4개 기관으로 구성하여 각 기관마다 교장 등 기관장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3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그동안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직업훈련원을 동려교육문화원으로 개편하여 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사회단체보조금을 지원받아 한지공예, 꽃꽂이, 서예, 풍물, 민요, 댄스스포츠, 다도 강좌 등 10강좌를 개설하여 전액 무료로 운영을 하였다. 제주도내에서 기능을 갖고 있는 강사들을 초빙하여 매주 수요일마다 희망 강좌를 선택하여 개인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동려평생학교에 풍물동아리, 서예동아리, 오름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되고 있다. 동려에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도 보람이 있는 것은 자원교사 활동이다. 현직교사로 낮에는 정규고등학교 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저녁에는 평생학교에 와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정말 보람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가르침의 장도 되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많은 것을 얻게 되는 배움의 장도 된다. 어르신들이 어려움 속에서 포기했던 배움에 대한 의욕을 보고, 배우지 못한 한을 느끼면서 내 자신을 반성해보는 계기도 된다. 저녁이 되면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웃으면서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배움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고, 밤늦게 끝나서 돌아갈 땐 한결같이 고마움과 행복감을 갖고 가는 것 같다. 동려평생학교에 다니시는 학생들은 정말 바쁘다. 나이가 들었지만 낮에는 일을 다니시는 분들이 많고, 시간을 쪼개어 학교에 나오신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언가를 기대하며 학교에 다니신다. 정말 한분 한분이 존경할 만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 중에서 안순실이라는 학생이 있다. 젊었을 때 암이라는 병을 두 번이나 이겨내고 우리학교에 다니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분이다. 그 분은 배움을 즐기면서 생활하시는 분이다. 평범하게 살아오는 우리들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인간승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런 분들에게 기댈 수 있는, 배움을 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올해부터 동려평생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지금까지 교장은 명예직이었지만 현직 교사 출신인 나로서는 직접 학교 운영에 참가하여 평생학교를 정규학교 못지않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사회의 방침에 따라 맡게 되었다. 우선 성인문해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초등기초반 2반과 중등기초반을 개설하였고,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초등심화반과 중등심화반, 고등반으로 편성하여 학생을 모집하였다. 학급수가 늘어나면서 교사의 충원도 필요했고, 총 38명의 교사를 모집하여 학교운영에 참가하도록 하였다. 동려평생학교 운영이 안정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입학을 하였다. 총 180여명의 학생이 다니는 꽤 큰 학교로 성장되었다. 학교 시설은 에어컨시설과 난방시설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고, 또 교사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실마다 대형 DVD에 컴퓨터를 연결하여 수업환경을 가꾸어 놓았다. 다만, 교사들의 경력이 1년 미만인 교사들이 많아서, 성인문해의 특성과 성인문해자들의 특성을 연수시켰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성인문해를 위한 교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권유를 하고, 학생지도를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1990년부터 20년간 제주시평생학습센터 풍물반을 지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주도 근로청소년 지도로 시작되었으며 유치원교사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참여가 많아서 그동안 8회에 걸친 어울림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풍물발표회를 하였고 지금은 50대, 60대 되시는 어르신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풍물지도를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단순히 풍물놀이만을 지도하기보다는 제주문화와 관련된 연물지도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고산상고에 재직을 하는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여 전국청소년 예술제에 6번을 참가하여 제주 전통민속인 불도맞이굿놀이, 요왕맞이 굿놀이로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현직교사생활을 하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식보다는 지혜를,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었고, 배우고 싶었지만 시간과 기회와 장소가 없는 어르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교사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나에게는 꼭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 과거 제주에서 생활이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가신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이 많이 있다. 알아본 결과 그들은 지금도 제주도 말을 사용하지만 한글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일본 오사카에 사는 교포들에게 한글교실을 열고, 초등학교를 졸업 못한 분들에게 명예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일이다. 환갑이 넘고 얼마 없으면 세상을 떠나갈 분들에게 하루 빨리 한글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 동려가 제주도민을 위해, 또한 해외에 있는 우리 교민을 위해 배움을 주는 단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글을 모르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눈은 떠 있고 볼 수는 있으나 글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한글을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 정말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가정을 위해, 형제를 위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이제는 새로운 빛을 주어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남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자료출처 : 평생교육진흥원 소식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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