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탁소
1.
서울역 광장을 빠져나와 정릉에 도착하자 상임은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였건만 군데군데 논밭도 흩어져 있고, 달구지 끄느라 끙끙대는 소가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밭에 거름 준다고 똥장군을 지고 나르는 이도 있었다. 서울이라지만 막상 와서 보니, 피난지와 다를 게 없었다. 목숨 부지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해서 살아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이제 막 당도한 서울살이 새내기들이라,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공연히 믿음이 가고 비빌 언덕만 같아 상임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틀 전에 전보를 받아들고 해윤은 깜짝 놀라 전보문을 보고 또 봤다. 몸 푼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혼자 몸으로 애 셋을, 그것도 핏덩이까지 데리고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서울에 온다니 걱정도 되고 불안했다. 또 온다 해도 다섯 식구가 당장 기거할 곳도 없었다. 이렇게 준비 없이 갑자기 쳐들어오듯이 올라오는 상임이 이해가 안 갔지만, 말리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다. 평소 얌전하고 말 수가 적어도 한 번 수틀리면 돌려세우기 어렵고, 일단 결정을 하고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보고야마는 성격인데다, 곧 데리러 온다고 해놓고 6개월을 넘겼으니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해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해윤은 군대에서 알게 된 고참 소개로 정릉에서 세탁소 일꾼으로 지냈다. 몇 개월 일을 배워 세탁소를 직접 차리게 되면, 그때 시골 식구들을 불러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손님들 상대하는 요령도 배우고, 특히 때 빼는데 필요한 약품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려면 1년은 족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세탁소 주인이 급히 알아봐준 덕에 가게 근처에 방 한 칸을 급하게 구할 수 있었다. 코딱지만 한 방이지만 다섯 식구가 한 방에 기거할 수 있게 되었다.
상임도 며칠 쉬고 나더니, 궁금하고 갑갑해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어 막내를 업고 해윤이 일하는 세탁소로 나와 보았다. 주인아줌마는 시골 색시가 참 곱다며 상임에게 곰살맞게 대했다. 가게에 며칠 왔다갔다 하며 아줌마가 하는 수선 일을 유심히 보던 상임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고 저고리 줄이는 거, 제가 한 번 해봐도 되겠심니꺼?”
“아니, 애기엄마가 바느질 일을 해봤수?”
“예, 처녀 때 친정에서 쪼매…….”
상임은 그날 바로 주인아줌마의 허락을 받고 바느질거리를 집에 가져왔다. 애들 저녁부터 챙겨 먹이고 밥상을 윗목에 밀어놓더니, 들고 시작한 지 두어 시간 만에 다 했다고 해윤에게 보이며 자랑을 했다. 이튿날 가게로 가져가니까 주인아줌마는 옷을 한참동안 유심히 살핀 후에 상임을 쳐다보았다.
“애기엄마 바느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그날 이후 상임은 아예 애를 들쳐 업고 가게에 나와서 주인아줌마를 도왔다. 그러다가 재봉틀에도 올라서 사용법까지 익히더니 어느덧 주인아줌마를 대신해도 될 정도가 되었다. 해윤도 예상대로 1년 가까이 되자, 웬만한 세탁일은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 부부는 정릉 옆에 붙은 미아리에 세탁소 자리를 잡고 개업을 했다.
2.
그곳은 위쪽의 고지대 동네와 저지대인 아래쪽 시장 동네 중간 위치로 비교적 제대로 정비된 주택단지였다. 인근의 다른 동네와는 달리 진입로와 주택 사이의 골목길도 4미터 또는 6미터 폭으로 제대로 구획되었다. 슬라브 양옥의 단독주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지어지고 있었다. 슬라브 지붕 위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한 구석에 모여, 가로막힘 없이 종일 쏟아지는 햇살을 고스란히 다 받으며 반짝거렸다. 골목길도 넓고 지붕도 높은데다 창문들도 큼직하게 나 있어서, 이 동네 집들은 집안 구석구석 햇빛이 잘 들었다.
세탁소 위 큰길가에는 하꼬방 판잣집들이 죽 들어서 있었다. 한꺼번에 서울로 몰려든 이농민들이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변두리에 무허가로 대충 집을 짓고 살았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단속을 피해 고지대로 쫓기듯 밀려 올라가느라 달 아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달동네가 생겨났다. 집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엇대서 바람 드는 거 대충 막고, 지붕은 기름이 발린 거친 표면의 시커먼 비닐 장판지 같은 걸로 덮어서 간신히 비가 새는 걸 막는 정도였다.
비가 오면 지대가 낮은 세탁소 아래 길음시장 쪽 동네는 항상 물에 잠겼다. 시장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비탈이 끝날 즈음에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 밑으로 작은 개천이 흘렀다. 폭은 4~5m 정도나 되었을까, 아무튼 그 다리를 건너야 시장통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그 개천에 물이 불고 시뻘건 흙탕물이 무섭게 흘렀다. 시장통 좌우에 늘어선 가게들은 수시로 물이 차서 낭패를 보았다. 세탁소는 시장에 비하면 높은 지대라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가게에 물이 들어찬 적은 없었다.
시장통 양쪽에 늘어선 가게들 뒤로는 작은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허술한 집들이 따개비처럼 바짝 들러붙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러다 집들이 갑자기 와하고 골목으로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골목길도 좁아터지고 골목 사이사이에는 크기도 경사도 제각각인 작은 계단들이 이곳저곳 어설프게 박혀있었다.
골목에 들어서면, 어른 중 누구 하나는 비켜서야 오갈 수 있었다. ‘짐차’라고 부르던 자전거가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뒷바퀴 위에 있는 안장을 꽤 너르게 넓히고 그 위에 높다란 쇠기둥을 세워 짐칸으로 만들었다. 그곳에 물건을 싣고 꺼멓고 굵은 고무줄로 꽁꽁 동여매서 다녔다. 쌀이나, 배추 등 손으로 운반하기 무거운 물건들을 그 짐차에 싣고, 비탈길과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며 집 앞까지 날라주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과 거칠게 부대끼며, 하마터면 놓칠라 긴장의 끈을 꼭 쥐고 아침부터 허덕이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었다. 젖은 솜처럼 천근만근 가라앉는 몸뚱이를 가까스로 가겟방 벽에 기대 주저앉히면, 비로소 종일 동동거리며 졸아들었던 몸과 마음에 피가 도는지 이내 노곤해지며 저려왔다. 매일 매일 밀려드는 세탁일 해치우고 밥해 먹고 애들 건사하며 정신없이 지내기를 반복하지만, 언제부턴가 상임 나름으로 살림의 궁리가 서고, 요량(料量)이 손에 잡혀갔다. 큰 탈 없이 하루하루가 밝아오고 저물어 가는 일상이 고마웠다. 안도의 숨이 쉬어지고 가끔은 긴장을 풀만한 여유도 누렸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쌓여가면서, 헛짚을까 매사가 두렵던 나날도, 그러려니 하며 무던하게 지내도 그럭저럭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아리는 해윤과 상임이 스스로 찾아든 희망의 땅이었다. 아들 삼 형제 어떻게든 공부시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게 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당도한 신세계였다.
3.
상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에 들어선다. 치마를 걷어 다리 사이에 욱여넣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도마 위 양파를 가늘게 썬다. 석유곤로 위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양파를 쓸어 담아 넣는다. 손바닥에 두부 반 모를 얹어놓고 칼로 잘게 잘라 넣는다. 간을 보더니 좀 짰는지 얼른 사발에 물을 받아 뚝배기에 붓고 뚜껑을 닫는다. 툇마루에 얹어 놓은 밥솥 뚜껑을 열자 고소한 김이 하얗게 퍼져 나온다. 김이 걷히고 드러난 고슬고슬 하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밥 윗부분을 주걱으로 쓱쓱 걷어내 아래쪽과 잘 섞어서 가득가득 다섯 그릇을 뜬다. 누룽지가 얇게 눌어붙은 밥솥을 수도꼭지에 대고 물을 받는다. 넘치려는 뚝배기를 곤로에서 내려놓고 그 위에 밥솥을 얹는다.
부엌이라고 하지만 단칸방 앞에 가로질러진 툇마루와 가게 사이의 1.5m 정도의 공간이 다였다. 툇마루 왼쪽에는 유일한 주방가구인 찬장이 놓였고, 그 주변에는 덩치가 커서 찬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냄비나 양재기 같은 양은으로 된 가재도구들이 나름 제자리다 싶은 곳에 파고들 듯 자리 잡고 있었다. 툇마루 오른쪽 끝에는 바닥에서 어른 허벅지 정도까지 수도꼭지가 솟아있었다. 수도관이 올라오는 바닥엔 수챗구멍이 뚫려있고, 망 덮개가 구멍을 덮고 있었다. 하수구 주위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싸듯 시멘트로 둑을 쌓아, 버리는 하수나 흘러내린 수돗물이 가게 바닥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주었다. 쌀 거 같다고 호들갑을 떨며 바지춤을 내리고 수챗구멍에 오줌을 누던 막내 준영이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부엌에서 툇마루를 넘어가면 다섯 식구가 모여 함께 잠도 자고 같이 밥도 먹는 침실 겸 식당이며, 공부방이자 거실인 다목적 보금자리 단칸방이 있었다. 애들이 커가면서 큰 애 둘이 자는 방을 따로 구했고, 가겟방에선 부부가 막내만 데리고 잤다. 수돗가 오른쪽에는 작은 쪽문이 달려있고, 쪽문 너머에는 안채가 있었다. 안채에는 주인이 살고 있었고 ‘안집’이라고 불렀다. 쪽문이 안집과 세탁소를 차단하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셈이었다. 쪽문에 난 작은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면 안집이 잘 보이지만, 식구들 누구도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
세탁소에 들어서면 마치 접수대 같은 평평하고 널따란 것을 제일 먼저 만나는데, 바로 세탁소의 중심이면서 가장 중요한 다림대였다. 옷의 때를 빼거나 다림질하는 작업대로, 좀 큰 책상 크기에 어른 허리춤 정도 오는 높이였다. 다림대 위에는 요와 같이 생긴 넓은 패드를 평평하게 깔아놓았다. 패드 안에는 솜이 잔뜩 들어있어서 푹신하지만 물렁하지는 않았다. 그래야 패드 위에 옷을 올려놓고 다릴 때 잘 펴지고 주름 없이 다려졌다. 패드는 광목으로 몇 겹을 싸맸다. 오래 쓰면 광목은 다리미의 열기에 누렇게 변색되다가 해지기도 하는데, 그럼 새 광목으로 교체해 주거나 해진 광목을 둔 채 그 위로 새 광목을 덧씌웠다.
다림대 우측 창가 벽에는 재봉틀이 바짝 붙어 있었다. 상임이 창을 바라보고 일을 하니까 다림대에서 일하는 해윤과는 자연히 등을 졌다. 손님이 와도 앉은 채 왼쪽으로 돌아보며 대화를 해서, 여전히 해윤과 눈이 마주칠 일은 없었다. 다림대의 좌측 벽에는 커다란 사각형 모양의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가게 중앙에 다림대, 좌우로 드라이클리닝 기계와 재봉틀…… 세탁소 핵심 장비만으로도 가게가 꽉 찼다.
다림대 뒤에 진열장이 있는데, 가게와 가겟방을 구분하는 칸막이 역할을 했다. 진열장에는 한복이나 여성 양장 옷들을 주로 보관했다. 조금이라도 때가 타면 안 되는 옷, 고급스러운 옷들을 그곳에 특별히 보관했다. 진열장 뒷면은 부엌 공간의 벽면이기도 해서, 마늘이나 양파 같은 것들을 망에 담아 걸어두곤 했다. 진열장의 옆 공간은 가게에서 부엌으로 드나드는 통로가 되었고, 보자기 같은 천이 어른 가슴께까지 내려오게 드리워져 있어서, 부엌과 가게를 구분 짓고 살림 공간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다.
가게 천장에는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상임보다 키가 작은 해윤의 머리에도 닿을 정도로 옷들이 길게 내려왔다. 그래서 오버코트처럼 길이가 긴 옷들은 벽면을 따라 외곽 쪽으로 배치하고, 가게 가운데 동선 영역에 양복저고리 정도 길이의 옷들을 걸어두었다. 고개를 쳐들지만 않으면 어른들도 그런대로 지나다닐 만했다.
세탁소는 가게와 살림 공간 합쳐서 10평 남짓 되는 공간이었다. 다섯 가족이 스물네 시간 복닥대며 부대꼈다. 그 안에서 식구들이 잠도 자고, 살림도 하고 세탁일도 하는 아주 빈틈없는 공간이었다. 부부에게 세탁소는 집이자 일터였다. 무엇보다 자식들을 키우는 안전한 둥지였다. 세탁소 안에 들어있는 각종 가구와 비품, 빽빽한 옷들의 숲, 다리미와 재봉틀, 옷걸이들과 옷을 걸고 내리는 작대기…… 식구들에겐 일상의 친밀한 소품들이자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매일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4.
상임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애들 먼저 밥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부부가 아침 먹고 치우고 나면 바로 세탁소 일을 시작했다. 가게방 문턱을 넘어 진열장 옆에 내려진 보자기를 젖히면 바로 일터라 출근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5초였지만, 해윤이 항상 지키는 것이 있었다. 출근복이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방에서 가게로 나설 때 꼭 양말을 신었다. 겨울이야 당연한데 여름에도 양말을 신었다. 심지어 슬리퍼를 신어도 양말은 반드시 챙겼다. 상임이 안 답답하냐, 보는 사람이 다 덥다, 슬리퍼에 양말이 뭐냐, 아무리 타박하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해윤에게 양말은 출근한다는 표시였고, 일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집과 직장을 구분하는 것은 오로지 나풀대는 보자기 한 장이었지만, 해윤은 일단 가게에 출근하고 나면 식사할 때 빼고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상임은 달랐다. 살림방과 부엌, 가게를 고무줄 넘듯 넘나들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출근했다 퇴근하고, 퇴근했다가는 또 바로 출근하는 셈이었다.
해윤이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드라이클리닝 기계로 들어갈 옷들을 챙겼다. 옷의 소재(素材)를 일일이 확인하여 기계에 함께 넣어도 괜찮을 옷들끼리 따로 분류했다. 처음부터 세탁소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비록 철판을 오려 붙여 만든 재래식 기계였지만, 이걸 가진 세탁소 하나가 주변의 여러 세탁소에서 옷을 매일 수거해 한꺼번에 세탁해서 당일 오후에 배달해 주었다. 언제부턴가 양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양복은 물세탁을 하면 옷이 틀어지거나 상하기 때문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일이 늘어나면서, 세탁소마다 소형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해윤도 기계 가격이 부담이었지만, 상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른 세탁소보다 일찌감치 먼저 기계를 들였다. 드라이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해윤은 다림질을 했다. 드라이를 마친 옷들은 세탁소 앞 처마에 내걸어 옷에 남은 기름을 증발시켰다. 오후가 되면 건조가 다 된 옷들을 내려 다림질을 했다.
드라이클리닝이 해윤의 영역이라면 물세탁은 상임의 몫이었다. 모직이나 실크 등 고급 소재로 된 옷 말고는 대부분 물세탁을 했다. 대용량의 가전 세탁기가 나오기 전에는 일일이 손빨래를 해야 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뜨거운 물이 필요해 세탁소에는 항상 솥단지에 물을 가득 담아 연탄난로에 얹어 끓이고 있었다. 물세탁은 Y셔츠가 가장 많았다. 양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안에 받쳐 입는 하얀 Y셔츠의 물세탁도 많아진 것이다. 카라와 소매에 벤 땀과 찌든 때를 일일이 솔로 문질러 때를 뺐다. 또 소매와 카라는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려야 했다. 녹말가루가 있었지만, 상임은 먹고 남은 밥을 광목 자루에 모아 담아 물을 차박차박 채운 대야 속에서 손등에 올려놓고 비벼서 풀물을 우려냈다. 소매와 카라를 모아 쥐고 풀물에 담가 고루 비빈 다음에 꼭 짜서 얼마간 헝겊에 싸서 포개놓았다. 풀물이 어디 뭉치지 말고 고르게 잘 스미게 하려는 거였다. Y셔츠는 맡기고 하루 이틀 사이에 찾으러 오기 때문에 바로바로 일을 해놔야 해서, 상임은 항상 쫓겼다. 기름때 쩐 작업복이나 두툼한 점퍼도 곧잘 들어왔는데 손으로 빨기에는 버거웠다. 심지어 담요나 이불이 들어올 때면, 널따란 고무 대야에 하이타이 가루를 잔뜩 풀어놓고 애들더러 지근지근 밟게 했다. 말간 물 나올 때까지 헹구다 보면 상임은 거의 탈진할 지경이 되었다. 기계가 알아서 시간까지 딱딱 맞춰서 세탁해 주는 드라이클리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고 고된 노동이 따랐다.
5.
해윤은 손을 뻗으면 쉽게 집을 수 있도록 다림대 끝 선반 안쪽에 우마(牛馬) 여러 개를 크기순으로 나란히 넣어두고 사용했다. 양복저고리 어깨를 다릴 때면, 갸름한 모양의 우마를 집어 어깻죽지 깊숙이 넣어 꼭 끼게 한 다음에, 어깨의 곡선을 따라 다리미를 기울여 가며 다렸다. 양복바지를 다릴 때는 폭이 넓고 펑퍼짐한 놈을 꺼내 썼는데, 엉덩이 부분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해윤이 다림질할 때는 마치 기계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빠른 리듬을 타고 춤이라도 추는 사람 같았다. 다리미를 옷 위로 빠르게 미끄러뜨리다가는, 한 자리를 몇 번이고 짓누르듯 다리고, 가끔은 다리미를 툭툭 던지듯 힘을 주기도 했다.
해윤이 각별하게 공을 들이는 일이 있었는데, 옷에 묻은 때를 빼는 일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 다림판 우측 공간에는 소주병, 박카스 병 같은 자잘한 병들이 옹기종기 잔뜩 모여 있었다. 각각의 병에는 때를 빼는 약품들이 들어있었다. 주머니에 꽂아둔 볼펜 잉크가 새거나, 껌이 들러붙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밖에 기름때, 묵은 때 등 종류별로 사용하는 약품이 다 달랐다. 해윤은 이 약품들을 일일이 손수 배합해서 사용할 만큼 오점(汚點) 제거에 진심이었다. 항상 때 묻은 부위를 냄새 맡거나 맛을 보기도 하고, 칫솔로 살살 문질러 오점의 종류와 특성을 살핀 다음에라야 조심스럽게 약품을 사용했다. 처음 보거나 잘 빠지지 않는 오점일 경우에는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기어코 들어맞는 약품 배합을 찾아내 오점을 제거했다.
약품 병 입구에는 구멍의 지름이 점차 줄어드는 빨대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손으로 뿌리는 스프레이가 없었던 시절에 약품을 고르게 분사하기 위한 도구였다. 오점의 실체가 파악되면 해윤은 주저 없이 약품 병 하나를 집어 들어 오점 부위에 가져다 대고, 약품 병을 기울이면서 입에 문 빨대를 후~ 하고 불어주었다. 오점을 긁어대는 도구들도 다양했는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칫솔이었다. 오점 부위가 크거나 찌든 때는 대(竹)솔을 사용했다. 대나무라서 힘도 있고 탄력도 좋아 잘 긁어져서 편리했다. 해윤은 너덧 개의 칫솔과 두어 개의 대솔을 수술방에 메스 늘어놓듯이 가지런히 늘어놓고 사용했다. 못 쓰는 물건이라도 잘 버리지 못하는 해윤은 대솔이 닳고 닳아 몽당연필처럼 될 때까지 사용했다.
다림질이 해윤의 몫이었다면 상임은 재봉틀 담당이었다. 옷 수선 중에 가장 잦은 일이 바짓단을 다는 일이었다. 스타일과 품질이 좋은 기성복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성복 바지를 키에 맞게 길이를 맞추고 단을 만들어 주는 일이 많았다. 바지 끝이 구두에 쓸려 잘 닳아 접은 부분이 금방 헤지기 때문에, 구두에 닿는 바지 안쪽 면에 천을 덧대서 구두에 쓸려도 옷감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바지와 점퍼에 지퍼를 달아달라고 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지퍼 이빨 한두 개가 틀어지거나 빠져서 오르내리질 못하고, 지퍼에 옷이나 실밥이 끼어 무리하게 잡아 올리다가 이빨이 망가지기 일쑤였다. 바지 지퍼가 고장 났다며 급히 달려오면 상임은 헌 바지를 내주고 그 자리에서 새 지퍼를 달아주곤 했다. 바지 지퍼는 잘 달지 않으면 남대문 정면이 쭈글쭈글 울게 되어, 꽤 솜씨가 필요한 수선 작업이었다.
상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난도 수선 기술을 터득했다. 옷에 담뱃불이 떨어져 구멍이 나거나 못이나 날카로운 칼에 찢기면 손바느질이나 재봉으로 천을 덧대서는 수선 자국이 너무 뚜렷해서 옷을 입을 수가 없다. 짜깁기는 뚫리거나 찢어진 부분의 주변을 사각으로 잘라낸 다음에 옷 솔기에 감춰져 있는 여분의 천을 찾아서 같은 모양으로 잘라내 붙이고, 포개지는 부분의 올을 다 풀어헤쳐서 한 올 한 올 다시 감쪽같이 엮어내는 기술이었다. 섬세하고 지루한 작업이라 수선비가 셌다. 상임의 짜깁기 기술이 꼼꼼하다고 소문이 나 주변의 세탁소에서도 일을 맡겨오는 바람에 항상 일에 쫓겼지만 그만큼 수익도 짭짤했다.
세탁소에서는 해윤이 드라이클리닝과 다림질을 담당하고, 상임은 물세탁과 수선을 맡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로 뒤죽박죽 꽉 차 있는 소쿠리 같은 공간이지만, 부부의 분업 노동 질서는 똑 부러지게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임은 대부분 손으로 하는 수작업 노동인 데 반해, 해윤은 기계를 다루는 노동이었다. 숙련의 수준은 둘이 비슷한 걸로 치더라도, 노동의 강도와 노동시간만큼은 상임이 훨씬 과중했다. 마치 농부가 논에 물 대놓고 멀찍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동안, 그의 아내는 따가운 뙤약볕 아래 종일 엎드려 산비탈의 밭을 매는 상황과 같았다. 게다가 삼시세끼 밥하고 애들을 키우는 일은 해윤이 대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임은 새벽에 눈 떠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좁아터진 세탁소 안을 맴돌며 한시도 쉴 수 없었다.
6.
추석이 지나자마자 연이틀 가을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졌다. 집마다 때 이른 추위에 부랴부랴 옷장을 뒤져 따뜻한 옷가지들을 꺼냈다. 그날 오전, 급하다며 겨울양복 한 벌을 들고 온 손님이 가게에 들이닥쳤는데, 마침 해윤이 반장들 회의가 있다고 동회(동사무소)에 가고 없었다. 상임은 우선 연탄난로 위에 올려져있는 솥을 가게 바닥에 내려놓고 무쇠 다리미 두 짝을 얹었다. 마침 가게 난롯불이 세게 타고 있을 때라 다리미는 금방 달궈졌고 상임은 바로 다림질을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준영이 엄마를 향해 다가서다가 솥단지와 상임 사이에 서게 되었는데, 하필 그 순간 상임은 다 다린 옷을 손님에게 건네려고 돌아서면서 막내를 밀쳐버리고 말았다. 막내는 뒤뚱하다가 그만 바로 뒤에 있던 물솥에 주저앉아버렸다. 솥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득 찬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모조리 솥에 담기듯 빠져버렸다. 순간 상임은 애 겨드랑이에 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급한 나머지 애가 입고 있던 바지를 두 손으로 재빨리 잡아내려 벗겼다. 그런데 그때 막내가 입고 있던 바지는 추석이라고 시장 가서 사 입힌 ‘쫄쫄이’ 새 바지였다. 몸에 짝 달라붙는 바지여서, 바지가 벗겨지면서 익은 살갗의 피부를 쓸어내리듯 다 벗겨내 버렸다. 엉덩이와 허벅지 피부는 무릎에, 종아리 부위의 피부는 발목에 고스란히 몰렸다. 그러자 더더욱 자지러지는 애 상체를 잡아, 무릎 위에 엎어 누이고 한 손으로는 애가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고, 앞집 슈퍼에서 급히 가져온 4홉들이 소주 두 병을 연거푸 아랫도리에 줄줄 부었다.
상임은 다급한 상황에서 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애가 마구 버둥대며 비명을 지르고 넘어가는데도,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냥 본능적으로 믿고 있던 민간요법대로 신속하게 처치했다. 그러고 나서 시장에서 묵은 김을 사다가 참기름인가에 재서, 딱지가 지고 새살이 오를 때까지 덴 자리에 발라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준영의 다리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다 치료가 되었다. 참으로 신통방통할 노릇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바로 위 골목에 사는 같은 또래 남자아이도 다리에 화상을 크게 입었는데, 걔는 병원에도 가고 했지만, 흉터가 몹시 심하게 남고 말았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쭈글쭈글 주름 잡힌 흉터가 선명했었다.
막내 화상사건이 있은 후, 해윤은 바로 무쇠 다리미를 치웠다. 다리미를 데우는 연탄난로도 없어지고, 물솥을 데울 수도 없게 되었다. 겨울에는 가게 난방을 위해 다시 난로를 꺼내놓고 연탄을 피웠지만, 다리미도 물솥도 올리지 않았다. 전기다리미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전기료가 부담이었다. 연탄불로 데워 쓰는 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용이 컸다. 결국 해윤은 잔꾀를 부렸다. 세탁소 아래 비탈길 중간에 있는 전파사 주인을 불렀다. 집 앞 전봇대에서 세탁소로 들어오는 전기 인입선이 전기계량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기다리미로 연결되도록 선을 깔았다. 도전(盜電)용 전선을 설치한 것이다. 한전에서 조사 나올 때를 대비해 전기가 다시 계량기를 거치도록 전환할 수 있는 스위치를 따로 만들었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다림대 밑에 깊숙이 숨겨 달아 놨다.
어느 날 오후, 해윤이 열심히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한전 조사원이라는 사람이 세탁소에 들이닥쳤다. 조사원은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해윤에게 전기다리미에 전원이 들어가 있지요? 하더니, 바로 계량기가 달려있는 벽 쪽으로 성큼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지만, 대비한 일이라도 막상 당하고 보니 해윤은 당황했다. 빨리 전환 장치의 스위치를 켜야 했다. 그런데 그게 다림대 밑이라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들이밀어야 겨우 손에 닿는 위치에 달려있어서, 까딱하면 들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조사원이 등을 보인 순간, 해윤은 상체는 그대로 두고 다림대 안으로 오른발을 길게 뻗었다. 키가 작아 다리가 채 닿지 않자, 몸을 낮추며 발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상체를 거의 뒤로 누이듯 젖히고서야 가까스로 발끝에 스위치가 닿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계량기를 확인하느라 조사원이 계량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해윤은 얼른 다리를 잡아 빼고 슬리퍼를 찾아 신으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조사원은 진땀을 흘리며 멀뚱히 바라보는 해윤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가게를 나갔다. 조사원이 돌아가자 해윤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부터 재봉틀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상임은 껴들지도 못하고, 조마조마 손에 땀을 쥐었다.
“하이고 내가 제명에 몬 죽지. 차말로 이래 도둑질까지 해야 하능교”
7.
세탁소 안에서 둘은 서로를 간섭할 일이 없었다. 각자 일이 확연히 다르고 철저하게 분업적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자기 일을 마치면 알아서 쉴 수 있었고 자유롭게 외출도 했다. 그런데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목이 딱 하나 있었다. 손님이 옷 찾으러 올 때 옷을 내주는 일이 그랬다. 수선일은 일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므로 상임이 직접 내주는 일이 많았지만, 세탁이나 다림질한 옷들은 옷마다 꼬리표에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에 둘 중 누구라도 찾아서 내줄 수 있었다. 세탁비는 후불제라 옷을 찾아갈 때 돈을 내는데, 그 돈을 누가 받느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가게에는 따로 돈통이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손 탈 우려도 있었지만, 부부가 각자 주머니를 따로 찼기 때문이었다. 돈을 받으면 그대로 받은 사람 돈이 되었고, 그 돈은 각자가 따로 관리했다.
옷은 주로 전업주부나 식모가 찾으러 왔고, 애들이 심부름 오는 경우도 있었다. 찾으러 오는 시간대는 대중이 없었다. 혼자 사는 처녀와 총각들은 집에서 나올 때 맡기고, 퇴근하고 올 때 들러서 찾아가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세탁소에 오는 사람은 여성들이 훨씬 많았고,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여성들은 대부분 상임의 친구들이거나 형님아우 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일부러 그러려는 것도 아닌데, 손님들도 일단 가게 문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상임을 찾아 말을 붙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임이 옷을 찾아 내주고 돈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해윤에게는 매우 불리했다. 그 대신 상임은 부엌에서 일을 하거나, 낮 시간에 장 보러 가게를 비우는 일이 잦아서 이래저래 상쇄되기는 했다. 이렇게 누구라도 가게를 비우고 외출하는 시간만큼은 상대편에게 확실한 수익의 시간이 되었다. 일 자체도 독립적이어서 서로 간섭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서로의 외출을 통제할 이유도 없었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숨을 구석 하나 없이 지지고 볶듯 부대끼면서도, 각자 자기일 자기가 알아서 하면서 수익을 나누어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눈치가 오가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서로 적정하게 수익을 배분하고 있었다. 그걸 또 서로 알고 있으므로, 이 질서는 깨지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상임은 수익을 살림살이와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쪽에 지출했다. 해윤은 가게 보증금이 인상된다거나,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등 비교적 목돈이 들어가는 곳을 감당함으로써, 돈을 쓰는 일에도 부부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각자 따로 찬 주머니가 부부에게는 각기 일하는 보람과 의욕의 불러일으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계획과 나름의 궁리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게 했다.
8.
늦은 밤 상임은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치며 원피스 단을 줄이고 있었다. 주름이 많고 폭이 넓은 원피스라 단을 잘라내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저녁도 다 먹고 치웠는데, 은행집 영권이 엄마가 급하다며 가져온 일감이었다. 영권이 엄마는 상임이 동네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세 엄마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연 상임이 속해 있는 여러 계의 같은 계원이기도 했다. 피아노 치는 막내딸이 시민회관에서 상을 받는데 당장 입힐 옷이 마땅치 않아, 백화점에서 사 놓고 잘 입지 않던 엄마 옷을 줄여 입히려고 한다는 거였다.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절친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찍 오라고 돌려보내놓고 상임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옷핀을 끼워 표시해온 길이대로 치마 단을 잘라내고 끝단을 잘 접어서 다리미로 꾹꾹 눌러주었다. 재봉틀에서 단을 잘 박아서 주름 결대로 다시 한 번 다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상임은 재봉틀에 앉았다. 치마를 평평하게 잘 펼친 다음, 두 손으로 치맛단의 처음과 끝을 쥐고서 페달을 밟았다. 왼손은 재봉틀 뒤로 넣어 당기고, 오른손은 재봉틀의 속도에 맞춰서 따라가며 박았다. 거의 다 박았을 무렵, 아차! 재봉틀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박아버렸다.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바늘에 손가락이 딸려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잡아 뺐지만, 재봉틀의 속도는 상임보다 수십 배 빨랐다. 재봉틀을 수동으로 작동할 때는 두 발로 구르듯이 돌렸지만, 모터가 달리면서부터는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윙 하고 고속으로 돌아가 무척 예민한 작업이 되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순식간에 재봉틀 작업대에 피가 흥건하게 번졌다. 작업하던 옷에도 피가 튀었다. 하얀색 원단에 자잘한 꽃무늬가 띄엄띄엄 있던 원피스라, 선혈이 꽃무늬와 어울려 선명하게 번졌다. 곧 손가락이 쓰라렸고 손목을 지나 팔꿈치까지 뻐근해지도록 통증이 밀려왔다. 팔이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날따라 Y셔츠 빨래가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짜깁기 일감도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어느 것 하아 미뤄둘 수 없어, 오후 내내 정신없이 해치우느라 상임은 거의 녹초가 되어있었다. 느지막이 애들 저녁 챙겨주고 좀 쉬려고 가게 소파에 막 앉았는데 수선해달라고 들이닥친 거였다. 해윤은 초저녁부터 동네 친목회 모임에 가서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오느라, 집안에서 이런 사달이 난 줄도 몰랐다. 싹싹 닦아냈음에도 여전히 재봉틀에 묻어있는 핏자국이며, 무엇보다 피가 범벅이 된 원피스를 보고 해윤은 놀랐다. 상임의 손을 보니 붕대를 칭칭 감아놨는데, 당분간은 수선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도 고마 기술자 하나 들이자.”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들여놓은 이후로 세탁소에 손님이 늘기 시작하더니,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해윤의 바깥 활동이 부쩍 늘었다. 반장에서 통장이 되고 보니, 이래저래 회의다 모임이다 그 횟수가 많아졌다. 동네 유지들과 어울리는 일도 잦아졌다. 그동안 세탁소에 처박혀 일만 하던 해윤은 동네에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면서 얻어듣는 정보도 많아지고, 젊은 사람이 열심이라며 격려도 받고 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동안 넓은 세상 두고 좁아터진 새장 속에 갇혀 살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기술자 월급은 오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능교.”
진작부터 기술자를 들이고 싶었지만, 상임이 반대해서 못하고 있었다. 세탁소에 일이 많아져서 생긴 사고인 것은 맞으니, 이참에 기술자를 들이고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기술자가 수선하고 물빨래하는 경우는 드물어, 기술자 들인다고 상임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상임은 잘 알고 있었다. 해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그래도 다친 마누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랍시고 하고 있으니,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당신 친정 식구, 거 누고? 요새 양복쟁이 기술 배운다고 서울 와서 학원 댕긴다 안켄나? 라사라 학원인가 뭔가…….”
친정 쪽에 조카뻘 되는 친척이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자취하며 양복 기술학원에 다니는데, 학원 마치고 저녁에는 세탁일도 할 수 있고, 가게에서 잠만 자면 된다며 미아리에 오고 싶어 했다. 상임은 귓등으로 듣고 넘기려고 했는데, 순간 솔깃했다.
‘양복쟁이 기술이면 옷 수선도 할 수 있겠네.’
9.
상임은 돈이 생기면 무조건 곗돈을 채웠다. 다달이 내는 곗돈을 못 만들면 다른 계원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신임을 잃어 계모임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곗돈이 최우선이었다. 동네에서 엄마들이 하는 계는 일종의 마을 금융이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모아서 한 사람에게 몰아주었다. 몰아주는 순서는, 계주에게 1번을 주고 나머지 순번은 각자의 형편을 맞춰 정했다. 대신, 앞 순번은 목돈을 일찍 타는 만큼 원금에 이자를 덧붙인 원리금을 매달 곗돈으로 내고, 반대로 뒤 순번일수록 곗돈에서 이자만큼 공제하고 책정됐다. 더 내는 이자로 덜 내는 곗돈을 충당해서 매달 일정한 곗돈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상임은 당장 목돈 쓸 일이 있지 않는 한, 항상 뒷번호에 들었다.
곗돈을 타면 또 오야를 통해 돈놀이를 했다. 문제가 생겨도 오야가 알아서 책임을 져주기 때문에 안전했다. 일종의 소액 사채인 셈인데 은행보다는 훨씬 높은 이자를 받았다. 상임은 악착같이 계를 들어 목돈을 마련하고, 다시 돈놀이로 돈을 불렸다. 평균 두세 개 이상의 계를 부었다. 새로운 계가 시작되면 매번 고민했다. 이미 내는 곗돈이 버거우면 쪼개서 반 구좌라도 더 들었다.
곗돈 내고 돌아서면 또 곗날이 다가왔다. 잔돈푼까지 박박 긁어 곗돈을 만들 때도 많았다. 어쩌다 곗돈이 부족할 거 같으면, 상임은 곗돈이 다 마련될 때까지 악착같이 가게를 지켰다. 그래도 안 되면, 오야에게 미리 말해서 대신 변통해 달라고 하고 며칠간의 말미를 얻어 해결했다. 오야도 여의찮다고 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해윤에게 손을 벌렸다. 물론 빌리는 거였고, 이자는 주지 않았다.
곗돈 정산을 마치고 점심도 배불리 먹고 나면, 한바탕 수다가 이어졌다. 뭔 얘기 끝에 곗돈을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화제가 되었다. 한 엄마가 울상이 되어서, 남편이 미리 얘기하지 않고 계를 들었다고 곗돈을 안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제 사정사정해서 겨우 받아냈다고 푸념했다.
“하마터면 오늘 빈손으로 와서 곗돈 빵구낼 뻔 했지 뭐에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좀 젊은 축에 드는 계원이었는데, 의외로 매번 필요할 때마다 남편에게 용처를 설명하고 타다 쓴다고 했다.
“하이고 속 터지게 어떻게 매번 다 타서 써? 너도 참 용하다, 야.”
“그래도 매달 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마 좋지, 뭘 그라노? 내도 월급쟁이 마누래 함 돼 밨으면 좋겠네.”
“우리 신랑은 매달 손 하나 안 대고 월급봉투째 가져온다니까.”
“그럼 신랑은?”
“내가 그 자리에서 한 달 치 용돈을 바로 떼어 주지.”
그 집은 아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살림을 도모하는 경우였다. 거꾸로 남편이 관리하고 생활비 조로 정해진 금액을 매달 아내에게 주는 집도 있었다. 상임은 월급쟁이 마누라 돼봤으면 좋겠다 말은 했지만, 그렇게 부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해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랍에서 목장갑을 꺼내 꼈다. 가게 밖에 세워둔 덧문을 하나씩 들어 옮겨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쪽문이 달린 문짝을 가게 안에서 당겨서 마저 끼워 닫고 걸쇠를 잠갔다. 장갑을 벗어 서랍에 넣고 다림대 앞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제멋대로 구겨지고 접힌 지폐들이 잡혀 나왔다. 다시 앞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는 동전이 한 움큼 잡혀 나왔다. 다림대 위에 모아 놓고 접힌 지폐를 일일이 폈다. 구김이 심한 건 다리미로 다렸다. 모든 손길이 급하지 않았다. 의례라도 치르는 듯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넓적한 고액권 위에 액수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음, 두 손으로 잡고 잘 추려서 내려놓았다. 동전도 크기별로 탑처럼 쌓았다. 진열장에서 낡은 장부를 꺼냈다. 합산한 금액을 장부에 적고 날짜도 적었다. 추린 지폐를 장부 갈피에 끼워서 동전과 함께 진열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진열장 유리문을 닫고, 선반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한 모금을 깊이 빨아 고개를 약간 들고 천천히 내뱉었다.
다음날 아침 해윤은 드라이크리닝 기계 돌려놓고, 시장으로 내려가 마을금고 문이 열리자마자 동전 한 닢까지 몽땅 입금하고 돌아와서 다리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