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특히 곤혹스러운 점은, 일단 최종선고를 한 이상 판사는 집행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판사가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사연있는 피의자에게 뭔가를 더 해주고싶어도 해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것이다. 특히 가난에 떠밀려 '생계형 범죄' 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피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떠올라도 말을 더 얹을 수 없는 그의 직책이 막아섰다. 법원의 양형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행형과 범죄자들의 사회 내 처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사실 나도 흔히 생각하는 그런 악랄한 범죄의 피의자의 사회 내 처우따위는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피의자만이 존재하는건 아니니, 살기 위해 감옥을 원하는 생계형 피의자들이 발을 디딜 한 줌의 공간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가난하다고,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어떤 형태의 범죄도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판단이 모호해지고, 그렇기에 법이 필요한 듯 싶다.
네가 가난하면 법이 널 용서해야 되냐?
애들이 널 패고 협박하면,
네 동생이 남자들한테 삥뜯으면,
네가 경찰한테 칼 든게 정당한게 되는 거냐고
- 드라마 <라이브> 中
최근 보고있는 드라마 <라이브> 극 중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을 폭행한 후 도망치던 한 학생을 경찰이 쫓는 도중 폭행학생이 소지하던 커터칼로 목에서부터 얼굴까지 그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폭행학생은 계속해서 도망치던 와중 달리던 오토바이에 치여 다리가 골절된 채 병원으로 이송되며 검거되었다. 폭행학생은 본인의 딱한 사정과 본인이 감옥에 가게되면 남게 될 여동생은 어떻게 할거냐며 되려 그를 끝까지 쫓은 경찰에게 화를 내는데, 그 장면에서 경찰이 학생에게 하는 대사이다. 책을 읽던 도중 접하게 된 씬이었던 만큼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이 기억이 나 첨부하게 되었다.
또 최근 우리사회에서 성범죄율이 꾸준히 증가하는데도, 사람들은 무뎌지는 것만 같아 슬플 때가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여전히 왜곡된 성문화에 젖어있고, 사회 전반의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되는 구절이었다. 우리학교에서 진행한 폭력예방교육이 떠올랐다. 온라인 이캠퍼스에 난데없이 새로 '폭력예방교육'이 등록되어있었고, 필수 이수해야한다는 공지가 함께 떠 있었다. 그 안에는 가정폭력, 인권교육과 더불어 성평등, 성희롱, 성폭력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성인이라고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기엔 세상엔 너무나 많은 성인 성범죄자가 있기에, 필수로 이수해야한다는 공지에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들어야하냐부터 시작해서 '성인지감수성' 이야기만 나와도 민감히 반응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심하게는 직접 Q&A 게시판에 비속어를 섞어가며 글을 쓴 사람도 있었다.
이 일화처럼 그 내용은 안중에도 없고 성차별 이야기만 나오면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사회에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남녀 갈라치기 가 심화되고,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부당함에 대해 살짝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며 의미없이 한 작은 손동작까지 페미라며 사지로 몰아가 감당하기 힘든 욕을 퍼붓는데 일상이 된 요즘이 언제쯤 내가 느끼는 부당한 감정을 편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걱정된다. 항상 사회를 망치는 것은 일부의 사람들이다. 일부의 사람들과 한데묶어 동일취급하는 것도 잘못됐으며 우리사회가 조금 더 유연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판사는 법정에 선 어떤 얼굴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하는 직업이다. 그게 표독한 얼굴이든, 무심한 얼굴이든, 겁에질린 얼굴이든, 반성하는 얼굴이든 판사는 이들을 법의 거울로 바라보아야한다. 벌을 더 주고싶다고 더 줄 수도 없고, 덜 주고싶다고 덜 줄 수 없는 현실이 때로는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런 답답함을 느끼는 올바른 판사들의 수가 늘어나기를. 언젠가는 힘을 한데모아 답답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첫댓글 작은 손동작까지 페미라며 사지로 몰아가며 욕하는 부분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는데요 1초 단위의 프레임으로 분석하면서 그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며 어떻게든 끌어내릴려 하고 그게 남자임이 밝혀지자 언제 그랬냐는듯 폭언이 사그라드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사회는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자와 같은 올바른 판사들의 수가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판사는 법정에 선 어떤 얼굴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게 표독한 얼굴이든, 무심한 얼굴이든, 겁에 질린 얼굴이든, 반성하는 얼굴이든 판사는 이들을 법의 거울로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모임 당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이렇게 많은 얼굴을 마주하는 판사들의 온정과 마음이 모두 닳아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따스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쉴 틈 없이 마주한다면 지치기 마련일 테니까요.
첫 문장을 읽으며 제겐 그 문장이 '생각보다 공교육은 꽤 무력함을 깨닫게 되었다.' 와 같이 치환되어 와닿더라구요. 요즘따라 교육의 무력함을 몸소 실감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쩌면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아직 특별한 방법은 찾지 못했답니다. 맞아요, 일부의 사람들이 목청을 크게 키워서 세상을 망치고 있죠. 그럴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헛소리를 할 때마다 발언권을 압수하는거예요. 그리고 결국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거죠..... 디스토피아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