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적 체험과 존재의 성찰
문학 그리고 문인과 문단
우리 문학은 인간과 자연 및 미래지향적 우주까지도 광범위하게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를 표현하여 우리들의 정신문화를 심도 있게 온 인류가 서로 공감하는 일을 본령으로 하고 있다. 이는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과 그 작품이라는 해석보다 훨씬 차원 높은 존재의 문제 곧 생멸(生滅)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탐색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학적 본령과 위의(威儀)를 위해서 그 기능이나 정신을 숭엄하게 요구하고 있다. 문학이 갖는 본질을 이해해야하고 문학과 접맥하면서 느끼고 심취한 주제나 표현 언어에 대한 매혹적인 메시지를 감응(感應)해야 한다. 일찍이 발레리가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흥미, 교훈, 거기다 설교라든가 선전, 자기를 위한 수련, 남에게 자극과의 사이를 왕래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시단 원로 김남조 시인도 어느 글에서 문학은 생명에의 사랑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문학은 언제나 생명의 곁에 서며, 때에 따라 생명이 훼손되었더라도 한결같이 이를 지켜보며 표용의 팔을 벌리는 역군 속에 몸을 두고 있어서 여기에서만 문학인의 존재 이유와 사명적 자각을 본다고 했다. 이러한 사명의식이 만유(萬有)의 생명과 상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문학과 인간의 공존의식은 순수지향이면서도 더욱 숭고한 정신과 기능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문학개론적인 측면에서 문학은 무엇인가? 문학의 정신과 기능은 어떤 것인가를 익혀왔다. 그러나 요즘 문인들의 사유(思惟)는 이러한 의식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절망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모 잡지의 신인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부탁한 일이 있었다. 첫째는 신인상패를 받는 것으로써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문인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지금부터 출발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이 출발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요즘 양산되는 신인들이 최소한 명심해야 할 계명(誡命)들이다. 누구나 말로만 강조하면서도 실천은 좀 어려운 것 같다. 이러한 배경에는 복잡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문학에 입문하고 문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디면서 이러한 각오나 결단이 없으면 그냥 취미로 하는 문학이며 건달 문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고 채수영 시인의 「잡초문학론」이란 글에서 그는 ‘잡초 잡지’와 ‘잡초 문인’, ‘잡초 문학상’ 그리고 ‘잡초 감투’로 나누어서 설명한 바(1993. 10. 도서출판 ‘대한’ 발행)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너무 많은 문학지가 난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문인들 작품발표의 장이 증가했다는 장점이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잡초 신인을 양산하는 병폐를 지속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는 점이다.
이 글은 무려 20년 전에 발표된 것이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엄청난 숫자의 문학지가 발간되고 있어서 그만큼 신인의 배출량도 늘어나 과히 문인 천국을 건설할 만한 자원(?)이 확보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회원만도 약 1만 6천여명에 달하는 거대한 문인단체로 발전하고 있음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잡초 문학상 이야기인데 문학지마다 혹은 무슨 단체마다 문학상을 제정하여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수상자에게 시상식날 파티비를 부담케 한다는 요지인데 그는 ‘친소관계로 주고받는다면 상의 피해는 상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풍토를 오염시키는 결과에 직면한다. 이런 상들은 모조리 오염문학상이다’ 라고 강력하게 비평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문단에 횡행하고 있는 문단 감투에 대해서 독설에 가깝도록 예리하게 논조를 정리하고 있다. 한국문협에서는 제26대 임원 개선 선거가 시작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감투에 집착한 인상을 남긴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 어떤 단체이건 수장이 있어야 그 단체를 이끌어 나간다. 하여, 단체의 장은 오로지 정직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일부는 이를 이성으로 제어하지 못하거나 양심을 져버리면서 자아도취나 자기중심의 사고로 또는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치졸한 이기주의의 발현으로 비극적인 안언의 회자(膾炙)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문학과 문인 그리고 문단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성되고 있다. 왠 일일일까. 존재에 관한 자성과 가치관이 주제로 승화하지 못하고 그냥 독백이나 허접스런 스토리 같은 문학이 팽배하고 있어서 우리 문학의 발전과 세계화의 물결에 동승하지 못한다는 아주 평범성과 한편 문인들도 치열한 문학정신이 결여 된 채 매너리즘에 머물고 있다는 데서 그 원인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문단에 대해서는 ‘문인은 치자(治者)도 아니다. 교화자도 의사도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감정의 연금사(鍊金師)이며 민중의 친구이다’라는 김남조 시인의 말처럼 문단의 수장은 권력을 휘두르면서 회원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직 우리 문학의 발전방향에 대해 진지한 대처방안의 모색이라든지, 문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창작환경을 개선하거나 복지문제를 연구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든지, 또는 협회나 그 단체가 진실로 회원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운영해 나간다면 회원들의 친구가 되고 나아가서는 국민들의 문학적 인식에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우리의 해이된 정서가 물질문명의 충만에서 기인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쉽게 살아가려는 현대의 불확실성에서 파장된 정신문화의 개선에 대해 문학이 감당해야 할 몫을 망각하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문학은, 특히 시는 진실한데서 비로소 그 가치와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이든 시인과 시단이든 진실성이 결여되었다면 모두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금의 문학에 대한 일련의 사안은 우리 문인들의 지고한 각성이 없이는 개선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문학지 발행인들은 신인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서 좀더 신중하게 신인을 선발해야 한다. 아직 수준미달의 문인을 배출하는 것은 그만큼 문학적 수련이 미흡하다는 증거이기에 자체 교육이나 지도를 통해서라도 언어의 조탁(彫琢) 능력과 주제의 투영 그리고 문인으로서의 자질과 예의까지도 주입시켜야 한다.
전국의 문학나체에서는 이러한 실상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새로 등단하는 신인들에게는 소정의 연수를 실시한 후에 정식으로 문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새로 출범하는 문협에서는 다각적으로 개선하거나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문인들의 반목질시(反目嫉視)나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문단의 역사 창출을 통해서 우리 문학의 위의(威儀)와 본령의 정립을 위해 우리 문인 모두가 정성을 보태야 할 것이다.
문학과 문단 그 간극(間隙)에서
문학의 위의(威儀)나 본령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가치관이나 자연의 섭리에 대한 재조명으로 존재문제를 조화롭게 해석하려는 숙명적인 과제가 투영해야 하는 고차원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문학의 기능에 속하는 평범한 속성이지만 작품을 창작하는 문인들에게는 상당한 체험과 사유라는 고뇌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찍이 문학은 오랜 수면을 깨뜨리고 새로운 문화를 건설할 만한 활기 있는 정신력을 민족에 주입 혹은 강렬한 자격(刺激)으로써 민족의 정신 중에서 계발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이광수는 그의 글 「文士와 修養」에서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문학의 생태적 근원에는 민족정신과도 불가분의 연관이 있다는 긍정적인 언지로 받아들인다면 문학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비롯하여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의 중심축에는 민족문화의 골간이 되는 문학이 지향적인 선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인은 무엇인가. 문인은 이 현대라는 거대한 시공에서 벌어지는 중대한 상황에서 이를 화해하고 극복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절실한 존재이다. 지금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황금만능의 현실에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피폐나 사회적 분열현상을 진단하여 이를 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명사회의 분열이나 부의 축적을 위한 반사회적, 반인륜적 형태의 위험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어서 우리 문인들의 소임은 더욱 형이상적인 고뇌로 진전해야 한다. 현대 인간들은 어찌보면 기계의 한 부품처럼 존재의 가치를 단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품들을 직조한 메카니즘으로 환원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리 문인들은 단절의 시대를 경계해야 한다. 국토의 단절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단절, 이웃의 단절, 자연과의 단절 등이 문학과 함께 진실을 탐색하여 단절에서 파생된 고립과 고독, 소외가 나아가서 불안과 갈등으로 인간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을 계도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류의 공동 운명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핵문제, 국가적 분쟁, 빈부의 격차, 자연의 파괴 등에 대한 문학적으로 대처하려는 문인들의 문학정신은 결코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문학의 기능을 살려서 이렇게 중대한 문제들을 비판하고 통합하고 화해해야 하는 막중한 현실에 비해서 우리 문단은 어떠한가. 작금의 우리 문단 현실은 많은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동시에 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우리 문학의 위기나 수축은 곧 문인들의 위상이 축소되는 것이며 문단의 기능과 활동범위가 퇴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국가적 정책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겠으나 앞에서 말한 문학정신의 안일과 문인들의 현실적 안주에서 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우리 문단은 솔직히 말해서 문단정치가 팽배해서 서로의 권력다툼 같은 현상을 주목한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한국문인협회만 하드라도 설립정신에 명시된 회원들의 권익보호나 친목도모는 물론이지만 국내외적으로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한 작품 창작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 그 역할이 중요한데도 잡다한 일상적이며 보편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영달이나 이익에 몰두한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감안하여 한국문인협회가 문단 정화에 앞장 서야 한다. 개인주의가 내세우는 분열현상의 산물로 등장한 수준미달 문학지들의 범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또 거기에서 양산하는 신인들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기준 없는 부실한 문학상의 남발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참으로 우리 문단에는 단언하기 어려운 실상들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문협으로서도 일정한 기준으로 규정을 제정하여 이를 제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를 방관만 하자니 혼란이 조성되고 문단 질서가 파괴된다. 잡지나 신인이나 문학상들은 모두가 이를 직접 경영하는 문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이를 실질적으로 정화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문학의 본령과 문인의 위의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는 어떤 단체나 집단이 관여할 일이 아니고 문인 스스로가 지적인 자양을 보충하거나 확충하는 방안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
우리 문협 회원이 1만 명 시대를 넘어 섰다. 양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충족이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일차적인 책임은 각 문학잡지에 있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직 성숙되지 않았거나 프로정신이 부족한 아마추어 문사들을 대거 등단시키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게 된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말에 의하면 개인 인터넷 까페에서 작품을 모집해서 작품의 지도와 검증의 절차 없이 바로 잡지사와 연결해서 신인으로 등단하는 기현상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접하면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또한 이를 이용해 당사자에게 잡지를 팔아서 그 수익이 운영과 직결하는 기발한 경영철학에 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선발된 문사들에게서 투철한 문학정신과 문단의 예절과 문인의 이상적인 위의가 생성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들 과거 1960년대, 70년대 등단의 노력과 어려움을 말하는 것도 그만큼 문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등이 합일하는 인생철학을 중시하는 풍토가 없어졌다는 아쉬움의 일단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 문학이 사회적으로 순화하고 인간의 성찰이라는 순수성을 고양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성취할 때 우리 문학은 더욱 빛나게 되고 우리 문인들의 위상도 지성적인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공감의 영역은 확고해 질 것이다.
올해는 우리 문협 임원의 임기가 만료되어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는 해이다. 앞으로 선임된 임원의 자질이나 그 위상은 어떠 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우리 회원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문학적, 문인적 혹은 문단적으로 대과가 없어야 하며 열과 성으로 단체와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사라야 적절하다는 기초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유언비어처럼 횡행하는 상호 비방이나 모략 등의 언행은 우리 문학과 문단 그 간극으로 변해서 서로의 불명예를 면하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문단정치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이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는 것은 왠 일일까.
우리 문학과 문인 그리고 문단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진정한 문학정신과 문인의 위의를 회복하는 것이 절대적인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 인간의 진실이 곧 문학의 진실이며 문인들이 절감하는 철학적 기원이기 때문이다.**2010. 7. [월간문학]
문학의 위기, 문단의 진실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문학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는커녕, 시대적 위기를 절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원인은 거창한 국가의 정책이나 위정자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 문인들 스스로의 자가진단이 앞서야 하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자성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감은 다수의 순수 지향의 문학 정신과 문학의 목적을 왜곡하고 동시대의 현안문제를 중시하는 진보 성향의 문학이 대립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선비의 혈통이 관류하는 문사의 정신을 고수하려는 순수 문학인들의 정서와 사유방식을 고루하다고 폄하하면서 민족이라는 기치를 앞세워 우리 문학과 문단을 양분해서 위정자의 코드에 맞추려는 문인들의 작품세계와 그들의 문학정신은 어떠하겠는지 그 짐작은 뻔한 일이다.
사실 요즘 우리 문학과 문단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상한 정치적인 논리로 분열하는 현상이다. 많은 지식인들과 문인 학자들 그리고 비평가들이 이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문학 논리적으로 아무리 대응해도 오히려 정권 차원에서 그들을 비호하는 것 같은 인상만 초래해서 순수 문학 진영에서는 갈등만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갈등은 작년에 금강산에서 결성되었다는 ‘6.15민족문학인협회’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분단 60년만에 남북한 민간인 조직의 성공이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핵실험이 있어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었으며 우리 쪽에는 폭우로 엄청난 수해가 발생하여 복구에 경황이 없을 때였다. 더군다나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라는 선전문구 같은 시를 읽으면서 박수를 쳤다는 것이 남북의 화합인지는 모를 일이다. 해방 직후 우리 문단이 좌우익으로 분열한 일은 있었다. 좌편향의 문학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이 되어서는 누가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문인들의 자아 성찰이다. 문학이 거리의 노숙자를 구제하거나 현실에 고통 받는 사람 하나 구원할 길이 없다손치더라도 인간이 간직한 순수한 정서를 공유함으로써 고뇌와 상처들이 아름다움과 위대함으로 변형하는 인간 본령의 탐색에 다소나마 기여함이 필요하다.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영상매체와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문학과의 괴리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일회성 시각적 만족에 취중하면서 문학을 통한 사색과 지적자양의 충전은 강 건너 불보기인 듯하다. 방송이나 언론매체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정책에도 허점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대중성이 짙은 문학만 골라서 출판하고 언론에 회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나 시인들만이 최고의 문인으로 대접하는 비극적 행태 역시 문학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질 낮은 문학지들이 쏟아지고 여과되지 못한 문인이 양산되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문단을 사조직화해서 문단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몰지각한 문인들의 대오각성도 함께 요구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들이 우리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문단의 진실이다. 진정한 존재의 고뇌에서 창출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영혼과의 접목을 위한 작품 창작에 치열하게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학은 우선 생명에의 사랑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은 언제나 생명의 곁에 서며 때에 따라 생명이 훼손되었더라도 한결같이 이를 지켜보며 포용의 팔을 벌리는 역군 속에 몸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문학인의 존재이유와 사명적 자각을 본다’는 김남조 시인의 언지가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어인 일일까.
문단 교육의 불모지에서
우리 문단에는 신인 문사들이 매월 수십 명씩 얼굴을 내민다. 문인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탓할 리는 없겠으나 양보다는 질을 가늠하면서 문단 일각에서는 이러쿵하는 비아냥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예전에 비해서 출판사와 문학잡지의 등록이 쉬워졌다는 점에서 파생하는 신인 등용문제도 파격적으로 증가하므로 인해서 야기된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문단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인상 당선은 상당히 어렵거나 까다로웠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종합지와 전문지를 합쳐도 몇 개 되지 않는 문학지에 투고를 해서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 고충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지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부지기수의 문학지와 더불어 인터넷에서도 신인에 관한 중매역할을 하고 있어서 신인에 대한 자질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 까페나 블로그를 통해서 문학 지망생을 보험가입자 모집하듯이 광고를 해서 낙서처럼 쓴 독백을 작품이라고 추천하여 특성 잡지에 등단을 알선하는 업자(?)도 생겼다는 소문이 공식화한지 오래전의 일이다.
이러한 양상은 문학지를 발행하는 사람과 신인을 뽑을 필요를 가진 사람도 기성문인들이며 신인을 양산하는 데 일조를 하는 심사를 맡은 사람도 문인이라는 점과 이를 부추키고 조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땅의 문인들이라는 점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示唆)를 적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문단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개탄만 하고 있지 누구 하나 앞장서서 개선의 의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신인을 양산해서 잡지 경영에 보탬을 갖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신인의 문학적 자질과 문학성의 인식에 관해서는 한번 짚어볼 문제라고 사료된다.
우선 문학단체가 회원문인들의 자질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문학단체는 잘 아는 바와 같이 한국문인협회를 중심으로 해서 국제펜클럽한국본부를 비롯해서 각 문학 장르별로 단체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희곡작가혐회,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한국평론가협회 등 단체가 활발하게 우리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데 비해서 신입회원의 가입에는 일절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통과해서 어엿한 회원으로서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처럼 신입회원 입회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문협의 입회 자격은 ‘3년 이상 결호 없이 발간된 문학월간지’와 ‘5년 이상 결호 없이 발간된 격월간, 계간, 반년간 종합문예지와 장르별 문예지’에 신인상에 당선했거나 추천을 완료한 사람으로서 만 1년 이상 건전한 문학 활동을 한 문인이 소정의 입회원서를 제출하도록 규정에 명시해 두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회원자격 심의를 거쳐서 확정하고 이사회에 보고하여 인준을 받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신입회원에 대한 문학 교육이 필요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사전에 적정한 문인으로서의 자질교양 교육이나 문학의 특성상 창작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의 신인들은 고령화 추세에 따라서 사회적인 권위나 퇴임전의 직위와 관련한 인생적인 우월주의에 젖어서 대체로 문단예절과 문단 소양의 부족형태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물론 문학이 인생과 깊이 결부되고 인생론이 결국 문학적 체험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지만, 문학은 문학이 간직하는 지혜와 문단사적인 이해도 필요하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아니하는 현실적인 정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문협에서는 신입회원이 일차적인 서류심사가 완료되면 일정 시간의 기초 소양교육을 마쳐야 정회원으로 입회한다는 제안이다. 문단 예절, 문학정신, 한국문학사, 창작의 요체 등 4회 정도의 기초교육필증을 첨부해서 입회비와 함께 납부하면 비로소 문협의 정회원 자격을 획득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런 사항들이 수차례 건의를 했으나 앞으로 개관할 문협연수원에서 담당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한국문협에서는 자체 회원뿐만 아니라, 전 잡지출신의 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교육을 주도해서 명실공히 한국문인의 위상을 제고하여 한국문학 발전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우리 문단의 윤리가 확립되고 주제의 새로운 창조가 광법위로 확산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서로의 인격을 폄하(貶下)하거나 시기 질투의 심성이 불식되고 그야말로 문인답고 문인스러운 문인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하며서 존재의 문제와 자연 파괴의 문제 등 실질적으로 우리들이 천착해야 할 문학적 주제의 계발에 매진할 때가 도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학은 자아를 확인하는 방대한 일생의 작업이다. 자아 인식은 바로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재확립하는 계기가 되는 일이며 이러한 인간의 정신이 우리의 정서와 융합하여 메시지로 승화할 때 우리 문학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이런 일도 자신의 열정적인 지식의 축적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하고 질 높은 체험을 위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문단과 문학 교육의 불모지에서 자성의 사유를 근원으로 하는 새롭고 진정한 문학적 진실의 창출을 우리 함께 구현해야 할 것이다. 인성이 자멸하고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의 불감증은 이러한 우리의 문학 교육을 더 필요하게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순수문학] 2010. 3월호 수록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서
--‘2009년의 회고와 새해 계획’
2009년이 저물었다. 지공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만 65세가 넘으면 당해 동사무소에서 지하철 운임 면제 패스를 발급한다.)들은 더욱 바빴다. 모든 공직에서 퇴임하고 나면 어쩐지 더 바빠진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이다. 그래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2009년 초봄까지 정신없이 글쓰는 일에만 매달린 것 같다. 5개의 문학지 월평과 시집 해설이 밀려났다. 그 외에도 문학 행사에 참여하고 시창작 강의를 매주 2회씩 실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과로하게 되었다.
5월 어느날, 신체적인 신호가 왔다. 황급히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정밀진단을 실시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앞으로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어차피 병원에 입원한 이상, 다른 기관에도 이상이 없나하고 심장, 폐, 간, 이비인후과 등을 검진하였으나 흡연문제만 단호하게 지적해서 그날부로 40여년 피운 담배와 결별하는 상당히 어려운 결심을 실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송배가 입원해서 이젠 재기불능 상태라는 등의 모함이 있었는가하면 마침 동명이인인 여류시조시인 김송배씨가 별세하여 신문에 났는데 이 김송배가 죽었다고 문단에 소문이 좍 퍼져서 문협과 시협에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는 후문을 접하고 웃음이 나왔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좌익정권의 수장이었던 두 분이 타계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 분은 천명을 다했지만 한 분은 자살이라는 극단을 택했다. 청렴을 주장하던 그의 양심에는 엄청난 충격이 있었겠지. 그러나 떴떴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모든 오명을 탈피했다는 씁쓸한 여론만 무성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우리 문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없다. 저들이 지난 10년간 진보라는 명목으로 문화예술의 위상을 독점하고 소위 보수 순수진영의 예술인들을 소외시켰던 점에 비하면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기만 하다.
그러니까 지금은 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기사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정책이 경제논리로만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문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학서적(특히 시집 한 권이라도)을 읽는 사람이 없다. 대체로 독서인구를 살펴보면 ‘주식투자로 돈 버는 법’이거나 ‘웰빙 식사법’, ‘건강으로 장수하는 법’, ‘여행하면서 즐기는 법’ 등 현재 가시적인 것뿐이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교양이나 정서의 충족을 위한 서적은 읽히지 않는 풍토로 변하고 있음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물질만능과 첨단과학의 시대에서 편리하면서 만족스러움 지향의 단순한 정신적 향유를 선호하는 국민성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국어를 등한시하고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부 몰지각한 정책입안자들의 편의주의와 개인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0년 새해에는 제발 이러한 비상식을 일소해야 한다. 문학에 대한 소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문학이 100년을 넘어서는 전통이 진정한 맥을 이어서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여건조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제 한국문인협회 임원들도 임기가 끝나는 해이다. 과거의 문협 역사를 반추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성하지 않으면 전 회원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문학단체의 운영은 피선자 개인의 욕망으로 운영되거나 영달의 발판이 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핍박을 잊었는가. 지금까지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어쩌면 이형기 시인의 [낙화]와 같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을 닮을 수 있는 단체의 장이 필요하다.
새로 피임되는 문협 이사장은 이러한 명예를 중시하는 문인이 되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이면서 화해와 단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누구처럼 수렴청정으로,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려는 원로는 조용히 문학 본연의 자리로 물러서야 한다.
우리 문학도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신인들에게는 등단후 재교육을 실시하여 문단예절과 문학사조, 단체의 역사, 작품의 질적 향상 등에 관한 선배들의 진정한 채찍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은 한국문협에서 신입회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송구영신’과 ‘근하신년’을 동시에 띄운다. 아직 1년여 남았지만 지난 3년동안 아낌없는 지도 편달로 이끌어주신 고마운 시분과 회원들이 나의 곁에서 응원을 보내준데에 감사를 보낸다. 다 많이 공부하고 수양하여 좋은 작품 쓸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자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행운을 기원한다.*2009. 겨울호 [문학예술] 수록
詩는 현실적으로 위기인가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서 문학을 하는 것일까. 간혹 이렇게 참으로 우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요즘처럼 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점에서는 재테크에 관한 책과 건강하게 사는 법 등의 서적은 불티가 나지만, 시집은 아예 진열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물질문명의 풍요에 대처하는 인간들은 정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지고 있다. 무질서하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어서 거리에는 폭력과 사기 등 강력범죄가 난무하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어서 21세기 현대인들의 가치관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과연 문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거리에서 신음하는 노숙자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 문학(옛날에는 쌀 한 됫박, 연탄 한 장도 보탬이 되지 않는 문학이라고 했다)의 기능을 두고 문인들은 스스로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순박한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을 열 수 있는 작품 한 편을 창작하기 위해서 골몰하는 문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문학을 통해서 인생과 삶의 가치를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곧 문학이 ‘나’의 존재와 공존하는 그 가치성을 절대시하면서 원고지(요즘은 컴으로 하지만)와 함께 살아간다.
일직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본시 있던 나’에게로 복귀하는, 말하자면 진정한 ‘나’의 존재를 탐색하고 확인하는 고독한 작업이 솔직한 나의 문학관이다. 문인은(특히 시인은) 무엇인가를 일상인(하이데거는 그냥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균적인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라 했다)보다는 정서의 지향이나 사유의 방식이 더욱 지적이어야 하고 건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나에게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허탈과 굴욕에서 황사바람이는 현상의 어느 벌판, 이런 곳에 한 줄기 훈풍으로 영원히 남아 있었다. 가시거리를 순간에 잊어버렸어도 꿈으로만 엮어진 가난한 마음이 있었고 그 내부 깊숙이 언제나 섬광처럼 번뜩이는 커다란 사상이 깔려 있음은 오늘의 황사현상을 용케도 헤쳐 나온 원동력이었으리라.
--나의 신인상 당선소감(‘불혹의 언어’)의 일부
나의 개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현실적 갈등과 고뇌를 오로지 문학(시)을 통해서 정화하려는 확고한 심저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저항감이나 특정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당시 농촌의 보릿고개 시절, 그래서 지적 자양의 충전이 불가능했던 정서는 언제나 우울한 그림자로 나를 고통스럽게 이끌고 있었기에 친자연적, 향토의 토속적인 소재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와 존재를 성찰하는 시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것이다.
시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하고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는 일은 문학에서 중요하다. 여기에는 성찰과 화해라는 상보성이 전제하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갈등과 번민을 해소하는 지적 혜안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나와 ‘닙새’동인들이 공동으로 성취해야 할 문학적 과제이며 숙명이다. 인간의 고통과 자연의 파괴 등은 특수 인간들의 정책적으로는 해소하기 힘들다. 우리 문학이 참여해서 인간의 정신 승화와 자연 친화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삶의 궤적을 회상하는 독백이나 사물을 스케치하는 문학 시대는 이미 낡았다.
지금 도약의 깃발을 세우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출범하는 ‘닙새’는 적어도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정도, 장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정도는 실천하려는 시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처럼 당찬 지표를 확실하게 정립하고 인본주의의 깃발 아래 진선미(眞善美)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타오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현대시의 생성과 문예지의 기여
우리 현대시의 역사는 올해로 100년을 맞는다. 대체로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1908년 11월, 그가 창간한『少年』지에 신체시「海에게서 少年에게로」를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산정한 것이다.
그러나 최남선은 이 작품을 통해서 시의 형식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개화기의 일반 시가(詩歌)와 잘 구분되지 않는 면도 있다. 종래의 4. 4조나 7. 5조의 정형시 율격을 파괴하고 근대시로 발전시킬 준비의 단계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우리의 근대시는 서구문명(1984년, 정조 8년에 서교(西敎)의 성경과 찬송가가 들어오고 1985년에는 영국의『天路歷程』이 소개된)의 유입으로 신구 문화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이는 개화기 시가가 개화사상이나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강렬한 저항을 노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 근대시의 본격적인 출발은 최남선과 이광수, 김 억이『少年』,『靑春』,『學之光』등이 창간되어 여기에 신시를 처음 보여줌으로써 이 시도는 우리 현대시의 방향을 예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시의 출발점은 어디서부터일까. 많은 학자나 평론가들은 육당이 신체시의 선구자라고는 할 수 있어도 완전한 자유시의 개척자라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간과(看過)하지 않는다. 우리는 1919년 2월『創造』창간호에 발표된 주요한(朱耀翰)의「불놀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아 날이 저문다, 西便하늘에, 외로운 江물 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제1연)
이는 육당의 강한 창가적(唱歌的)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산문형식으로 구성한 자유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월 초파일에 흥겹게 노는 군중과 떨어져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던 젊은이가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히지만 ‘불놀이’ 광경을 보고 삶의 의지를 회복하는 이야기시의 형태가 시인의 개성적인 서정의 발견이며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현대시의 생성은 1919년 3. 1운동을 전후하여 우선『태서문예신보』(1918.9.)가 창간되어 김 억의「밋으라」,「오히려」,「무덤」, 장두철의「외 외 아직도」, 백대진의「어진 아내」, 이 일의「나의 노래」,「孤獨의 歌」, 최영택의「일어나는 불」,「잠자코」,「己未의 세임」, 계 원의「樂群」과 음고생의「떠라 怠學生」등의 창작품과 번역물이 게재됨으로써 활기를 갖게 된다.
또한 그 이전에 발간된『少年』,『靑春』『태서문예신보』가 교양을 겸한 준문예지 성격을 띄었다면『創造』(1921.2.) 는 유학생들에 의해서 발간된 순문예지라는 데서 우리 문학사상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 일의「東京아 잘 있거라」,「新生의 日」, 오천석의「꿈길」, 김 억의「浪人의 봄」,「夜의 雨滴」,「無過의 泣」,「그리워」,「春岡」,과 이광수의「밋븜」,와 함께 주요한의「불놀이」,「새벽꿈」, 「하이안 안개」,「선물」등이 발표되면서 시연(詩聯)을 고려한 반자유음률의 신시로 발전시켰다.
이후 계속되는 시동인들의 활발한 활동은 동인지(혹은 문예지)들의 창간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전개되어 문예지들의 역할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게 되었다.
- 『開闢』(1920.6.) 잔 물(「어머님」), 노 월(「死의 讚美」), 청 우(「자연의 느 낌」), 강아지(「동무들에게」), 황석우(「微笑의 花輿」), 춘 성(「가을」), 오상 순(「新詩」), 김석송(「離鄕」) 등이 창간호에 작품을 발표하였음.
- 『廢墟』(1920.7.) 김억, 남궁벽, 김영환, 나혜석, 염상섭, 오상순, 황석우, 이익상 등이 낭만주의를 기조로 하여 퇴폐주의, 감상주의, 이상주의를 포괄한 다양성을 띠고 있음.
- 『薔薇村』(1921.5.) 변영로(「장미촌」), 황석우(「장미촌의 향연」,(「장미촌 제 1의 여명」), 정태신(최후의 고향」), 근포 신태악(「生과 死」), 춘성 노자영 (「피어오르는 장미」,(「밤하늘」), 희월 박영희(「笛의 悲曲」,「과거의 왕 국」), 박종화(「우유빛 거리」,「懊惱의 청춘」), 이 홍(「新月의 夜曲」), 이 훈 (「春」) 등이 작품을 발표한 최초의 시 동인지임.
- 『白潮』(1922.1.) 나 빈, 홍사용, 노자영, 박종화, 이상화, 오천석, 이광수, 박영 희, 현진건, 김기진 등이 참여하여『薔薇村』의 낭만주의 경향을 계승하여 감상 적, 퇴폐적, 상징적, 환상적 방향으로 더욱 심화 발전되어 초기 낭만주의 시운동 에 기여함.
- 『金星』(1923.11.) 이상백, 백기만, 양주동, 이장희, 손진태, 유 엽, 양주동 등이 참여하였고 김동환, 박용서, 이원영 등이 추천시를 발표함.
- 『廢墟以後』(1924.1.) 오상순, 김석송 등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예술지상주의 이념을 천명함.
- 『靈臺』(1924.) 김관호, 김소월, 김동인, 김억, 전영택, 이광수, 오천석, 주요한 등이 순수한 창조적 의욕으로 결집하여 후기 문학운동의 주조인 순문학적 요소 가 그 특징을 이룸.
- 『朝鮮文壇』(1924.10.) 방인근, 이광수, 박팔양, 남진우 등인 발간한 최초의 순 수문예지. 권두사에 ‘참된 예술’ ‘인생을 위한 예술’ ‘우리 조선’을 강조하여 민족 주의 문학을 표방함. 시론으로 주요한(「노래를 지으시려는 분에게」), 김안서 (「타고르의 시」), 이광수(「민요소고」), 이은상(「시인 휘트맨론」), 양주동 (「시단 총평」), 최남선(「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이 참여함.
- 『海外文學』(1927.1.) 김진섭(독문학), 이선근(러문학), 정인섭(영문학), 이하윤 (불문학), 이헌구(불문학), 김광섭(영문학), 장기제(영문학) 등 당시 일본 유학생 중심으로 외국문학을 통한 우리 문학의 건설을 강조함.
- 『朝鮮詩壇』(1928.11.) 황석우, 염상섭, 김억, 김동환, 김해강, 고형곤, 백형기, 김정한, 김현승, 유치환, 모기윤, 이서구, 박팔양, 이익상, 김영팔 등이 범조선의 시 잡지를 표방함.
- 『文藝公論』(1929.5.) 방인근, 양주동, 염상섭, 심훈, 정인보, 이은상, 김억, 한설 야, 김소월, 이장희 등이 활동함.
이와 같이 1910년대에 생성하는 우리 현대시는 신체시를 넘어 1920년대 본격적인 자유시 형태를 갖추는데 문예지들의 많은 기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물론 만해 한용운과 같이 이러한 문예지에 동참하지 않고 자기 개성 내부에서 출발한 시인들도 많았다.
현대시는 1930년대를 맞으면서 음운적(音韻的) 혹은 음율적(音律的) 언어로 자아의 사상과 감정을 조화시킨 현대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데, 1910년대는 시의 계몽시대이며 1920년대는 동인문단으로부터 개인적인 창작시 탐색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정시와 주지시가 새롭게 등장하고 1930년대는 자연의 귀의와 민족정신의 수련으로 우리 현대시를 정착하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1930년 3월에『詩文學』이 발행되면서 김영랑, 이하윤, 박용철, 김현구, 허보, 변영로, 신석정, 김기림, 임학수, 임춘길 등 우리 시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이 자신의 언어와 감정과 개성을 충분히 발현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문학과 비교할 수 있는 정인보, 이하윤, 정지용, 박용철, 서항석, 이헌구의 동서양 현대시를 번역 소개하는 새로운 업적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 경향은 자기 언어의 미학을 최대한 시와 접목시키는 순수서정의 형태이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미화하여 표출시킨 현대시의 전통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후로『新東亞』(1931.11.),『文藝月刊』(1931.11.),『新人文學』(1934.8.),『三四文學』(1934.9.),『詩苑』(1935.2.),『藝術』(1934.12.),『四海公論』(1935.5.),『詩人部落』(1936.11.),『浪漫』(1936),『朝光』(1935.11.),『詩建設』(1936),『詩人春秋』(1937.6.),『삼천리문학』(1938.11.),『斷層』(1937.4.),『靑色紙』(1938.6.),『작품』(1939),『白紙』(1939.7.),『雄鷄』(1939),『人文評論』(1939) 등의 잡지들이 발간되어 많은 시인들이 활동하게 되어 우리 시사(詩史)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39년 2월에 창간된 순수문학지『文章』에서는 박종화, 김상용, 모윤숙, 임화, 이양하, 정지용, 김교한, 이병기, 김동환, 김종한, 이한직, 김수돈, 조지훈, 신석정, 김동명, 김광섭, 박두진, 김기림, 이육사, 변영로, 김영진, 박목월, 신석초, 박남수, 오장환, 이호우, 김광균, 서정주, 유엽, 노춘성 등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라성(綺羅星)의 시인들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文章』지야말로 우리 현대시의 정착에 공헌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이 때 신인 추천제도를 시행하여 김종한(현대적인 감각의 추구), 조지훈(동양적 禪 세계의 직관), 박목월(향토 정관의 미), 박두진(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연에 귀의), 이한직(현대적 예지의 세계), 박남수(모더니즘의 실험), 김상옥(이지와 우아한 세계의 섬세), 조정순(한국 여성미의 조화), 김수돈(향수적인 토속성), 이호우(한국의 정한) 등 우리 시단의 거목들을 미리 알고 등단시킨 것이다. 물론 이 추천제도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시행했으나 1년에 한 명만 뽑는 제도였다.
당시 박목월을 추천한 정지용의 추천사와 추천소감 일부는 다음과 같다.
북에는 김소월이 있었거니와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 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 요적수사(謠的修辭)를 다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조선 시다.
조용한 황혼의 노래나 열 편이나 스무 편이나 쓰고 혹은 포플라의 노래 몇 편에 자장가나 두어 편 쓰고 삼십 안짝에 또는 사십 넘어서 예순 안짝에 혹은 여든 안짝에 죽으리라.(1939.9. 첫 추천. 12. 두 번째, 1940.9. 마지막 추천)
이러하듯이『문장』지를 통한 일군의 시인들은 자연의 재발견과 인간과 민족의 역사를 투영하여 우리 현대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큰 의의를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시인이 발행한『靑鹿集』(1946.6.)은 30년대 후기 우리 시문학의 이정표였다는 점과 이들을 ‘청록파’라 이름한 것도 우리 시사에 큰 흔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우리 현대시의 생성 과정과 문예지들의 상관성은 지대하다. 아마도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매체가 있었기에 생성하고 발전해 왔다. 그 문예지들의 기여에 힘입어 오늘 우리 현대시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후죽순으로 발간되는 문학지와 인터넷 매체, 영상문학의 등장 등을 보면서 21세기 현대시의 일대 전환기가 도래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 시의 형성과정에서 보았듯이 명징(明澄)한 시인의 정신을 투철하게 투영하면서 자연이나 인성 등 존재를 성찰하는 현명한 시인의 자세와 시의 위의(威儀)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서
--‘2009년의 회고와 새해 계획’
2009년이 저물었다. 지공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만 65세가 넘으면 당해 동사무소에서 지하철 운임 면제 패스를 발급한다.)들은 더욱 바빴다. 모든 공직에서 퇴임하고 나면 어쩐지 더 바빠진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이다. 그래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2009년 초봄까지 정신없이 글쓰는 일에만 매달린 것 같다. 5개의 문학지 월평과 시집 해설이 밀려났다. 그 외에도 문학 행사에 참여하고 시창작 강의를 매주 2회씩 실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과로하게 되었다.
5월 어느날, 신체적인 신호가 왔다. 황급히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정밀진단을 실시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앞으로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어차피 병원에 입원한 이상, 다른 기관에도 이상이 없나하고 심장, 폐, 간, 이비인후과 등을 검진하였으나 흡연문제만 단호하게 지적해서 그날부로 40여년 피운 담배와 결별하는 상당히 어려운 결심을 실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송배가 입원해서 이젠 재기불능 상태라는 등의 모함이 있었는가하면 마침 동명이인인 여류시조시인 김송배씨가 별세하여 신문에 났는데 이 김송배가 죽었다고 문단에 소문이 좍 퍼져서 문협과 시협에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는 후문을 접하고 웃음이 나왔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좌익정권의 수장이었던 두 분이 타계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 분은 천명을 다했지만 한 분은 자살이라는 극단을 택했다. 청렴을 주장하던 그의 양심에는 엄청난 충격이 있었겠지. 그러나 떴떴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모든 오명을 탈피했다는 씁쓸한 여론만 무성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우리 문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없다. 저들이 지난 10년간 진보라는 명목으로 문화예술의 위상을 독점하고 소위 보수 순수진영의 예술인들을 소외시켰던 점에 비하면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기만 하다.
그러니까 지금은 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기사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정책이 경제논리로만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문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학서적(특히 시집 한 권이라도)을 읽는 사람이 없다. 대체로 독서인구를 살펴보면 ‘주식투자로 돈 버는 법’이거나 ‘웰빙 식사법’, ‘건강으로 장수하는 법’, ‘여행하면서 즐기는 법’ 등 현재 가시적인 것뿐이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교양이나 정서의 충족을 위한 서적은 읽히지 않는 풍토로 변하고 있음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물질만능과 첨단과학의 시대에서 편리하면서 만족스러움 지향의 단순한 정신적 향유를 선호하는 국민성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국어를 등한시하고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부 몰지각한 정책입안자들의 편의주의와 개인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0년 새해에는 제발 이러한 비상식을 일소해야 한다. 문학에 대한 소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문학이 100년을 넘어서는 전통이 진정한 맥을 이어서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여건조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제 한국문인협회 임원들도 임기가 끝나는 해이다. 과거의 문협 역사를 반추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성하지 않으면 전 회원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문학단체의 운영은 피선자 개인의 욕망으로 운영되거나 영달의 발판이 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핍박을 잊었는가. 지금까지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어쩌면 이형기 시인의 [낙화]와 같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을 닮을 수 있는 단체의 장이 필요하다.
새로 피임되는 문협 이사장은 이러한 명예를 중시하는 문인이 되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이면서 화해와 단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누구처럼 수렴청정으로,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려는 원로는 조용히 문학 본연의 자리로 물러서야 한다.
우리 문학도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신인들에게는 등단후 재교육을 실시하여 문단예절과 문학사조, 단체의 역사, 작품의 질적 향상 등에 관한 선배들의 진정한 채찍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은 한국문협에서 신입회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송구영신’과 ‘근하신년’을 동시에 띄운다. 아직 1년여 남았지만 지난 3년동안 아낌없는 지도 편달로 이끌어주신 고마운 시분과 회원들이 나의 곁에서 응원을 보내준데에 감사를 보낸다. 다 많이 공부하고 수양하여 좋은 작품 쓸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자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행운을 기원한다.(2009. 봄호. [문학예술]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의 탐구
--『계간시원』 창간사
* 정신적 위기의 시대에서의 시문학 우리는 지금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삶의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정자들이 국가의 정책이나 국가의 발전방안에 경제 위주의 범주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인간 정서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등의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경제대국의 실현으로 부富의 혜택을 적극 수용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의 지수는 부의 축적과 동일하다는 논리에 정신적인 계발이 전무하다싶이 한 오늘날 지성인들의 충고를 도외시하는 시대적인 비극이 실제 상황으로 현시되고 있음을 개탄한다. 우리 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활방식에서 벗어나고 시인들이존경받고 정서의 총체적인 지적 소양을 제공하는 풍토는 옛이야기로 남아버렸다. 학교에도 입학시험 위주의 교육으로 정신세계를 황폐화해서 인간의 존재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의 정신이 자기의 성찰이나 영혼의 탐구라는 시의 본령과 위의威儀가험준한 고행으로 바뀌면서 인성이 횡포화하고 무도덕적, 무법적인 사회로위험이 난무하는 무서운 시대를 살아야하는 고통에서 하루 빨리 정상화를갈망하고 있다. * 잡지 제호가 왜 『시원詩苑』인가 지금 우리는 위와 같은 시와 시인의 부정적인 부재시대에서도 문학지들이많이 발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전문지도 다수 발행되어 시와 시인구의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제작비와 원고료를 정상적으로 투입하여 그 정체성을 확고하게 영위하는 잡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 시대의 문학지는 그 어려움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으며 제작이나 원고료 등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신인상 피추천자에게 책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등단을 시키는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문단에물의를 야기하는 등의 몰지성인의 행동으로 많은 빈축을 사기도 한다. 이러한 난기류에서도 우리는 『시원詩苑』을 계간으로 창간하고자 새롭게 깃 발을 높이 세운다. 이 『시원詩苑』은 잘 아는 바와 같이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 시인이 1935년에 범시단을 지향하는 시전문지로 창간하였으나 제5호를 마 지막으로 종간했지만 1930년대 우리 시단에 커다란 시사적詩史的인 의미를 남겼다. 그 당시 많은 시인들의 호응이 있었으나 카프 계열의 시인들 작품을 게재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고 전한다. 그후 해방을 맞이하여 서울로 올라가복간하려 노력했으나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어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그는 병세의 악화로 고향 경북 영양으로 귀향하여 과도한 폭음에 의한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 향후 시문학의 새로운 활성화 계획은? 이처럼 오일도 시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도는 아니고 새로운 시지詩誌 의 작명을 위해서 자문을 구하고 몇몇 편집위원들의 중론에 따라 『계간시원詩 苑』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시문학의 융성을 위해서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려 한다. 많은문학단체나 잡지에서 시행중인 것들을 새롭게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사업으로 재발굴하여 조명하거나 우리 시단과 시인들이 동참하는 방향으로추진해 나갈 것이다. 먼저 시창작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엄선, 엄격한 검정으로 신인을 발굴하고 나아가서는 작품 소재 발굴 및 발상을 위한 국내외 문학, 역사 기행또는 시문학 발전 심포지엄 개최, 청소년 및 일반인 대상 백일장 개최 그리고 시화전 개최 및 중견시인 초청 강연과 작고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여 우리 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원로, 중견 시인들과의 인터뷰로 시단 현안 문제를 측정하고 개인 시집 및 동인지 발간을 안내하면서 국내외 시문학단체와 교류를 위해서재외 동포 시인들과 외국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국제적인 시잡지로 육성 발전시키고자 한다. 창간호 발간 후에 ‘계간시원시인회’를 결성하여 시문학 발전사업의 동참 과 동인 활동을 통해서 작품의 창작 및 상호 시문학 교류를 촉진하고 ‘시원 시문학상(시 및 시론부문)’을 제정하여 매년 우수작품을 시상하여 시인들의사기를 진작시켜서 시창작의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끝으로 이러한 시인들과 시의 위기는 우리 시의 창조적인 부흥을 위한 일시적인 사회적인 현상임을 믿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시단의 많은 선후배들과 독자들의 동참으로 기필코 성취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변함없는 격려와 협조를 당부한다.
인본주의(人本主義)와 문학정신
근래에 와서 시창작 강의 요청을 많이 받는다. 정통의 강의 교수도 아니고 그만큼 시를 잘 쓴다든지 시 이론에 도통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십수년전 KBS방송문화센터에서 약 8년여를 시인 지망생들과의 창작에 대한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혼자 유추해보기도 한다.
이 시창작 강의는 대체로 문학 지망생들의 요청이 많았으나 요즘은 이미 등단한 사람들의 수강이 늘어나는 추세를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강의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들의 수강 동기를 파악해보면 한결같이 좀더 공부를 해서 좋은 작품을 한 편이라도 써야겠다는 욕구에 넘치고 있었다. 참으로 바람직한 정서의 환기(換氣)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우리 문단에는 많은 문학잡지들이 창간되었다가 언젠가 슬며시 없어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문학지 발간을 순수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투자하고 영위하여 우리 문학 발전에 한 몫을 감당하는 중요한 이상과 비젼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보편적인 의지와 그 지향성은 보이지 않고 일개인의 명예와 영달만이 난무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신인 발굴을 위해 신인상제도를 확대하여 매월 몇 명씩 뽑아서 등단패를 수여하고 정식 문인이라는 명패를 달아주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작품을 걸러거나 손질이 없이 마구잡이로 배출하는 바람에 문인으로서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인격이나 인품 그리 문단 예절도 모르는 병폐를 양산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문인 연수교육이 필요하다. 처음 등단한 문인들에게 문단예절을 비롯해서 한국문학의 역사 그리고 창작에 관한 기본적인 필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문학정신을 올바르게 투영하는 주제의 창출(創出)과 언어 등 문학과 동반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안내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들이 여망하는 주제는 인본주의(humanism)에 근원을 두게 되는데 대체로 우리 문학의 기능이나 효용면에서 살펴보면 우리 인간이 소유한 정(情)의 문제가 다양하게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칠정(七情-희노애락애오욕)에서 자신의 체험과 동질의 반응을 절감할 때 비로소 발상과 표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칠정 중에는 노(怒)에 대한 주제를 다수 음미(吟味)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이 현실과 괴리(乖離)되거나 부합하지 않는 불확실성의 문제들이 충돌하는 현상을 적시(摘示)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분노하게 되고 이 분노를 어떻게 화해하고 융합해서 해소할 것인가가 오늘의 문학으로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인 기법을 우리 문인들은 깊게 탐구해야 한다. 물론 교육을 통해서 주지시키는 방안도 있다. 문학단체에서 정기적으로 회원들(특히 신입회원들)에게 소양교육을 겸한 문학정신-인본주의의 실현을 위한-의 배양이 절실하게 요구되기도 한다.
문학은 우리 인간들에게 자아성찰을 제공한다. 여기에 문학의 이유가 있다. 나를 되돌아 보고 진정한 나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또는 현실적 갈등과 고뇌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기원하고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 등의 존재의 문제에 까지 자성(自省)이 필요하게 된다.
일찍이 유치환 시인은 그의 글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우리네 문학하는 위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인간이 인간 이하로 짓눌려 모멸받고 꾸겨져 발버둥치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하고 오불관언(吾不關焉)한 결정적인 오류(誤謬)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더러는 기성문인들도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해서 인본을 망각한 채 객기(客氣)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지극히 어리석은 욕구는 문학성과 문인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에 아주 치졸한 망념(妄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간혹 접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도 인본주의의 문학정신을 계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문인들이 자성하고 진정한 순수문학의 정신을 살려나갈 때 우리 문학은 인본주의로 더욱 승화한 인간의 정신이 더 높게 더 밝게 빛날 것은 당연한 진리이다. 이것이 문학의 교시적인 기능을 통해서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복원하는 근원적인 소임을 다해 나가는 확고한 바탕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自明)한 일이기 때문이다.
* [순수문학] 2012. 11월호
세기말의 신화와 새 세기의 화두(話頭)
1999년이 저문다. 한 세기가 막을 내리고 동시에 한 천년기를 마감하면서 예년의 세모(歲暮)와는 약간 다른 정감에 젖는 듯도 하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새 천년기(New Millennium)를 맞기 위한 다양한 준비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컴퓨터가 서기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Y2K'문제의 해법을 찾는 일에 국가의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이미 우리 정부에서도 올해 12월 말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금융휴무일로 정하여 모든 금융 서비스를 중단시키고 있으며 연말연시를 기해 가급적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여행을 해야할 경우에는 해당국가의 ‘Y2K'발생 가능성을 확인해야 된다 - 특히 구소련과 동유럽, 서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지역 일부 국가는 'Y2K'문제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유의해야 한다- 는 'Y2K 국민대처요령'을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20세기를 떠나보내고 21세기를 맞는 일은 한 세기와 한 천년기를 시작하는 접점에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다. 먼저 지난 세기의 우리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크게 나누어 외세의 핍박과 동족상잔과 민주항쟁 등 피로 얼룩진 순탄치 못한 과거사를 기록하고 있는 불운의 세기였다고 생각 된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국호를 대한이라고 고치고 황제로서 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새로운 대한제국이 수립되어 이때부터 왕은 황제로, 왕후는 황후로, 왕세자는 황태자로 호칭을 바꾸었으며 신하들이 왕을 부를때에도 전하 대신 폐하로 존칭이 바뀌었고 왕이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던 것을 짐(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일의정서, 제일한일협약 등을 강압으로 체결하여 우리의 재무, 외교의 주요부문에 적극 간섭하고 일본군대에 협조하는 일본의 고문정치가 시작되었으며 드디어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조직 포섭하여 그 대표인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들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과 이등박문 사이에 을사보호조약을 체결(1905.11.17)하고 일본 외무성이 우리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통리 지휘하게 되고 차후로는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국제적 조약이나 약속도 할 수 없으며 황제 밑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우리의 외교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도록 해서 사실상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잃고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말았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1910년 8월 29일에는 이완용과 한일합방조약을 맺어 공포함으로써 조선왕조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지 27대 519년만에 종말을 내렸지만 고려가 망할 때 충신들이 두문동으로 들어가 끝까지 충절을 지켜 고려의 망국을 슬퍼했으나, 조선이 망할 때는 76명의 새로운 귀족이 생겨 다른 민족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그 대가로 모두 작위를 받고 세비와 상금을 받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일제는 헌병경찰 통치를 시작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도로, 통신, 금융 등 모두 식민지적인 사회구조의 형성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우리의 의병을 불령지도(不逞之徒)로, 독립운동가를 완미지도(頑迷之徒)라 명명하여 재판의 절차 없이 저들 마음대로 처벌, 처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면서 우리는 독립의식에 눈떴으며 이는 민족의 자립의지로서 조직적인 정치운동과 독립운동이 벌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1919년 고종의 장례식에 앞서 탑골공원에서 폭발한 3. 1 운동이다.
그후 2차대전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의 탄압은 한층 더 심해져서 사상적, 경제적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의 실현을 위해 우리말, 우리 역사 교육을 금지시키는 하편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전쟁에 부족되는 인적 물적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지원병, 징용, 학병, 근로보국대, 여자정신대 등을 강제 징발은 물론, 식량, 유기 등을 공출로 모조리 걷어갔다.
드디어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일본 천황 히로히또는 무조건 항복(8. 15. 정오)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조선총독부도 해체되어 조선 통치는 종지부를 찍어 36년간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광복을 찾았지만, 우리는 해방과 독립의 환희와 감격을 제대로 맞보기도 전에 우익과 좌익이라는 민족적인 분렬에 따른 혼란을 겪게되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한에는 미소 양군이 각각 진주하여 점령지역에 군정을 실시하니 민족적인 비극이 또 싹트게 되었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식으로 건국 되었으나 북에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2년 후에는 소련군의 지원아래 전면 남침 전쟁을 일으켜서 민족간에 피를 뿌리는 동족상쟁이 벌어지고 지금까지도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분단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20세기 전반부 우리의 역사는 피의 수난사이다. 그러나 그후에도 4. 19 학생혁명과 5. 16 군사쿠테타, 10월 유신, 5. 18 민중항쟁, 그리고 12, 12 사태 등 헤아릴 수 없는 시련의 시대로 얼룩져서 지난 한 세기는 그야말로 외래 민족의 지배를 벗어나고 통일이라는 지상목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사의 정립을 위한 민족의 지혜와 슬기를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이러한 핍박과 수난과 오욕의 역사를 묻어둔 채 21세기는 밝아오고 있다. 또한 새로운 쳔년기를 새로 출발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유구한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으로 살아온 민족적인 지혜와 저력은 새롭게 한 세기를 열어 나갈 희망과 용기를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연말에 서로가 나누는 화두나 담론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것이 많이 등장한다. 흔히 말하는 장미빛 기대에 부풀어 있는 듯 한 활기찬 대화가 무성하다. 새로운 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도 하고 과학기술의 유토피아인 테크노토피아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 등은 현실적으로 그 당위성이 적절하고 또 그렇게 성취되어야 하는 인류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를 예감해 보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며 꿈일지 모르지만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적인 상상력의 결핍이 작용한 결과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인류는 미래에 대해서 결코 낙관만 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인간이 역사상 가장 큰 발전을 이룩한 20세기이지만 동시에 전쟁이나 기아, 억압, 통제, 착취 등은 물론이거니와 엄청난 자연 파괴로 인해서 재해를 자초하는 치명적인 행위도 자행되어 지구의 멸망이라는 공포로 몰아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 사회는 고도의 부를 축적시켜 주었고 문명은 편리하고 행복을 안겨 주었지만 이러한 발전과 성장이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의 환경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고 부의 축적 뒤에는 실업과 빈곤이 인간의 차별 현상으로 나타나서 사회생태계와 자연생태계가 동시에 질식되는 위험천만의 미래가 펼쳐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거시적인 안목으로 다가올 한 세기를 예측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도 지난 한 세기 동안은 온갖 시련과 고통을 민족의 자긍심으로 극복하고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정도의 경제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성장의 신화를 이룩했지만, 경쟁사회, 이윤추구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갈등은 남아있게 되며 이는 바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문제로 등장하게 되어 다양한 부작용과 병폐를 동반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 세기의 신화를 접고 새로운 비전이 있는 새 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진정한 화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국가적인 대명제로는 남북통일이 제일의 과제일 것이다. 통일된 조국에서 한민족의 지혜로 세계화에 도약한다면 우리가 선택한 미래는 오색 무지개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보라. IMF라는 위기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고 부정과 부패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돈과 권력이 난무하고 정치는 당리당략에 놀아나서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또 실업자는 날마다 늘어나서 국민들의 가치관이 혼란스럽지 않은가.
우리가 지향하는 새 세기의 화두는 이런 문제들의 해법을 찾는 일이다. 정치와 경제가 안정을 되찾고 사회적인 공생의 윤리와 호혜(互惠)의 의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이 그러하듯이 문화를 바르게 일으켜 세워야 한다. 통일대업이 성취되고 문화민족 본연의 인성 회복이 먼저 이루어지는 건강한 국토와 창조적인 민족성이 이땅에 축복으로 번영할 때 우리는 지금과 같은 위기를 조화롭게 극복하고 다가올 문화의 세기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0년 새해에
치수(治水)와 환경의 정비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우선 물을 잘 관리하는데서 얻어질 하천이나 강에 대한 생명력을 교감하면서 우리 인간들도 환경의 정비와 생태계의 복원을 통해서 삶을 질을 더욱 윤택하게 영위하자는 근원적인 목적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삼천리 금수강산의 원형을 살려내자는 우리 민족의 혼이 서려 있기도 하고 날로 파괴되는 자연 환경을 정비해서 더 이상 생태계 훼손을 미리 방지하자는 인류적 대명제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낡아버린 옛 이야기지만 유년시절의 고향 산촌에는 해마다 가뭄이 들어 벼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메밀이나 콩, 무 등 다른 작물을 심어 겨우 끼니를 때우는 안타까움을 몸소 겪은 일이 있었다. 동네 어른들 말로는 치수가 되지 않아서 이러한 고통이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통을 지각한 우리 동네에서는 저수지를 막아서 수로를 다시 만들고 동네 앞을 흐르는 개천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방죽을 다시 쌓고 훼손된 보를 손질해서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물대기를 하거나 가뭄이 심하면 저수지의 물을 빼내어 벼를 자라게 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한편 홍수는 얼마나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온 동네를 휩쓸어서 집이나 논밭이 거대한 물바다로 변해서 가축과 가구들이 물길에 휩쓸리고 사람들은 뒷산으로 피신하여 손도 쓰지 못하고 그냥 물 구경만 하는 일들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치수를 하지 않아서 빚어진 비극의 한 생활 단면이었다.
이처럼 물은 자연이나 우리 인간들에게 귀중한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잘못 재앙으로 연결되면 자연과 인간을 멸망으로 바꾸어 무서운 존재가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물의 생태 그 원리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풍요의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여망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자연과 생태의 훼손이라는 작은 이유를 내세워 무조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이 무조건 국가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진정 추구하려는 생태의 훼손이 아니라, 이기집단의 의식적 행동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4대강 사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자연생태계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버려진 강은 정비를 통해서 방치되어 죽어가는 생물들을 회생시키는 생태복원과 동시에 우리 인간들도 맑고 풍부한 물을 확보해서 친생태계의 생활이 융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말살하고 위험한 개인주의적이거나 정치적인 음모까지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대체로 4대강 살리기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친수기반 구축에 기본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친환경 호수와 문화 인프라 구축과 친환경 생태테마 공간 조성, 수해 방지를 위한 환경 개선을 세부적인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실행한다. 얼마전에 직접 방문해서 살펴본 평창강 영월강변 저류지 공사현장에는 이러한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효율적인 성과 달성을 위한 의욕이 넘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정비된 수변 공간에는 주민들과 함께 하는 복합공간으로 창조해서 상하류를 연결하는 자전거길을 설치한다든지 강변녹색 관광문화의 활성화를 위해서 주민들을 비롯한 이 지역 방문자들의 친환경 생태 체험을 활성화하는 계획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이처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시행하는 사업을 일개인이나 일개 집단이 왜곡된 어떠한 사유를 내세워 무조건 반대하고 나서는 행위는 국가나 국민들이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려는 백년대계를 퇴보시키는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많은 부류가 반대를 위한 반대운동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얼마나 허황되고 반국가적인 행동이었나를 실감나게 하고 있으며 새만금사업도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더러는 사업시행을 방해했으나 그 지역민들 당사자들의 시행해야 한다는 일관된 여론으로 오늘날 완공을 했던 사례를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 버려진 하천이나 오염된 강에서 죽은 생태를 복원하여 새로운 생명이 활기를 찾을 때 수질은 개선되고 떠나간 생물들이 회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면 홍수 피해나 가뭄에 대한 걱정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건전하고 건강한 삶을 구현해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요즘 심각한 자연의 파괴나 오염은 결국 우리 인류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실현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어서 새로운 비젼을 엿보게 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일부 단체장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 지역민들의 입장은 지역발전에도 도움을 주고 있어서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동의한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폭넓게 홍보하여 국민들의 인식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국가저인 모든 문제를 정치적 사소한 선입견으로 쟁점화하려는 점을 반성하는 계기로 해서 국가의 이익과 발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토해양부 원주국토관리청 초청 영월 서강 지류 4대강사업 현장을 탐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