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현재 시각은 오후 10시 18분입니다.
달걀만큼 완벽한 식품이 있을까요? 달걀은 메인 요리가 되면서 서브 역할도 하는 신기한 재료입니다. 심지어 서브 식재료이지만 요리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달걀이 없다면 케이크, 쿠키, 달걀말이도 만들 수 없습니다.
글쎄요? 이 책은 제가 요리에 집착하게 된 원흉일 수도 있겠네요. 이 책을 구매할 때 굉장한 값을 치르면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책이었어요. 그리고 한끼 식사에 대한 관점을 바꿔준 책이기도 합니다. 재료에 대해 자세한 설명 혹은 저자만의 철학을 담아놓은 책은 당시에 잘 없던 걸로 기억합니다.
책을 구매할 당시만 해도 <작고 겸손한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달걀의 구매 기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책은 여태껏 보질 못했습니다. 재료? 요리? 그냥 슈퍼에서 사면 되지 않나? 그냥 할인행사하는 30개 짜리 한 판을 사서 먹으면 되잖아. 동물복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무항생제 계란을 구매하는 이유에 대해 이 책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다른 조류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잔혹한 방식이 아니라, 야외에서 건강한 먹이를 먹고 자라며, 항생제를 맞지 않은 닭의 달걀말입니다. 건강한 암탉이 낳은 이런 유기농 달걀은 다른 달걀에 비해 필수 영양소가 훨씬 풍부합니다.이 사실을 잘 알면서 다른 달걀을 살 수는 없겠지요? 물론 이 달걀을 선택하는 데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소비를 좀 줄이더라도 건강한 달걀을 사고 싶습니다.>
우리 집의 사실은 어머니의 요리 철칙이라면 ‘과정은 간단하게, 맛은 간결하게. 무엇보다도 깔끔한 풍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렸을 때부더 어머니 옆에서 보조하면서 저 또한 요리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요리를 대강 합니다. 언제나 하시는 말은 ’대충하면 돼.‘라고 얘기하시죠. 하지만 바로 옆에서 60포기의 김장을 지켜보면 어머니께서 말하는 대충의 미학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간소하면서 신선한 재료, 그리고 간결하면서 풍미를 주는 양념. 서울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녀의 음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리를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재료가 신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합리적인 가격에 재료를 구매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고요. 대충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탁에 올리기까진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예로 두부 부침을 들어볼까요? 그녀의 요리법은 팬에 두부를 굽습니다. 그냥 구워서 냅니다. 시판용은 이미 소금이 들어가있고 게다가 ’풀무원‘을 사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서 기름 살짝 두른 후라이팬에 부치시죠. 약간 비싸긴 하지만 양념을 따로 준비를 안 해도 되는 합리적인 계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시면서요.
다시 돌아가서 현재 시각 10시 18분, 저는 이 글을 쓰려고 앉아있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팥죽을 쑤고 계십니다. 장담하건대 11시 이전에 팥죽은 완성될 거예요.
이 책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지금이야 채식과 비건이 오남용될 만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10년 전 채식 주의데 대해 이야기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혹은 너는 채식주의자라고 얘기를 했으면서 왜 고기와 생선을 먹냐며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채식,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웠던 때 이 책을 읽고 약간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어지기엔 아직 시간이 걸릴 뿐이다. 식재료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한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니까요. 적어도 이 책을 사거나 구경한 사람은 식재료의 유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이런 말이 있죠? 한국인은 먹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우리지만 솔직히 요리책을 (잠시 쉬며) 과연 사야할까요? 아니, 살까요? 구글링하면 유튜브 쇼츠에 뜨는 게 레시피인걸요? 요즘 드는 생각입니다만 요리책은 말과 닮았습니다. 뛰어다니는 동물인 말이에요.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없으면 안 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일원이었지만 지금 말을 타며 이동할 일이 과연 있나요? 승마란 취미가 아니고서야 만날 기회가 없지 않나요? 요리책은 과거의 실용성은 잃어버리고 우아함의 상징으로 남은 말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요리책을 여전히 수집하는데요, 예쁘다는 이유도 있고 요리법이 궁금하기도 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요리책을 읽으면 저자의 요리 철학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알게 된다는 식상한 표현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예요. 저는 어머니의 요리 철학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요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달걀 요리>를 읽지 않았더라면 오늘 저녁은 아마 유튜브에서 찾은 폭탄 계란찜을 먹고 돼지 불백을 먹었을 겁니다. 오늘 먹은 저녁 메뉴는 뒷다리살 수육과 남은 버섯나물로 부침을 만들었고 시금치 나물을 곁들였습니다. 그리고 동물권을 지키지 못한 오늘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배려할 수 있을까요? 복잡한 일상이네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힘이 된다.‘ 저의 모토입니다. 몰랐다면 편했겠지만, 앎으로 인해 이렇게 고민하는 일상 또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 일지도 모르겠어요.
’지속가능한‘. 요즘 들어서 중요한 단어가 됐습니다. 당장 내일의 지구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지금 실천해야 한다면서요. 합리적인 요리를 배운 저에게 ’지속가능한‘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게 ’지속가능함‘입니다. 배달 음식에도 ’지속가능한‘ 미학이 있죠.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걸 포기할 순 없습니다. 물론 자주 먹어선 곤란하지만요. 동물복지와 유기능 농법으로 재배한 농작물로 이뤄진 한 끼는 생태계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서의 의미가 있을 테고요. 그렇지만 가격을 무시하면서까지 매일 지킬 순 없습니다.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저와 어머니는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배달 음식의 편리함을 어떤 땐 선택해야 합니다.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있는 생태계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품종의 사과를 맛보는 기회 또한 많아져야 합니다.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선택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여러분께 강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건강한 한끼, 지속가능한 식사는 분명 수고롭지만 지킬 가치가 있다고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무용한 리뷰처럼.
지금 시각, 오후 11시 13분입니다. 방금 어머니께선 냄비를 불에 내리셨네요. 따끈한 죽을 먹으면서 맞춤법 검사를 할까 합니다. 전 설거지를 하며 하루의 마무리를 지어야겠어요. 그럼 모두 따끈하고 포근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