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음악은 '긴 이야기'를 '한 사람의 북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짜나가는 一人多役의 敍事음악이다.광대는 두 사람이고 소도구는 북과 부채뿐이다.최소의 인원,최소의 도구로 최대의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 판소리 음악의 기본 원리이자 묘미이다.판소리 음악의 美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판소리는 사설의 내용이 바뀌는 데 따라 音樂語法(聲音.길.長短)도 변화를 주어서 매우 劇的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이것을 판소리 용어로 '裏面을 그린다'라고 하는데,이면이란 어떤 일의 내막이나 속사정 또는 事理.經緯 등의 뜻으로 풀이된다.사설의 이면 해석과 음악적 표현 방법은 作唱者의 철학적 바탕과 음악적 기량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따라서 판소리 음악의 예술성 여부는 사설의 이면 해석과 그것의 음악적 형상화 능력,즉 이면을 얼마만큼 잘 그리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이런 점에서 판소리 음악은 궁중음악이나 범패처럼 의식이 앞선 타율적인 음악이나,민요처럼 일정한 선율에 가사만 바꾸어 부르는 圖式的인 음악,그리고 가곡이나 시조처럼 관념적인 음악 등과 구별되는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쟝르이다.뿐만 아니라 즉흥성이 강한 신명의 예술이기도 하다.
판소리 광대들은 사설내용의 이면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독특한 판소리 음악어법을 개발.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판소리에 적합한 성음과 장단을 개척하고,선율을 작곡하였으며,다양한 리듬을 개발하였다),양반음악(가곡.가사.시조.시창 등).민중음악(각 지방의 민요).종교음악(무가.범패 등) 등 선행하는 거의 모든 음악어법들을 적극 도입.활용함으로써 판소리 음악의 표현력을 확대해 왔다.이런 점에서 판소리 음악은 개방된 쟝르이다.
판소리는 '직업적인' 광대들에 의해서 '청중'을 상대로 '흥행되는' 전문예술이다.따라서 예술적 기량이 중요시 되는데,판소리 광대는 '得音'을 해야 소리꾼으로서의 활동이 가능하다.득음이란 판소리의 모든 음악어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써 모든 판소리적 상황을 성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하는데,20년 이상의 피나는 수련이 요구된다.이런 점에서 餘技로 즐기는 양반음악이나,생활상의 필요에 의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민요,그리고 종교행위로서의 무가.범패 등과 구별된다.
2. 판소리 음악의 3요소
(1) 성음
성음이란 소리를 내는 방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소리의 성질,곧 音色이나 音質을 말한다."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다."라는 말들은 판소리의 음악어법에서 성음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소리광대들은 바로 이 성음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쳐 수련하는 것이다.
판소리 음색은 '수리성(목이 약간 쉬어서 거칠고 텁텁하게 들리는,성량이 크고 깊이 있고 변화가 많은 성음)'을 제일로 치고 '陽聲(소리에 그늘이 없고 깨벗어서 지나치게 맑고 아름다운 성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劇的인 사설 내용'을 '한 광대의 목소리'로 '이면에 맞게' 그리려면 聲量이 크고 변화가 다양한 음색이라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며,또 그러한 음색을 선호하는 우리의 美意識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판소리의 발성은 아랫배 丹田에 숨을 모았다가(호흡법에는 胸式呼吸과 腹式呼吸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판소리 창을 할 때는 복식호흡을 위주로 하는 것이 좋다),일상 언어활동을 할 때와 같이 성대를 자연스럽게 긴장시킨 상태에서 힘차게 질러내는 소위 '통성'이 기본 발성이다.이는 평상시 언어활동 때의 발성법을 극대화한 '자연스런' 발성으로,이런 발성을 과도하게 하면 성대에 慢性喉頭炎의 일종인 聲帶結節(Singer's nodule.일명 歌手結節이라고도 하는데,성대 근육에 생기는 좁쌀 내지 쌀알 크기 정도의 약간 적색을 띤 백색의 혹 같이 생긴 것)이 생겨서 발성할 때 성대 근육이 꽉 닫혀지지 않으므로 껄껄하고 텁텁한 소리가 나게 된다.이러한 발성으로 수십년간의 피나는 수련을 거쳐(목이 잠겼다 터졌다 하는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 된다) 得音을 하게되면 그 엄청난 聲量(20세기 초의 명창인 송만갑의 소리는 십리 밖까지 미쳤다고 하며,그의 제자인 장판개는 쇠로 된 문고리를 진동시켰다고 한다)과 깊이 있는 성음(흔히 '구성이 올랐다'거나 '그늘이 졌다'고 하는데 목소리에 갖가지 맛이 다 들어 있어서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성음),그리고 변화무쌍한 음악어법의 구사로 청중을 압도하게 된다.이러한 판소리 발성은 서양의 소위 벨칸토 창법(Belcanto.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기 위해 성대 근육을 비롯한 발성기관은 거의 긴장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주로 鼻腔의 공명을 강조하는'人爲的'인 발성법)과 대비된다.
(2) 길
음악용어로는 '旋法'이라고 하는데,판소리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정도를 나타내 주는 '調'-이를테면 界面調,平調,羽調(이들 용어는 양반음악인 歌曲에서 빌어 쓴 것인데 그 음악적 내용은 다른 점이 있다) 같은 것들-와 구분하여,선율 형태를 해부해서 구성음의 기능과 음정 관계를 규명한 선율의 최대공약수의 구조틀(音階)을 말한다.곧 '조'는 소리광대의 목청(성음),음색,음량을 청각에 의해서만 분별한 '唱法的'인 개념(일종의 樂想記號 역할을 한다.우조는 호기있고 위엄있게,평조는 화평하고 한가하게,계면조는 슬프고 비통하게 등)이고,'길'은 음악 이론적인 근거와 악보상의 분석에 의한 '旋法的'인 개념이다.길 이름은 조 이름 뒤에 '길'이란 명칭을 붙여 쓰는데,현존 판소리에 나타나는 길은 그 구성음들의 질서에 따라 '우조길'.'평조길'.'계면길'로 구별된다.
'우조길'은 솔.라.도.레.미의 음 구조로 되어있는데,웅장하고 위엄있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선법이다.판소리뿐만 아니라 궁중음악.가곡.경기 민요.산조에도 이 음 질서가 많이 쓰인다.'평조길'은 레.미.솔.라.도의 음 구조로 되어있는데,화평하고 점잖은 느낌을 준다.산조.풍류.시조 같은 민간음악에도 널리 사용된다.'계면길'은 미.솔.라.시.도.레의 음 구조로 되어있는데,슬픈 느낌을 준다.산조.남도민요.시나위 같은 남도음악에 넓게 쓰인다.
(3) 長短
장단이란 전통음악의 외형적인 틀을 결정하는 리듬의 큰 단위를 말한다.판소리에서의 장단이란 용어는 단순히 拍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리듬의 네 요소인 박자,속도,강약(액센트),틀(패턴)의 복합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오늘날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진양,중머리('중몰이','중모리' 등으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머리'로 통일한다),중중머리,자진머리,휘머리,엇머리,엇중머리 등이다.각 장단을 속도에 따라 '느진---','평----','자진----' 등으로 細分하는데(예를들면 '느진중머리','평중머리','자진중머리'),자진진양을 '세마치'.자진중머리를 '단중머리'라 하기도 한다.
【진양】 판소리 장단 중에서 가장 느린 장단(이 곳에 점4분음표를 그려 넣으십시오=30~50)으로,'三分拍(한 박이 셋으로 나누어지는 박)' 여섯개가 모여서 기본꼴을 이루고(6/ 박자),기본꼴이 보통 두개에서 대여섯개까지 모여 하나의 旋律線(의미구조를 갖는 선율의 최소 단위)을 형성한다.속도가 느린데다가 대개 5.6박에서 音을 持續시키거나 休止를 주기 때문에, 느린 情緖나 여유있고 한가한 情景을 표출하는 데 적합하고, 사설 내용의 정서나 정경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중머리】 보통 빠르기(♩=60~90)의 2분박 12개가 모여서 기본꼴을 이룬다(12/♩박자).중머리 12박이 구성해내는 리듬꼴은<3x4>(3拍子 리듬이 4개 있다는 뜻),<2x6>,<(3x2)+(2x3)>(3박자 리듬 2개와 2박자 리듬 3개가 들어있다는 뜻),<(2x3)+(3x2)> 등과 같이 2박자 리듬과 3박자 리듬을 자유롭게 섞어가면서 짜기 때문에 매우 다양하다.느리게도 빠르게도 느껴지지 않는 속도와 12拍이라고 하는 긴 장단 週期로 인해 붙임새와 선율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散文도 능히 소화할 수 있다.
【중중머리】 구조상으로는 중머리의 속도가 약 2배 빨라진 장단으로 볼 수있다(♪=144~180).중머리와 같이 2분박 12개가 기본꼴을 이룬다(12/♪박자).12박이 구성해 내는 리듬꼴은 중머리와 같이 <3x4>,<2x6>,<(3x2)+(2x3)> 등으로 다양하다.이런 리듬꼴은 우리 말의 운율이나 붙임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굿거리,살풀이,타령 등과 장단 구조는 같으나 강약이 다르다.흥을 主情緖로 갖고 있는 춤 장단인 굿거리 등과 한배가 같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흥겨운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리듬 구조이다.
【자진머리】 구조상으로는 중중머리의 속도가 약 2배 빨라진 형태의 장단이다( =90~120).빠른 3분박 4개가 기본꼴을 이룬다(4/ 박자).네 묶음의 장단이지만 세분하면 12박이므로 중중머리와 같이 다양한 리듬꼴을 형성한다.그 속도감으로 인해 리듬의 효과가 잘 드러나기 때문에 말붙임의 여러 기교(완자걸이.잉어걸이.괴대죽.도섭 등)가 자주 활용된다.빠른 장단 週期로 인해 어떤 事物이나 人物 또는 事緣 등을 장황하게 列擧.羅列하는 데 적합하다.
【휘머리】 자진머리가 더욱더 빨라져서 한 박자가 셋으로 분할될 여유가 없이 둘로 분할되어 형성된 장단으로,매우 빠른(♩=최소 144,200 내외) 2분박이 4개가 모여서 기본꼴을 이룬다(4/♩박자).청중이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사설을 다붙여 나가는 빠른 속도감으로 인해 緊迫感을 창출해 내기 때문에,숨쉴 틈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펼쳐지는 극적 상황을 표출하는 데 적합하다.
【엇머리】 5박자 단위(3+2) 둘이 모여 10박자가 한 장단이 된 독특한 구조이다(10/♪박자,♪=최소 160).판소리 장단 중에서 유일한 混合박자이다.혼합박자로서의 異質感 때문인지 旣存 판소리에선 예기치 않은 인물이 등장하거나 뜻밖의 상황이 전개 될 때 주로 활용하고 있다.
【엇중머리】 중머리 장단이 둘로 나뉘어진 구조로 보통 빠르기(♩=80~90)의 2분박 6개가 기본꼴을 이룬다(6/♩박자).판소리의 뒷풀이에 주로 쓰이고 있다.장단 구조가 양반 음악인 風流. 歌詞.12雜歌 등에 쓰이는 도드리와 같아서 점잖고 품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적합하다.
3. 판소리 음악의 여러 모습
(1) 流派
판소리의 전승지역은 전라도.충청도 서부.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이르는데,각 지역은 각기 다른 자연조건과 음악적 환경으로 인해 독특한 음악어법을 형성.발전시켰다.이와같이 각 지역마다 독특한 음악어법으로 전승된 소리제를 유파라 하는데,東便制.西便制.중고제의 세 유파가 전한다.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광대들의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각 流派가 서로 뒤섞이게 되어 오늘날엔 그 실체를 찿기가 어렵다.
【동편제】 송흥록(19세기 중반의 명창.판소리의 中始祖,동편제의 創始者,歌王이란 칭호를 얻음)의 법제를 표준하여 운봉.구례.순창.흥덕 등 섬진강 동쪽(전라도 동북지역)에서 널리 유행되던 소리제로서,소위 '대마디대장단(매 장단마다 사설의 句節單位 또는 音步單位가 놓이는 붙임새)'으로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소리를 짜나가는,목으로 우기는 소리제이다.무겁고 웅장한 발성을 쓰며,대체로 장중하게 시작하고 소리를 들어서 장단에 말을 던지듯이 짜나가며,소리 꼬리는 짧게 끊는 경향이 있다.박진감 넘치는 남성적인 소리제이다.
【서편제】 박유전(조선조 헌종~고종 때의 명창)의 법제를 표준하여 광주.나주.보성 등 섬진강 서쪽(전라도 서남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던 소리제로서,동편제에 비해 기교가 많이 들어간 화려한 소리제이다.동편제보다는 가벼운 발성을 쓰는 편이며,대체로 부드럽게 시작해서,미세한 기교로 느리게 끌고가며,소리 꼬리는 길게 빼는 경우가 많다.섬세한 여성적인 소리제이다.기교가 많이 들어가므로 장단의 속도는 동편제에 비해 전반적으로 느린 편이다.
【중고제】 김성옥.염계달(조선조 순조 때의 명창들)의 법제를 표준하여 경기도.충청도 지역에서 전승되던 소리제로서,동편과 서편의 중간쯤 되는 소리인데 비교적 동편제에 가깝다고 하나 오늘날엔 전승이 끊어진 듯하다.
(2) 歌風
판소리 음악에 덜렁제.京드름제.석화제.추천목 등의 용어가 쓰이는데,이는 어느 특정한 명창이 개발한 독특한 가락의 짜임새나 모양새(일종의 더늠)를 말하는 것으로 유파라기보다는 그 명창의 歌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덜렁제는 19세기 초의 명창 권삼득의 더늠으로,설렁제. 豪傑制.드렁조.권제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가마꾼의 勸馬聲 가락을 소리로 짰다고 하는데 아주 호방하고 씩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흥보가> 중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전한다. 경드름제는 순조 때 경기도 여주 명창 염계달의 더늠으로 <창부타령> <도라지타령>과 같은 서울민요 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이다. 京調, 京制, 京토리라고도 하며 경쾌한 느낌을 준다. <수궁가> 중 '세상에 나온 토끼가 자라를 욕하는 대목'이 전한다. 석화제는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소리제로서,순조 때 명창 김제철.신만엽이 제작한 것이다. 중중머리 장단으로 되어 있는데 우아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수궁가> 중에서 토끼가 세상으로 돌아오는 대목인 '소지노화'가 전한다. 추천목은 염계달의 제작으로 전하는데,선율이 그네를 타는 것처럼 흔들흔들하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주로 중중머리 장단으로 짜여 있다. <춘향가>에서 '방자가 춘향의 행실 그른 내력을 말하는 대목'이 전한다.
(3) 더늠과 바디와 제
더늠이란 '더 넣다'에서 온 말인 듯하다.旣存 傳承에 첨가된 문학적.음악적 새로움을 가진 창작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전승 상 여태까지 없던 것을 더 넣었다는 뜻인 듯하다.現傳하는 판소리 음악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명창들의 더늠이 하나하나 쌓여서 이루어진 것으로,완성체가 아니며 지금도 變移를 계속하고 있다.'권삼득 더늠'.'염계달 더늠' 등과 같이 그 더늠을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 명칭을 삼고 있다. 바디는 '선생에게서 전해 받다'의 '받다'에서 온 말인 듯하다.어느 명창이 짜서 부르던 판소리 한 마당 전체를 가리키는데,'制'와 混用되기도 한다.'송만갑 바디'.'정정렬 바디'.'박동실제'.'김연수제' 등과 같이 그 전승 계보를 확립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 制는 法制 또는 製作의 뜻인 듯한데,판소리에선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동편제'라고 할 때에는 유파의 의미이고,'송만갑제 춘향가'라고 할 때에는 바디의 의미이며,'고수관제 사랑가'라고 할 때에는 더늠의 뜻이고,'석화제'.'권삼득의 덜렁제' 등은 歌風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4) 고수와 추임새
【고수】 고수는 판소리 공연의 유일한 반주자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절대적이다."一鼓手 二名唱"이란 말은 이러한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고수의 기능으론 다음 몇가지가 있다.첫째는 반주자의 구실인데,고수는 일차적으로 소리의 '밀고.달고.맺고.푸는' '生死脈'(소리의 陰陽)을 알아서 북 가락을 運用할 줄 알아야 한다.둘째는 지휘자로서의 구실이다.고수는 소리광대가 힘이 쳐지면 추임새를 힘차게 해주든가,북을 박력있게 쳐주든가 해서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하고,소리가 빨라지면 북가락으로 소리를 잡아당겨서 속도를 조절해 줄 줄도 알아야 한다.셋째는 상대역으로서의 구실이다.소리광대는 고수를 쳐다보면서 창이나 아니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고수를 상대역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행위이다.넷째는 청중의 대변자 구실이다.고수는 반주자이면서 감상자이다.소리를 듣다가 흥이나면 청중을 대변해서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청중의 추임새를 유도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소리꾼과 청중의 중간에서 서로의 隔阻感을 해소시키는 구실도 한다.
【추임새】 소리판에서 고수와 청중은 "얼씨구. 그렇지. 좋다. 어이. 아먼. 어디. 잘한다" 등등의 감탄사를 내뱉어서 소리꾼을 격려하고, 스스로의 흥취를 돋우기도하는데,이때 내뱉는 감탄사를 추임새라 한다.'추어주는 말'이란 뜻이다.청중은 이 추임새를 통해 단순한 구경꾼에서 벗어나 극중 상황에 적극 개입,호응하거나 비판하면서 소리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신명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청중에 의한 추임새의 표출 여부는 일차적으로 소리광대의 문학적.음악적.연극적 역량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이 추임새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추임새를 하는 '자리'가 따로 있기 때문에 상당한 수련을 쌓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추임새가 없는 소리판은 신명이 나질 않는다.
(5) 사설과 음악요소와의 결합 양상
소리는 사설과 음악어법과의 결합으로 탄생한다.장면에 따라 이면에 맞는 장단과 調를 선택하고 선율과 붙임새를 짠 후 적절한 성음을 구사하면 소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음악의 요소들은 어떻게 사설과 결합하는 것일까. 판소리 사설을 소리로 짜려면 먼저 장단과 조를 결정하여야 한다.장단의 선택은 사설 내용의 상황적 의미나 정서의 緩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다시말하면 상황적 의미나 정서가 빠르면 빠른 장단을,느리면 느린 장단을 선택한다는 말이다.그런데 사설 내용의 의미나 정서의 완급은 寫實性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실성을 뛰어넘어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장단의 완급은 聽者의 느낌에 의해 인식되는데 평중머리를 보통속도로 기준하여 느린 장단과 빠른 장단이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각 장단이 특정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보편적으로 적용되진 않는다. 調는 사설 내용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을 택하면 될 것이다.선율은 作唱者의 작곡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겠는데,판소리의 선율은 寫實的인 표현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율을 짤 때 붙임새를 떼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붙임새란 사설과 장단 사이의 결합 양상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여러 장단의 기본 박자들(2분박이거나 3분박이거나)이 여러가지 형태의 리듬꼴로 분할되거나 결합되는 모양새를 말한다. 대마디대장단.엇붙임.잉어걸이.완자걸이.괴대죽.도섭 등의 기교가 있다.판소리의 음악이 일차적으로 사설과 장단의 결합에서 탄생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拍에다가 말을 어떻게 놓아가는가 하는 이 붙임새의 문제는 판소리의 음악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성음은 사설의 이면에 맞게 구사하면 될 것이다.이상의 음악요소들은 사설과 有機的으로 결합하는데,作唱者의 사설 이면에 대한 철학적 이해도와 그것의 음악적 표현 능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으며,결국 이것이 판소리 음악의 예술성을 결정짓게 된다.
판소리의 기원과 작품
판소리는 서사무가(敍事巫歌) 기원설(起源說)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판소리가 전라도 지방의 음악과 같은 토리(음악어법 또는 음악적 스타일)로 되어 있으며, 판소리와 서사무가의 공연 형태가 노래와 말을 섞어서 부르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화에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다(說話기원설, 이야기 기원설). 그런가 하면 마을의 큰 굿 끝에 벌이는 판놀음에서 놀이꾼들이 여러 놀이를 벌이는 가운데 소리 광대가 소리도 하고 재담도 하고 몸짓을 해가며 긴 이야기를 엮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고(笑謔之戱說), 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창우들에 의해 판소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唱優集團 기원설). 중국의 영향을 거론하는 학자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754년(영조 30년) 유진한이 한시로 쓴 만화본 <춘향가>이다. 이보다 뒤에 쓰인 송만재의 '관우희'에 판소리 12마당의 제목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보면 적어도 영조 이전에 판소리가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의 인기가 확산되자 소설로도 발표되었는데 '--가(歌)'는 판소리를 가리키고 '--전(傳)'은 소설을 말한다. 송만재가 전한 12마당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전> <옹고집> <장끼타령>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인데, 이중에서 지금까지 전승되어 불려지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5마당이고 나머지는 내용만 전한다.
판소리가 자라온 사회문화적 배경
판소리와 사회문화적 배경과의 관계를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8세기까지(형성기)
1754년에 만화 유진한이 판소리 <춘향가>의 공연을 보고나서 쓴 한시(漢詩)는 당시 양반 계층의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유진한의 아들인 금(琴)이 쓴 <가정견문록>에 "아버지가 계유년 (1753년)에 호남지방을 유람하시고 그 산천과 문물을 두루 보신 뒤 이듬해 봄에 돌아오시어 춘향가 한편을 지으셨는데, 이로 인해 당시 선비들의 모함을 입으셨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양반들이 전반적으로 판소리에 대하여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것 같다.
유득공(1749-?)의 <경도잡지>를 보면 "진사급제하여 증서를 받으면 유가(遊街)를 하는데 세악수(細樂手), 광대(廣大), 재인(才人)을 대동한다. 광대라는 것은 배우로서 비단옷에 누런 초립을 쓰고 비단으로 만든 꽃을 꽂고 공작선을 들고 어즈러이 춤추며 익살을 부린다. 재인은 줄을 타고넘는 등 온갖 묘기를 다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보다 반세기 이상을 앞서는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을 보면 "오늘날 과거에 급제한 이들이 반드시 광대를 불러 즐긴다"라고 되어 있고, 그의 <곽우록>에는 "사대부들이 과거에 올라 벼슬하게 되면 반드시 광대, 재인들을 불러 즐기니 이는 도리에 심히 어긋난다"라고 하였다.
유득공과 이익이 언급한 광대, 재인은 줄타기, 땅재주, 죽방울을 연행하던 세습적인 집단으로, 18세기 무렵에는 찬반의 논란이 있을 정도로 이미 사대부 계층의 유가에 필수적인 연희를 맡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까지를 판소리의 형성기로 보는데 이 시기에는 우춘대, 하은담, 최선달 같은 명창들이 있었다. 이 시대에 12마당의 판소리가 연행되었다고 추축된다.
19세기(전후기 8명창 시대)
19세기 초의 문헌인 송만재의 <관우희>를 보면 그가 관우희를 쓰게 된 동기가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가산이 빈곤하여 광대를 불러 유가를 할 수 없으므로, 시로써 광대들의 놀이를 읊어 이에 대신하고자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관우희>에 18세기의 우춘대, 19세기의 권삼득, 모흥갑 등의 명창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 송만재가 <관우희>를 쓰기 이전에 판소리를 충분히 보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세기에는 전시대부터 내려오던 유가의 풍습을 통하여 판소리가 사대부 계층에 침투하였고, 송만재의 <관우희>를 보면, 19세기에 유진한이 받은 비난에 비교하여 19세기의 사대부층의 판소리에 대한 태도에는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또 <갑신완문(甲申完文)>에는 임춘학, 고수관이, <정해팔도재인등장(丁亥八道才人等狀 1872)>에는 염계달, 송흥록, 김제철, 임춘학, 고수관 등의 이름이 다른 재인들과 함께 기록되어 있어 관아의 행사에 판소리 광대가 불려가서 소리를 했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19세기(순조-고종 중엽)를 '8명창 시대'라고도 부르는데, 전반기를 '전기8명창시대', 후반기를 '후기8명창시대'라고 한다. 전기8명창 시대엔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주덕기, 고수관, 방만춘, 신만엽, 김제철, 황해천 등이 거론되고, 후기8명창 시대엔 박유전,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 정춘풍, 송우룡, 정창업, 김창록, 장자백 등의 명창이 활약하였다. 이 시기에 동편제 서펀제 등으로 판소리의 유파가 나뉘어지고 당대 명창들에 의하여 지어진 더늠 등이 축적되어 판소리는 음악적으로 더욱 세련되고 다듬어졌다.
19세기 중엽에 중인 계층 출신인 신재효가 6마당의 판소리를 정리하였는데, <변강쇠타령>은 그가 정리한 것이 유일하다. 신재효는 자신의 세계관에 맞게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하였는데, 사설이 세련되어졌다는 평을 듣게되었으나, 합리성을 표방한 유교적 관념과의 영합으로 판소리의 역동적 생명력이 상실되었다는 이중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신재효는 판소리의 개작 뿐만아니라 판소리 광대들의 경제적 후원자이며 교육자였고, 이론적인 스승의 역할도 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사대부 계층 뿐만 아니라 대원군, 고종 등 왕가의 후원자들이 판소리를 애호아여 판소리 명창들이 관직을 제수받는 등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광대 재인 집단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 광대들이 자신들의 기예로 인하여 우대를 받고, 상류계층으로부터 경제적 후원 뿐만 아니라 신분의 상대적 상승이라는 보상을 받았다는 사회적인 배경은 판소리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큰 굿이나 시장터에서 서민들을 울리고 웃기는 판소리와, 사대부가 참석한 잔치 또는 관아의 뜰이나 어전에서 연행되는 판소리는 두 청중 집단들의 서로 다른 기호나 기대수준을 포용하여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육담과 해학이 유식한 한자어들과 섞여서 짜여진 판소리가 서민과 양반계층의 두 사회집단의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감대를 모두 충족시키는 강한 흥행성을 띤 공연 예술로 발전된 것은,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가진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12마당에서 5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만이 전해지는 것은 이 다섯마당의 판소리가 양반과 서민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 다섯 마당이 유교적인 표면과 서민적이라는 이중적인 주제를 갖고 있는 것도 위에서 언급한 당시 사회의 이중적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20세기 전반(근대 5명창 시대)
개화 이후인 20세기 초반에는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이선유, 유성준) 등의 명창들이 활약하였는데, 이 시기를 '근대 5명창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시민층의 청중이 확대되고, 판소리가 원각사 등의 극장 무대에 진출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한편으로는 사실주의 연극과 판소리가 접목된 형태의 공연예술인 '창극'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판소리가 공연되던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 송만갑 김창룡 등의 명창들은 협률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순회공연을 다녔다. 왕실과 사대부 계층이 일제와 함께 붕괴되면서 경제적 후원자층이 서민층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때에는 그 이전시대의 창우집단은 붕괴되고 판소리 명창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성악연구회가 판소리 전승을 맡게되었다. 그 이전 시대에 세습되던 판소리 광대라는 직업이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창우집단 이외의 출신 성분을 가진 판소리 광대들이 보다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성기와 라디오라는 문명의 이기가 20세기 초반의 판소리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현장에서 연행되던 판소리가 유성기나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하여 청중들에게 전달되어 판소리의 감상 형태가 다양해졌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러한 기계를 사서 판소리 레코드나 방송을 들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유성기나 라디오가 있는 집에 모여서 판소리를 감상하였다.
해방 후( )
해방과 6.25동란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국민들이 서양음악에 경도되기 시작하자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예술이 외면당하다가 급기야는 소멸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위기 위식을 느낀 정부가 문화재보호법을 만들어 소멸되어가는 귀중한 전통문화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시작했다. 판소리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받아(무형문화재는 형체가 없으므로 그 기능을 보유한 사람을 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이를 소위 '인간문화재'라 한다) 전승을 이어나갈 수가 있었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명창들은 정부의 정책적인 보호 아래 그 문하에서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선 판소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달라져서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많이 생겨서 젊은 소리꾼들을 양성하고 있다. 한 때 소멸 위기로까지 몰렸던 판소리는 이제 많은 대학에서 매년 백여명의 젊은 소리꾼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판소리의 앞날은 이들 젊은 소리꾼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