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사회적 의무, 이웃 사랑, 빛의 생활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성도는 사회적 의무도 가진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국가의 통치자들을 말한다. 성도는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위해 그들을 세우셨다. 악한 정부라도 무정부상태보다는 낫다. 디도서 3:1, “정사(政事)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 베드로전서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거스름]이니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정죄]을 자취하리라.
성도가 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국가의 통치자들의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성도는 악한 국가에서라도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한다. 그 법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게 된다.
물론, 이 의무는 하나님의 법에 충돌이 없을 때에만 해당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법에 반대되는 국가의 명령에 복종할 수 없다. 종교적 의무와 국가적 의무가 충돌할 때 성도는 종교적 의무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통치자들보다 높으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심지어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던지우면서도 왕이 내린 명령을 거절했던 것처럼, 또 사도들이 매맞고 옥에 갇히면서도, 유대 지도자들의 명령을 거절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첫째로 순종해야 한다.
[3-5절]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국가의 통치자들은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진 자들이다. 그들이 악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없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사자’이다. 본장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두 번(4절),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한 번(6절) 부른다.
그들의 임무는 백성들의 선을 격려하고 악을 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되지 않으나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그들은 악을 벌하기 위해 칼을 사용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칼의 권세, 즉 악한 자들을 죽일 수도 있는 권세를 주셨다. 그들은 사회의 질서 유지와 공의의 집행을 위해 극악한 죄인의 사형도 시행할 수 있다. 성도는 그들의 벌이 두려워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양심을 인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6-7절] [이는] 너희가 공세(貢稅)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힘씀이니라]. [그러므로](전통본문)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貢稅)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國稅)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6절의 ‘이 일’이란 사회에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질서 유지의 일을 가리킨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며 그들이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힘쓰고 수고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은 일차적으로 그런 일을 위해 쓰인다. ‘공세(貢稅)’(포로스)는 모든 국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주민세 같은 것)이며, ‘국세(國稅)’(텔로스)는 소득세, 통행세, 관세 같은 세금을 가리킨다고 한다(BDAG). 그러므로 성도는 세금을 내는 일도 법에 정한 대로 내어야 한다. 국민이 바치는 세금이 없다면,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마 22:21). 또 성도는 사회에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성도는 또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남에게 빚을 지지 말아야 하고 부득이 빚을 진 경우는 떼어먹지 말고 반드시 또 먼저 갚아야 한다. 그러나 성도에게 사랑의 빚은 불가피한 일이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 어떤 거래 같은 행위가 아니고 그냥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받는 자에게는 언제나 빚이다. 그러나 그 빚은 무거운 짐이 되는 빚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가 그의 명하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의 빚을 많이 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정상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의 정신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다 이룬 것과 같다.
[9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등의 십계명의 말씀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법 속에 다 들어 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인격과 그의 생명과 그의 순결성과 그의 소유와 그의 명예를 존중하고 또 그의 가족과 자녀들의 행복을 귀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살인하거나 간음할 수 없고 또 도적질하거나 거짓 증거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을 것이다. 사랑하라는 명령 속에 이 모든 내용들이 다 들어 있다.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참된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그것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다. 그것은 이기적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악을 행치 않는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십계명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마 22:37-40). 인간 관계의 계명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다. 내게 사랑이 있다면,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정절과 소유물과 명예를 귀히 여길 것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이다. 주께서는 땅 위의 교회도 이런 사랑의 모임이 되기를 원하신다.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돌보며 관심을 가지는 인간 관계가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인간 관계이다. 그것이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인간 관계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부터 실천해야 할 인간 관계이다.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성도는 또 빛의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광의 구원이다. 그 날은 의인의 부활과 변화의 날이다. 그 날에 우리의 몸은 죄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질 것이다. 그 날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 이미 사도 시대에 성도들은 종말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더 가깝다고 느껴야 한다. 주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마 24:42). 우리는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깝다고 느낄수록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경건과 순종의 생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생활을 가리킨다.
[12-14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밤이 깊다는 것은 배교와 불신앙, 부도덕과 죄악의 밤이 깊다는 뜻이며, 낮이 가깝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이 가깝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어두움의 일은 죄악된 일을 가리키고, 빛의 갑옷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행실을 가리킨다. 성도의 옷을 ‘갑옷’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도가 이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고난을 각오하고 마귀의 시험들을 이기고 거룩하고 선한 행실로 단장해야 함을 보인다.
낮에는 사람들이 보통 바른 정신으로 일한다. 술 취하면 실수하며 단정함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낮에는 술 취하지 않는다. 사람은 감정이 자극되면 실수하고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성도로서 합당치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를 믿고 그의 성품을 본받고 그의 교훈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죄악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죄악된 일은 사람의 욕심에서 나온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듯이, 이 세상에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시기와 싸움이 많아질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이 점점 가깝다. 그러므로 구원 얻은 성도는 모든 어두움의 일들, 곧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다툼의 모든 죄악된 일을 벗어버리고, 굳센 마음으로 빛의 옷, 의의 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옷 입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경건과 의와 거룩, 그리고 그의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을 단장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국가 통치자들에게 복종하고 정해진 세금을 잘 내어야 한다. 우리는 국가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통치에 복종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러해야 한다. 그들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의 잘못된 언행을 비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회의 질서와 평안을 위해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또 그들이 직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세금을 잘 내어야 한다. 또 거기에 더하여,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우리의 성품을 다하고 우리의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십계명의 요점이다. 또 우리는 주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다.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이루는 것인 줄 알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빛의 옷을 입어야 한다. 어두움의 일들이란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다툼과 시기 등 죄악된 일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구원 얻기 전의 삶, 즉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이며, 죄악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죄악된 일들을 다 벗어버리고 육신의 죄성과 욕심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빛의 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것은 의와 거룩, 선과 사랑의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형상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죄인의 신분과 상태로부터 의인의 신분과 상태로 건져내시는 것이다. 구원의 목표는 거룩이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