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4장 7-8절이다.
외울 말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장 1-6절 단락구조분석 【고난의 유익】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4:1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g)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신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g.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우리를 위하여. 또는 여러분을 위하여)
4:1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여라. 이는 육체로 고난을 받은 자는 누구나 죄에서 단절하였으니,
4:1 Therefore, since Christ has ①suffered in the flesh, arm yourselves also with the same purpose, because the one who has ②suffered in the flesh has ceased from sin, ▷ ①I.e., suffered death ②I.e., suffered death
직역: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신으로 고난을 격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라.육신으로 고난받는 죄를 그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4:1 Χριστοῦ οὖν παθόντος σαρκὶ καὶ ὑμεῖς
그리스도의 그런즉 고난을 격으셨으니 육신으로 역시 우리를 (분사: 과거 능동태 속격 단수)
τὴν αὐτὴν ἔννοιαν ὁπλίσασθε,
그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라 (동사: 명령법 과거 중간태 2복)
ὅτι ὁ παθὼν σαρκὶ πέπαυται ἁμαρτίας (동사: 직설법 완료 중간태 3단)
때문이다 그 고난받는 육신으로 그치게 하였기 죄를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주해
▣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한글 개역 성경에는 생략이 되어 있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그러므로'(운)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 접속사는 벧전 3:18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언급과 연결되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그와 같은 마음의 무장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속적 효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의 본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엔노이아'는 문자적으로는 '생각' 또는 '사고방식'을 의미하며 때로는 '뜻', '결심'을 하는 힘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같은 마음'이란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마음가짐 혹은 지배적인 확신, 즉 '육신의' 죽음은 '영적인' 생명을 가져오며 죄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으로서, 이렇게 무장된 성도들은 그들에게 닥쳐오는 박해나 고난의 현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맞설 수 있다. '갑옷을 삼으라'(호플리사스데)라는 표현은 주로 바울이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여기서는 '스스로 무장하라', '스스로 준비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 본절의 내용은 롬 6:1-11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하나 벧전 2:22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 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여기서 '그쳤음이니'(페파우타이)는 벧전 3:10의 '그치다'와 같은 말로서 '근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지' 또는 '제어'를 뜻하는 것이다. 즉 육체의 고난 받음이 죄를 없애버리거나 용서의 조건은 아니지만 세상이 생각하는 것같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고난을 받을 때 우리의 모델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분을 의지함으로써 죄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4:2 이제부터는 h) 육신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h. 이 세상에서의 삶)
4:2 이는 더 이상 사람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는 것이다.
4:2 so as to live the rest of the time in the flesh no longer for human lusts, but for the will of God.
직역: 더 이상 사람들에 정욕대로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신의 남은 때를 살도록 하는것이다.
4:2 εἰς τὸ μηκέτι ἀνθρώπων ἐπιθυμίαις
으로 그 더 이상않고 사람들의 정욕들에게
ἀλλὰ θελήματι θεοῦ τὸν ἐπίλοιπον ἐν σαρκὶ βιῶσαι χρόνον.
오직 뜻에게 하나님의 그 남은 안에 육신 살도록하는 것 때를 (부정사: 과거 능동태 대격)
주해: 후로는 본절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새롭게 된 존재로서 삶 속에서 현실화시켜야 할 실제적인 목적들을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접속사 '그 후로는'을 어떤 이들은 전절의 '갑옷을 삼으라'에 연결하여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그리하면 그 후로는 네가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으리라'고 하나,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할 때 이 접속사를 바로 앞의 '죄를 그쳤음이니'에 연결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 사람의 정욕‥‥하나님의 뜻. - 저자는 본구절에서 세례에 의해 양분되는 인간의 대조적인 삶의 두 기간에 대하여 전형적 모습으로 대조시키는데, 이는 이사야 55:6-9의 내용을 반영한 것 같다. 중생하기 전의 인간은 정욕과 세속에 의해 지배 받지만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다. 여기서 '사람의 정욕'(에피뒤미아이스)은 원문에 복수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음 절에서 열거되는 것처럼 그것이 나타나는 양태가 다양하며 수시로 변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반면 '하나님의 뜻'(델레마티)은 단수인 바 이는 하나님의 뜻이 항상 동일하며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임을 나타낸다.
▣ 육체의 남은 때. - 이 말은 직접적으로는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의 나머지를 의미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주의와 경고뿐만 아니라 격려를 내포하고 있다. 성도들은 육체 안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육체의 정욕, 즉 세속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육체의 정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3 여러분은 지난 날에 이방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였으니, 곧 방탕과 정욕과 술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무분별한 우상 숭배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회와 역겨운 우상 숭배에 빠져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다.
4:3 For the time already past is sufficient for you to have carried out the desire of the Gentiles, ①having pursued a course of indecent behavior, lusts, drunkenness, carousing, drinking parties, and wanton idolatries. ①Lit having gone in
직역: 왜냐하면 너희가 환락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술찬지와, 무법함과, 우상숭배들을 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힘써 이룬것들 가운데 걸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목적을 쫓아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때가 족하도다.
4:3 ἀρκετὸς γὰρ ὁ παρεληλυθὼς χρόνος τὸ βούλημα
족하도다 왜냐하면 그 우리가지나가서있는 때가 그 목적을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단수)
τῶν ἐθνῶν κατειργάσθαι πεπορευμένους ἐν ἀσελγείαις, (분사: 완료 중수디 대격 복수)
그 뜻이 이방인들 힘써서이룬것 걸어가고 있으며 가운데 방탕들에 (부정사: 완료 중수디)
ἐπιθυμίαις, οἰνοφλυγίαις, κώμοις, πότοις καὶ ἀθεμίτοις εἰδωλολατρίαις.
정욕들에 술취함에 환락들 술찬지 와 무법한 우상숭배들에
주해
▣ 너희가‥‥지나간 때가 족하다. - 본절은 앞에서(2절) 말한 성도들이 좇지 말아야 할 '사람의 정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저자는 여기서 당시에 흔히 볼 수 있던 악한 행위들을 열거함으로 그들이 구원받기 전에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것들은 과거의 것으로 남겨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 음란과 정욕과‥‥무법한 우상숭배. - 이것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생태를 묘사한 것으로 처음 세 가지는 개인적인 죄악을 말하며 나중 세 가지는 사회적인 죄악을 말한다. '음란'(아셀게이아)은 색욕(色慾)과 관련된 모든 무절제를 말하며, '정욕'(에피뒤미아)은 난폭하고 걷잡을 수 없는 육체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의미하고, '술 취함'(오이노플뤼기아)은 술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리킨다. 또 '방탕'(코모스)은 마을의 축제 때 흥이 나서 온 마을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신약에서 이 말은 '술 마시고 흥청거리다', '음란한 연회를 베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연락'(포토스)도 함께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을 말하며, '무법한 우상 숭배'(아데미토이스 에이돌롤라트리아이스)는 이교적이고 비종교적인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모든 죄악들은 색욕과 술에 대한 죄악들로서 그 근원은 우상 숭배에 있는데 오늘날 자유 분방한 서구에서와 같이, 1세기의 소아시아 도시들에서 많은 사회 집단들의 특징을 이루었던 호색과 만취와 무질서에 대해 생생한 인상을 전해 주고 있다.
▣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 여기서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본절의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불레마'로서 2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때의 헬라어 '델레마'와는 다른데, 이는 '불레마'는 단지 '성향'(性向)을 의미하고 '델레마'는 선택과 목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며 거룩한 목적이 있으나 '이방인의 뜻'은 불확실한 성향으로서 변화무쌍한 정욕에 따라서 이리저리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대조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4:4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같이 그런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
4:4 그들은 너희가 그런 극한 방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4:4 In all this, they are surprised that you do not run with them in the same excesses of ①debauchery, and they slander you; ▷ ①Or reckless abandon
직역: 이로 인하여 너희가 방종과 함께 달음질 하지 아니할때 그들이 비방하며 넘 흐르는 것 같이 그들이 이상히 여기더라
4:4 ἐν ᾧ ξενίζονται μὴ συντρεχόντων ὑμῶν εἰς τὴν αὐτὴν (분사: 현재 능동태 속격 2복)
인하여 이로 그들을이상히여겨 아니할때 함께 달음질하지 너희의 으로 그 같은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복)
τῆς ἀσωτίας ἀνάχυσιν βλασφημοῦντες,
그 방종의 넘처 흐름 비방하며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 '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퀴시스'는 이 곳에서만 나타나는 단어로 '흘러넘치다'라는 의미이다. '방탕'(아소티아)은 '구원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눅 15장에서 탕자의 무모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본절은 마치 이방인들이 방탕과 타락으로 게걸스럽게 떼지어 달려가고 있는 듯한 매우 강한 표현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세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방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나타낸다.
▣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여기서 '이상히 여기다'(크세니조)는 '이방인'이란 뜻인 '크세노스'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처럼 보이다'라는 뜻으로 매우 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방탕한 생활에서 떠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과거의 세상에서의 친구들은 놀랍게 생각하며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방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의 방탕한 생활을 떠나 새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옛 친구들에게서 오는 비방과 박해를 각오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4:5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다 아뢰어야 합니다,
4:5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예비하시는 분께 사실대로 고하게 될 것이다.
4:5 but they will give an account to Him who is read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직역: 그들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기로 예비하여 말씀되어진 것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다.
4:5 οἳ ἀποδώσουσιν λόγον τῷ ἑτοίμως ἔχοντι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그들이 해야할 것이다 말씀되어진 그 예비하여 가지는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복)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심판하기를 산(사람) 과 죽은사람들을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복수)
주해
▣ 산 자와 죽은 자‥‥직고하리라. - 본절의 '산 자'와 '죽은 자'를 영적으로 살아 있거나 죽은 자들에 대한 묘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단지 그 당시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때 이미 죽은 자들을 나타낼 뿐이며 여기서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향한 고난과 비방을 즐거움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마지막이 임박해 있으며, 그 때는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자와 이미 죽은 모든 자를 포함한 범세계적인 심판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심판자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물론 하나님이 심판장되시나 그 직무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권한을 맡기신 그리스도에 의해 시행된다. 이에 박해자들은 지금 성도들의 소망의 이유에 대해서 묻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이유를 말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4:6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대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4:6 이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았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이다.
4:6 For the gospel has for this purpose been ①preached even to those who are dead, that though they are judged in the flesh as people, they may live in the spirit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 ①I.e., preached in their lifetimes
직역: 왜냐하면 이것을 위하여 실로 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한편 육신으로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게된다면 받기 위함이라. 또 다른한편 영으로 하나님을 따라서 살게된다면 살기 위함이라.
4:6 εἰς τοῦτο γὰρ καὶ νεκροῖς εὐηγγελίσθη,
위하여 이것이 왜냐하면 실로 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
ἵνα κριθῶσιν μὲν κατὰ ἀνθρώπους σαρκί,
위하여 심판을 밭으면 한편 따라서 사람들을 욕신으로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3복)
ζῶσιν δὲ κατὰ θεὸν πνεύματι.
살으면 다른한편 따라서 하나님의 영으로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3복)
주해
▣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근거에 대한 설명으로 매우 난해한 구절이다. 문제는 '죽은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인데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 앞의 3:19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시 '죽은 자'를 영적으로 보는 해석과 육적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전자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예수께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최후 심판을 대비하셨다고 한다. 반면에 후자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예수께서 최후 심판을 위해 장사되고 부활하시기 전에 지옥에 내려가 육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의 견해 중 전자는 바로 전절의 '죽은 자'가 육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본절의 '죽은 자'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이며, 후자는 벧전 3:19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말함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 한편 여기서 '죽은 자'란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죽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는데 이것이 적절하다.
▣ 육체로는‥‥살게 하려 함이니라. - 본절은 '육체로'와 '영으로', '사람처럼'과 '하나님처럼', '심판을 받으나'와 '살게 하려 함이니라'를 대조시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사람이 육체로는 죽을 수밖에 없으나 영으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육체'와 '영'은 문자 그대로의 육과 영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육'은 이 세상의 생명의 영역을 나타내며, '영'은 부활의 생명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 7-11절 단락구조분석 【선한 청지기의 삶】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게 기도하십시오.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여라.
4:7 The end of all things ①is near; therefore, be of sound judgment and sober spirit for the purpose of ②prayer. ▷ ①Lit has come near ②Lit prayers
직역: 이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너희는 근실함 마음을 가려라. 그리고 기도로서 근심하라.
4:7 Πάντων δὲ τὸ τέλος ἤγγικεν.
만물의 이제 그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3단)
σωφρονήσατε οὖν καὶ νήψατε εἰς προσευχὰς.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근실한 마음을 가져라 그러므로 그리고 근심하라 로서 기도들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주해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 한글 개역 성경에는 없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그러나'(데)라는 접속사가 있는데, 이 접속사는 앞부분(1-6절)과 연결하여 저자의 관심이 박해자들에 대한 대외적인 관계에서 이제는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삶의 문제로 바뀌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까왔으니'(엥기켄)는 대체로 '도래하였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의 임재를 표시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본절은 '너희를 박해하고 훼방하던 자들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너희에 대한 박해 등 이 땅에서의 모든 시련이 끝나는 때가 가까왔으니 너희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초대 교회에서 보편적인 것이었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의식이다. 물론 때와 기한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니나 우리는 우리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항시 종말론적인 자세로 경건한 삶을 견지해야 한다.
▣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본 구절은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져야 할 신앙적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소프로네사테)는 '자제심을 갖다' 또는 '냉정하다'는 등의 건전한 정신을 갖춘다는 뜻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4: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4:8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라. 이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어 주기때문이다.
4:8 Above all, keep fervent in your love for one another, because love covers a multitude of sins.
직역: 모든것 보다 먼저 너희 자신을 위하여 뜨거운 사랑을 가지라.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들을 덮기 때문이다.
4:8 πρὸ πάντων τὴν εἰς ἑαυτοὺς ἀγάπην ἐκτενῆ ἔχοντες,
먼저 모든 것 그 위하여 너희자신을 사랑을 뜨거운 가지라 (분사명령: 현재 능동 주격 2복)
ὅτι ἀγάπη καλύπτει πλῆθος ἁμαρτιῶν,
때문이라 사랑은 덮기 허다함을 죄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 앞절에서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가져야 할 태도로 기도할 것을 권면한 저자는 본절에서는 마지막 때에 성도 상호 간에 가져야 할 태도로서 '사랑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권면이 앞에서도 나오는데 저자가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 성경의 가르침 중 핵심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생활 속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여야 할 모습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난과 핍박에 직면한 당시의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서로 하나되어 단결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단순한 관심 정도가 아닌 서로를 위해 희생조차도 감당하는 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본절은 잠 10:12을 인용한 것이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말의 의미는 사랑은 다툼을 일으키는 미움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말없이 용서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덮느니라'(칼뤼프테이)를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덮는 것으로 이해하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다가오는 심판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나 이것은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의 기준을 사람들의 선행에 두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랑은 서로에게 지은 죄를 덮는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좋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9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4:9 불평 없이 서로 대접하고,
4:9 Be hospitable to one another without complaint.
직역: 불평 없이 서로를 위하여 대접하며,
4:9 φιλόξενοι εἰς ἀλλήλους ἄνευ γογγυσμοῦ,
대접하며 위하여 서로를 없이 불평의
주해
▣ 서로 대접하기를. -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의 가장 큰 표출 방법은 '접대'(필로넥시아)였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일반인을 위한 숙박 시설은 거의 없었으며 매우 빈약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손님 대접이란 필수적인 것이며 종종 경비가 많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듣기 위하여, 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여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이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 때문에 손님들을 호의로 맞이하라는 훈계의 말들이 초기 저작들 속에는 눈에 띄게 나타난다.
▣ 원망 없이. - '원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공귀스모스'는 불만을 품고 수군거리는 것을 말한다. 손님을 아무리 잘 대접했다 할지라도 마지못해 하는 마음이나 원망의 마음으로 행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손님 대접을 할 때 불만을 품고 수군거려서는 안 되며 그 반대로 명랑하고 깨끗하고 이기심 없는 정신으로 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4:10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4:10 각자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겨라.
4:10 As each one has received a special gift, employ it in serving one another as good stewards of the ①multifaceted grace of God. ▷ ①Or manifold
직역: 각 그 사람은 은사를 받았던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너희 자신을 위하여 서로 섬기라.
4:10 ἕκαστος καθὼς ἔλαβεν χάρισμα,
각 사람은 대로 그가받았던 은사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εἰς ἑαυτοὺς αὐτὸ διακονοῦντες
위하여 너희자신을 그것 섬기라 (분사명령: 현재 능동 주격 2복)
ὡς καλοὶ οἰκονόμοι ποικίλης χάριτος θεοῦ.
로서 선한 청지기들 여러 가지 은혜의 하나님의
주해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서로 봉사하라. - '은사'(카리스마)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온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초대 교회에서 주의를 끌었던 예언이나 방언 등의 특별한 은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가르침, 설교, 자선, 긍휼을 베푸는 행위 등 공동체를 섬기는 데 유익한 것은 모두 '은사'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선한 청지기 같이. - '청지기'(오이코노모스)는 집안을 관리하는 봉사자로서 그 자신의 재산은 없지만 자기 주인의 재산을 그 주인의 뜻과 지시에 따라 분배하는 일을 담당하는 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사가 개인의 소유물로서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교회의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4:11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4:11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 말씀처럼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여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려는 것이다. 영광과 능력이 영원 무궁히 그분에게 있다. 아멘.
4:11 Whoever speaks is to do so as one who is speaking actual words of God; whoever serves is to do so as one who is serving ①by the strength which God supplies; so that in all things God may be glorified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longs the glory and ②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 ①Lit from ②Or power
직역: 만일 누구든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들 처럼 하고, 만일 누구든지 섬기려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 있는 것 처럼 하라.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모든일에 있어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면 영광을 받기 위함이니라. 그리한바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그 세대들에 무궁토록 있느리라 아멘
4:11 εἴ τις λαλεῖ, ὡς λόγια θεοῦ·
만일 누구든지 말하려면 처럼 말씀들 하나님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εἴ τις διακονεῖ, ὡς ἐξ ἰσχύος ἧς χορηγεῖ ὁ θεός,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만일 누구든지 섬기려면 처럼 의한 것 힘에 바 공급하시는 그분 하나님께서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ἵνα ἐν πᾶσιν δοξάζηται ὁ θεὸς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위함이라 있어 모든일에 영광을받으시게하기 그분 하나님께서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동사: 가정법 현재 수동태 3단)
ᾧ ἐστιν ἡ δόξα καὶ τὸ κράτο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바 이다 그 영광 과 그 권능이 영원토록 그 세대들을 그 세대들의 아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은사에 대한 청지기적 자세를 강조하고 난 후에 은사들을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의 두 가지로 분류하여 은사가 적절히 사용되어져야 할 것을 권면한다. 이러한 분류는 하나님을 섬기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사역의 기능을 나누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말하다'(랄레오)는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레고'가 아니라 공석에서 설교나 강의를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인간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복종시켜 하나님이 알려주신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 '봉사'(디아코니아)는 공동체 내에서의 특별한 형식의 봉사를 가리킨다. 즉 빈민을 구제하고, 병자를 위문하고, 죄수를 방문하는 등의 행위이다. '공급하다'(코레게오)는 문자적인 의미로는 공적인 축제를 위해 자비(自費)로 합창단을 구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말하며, 은유적으로는 군대에 군수품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여러 가지 요구되는 것을 조금도 아낌없이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 이는 범사에‥‥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 자신을 자랑하거나 영광을 자신이 받아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데,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해 되었기 때문이다.
▣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있느니라 아멘. - 저자 베드로는 여기서 감격에 넘쳐 송영을 하고 있다. 저자가 이 시점에서 송영을 넣은 것에 대하여 혹자는 이것이 본래 독립문서의 끝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본서가 세례식에 사용된 의식문서라는 이론에 의존하는 것으로 타당하지 못하다. 여기에 송영이 나온 것은 7절에서부터의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청지기적 삶의 자세에 대한 권면을 마친 후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위엄을 강조하는 저자의 신앙심의 표현으로 바로 앞의 '영광을 받으시게'와 연관할 때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이런 형태의 송영은 드물기는 하나 바울서신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와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문맥으로 보아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좋다.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단락구조분석 【고난에 직면한 성도에 대한 격려와 권면】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4: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사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험을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4:12 Beloved, do not be surprised at the fiery ordeal among you, which comes upon you for your test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were happening to you;
직역: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중에 불같은(강렬한)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너희에게 일어나 생긴 것 처럼 이상한 일 같이 여기지 말라.
4:12 Ἀγαπητοί, μὴ ξενίζεσθε τῇ ἐν ὑμῖν
사랑하는자들아 말고 이상히 여기지 그 중에 너희 (동사: 명령법 현재 수동태 2복)
πυρώσει πρὸς πειρασμὸν ὑμῖν
불같은 위하여 시련을 너희에게
γινομένῃ ὡς ξένου ὑμῖν συμβαίνοντος, (분사: 현재 능동태 속격 단수)
일어나는 같이 이상한일 너희에게 생기는 (분사: 현재 중수디 여격 단수)
주해: 저자는 본서 1:6에서 이미 언급했으며 3:13 이후에 중심을 이루어 온 고난(苦難)에 대한 주제를 본절 이하에서 발전시킨다.
▣ 사랑하는 자들아. - 이에 대하여는 벧전 2:11 주석을 참조하라.
▣ 불 시험을. - '불 시험'(쥐로시스)은 본래 '화염'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벧전 1:7의 반복이요 구체적인 설명으로 박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으로서의 박해와 모든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난'이란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단련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여기서 '이상히 여기다'(크세니조)는 4절에서도 사용되었던 단어로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는 놀라움을 의미한다. 저자는 당시의 성도들이 박해를 이상한 것,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들의 삶과는 관계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와 같은 시련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일치되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시련은 이상이 아니고 정상이다. 이와 같은 현세에서의 시련은 신앙의 연단을 위해 성도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3 오히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이 기뻐 뛰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여라. 이는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너희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다.
4:13 but to the degree that you share the sufferings of Christ, keep on rejoicing, so that at the revelation of His glory you may also rejoice and be overjoyed.
직역: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참여하는 것으로서 즐거워하라. 이는 영광이 나타날 때에 너희로 기뻐하면서 즐거워하게 된다면 즐거워하기 위함이라.
4:13 ἀλλὰ καθὸ κοινωνεῖτε τοῖς τοῦ Χριστοῦ παθήμασιν, χαίρετε,
오직 으로서 참여하는 것 그 그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즐거워하라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복)
ἵνα καὶ ἐν τῇ ἀποκαλύψει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 χαρῆτε ἀγαλλιώμενοι. (분사: 현재 중간 주격 2복)
위함이라 이 때에 그 나타남에 그 영광의 그의 즐거워하면 기뻐하면서 (동사: 가정법 과거 수/디 2복)
주해
▣ 오직 너희가‥‥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앞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라는 것과 그들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예하였음을(1절) 가르친 저자는 여기서 주께서 하신 말씀을 반영하여 성도들의 고난 받음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므로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일찍이 주님도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라고 말씀하셨으며, 바울 서신에도 이러한 사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 기뻐해야 할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같이 장차 그의 영광에도 참예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절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그의 영광에도 동참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4: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a)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b) (a.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영광과 능력의. b.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들 편에서 보면 그가 모독을 받지만, 여러분 편에서 보면 그는 영광을 받습니다 가 첨가되어 있음)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복 있는 자들이니,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4:14 If you are insulted ①for the name of Christ, you are blessed, because the Spirit of glory, and of God, rests upon you. ▷ ①Lit in
직역: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난을 받으면 복이있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kjv 번역본 [ 참으로 저희에게는 훼방하는 것이 되나 그러나 너희에게는 영광이 됨이라.
4:14 εἰ ὀνειδίζεσθε ἐν ὀνόματι Χριστοῦ, μακάριοι,
만일 비난을 받으면 으로 이름 그리스도의 복이 있다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2복)
ὅτι τὸ τῆς δόξης καὶ τὸ τοῦ θεοῦ πνεῦμα ἐφ᾽ ὑμᾶς ἀναπαύεται.
때문에 그 그 영광의 곧 그 그 하나님의 영께서 위로 너희를 물러 계시기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3단)
kjv 번역본에는 있음
κατα μἐν αὐτοῦς βλασφημεῖται
에게는 참으로 저희 훼방하는 것이되나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단)
κατα δὲ ὑμᾶς δόξηᾶζεαι
에게는 그러나 너희 영광이 됨이라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단)
주해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엔 오노마티 크리스투)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는 '그리스도 때문에'라는 의미로 본 구절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욕을 받는 것은 분개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받는 욕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소망, 그리고 그들의 이방인과는 구별되는 경건한 삶 때문에 받는 것이다.
▣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문장 초두에 접속사 '왜냐하면'(호티)이 있는데, 이것은 본 구절이 앞의 내용과 접속되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것이 복이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임을 나타낸다. 본구절의 표현법은 사 11:2의 70인역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하여튼 여기서 '영광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령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사람에게서 받는 욕'과 대조하여 성령이 장차 성도들을 천국 영광에로 이끄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고난 받으셨으나 성령으로 부활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영광을 얻으셨듯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케 하신다. 따라서 고난 받는 성도 위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은 천국 영광의 보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성령을 임재케 하시는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임재를 느끼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성도들을 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호크마 주석, 로고스 주서, 그랜드 주석, 메튜헨리 주석, 박윤석박사 주석 등에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킹제임스)kjv 번역본에서는
[ 참으로 저희에게는 훼방하는 것이 되나 그러나 너희에게는 영광이 됨이라.] 기록되어져 있다. 참조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4:15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살인자,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4:15 너희 가운데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행악자나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4:15 Make sure that none of you suffers as a murderer, or thief, or evildoer, or a ①troublesome meddler; ▷ ①Lit one who oversees others’ affairs
직역: 왜냐하면 누구든지 살인자로서, 또는 도적으로서, 또는 행악로서, 남의 일에 간섭하는자로서, 너희는 고난을 격지 말라.
4:15 μὴ γάρ τις ὑμῶν πασχέτω ὡς φονεὺς
말라 왜냐하면 누구든지 너희는 고난을 겪지 로서 살인자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3단)
ἢ κλέπτης ἢ κακοποιὸς ἢ ὡς ἀλλοτριεπίσκοπος·
또는 도적 또는 행악자 또는 로서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
주해
▣ 너희 중에 누구든지‥‥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 본절은 벧전 2:20; 3:17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앞절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받는 고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살인'이나 '도적질'은 극단적이면서도 특정한 범죄를, '악행'(카코포이오스)은 일반적인 악인의 행위를 가리킨다. 악행으로 인한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신에게나 교회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한편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로트리에피스코포스'는 아주 희귀한 단어로서 신약에서는 이곳에서만 보인다. 이 낱말을 '남의 돈을 탐하는 자'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합당치 않은 자' 등으로 해석하나 적당치 않다. 오히려 이 말은 자신과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의 일을 감독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은 흔히 자신들이 재판관이라고 자처하여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함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므로 영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의 목적이든 세속적 동기이든지 간에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남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4:16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 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4: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4:16 but if anyone suffers as a Christian, he is not to be ashamed, but is to glorify God in this name.
직역: 만약에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이름을 하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하라
4:16 εἰ δὲ ὡς χριστιανός, μὴ αἰσχυνέσθω,
만일 그러나 으로서 그리스도인 말라 부끄러워 하지 (동사: 명령법 현재 중간태 3단)
δοξαζέτω δὲ τὸν θεὸν ἐν τῷ μέρει τούτῳ.
영광스럽게하라 그러나 그 하나님 안에서 그 이름을 이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이란 말은 본절 외에 다른 곳에서 두 번 더 나타난다. 이 말은 안디옥 지역에서 이방인들이 유대교와는 다른 종교적인 운동을 하는 자들, 즉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붙여준 별명으로 처음에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에게 충성하는 자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A.D. 110년경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식 호칭으로 널리 통용하게 되었다.하여튼 저자는 악행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고 통한히 여길 것을 말하나 그리스도인인 까닭에 받는 고난에 대해서는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 가운데에는 악을 행하면서 사람의 눈을 피하기만 하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자들이 있는데 이러한 자는 결코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4: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
4:17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먼저 시작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느냐?
4:17 For it is time for judgment to begin ①with the household of God; and if it begins ②with us first, what will be the outcome for those who do not obey the gospel of God?
▷ ①Lit from ②Lit from
직역: 하나님의 집으로 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데 우리부터 먼저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아니하면 마지막이 어떠하겠느냐?
4:17 ὅτι ὁ καιρὸς τοῦ ἄρξασθαι τὸ κρίμα ἀπὸ τοῦ οἴκου τοῦ θεοῦ·
때문이라 그 때가(되었기) 그 시작 할 그 심판을 부터 그 집으로 그 하나님의 (부정사: 과거 중간태 속격)
εἰ δὲ πρῶτον ἀφ᾽ ἡμῶν,
만일 그런데 먼저 부터 우리로
τί τὸ τέλος τῶν ἀπειθούντων τῷ τοῦ θεοῦ εὐαγγελίῳ;
어떠 그 마지막이 그 순종하지아니하는 그 그 하나님의 복음에 (분사: 현재 능동태 속격 복수)
주해
▣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 본절에서는 다시 종말론적인 주제로 돌아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중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때인데 그 심판은 그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구원의 연단을 위한 것으로 이 세상에서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있을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은 정죄를 위한 형벌로서 영원히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여기서 이 말을 하는 것은 불신자들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성전)에서 시작된다는 사상은 구약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4:18 c)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하지 않는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c. 잠11:31(70인역)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하지 못한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느냐?"
4:18 AND IF IT IS WITH DIFFICULTY THAT THE RIGHTEOUS IS SAVED, ①WHAT WILL BECOME OF THE GODLESS MAN AND THE SINNER? ▷ ①Lit where will appear
직역: 또 만약에 의인일 경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4:18 καὶ εἰ ὁ δίκαιος μόλις σῴζεται,
또 만일 그 의인이 경우 구원을 받으면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단)
ὁ ἀσεβὴς καὶ ἁμαρτωλὸς ποῦ φανεῖται;
그 경건치 않이한자 와 죄인은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 3단)
주해
▣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죄인이 어디 서리요. - 본절은 '성도들이 시련을 통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불신자들이야 어디 구원의 여지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즉 저자는 17절에서 계속하여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는 불신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잠 11:31의 70인역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용한 본문의 본래 문맥은 장래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아닌 사람들의 세상적인 복지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으나, 저자는 이 본문을 종말론적으로 적용하였다. 특별히 여기서 '어디 서리요'(푸 파네이타이)라는 표현은 죄인들의 전멸을 암시하는 것으로 경건치 않은 죄인들에게 임할 형벌의 정도가 상상할 수도 없이 가혹할 것 임을 암시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기십시오.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라.
4:19 Therefore, those also who suffer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are to entrust their souls to a faithful Creator in doing what is right.
직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격은 사람은 선행 가운데 자기들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자에게 그들을 위하여 맡기라
4:19 ὥστε καὶ οἱ πάσχοντες κατὰ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그러므로 참으로 그(사람) 고난을 격 따라 그 뜻을 그 하나님의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πιστῷ κτίστῃ παρατιθέσθωσαν τὰς ψυχὰς αὐτῶν ἐν ἀγαθοποιΐᾳ.
신실하신 창조자에게 그들을 위하여 맡기라 그 영혼들을 자기들의 가운데 선행 (동사: 명령법 현재 중간태 3복)
주해
▣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 - 본절은 벧전 2:20; 3:17의 사상을 반복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서 받는 고난이 아닌(15절) 단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으로서 성도들을 연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은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고는 박해자들이 그들을 박해할 권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박해자들의 손을 통하여 오지만 박해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선을 행하는 가운데‥‥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 본절은 12절에서부터 계속된 그리스도인의 고난 받음이 복이라는 권면의 결론적인 부분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사람들에 대하여는 능동적으로 선한 삶을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 '부탁할지어다'(파라티데스도산)란 동사는 '예금하다', '보호를 위해서 맡기다'라는 뜻으로 믿을 만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돈이나 귀중품 등을 맡길 때 사용하는 상업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시 31:5을 반영하여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으로 말하는데, 이와 같은 영적인 위탁은 딤후 1:12에도 나오며 주님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다. '조물주'(크티스테스)는 신약에서 이곳에서만 보이는 단어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말한다. 한편 여기서 저자가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칭하고 있는 것은 조물주라는 칭호가 자기의 피조물들을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과, 기꺼이 그렇게 하시는 사랑을 내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