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비율적으로 흐른다>
184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물론 이 날짜가 나의 죽음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인생 전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나는 수능에 대해 그리 압박감을 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일이 아니다, 수능 잘 봐도 망한 사람 많고 수능 못 보고 공부 못해도 성공한다던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에는 지금까지의 시험 성적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매년 학급 임원도 하고 시험을 보면 올백도 자주 맞아왔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보면 초등학생이 공부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했겠어, 그리고 그때 잘하는 게 뭐가 중요해,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겨우 시골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였기도 하고 그때의 점수가 나중에 내가 취업하는 데 도움을 주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초등학생 때 정말 진정으로 공부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수학 문제를 풀면서 재미를 느끼고 과학을 공부하면서 어렵고 알 수 없는 우주, 이 세상을 이해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흥미롭게 탐구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내가 과학 과목을 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수능을 보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좋아하는 건 정말 좋아해서 집중하고 그 부분만 열심히 파지만 싫어하는 건 쳐다보지도 않는 그런 학생이어서 중학교 때부터 수학과 영어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왔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학, 영어를 회피하려고만 행동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나의 머릿속은 수능과 나랑은 맞지 않다고 자기합리화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현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3이 다가오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나는 잘하는 게 없었다. 조금 표현을 덧붙이자면 특출난 재능이 없었다. 그렇기에 재능이 있어야 하는 영역에서는 내가 남들보다 뛰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향을 모색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마냥 좋아하기만 해서는 원하는 학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선택권을 가지려면 공부부터 잘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라도 열심히 해서 수시를 준비하였지만 수학과 영어에서 등급이 크게 낮아진 탓에 내가 원하는 대학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현실을 깨달은 나는 고2 겨울방학부터 정시와 수시를 같이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겨울방학부터 수능 공부를 나름대로 했지만 수학과 영어는 기초가 부실했고 왜 이런 깨달음을 고1, 2 때 얻지 못했을까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미 소용없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고3이 돼보니 내신시험을 챙기고, 수행평가를 하느라 수능 공부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였고 결과적으로 내신시험이 끝나고 5일 뒤에 5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거의 모든 과목이 3월 모의고사 보다 한 등급씩 떨어졌다. 이번에도 영어, 수학은 공부를 하지 않고 봐서 기대도 안 했지만 열심히 준비해왔던 국어가 내신기간 때문에 2주 동안 쉬었다고 이렇게 못 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충격이었다. 역시 현역이 수시와 정시를 모두 챙기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쯤 되니 내가 불가능한 걸 도전하는 건가 그냥 목표를 낮춰서 수시만 준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겨울방학 때의 마음가짐은 사라지고 나는 너무 나약해져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의 노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목표를 낮추기도 싫다. 이런 나의 이중적인 면모가 부끄러웠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바뀌는 건 없을 것이기에 마음을 더 독하게 먹고 행동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최대한 빨리 가능하다면 매일매일 현재를 의식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것이다.
시간은 비율적으로 흐른다. 200일 남은 시점보다 100일 남았을 때 하루가 더 빨리 가고 일주일이 남았을 때는 하루하루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깨닫고 의식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잊어버릴 때쯤, 이 글을 돌아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