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쿠오피오에서 만나는 중국음식과 음식문화 연대>
2019.8.30.저녁
쿠오피오 시가지 중심 마켓광장 가까이에는 중요 건물이 다 모여있다. 시청이 광장에 있고, 광장을 막 빠져나오면 미술관과 대성당이 있다. 대성당 앞에는 20년된 중국집 <광동헌>이 있다. 중국음식점이 시내 요지에 있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다른 음식점들과 어깨를 같이하는 중국음식점, 궁금하다, 어떤 음식일까.
핀란드 중국집은 보통 부페 형식으로 운영된다. 무슨음식인지 몰라 음식을 주문하기 어렵고, 특정 음식을 골라 먹을 만큼 중국음식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면서 기호에 따라 골라 먹어야 선택에 따른 부담을 던다.
해외 여행이 길어지면 우선 음식에서 피로감이 온다.(13일에 왔으니 벌써 보름이 넘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개운한 음식을 한번쯤은 먹고 싶고 친근한 음식으로 위를 채우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침이 나오고 위액과 장액이 분비된다. 벌써 음식을 먹고 소화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흡수가 잘 된다. 소화 흡수가 잘 되면 컨디션이 좋아지고 힘이 난다.
음식 자체가 맛이 있어도 맛있는 바케뜨나 으깬 감자보다 밥이 먹고 싶고 김치가, 김밥이, 불고기가 먹고 싶다. 순록스테이크가 맛이 있어도 불고기가, 카렐리아 파이(안에 쌀을 넣은 핀란드 빵)가 맛이 있어도 비빔밥이 먹고 싶다.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니 소화가 안 되고 흡수가 덜 되어 몸이 처지고 지친다. 음식 피로감이다.
헬싱키에서는 월남음식점 <포비에>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물국수, 비빔국수를 먹으니 음식 향수가 절반은 해소되었다. 탐페레에서도 역시 마켓광장 초입에 있는 중국집에 갔었다. 거기서 중국 부페를 만났다. 중국인 같은 종업원은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음식도 너무 느끼했고 별맛이 없었지만 먹고 나니 포만감이 들었고 힘이 났다.
여기서는 시원하게 중국어가 통했다. 말로만 봐도 진짜 중국음식 전문점이구나. 바빠보여 긴 얘기는 못했지만, 주문은 물론 소통이 가능했다. 진짜 중국집이니 부페 아닌 걸 먹어도 되겠구나. 속이 개운한 음식은 섞어 먹는 부페가 아니라 단품 음식이다.
고르고 골라 네 가지를 주문했다. 광동음식인가 싶었지만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았다. 식재료 구입의 어려움 탓인지 흔한 음식도 메뉴에 없었다. 마파두부를 먹고 싶었는데, 없었다. 사천요리라 그런가. 하지만 중국에서는 마파두부 없는 음식점이 거의 없다. 가지요리도 없다. 가지는 여기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데.
하여튼 그렇게 고심끝에 주문한 음식이
춘권(3.5유로), 쏼라탕(5유로), 죽순버섯요리(9유로?), 돼지고기탕수(11.5유로?)이다.
개별음식값은 잘 헤아리지 못했고, 2인분 모두 29유로, 1인 부페값이 12.5유로니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
이상이 주문한 음식이다. 밥은 정말 압권이었다. 베트남음식점 쌀밥과는 달랐다. 베트남 쌀밥은 불면 날아가게 찰기가 없었지만, 이 쌀은 같은 인디카형인 거 같은데 탄탄하고 쫄깃거려 한국쌀에 가까운 맛이 났다. 게다가 한 공기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주는지, 3인분은 될 거 같았다.
이중 맛있는 음식이 1)쏼라탕 3)죽순버섯볶음이었다. 2)춘권에는 배추 등 야채가 조금 들어있을 뿐 풍성한 맛이 없었다. 4)는 탕수육을 예상하고 시켰는데, 탕수리지와 다르다는 말에 마음 준비는 조금 했지만 이정도로 다를 줄은 몰랐다. 음식 이름은 '탕수저' 돼지 저다. 탕수육과 왜 다른지 모르겠지만 튀겨서 소스를 끼얹은 것과 달리 소스에 볶은 요리인 데다 달고 짰다. 그래도 먹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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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함께 넣고 비벼 먹으니 한국음식 생각이 절반은 달아났다. 헬싱키에서는 두 번을 베트남음식을 먹었다. 향채를 평소 꺼리는 데도 얼마나 시원하게 먹었는지.
왜 월남음식과 중국음식이 한국음식 대용이 되는가. 이것이 궁금해졌다. 음식에도 분명 친연성이 있는 거다. 중국음식은 우리가 평소 가장 자주 접하는 외국음식이다. 물론 짜장면 정도로 한국화된 음식은 아니어도 가까워서 여행도 자주 가고 요즘은 국내에서도 본토음식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월남음식의 경우도 비슷하다. 요즘 일본을 대신해서 월남이 여행 선호지 1위이다. 특히 다낭은 엄청나게 한국인이 밀려든다. 결혼이민자도 중국 다음 월남이 많다. 식당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매우 보편화되었다. 월남쌀국수집은 한국인도 베트남사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친연성 외에 다른 뭔가 본질적 원인이 있을 거 같다. 그것은 간을 내는 성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맛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것이 짠맛을 내는 성분이다. 맛과 간을 내는 것으로 무엇을 쓰느냐가 맛을 좌우한다.
짠맛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낸다. 서양음식은 모두 소금으로 간을 낸다. 물론 소금은 다양하여 암염, 천일염 등에 지역마다 염도와 색깔과 성분이 조금씩 다르다. 천일염은 프랑스 게랑드소금이 대표적이다. 게랑드 소금의 색깔이 약간 붉은 빛을 띄는 것은 그곳 갯벌의 성분 때문이다.
여기 핀란드는 의외로 암염을 많이 먹는다. 이웃 에스토니아도 마찬가지다. 식당에 암염을 내놓은 경우가 많다. 핀란드는 수퍼에서도 암염을 많이 팔아, 히말라야 암염도 판다. 히말라야 암염은 엷은 붉은색을 띈다. 빵도 짠 것이 많이 있는데, 소금은 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암염을 뿌려서 고명으로도 쓴다. 프랑스의 바케트빵이 여기 오면 암염빵이 된다.
우리는 절반 정도 천일염을 먹는다. 신안군이 대부분을 생산하는데 증도가 그 일번지다. 우리의 짠 맛은 소금에서 직접 오는 것만이 아니다. 소금을 더해 간장으로 발효를 시켜 먹는데 젓갈간장과 메주간장이 그것이다. 메주에 소금을 더해 메주간장을, 멸치나 어패류에 소금을 더해 젓갈간장을 만든다. 세계 5대 갯벌 덕에 소금만이 아니라 젓갈 생산도 가능하다.
콩으로는 메주를 쑤고 소금을 더해 간장을 담근다. 그래서 음식맛을 내는데는 소금 자체와 젓갈간장과 메주간장을 쓴다. 이처럼 젓갈간장과 메주간장을 다 쓰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전통적인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일본은 이 둘을 다 쓰다가 젓갈간장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메주간장만 쓴다. 베트남은 젓갈간장만, 중국은 메주간장만 쓴다. 그러나 일본은 재료맛 위주의 음식을 주로 하므로 요리를 통하여 간장 맛을 내는 곳으로는 베트남과 중국 요리를 들 수 있다. 일본은 미소시루에서 메주간장을 쓰지만 다른 음식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주요음식인 사시미나 초밥의 생선회는 요리 안 된 생선육 자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일본음식도 메주간장을 사용하므로 한국음식 향수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더구나 일식은 한국에서 가장 자주 접하고 된장국을 비롯하여 비슷한 음식도 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리마끼도 우리 김밥과 비슷하다. 우리 김밥은 식사가 되는데 노리마끼는 보조음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서양음식은 소금만을 쓴다. 우리가 베트남, 중국음식을 타국에서 먹으며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연원이 있는 것이다. 간장을 사용하고, 문화적 친연성이 있는 음식이어서 이 멀리 북극에 와서도 고향 까마귀 만난 듯 반가운 것이다.
거기다 한중일월이 모두 공유하는 식사문화가 있다. 바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다. 2015년부터 청주에서 한중일이 젓가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2019년 9월ㅇ는 5회가 열린다. 함께 젓가락 문화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월남도 같이 해야 한다.
헬싱키에서도 월남 음식에는 젓가락이 함께 나왔다. 중국산 젓가락을 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니 확실히 음식 피로감이 풀리는 것이다.
월남음식점에서 만난 한 핀란드 청년은 혼자 젓가락을 별로 불편하지 않게 사용하면서 월남국수를 먹고 있었다. 어디서 사용법을 배웠냐고 묻자 혼자 터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월남음식은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라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식은 단지 음식만이 아니라 식문화도 함께 전파한다.
거기다 셋 다 한문을 사용하고 유교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음식을 넘어서 더 큰 문화적 공통성이 존재한다. 중국, 월남과는 더 가깝지만 일본과도 공동체로 묶인다. 유교,한문문화권은 1)중국 2)한국 월남 3)일본 순으로 구심점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공감대의 밀도가 낮아지는데 크게는 하나의 문화권이다. 음식에서도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유럽과 비교했을 때 거리가 한참 멀다. 문화적 공감대와 지리적 근접성은 유럽을 유럽공동체로 묶어 놓았다. 여러 나라이면서 한 나라처럼 움직인다. 비자없이 왕래하고 관세없이 무역하고 구분없이 유로를 사용한다. 우리는 일본과는 요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고, 중국과도 가까우면서도 이질감을 많이 느낀다. 월남이 오히려 공간적으로는 멀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문화공동체별로 묶여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것은 포스트모던, 근대후의 방향성이다. 유럽은 이미 시작하였는데, 우리는 아직 단추를 잘 못 꿰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는 거꾸로 한중일월 음식을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하나의 부페 집에서 함께 파는 경우가 많다. 남불에서 이를 목격하였다. 여기 <광동헌>에서는 부페 음식 항목에 일본 스시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김밥과 유사한 음식도 있었다.
헬싱키에서는 성업중인 한국음식점이 두어 군데 있다는데 못 가보았다.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곳에서는 한국음식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으로 한국음식 간판을 만났다. 그것도 중심지 쿠오피오 마켓광장에서. '김밥'이라는 선명한 간판, 귀엽게 디자인한 예쁜 간판을 만나 마술에 홀린 듯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아시아음식점이었다. 대표음식을 '김밥'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종업원에게 물으니 자신은 미얀마 사람이고 사장님이 한중일 음식을 다 만든다고 하였다. 가게 내부는 한국어만 빼고 일본어, 중국어가 찬란하였다. 사진의 음식점이 그곳이다. 여기서는 한중일 음식이 이렇게 같이 간다. 우리도 유럽처럼 정치를 넘어 한중일월이 같이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서울은 세계적으로 몇째 안 가는 큰 도시다. 그러나 서울만큼 음식에서 폐쇄적인 곳도 드물다. 뉴욕은 국제음식의 만물상이다. 파리도, 상해도, 도쿄도 비슷하다. 서울은 이제 시작인 거 같다. 우리 음식도 세계로 나가고, 세계음식도 우리 안에 들어와 음식의 국제화가 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류의 나라에서 말이다.
우리 여권은 세계적으로 좋은 여권이다. 노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인구비례로 해외 이민을 제일 많이 방출하는 나라다. 우리의 해외여행자도 세계적이다. 인천 공항은 10년 넘게 세계 1등이다.
음식으로도 안팎으로 세계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음식 세계화와 함께 아시아 음식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왕에 가지고 있는 음식문화의 친연성이 그 근거이자 가능성이다. 유럽에 와서 중국 음식을 먹으며 우리 음식을 다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