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예산여행) 수덕사의 비구니 ‘일엽’ 그리고 나혜석, 이응노…애증의 수덕사 이야기

[款山]

1896년 4월 28일 평남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목사 김용겸과 이마대 여사의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김원주(본명으로 일엽은 춘원이 필명으로 지어주었다)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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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살림 탓에 어머니마저 벌이를 나가고 나면 철도 들지 않은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달래 가며 저녁밥까지 책임져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이 개화한 어머니 덕분에 학교에 다녔으며 배우고 싶은 남다른 열의로 9세 때 구세학교에 들어갔고, 11세엔 진남포 삼숭보통여학교에 입학하여 정식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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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기독교 신앙심으로 살던 아버지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12세 때 어린 동생이 죽게 되자 큰 슬픔에 빠졌고, 연이어 세 동생과 어머니, 아버지를 차례로 잃어 17세 때에는 완전히 고아의 몸이 되고 말았다. 칠십이 넘은 외할머니의 뒷바라지로 1913년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1918년 3월 20일 이화전문(이화여대 전신)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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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의 수덕여관은 아니다. 고암의 부인 측에서 경매로 넘겨 지금은 미술관이 되어 있다. 초가집의 외형만 남았을 뿐 옛 자취는 찾아볼 수 없도록 수리하여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내부에는 茶室과 그림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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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희전문 교수로 있던 40대 돈 많은 독신남인 이노익과 결혼했으나 의족의 남편과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르러 남편은 미국, 일엽은 동경으로 가게 된다. 1920년 귀국하여 <신여성>을 창간하고 여성운동을 제창하여 여성 선구자의 이미지로 부각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글을 쓰던 것이 인연이 되어 정치부의 국기열 기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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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독일에서 공부한 백성욱을 사모하기 시작하다 그를 통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일엽은 1923년 9월 충남 예산 수덕사에 가서 만공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불교에 깊이 빠지게 되고, 1928년 33세의 나이에 송만공의 가르침을 받아 머리를 깎고 입산한다. 그 후 수도승의 길로 나가 1971년 1월 28일 입산한 지 43년 만인 76세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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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일엽과 나혜석의 인연 ‘전설처럼 회자’

나혜석(1896~1948)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여성해방론자였다. 그는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화를 배웠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폐허> 동인을 구성해 김억, 오상순, 염상섭, 김일엽 등과 교류했다. 3남매의 엄마였던 그는 파리에 머물면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자 훗날 친일 행각을 벌인 최린과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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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랑을 택하여 이혼하지만, 최린에게도 버림받으면서 화려했던 인생은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국, 나혜석은 일엽이 사미계를 받은 수덕사를 찾았다. 그러나 당시 수덕사의 조실 만공은 나혜석의 끈질긴 발심에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출가를 포기한 그는 행려병자처럼 세상을 떠돌다 1948년 서울시립병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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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고암 이응노가 문자 추상의 미학 다듬은 곳

수덕사 매표소에 다다라 개울 옆에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다. 그 초가집이 정감 있는 수덕여관이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바뀌었지만 70여 년 동안 시인 묵객이 드나들어 사랑받던 여관이었다. 그 중심에는 비구니 일엽과 화가 나혜석, 이응노가 있다. 일엽 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아들과 상봉한 곳도 이곳이었다. 일엽 스님이 자신을 일본에서 찾아온 아들을 매정하게 뿌리치자 나혜석은 모성에 굶주린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달랬던 곳이 이곳 수덕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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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를 결심한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5년 동안 머물렀다. 그때 그를 찾아온 사람이 고암 이응노다. 고암은 나혜석의 후배로 그녀의 그림과 바람처럼 살아온 삶을 동경했다. 훗날 고암이 본부인 박귀희를 버리고 21살 연하의 제자인 연인과 함께 파리로 훌쩍 떠났던 것도 나혜석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고암은 나혜석이 떠난 뒤 아예 수덕여관을 매입해 아내 박귀희에게 운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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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4년에 매입하여 1959년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고, 여류화가 나혜석은 이응노 화백이 이 여관을 매입하기 전부터 머물렀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는 박귀희가 살았고 여관도 운영하며 토속음식으로 손님을 맞았다. 필자가 이곳에 처음 들러 한정식을 주문하고 행랑채 방에서 밖으로 통하는 툇마루에 앉아 고암의 작품 문자 추상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동갑내기 신여성 김일엽과 나혜석 그리고 이응노

김일엽은 이화전문을 나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신여성이었다. 나혜석과 같이 자유분방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33세이던 1928년 입산한다. 이때 수덕사 견성암에서 머리 깎고 여승이 된 친구 일엽을 찾아온 서양화가 나혜석. 그녀도 수도승이 되려고 수덕사를 찾았지만 만공스님의 허락을 얻지 못하고 수덕여관에 수년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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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을 찾아 수덕여관에 왔던 고암은 그녀가 떠나자 수덕여관을 아예 매입해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파리로 떠난다. 다시 귀국한 고암은 65세가 되던 1969년 동백림사건에 휘말려 2년간 교도소 수감생활 하게 된다. 그때 부인 박귀희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남편의 모든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응노 화백은 또다시 파리로 떠나고 말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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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김일엽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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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혜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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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화백의 모습. 故 이응노 화백은 프랑스 파리 국립예술인 묘지에 묻혀 있으며, 국내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더 유명한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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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수덕여관이지만 지금은 모두 옛일이 되고 말았다. 비구니 일엽도, 어머니를 찾아 이곳을 찾아왔던 그이 아들(훗날 그도 중이 되었다고 한다)도, 나혜석도, 고암도, 박귀희도 모두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다만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고암이 이곳에서 몸을 추스를 때 바위에 새겨 놓은 문자 추상 암각화만이 시대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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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에서 만공이 머물던 정혜사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돌계단이다. 암자를 오르내리기 위해 조성한 길이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그 계단은 수덕사와 연을 맺은 비구니 일엽과 화가 나혜석, 이응노 등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할 수 있도록 사색의 공간으로 상념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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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예전 여행 사진을 첨부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