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엄마는 가끔 친구 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야말로 그 엄친딸은 나랑 동갑내기인데 영어 학원 강사이다. 그래서 영어 학원 출근 시각인 대략 오후까지 주로 친정 엄마와 광주 근교의 좋은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의 속셈은 엄마도 그렇게 다니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엄마의 속셈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나는 그저 외면할 뿐이다. 그나마 새로 맞은 며느리가 가끔씩 엄마의 네일아트를 해드리는 등 새 며느리노릇을 하려고는 하지만, 타지에 사는 며느리가 그렇게 살갑게 시어머니와의 데이트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또한 모처럼 시간이 나면, 당장 무릎 아프다고 걷기 힘들어할 엄마보다는 남편이나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은지라, 결국 엄마와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낸 적은 없다.
사실, 얼마전에 맞은 엄마의 칠순 때 벚꽃 필 무렵에는 일본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아빠랑만 떠나는 일본 여행은 싫다고 하셨다. 코로나 전에는 심심치 않게 아빠랑 해외여행은 다니셨는데, 이제는 자식이랑 다니고 싶다는 것이다. 이에 비용은 둘째치고, 마음 편히 여행 다닐 처지는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고, 광양에 매화가 만발했다는 소문을 들은 엄마는 다시금 "에고 콧바람 쐬고 싶다"라는 소리를 꺼내신다. 얼마전 순천대 주변에 만발한 홍매화 이야기를 꺼냈다가 구경하러 오시겠다는 소리에 일부러 한 시간 넘게 달려 볼 정도는 아니라며 얼른 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 적이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때에는 내가 엄마랑 다니고 싶어도 같이 못다닐 날이 올 수도 있을텐데, 자꾸 나는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늘 다음으로 미루는지 모르겠다.
(이런 글을 쓰게 되면, 그래도 글의 마지막에는 '교훈적으로' 이번주에는 엄마와의 봄나들이를 가야겠다라고 써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더 한심스럽다.)
첫댓글 아휴..
에궁~~~ 우슬초님은 따님이라도 있지만 저는 아들만 둘이라서 나중에 할머니 되면 남편이랑 다녀야 할까요..
내용이 웃프네요!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게 좋은 글이지, '그래야만 하는 나'를 보이는 것은 상투적인 글이 되는 것이겠지요. ^^ 삶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녀 컴플렉스에 얽매여 살면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면 됩니다.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 되는 거지요. 다만 부모님이 움직이실 수 없는 시간이 언젠가는 닥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게 좋겠어요. ^^
솔직한 글쓰기 좋네요.^^
한심하지 않습니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