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미륵님 말굴레
1) 미륵님의 말굴레
2) 전수치병(傳授治病)
3) 물약자효(勿藥自效)와 심성(心性)
1) 미륵님의 말굴레
아내(김옥자)가 발병하여 나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게된 것은
나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굴레를 씌워 놓은 것이다.
싫든 좋든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게 한것을 나는 굴레라고 말한다.
미륵이라는 한자의 뜻이, 곧 말굴레륵(勒)이기 때문이다.
이 말굴레는 하느님의 굴레요,
부처님의 굴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인지 나는 그후부터, 나 개인이 욕망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미륵님의 뜻하는 일, 즉 종교에 관한 일,
다시말해 공익 생활, 남모르게 타인을 위한 일에 힘쓰면,
나 자신도 편안하고 집안 권식도 편안 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발병하기 이전에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나,
또한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한번도 말 한적이 없었고,
그녀 또한 우리 고향에 가본적도 없었으며,
종교에는 무관심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혀 문외한 이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발작하여 지꺼리는 소리가, ‘조상의 뜻을 배반한다’느니,
또는 ‘수십년 적공을 허물어서는 안된다’느니,
‘오만년 극락의 운을 모른다’느니,
「왕대 밭에 왕대 난다. 콩 심은데 콩 난다」는 등,
속담을 지꺼려내다가
또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매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드라」는 등, 옛 시를 읊기도 하였다.
그녀는 시(詩)를 읊은 사실도 없고, 속담도 평소에 외우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한 사실들을 지금에 와서 곰곰히 생각하면,
나에게 미륵님이 말굴레를 씌워 놓고,
마부에게 그 고삐를 주어 말을 몰고가라 하였던 것이다.
길들지 않는 말을 길드리기 위해 마부가 “이랴 저랴” 하듯이,
나에게 귀를 뚫어 주는 소리였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였구나 하고 재삼느끼며 자위한다.
어떤 사람은 종교인이 되려고 자진하여 신학교를 가거나, 입산 수도를 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증산도를 하지않으면 안되게 되였는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것이 나에게 씌워진 굴레의 힘이였다.
좋게 말한다면,
미륵님께서 나를 후천에 잡아 쓰기 위하여 굴레를 씌워 길들였다고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운명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안 내력으로 보아,
조상 선령 신명께서 좋은 길로 인도 하였다는 생각으로
순응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것도 타당하다 할 것이다.
증산께서 말씀하신 신명 세계와 인간세계의 관계에서 본 다면,
우연한 일이 아님을 혼자서도 생각이 자주 드는때가 있다.
하여간 종교에서 말하는 득도라 할까, 깨달음이라할 까,
1968년(戊申) 2月에 北岳山에서의 증산과의 자문자답에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에 수많은 난치병자를 약 안쓰고
그야말로 물약자효(勿藥自效)의 법방으로 치유 하였음을
신명의 조화라는 말 표현 외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다. 형제가 육남매이며,
그의 자녀와 직계 손자까지 합하면 약 40명이나 된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병이 생기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 마다 그 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여 보면
사람의 잘못된 처사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 때면 잘못된 것을 반성 회개하게하고,
아픈사람이나 아프게 한 또는 다치게한 심리적 잘못이나 생각을 올바르게 깨닫게 하면,
곧 그자리에서 안정제나 진통제 주사의 효과보다
통증이나 병의 아픈 증세가 빠르게 즉시 효과가 나타나며 병이 낫게 되었던 것이다.
이럴때 마다, 나는 가족들에게 「병은 귀가 있느니라」하며,
그 신비한 신명조화, 즉 미륵님의 조화를 설명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은 어떠한 급증이나 만성병에도
약국이나 병원을 이용한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은 병이 나면 약국이나 병원 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잘못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회개와 반성을 하는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각자의 잘못은 물론 부모의 잘못으로 자녀가 아플수도 있고,
자녀의 잘못으로 부모가 아플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족중 한 사람이 아프면 전가족이 모여 심판한다.
그것으로 약과 주사를 대신한다.
온가족이 하루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마음의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정의 즉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고,
정심 정의로 행하였는가에 대한 반성과 회개한 결과가 곧 심판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부부간에 나 자신이 외박을 하기 위하여
회사의 일로 출장을 간다하고 아내를 속였다면,
즉시 아내가 아프거나 자녀가 아프거나 한다.
이 병은 우리 가정에서는 소위 약발이 받지 않는다.
이 병을 고치는데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가족앞에 속인것을 회개하고 반성하며
아내가 용서와 사랑의 이해가 있어야 완쾌된다.
또한 반대로 아내가 나 모르게 돈을 따로 관리한다던가,
모르게 감추는 일이 있어도 앞서 말한바와 같다.
다시 말해, 우리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봄에는 만물이 희생하고,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얇은 옷을 입고 시원한 곳을 찾아야 하고,
가을에는 오곡이나 만물이 결실하며,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옷을 두툼하게 입고 사는 것은
오로지 자연에 순종함일 것이다.
이와 같이 미륵님의 굴레가 씌워진 우리 가족은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옛 말과 같이
하늘(미륵님)에다 명을 맡겨 놓고,
약 20년간 회개와 반성 및 정도(正道)의 실천 실습으로 心身을 안전하게 길들여 관리하며,
가족을 통솔하며 생활화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숭봉하고 있는 미륵님의 진리요 교리이며 사명이요,
종도자로서의 도리라」 생각한다.
증산께서는 후천 선(仙)세계를 개척하신다고 하시고,
선천에 악법을 개혁하신다 하셨는데,
선천의 악법, 다시 말해, 법당을 크게 세운다던가,
교회당을 높이 세워 감언이설하여 혹세무민하고
구태이연(舊態依然)한 방법을 모방하여 신선세계 개척이 가능할 것인지,
법당이나 교회당이 없어서 중생을 구원 못하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종도자들은 천주님, 하늘님, 천사님 등, 높은 호칭을 붙이는 것이
마치 가장 존경하고 올바르게 신봉하는 공신자인것처럼 착각 하는데,
과연 그의 진리와 심법을 얼마나 실천하며, 생활화하여
타인에게 심법을 전수 하였는가를
냉철하게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초창기의 이야기다. 사업하던 것도 걷어치우고 집에 들어 앉게되니,
자연적으로 생활이 궁할 수 밖에 없었다.
집은 단칸 셋집이고, 식구는 많고 먹고사는 것이 다급할 지경이였다.
이쯤되니, 머리속에 미륵님 생각보다 돈 버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말은 못하고, 또 인내하고 인내하여 굶다싶이 하면서,
복을 달라는 고축을 한것이 아니라, 벌을 달라 하였다.
그 이유는 정도(正道)가 좌인지 아닌지 분간치 못한 굴레 쓴,
길드려지지 않는 말의 기분으로,
다시 말해, 내멋대로 가다가는 매를 호되게 맞을 터이니,
가만히 서 있으면서 좌우의 방향 지시의 채찍을 기다리는 뜻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미륵님은 나를 길들이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이제는 미륵님이 그만 고생하고 돈을 벌로 나가란다”고 하였다.
속으로 걱정이 되면서도 “무엇을 해서 돈을 벌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그곳에 가면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박세열(朴世烈)씨다.
이 사람은 두주일전에 나를 친구들과 같이 찾아왔다 간 사실이 있다.
박세열씨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과거 사업할때 친히 사귀었던 분이다.
한동안 서로 헤어져 수년동안을 지났는데,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
왜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었나 하면,
그당시 미륵님의 굴레에 씌워져 강한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무신(戊申 1968)년 5월에 현재 봉안하고 있는 미륵불상이
나의 조부님(장기동)이 전주 동곡에서 계축(癸丑 1913)년에 제작 봉안하다
대를 이어 부친(장보만)이 봉안한 불상이다.
이 불상제작 연고나 유래의 설명은 생략하고,
나는 종교에는 관심이 없고 하여, 부친이 별세하신 후
종교에 관한 서적 유물들은 불태우고,
불상은 부친 산소아래 제절 밑에다 매장 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아는 사실이지만 전연 몰랐던 아내가 발작이 나서 지껄여대기를,
그 불상 이야기를 하며, “빨리가서 모셔오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나의 그때 형편에는 시내 버스값도 없을 때였다.
막막한 사정이여서 전남 순천까지 걸어 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할거냐고 하니 아내는 펄펄 뛰면서,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 살았던 사람이 아는 사람 한사람도 없느냐고 다구친다.
그때 나의 형편에는 그 좋은 친구, 가까왔던 일가 친척,
나의 형편을 보고 행여나 찾아올까 걱정을 하는 터였다.
왜냐하면, 이웃집 아주머니가 딱하여 밥이라도 먹으라고 갖다주면,
아내는 ‘저 여자가 우리 남편을 좋아해서 우리집을 자꾸 온다’고
대문 밖에서 동내 사람들아 하고 외쳐대며,
또 내친구 가 오나 친적이 찾아와도, 마구 욕을 퍼부어 대어,
누구도 나를 상대해준 사람이 없었다.
이와같이 나의 주변의 사람들 출입과,
모든 사람의 접근을 일체 차단해놓고 단독 훈련과 시련 중이었기 때문이다.
펄펄뛰면서 가지 않으면, 내가 간다며 산천이고 시내고 옷을 벗어던지고 뛰어나가니,
붙들어 잡고 사정을 하여,
“내가 여비를 구해 올터이니 참아 달라” 애원하면, 발작이 수그러진다.
그리하여 할수없이 굴레쓴 몸이라 채찍을 안맞기 위하여 거지중의 거지의 옷차림으로,
시내를 도보로 정처 없이 나와, 이거리 저거리를 다니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몰골이나 거동을 보고는,
나를 아는 사람으로 반기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고,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내가 지나가면 그냥 지나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기드문 흉한 거지 형태였다.
해가 거의 질무렵에 시청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앞에서 말한 박세열씨를 발견,
피할려고 하였으나 피할 수 없이 외나무다리에서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수년 전 장영주이지만, 또한 보기 드문 거지 형상이지만, 얼굴의 용모가 변할수는 없다.
박세열씨도 험상궂은 거지의 형태를 살피다가,
장영주인것을 확인한 모양이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게 누구야 장형 아니여” 하길레, “나는 박선생”하고, 눈물이 났다.
이 험상궂은 거지를 아는체 해주는 친구가
온종일 기진맥진타가 구세주를 만났으니 말이다.
박선생은 곧 나의 손을 붙들고 중국집 방으로 안내했다.
단둘이 앉아서 그동안의 나의 환경과 사정을 설명하였더니,
음식도 사주고 자기 지갑을 털어 그 당시 3천원을 주면서,
“나도 사업에 망해 실업자로 있다”하며
“불상을 모셔다 열심히 기도하여 아내를 구하라” 하며
위로의 뜻을 표하는 바람에, 용기백배하여 청담동 집으로 귀가하였다.
그후 아내는 “빨리 고향에 가서 미륵불상을 모시고 오라”고 하여,
그길로 고향에 가니 수년만에 고향에 온 몰골이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우리가족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도 놀라는 모양이었다.
그뿐아니라, 아내는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하니,
“고향에 가면 어머님이 무명베를 짜놓은 것이 있을 터이니,
그 베로 도포를 만들어 입고오라”고 하였다.
역시 도착하여 어머니께 문의하였더니,
어머님이 젊었을때 손수 짜두신 베가 한필이 있다하여, 또한번 놀랐다.
그래서 도포는 어머님이 손수 제작하여 주셨으나
불상은 전주 동곡 외가댁 (외조부 김자현)에서 모셔 같다하여, 깜짝놀라 연유를 물었더니,
골동품 장사가 와서, 우리 형편이 곤란한 것을 알고,
“옛날에 모시고 있던 불상을 주면, 쌀 한가마를 준다고 팔라”하여,
어머니께서 묘밑에 우리 아들이 매장했다 하였더니,
그후 부친 묘를 성묘차가보니, 이곳 저곳을 파헤쳐 놓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산소의 보존상,
불상을 발굴하여 굶어죽더라도 조상대의 유물 일뿐만 아니라,
불상을 팔수는 없다고 결심,
증산도를 계속하고 계시는 외삼촌 김태진(金泰振, 김자현의 장자)에게 상의 하였더니,
옛날 불상 제작설은 있었으나, 불상이 순천에 가 있는지 몰랐다며,
외삼촌께서 봉안 하겠다하여, 전주 동곡에 모셔갔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을 모시고 다음날 전주 동곡으로 달려 갔다.
외가에 갔더니, 외삼촌(김태진)은 그곳 도인들과 그동안 수차 화합하여,
‘그 불상을 속에다 넣어 다시 대 미륵불상을 세우기로 계획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였다.
그때 나의 사정과 그동안의 설명을 하니,
외삼촌께서는
“자네집에서 대대로 봉안한 부처님인데,
아무도 봉안할 사람이 없어 매장하였다기에,
내가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 보았으나,
주인은 자네이니 모셔가라“고 승락하시므로,
어머님이 손수 짠 베로 손수 제작한 도포를 입고 불전에 분향 참배하고,
부처님을 모시고 일주일 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보니,
아내는 일주일 동안 아무런 일이 없이 집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후 잘 다녀왔다고 여비를 준 박세열씨를 찾아가 인사하고,
저의 집에 한번 들리라고 하였더니
친구 두사람과 뚝섬 유원지에 피서차 놀러 왔다가 우리 집을 찾아 위로차 왔던 것이다.
박세열씨는 수년전 자기와 거래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보니 너무 어이 없었으나,
기왕에 온것이니 나의 체면에 그 초라한 방이지만,
잠시 들자고 권하니 서슴없이 세 사람이 좌정하였다.
그때부터 증산도와 우리집과, 선조님들 간의 인연과,
그동안 나의 형편 등, 사실을 설명하던 중,
박세열씨가 좌측 팔을 위아래로 올렸다 좌우로 돌렸다 하더니,
잠시 나의 설명을 멈추게 한뒤, 자기의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는 것이였다.
그의 말인즉, 자기가 중풍으로 좌측 팔을 제대로 못 쓴지가 일년반이 되였는데,
그간 옷도 마음대로 못입고, 상하로 올리지도 못하고 내려뜨리고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처럼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설명을 듣 던중 갑자기 팔과 어깨가 어름대는 것 같이 시원해 오기에 이상하다 하여 힘을 주어 올려보고 좌우로 돌려보니 정상 적인 팔로 완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셔놓은 미륵부처님의 상 앞에 가서 참배를 드리겠다는 것이엇다.
그래서 나는 박선생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가장 어려울 때 도와 주셔서,
미륵님께서 물약자효의 법으로 치료해 주신 것 이라고 설명하였더니,
같이 온 친구 한사람은 위장병이 있고,
한 사람은 치질이 있다고 하며 이병도 고쳐 주시요 하길래,
우물에가서 냉수를 떠다 주면서, 이것이 약이니,
미륵님께 심고(心)하고, 마시라고 권했더니,
그분들이 덥기도 하지만 남기지도 않고 단숨에 마시었다.
그후 세사람이 다 완쾌되였다는 소식을 들어던 것이다.
이와같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
박세열씨를 찾아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그 사람을 찾아 가라는 것이 아내의 얘기였다.
할수 없이 정말로 돈벌기 위한 것은 아닌줄 알고 사양 했지만,
왜 시키는대로 하지않느냐고 빨리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여,
부처님도 안전한 곳에 좌정케 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며,
빨리 부처님을 모시고 나가라고 성화였다.
그리하여 시키는대로 미륵부처님상을 모시고 동생을 데리고 박세열씨를 찾아갔다.
과연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하며, 다방에 기다리게 한후, 잠시후 택시로 안내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충무로 5가 중부시장 부근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안내한 집은 이층 양옥인데, 주인은 여자 혼자였고,
박세열씨는 평안도 평양이 고향인데 그 고향분이라는 것이였다.
이미 박세열씨와 친구 세사람의 병이 완쾌된 후인지라,
선전은 다 되어있어서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충 방 한칸에 미륵부처님상을 모셔놓으라고 큰 자개상을 준비해 주셨고,
다 준비한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석양이 되였는데
주인께서는 벌써 저녁을 지어 식사를 권하였다.
그후 저녁 식사를 끝난후, 이미 연락을 해놓았던 그집 주인 다시말해 박세열씨 고향 분들이였다.
나이가 거의 50대 이상 부인네들이였는데,
속된 말로 생활에는 구애받지 않는 분들이였다.
약 10여명이 모여들어 저에게 정중히 주인의 소개로 인사를 교환한뒤,
선생님의 고명한 소식은 다 알고 있으니
저희들이 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좋은 약을 주셔서 치유케 해주시요라고 하며, 여자분이 말을 꺼냈다.
이때 주인여자는 다시 나에 대한 보충 설명을 시작했다.
이 선생님은 이미 입산 수도를 끝내고,
속세에 내려 오셔서 중생을 구제하며 다니신 몸이라,
집도 없고 또한 모든 음식이나 부작을 가지고,
자유 자재로 병을 고치시는 분이며,
선생님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 잡수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박세열씨도 술을 먹고 중풍이 나았다고 재차 설명을 열심히 했다.
이때 나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병을 고치는데는 내 시키는대로 진심으로 실천하면 병이 낫는다고 설명하고,
각자의 병세를 문 의했다.
두통, 빈혈, 위장병,해소명, 신경통 등 가지가지의 병의 설명을 듣고,
옛말에 「병은 하나인데 약은 천가지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반대로 「병은 천가지인데, 약은 한가지」 라고 설명하고,
맥주와 통닭을 사오라시켜,
그 맥주와 통닭을 방가운데 놓고, 한사람 한사람 맥주를 권하며,
미륵님께 약이 되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심고하며 마시게 했다.
역시 안주 통닭도 같은 방법으로 먹게 한 후 다 귀가토록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제 방에 들어와 고하기를,
어제밤에 다녀간 분들이 밤새 다 나았다며, 싱글 벙글하며,
조금 있으면 인사차 방문하다는 보고를 한뒤, 조반 준비에 분주하였다.
조반후 하나둘, 어제밤에 왔던 분들이 찾아왔다.
어제와는 달리 내방에 들어서는 행동자체가 엄숙하고 공손하게 들어와 정중히 인사한 후,
미륵불상을 모셔놓은 상위에 돈 봉투를 놓은 것이였다.
그게 무어냐고 물으니, 불전이라며,
“저의 성의로 정표한다”라고 하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여보세요 부처님이 언제 돈 가져오라 했오.
또 부처님이 돈 쓰는 것 봤오, 그런짓들 하지마시요.“
퉁명스럽게 말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선생님 부탁입니다. 이분들의 성의이오니 받어주시고, 부처님은 돈이 필요 없지만,
선생님은 거마비라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며 받기를 권고하였다.
그 때 주인 보고 “여보세요, 내 잠잔 숙박료와 식대가 얼마요” 하니,
“그런뜻이 아닙니다. 저도 위장병이 나아 감사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을 당치도 않읍니다”라고 하며, 질색을 하였다.
그래도 집에서는 돈벌러 가라해서 나온내가,
돈을 사양하며 이박삼일동안 수십명의 병을 치유케한 후,
마지막날 치료한 환자는 하나도 효과가 나지를 않아,
이상히 여기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미친 아내는 혼자 두고, 아무리 돈을 사양하고 있지만,
나에게 굴레를 씌워 놓고 마부역을 맡은 아내를 버리고 방황한다는 것을 느끼고,
즉시 챙겨 미륵님을 모시고 청담동으로 떠났다.
“필요없다” 하였지만 정표라고 준 돈을
주인아주머니께서 챙겨주셔서 세여보니 삼십삼만삼천원이였다.
뚝섬 나루터에서 한강을 건너 청담동 앞 강변에 도착하니,
동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아내는 벌거벗고 산으로 들로 뛰며, 온 동리가 소란하다’는 것이 있다.
달려가보니 아내는 팬디만 입고 진흙밭에 굴러, 사람 몰골도 아니고
동리 사람들에게 몽동이를 맞아 어깨가 부러져 있고,
사경에서 헤매고 있었다.
갓난애는 아들 없는 집에서 기른다고 데려갔고
주인집에서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쯤 되였을때 나는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던가!
아무리 생활이 궁해도, 돈버리 생각을 완전이 머리 속에서 없애고,
오직 당시 나의 나이 39 세였기에 39년간 오염된 심신을 세척하는 훈련을 계속 받으며,
미륵님의 참된 뜻을 실천하는데 주력 할 것을 다짐 하고,
아내를 붙들고 집으로 가자고하니, 순순히 따라오며 제 정신이 들었다.
대문을 두들기며 주인에게 소리쳤더니 대문을 열어주어 막 대문안에 들어서니,
그 집 주인 아주머니가 정신이 착란되어 펄펄뛰며 헛소리를 하는 것이였다.
아내는 세수하고 옷을 가라입고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방을 살펴보니, 세간살이도 별로 없지만,
다 내다 버렸고 엉망이였다.
그때 주인 아주머니의 착란 상태가 점 점 심해갔다.
할 수 없이 전식구가 붙들고 온통 소란을 피우고 야단이다.
그래도 타인의 난치병을 치유하였기에, 청 수 한 그릇을 떠오라 한뒤,
그 물을 입에 먹음고, 발작한 그녀의 얼굴에 품어주었더니,
곧 제정신이 들었다.
그집 식구들은 신기한 듯이 저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가족들이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였다.
그때 아내는 “왜 그 미친년을 고쳐주느냐고 하며
너도 미쳐보면 내맘 알것이라”고 외쳐대는 것이였다.
그 이유는 내가 없는 동안,
집주인 여자가 아내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시비가 되었는데,
아내를 당할 수 없는 것을 본 집주인 남자가 몽둥이로 마구 사정없이 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에 굴하지않고 결사적으로 반항하니,
다 집을 비우고 들로 나가 버리니,
그 사람들과 결투하겠다고 찾아다니는 동안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타인이 데려다 기른다고 데려가 버리고,
동네에는 소문이 미친 여자를 버리고
두 형제가 고향으로 도망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다시 어린애도 찾아왔으며,
39년간 뛰놀던 야생마를 갑자기 굴레를 씌워 강한 훈련을 시작하고
초창기에는 마부도 고생, 또 길들지 않는 야생마도 고생 하였으나,
굴레를 쐰지 벌써 20년동안 훈련을 받아왔으니
이제는 심한 채찍 을 맞지않아도 숙달된 지혜로 정도(正道)를 걸어가니,
마부도 고생을 덜하며, 이제는 길들여진 말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잠시 방심하면 가차없이 강한 채찍을 맞는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법을 모를때는 용서를 받을 수가 있어도,
법을 다스린자가 법을 위반하면 용서 받을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륵님의 말굴레를 쓴것은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가장 올바로 가는 길은 미륵님의 말굴 레를 얻어쓰고 강한 훈련을하며,
시련과 실천에 노력함이 참된 종교인, 도는 증산도인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2) 전수치병(傳授治病)
거울은 똑같은 거울인데, 먼지가 끼이거나 더렵혀진 거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이 거울과 같아서,
욕심이나 사심이 끼이면 먼지 덮인 거울과 같아
사물을 올 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게된다.
깨끗한 거울은 투영이 잘 되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똑바로 거울속에 투영된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같이 개끗한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똑바로 투영되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잘 읽을수 있게 된다.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것이 바로 이와같은 이치이며,
불가(佛家)에서는 심전개발(心田開發)을 첫째로 삼고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은 모든것을 잘 투영하기 때문에,
대하는 사물을 밝게 판단하고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영통(靈通)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물약자효의 심법(法)을 시험해 보았다.
현재 한국미륵사상 연구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장영준에게 전수하여 치병을 시켜 보았다.
그당시 영준은 20세 초기로 나이 어렸을뿐 아니라,
사회경험도 없는 순진한 편으로,
그동안 나와 더불어 같이 생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닦고 미륵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사상 보다는,
형제의 인연으로 형님의 고생이 너무 심하니 딱하고 안타깝기 때문에
진정한 마음으로 나의 수종을 열심이 들어,
도와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때이다.
어느날, 나는 수일간 외출을 할려고 하면서,
영준에게 “내가 없는동안 혹시 환자가 찾아오거든
네가 나를 대신해서 그들에게 잘 일러주어 치병토록 하라”고 하니,
영준은 “제가 어떤 방법으로 환자치병을 합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이때 나는 “방법은 네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치병방법은 “그때 그때 생각이 날거야” 하고, 나는 집을 떠났다.
환자를 직접 대해 본적도 없고,
또한 회장님처럼 영통하지도 못한 사람이
환자치병을 어떻게 할것인가하고, 영준을 무척 걱정하였다.
그후 수시간 만에 갑자기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들어닥쳤다.
나를 대신하여 영준은 그들을 방에 모셔 앉히고,
우선 인사말을 교환하게 되였다.
그러나 찾아온 환자들은 말하기를,
“이곳에 오면 환자의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것을 다 알고,
도사님 말 한마디로 병을 고친다고 하던데,
오늘은 도사님이 안계시는가” 하고 영준에게 물었다.
그때 영준은, “내가 병을 고친다”고 말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시냐고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들은 입을모아, 도사님이 다 아시고 고친다고 하던데,
어디가 아파서 온것 같으냐고 다시 반문 하였다.
영준은 속으로 겁이나고 당황하고 이었다.
그때 마침 나의 아내가 어디선가 불러서 들인것 처럼
등에 애를 업고 허술한 옷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때 당황하고 있던 영준은, “형수 어디갔다가 오시요” 하고 인사를 했으나,
인사말에 대꾸도 없이 환자중 제일 의심하고 있는 한 사람을 골라,
당신은 병들었으면 병 고칠 처방이나 받을 일이지,
누구를 의심하고 있느냐고 지적하며,
당신은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아프시지요 하며 영준을 가리키며,
“저분이 도사님이시다. 당신들의 행위가 하도 어이없어 바라보고 있다”고 하며,
“병 고치기 싫거든 돌아가라”고 한 마디 하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후 방안에 있던 환자들은 놀란 얼굴을 하며 안색이 변하였다.
그때 바로 아내에게 지적당한 환자가 입을 열어
“도사님 어떻게 하면, 저의 병을 고칠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비로소 영준은 당황한 마음을 안정하고,
“나에게 아픈곳을 다 말하시요.
만약 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완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환자들은 순서대로 자기병세에 대하여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영준에게 어떠한 힘이라 할까,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뒤에,
영준은 조용히 메모지와 같은 종이 쪽지를 준비하여,
그 쪽지에다 회장님이 부(符) 그리던 생각이 나서,
부는 그리지 못 하니 되는대로 글자를 썼다.
하늘천자(天)를 쓰기도 하고, 바를정자(正字)를 쓰기도 하고,
마음심자도(心) 쓰기도 하여, 그 종이 쪽지를 한데 모아 섞어서 엎어놓고,
환자들 보고, 이 종이를 마음 가는대로 한장씩 집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불에 태워 그 재(灰)를 냉수에 타서 마시라”고 일러 주었다.
그야말로 어이없는 치료방법이었다.
그러나 치료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작값 달라는 것도 아니니,
그들 환자들은 시키는대로 종이 한장씩 마음대로 집어들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때 영준은 돌아가는 환자들에게 말 하기를,
“이시간 이후 부터는 조석으로 냉수 목욕을 하고,
음식을 먹을때 마다, 미륵부처님이 음식이 약이되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심고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말하며,
그렇게 열심히 실천하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실천해보고 병이 나으면 다시 올 필요 없고
만약 병이 낫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하였다.
허술하기 보다 어린애 착란같은 처방이지만,
사실은 어려운 처방인 것이다.
환자가 스스로 병을 고치겠다는 결심과 노력이 곧 약이 되기때문이다.
그후 병이 덜 낫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환자 자신의 병의 증세를 설명할때
위장병 증세에 대한 설명 만 하고, 신경통의 증세는 말하지 않았던 환자였다.
증세 설명한 위장병은 다 났고, 증세 설명을 하지않았던 신경통은 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환자는 다시 신경통 증세 설명을 영준에게 고하고 돌아갔더니 완치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치병 할때는 말을 안해도 다 알고 병을 치병한다는 소문이,
영준이가 전수치병한 후로는 병 증세를 말하지 않으면 치병이 되지 않는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그의 이치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반성과 회개하라는 원리인 것이다.
그때부터 수일간, 이와같이 매일 찾아온 환자를 계속하여 치병하던 중,
어느날 환자들 틈에 젊은 두사람이 환자를 가장하여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치병을 원하는 환자가 아니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찰관이었다.
환자를 가장하여 영준이가 하는 일거일동을 지켜본바,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장난처럼 그들에게는 보였을 것이다.
약도 없고, 주사도 없고, 그리고 진찰도 없이 환자들의 말만듣고 있다가
종이 쪽지에 글자를 써서주고 병을 고친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도 없거니와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였으리라.
다른 환자들의 병 증세를 다 듣고,
그 두 젊은 사람에게 병 증세를 물으니,
타인이 들으면 부끄러운 병이니,
다들 가신 다음에 말하겠다고 사양하다가 다들 보낸뒤
두 사람 보고 말하라 하니, 두사람은 어디가 어픈것 같으냐고 반문한 것 이었다.
이때 영준은 자기도 모르는 순간,
“당신들은 병을 고치로 온 사람을이 아니요” 했다.
그랬더니 그 두 사람은 “무엇하러 온사람 같으냐”고, 또 반문했다.
그때 영준은, “그이상 나는 모르니 당신들이 여기온 용무를 사실대로 말하시요” 하였다.
그들은 그때서야 신분을 제시하고 경찰관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영준에게 “의료법 위반이라고, 동행하여 무엇을 좀 조사하겠다”고 하였다.
이 곳에서 경찰관이 온줄알면, 당신 체면에 관한 문제이니,
아무말 하지 말고 조용히 친구가 와서 놀러간 것처럼 동행하기를 권했다.
그리하여 영준은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 아무 주저없이 따라 나섰다.
그때가 바로 1968년 겨울의 추운 날씨였다.
그당시 내가 살던 곳은 성수동(뚝섬) 건너 청담동 봉은사 입구였다.
지금은 강남구에 속했으나, 그당시는 성동구에 속해 있었으며, 시골 마을이였다.
시골 오막사리 집의 적은 단칸방에 집거 하던때라,
경찰서 갈려면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야 되었다.
한강을 건너 뚝섬으로 갈려고 강변 나룻터에서 건너편에서 오는 나룻배를 기다리던중,
그때 나룻배에서 내린 고양군 능곡에서 사는 박노인이 황급히 달려와
영준을 붙잡고 하는말이 작은 도사님이 추위에 어디를 가시는가 하면서
같이 서 있는 두 사람 사복경찰관을 쳐다보더니 하는말이
“이사람들이 나쁜 마음으로 돈 먹으려고 죄없는 사람을 연행하고 있다” 하면서,
그 박노인은 호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내어
두 경찰관의 얼굴에다 뿌리면서 돈이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그 두사람은 박노인에게 무슨 연고냐고 물었다.
박노인은 대답하기를,
자기는 몇일전에 자기의 외아들이 중병으로 사경에 헤매고 있었는데,
이집 장도사님이 고쳐주었다. 그래서 너무나 고마워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어 자기집에서 기르던 송아지를 오늘 시장에가서 팔아 그 돈으로 조금이나마 사은 할까하고 장도사님 집을 찾아 가는 길인데, 이곳에서 도사님 동생 장영준과 당신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돈은 돈 먹으려고 마음먹고 있는 당신들에게 주라는 것으로 생각이 나서,
이렇게 돈을 뿌린다고 하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벌벌떨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참으로 괴상한 일들이 아닐수 없었다.
그때 영준은 앞장서서 그 박노인에게,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타일렀던 것이다.
박노인은
“나도 모르겠오, 미륵님이 그렇게 알려 주셔서 알았지.
내가 내맘대로 한 일이 아니라”고 하며 돌아갔다.
그날따라 날씨는 몹시 추웠다.
한강을 건너오자 경찰관들은 영준을 데리고 여관방에 가서 몸을 좀 녹이자고 하면서,
한 여관으로 들게되었다.
그리고 여관방에 들어가자 그 들은 조서용지를 내놓으면서,
영준에게 환자들의 병을 약물없이 고쳐도 의료행위는 행위이며,
허가가 없으니 현행법에 저촉된다고 하며,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면서, 조사하려고 펜을 들고 심문조서를 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펜을 들고 신문 하려고 하자,
경찰관의 몸과 손이 갑자기 사시나 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하여,
글씨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이상한데 하면서,
손을 부비고 주무르고 하였으나 글을쓰려고 하면, 또다시 떨리기 시작 하였다.
그리하여 같이 온 다른 동료에게 조사할 것을 인계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또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은 의아 스러운 표정과, 초조한 표정으로 변하여 영준에게 말하기 를,
“우리들에게 도술을 부리는거요,
그러지말고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며, 빨리 끝내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때 영준은 말하기를,
“내가 말 하기전에 당신네들이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빨리 끝날것이 아니냐”고 거듭 말하였다.
그러자 그 들은 실토를 하였다.
“사실은 성수동 일대의 약국과 청담동 부근의 기독교인들이,
사교(邪敎)하는 자가 도사를 자처하며,
약 없이 병고친다고 헛소문이 났으니,
진상조사를 하여 달라는 고발이 있어 경찰의 직무상 어찌할 수 없이
일단 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당신집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직접 치병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바,
그 방법에 대하여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가지만,
속임수나 사술을 쓰는 것도 없었고,
또 보수를 받는 위법행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 되었으나,
일단 조사한 보고는 해야 되겠기에, 조서작성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영준은, “그렇다면 사실과 전혀 다르고 가보니
정신착란 환자가 있드라고, 구두보고로서 끝내시요“ 하며,
여관 종업원을 불러 냉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한 후 그들에게 마시게 하였드니,
그들의 떨리는 몸과 손이 멈추어지는 지라,
더욱 놀란 사람은 그 조서 신문하려던 그들이었다.
그때 그들은 전화 수화기를 들고 어디인지 다이알을 돌리더니,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전화상으로 당신들은 경찰관을 이 추위에 고생시키느냐고 하며
사실과 전혀 다르고,
그 헛소문을 사실인양 고발한 당신들이 더 나쁜 사람 돌이라고 호통을 치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난 후, “그들은 아직 젊은 사람이 그만 두라고 하면서
당신 형님 장도사님을 꼭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시간늦여서 배가 고프니,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자 하며,
식당으로가 식사를 한뒤, 식대도 그들이 지불하며 하는 말이,
앞으로 이런 소동이 없이 법에 어긋남이 없이 잘 하시라”며,
이 세상에는 좋은 일을해도 욕을 먹는 일이 많이 있으니
각별히 주의 하라고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나는 늦게 집에 돌아온 영준으로 부터 듣게 되었는데
미륵님의 기운은 전류가 흐르듯이, 막히지 않으면
소리없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재삼 느낀 것이다.
근래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기독교를 신봉하는 60대에 가까운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사연인즉, 두 내외가 모두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남자는 위장관계의 병이고, 여자는 속병으로 병명도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여러 병원을 찾아가 보아도 신통한 효과가 없었고,
좋다는 한약을 아무리 복용해도 별로 효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수 기도도 여러번 해보았으나, 도무지 효력은 없고,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만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중 몇일전 전서울농대 교수인 옥종화 교수께서
장회장 말씀을 하길래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병은 스스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며,
또한 병을 고친다는 것도 스스로가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마음 쓰는거나,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일체 생활이
천도(天道) 즉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사실이 있으면,
반드시 정신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고장이 생기는 법이니,
이것을 병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누구를 미워하거나, 또는 부정한 일을 마음 먹거나, 행동하였을 때,
반드시 자신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그 사람 주의의 신명들은 그러한 부정과 불의의 소행을 잘 알고 있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명의 훈계나 경고가
인간에게는 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그 병에는 물리적인 치료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이러한 병에는 그 자신이 스스로 심성(心性)을 바로잡고,
반성과 회계로서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마음과, 바른 행동으로,
천도 (天道),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는 것이 약이되고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음을 닦는 증표로, 항상 냉수로 목욕하고,
겨울이나 여름이나, 계절을 가리지말고, 마음을 정화하는 정신을 일심으로 하는 뜻에서,
지금부터 냉수목욕을 실천하고, 음식을 먹을때마다 마음 속으로
자기가 신앙하는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간에,
그에게 심고 마음으로 고하되,
이 음식으로 하여금, 나의 병에 약이되고 보(補)가 되어줄 것을 기원하라고 일러주었다.
종교는 모든 인간들의 행복과, 이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공동번영에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어느 종교이든 이 목적에 어긋나면,
그것은 부정한 집단이며, 부정한 사교가 된다.
따라서 어느 종교이든, 그 창도자는 성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신앙하는 성인 이외의 다른 종교,
즉 다른 성인들을 욕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잘못된 소행이며, 부정한 마음인 것이다.
종교의 신앙하는 방법이 설사 다르다고 하여,
다같이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에 위배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자기네 교인들의 길흉지사에는 서로 협조하고 위로하면서,
비교인의 길흉지사에는 협조와 위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잘 자라는 벼에 거름을 더 주고, 농약도 더 주고 하는것 보다,
못자라는 벼에 기름을 더 주고, 농약도 더 주는 농부의 마음과 행동이
바로 진실되며, 정당한 방법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며, 언제나 진실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나 마음쓰는데 차별이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태양은 어두운 곳이나, 밝은 곳을 차별하지 않고,
더러운 곳이나, 맑은 곳을 차별함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데, 소위 하나님을 신봉한다는 사람이,
큰 사랑의 뜻을 위반하고, 남을 미워하며,
부정한 마음과 행동으로, 개인이나 단체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큰 사랑이나, 부처님의 대자대비지심이나, 공자의 인의예지심은,
다같이 인간을 위하고, 인류를 공존하게, 행복하게 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 목적 추구에 있어서, 방법이나, 혹은 수단이 다소간에 차이가 있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개성의 차이와 같은 것으로서,
그 본성과 본질에 있어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종교인들이 잘못된 인식과,
종교에 대한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믿는, 종교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종교는 존재하되, 신은 죽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현실에서, 개인에게는 신병으로 질환이 생기고,
세상에서는 전쟁과 혼란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의 병이고, 세상의 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병(小)과 대병(病)을 고치는데 있어서
약은 오직 인간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을 하나님,
또는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진실한 마음과, 그 실천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심성을 개혁하지 않으면,
몸에는 병이 나고, 세상에는 혼란이 자꾸 연속 되어질 뿐이다.
이러한 나의 치병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그 부부는 지당한 말씀이라고 긍정 하면서,
교회에서는 무조건 하나님만 믿으라고 강조하였는데,
지금 회장님의 일일구에 공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집에 돌아가서 일러준 말씀대로 실천해 보겠노라고 하면서 물러갔다.
그 후 다시 연락이 없으나, 그들 스스로가 실천하면
그의 병을 고치게 될것이고, 스스로 실천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병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물약자효(勿藥自效)와 심성(心性)
약물을 쓰지 않고 병을 고치는 형태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알고 있는 방법으로는 안수로 병을 고치는 안수요법이 있고,
주문을 외어서 고치는 기원 치병법이 있으며, 기합으로 치병하는 통기치병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치병하는 사람의 정성과 기합, 최면 등으로 환자에게 전달하므로써
이루워지는 일시적인 능력의 결과로 보아지는 것이다.
대외적인 물질이나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물약자효(勿薬自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륵님(증산)에서 말씀하신 물약자효의 범주에는 들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증산도에서 말하는 물약자효(勿薬自效)는
병자의 심성과 의식(意識)을 먼저 정화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치병을 의미하고,
거기에는 신명(神明)의 작용으로 병을 물리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 자신이 먼저 올바른 인간심성과 의식을 가지게 되는 때로부터 효력을 보게된다.
현무경(玄武經)에 언청신계용(言聽神計用)이라고 한것은
바로 신명을 작용시켜 치병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말을 듣고 신명이 작용한다”는 것은
신명을 용사(用使)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증산께서 말씀한 의통(醫統)은
단순한 병을 고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성의 개혁, 또는 개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 물약자효로 완치된 사람도
그 이후의 생활에 있어서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게되면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다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환자의 심성이 개혁되지 않으면 완치되지 않는다.
현사회에서는 약을 훔처먹어도 약효가나며, 외상약을 복용해도 약효가 난다고 하지만,
물약자효법은 그 심성이 개혁되지 않으면 언제나 재발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심성이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낫는지 모르게 완치되나,
그의 심성이 개혁되지 않고 말로만 개혁한척 하면
언제 어떻게 재발되는지 소리없이 또 발생한다.
이것이 "언청신계용"의 신명의 조화법이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크게 세가지라고 본다.
첫째로,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고,
둘째로 이 세상에서 병원을 없애는 것이고,
세째로 이 세상에서 경찰서와 형무소를 없게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각자가 자기의 심성을 미륵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닦고, 행동을 실천한다면 이상의 세가지는 자연적으로 없어질 수 있게된다.
그리고 인간의 혜지가 발달하면 신명세계도 관통하게 된다.
그러한 경지에 모든 인간들이 도달할때
이 세상은 지상천국, 다시 말해 신선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의 심성과 의식이 각자 명경처럼 맑게 밝어지면,
누가 누구를 속이거나 꾀를 부릴수 없게되며,
자연적으로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대가 필요한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밖에 딴 일이 없게된다.
이러한 세상이 바로 신선세계(神仙世界)이며, 전쟁도 병도, 형무소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기초로하여 정지작업이 되는 것이며,
동양(棟梁)도 이룰수 있는 것이 물약자효의 정법 의통(醫統)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들에게는 병원이나 약국이 따로없다.
다만 사람에 의하여 사육되는 동물과 식물들이 사람처럼 약을 쓰고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각기 자신의 생명을 관리 못하고 있는 것은
만물의 영장 자격에 도달치 못한것으로 생각된다.
각기 자신의 생명을 "물약자효법"으로
다시말해, 병원이나 약에 의존없이 건강하게 유지할때
비로소 만물의 영장이라할 것이다.
호랑이는 먹을만치 먹게되면 더 이상의 살상을 하지않는다.
모든 자연생의 동식물은
각자의 필요한 량의 섭생을 취하면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다만 유독 인간들만이 한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무리하게 과다하거나, 부족감에서 항상 불만하며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잘못을 저질르고,
그릇된 심성으로 변하여 마침내 척이 발생하여 축적된후
신명의 미움을 받아 그의 경중에 따라
대소의 병이 생기고 자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협동하고 조화(調和)하는 것이
생명의 진리이고, 진실된 삶의 보람이다.
이러한 원리를 벗어나서 혼자만의 욕구를 충족 하려는데서
인간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결국에는 자신까지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육신은 병들고 정신마저 인간 본성을 상실하게 된다.
나를 찾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약으로 또는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도 돈이 많거나,
또는 자신의 병을 과학적으로 도저히 불치의 병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쉽사리 심성개혁을 못하고,
다시 말해 돈과 과학병 악질병의 만성으로 이목구비가 마비되어
재생할 수 있는 자신의 병을 스스로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 자신의 병을 고쳐 보겠다는 결심과 의지력을 가진 사람은
"물약자효" 의 법방대로 실천하기 쉽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가 자기혁명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심성개혁은 '나'라는 존재를 없애는 것이다.
예를들면 일평생 교육자로 정년퇴직한 사람이 수백수천의 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의 보람이나 만족이나 자부심보다는
시골 농사꾼의 곡식 가꾸는 정성처럼 곡식의 결실을 위하여
한폭한폭 손질과 거름을 고루고루 주고 농약을 주워,
온 밭 곡식을 평등하게 관리하듯,
평생 교육중 수많은 제자의 장래 결실을 위하여
고루고루 평등하게 교육과 지도가 되었는지 반성과 회계함이 있을때
나라는 존재의식을 없애는 것이며 심성개혁의 공법이 될 것이다.
이와같이 지금까지의 잘못된 인생관, 잘못된 심성을 개혁할줄 아는 사람은
난치의 병도 고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천법에는
병은 하나인데 약은 천가지라 하나
물약자효의 의통 정법은 천만가지 병이라도 약은 하나인 것이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의 법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나에게 찾아와서 물약자효법으로 병을 고친 사람은 일거양득이라는 것이다.
병만 나은것이 아니라, 심성이 개혁된 만큼 병도 치유됨은 물론,
물약자효법이 자기도 모르는 순간 건전지가 충전 되듯이 진법이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도 타인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와같이 20년간 "물약자효법"을 실행하여 왔으나,
그의 전수된 능력을 관리유지 하는 사람은 대개 가난하고 학식이 없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미륵님의 뜻대로 심성을 개혁하여
하루 하루의 생활에 반성과 회개의 정신 으로 실천과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학식인과 돈 있는 사람은 물약자효법이 전수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 한바와 같이 나라는 존재 때문에 심성개혁이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다.
건전지 보관상태 불량으로 방전되는 것과 같이
전수된 전법이 전수됨과 동시에 유출되거나 저장관리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완전자동법인 것이다.
초창기에는 보는대로, 닥치는대로 물약자효의 정법을
전수하려고 하였으나, 결실은 적었다.
예를들면, 권투선수가 빨리 이기려고 정확히 보지도 않고 주먹을 자주 휘두루다
정타를 맞치지 못하고 힘만 빠져 지친것과 같이,
전수를 빨리 많이 할려고 허둥지둥 가리지 않고 전수해 보았으나
전수되지 않고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하여 그후부터는 정확히 살피고 조준하여 정확한 강타법을 연구개발해 본 것이
앞서 말한 병들고 가난하고 학식이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못살고 못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심성개혁에 결단이 있고,
순수하고 오염이 멀된 심성의 소유자였다 고,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후부터 백이란 수보다 하나가 중요한 것을 깨닫고,
현대의 유행어처럼 아들딸 가리지말고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는 것처럼,
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한번 인연된 사람은 일년이든 아니 십년이 넘어도
한사람이라도 물약자효의 심법 의통법을 전수하는데 전력을 다하며 20여 성상을 지나온 것이다.
그동안 전수한 물약자효법에서 탈선 행위자가 있었다.
자기 자신도 한동안 심성개혁에 노력 하고보니 자기병도 완쾌에 이르자 생각이 변한 것이다.
전수된 능력으로 타인의 치병에 이르렀다.
역시 난치병도 잘 치유되는 소문이 나니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찾아온 환자들이 선생님, 또는 도사님 하고 받드러 올리게되니
오만하고 본래 심성으로 변하여짐으로 몇번 충고하였으나,
나더러 독제하려 한다고 오히려 반항하는 것이었다.
그후 자기의 병세가 재발은 물론, 권식까지 발병하여 가정이 함몰하게 이르러도
반성은 못하고 치병해서 모은 돈으로 자기 아들 치병을 위하여 병원에 입원 시켰으나,
결국 구제되지 못한 사실도 있으며
자기자신도 원병으로 신음하며 폐인이 되다싶이 되어 두문불 출하여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그가 깊은 참회를 못하고 자신과 가정을 파탄케한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물약자효의 법방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잠재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바탕이 문제인 것이다.
그 바탕은 바로 자신의 심성이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티끌만치라도 미륵님의 뜻에 어긋난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자신에게 무 서운 결과가 내려진다는 것을 보여준 교훈인 것이다.
초창기부터 물약자효법을 개척 실천전수 할때 주송하던 주문이 있다.
앞에서 잠깐 주문(呪文)이야기가 나왔는데
다음의 주문은 나의 선친께서 壬辰(1952)년 元旦에 계시(啓示)'로 받은 것이다.
선친의 호명(號名)은 유일(唯一) 장종용(張湧) 일명, 보만(萬) 이시다.
나의 조부이신 호봉(湖) 장기동(張基東)은
증산(미륵님)께서 화천하신 이후 현몽으로, 임자(壬子 1912)년 오월에 상봉하계되어
그로부터 증산도를 신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임자임자(壬子)년 7월에 객망리를 거처 생전 수제자인 김형렬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미륵 진흥회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선친께서도 증산도를 신앙하게 되었던 것이다.
추후에 기회가 있으면 호봉선생과 유일선생 두분의 유고를 공개할까 한다.
주문은 수명주문(受命呪文)과 여의주문(文) 두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여의주문(呪文)
남무미륵당래불 南無彌勒當來佛
천죄만얼광명서 千罪萬孼光明恕
오만극락혜지명 五萬極樂慧智明
지기금지원대강 至氣今至願大降
새세상에 오신 미륵부처님
천만 가지 죄악과 어리석음을 용서하시옵고 밝은 빛을 빛여 정도를 걷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만년 극락세계를 깨닫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
미륵님의 지기를 크게 내려 주시옵기 소원 하나이다
수명주문(受命呪文)
남무미륵당래불 南無彌勒當來佛
당래미륵천조불 當來彌勒天造佛
천조미륵광제불 天造彌勒廣濟佛
광제미륵수명불 廣濟彌勒授命佛
수명미륵복수불 授命彌勒福受佛
복수미륵세존불 福受彌勒世尊佛
세존미륵영세불 世尊彌勒永世佛
새세상 제도 하시는 미륵부처님 오셨네
하늘나라 조화주이신 미륵부처님 오셨네
광제창생 하시는 미륵부처님 오셨네
만물의 생명을 주시는 미륵부처님 오셨네
온 인류의 복을 주시는 미륵부처님 오셨네
삼계에서 존경 받으신 미륵부처님 오셨네
영원한 이세상 함께하시는 미륵부처님 오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