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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녹취록입니다. 토론 중에 제기된 문제와 답변과 관련 발언들을 정리한 후기입니다. 못 다한 말씀들, 해소되지 못한 의문들, 미처 전하지 못한 의견들은 연구소 카페나 텔레그램 방이나 다음 세미나에서 이어가기를 바라옵니다.
글에서 쓰신 이현숙 선생님의 말씀이 노동자의 운명이 민족의 사멸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크게 동의는 안 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제국주의 국가들 일본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과거에 독일 이탈리아 등등. 혹은 지금 이스라엘처럼 그런 나라들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는 게 좋을까요? 그들도 본질적으로 그들 스스로 자기 민족을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좋을지요.
애초에 이 논란의 출발이 민족주의는 단일화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민족주의 일반을 통틀어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막 통제하고 착취하고 이런 부자의 민족주의가 있고 그게 파시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근데 그들 억압당하는 민족은 억압에 맞서서 싸울 거 아니예요. 거기는 당연히 또 우리 자신의 자결권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러면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민족주의, 배외주의나 이런 것들하고 자기 나라의 민족적 전통이나 자기 정치적 자결권을 지키고 사수하려고 하는 이런 것들하고 완전히 대립되는 거 아니에요? 후자를 억압하면서 전자가 나오는 거죠. 근데 민족주의를 통으로 전자만 놓고 봐버리면 후자의 저항의 측면을 부정해버리는 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예를 들어 민족 해방 투쟁의 여러 역사 이런 것도 도전하고 근데 이것이 과거에만 있었던 게 아니고 지금도 제국주의 체제에서 아프리카나 대속 나라들이 아무리 독점적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제국주의 시대를 갖고 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서도 사일 지역이나 이런 데에서 지금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서서 싸우면서 축출했잖아요.
미국 대사관도 쫓아내기도 하고 여러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지금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은 민족 해방 투쟁이죠. 팔레스타인이 자본주의에 맞선 독재를 위한 싸움이 아니잖아요. 팔레스타인 투쟁은 민족해방 투쟁이라는 걸 인정해요. 민족 해방 투쟁은 더 이상 없다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다음에 러시아에서 러시아의 제국도 얘기 하지만 러시아 동부의 돈바스의 민족들도 그들의 입장에서 억압당하는 거예요. 자기 언어도 못 쓰게 하고 라디오도 폐쇄하고 4만 명 학살하고 그것 때문에 러·우전이 실제 벌어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런 민족 억압의 문제가 실존하고 우리한테는 미제국주의의 어떤 그런 지배 형태로 민족 문제가 실존하고 있고 또 일본에서도 민족 문제는 여전히 그 의미가 조선 민족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나고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민족 문제는 실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민족 문제나 민족주의는 아주 복잡한 거여서 단순하면 완전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나로만 보니까 민족주의는 다 나쁜 거야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저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저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근대에 들어서 나타난 개념인데 이거를 중세시대 조선 이런 왕조 사회나 노예제 사회나 아니면 무슨 도시 국가와 같은 옛날 부족 국가 시대까지 다 연장해 가지고 이걸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묶는 것은 모든 역사는 현대 사회라고 하듯이 지금 현재 필요해 가지고 역사들을 옛날 그 무수한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거잖아요.
역사라는 게 거기 민족 개념에다가 옛날의 사실들을 끼워 맞춘 게 이게 민족사하고 역사인데 그 사회는 단군이 정확하게 존재하는지도 지금 증명이 되지 않은 신화적인 사회 고조선 이런 이야기들은 현재의 민족 개념에다가 다 넣어 가지고 역사 서술을 하고 그래서 이 민족 공동체는 아주 영원히 갈 것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장구한 세월 지나야 실현 된다면 그 사이까지도 이게 계속 가는 거냐 그래서 민족 개념에 대한 게 조금 더 엄밀하게 좀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
중세시대나 이런 왕조 시대에는 지위 국가라고 그러면서 지 멋대로 통치하던 그 시대에 진짜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뭐가 있었을까 주권을 일반 민중들이 운명을 좌우할 수 있어야 주권이 민중들에게 있어야 자기 공동체가 될 수 있는데 왕이 혼자서 다루는 사이 그 왕의 국가지 그게 진짜 공동체냐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식민지 시대에는 상당히 이야기가 좀 많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제국주의에 의해서 그런데 이게 지금 현대사회에 와 가지고 저항적 민족주의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민족주의 아주 좀 잘 나가는 자본주의가 이제 많이 발전된 민족주의 이게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예를 들면 독일이 게르만 민족을 막 내세우면서 이게 거기도 민족 공동체 이야기하면서 다른 나라 침략해 가잖아요.
근데 또 어떤 사례들은 그러면 미국이나 세계적으로 강력한 제국주의에서 침략을 받았던 약소 국가들이 또 더 작은 국가들을 침략하는 걸 본단 말이죠. 주변에서 또 다른 나라한테는 제국주의적인 행태들을 많이 하고 이런 무슨 힘의 고리처럼 막 이렇게 그러면 미얀마 같은 데서도 약소 민족들 종족 청소도 하고 이런 것들이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나는 그러면 독일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민족 공동체 히틀러가 강조했던 이런 민족 공동체의 민족화 그다음에 이게 저항이라고 그래서 지금 제국주의에서 침략받았던 여기에서 얘기하는 민족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거냐 거기서 얘기하는 민족 공동체가 나는 그 현대사회에서 구성된 자기네 필요에 의해서 나타난 구성된 개념이지 이거를 방법론까지 연결해야 될 때 이거는 뭔가 조금 뭐랄까 막 논리적 비약들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제 생각은 이런 의문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소개만 했고 유보적으로 그 부분 얘기를 했고요. 그럼에도 합리적인 측면은 이거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방금 문제는 일단은 일부에서는 일단 제 입장이라고만 소개를 드리면 일제가 신화라고 조작한 거다. 단군은 실존 인물이다. 실제 그 당시 부족을 우리가 신화로 남아 있는 부족들을 실제 통일해서 강력한 중앙집중 국가를 만들었다. 하나로 통일시켰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거는 실제 무슨 범죄율로도 나타나고 하나의 여러 가지 생산력의 발전 이런 것도 있고 그런 거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가 있으니까 이 중에서는 그거는 나름 그쪽에서 아마 고정적 자료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고요.
근데 저는 그때 그때 하나의 신화가 아니라면 일제가 신화라고 얘기하는 신화가 아니고 실제 하나의 부족의 통일이라고 하면 그러면 단군이 국가적 부족을 통일한 존재가 아니냐 역으로 이렇게 실존하지 않는 거냐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근데 저는 그런 지점에서는 오히려 이 얘기하는 그게 민족이냐 민족체냐 이런 논쟁이 있지만 단군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부족을 통일해서 고조선이 지배하는 실존이었다.
그거는 문학적·역사적 근거가 남아 있잖아요. 역사도 있고 그래서 그걸 신화라고 얘기하는 건 약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다만 그러면 그때 지금과 같은 국가적 공동 통일성이 있느냐 민족적 그거는 지금 없었겠죠.
근데 저는 유보적으로 약간 민족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앵겔스도 가족 국가 사회 제도에 기원해서 민족체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잖아요. 그 민족체가 아니었겠냐 이런 의구심이 있는데 지금 자료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그거는 저는 한번 우리가 보면서 오히려 아까 제가 얘기한 것처럼 만약 그때 강력한 왕권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공동체 지역적 경제적 공동체 생활하면서 하나의 민족 의식을 형성했다고 하면 다른 나라의 중국민족이라는 나라들도 민족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 이런 역으로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거는 오히려 좀 성립이 안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근데 지금 그건 연구의 과제고 분명히 과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역으로 그러면 아예 그럼 선생님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거기는 뭐 규정된 민족 개념도 여러 가지 공동체 개념들이 있는데 거기서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근대에 와서 적어도 주권을 일반 국민이라고 표현하는 인민에게 있을 때 와서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사회주의가 안 돼도 이미 민족의 형성은 각급 공급으로 우수하게 많아져 있던 그런 나라들이 하나하나의 공산당사로 얘기한 것처럼 하나의 관세 하나의 행정구역 이런 하나의 시장으로 되면서 하나에 집중이 되면서 민족으로 형성됐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독일의 통일 이탈리아 통일 이때 어떤 부르주아적 산물로 민족이 형성됐다고 보는 거지 사회주의 산물 인위적으로 형성됐다 보니까는 그래서 선생님 아까 공동체라는 개념을 실존하는 어떤 여러 가지 공동체 개념과 도덕적 의미의 공동체랑 막 섞어서 말씀하시는 건 좋은 의미로 공동체 해주니까 막 이런 거다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공동체는 반드시 좋은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역사적 공동체로서 그 내부에 여러 가지 분열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언어를 공동으로 쓰고 하나의 시장이 되고 역사적 경험을 공동으로 하면서 그런 의미로서 역사적 공동체라고 얘기를 한다는 거죠.
아니 저는 도덕적인 이런 얘기가 아니고 일단은 거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고 그다음에 이제 예를 들면 발해라든가 또 고구려 국가 같은 경우에는 거기에 흑수말갈이든 여러 부족들이 다양하게 여진족도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다시 지금 현대 근대 일본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식민지 민족 해방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이걸 옛날 역사대로 재구성했던 거지 그때의 공동체의 개념하고 지금의 공동체 개념은 차원이 다른데 왜 그걸 똑같게 연결시키는가.
그러니까 그 말씀이 유럽적 상황과 아시아나 한국이나 조선이나 똑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유럽 얘기는 안 했고 아까 우리나라 이제 유럽 그것도 좀 따져 봐야 될 게 많은데 저는 예를 들면 혈연을 제일 많이 따지고 보통 민족 개념 얘기할 때 그다음에 이제 언어 공동체 문화적 종교적 요소 이렇게 한 4가지 정도를 주요하게 보잖아요.
그래서 그랬을 때 지금 저는 민족 개념을 지금 쓰고 있는 이 민족 개념하고 단구 시대까지를 같은 공동체로 엮을 수가 있겠냐 그런 개념이 동일하게 적용이 되겠느냐는거죠.
그러니까 아시아랑 이게 다르다는 이런 말씀이 하나 있고 그러면 유럽의 민족도 없다고 보시는 거예요.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시는 건지 아니면 실존한다고 하시는 건지요.
근대 와서 형성된 개념을 이제 옛날 역사에 다 두드려 맞췄다고 예를 들어서 재구성했다. 역사를 지금의 필요에 의해서 만드는 필요성이 하나 있고 민족사 자체로 우리가 규명할 부분이 있는 거고 저는 둘 다 있다고 보거든요.
어느 하나만 항상 문제라고 보는데 오히려 실천적으로는 오히려 유럽 그걸 써버리면 이쪽이 민족 문제 해결 못하는 실천적 측면에서 일단 문제가 하나 있고 그러면 이북에서 얘기하는 그런 혈연 이런 문제를 또 과학적 개념이나 단군 때까지 그걸 분석하는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있다고 봅니다.
혈연으로 출발하지만 지역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거로 보기 때문에 말갈족도 고구려 내에서 이렇게 활동하다 보면 사실 종족적 의미는 다르지만 오히려 하나의 지역적 차원에서 확대된 민족이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거를 제가 정정을 드리고 싶고 근데 다만 저는 여기서 이북의 문제는 토론할 여지가 있고 여러 가지 동의 안 된 측면이 아직까지 있지만 그러면 역으로 유럽의 민족 형성과 이쪽이 똑같냐 이런 우리가 여기 실천적인 토론을 한번 여기서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유럽에서는 공국으로 우수하게 나눠져 있었잖아요.
저는 몇 개로 나눠졌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우수하게 많은 공국으로 나눠져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또 아니잖아요
상당히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게 민중들이 거기까지 얼마인 건 모르지만 하나의 언어의 통일성과 더불어서 강력한 어떤 좁은 지역에 통일적으로 오면서 해왔고 맑스가 유럽에서 민족적 통일성 공산당성을 얘기하는 하나의 관세 하나의 행정구역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저기 단군 시대 때 그 정도는 과연 경제적 공통성이 어느 정도 될 건지 이거는 우리가 논란이 있지만 그 이후 고려는 모르겠고 조선 이때까지도 과연 그러면 하나의 민족이 아니고 중민족이었나 유럽처럼 공국으로 나눠져 있었나 관세가 통일이 안 됐나 이런 거 좀 비판적으로 본다는 겁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그 두 번째 질문 예컨대 이스라엘 엘피가 피억압 민족이었다가 자기가 억압 민족이 되는 그런 문제는요.
그건 나쁜 놈들이죠. 자꾸 과거를 잃어버리고 근데 예를 들어 그런 요소들 때문에 피하 억압 민족들이 예를 들어서 피억압 민족들이 요구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누군가의 간섭과 정치적 억압 없이 자신의 민족 문화로 꼽히고 이런 걸 싸웠던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이 해방되고 구성되고 다른 나라에 강요하면 안 되겠지. 그게 정신인 거고 지금은 중요한 거는 그런 사례들은 당연히 있겠지만 팔레스타인 민족끼리 싸우는데 야 너네들도 나중에 해방돼 똑같은 놈 될 수 있어 어차피 화장실 갈 때 나올 때랑 다르다 이런 얘기할 수 없잖아요. 지금 여전히 제국주의에서 억압돼서 싸우고 그런데 만약에 자기네들이 일정 정도 자주성을 독립했다고 해서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억압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싸워야 되는 것이지 지금은 여전히 아프리카나 이런 데에서 상당 부분 그런 거고 여전히 억압에 맞서서 싸우는 신식민지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모순들을 부정할 수 없고 여전히 계속 민중들이 싸우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국제적으로 또 미래의 그런 제국주의 연쇄 고리에서 남미나 이런 데 자결권을 억압당하고 있고 예를 들어서 중동에서 침략당하고 있고 남미 쪽에서 베네수엘라 자주성을 잃어버려서 언제든 레짐 체인지 하려고 하고 있고 이런 시도는 어디든 있을 때나 있고 그런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자신들의 누군가의 정치에 의해서 억압당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으로 자주적이려고 하는 노력들은 우리가 지지해야 된다고 보는 거고요.
근데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탈레반 반동 아니냐 이런 얘기하는데 저는 탈래반은 역으로 반동성을 들어서 그리고 미국의 모순들 제국주의 모순을 은폐한 건 더 문제라고 봐요. 탈레반의 모순들은 이제 미제가 나오고 나면 대부분 민중들이 해결할 문제죠.
미국이 오히려 그걸 근거로 탈레반이 반동이고 뭐 여성을 억압했다는 근거로 해서 탈레반 아프칸 민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 했단 말이죠.
그 대표는 탈레반에 되게 종교적으로 썼지만 저는 그걸 존중해야 된다고 보는 거예요.
탈레반들이 10만 이상이 죽었거든. 그런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하나의 미제를 척결해 낼 때는 80년대 인민민주당 권력을 무너뜨릴 때 탈레반은 완전히 미제 편으로 반동이지만 그 이후에 탈레반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거 그래서 미제를 축출 해냈어요. 그러면 그 탈레반이 국제적으로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 거죠.
그러면 그런 이후에 국제적 차원의 모순이 있고 국내적 차원의 보수는 여전히 미국에 미국이 여전히 제재 이런 거 있지만 그런 문제 모순이 해결된다고 하면 그제서야 오히려 탈레반이 만약 여성을 억압하고 민중을 억압한다고 하면 그제서야 오히려 민중들이 오히려 자신의 모순들과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거죠. 이란도 마찬가지라는 거. 이란도 여전히 진보성이 국제적 가치 진보성이 있지만 통계적으로 공산주의자 억압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는 거죠.
근데 그걸 근거로 해서 이란의 진보성을 부정해버리고 민족 학습적인 해방 투쟁인 걸 부정해버리면 잘못한 제국주의 논리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예멘은 얼마나 용감해 팔레스타인 억압하는 거에 대해서 딱 봉쇄하고 싸우잖아 미국이나 영국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하면서도 그런데 그 예멘의 영웅성을 얘기 안 하고 예멘 내에서 이런 얘기하는 것은 제국주의 논리에 넘어갈 수 있다는 거지 항상 제국주의는 그랬어요.
리비아를 공격하면서 리비아 정권이 어땠고 어디를 공격하면 어디가 문제야 이러면서 국제적 차원의 제국주의 모순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거 오히려 레닌이 민족 해방을 얘기하고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여성 해방을 얘기할 때는 그럴 때만 그런 것들이 해결될 때만이 본질적인 해방의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이현숙 선생님이 여기 안 계시기 때문에 이현숙 선생님을 대변해서 대변이 될지 모르지만 그 문제의식이 조금 있다고 보거든요. 일단 지금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놓고 볼 때 한국 사회는 엄연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고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 이런 원칙을 놓고 볼 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족 개념이 떠도는 양태 지배적인 양태를 놓고 보면 지배적인 형태를 놓고 보면 부르주아적인 민족주의가 그냥 팽배할 것 같거든요.
또 한 가지는 한국 사회가 그사이에 상당한 경제 성장을 통해서 이제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 저임금 노동 착취해 가면서 부을 축적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초과이윤을 막 뽑아와서 한국 사회를 막 이렇게 서열화시키고 매수하고 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도 우리가 무슨 전쟁을 직접 일으키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제국주의의 중요한 특징들 초과이윤 가져와서 이렇게 통치하는 분할 통치하고 하는 그런 구조를 상당 정도 이미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서요.
그래서 민족 해방 문제를 다룰 때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억압성 그러니까 제국주의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 앞으로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걸 어떻게 견제하고 막고 할 거냐 할 때는 여전히 노동자 계급 관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겠냐 계속적으로. 그래서 이현숙 선생님이 좀 과장하신 면도 있지만 그런 문제의식은 우리가 공유해야 되지 않는가 계급 문제를 그래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민족 해방 문제를 한국의 해방만 아닌 세계 민족 해방과 같이 관련지어서 고민하다 보면 이제 좀 더 국제주의 정신에도 충실할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그러는 과정에서 이제 레닌이 고민했던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이렇게 결합하는 혁명 방식이요. 그런 것도 한국 사회 같으면 좀 독특하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냐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레닌은 그걸 분류해서 서구 선진 국가들의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혁명 그다음에 식민지의 경우는 민족 해방 그렇게 그쪽에 더 방점을 뒀단 말이죠.
근데 한국의 경우는 그게 양자가 다 얽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민족 해방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또 우리가 억압하려고 하는 역동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 또 계급 해방 문제가 그래서 더 전면으로 나와야 되는 문제도 또 있고 그런 문제의식을 생각하면은 선생님이 원론적으로는 다 맞는 부분이 많아요. 그렇지만 또 이현숙 선생이 제기했던 그런 문제의식에도 상당한 타당성 내지는 동기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근데 저는 그럼 노정협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우리가 오히려 원론적이고 되게 구체적인 균형적이고 역사적이라고 보거든요. 저희도 저게 민족과 계급이에요. 민족 문제나 계급 문제는 씨줄과 날줄이다. 그러니까 우리 운동이 NLPD로 나눠 분열됐잖아요. 그래서 분열이 지금까지 이러는데 저는 80년대 운동이 하나의 통일적 운동이 되고 단일 운동이 되면 이게 분열될 리가 없다고 보거든요.
민족 문제는 역사적 모순이고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은 그런데 이 구조적 모순만을 보면 역사적 모순에 반감하게 되고 또 반대는 반대인 거 그래서 각자의 소위 PD로 남아 있는 이런 세력들도 80년대 노동 계급의 모순도 이건 현실 한국사회 현실의 모순의 반영이에요. 그다음에 반대나 통일 문제 이것도 현실의 모순의 반영인 거예요.
근데 주요 모순은 그때 시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거고 근데 뭐 그런 거 변죽받이야한다. 근데 문제는 양자가 분열되기 때문에 운동이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그럼 각자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을 거 아니야 계급성을 얘기하는 데는 오늘날 대단히 협소한 이렇게 되고 경제지도 해버리거나 분당은 이제 기권해버리는 거 근데 여기로 통일을 얘기하는 데는 아주 다양하지만 우리 통일을 얘기 안 하고 분당 반미를 얘기 안 하는 데까지 가버렸어요.
심지어는 포스트 모더니즘만 되고 있어요. 진보당 의원 지금 진보당인가요? 반미적인가요? 진보당이 반미 안 걸어요. 의회주의 때문에 그럼 포스트 모델 인권 기후 당연히 싸워야 하지만 제국주의랑 싸움 없이 진보당원은 당적으로는 내부 개인 당원들은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건 없어졌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양자의 모습이 좀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고 보는 거고 또 하나는 반대 모습도 그거를 지금 맞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민족과 계급을 같이 봐야 한다는 거. 그래서 마오가 모순론에서 얘기한 거는 오히려 제국주의가 심각해 보일 때는 제국주의가 주요 모습이지만 이게 또 국내적 모습이 두드러질 때가 있다고 얘기했어요.
근데 제국주의랑 반대 얘기하면서 종내 제국주의와 결탁해서 싸워온 세력들 특히 민주당하고 결탁하려고 하는 건 반미가 아닌 거예요. 오히려 이 땅의 지배자들의 제국주의 역사는 오히려 이 철저하게 현지 권력자들을 내세우기 때문에 반미를 얘기해 온전하게 싸우려면 국내 계급 노선에 충실해야 하는 거예요. 계급 모습 타협적으로 하면서 반미를 얘기하는 건 가짜 반민인 거니까.
그럼 온전하게 민족과 계급 취지를 다 통일해야 하는 거고 근데 문제는 또 계급 모순을 얘기하는 세력들은 계급 해방의 관점으로 가야 한다 하는데 혁명에서 한 번도 구체적으로 사과 안 했다고 봐요. 페테르 그룹을 위해서 제가 혁명을 하는 게 아니라고 얘기했잖아요.
19세기 러시아에 우리는 이땅 분단된 자본주의 제국주의 미래가 여전히 이 사회에서 모순을 질곡을 해결해야 하는데 분단 문제를 한 번도 염두에 안 두고 먼저 혁명을 하겠다. 민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없이 이거는 심각한 좌편향이라는 거거든요.
한국 이남에서 혁명을 특수한 조기 혁명을 할 생각이 없다. 유럽에서 소련처럼 러시아처럼 소비에트 혁명으로 무장 봉기 지금 가능한 거예요. 매개가 없다는 거야.
오히려 민족 문제가 이렇게 박살 났으면 민족 문제를 오히려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모순을 해결하고 근데 이것이 노동 계급 문제는 나중이 아니고 노동 계급이 자기의 어떤 노동권이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각성하지 않는다면 민족 문제는 해결해 나갈 수 있겠냐는 거 노동 삼권이나 이런 문제를 해방 이후로 미루는 경향들이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통일 이후로 말이 안 되는 거고 그러면 비정규직 문제나 이런 계급 문제를 나중에 미룬다 하면 누가 싸우겠어요? 이거는 또 같이 통일적으로 가야 하고 그래서 오히려 각자의 약점을 극복해서 민족과 계급을 통일적으로 가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근데 부르주아지들이 발전하면서 민족주의를 왜곡하는 게 있죠. 예를 들면 한일 문제 조국도 그러잖아요. 이번에 한일전이다. 근데 조국이 반미를 거는 민주당 한 번도 없다는 거 반미는 안 건다는 거예요.
오히려 자기 역사적 감정에 편승해서 반일만 걸면서 뒷구멍으로는 미제에 의해서 농락당하면서 한미 군사협상을 해버리고 그러니까 이들은 오히려 민족주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근데 부르주아지들은 오히려 민족 문제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거고 그리고 반미의 문제도 항상 마오가 얘기했듯이 국내 보수하고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걸 통해서 제국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에 그다음에 한국의 발전상 이런 것들을 무시해서 안 된다. 그래서 자국의 어떤 억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주 노동자 억압에 기권한다.
그거를 가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거라는 거 그거는 오히려 운동 노선이 잘못돼서 그런 거고 그거를 저희들이 주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균형적으로 가야 하나의 모습을 보고서 너무 한쪽으로 해버리면 이런 운동의 발전이 없다는 거죠.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이 복합적인 구조가 운동을 통일 속에서 봐야 하는 거는 원론적으로 그럼 노정협을 비판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런 식으로 역사 없이 이렇게 얘기하면서 극단주의적으로 나가면 막대기 구부리는 게 아니라 막대기를 부러뜨려버리는 게 된다.
통일 속에서 보자고 할 때도 이제 매 주체마다 절실한 게 있고 더 결정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자기가 그동안에 축적해온 자료 정보에 따라서는 강조점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조율해 가느냐 하는 과정이 또 필요할 것 같거든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자주파들이라고 하는 데 가서는 계급성을 얘기하는 거 근데 소위 PD라고 하는 데 가서는 민족성이 부족한 걸 얘기하는 거 각자가 그게 부족하기 때문에 각자 부족한 걸 채워 그게 제 답이 아닐지언정 제 모토는 각자 부족한 걸 얘기하고 그게 우리 운동의 통일과 단결의 지점이라고 보고 있어요.
오늘은 발제에 대해서 우선 가장 선별되어야 하는 관점이 단순한 학술제하고 다르다는 거죠. 맑시즘은 기본을 깔고 있는데 맑시즘은 혁명하겠다는 사람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두 번째로 맑시즘은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보면 대단한 책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분들보다 훨씬 실천을 강조하는 부분이고 아는 걸 뛰어넘어서 세상을 바꾸자 이런 제안을 했었고 완벽하지 못했죠. 아무래도 뭐 우리로 치면 고수 할아버지쯤 되는 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요?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방법도 조금 제시했어요. 그중에서도 내가 노동자 계급을 이야기했었고 사실 뭐 노동자들이 이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을 첨예하게 겪고 있는 거기 때문에 혁명의 주력품이 될 수 있다 이 말이 존재해서 나오는 건데 좀 틀렸죠 맞지는 않았죠.
그래서 초기에 혁명론들은 맑시즘 초기 혁명가들은 또 맑시즘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혁명을 혁명문으로 봤고 맑스조차도 노동연맹조차도 생각을 못했어요. 연대 연합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파리 꼬뮌도 그 모습을 보니까 노동자들이 전부 나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닌 심지어 룸팬 PT들까지도 달라붙어서 뭔가 좋은 걸 만든단 말입니다.
맑스가 파리 코뮌을 보면서 실질적으로 자기가 머릿속에 생각했던 하고 다르다는 거죠. 역사를 이제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 사회 인간사라는 것이 그렇게 법칙 정립적이지 않다는 거죠. 계획했던 것조차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굉장히 중요시되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지면 공황이 일어나거나 노동자들이 너무 짜증 나가지고 봉기를 일으키거나 해야 하는데 실제로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선발 혹은 후발 자본주의국들이 자본주의 기본 모순을 가장 첨예하게 받았지만 혁명 한 군데도 안 일어났어요.
러시아의 어떤 한 소녀가 마르크스 이론을 얼핏 이렇게 접하고 나서 너무 좋아가지고 그 좋은 혁명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러시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물어봤어. 물어보니까 마르크스가 현재 선발 가능 영국이라든가 이런 나라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마르크스가 답변을 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즉, 뭐냐 하면 존재 의식 태제 라든가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걸 부정한 건 아닙니다. 그 이후에 혁명에 목숨을 바쳤던 그리고 혁명 연구에 목숨을 바쳤던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선배들이 마르크스 이론을 이렇게 저렇게 실천과 이론 이론과 실천 구체와 추상 추상과 구체 이런 변증법적 고민을 하면서 발전시켜왔거든요.
결론적으로 오늘 발제자가 이야기한 것은 그런 맑시즘 이론이거든요. 즉, 어떻게 혁명할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어떤 사건이라든가 용어에 대해서 화학적 물리적 분석을 하는 거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라든가 용어가 있으면 이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있으면 그걸 과학적으로 분석해버리면 뭔 의미가 있겠어요?
어머니의 눈물을 갖다가 화학적으로 분석해버리면 엄마의 눈물은 소금 플러스 순수 맑은 물 이렇게 되는 거죠. 그죠? 어머니의 눈물을 이런 논의 자리에서 소금 플러스 맑은 물로 해석을 해보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민족주의라든가 국가라든가 계급이라든가 이 모든 것들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학술적으로 실천을 전제로 두지 않고 학술적으로 분석해 봤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혁명 이론적으로 다시 우리가 받아들이고 고민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겠죠.
그런 작업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화학적인 분석보다는 어떤 용어라든가 이데올로기가 있으면 그것을 현재 우리가 하고자 하는 시공간적 그 지점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고 우리는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오늘 많은 얘기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중요한 게 애국주의 민족 등등 이데올로기입니다. 제가 공부를 안 했지만 전공이 앤트로폴로지 인류학 하는 거거든요. 인류학이 뭐냐 하면 식민지 연구학입니다. 식민지 맨날 총칼로 할 수 없으니까 연구해서 다 꽂히기 위해서 연구했던 학문이 인류학입니다.
인류학적인 그거 보면은 이 지구상의 유럽이 자본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문명을 발견해가지고 만들어내 가지고 전 지구를 유럽화시킨 거죠. 유럽화시킬 때 인류학이나 학문이 기여했던 게 이데올로기적인 거거든요.
민족이라는 개념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개념 이데로기입니다. 국가라는 개념도 이데올로기고요. 근데 그 실체도 있죠. 근데 우리가 운동을 전제로 두고 변혁을 전제로 두고 이런 개념을 사용하고 분석하고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파성이라는 것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혁명적 노동자 계급적 당파성이 들어갔을 때 그 민족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고 부르주아 당파성이 들어오면 적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전선을 하지 않고서 노동자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혁명할 수 없다. 이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면 민족이라는 개념이라든가 이런 것들 베네딕트 앤더슨이 얘기했던 상상의 공동체 또 유럽하고 사회 역사의 배경이 다르잖아요.
유럽은 그럴 수 있지만 지구상에 소단위들 민족 단위가 500만 개가 넘어요. 그쪽에서는 민족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중요하고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혁명을 위해서도 중요해요.
이 통일전선적 관점에서 혁명을 하고자 할 때 민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적절히 잘 사용해서 반혁명 방파제로 쓰고 있는 민족 개념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걸 이제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3대 모순 3대 정치적 과제 분단모순 민족 모순, 계급 모순 3대 모순이잖아요. 이 3대 모순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힘을 잘 합쳐가지고 이 사회주의 공동체로 나아갈 것인가 그런 개념에서 이 발제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면 좀 더 발전적인 논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좀 동물이라서 운동하시는 분들하고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다릅니다. 굉장히 리버럴하기 때문에 조금 사실 제목부터 사실 조금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양극주의는 배치됩니다. 선생님 말씀은 배치되지 않는다는 거죠. 항상 근데 애국주의라는 말이 이게 굉장히 듣기 좋은 소리지만 사실 다르게 표현하면 국수주의의 비하 말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국가는 민족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어떻게 보면 이 에르스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냐면 자기 국가만 사랑하고 다른 국가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쉽게 말하자면 제국주의 세계 어떤 이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어떤 개념이다. 그렇다라면 그렇다해도 국제주의하고 애국주의는 어쩌면 항상 대신 되어야 하는 개념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하고 싶습니다.
국가라고 이야기할 때 그러니까 상상의 공동체들도 있고 역사적인 어떤 개념 규정이라는 어떤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실질적으로 있는 어떤 국가라는 형태 그것에 대해서 이념적으로 뭔가 규정하는 것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서 국가는 존재한다라는 거죠.
식민주의 시대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식민주의 시대에 있는 구성원들 식민지인들이 자기들이 해방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만드는 거예요. 국가를 형성하는 거거든요. 국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어떤 과정은 굉장히 정당하다. 그런 건 정당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국가가 가지는 국가에 대한 어떤 이념이라는 것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애국주의라는 것이 국제주의랑 대치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선생님 말씀하시는 거는 약간의 맥락이 좀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노동자 국제주의와 그다음에 사회주의 애국주의라고 했는데 결국은 사회주의 사회 마지막 단계로서의 공산주의 사회는 국가가 소멸한다는 거는 거의 기정사실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알 것 같은데 여기서 굳이 사회주의 애국주의라고 표현을 했단 말이에요.
애국주의는 또 민족하고도 또 다른 하나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잖아요. 그래서 국가주의적 표현을 이걸 굳이 써야 하나 하는 이런 의문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여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현숙이라는 분 입장을 주로 비판하는데 초점이 있어서 그러면 노정협하고 노사과연하고 가장 큰 차이는 뭐지 이런 의문이 좀 생겨가지고 그거를 조금 혹시 정리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논리적인 형태로 드러났기 때문에 서로 보면서 운동이 발전하기 때문에 완결된 형태로 썼으니까 그걸 보면서 서로 토론하면서 이런 발전 과정이 있다고 보는 거고요. 근데 뭐 국가가 소멸 되는데 왜 애국주의냐 얘기를 하는데 저기 뒤에 보면 국가주의적 개념하고 여기서 애국심하고 좀 약간 다른 것 같아요.
이북에서 특히 저도 궁금했어요. 우리는 국가에 대해서 폭력의 도구를 알고 있잖아요. 근데 이북에서 맨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애국심만 가지면 입장 좀 달라도 같이 할 수 있어 이런 얘기를 계속하잖아요.
심지어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공산주의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공산주의라는 민족주의 이거를 서로 제대로 철저하기만 하면 양자를 통일적으로 본다는 거예요.
우리가 봤던 언어가 다르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고민해 보다가 우리가 너무 국제주의를 일면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에 이르렀어요.
지금 우리 운동의 질곡은 너무 국제주의가 없어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 어마어마한 학살을 보면서 오늘 서울역 보니까 이스라엘 국기 들고 시위하고 있더라고요. 극우적인 종교 단체인 것 같은데 근데 저들은 저렇다 하더라도 이 어마어마한 학살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사실 별 반응이 없어요.
자기 임단협에는 없지만 이거에 대해서 궐기에서 파업까지 벌여야 할 상황이고 진짜 어마어마한 학살인데 너무 국제주의 관점이 없고 자기 문제만 협소하게 보니까 그것이 우리 운동에 가장 부족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니겠나 그래서 사실은 국제주의가 부족한 문제도 쟁점이에요.
또 하나는 국제주의를 잘못 해석한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 노동자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또 민족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도외시하거나 이런 것들이 많고 잘못하면 이거는 과거 자격과는 이런 문제가 있고 실제 우리도 역사적으로 해결 안 되는 이런 문제가 있고 또 분단 문제가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너무 도의시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사실은 뭐 이런 문제를 얘기했고요.
저는 우리가 애국심에서 보통 저들이 애국심이라는 이유에서 민중을 동원하고 이러고 그런데 하나의 뿌리를 찾는 예를 들어 사회주의가 되고 우리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 그런 얘기 하잖아요. 사회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을 얘기하는데 우리 말에 긍지를 갖고 우리 말을 발전시키고 우리 전통문화 중에 좋은 거를 더 발전시키는 거는 사회주의라고 해서 뭔가 좀 이상한 사람들 세계는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긍정적인 거 이런 것들은 더 발전시켜내고 그러면 사회적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나가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오늘 제가 이런 많이 제기가 안 되는 부분을 후반부에 얘기를 많이 했고요.
근데 사실은 이북에 대한 얘기 많이 안 했어요. 다음 기회에 더 하고요 이북에서는 애국심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애국심 하나만 되면 입장이 달라도 같이 할 수 있다 이런 게 일제시대만의 산물인 건지 지금은 그런 얘기를 많이 해서 저도 많이 궁금했는데 그럼 또 공산주의를 또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좀 토론 과정에서 더 많이 얘기해서 좋은 얘기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지금 결여된 게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 주제가 우리 운동에 필요한 이런 것들을 많이 채워나갈 수 있는 그런 좀 풍부한 자리가 됐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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