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일기(3)
“젊었을 때는 이뻤겄어...”
달빛 김 일 호
무료급식제도가 정착되면서 그전에는 더러 급식현장에 나가 봉사 활동에도 참여한 바 있지만, 비서실장이라는 역할이 바쁜 직장 일을 소화하느라 근래에는 오랫동안 찾아보지 못하다가 모처럼 연기군노인 복지회관을 찾으니, 자원봉사자들이 밝은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전 11시쯤, 현장에 도착하니 바르게살기운동조치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파란유니폼을 입고, 주방에서는 요리를 하고, 밖에서는 1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을 정돈하고 있었는데, 식욕을 돋구는 구수한 음식냄새와 훈기가 가득하였다. 회원들에게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물어보니, 출입구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나누어주면 된다고 했다. 문밖에는, 벌써 수 십 여명의 어르신들이 줄서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저기요! 밖에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날씨도 춥고 하니 미리 안으로 모시면 안될까요?”
“그런데 실장님!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좀처럼 통제가 안되어 매우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불편하신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에 입장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 해 주세요.”
상황을 잘 모르는 내 마음은 송구스럽고 안타까웠지만, 현장분위기를 보고 나서는 금방 이해 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 20 분, 다시 한번 배식준비를 점검해보고, 출입문을 개방하였다. 순식간에 100여명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의 화색을 보아 대체적으로 건강해 뵈시는 분들도 더러 눈에 띄지만, 초라한 행색에 지팡이에 의지한 분들이셨다. 한 끼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차가운 꽃샘추위 속에 달려 오셨을 거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니 가슴속이 뭉클해졌다.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근데 오늘은 이름도 적지 않고, 남자분이 봉사를 하네...”
“예! 잠시 할머니, 할아버지 식사를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려! 인상이 참 좋구먼....복 받을겨.”
수저와 젓가락을 가지런히 챙겨 손에 쥐어 드릴 때마다, 내 얼굴 한번씩 흘깃 쳐다보고 하시는 말씀이나 표정이 다양하였다.
배식을 시작한지 2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100석 규모의 식당 안은 음식냄새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아직도 배식을 기다리는 분들이 줄잡아 몇 십 명은 남았는데, 준비해 둔 밥이 동이 나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봉사자들의 말에 의하면 일주일 3회의 무료급식을 하고 있지만, 오늘처럼 많은 분들이 오신적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당초 무료급식의 근본취지는 가난과 질병으로 소외된 어르신들의 생활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모아 시행하는 사회복지 시책이었다. 그러나 시행 후 몇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그러한 취지가 상당부분 퇴색하여,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 그저 살만한 사람들에게 까지 집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에 따른 자치단체의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에 놓여 있다. 무료식당을 이용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질병이나 가난과 무관한 어르신들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엔 이뻤겄어!”
“예?...”
“젊었을 때는 이뻤겠다구....”
“아...예!”
키 작은 어느 할머니가 식판을 받아들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시며, 주름 깊은 미소로 하시는 말씀이쑥스럽게 들려왔다. 아마도 한때나마 자신을 챙겨주는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시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향수에 던지는 말씀이셨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첫댓글 퇴색~~ 세상 모든 일들이 가을 햇살에 내몸 던지듯 그렇게 변화고 추락하는가 봐요~ 실장님은 존재 자체가 그 분들에게는 예쁜 선물이 되셨네요~
어쨌거나 마음뿐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꿔 봅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요즘입니다. 실장님 같으신 분 들때문에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