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월04일-
1135년(고려 인종 13) 서경에서 묘청 반란,
묘청은 서경으로 서울을 옮길 것을 주장하였다가 개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교주의자와 사대주의자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묘청의 군대는 김부식이 거느린 관군에게 전멸되고,
묘청은 배반한 부하에게 죽음을 당했다.
1458년 (조선 세조 4) 조선 초기 역사 기록 <국조보감> 제1차 편찬 완료
1642년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1642-1727) 태어남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근대 과학의 아버지 과학사에서 손꼽히는 책의 하나인
<프린키피아>를 저술 "오!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네가 한 짓을 너는 모르리라!
1884년 영국에서 페비안협회 결성
1901년 카네기, 카네기재단 설립
1916년 총독부 `교원심득(敎員心得)` 공포
1920년 간도국민회 임국정(林國楨)등 5명 조선은행 회령지점의 현금수송차 습격
1924년 의열단원 김지섭 의사, 일본 궁성에 폭탄 투척
1938년 채만식, 장편 '탁류'를 조선일보에 연재(~5.17)
1940년 각도에 경제경찰과 신설
1941년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 사망
1947년 임시운항무역법 공포
1948년 미얀마(구 버마), 영국으로부터 공화국으로 독립
1949년 동경에 주일 한국 대표부 설치
1949년 한미석유협정 조인
1951년 1.4 후퇴(인민군 서울 재점령)
1월 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오른 행렬. 1.4후퇴는 혹한 탓에 6.25 발발 직후의 피난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1950년 12월 하순 38선 일대까지 남하한 중국군과 북한군은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일제히 38선을 향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동원된 적의 병력은 중국군 17만명, 북한군 6만명.
정부는 이에 앞선 12월 24일 '서울시민 피난령'을 발표했고, 12월 말까지 서울 시민 중 약40%가 피난을 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4일, 이른바 '1·4후퇴'인 이날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후퇴했고 유엔군도 서울철수를
완료했다.
중국군은 다음날인 1월 5일 서울로 진입했다. 중국군은 1월 7일 수원, 1월 8일 오산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오산∼장호원∼제천∼영월∼삼척선에서 다시 반격전을 시작했다.
1월 15일에 시작된 유엔군 반격작전의 중점은 북쪽으로 진격하기보다는 적병력을 대량 살육하는 이른바
도살작전에 있었다. 유엔군이 반격작전을 시작하자 공산군은 1개월만에 10만명의 병력을 잃었다.
트루만 미 대통령은 중국지역 폭격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52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와 관련 영국과 이집트 충돌
1956년 소련-몽고-중국 간 직통 철도 개통
1958년 소련과 동구7개국, 경제종합 15개년 계획 합의
1958년 스푸트니크 1호 소멸
1960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 사망, 1957년 노벨문학상 받음,
1961년 아프리카 수뇌회의 개최. 7일 카사블랑카 선언
1965년 64년도 수출실적 1억2,073만 달러 기록
1966년 프랑스 리옹시 근방 정유공장 폭발 110명 사상
1972년 한미섬유협정 조인
1980년 카터 미국 대통령, 소련군 아프간 침공을 항의한 후 곡물수출대폭삭감등 대소련보복조치 발표
1981년 언론 통폐합으로 연합통신 창설, 사장에 김성진
1981년 정부, 국유재산 7조 9556억원이라고 밝힘
1982년 문교부, 중고교생 머리는 1982년 새학기부터, 교복은 1983년부터 자율화한다고 발표
1982년 바르샤바조약국 정상회담 개막
1986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동부 핵연료 공장서 방사능가스 유출사고 발생, 100여명 사상
1987년「서울대학교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발생- 서울지방검찰청, 1.24.부터 5.29.까지
가혹행위를 한
경찰관 5명 기소 - 대검 중앙수사부, 6.5. 가혹 행위자를 축소·도피시킨 치안본부 5차장(치안감) 등
경찰관 3명 기소, 88.2.1.박종철의 사인을 조작하려한 전 치안본부장 기소
1989년 WBA, 프로복서 유명우 선수를 '88년 최우수복서'로 선정
1989년 질식성, 독성 또는 기타 가스 및 세균학적 전쟁수단의 전시사용 금지에 관한 의정서, 국내에서 발효
1991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1차 개정. 형사재판권 자동포기조항 삭제
1991년 과학기술처, 'IR52 장영실상' 제정
1991년 서비스 요금 기습 인상
1991년 환경처, 환경보존 5개년 계획 발표
91-95년까지 총 5조1175억원 투입 전국 주요 상수원 수질을 1급수로 개선
생활쓰레기 위생처리율 61%로, 하수처리율 65%로, 대기환경은 환경기준 이하 유지
2004년 미국탐사로봇 ‘스피릿’ 화성 안착
2007년 국내 最古 추정 '한글 금속활자' 발견
2007년 美 첫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취임
2009년 과테말라, 산사태 발생
2010년 세계 최장 빌딩 부르즈 칼리파(옛 부르즈 두바이) 개장
2010년 서울, 사상 최대 폭설
경인년(庚寅年) 새해 첫 출근일인 2010년 1월 4일, 서울과 중부지방에 기상관측 사상 최대의 '눈 폭탄'이
쏟아져 극심한 교통대란을 빚었고 일부 도시기능이 마비됐다. 서울시와 각 시·군은 아침 일찍부터
제설작업에 나섰지만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처리하지 못해 도로는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4일 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에 쌓인 눈은 25.8㎝로 적설량 측정이 시작된 1937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1969년 1월 28일 25.6㎝였다.
이날 폭설로 모두 194개 열차가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수도권 전철에서는 45개 열차가 지연 운행됐고,
7개 열차는 운행이 취소됐다. 김포공항은 오후 3시까지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해 공항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인천공항은 22편이 결항했고, 104편이 지연, 3편은 회항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내린 대설경보를 해제했다. 하지만 5일 아침 기온이 서울과
인천은 영하 10도, 수원이 영하 11도, 철원이 영하 17도 등 폭설 이후에 한파가 이어져 제설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첫댓글 선배님 반갑습니다
아~1월4일이란 날
지난 혼돈의세월속에 많은사건사고가 좋은일보다 아픈역사가 많았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좋은기록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