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딩이야기 - 폭설이 내리던 광란의 라운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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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월...
유난히 춥고 눈보라가 치면서 마치 히말라야 느낌이 물씬 나는 어느 골프장의 코스....그날을 기억해보려한다...
해저드 오비 카트도로 ...구분은 없어진지 오래...걸으면 눈이 발목보다 훨씬 올라오는 그런날....
나는 300명 가량의 캐디들중에 홀로 라운딩을 나갔었다.....그땐 울고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재미있는 근무기억이였다..
아무리 겨울이여도 우리골프장은 그린비를 대폭 할인하여 은근히 일이 있었다...우리골프장은 양잔디여서 겨울에도 여름처럼 푸르른 빛을 띄는 멋진 골프장이였다...거기에 2틀동안 36홀을 저렴하게 돌수있는 패키지를 만들어 한겨울에도 사람들이 다른골프장에 비해 많이 있는편이였다..
멀리서 큰맘먹고 오랫동안 달려 온 고객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게 심상치 않아서 라운딩 나갔다간 눈사람이 될 판이였기 때문이다.
고객이 라운딩을 꼭 나가야 한다하면 캐디는 그상황이 어떻든 간에 고객과 함께 해야한다.
이런날 나가면 죽겠다~하는 악조건에도 내가 맡은 고객이 나가겠다면 꼼짝없이 나가야 한다.
왠만한 폭설,추위,더위,폭우,번개 에는 꿈적하지 않는캐디들...다들 한번씩은 악조건에 근무해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앞이 안보이게 눈이 내려도 내가 맡은
고객이 라운딩을 하시겠다면 거부할수 없고 내 건강을 염려해 나가지 않으면 벌당 (잡일,근무제외) 을 받는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캐디는 폭설이 내리는 코스로 나갈수밖에 없다.
다른팀들은 모두 캔슬되어 집에 돌아가시는데 우리 고객님은....고민을 하고 계셨다..
남자분 두분에 여성분 두분.....멀리서 오셨다지만 여성분도 있는데 설마~
설마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던 걸까......모두가 포기하고 셋팅했던 클럽정리를 하는데...나는 첫홀로 향하게 되었다...
기왕 출근했는데 돈을 벌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영화에나 나올법한 폭설인데 이거~괜찮을까...자꾸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겨울에 캐디는 옷도 여러겹 겹쳐입고 캐디 유니폼도 두꺼운 패딩이라 견딜만 한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한 3초만 가만히 있으면 머리위에 눈이 10센치는 쌓이는 상황이였다.
첫홀 드라이버를 챙겨드리고....문득...고객들이 괴씸하고 밉고 짜증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본인들은 좋아서 친다쳐도......나는 무슨죄인가..다른캐디에게 넘길수도 없으며 내일 몸살로 들어누워서 일을 못하게 될수도 있다.
눈물이 정말 줄줄 내려오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왜.....?..
1미터 정도에서는 얼굴표정하나 자세히 볼수없을만큼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폭설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그덕에 좋은것은 있었다...표정관리는 안해도 됐으니까...
코스의 형태 따위는 보이지 않으며 거의 거대한 썰매장을 보는듯한 모습 ....
늘 다니던곳 아니랄까봐...눈속에 갇힌 코스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카트를 세우는곳은 티박스....ㅜㅡ
티박스에도 눈이 수북해서 손으로 티를 꼳을수있게 도와줬다..장갑을 꼈다고는 해도 손이 깨져버릴것 같더니 금세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그러나 했더니....그냥 냉동이 되었는지 손가락이 굽혀지기 않았다...
장갑에 묻은 눈이 녹아서 그 물묻은 장갑은 어쩌면 나인홀돌기전에 감각없이 내손이 얼어 잘릴수도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루타의 장면처럼...ㄷㄷ
여성은 남성과 같은 티박스를 사용하지 않기에 ....눈치우는 내손은 혹사당했다...
이건 장난에 불과했다..
주체할수없는 앞바람에 볼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고 대략 100m안쪽에 이리저리 떨어졌다..초강력 앞바람이 부니까 거리가 안나서 오비나 해저드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세컨으로 이동했다........
발목을 넘도록 쌓인 눈에서 어떻게 볼을 찾을수 있으랴.....
아무리 이런상황이래도 최대한 그래도 빨리 라운딩을 끝내려면 볼을 어떻게든 찾아서 클럽을 쥐어드려야 했다..
하얀 눈밭에 거짓말처럼...볼이 들어간 조그만 구멍이 보인다....
눈을 파보니.....거짓말처럼 볼이 있다....
또 서글퍼진다.....이런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그래도 계속 속으로 되세긴다.....[정신줄 놓으면 안된다...]
여성고객은 ......자꾸 나에게
[언니 핫팩같은거 없어??]
[눈보라너무심해~!!!내앞에 좀 서줘요 눈이 너무~~!!어머~]
[저볼은 새거띁은거야 잃어버린면안돼여~]
[언니 나 칠때 우산으로 눈좀 막아줘~]
[내 클럽에 눈쌓이자나~ 눈 절대 안묻게 해줘~ ]
라고 하신다.........................
어쩌라는 말인가...이런폭설에 라운딩을 나온건 "너"아닌가.........?
앞도 잘 안보이게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클럽에 눈이 맞지 않게 하려면 어찌 해줘야 하니.....?
아....너무 힘들고 너무 추워 얼굴이 찢어지려한다.....
피부는 좋아지려나?... 너무 추워 모공이 줄어들테니.....^^;;;
그린은 뭐 말할것도 없다....심하게 말해 라이고 지랄이고...ㅡ,ㅡ
눈이 그득쌓여 볼을 굴리면 눈이 들어붙어 눈사람 볼이 되어버리고....바로 얼어 잘 닦이지도 않는다...입김으로 녹여서 닦았다....
뭐 대략 그런상황의 반복....
서로 대화가 안되니 얼마나 악을 썼는지...득음한듯한...목상태...
장갑에는 얼음이 자꾸생겨 떨어지라고 박수를 치며 뛰어 다녔다...
6홀정도 였을까......경기팀에서 무전이 왔다.....
[000캐디~어떻게 할만한가~? 정말 고생이 많네..]
동료들의 무전....
[00언니~~~나 집에 안가고 언니 다돌고 오면 갈께~힘내...]
[이게 무슨일이래...앞도 안보이는데...치고있는거야??!! 지금 전 코스에 너네팀밖에 없어~]
걱정해주는 동료가 있어 기쁘다...내가 인간관계는 좋은가보다...
힘을내자...정신줄을 붙들자....되세긴다..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는데..남자고객이 한마디한다.
[와~지금 이 골프장에는 우리밖에 없는거지??~대통령골프네~]
[진짜 멋지다..이런상황에서 라운딩 하는것도 큰 경험이야~이런상황에 골프치는사람들 우리말고 또 있으면 나와보라그래~ㅋ]
고객들은 신나서 참좋겠다...나도 신나고 싶지만...신발안에는 눈이 들어가서 발을 얼린다...손은 말할것도 없고 진정 냉동된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꼬집어도 안아프다....눈파헤치며 볼을 찾다보니...진짜로 반냉동이 되었나보다...
나만그런진 몰라고 눈보라를 자꾸 맞고 있다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니.......고객들 말처럼...돈주고도 못볼 멋진 광경이긴 하다...온세상이 하얗고 참 이쁘다...
하지만...이건아니다....
정말아니다...
나는 고객들이 나인홀치고 두손두발 다 들고 못하겠다며 마무리를 할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날 18홀을 다 돌게 되었다....
비록 카트는 미끄러지고 폭설에 앞이 안보이고 대화도 통하지 않고 ...손은 얼음이 되고...얼굴은 눈보라에 지속적으로 맞아 뻘것게 달아올랐어도....
마무리 할때가 되니 그냥 그랬다...
내가 캐디라는 직업을 택했고..자주는 아니지만 보람도 느끼며 이리저리 걷고 뛰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참고 지내왔으니...
이런일도 내가 택한 멋진직업 캐디가 아니면 어디가서 겪어보랴 싶었다..
그래 마무리 잘하자..난 캐디니까~^^
마무리 멘트를 하는데 여자고객 한마디........................
[아휴~클럽 다 젖어서 어째....언니 마른수건 있어?? 물기 하나도 없게 좀 닦아줄래요?? 젖은채로 넣으면 나중에 곰팡이 생겨~]
......
미안하지만 젖은건 니 클럽만이 아니란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속옷까지 홀딱 젖었다.
나도 젖은채로 방치되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네 ~고객님^^* 제가 잘 닦아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속으로 생각한다.....너 참 속도좋다~......너도 서비스직에 오래 몸담고 있다보니.....여우가 다 됐구나....
...나 이렇게 돈벌고 있다....나도 귀한딸인데 겨울엔 냉동될뻔 하면서...여름엔 탈진*탈수 하면서...
겉은 웃고있지만 속으로는 눈물이....ㅠ 나온다...
그리고 ....
[이런날씨에 우리때문에 고생했어요...ㅎㅎ] 라는 말까지는 바라지 않으나...
그 흔한 [수고했어요~] 한마디가 없다....
심지어 현장에서 지금하는 캐디피를 락커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래.....
너희에게 바라는건 없다.
오늘 내 재수가 이런거니....
하지만....골프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잠깐 소나기~살짝 눈발이 날려~???그런날씨에 라운딩 하는걸 가지고 이런글 쓴건 아닌걸 다 아실꺼다....
그래도 최소한의 플레이가 가능할때....라운딩으로 인해 건강을 위협할정도가 아닐때....
제발 그럴때만 플레이 해주시길....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우스게소리로 말할수있게 됐지만....
당시 라운딩 후에 귀에 동상이 걸려서 검은빛으로 죽은듯하였고.. 얼었다 녹은 내 얼굴은 뻘걷게 달아올라 몇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 생각이지만 그때 두쌍의 커플 고객들....그들도 분명 몸살에 시달렸겠지?? ( 나보다 더 얇게 입고 있었으니.....여자골퍼는 치마.. )
다른골프장가선 폭우...폭설에 볼치지 말았음 한다......아님 노캐디로 하고 너그들끼리만 나가렴.......
지금은 잼나는 라운딩 경험담을 만들어줘서 살짝 고맙기도 한 그들....어딘가에서 잘 지내겠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분명 내또래 였지.......절대로...
잊지 않겠다.......ㅡ ㅡ
첫댓글 그정도 폭설이면 휴장 아닌가요? 실화라면 손님이 너무한거 같네요................
저는 제주도에 삽니다. 구력은 20여년 됐구요.
저런경우 참 많이 봅니다, 가끔 경기과에 얘기하게 되곤 합니다..수입도 좋지만,고객우선?, 회원이고 나발이고 골프장측에서 경기를 스톱시키라고...참 정말이지 아닌말로 미친넘 많습니다.. 개인적으론 충분히 이글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네요~
설령 날씨가 화창하드라도 캐디를 종부리듯하는사람! 말투 하나하나에 지가 무슨 네로황제인것처럼..참 안스럽지요~ 골퍼가!!
골프에 캐디는 자신과 같은 존재임을 모르는..ㅜㅜ
입문,티칭할때 메너교육이 많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도 메너교육 차원에서 입문할때부터 가르켜야할 부분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역시 구력 20년의 베테랑 베스트-골퍼 세요^*^ 충분 공감~~~
저도 제주삼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골퍼들에대한 매너교육 절실합니다..........골프방송에서 왜그런걸 안하는지 개인적으로 유감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