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꼬박 2주가 지났다.
한 삼사일 전부터 다시 꿈을 엄청나게 많이 꾼다. 자는 중에도 종종 깬다.
날이 갈수록 펌프모터 소리에도 잠을 잘 자고, 그리고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다. 적응되고 있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다행이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월 수 금 요가를 할 테니, 그래도 하루를 자신감 있게 시작할 수 있는 날이 많을 것 같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새롭고, 모르는 것 때문이었다. 새로운 것 보다 모르는 것이 좀 더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집에서 떠나오고, 일상을 나누던 엄마나 멍미나 흐인이 미경씨 친구들과도 떨어지고, 창조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온지도 엄청 오랜만이고, 필리핀은 처음 오는 곳이었다. 용하를 제외하곤 모든 것이 새로웠다.
힘들었던 건 학교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것이었다.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나, 학생들 사이에서의 룰이나,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는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아직 안 해본 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질문할 수 없으니, 질문을 해도 구체적인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희창쌤, 희규쌤, 국제쌤들, 기존의 아이들, 음음음.
지금은 대략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지낼 것인지 알아가고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잘 모르는 것들은 그때그때 물으며 처리하고, 도움받고 있다.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히스토리를 하면서 한명한명 알아갈 때, 같이 지내는 금산간디중등쌤들을 알아갈 때, 가드쌤들과 인사나눌 때, 워커쌤들 얼굴을 익힐 때, 같은 팀인 고등쌤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희규쌤 만나고, 뭐.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것이 힘이 났다. 예전에도 이랬나 싶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저께 희창쌤 집에 다녀왔지.
승이랑 소윤이랑 수현이도 좋았다고 했다. 수현이는 여러 좋은 마음이나 생각을 재밌었다고만 표현했지만.
용하는 기둥이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용하랑 내가 채울 수 없는 기둥같은 든든함이라고 했다.
나도 좋았다.
여러 이야기들 했지만,
그냥 이제 시작하며 올해를 사랑으로, 사랑하며 산다면 어떤 것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4월에는 한국에 다녀 오신다고 했고, 사랑으로 잘 지내고 있겠다고 잘 다녀오시라고 했더니, 맛있는 것 사오시겠다고 하셨다.
누군가가 준 것들을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도, 지식도, 물건도, 말도,
누군가가 손에서 손으로 준 것을 아주 잘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쇼케이스를 준비 중이다.
오늘 안에 대략적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제 희창쌤이 언급한 방법 'investigate, thema, problem' 방법을 지금 준비한 것이랑 좀 어떻게 연결해볼까 했는데, 쉽지가 않다.
금요일 밤부터 푹 쉬고 자서 그런지, 오늘은 8시 쯤 일어났다.
밥 먹고, 카페테리아 당번이라 식탁 닦고 행주 깨끗이 빨아 널고, 빨래 돌려서 널고, 방청소하고, 우리집 입구 쓸고, 화장실 청소하고, 물샤워하고, 티쳐스룸 와서 메일 보내고, 이런 저런 일들 하고, 영어공부 조금, 뭐 그렇게 저렇게 보내고 있다. 좋다.
평일을 일요일처럼 좋게 살 수는 없는지. 있지. 암튼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다 이번주.
오늘을 이렇게 살면 이번주를 덜 허덕이지 않을까 싶다.
멍미가 많이 보고 싶다.
첫댓글 물 탱크 소리에도 이제 잘 잔다니 다행 ㅋㅋㅋ 저도 심처럼 한명 한명 알아갈때 진짜 많이 힘이 나요! 평일을 일요일처럼 좋게 사는거 같이 해요 같이~~~ 새로운 주도 화이팅!
이제 이번주도 잘 살아보아요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