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자연생태계 순환질서
지금까지 성별, 지역을 중심으로 인간중심주의 안에서 사고를 했다면 이제는 다양성과 다종성을 부각시키면서 동등하게 존중하는 측면에서 보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생태철학의 사고는 생태적 관계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인하여 순환성을 가지고 심화시킬 수 있는 원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태적인 순환과 관계를 파괴하는 인간 중심주의 사고와 그 행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문학적 생태철학이 장일순의 영성적 세계관을 비추어 보았을 때 신비주의적이면서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개인의 윤리적인 차원에서 생태 담론을 품고 있어 이러한 문제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문학적 생태철학은 장일순의 영성적 세계관처럼 한국의 전통사상인 동학을 중심으로 하면서 노장과 불교의 사상이 혼용되어 일상의 삶 속에서 생명운동을 강조되면서 문학적 색채가 되는 것이 고유한 문학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본다.
발표 당시에는 생태문학을 표방하거나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에서 발표한 백석 시의 「흰 바람벽이 있어」 가 자연과 인간을 대등하게 표현한 자연생태계의 순환질서와 생명력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게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문장》
발표한 1940년대에는 생태적인 사회 환경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성적 시적 공간에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에서는 우주 만물이 창조할 때 창조주께서는 공존에 대한 중요성을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즉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존재를 말한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배재된 스스로 자존하는 살아있는 현실의 존재이다.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에서는 배려하고 포용적인 삶 속에서의 자연생태계는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남다른 세계는 생명이 있는 생태계의 사고의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의 고통과 번민 등을 비판하기보다 그 현실에서 초월하려는 영성적인 시적 화자의 진지한 모색이라는 점에서 생태생명력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초생 달과 바구지 꽃과~,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에서는 생태적인 자연도 그러하고, 인간들도 그러하다는 것은 화자의 시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공동체적인 평등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생태계의 개체들과 릴케가 그러하듯이 생태계의 구성원에 불과하다고 깨달은 인간들에게 존재 그 자체를 발견하고 자족(自足)하는 세계를 재현하는데 언어의 순결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구환경위기가 심각해진 시기에 학습자들에게 백석 시에 드러난 암울한 미래를 형상화하는 단계를 지나서, 문학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제기하고 있는 논의들을 내면화하여 생태계 변화에 따른 재인식화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우난골족」에서는 사회공동체 문화를 표현하면서 인간들의 삶을 파고들어 구성원들의 공존과 화합을 이루는 장면을 떠 올리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남긴다는 사명으로 평북 사투리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며 사회구조가 여성적 원리를 잘 구현됨으로써 가부장적 압제의 현실을 고발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게 한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마마) 송송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판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사는 고모, 고모의 딸, 작은 딸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파르르) 성을 잘 내는, 살빛이 매감탕(엿을 고아낸 갈색 물)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사는 고모,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단정하던, 말끝에 서럽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오리 잡는 올가미)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밴댕이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숙모), 사촌누이, 사촌동생들
이 그득히 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방에 들 모이면,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 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송기떡, 소나무 껍질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끼니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잔디씨)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 숟가락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 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숨바꼭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이,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이를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 안에서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아랫목)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공기놀이) 하고, 쌈방이(주사위) 굴리고, 바리깨돌림(주발뚜껑 돌리기) 하고, 호박떼기(따먹기) 하고, 제비손이구손이 (다리끼기 놀이) 하고, 이렇게 화디(등잔 얹는 기구)의 사기 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토종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 자리다툼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창문에 텅납새(처마, 추녀)의 그림자가 지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북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 (새우에 무를 썰어 넣은 국)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백석의 「여우난골족」 전문 -
「여우난골족」은 여우난골이라는 마을에 사는 일가친척들을 말한다. 1연에서부터 토속적 평안북도 사투리로 표현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본다. 토속적인 우리말 표현은 외국어로서는 도저히 흉내도 못 낼 언어를 사용하였다. 화자는 월북 작가라는 오명으로 80년대 해금되고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리는 시인이다. 그런 상황이라서 호불호가 따른다. 오장환은 당시에 유행하던 모더니즘 시, 이미지즘 시를 따르지 않고 사투리, 줄글정도 수준이라고 시라는 이유로 혹평을 했다.
「여우난골족」에서 어린아이 시적화자의 눈에 비친 시선에 따라 시·공간 순서로 정리해 보면, 1연, 나의 집(아침)-2연, 가족의 모습(낮)-3연, 명절음식(낮)-4연, 놀이(저녁), 아르간(밤) 부엌, 웃간(새벽)이다. 모둠별로 찾고 시간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우난골족」은 여성중심으로 인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남성과 평등하게 인식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주의로만 볼 수는 없다. 여성주의는 억압과 착취를 비판하고 남성을 적대시하는 운동이지만 여성을 존중하고 인격체로 대하면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생태여성주의이다. 그래서 이 시는 생태여성주의 대표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여우난골족」은 교과서 『문학』에 2009년, 2011년, 2015년 등 창비, 미래, 두산, 천재, 비상 등에서 출판하여 꾸준히 수록되고 시 교육연구에도 많이 다루어 왔다. 하지만 사회공동체적 문제를 두고 해결하고자 하는 생태여성시 관점으로 다룬 적은 없다.
순전히 시의 내용만을 가지고 표현방법을 다루며 평북 지방 사투리 소재로 소서사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자연과 여성을 동등하게 인식하며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 공유하여 문제 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여우난골족」은 당시에 유행하던 모더니즘 시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방 색채가 강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평등과 상생의 공동체적 문화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화자의 어린이로 설정하여 여성 우위를 인식하게 하고 인간의 감정을 자연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 삼았다. 한동안 여성을 시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유교 등 오랜 관습으로 남성이라는 강자의 위주로 살아 온 이유로 본다.
1930년대 우리나라는 모더니즘사가 소개되고 시각 중심의 이미지즘이 풍미한다. 하지만 백석은 「여우난골족」에서 시각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추구하여 생태여성시가 추구하는 총체적 감각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생태시는 근대의 이성적이고 남성 중심주의 사고에서 시각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이는 자연이나 여성을 탐미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저항한다. 이러한 생태시를 통하여 비판과 자아성찰, 타자 이해,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관점을 가지게 하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우난골족」은 변방에 사는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향토적이면서 그 지방의 삶을 공존의 세계로 이끌어 오게 만든다. 그러면서 타지방과의 유대감을 갖게 하여 공동체적 사회로 형성되게 한다.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강자가 아닌 약자의 논리로서 에코페미니즘의 담론을 반영하게 한다.